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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새벽을 지킨 소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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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판사 : 백산서당
  • 발행 : 2023년 02월 28일
  • 쪽수 : 368
  • ISBN : 9788973278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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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5월은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5·18민중항쟁은 역사에 몇 줄로 정리되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처절한 몸부림으로 억압과 좌절, 굴종의 칼바람을 헤치고 승리의 장을 향해 전진하는 진행형의 역사다. 21세기를 맞고서도 불의와 정의, 증오와 화해, 대결과 연대 사이에서 목메이고 있는 것이 우리 민족사의 현실이다. 항쟁 이후 43년이 흘렀다. 학살의 주역들과 그 근원에 뿌리를 둔 자들은 권력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1980년 5월 광주에서 목숨을 내던지면서까지 부르짖었던 우리들의 간절한 외침, 민주주의에 대한 소망과 절규는 여전히 시대의 화두로 남아있다. 5·18항쟁의 중심에 섰던 우리들은 불의와 대결을 버리고 나눔과 자치, 연대의 공동체 정신이 이 땅에 완연히 뿌리를 내릴 때까지 그날의 뜨거웠던 몸부림을 잊지 않으려 한다.

5·18민중항쟁의 가치와 희생은 살아있는 역사의 진실로 남아 지난 42년의 세월 동안 매순간 우리 민중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고 세계사 속에 살아있는 민주주의의 전설이 되었다. 이 책은 5·18민중항쟁의 원인과 과정을 온 몸으로 겪었던 당시 10대 학생들의 실천을 사실에 의거하여 정리한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당시 참담하고 처절했던 현실에 맞서 민주주의를 위해 결사항전했던 10대 학생들의 정의롭고 용감한 결단과 행동을 기억하고자 한다. 더불어 권력에 눈이 멀어 나라의 주인인 민중을 몸둥이와 총칼로 짓밟고 인권을 유린했던 학살자들의 천인공노할 만행을 영원히 기록해 두고자 한다.

출판사 서평

[추천의 글]

소년들은 위대했고 계엄군은 잔인하고 무도했다

박 석 무 (전 5·18기념재단 이사장)

Ⅰ.
어느날 이덕준 군과 최치수 군이 가편집된 커다란 원고뭉치를 들고 나를 찾아왔다. 책의 제목은 『오월, 새벽을 지킨 소년들』이었는데, 5·18민중항쟁으로 생명을 바친 어린 학생과 고등학생들의 삶의 족적이자 죽음의 기록이요, 요행히 살아남아 오월의 새벽을 지켰고 항쟁의 진실을 밝히려고 생을 걸고 투쟁하는 고교생 출신 민주투사들에 관한 이야기 모음집이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고 전재수 군, 중3의 박기현·김명숙의 참담한 죽음, 고1의 문재학·안종필 열사, 더 많은 고2·고3의 백두선·전영진 열사 등의 투혼과 의혼이 고스란히 정리되었고, 못 죽은 한으로 생을 걸고 항쟁의 진실을 밝히고 이 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헌신하고 있는 투사들의 이야기가 자세하게 정리되어 있다. 개개인의 스토리를 모아놓고 보면 5월항쟁의 전모가 완전하게 나타나고 전두환 세력의 잔인무도한 학살 만행을 숨김없이 파악해낼 수 있는 자료집이다.
이 한 권의 책이야말로 군홧발과 총칼에 의해 고귀한 생명들이 얼마나 무자비하게 학살당했고, 비록 죽음이야 면했지만 생존하기까지의 참담한 고통을 얼마나 심하게 당했던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역사적 진실이 담겨 있다. 불의한 권력의 횡포가 인권과 자유를 얼마나 박탈했던가를 가장 적나라하게 증언해주는 실화들의 내용이다. 42년 전에 겪었던 비인도적·반인륜적 계엄군의 만행들은 이제는 어떤 변명으로도 ‘학살’이었음을 감출 수 없는 역사가 증명되기에 이르렀다. 초등 4학년이 총탄에 쓰러지고 중학생·고등학생들이 잔인한 죽음을 당했는데도 ‘자위권’ 발동 등의 거짓으로 역사를 왜곡할 길이 있겠는가. 이 책 한 권만으로도 5월항쟁은 불의의 총칼 앞에 민주적으로 싸우다가 끝내는 무장해서 계엄군 폭도들과 투쟁했던 위대한 민중항쟁임을 만천하에 보여주고 있다.

Ⅱ.
고3의 전영진 군은 “조국이 우리들을 부릅니다”라면서, 말리는 부모들을 뿌리치고 뛰쳐나가 시민군이 돼서 투쟁하다 계엄군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고, 그의 아버지 전계량 선생은 한이 많아 눈도 감지 못하고 죽어있는 시신을 관에 넣고 관 위에다 “장하다, 내 아들아! 니가 다하지 못한 꿈을 아버지가 이루겠다”고 적었던 것이 바로 5월 정신이 꽃피어 나올 수 있는 본질이었다. 광주상고 1학년 문재학 군은 계엄군이 다시 진입한다고 도청을 사수하다 귀가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도청을 지키다가 27일 총탄에 쓰러져 생명을 잃었고, 그의 어머니 김길자 씨는 그런 아들이 폭도라는 이유로 장례비도 주지 않자, 폭도의 누명을 벗겨주지 않는 한 어떤 보상비도 단연코 거절했으니, 거기서도 또 5월항쟁의 정신은 이미 꽃피고 있었다.
5월 정신, 항쟁의 참다운 의미가 이 책에 통째로 들어 있으니,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책인가.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자유와 평화를 찾아내자던 5월 정신, 그 정신의 발양을 위해 책을 제작해낸 최치수 군 등의 노력에 찬사를 바치고 싶다. 5월 26일 저녁부터 계엄군의 재진입이 명확해지자, 대학생 선배 시민군들은 자신들이야 죽기로 각오하고 소년 시민군들은 집으로 돌아가도록 강하게 권했으나, 죽음을 각오한 소년 투사들이 끝까지 도청을 사수한 일, 그래서 끝내 목숨을 바친 순국, 5월의 정신은 그래서 참으로 위대하다. 호생오사(好生惡死)! 인간의 본능이다. 죽기야 싫고 살기야 좋아하는 본능인데, 그런 본능을 이겨내고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까지 기꺼이 바친 정신, 5·18의 숭고함은 거기에도 있었다.

Ⅲ.
5·18 1년 전인 79년, 필자는 광주 대동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유신독재가 기승을 부리면서 말할 자유도, 글을 쓸 자유도 모두 빼앗겨, 유배지에서 신음하는 유배인들처럼 비굴하고 불쌍하게 살아가던 군상이 당시의 지식인 사회였다. 사회적 지위도, 경제적 지위도 턱없이 낮았던 교사인 우리들은 벌벌 떨면서 살아가야 했다. 다행히 광주라는 특별한 도시의 분위기에서 그래도 우리는 참으로 조그마한 용기를 내서 인권을 신장하고 사형제를 폐지하는 목적으로 설립된 세계적인 인권단체인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에 속해 있는 광주지부를 창설하여, 내가 총무담당 운영위원의 자격으로 인권에 관한 집회도 열고 회보를 제작해 인권에 관한 소식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일을 하고 있었다. 모기만한 목소리를 내고 살아가던 유배객의 신세였다고 여겨진다.
앰네스티 일과 함께 뜻있는 교사들과 손을 잡고 광주에 양서조합을 설립하여 학생들에게 양서 읽기를 권장하는 일에도 게으르지 않았다. 그해 가을, 마침내 10·26이 일어났다. 독재자 박정희 현직 대통령이 부하 중앙정보부장의 총을 맞고 목숨을 잃었던 사건이다. 그 사건은 27일 새벽에야 공개되었는데, 그날 10월 26일 오후 대동고등학교 2학년 학생 1반에서 4반까지의 240여 명은 점심 후 교실에서 뛰쳐나와 운동장에 집결하여 교련 반대·보충수업 반대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에 돌입하였다. 저녁 무렵 시위의 주모자들이라고 7~8명의 학생들이 수사기관에 잡혀가서 공갈·협박으로 사건의 전모를 토로하였다. 당시 1반에서 4반까지의 영어과목 담당 교사는 필자였다. 12반까지 있는 2학년 전체에서, 하필이면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만 시위에 참여했으니, 내가 선동이라도 했다고 여겨 다음날이면 연행해서 크게 곤욕을 치러야 할 판인데, 바로 대통령 ‘유고’가 방송되면서 진상이 밝혀지자, 수사하던 학생도 풀어주고, 저도 연행하지 않는 다행이 이어졌다. 이 책의 주인공들인 고 전영진 군, 김향득 군, 이덕준 군 등 당시 대동고 2학년 학생으로 바로 10·26 시위에 적극 가담했던 학생들이었다.

Ⅳ.
그 무렵 나는 책의 출판을 준비하던 때였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문집인 『여유당전서』를 읽다가 그가 유배지에서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와 형에게 보낸 편지들이 너무 훌륭한 내용이 많아 한글로 번역하여 젊은이들에게 읽도록 하려는 의도에서였다. 10월이면 원고가 거의 정리되어 출판사로 모두 보낸 뒤에 10·26사건이 터졌다. 책은 11월 20일자로 간행되었는데 바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라는 책이었다. 독재자 일당 몇몇 권력자들만 멋대로 살아가고 일반 국민들이야 유배지에서 신음하는 형편이어서, ‘유배지’라는 책 제목만으로도 책은 유명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책은 그때 이래 2019년 7월까지 무려 다섯 번째로 간행되어 판이 바뀔 때마다 내용도 보강되고 교정·교열을 제대로 해서 이제는 국민교양서의 지위에 오른 책이다.
이 책 전영진 열사 편에, “당시 광주 대동고등학교 2학년 영어교사였던 박석무 선생님이 자주 들려주었던 민주화운동에 대한 이야기는 전영진을 비롯한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부연설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나는 학생 시절, 고등학생 때의 4·19에서 대학생 때의 한일회담 반대 시위, 월남파병 반대 시위, 교련 반대 시위, 박정희 하야 운동 등 민주화운동이나 앰네스티 등 시민운동에 적극 가담했지만, 수업시간에 민주화운동에 관해 직접적이거나 구체적인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없다. 학생들이 느끼기에 민주화운동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그들 나름대로 판단이지 사실과는 다르다. 유신시대에 고교 교사였으니, 유신 말기 간행했던 책의 서문을 통해 그 시절에 내 생각의 일단을 피력했는데, 그때의 사정을 알게 된 것이다.
“역자는 이번 역문이 지식인뿐만 아니라 평범한 아버지들, 젊은 청년들에게 많이 읽혔으면 한다. 금전만능과 권력만능의 사회적 풍조에 젖어 있는 나이 어린 학생들, 이들을 어떻게 그러한 깊은 타성의 함정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교단에 서서 매일 청소년들을 대하는 역자로서 항상 가슴 아픈 부분이다. 이들에게 어떤 책을 읽도록 해야 할까. ……”라는 글에서 나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었던가를 알아볼 수 있다. 어른인 나야 민주화운동에 깊이 관여하고 있지만, 나어린 학생들에게는 유행하던 풍조에서 벗어나 좋은 책을 읽어서 옳고 바른 삶의 가치를 찾아내 주기를 바라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고전의 이야기를 자주 했던 것은 사실이다. 『서경(書經)』에 나오는 “백성들만이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굳건해야만 나라가 안녕을 누린다(民唯邦本, 本固邦寧)”라는 말도 해주면서, 독재자만 나라의 주인이고 백성들은 유배객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해 주었고, “수만 명의 군대를 지휘하는 장수야 빼앗아올 수 있지만 하찮은 필부의 뜻은 빼앗을 수 없다(三軍可奪帥也 匹夫不可奪志也)”는 『논어』의 이야기를 자주 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국민이 되어 국민의 권리를 포기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사나이의 굳은 뜻은 어떤 독재자도 빼앗아갈 수 없다는 등의 올바른 삶의 태도를 자주 언급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뒤에 나타나는 결과는 결코 내 의도와는 다른 경우가 많았다. 10·26시위에서 보듯, 내 수업을 듣던 1~4반의 학생들만 시위에 가담한 사실, 78·79·80년 사이에 내 수업을 들었던 많은 학생들이 대학생이 되어서는 상당한 숫자의 학생들이 전국 여러 대학의 운동권에 참가하여 민주화운동의 주동자들이 된 것도 사실이다. “형님한테 꼭 알리고 싶은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뭣인고 하니 다름 아니고 내가 그동안 징역살이 하면서 수많은 학생들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 중 형님이 고등학교 재직 때의 제자들이 참으로 많다는 사실입니다. 광주 옥에서, 전주 옥에서 내가 확인한 수만 해도 열 손가락은 넘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국에 소재해 있는 감옥에도 많이들 갇혀 있을 것인데 그 수는 엄청나리라 생각됩니다.”(『김남주 산문 전집』, 2015, 푸른사상)라는 김남주 시인이 감옥에서 내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그 스승에 그 제자」라는 제목의 글이다.
위의 내용 또한 정확한 사실이라고 여길 수 없다. 80년대 초 나라의 형편이 학생들이 가만히 공부만 할 수 없는 시대인데다, 독재가 너무 극악했기 때문에 여타의 많은 학생들이 민주화운동에 가담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금까지 살아서 올바른 생활을 하는 사람이야 나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들 큰 오해가 있을 수 없지만, 전영진 군, 표정두 군, 유석 군(심장마비로 사망) 등 세상에 없는 열사들이 내 영향 때문이었다면, 죽지 못하고 살아있는 나로서 부끄러움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래서 나는 40년이 넘도록 전영진 군의 묘소를 찾아가지 못했다. 다행히 부친 전계량 선생께서 오히려 제 손을 끌고 묘소에 함께 가자고 말해서 지난해에야 묘소에 찾아가 꽃 한 송이를 바칠 수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해 둔다. 그날은 5·15 스승의 날이었다. 스승의 날, 찾아올 수 없는 제자 묘소를 찾아갈 수 있는 스승이 찾아간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나의 부끄러움은 그래도 숨길 수 없었다.

Ⅴ.
18년의 박정희 독재시대, 참으로 길고 긴 암흑의 시대요 유배지의 생활이었다. 학생운동 출신이라는 이유로 대학교수에 임용될 수 없어 오랫동안 중·고등학교의 교사생활로 생계를 유지하고 살았다. 대학원 시절부터 교사직에 있었으니, 시작해서 끝낼 때까지는 18년, 중간에 두 차례 해직되어 실제 교단에 섰던 기간은 무려 13년간이었다. 학생들에게 올바른 삶을 설명해주면서 좋은 책 읽기를 간절하게 권유했던 것은 사실이다. 고경(古經)의 좋은 이야기들을 전달해 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5월, 새벽을 지킨 소년들』을 읽어보면서 저에게 수업을 받지 않았던 많은 젊은이들이 참으로 올바르게 살아가며, 조국의 민주주의와 자유와 인권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던졌고, 모진 고통을 감내하면서 정의를 위해 삶을 바친 기록을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좋은 교사들이 많았음을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장하다! 소년들이여! 죽음으로 5월항쟁의 진면목을 세상에 공개해준 열사들, 죽음은 면하고 감옥생활·투쟁과 헌신으로 5월항쟁의 진실을 공개해준 그대들의 공은 천추에 빛나리라 믿는다. 5월항쟁에 관련한 수많은 책과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 소년들의 이야기, 특히 5월 27일 새벽까지 죽음을 각오하고 민주주의와 광주를 지켜주었던 위대한 투혼에 감동과 격려의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최치수 군의 기록은 10일간의 광주항쟁 일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반드시 귀중한 역사적 자료가 되리라고 믿는다. 가신 이들에게는 명복을 빌고 살아 있는 투사들에게는 건강과 행운을 빌어마지 않는다. 나라와 민주주의를 그렇게 사랑했고 자유와 인권을 갈구했던 순진무구한 소년들의 진실한 고백으로 5·18항쟁의 진실이 낱낱이 밝혀지고, 이에 대한 왜곡이나 폄하는 영원히 사라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랫동안 5·18유족회장으로 아들이 못다 한 투쟁에 앞장섰던 전계량 선생의 소원이 우리 모두의 소원이기에 소원성취가 되기를 바라면서 그분의 소원을 다시 언급하며 글을 마친다. “그래서 앞으로 5·18 진상 규명이 이뤄지면 헌법에 명시돼야 하며, 헌법 전문에 들어가야 되고, 교과서에도 나와야겠고……”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역사가 아니다

조 영 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 모임 회장)

1. 5·18 광주 민주화운동(五一八光州民主化運動, Gwangju Uprising) 혹은 광주민중항쟁(光州民衆抗爭)은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광주시민과 전라남도민이 중심이 되어, 조속한 민주정부 수립,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의 퇴진 및 계엄령 철폐 등을 요구하며 전개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민주화운동이다. 5·18 민주화운동은 이후 반독재 민주화운동, 통일운동, 노동운동, 학생운동을 비롯한 민주화운동의 원천이었으며, 1987년 6월항쟁과 2016년 촛불 항쟁의 빛나는 전사(前史)가 되었다.

5월 광주시민은 신군부 세력이 집권 시나리오에 따라 실행한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로 인해 발생한 헌정 파괴·민주화 역행에 항거했으며, 신군부는 사전에 시위진압 훈련을 받은 공수부대를 투입해 해산이 아닌 폭력적으로 체포·진압함으로써 수많은 시민이 희생되었다. 특히, 1980년 5월 21일 부처님오신날. 전남 도청을 사이에 둔 계엄군이 시민들을 향해 집단 발포를 한 날이다. 생명의 존귀함와 평화를 이야기할 부처님 오신 날이었지만, 금남로는 붉은 피로 물들었다. ‘해산’이 아닌 체포와 폭력진압이 목적이었던 계엄군에 의해 자행된 만행은 민주주의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렸다.

대법원은,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군내의 반발을 무릅쓰고 12·12쿠데타를 일으켜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강제 연행한 것은 전두환을 동해안경비사령관으로 좌천 전보 발령시키는 것을 막기 위한 하극상에 기한 군형법상 반란죄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다. 또한, 5·18내란 행위자들이 1980년 5월 17일 24시를 기하여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등 헌법기관인 대통령, 국무위원들에 대하여 강압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에 항의하기 위하여 일어난 광주시민들의 시위는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였고, 따라서 이를 난폭하게 진압한 것은 국헌문란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2. 안종필, 고1. 5월에서 시작하여 5월로 끝난다는 광주의 5월. 그 푸르른 날에 17살 안종필군은 계엄군의 유혈진압이 있었던 5월 27일 새벽 도경찰국 2층 복도에서 머리와 다리에 총상을 입은 채 쓰러졌다. 교련복을 입은 두 사람, 안종필과 문재학은 끝까지 도청을 사수하다 산화하였다.

떠날 사람은 떠난 도청에서 이들이 끝까지 남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들이 꿈꾸었던 세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하였던가. 한때는 5·18은 폭도에 의한 광주사태였지만, 법적으로는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관점은 5·18 특별법을 만들 때 여야 정치인들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었다. 그런 면에서 아직도 5·18의 온존하고도 정당한 이름을 불러주지 못하고 있다. 4·3항쟁이 아직도‘4·3사건’에, 여순항쟁이 ‘여수·순천 10·19사건’에 머무른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명(正名), 5·18에 온전하고 정당한 이름을 불러주는 것, 그리하여 5·18 저항의 역사가 헌법전문에 실리는 그날. 그것이 살아남은 자들이 사랑도 명예도 남김없이 떠나간 민주 영령들의 숭고한 뜻을 받드는 것이자, 5·18 역사를 교과서로 배우게 될 후세들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는 아닐까.

3. 여기 5·18민중항쟁에 참여했다가 산화하거나 부상당한 ‘5월, 새벽을 지킨 소년들’의 숨겨진 이야기가 세상에 나왔다. 군사반란에 맞서,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나섰던 평범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항쟁의 역사, 특히 10대 소년·소녀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순수한 열정, 무명의 헌신, 그리고 가족들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질긴 투쟁의 역사가 오롯이 눈물겹게 드러나 있다.

5월의 역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은 적어지고 있다. 당시 참여했던 사람은 사라지고 기록으로만 일부 남아 있을 뿐이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역사가 아니다. 5·18민중항쟁 고등학생 동지회가 『5월 새벽을 지킨 소년들』을 발간하게 된 것도 5·18 저항의 역사를 남기기 위한 고군분투의 역사라 할 것이다. 발간을 위해 헌신하신 최치수 선생님을 비롯한 편집위원, 그리고 백산서당에 깊은 감사와 위로를 드린다.

이 책이 5·18 저항의 역사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추천의 글]

80년 5월 당시 저는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휴교령이 내려진 대동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2학년 학생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보았습니다. 핏빛으로 물든 5월 광주의 하늘을, 짓밟히고 쓰러져가던 선한 이들의 분노를, 가늠할 수 없는 많은 이들의 슬픔을, 저는 보았고 아직 생생히 기억합니다.

대학에 들어가 4년 내내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것은 그 아픈 기억의 상흔 때문이었습니다. 5·18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불의에 저항할 수 있었던 것도 광주의 슬픔이 얼마나 깊은지 저의 심장이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43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럼에도 그날의 슬픔과 분노는 아직 제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진실은 여전히 깊은 어둠 속에 잠들어 있고 책임자들은 진실 앞에 눈을 감습니다. 되레 자랑스러운 역사를 왜곡하고 폄훼하는 세력이 광주의 오월에 끊임없이 생채기를 내고 있어 너무도 안타깝고 분노합니다.

5·18 당시 광주시민들은 나의 가족이자 이웃인 많은 이들이 계엄군의 총칼과 곤봉에 맞아 피투성이가 된 채 군용트럭에 실려 가는 처참한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그 가운데 많은 분들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오월의 새벽을 지켰던 앳된 소년들도 그러했습니다.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난 많은 소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법정에는 시효가 없습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진실은 영원히 감출 수 없습니다. 오월 정신이 왜곡 없이 전 세계에 알려지는 것은 광주가 커지고 대한민국이 빛나는 일입니다. 오월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에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의 양심 있는 많은 사람들과 뜨겁게 연대하고 힘을 모을 것입니다.

오월 광주의 진실을 하나하나 축적해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시대의 어둠을 넘어,
죽음을 넘어 위대한 오월의 민주역사는 시대정신이 되고 민주·인권·평화의 이정표가 되어야 합니다.

『5월, 새벽을 지킨 소년들』은 갇혀 있는 5·18을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살아 숨쉬는 5·18로 승화시키는 또 하나의 징검다리입니다. 그날의 진실에 한발 더 다가서기 위해 켜켜이 쌓아가는 축적의 기록이자, 깊은 침묵 속에 묻혀 있는 5·18의 진실을 밝혀내는 힘입니다.
당시의 기억을 다시 불러내야 하는 아픔과 고통을 어찌 가늠할 수 있겠습니까. 오월 역사의 소중한 기록을 위해 마음 모아주신 유가족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책이 발간되기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주신 5·18민중항쟁고등학생동지회 관계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밤하늘의 별이 되어 우리를 밝게 비추고 있는 그대들이 곧 광주입니다.
두 손 모아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영원한 안식을 기원합니다.

2023년 1월
광주광역시장 강 기 정

[추천의 글]

10대들의 5·18민중항쟁기록, 『5월 새벽을 지킨 소년들』의 발간을 대단히 뜻깊게 생각합니다.
흩어진 사료를 모아 귀중한 책으로 엮어주신 5·18민중항쟁고등학생동지회 최치수 회장님을 비롯한 회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40여 년 전 5월, 광주·전남 시도민은 정의와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습니다. 군사독재에 맞선 오월 영령의 숭고한 정신은 6월 민주항쟁을 비롯한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원동력이 되었고, 대한민국이 민주국가로 우뚝 설 수 있는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대한 민주화운동사의 중심에는 늘 ‘소년’들이 있었습니다. 1980년 5월 27일 새벽, 계엄군에 맞서 끝까지 전남도청을 지키다 장렬히 산화한 최후의 15명 역시 고등학생 문재학 군을 비롯한 학생·청년 열사들이었습니다.
이 책에는 누구보다 뜨거운 심장을 지녔던 ‘소년’들의 슬픔을 넘어서는 정의로운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지금껏 주목받지 못한 5월의 청소년들을 민주화운동의 당당한 주체로 조명했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되짚어 보고 이를 후대에 전하는 데 매우 소중한 자료로서, 오월 정신을 더욱 널리 알리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전라남도 또한 80년 그날의 진실을 바로 세우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5·18 유공자들을 살뜰히 살피고 오월 정신을 계승·발전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채 꽃피우지 못하고 스러져간 ‘소년’들께 한없는 경의를 표하며, 오월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한 세상을 손꼽아 기다려 봅니다. 감사합니다.

2023년 1월
전라남도지사 김 영 록

[추천의 글]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더 없는 5·18 교재

5·18민주화운동은 불의에 저항한 시민들의 위대한 항쟁이었습니다. 1980년 전두환 씨 등 신군부는 민주화를 염원하던 국민들의 뜨거운 여망을 총칼과 군홧발로 짓밟았습니다. 광주 시민들은 신군부의 불의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떨쳐 일어났습니다.
그때 광주는 고립, 그 자체였습니다. 신군부는 광주 외곽을 완전 차단, 봉쇄했습니다. 광주사람들은 오도 가도 못했습니다. 절망의 고립과 봉쇄의 공포가 광주에 가득했습니다. 시민들이 먹을 쌀조차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광주시민들은 달랐습니다. 총상 치료를 위해 피가 필요하면 전 시민들이 헌혈에 나섰습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쌀을 모아 주먹밥을 만들었습니다. 수천 자루 총기가 난무했지만, 은행, 금은방 털이는 없었습니다. 시민들은 계엄군이 물러간 날부터 전남도청 앞 분수대에서 시민집회를 통해 자치를 일구었습니다. 장엄한 대동의 세상이었습니다.

이 자랑스러운 5·18민주화운동의 한복판에 광주학생들도 함께 자리했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교복이나 교련복을 입은 채 거리 시위에 동참하거나, 시가지 청소, 질서 유지 활동 등 다양한 형태로 광주와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했습니다.
특히 당시 광주상업고등학교 1학년이던 문재학 열사는 계엄군의 최후 진압이 예정됐던 5월 26일 도청에 남아 심부름이라도 하겠다며 최후 항쟁지 도청을 지켰습니다. 다음날 그는 싸늘한 시신으로 외신기자의 사진 속에 남았습니다. 〈아시아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노먼 소프가 찍은 주검 속 주인공이 바로 그였습니다. 그날 도청을 지킨 최후의 고교생은 학교 친구였던 안종필, 조대부고 3학년이던 박성용 열사도 있었습니다.

1980년 5월을 지킨 광주 학생들의 이야기가 43년 만에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선보였습니다. 5·18민중항쟁고등학생동지회가 같은 친구들의 숭고한 5월의 이야기를 담아 『5월, 새벽을 지킨 소년들』이라는 이름으로 펴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너무 늦게 빛을 보았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이제라도 증언록이 나온 게 너무나도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증언록은 당시 숨진 박금희 열사 등 10명과 구속 부상을 당했던 20여 명의 생생한 삶과 죽음, 5월의 현장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5·18로 구속, 투옥, 고문 등 고초를 겪은 학생들이 268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 외에도 더 많은 학생들이 장엄한 민주화 행렬에 동참했을 것입니다.

증언록이 나오기까지 수고해 주신 최치수 동지회장님을 비롯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 책자가 오늘을 사는 우리 초, 중, 고등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5·18 교과서가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2022년 11월
광주광역시 교육감 이 정 선

[추천의 글]

이제 ‘조국’이 대답할 차례입니다

『5월, 새벽을 지킨 소년들』.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꽃다운 나이에 그들이 지킨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어머니, 조국이 우리를 부릅니다.” - 80년 5월 21일,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억울하게 희생당한 고등학생이 도청 앞으로 뛰쳐나가며 어머니에게 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죽인 ‘조국’을 지키기 위해 오월의 새벽을 밝혔던 것입니다.

5·18민중항쟁은 대학입시를 앞둔 고3 수험생도, 한창 친구들과 뛰어놀아야 할 중학생도 가만 놔두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치고 ‘조국이 부른다’며 뛰어나갔던 그 고등학생처럼 조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희망’마저 앗아갔습니다. 80년 5월, 광주의 소년·소녀들은 그 때묻지 않은 영혼을 조국을 위해, 민주·인권·정의의 대동세상을 위해 기꺼이 바쳤습니다. 그 숭고한 희생을 추모하며, 열사들의 영전에 고개 숙여 명복을 빕니다.

그로부터 4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오월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5·1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가해자들에 대한 법적인 단죄와 피해자 보상, 명예회복이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5·18폄훼·왜곡 세력을 뿌리 뽑고, 진상규명도 더 이뤄져야 합니다. 그날의 진실을 남김없이 밝혀내 정의와 민주주의 역사로 온전하게 세워야 합니다. 그것만이 살아남은 우리가 ‘오월광주’에, 새벽을 지키다 하늘의 별이 된 소년·소녀들에게 진 빚을 갚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제 조국이 대답할 차례입니다.

전남교육청도 숭고한 오월정신을 계승하여 미래의 주역인 우리 학생들을 당당한 민주시민으로 키우겠습니다. 그리하여 오월이 다시 희망이 되고, 모두가 바라는 미래가 되도록 교육적 책무를 다하겠습니다.

그 다짐을 담아 오월광주의 생생한 증언록 『5월, 새벽을 지킨 소년들』을 추천합니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당시의 기억을 끄집어내 주신 유가족과 그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 소중한 역사의 기록으로 만들어주신 ‘5·18민중항쟁고등학생동지회’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2022년 12월
전라남도 교육감 김 대 중

[추천의 글]

오월, 새벽을 지킨 소년들

세월이 많이 흘러 40년이 넘은 이때, 80년 5월 당시에 수많은 소년들이 자진하여 목숨을 걸고 살인자들 신군부를 거슬러 용감하게 항거하며 투쟁한 사실의 기록물을 보며 크게 감동했고, 이 사실이 앞으로 국민에게 특별히 청소년들에게 널리 알려져야겠다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래서 당시에 고난을 함께 한 사제의 한 사람으로서 이 책이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추천하는 바입니다


2022년 11월 8일
화순 수강제에서 김성용 신부

[추천의 글]

5·18민중항쟁고등학생동지회가 기획하고 펴낸 『5월, 새벽을 지킨 소년들』 발간을 의미 있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1980년 5월, 광주·전남에서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던 시민들은 갑작스럽게 경악스러운 사건을 접했습니다. 두려움이 앞섰지만, 불의한 국가폭력에 의해 피 흘리며 죽어가는 시민들을 외면할 수 없어 헌혈을 하고, 주먹밥을 나누고, 시신을 수습하고, 총을 든 시민군이 되었습니다.
절망적인 순간 사람이 사람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던 ‘5·18’이었습니다. 이것은 준비된 영웅이 아닌 평범한 삶을 살던 ‘보통의 영웅들’이 만들어낸 기적이었습니다. 5·18은 서로 돕고 용기를 북돋우며 가진 것을 나누는 일이 불의한 국가폭력에 대항해 이기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역사에 남겨 주었습니다. 이후 5·18의 의미는 광주에서 전국으로,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경을 넘어서 해외로 확산되었습니다.
40여 년이 지난 동안 5·18에 대한 연구는 전 분야를 망라하여 진행되어 왔으며, 기초적인 자료수집의 일환인 ‘증언’을 채록하고 수집하는 데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그러나 몇몇 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증언 및 자료수집이 취약했습니다. 특히, 5·18 당시 초·중·고 학생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피해를 입었고, 무슨 활동을 했는지에 대한 조명은 미미하게 진행되었습니다.
『5월, 새벽을 지킨 소년들』은 수년에 걸친 증언과 자료수집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이 책은 5·18 당시 초·중·고 학생들이 피해를 입었던 안타까운 사연과 함께 청소년으로서 헌혈을 하고, 시신을 수습하고, 시민군으로 활동한 모습 등 5·18에 주요하게 참여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현재를 살고 있는 청소년들이 1980년 5·18 당시 청소년의 활동 등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또한 5·18을 매개로,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길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2023년 1월
5·18기념재단 이사장 원 순 석

[추천의 글]

「학생동지들이 부활하고 있다」

5·18학생동지들의 애통한 증언을 읽으며 며칠 밤 눈물을 삼켜야 했습니다. 이 기록은 5·18민중항쟁 당시 고교생 이하 어린 학생들이 합심일체가 되어 자유와 정의를 지키고자 했던 피맺힌 절규 그 자체입니다. 오월항쟁 당시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죄의식을 안고 살아가는 못난 선배로서 한없는 수치심을 감출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면 오월항쟁사에 있어 크나큰 죄를 지을 뻔했습니다.

5·18진상규명의 40여 년 도정에 있어 가해자의 기록은 대부분 왜곡되거나 부분적, 파편적, 편집적 진실로 남아있습니다. 80.5.21 13:00경 전남 도청앞 집단발포를 기록한 군부대의 문서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당시 전투교육사령부(전교사.CAC)에 근무했던 행정병은 분명히 발포상황을 기록했고 2군사령부에 보고했다는 증언이 있음에도 그 흔적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현재로서는 그의 증언이 유일합니다. 사실의 재구성을 통해 과거사는 복원됩니다. 이같은 사실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학생동지들의 투쟁과 억울한 죽음에 대한 증언으로 오월학생투쟁사의 빈자리가 채워지고 있습니다. 기록이 없으면 기억할 수 없으며 오월은 계승되지 않습니다. 기념사업은 속 빈 강정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날까지 5월을 복원하여 재구성하는 일에 나서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사법적 진실, 즉 사법적 증거주의만이 역사를 재정립할수 있다는 편견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은 총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는 역부족입니다. 사법적 진실 외에도 개인적 경험에 의한 서사적 진실, 공동체적 진실이라고 부르는 사회적 진실, 치유를 위한 회복적 진실 등 5·18민중항쟁이 반드시 복원해야 할 진실은 무궁무진합니다. 이제까지 5·18증언채록작업에 있어 최초인 이 학생증언집을 통해 당시 시대 상황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 대응, 투쟁, 희생, 연대 등에 대해 소상하게 파악할수 있습니다. 5·27 옥쇄투쟁을 각오하는 모습은 영원히 장엄하고 경건하게 느껴질것입니다. 부모형제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최후항쟁에 나선 학생들! 영문도 모른 채 국군아저씨에게 손 흔들다가 죽어간 어린 생명들! 헌혈하고 관을 구하고, 방송하면서 꽃다운 나이에 학살된 여성 동지들! 살아남아 포로보다 못한 짐승으로 고문당한 동지들! 지난 40여 년간 그 모든 가족들과 이웃들의 눈물은 이미 메말랐습니다. 가신 영령들이나 남은 자들 모두에게 오직 필요한 것은 진실입니다. 살아남은 우리가 오직 할 수 있는 것은 오월의 진실 앞에 그날의 각오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학생 동지들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남겨진 과제와 책임을 다시 한번 새깁니다.

2022년 11월 11일
5·18진상규명조사위원장 송 선 태

[추천의 글]

80년 5월, 삶과 죽음의 경계선인 전남도청과 YWCA에서 피에 굶주린 계엄군의 진압에 맞서 마지막까지 불굴의 의기와 의연한 젊음의 열정으로 민주와 정의를 지켜낸 고교생이었던 나의 시민군 동지들의 혈기에 삼가 머리 숙여 무한한 감사와 뜨거운 동지애를 담아 격려의 인사를 드립니다. 계엄군의 진입을 목전에 둔 항쟁의 마지막 날 저녁, 전남도청의 우리 시민군 지도부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옥쇄(玉碎)의 순간을 앞두고 항쟁을 함께 해온 여성 동지들과 고교생 동지들의 희생을 막고자 눈물로 귀가를 호소하고 마지막 작별의 인사를 했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죽음을 불사하겠다고 항쟁의 마지막 밤을 지새웠지만 죽지 않고 구차하게 살아남은 죄와 나를 믿고 따르던 시민군 후배들인 고교생 신분의 젊은 청춘들을 일일이 따져서 귀가시키지 못한 엄청난 죄를 더했습니다. 우리 지도부의 뜻과는 다르게 귀가를 거부한 귀한 청춘들이 있었습니다. 살레시오고 3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최치수나 대동고의 김향득. 이덕준, 동신고 경창수, 전남공고 문종호, 동일실고의 김재귀 등 마지막까지 항쟁의 새벽을 더불어 지켜낸 나의 아우님들이 있어서 고통스러웠지만 결코 외롭지 않았습니다. 나의 죄는 형벌의 현장인 상무대 영창과 교도소에서 후배들에 의해 더욱 커졌습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당당하게 선배들의 옥바라지에 열과 성을 다한 나의 아우들이 항상 고맙고 그립습니다.

나의 어리숙하고 어줍잖은 사랑과 그리움이 나중, 40여 년의 삶에서 그들에게 작은 부담감이나 장애가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선배이자 형이지만 아우들로부터 받은 오롯한 사랑 덕분에 나의 삶은 초라했지만 값지고 알찼습니다. 그들의 성장과 사회적 발전이 역사를 뛰어넘을 때마다 비록 나는 병석에 누워 있지만 잠시나마 병마의 고통을 벗어난 새로운 삶의 희열로 달아오릅니다.

전 5·18민중항쟁동지회장 윤 강 옥

목차

축하의 글 박석무(전 5·18기념재단 이사장)·8
조영선(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 모임 회장)·14
격려의 글 강기정(광주광역시장)·17
김영록(전라남도지사)·18
이정선(광주광역시 교육감)·20
김대중(전라남도교육감)·22
추천의 글 김성용(신부)·24
원순석(5·18기념재단 이사장)·25
송선태(5·18진상규명조사위원장)·26
윤강옥(전 5·18민중항쟁동지회장)·28

간행의 글 최치수(5·18민중항쟁고등학생동지회장)·29
글을 시작하며 전용호(『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공저자)·36

제1부: 별이 된 소년들 (사망자, 묘지번호순)

박기현 (묘지번호 1-8) / 동신중 3·50
박금희 (묘지번호 1-26) / 춘태여상(전남여상) 3·58
전영진 (묘지번호 1-51) / 대동고 3·68
박현숙 (묘지번호 2-3) / 신의여고(송원여상) 3·82
전재수 (묘지번호 2-22) / 효덕초등 4·90
김명숙 (묘지번호 2-28) / 서광여중 2·100
문재학 (묘지번호 2-34) / 광주상고(동성고) 1·106
박성용 (묘지번호 2-37) / 조대부고 3·118
안종필 (묘지번호 2-41) / 광주상고(동성고) 1·128
백두선 (묘지번호 3-66) / 살레시오고 2·138

제2부: 시민군이 된 소년들 (구속/부상자, 상황설명순)

도청, 상무관, YMCA 최치수 / 살레시오고 3·156
경창수 / 동신고 3·192
문종호 / 전남공고 2·214
YWCA, 투사회보 이덕준 / 대동고 3·228
김향득 / 대동고 3·246
기동타격대 김재귀 / 동일실고(동일전자정보고) 1·262
부상자 윤햇님 / 춘태여상(전남여상) 3·274

제3부: 동지가 된 소년들 (전남·북 지역)

영암 박재택 / 영암 신북고 2·286
이삼자 / 영암고 3·316
해남 김병용 / 강진 성전고 3·324
나주 손철식 / 나주 원예고 3·332
전라북도 전주 신흥고등학교·344

편집후기 시민군이 된 소년들 / 박은영·354

부록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 부대·357
시간대별로 보는 10일간의 5·18민주화운동·359
5·18민중항쟁고등학생동지회·364

본문중에서

1980년 5·18민중항쟁 이후 쿠데타 세력(학살자)과 그 세력에 빌붙어 호가호의했던 세력들은 5·18민중항쟁을 지속적으로 폄훼하고 왜곡을 일삼아왔다. 2008년부터는 극우 세력의 일부인 지만원이 ‘500만 야전군사령부’를 창설하고 5·18 역사왜곡 세력의 규합에 나섰고 곳곳에서 5·18 왜곡, 폄훼 강연을 여는 등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인터넷에서는 일베를 비롯한 극우선동가 괴물집단이 5·18민중항쟁의 원인과 성격은 물론 우리들의 처절했던 몸부림을 왜곡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북한군이 5·18항쟁 기간 중 광주에 내려왔으며, 모자를 쓰거나 마스크를 쓴 시민군들이 북한군이라는 허위 주장을 유포하였다. 지만원은 5·18 북한군 개입설로 5·18민주화운동을 왜곡 선전하면서 3번이나 5·18명예훼손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바 있다. 또한 지만원은 1980년 5월 27일 최후의 도청 진압 작전 때도 공수부대는 단 한 명의 광주시민도 사살하지 않았고, 북한군이나 폭도들끼리 쏜 총탄에 맞아 시민들이 희생되었다고 억지 주장을 펼쳤다.

1980년 5·18 당시 17~19세였던 우리는 어느덧 60대가 되었다. 그동안 5·18의 부상 휴유증으로 사망한 동지들, 5·18 트라우마로 목숨을 끊은 동지들, 몹쓸 병에 걸려 힘들어하는 동지들도 상당했다. 40여 년의 세월이 흐르다 보니 기억도 흐려져가고 있었기에 더 이상 미루어선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1980년 5·18 항쟁 기간 동안 각 방면에서 활동한 고등학생들을 중심으로 도청팀 (옛 전남도청, 상무관, YMCA, 시민궐기대회), YWCA팀 (YWCA, 투사회보), 시민군팀 (기동타격대), 지역팀 (나주, 영암, 해남, 전주), 부상자, 사망자 (부모님이 계시는 사망자 위주로)를 구성하여 사료집 출간 작업을 시작했다. 사망자 10명 (당시 사망자 9명, 사후 부상 후 사망자 1명)은 부모님 또는 형제들의 구술 채록과 그동안의 각종 자료들을 중심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구속자, 부상자들은 개개인이 직접 작성한 원고와 구술 채록, 그간의 자료 수집을 중심으로 원고를 정리했다. 한자리에 모여서 1980년 5월 18일~27일까지 열흘 간의 항쟁기간을 날짜별, 시간대별, 지역별로 상황판을 만들어 하나하나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보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5·18민중항쟁 ① 이전 ② 항쟁기간 ③ 이후의 삶에 대해여 기록하게 되었다.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10대 학생들은 모두 300여 명이다. 이들을 30여 명씩 묶어서 이번 책을 시작으로 제2권, 제3권 등을 출간할 계획이다. 우리는 아직도 5·18 당시 최초의 발포 명령자를 알지 못한다. 물론 여러 가지 정황상 유추되는 자는 있다. 하지만 그 장본인이 입을 다문 채 죽어버렸기 때문에 1980년 5·18민주화운동 최초 발포 명령자는 역사의 미제로 남아 버렸다. 또한 42년이 지나도록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행방불명자의 묘비는 지금도 우리들의 상처로 남아있다.

열흘간의 5·18민주화운동 기간 동안 우리가 지켜왔던 자치, 나눔, 연대의 공동체 실현은 이 나라 민주주의의 수준을 최고 단계까지 올렸다고 자부한다. 하여, 지금의 5·18은 세계 속의 5·18로 취약하고, 연약하고, 폭압받고, 강압받는 민족들에게 타의 모범이 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42년 전 목숨을 걸고 지켜왔던 민주주의와 역사의 정의를 『5월, 새벽을 지킨 소년들』에 기록하여 자라나는 10대들에게 물려주고, 초·중·고등학교를 찾아 5·18민주화운동의 진실된 역사를 알려서 다시는 5·18 역사가 왜곡되고 폄훼되는 일이 없도록 할 계획이다. 우리가 죽는 날까지 강의를 지속적으로 할 계획이다. 그것이야말로 먼저 가신 5월 영령들에게 우리들이 꼭 바쳐야 할 사명이기 때문이다.

- 「간행의 글」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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