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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채길순의 신간 소설집 『동학 이야기』 가 출간되었다.
5천 년 민족사에서 다시 개벽을 주창한 동학 창도주 최제우는 우리에게 어떻게 남았는지, 2세 교조 최시형의 38년 도망자의 포교 생애, 1894년 동학농민혁명 시기에 불꽃처럼 스러져간 민중의 처절했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꺼져간 동학농민혁명의 불꽃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시 피어나고 있는지 이야기로 들려주고 있다.
이 소설집은 동학 전후 시기에 민중의 입에서 구전되어오는 이야기를 26편의 단편소설로 구성했다.

‘작가의 말’은 세 문단으로 구성됐다.
1
최제우는 19세기 말 서세동점(西勢東漸)의 불안한 국제 정세와 탐관오리의 횡포로 민초의 삶이 극도로 황폐해져 ‘더는 살 수 없는’ 세상임을 진단하고 대안으로 동학(東學)을 창도했다. 동학의 핵심 사상은 “모든 사람이 하늘을 모셨으니,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평등”이었다. 모두 하늘같이 귀한 존재이다.
1894년, 마침내 조선팔도를 뒤흔드는 동학농민혁명이 전개되어 10만여 민중이 희생됐다. 이렇게, 우리 민중은 스스로 세상을 변혁할 혁명적인 역량을 지녔고, 죽음으로써 우리 고유의 ‘민주주의 제단(祭壇)’을 쌓은 위대한 역사가 있었다.
이 소설은 동학 ·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2
나는 아주 오래전에 여러 마을을 떠돌았다. 신문과 잡지에 동학 기행문을 연재했는데, 마을 경로당이나 팽나무 그늘에서 노인들로부터 아련한 동학 옛날이야기를 듣곤 했다. 역사기행이라 역사의 큰 덩어리를 걸러냈더니 저잣거리에 떠도는 이야기가 남았다. 이렇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흥미 있는 이야기를 반죽하여 빚었으니 ‘동학 이야기’라고 부르는 게 맞겠다.
일찍이 『삼국유사』는 야사(野史)이고, 『삼국사기』는 정사(正史)로 불렸는데, 뒷날 사람들은 야사가 더 재미있고 진솔하다고 말했다. 이슬람 세계 각지에 떠도는 설화들이 반죽 되어 16세기경에 완성된 『천일야화(千一夜話, 아라비안나이트)』도 저잣거리에 떠도는 이야기다.
3
이 이야기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서 이름 없이 죽어간 수만 민초(民草)들의 숨 가쁜 이야기거나, 이들을 죽인 지배자들의 이야기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도 옛사람과 지금 사람, 핍박하는 이와 핍박을 당하는 이, 승자와 패자, 영웅이거나 이름 없는 민초, 어른과 아이, 외국인 등 다양한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다.

두 쌍의 혼례
쌍무지개 뜨는 연못
하늘 기운이 서린 영부
이 도를 양(養)할 자 누구인가
지금 누가 베를 짜느냐
손응구가 짚신장수가 된 내력
이필제, 신미년 동짓달에 서소문 밖에서 꿈을 접다
잠실나루 사람들의 통곡
전봉준, 나주성 함정에서 살아나다
예산 홍의소년 이야기
백마의 여장군 이 소사 이야기
엄통령, 엄조이 이야기
당진 승전곡 전투 바우 이야기
이토정전(伊藤正傳)
예천 소야리 최맹순 최한걸 부자 이야기
보성 애기 접주 이관기 약전(略傳)
글 잘한다 오중문, 쌈 잘한다 오중문
부안 위도에 들어갔다가 돌아온 복장이 이야기
귀신으로 사는 동학농민군
어린 뱃사공 윤성도 이야기
강령 탈춤 패와 동학농민군
조선의 동학 거괴(巨魁) 재판 참관기
진도 뱃노래
불사조 조병갑 이야기
동학 두령 박학래 연명기
갑년이의 환생을 기다리며

-26편의 소설마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다양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의 목소리도 다양하다. 동학 창도자 최제우와 동학 포교자 최시형, 동학 동학농민혁명 시기에 이름 없이 스러져간 민초와 동학농민혁명의 영웅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동학 민중을 핍박하는 이와 핍박을 당하는 이, 동학농민혁명의 승자와 패배자, 어른과 아이, 외국인 등 다양한 인물과 사건을 통한 다성성(多聲性)으로 입체감을 높이고 있다. 이는 동학 창도로부터 지금까지 동학농민혁명의 사적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왜곡되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작가의 의도적인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동학 창도주 최제우는 오랜 주유천하와 피나는 수련 과정 끝에 신비한 영적 세계를 체험했다. 그는 자신이 체득한 영감과 감미로운 소리와 별천지에 대한 체험을 종교나 자신만의 관념이나 안위에 머물지 않고 헐벗은 민초에게 다가갔다. 세계 어떤 종교 지도자도 계급과 차별 타파를 건드리지 못해 오늘의 이기적인 거대 종교 카르텔을 형성하게 했다. 세상 가장 낮은 곳으로 내팽개쳐졌던 사람이 마침내 ‘내가 하늘’이라는 현실적인 진리에 눈뜨게 되었고, 차별과 불공정의 사회 질곡에 저항하는 동학 민중이 되었다.
다음은 몇 편 소설의 개요이다.
▶ 동학농민혁명의 불씨가 된 고부 군수는 뒷날 2세 교주 최시형의 교수형 판결 재판에 참여한다. 우리 굴곡진 역사의 한 단면이다. 「불사조 조병갑 이야기」
▶ 동학농민군을 학살한 토벌대장 이두황은 뒷날 민비 시해에 앞장섰다가 일본으로 망명했다. 몇 해 뒤에 전라북도 도장관으로 화려하게 귀환하여 영화를 누리다가 전주의 명당 기린산 자락에 영면했다. 「이토정전(伊藤正傳)」
▶ 1898년 2세 교조 최시형이 교수형이 집행된 뒤, 종로에서 미친 여자 갑년이가 아이들 돌에 맞아 죽었다. 그녀는 최시형을 체포하러 갔던 군사들에게 조리돌림 당하여 미친 여자가 되었다. 갑년이는 두 갑년이 지나 환생하여 종로에 나타나 평등한 세상을 열겠다고 공언하면서 죽어갔다. 「갑년이의 환생을 기다리며」
▶ 1906년 9월 20일, 전라남도 진도에서 사토 마사지로가 채집한 동학수괴(東學首魁)의 두개골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정 기간 연구 자료로 사용되었다가 1995년 7월 25일 일본 홋카이도대학 후루카와 강당 인류학교실에서 방치된 채 발견된다. 「진도 뱃노래」
▶ 고양 장날, 강령 현감 류관수의 눈에 해주 접주 성재식 최재호가 들어왔다. 고양 현감 정찬용과 강령 현감 류관수는 신식 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에 통지하여 체포한 뒤 한양 도성으로 이송했다. 두 동학 두령은 수원에서 붙잡혀 올라온 수원 접주 안교선과 함께 남벌원에서 참수되었다. 이들의 세 머리와 전주 초록바위에서 참수되어 올라온 김개남의 머리가 서소문 밖 저잣거리에 사흘간 효시 되었다. 「강령 탈춤 패와 동학농민군」
▶ “나를 따르라!”/ 백마 탄 이소사의 외침에 따라 동학농민군이 부사가 거처하는 선회당으로 달려 들어갔다. 이때 부사 박헌양은 선회당 마당에 세워놓은 망루에 올라가 있다가 급히 내려왔다. 백마가 단숨에 마당으로 가로질러 박헌양을 향해 달려들었다. 칼이 허공을 가르자 부사 박헌양이 비명과 함께 목이 땅으로 굴러떨어졌다. 「백마의 여장군 이 소사 이야기」
▶ 세 번을 다녀왔을 때 어느덧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마지막 네 번째, 스무 명이 배에 올랐다. 이번에 섬에 들어가면 배가 돌아오지 못하는 마지막 행보가 되었다. 배에 오르지 못한 동학농민군은 이제 발길을 돌려야 한다. 이때 파발 사내가 달려왔다. 예상대로, 날이 밝으면서 관군이 나룻배를 대고 덕도로 건너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제 나머지 동학농민군은 피난골에 은신해야 하고, 관군이 이를 알고 덮치면 고스란히 죽음을 맞이하는 길밖에 없다. 「어린 뱃사공 윤성도 이야기」
▶ 영춘이 이 싸움 끝에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죽은 사람이 되어서 다락에 숨어서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감나무에 올라가 망을 보던 고모가 2,30명의 일본군이 까맣게 몰려온다고 소리쳤다. 어머니와 영춘은 집을 나와 산으로 피하고 나이 어린 고모만 집에 남았다. 조선군 앞잡이가 집안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곰방대가 버려진 것을 보고 “동학교도의 집이다!” 하는 바람에 고모를 정지에 가두고 밖에서 문을 잠그고 집에 불을 질렀다. 영춘은 어머니를 남겨두고 그 길로 깊은 산중으로 도피하여 지리산 속으로 들어가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 「귀신으로 사는 동학농민군」
▶ 돛에 순풍을 먹은 배가 미끄러지듯 항구에서 멀어졌고, 빠르게 어둠이 몰려왔다. 갑자기 복장이의 몸에 한기가 몰려오고 다시 기침이 시작되었다. 배가 심하게 출렁대면서 속이 뒤집어지고 멀미가 났다. 황해도 몽금포에서 며칠 배를 타고 내려올 때도 하지 않던 배멀미였다. 그렇다면 병이 깊어져 몸이 더 쇠약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속이 울렁거리면서 먹은 것도 없는데 연신 쓴 물을 토해냈다. 그래도 아이는 말없이 노를 저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복장이가 지쳐서 배 바닥에 드러누워 이리저리 몸을 굴리고 있었다. 문득 별들이 총총한 하얀 밤하늘이 복장이의 눈에 쏟아져 들어왔다. 마치 하늘에 별들이 복장이를 짓누를 듯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아! 하늘의 기운이 복장이의 몸속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부안 위도에 들어갔다가 돌아온 복장이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