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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 : 김상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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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김상미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 : 2022년 12월 02일
  • 쪽수 : 148
  • ISBN : 9788954698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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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무엇이 두려운가
장미꽃이 활짝 피려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한다”

뒤돌아보는 시선에서 비로소 피어나는
두려움 없는, 지지 않는 내일의 시

문학동네시인선 183번으로 김상미 시인의 다섯번째 시집을 펴낸다. 1990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한 이래 박인환문학상, 지리산문학상, 전봉건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공적인 차원으로 전환하여 생의 진실과 비밀에 마주치게 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자유로우면서도 절제된 시인의 화법, 유사한 시어의 반복을 통해 리듬과 변화를 창조하는 그의 매혹적인 표현법은 이제 어떤 경지에 이른 듯하다”(전봉건문학상 심사평에서)는 평을 받은 시인은 삼십여 년의 시력 동안 한시도 시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자신의 시세계를 공고히해왔다. 그런 시인이 이번 시집 『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에 이르러 “설사 시가 아니라 해도/ 삐뚤삐뚤, 비틀비틀, 넘어지고, 엎어지면서도/ 나는 계속 시를 써왔다”(‘시인의 말’에서)는 말을 증명하듯, 메마른 어제의 생에서 기어코 건져올린 시어들로 어느 때보다 절실하고 순정하게 시쓰기와 ‘시인 됨’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머리에서 발끝까지 제대로 입히고 먹여줄 게 시밖에 없어
뜬구름 잡듯 또다시 펜을 집어든다

(……)

허기지고 굶주린 시 속으로
미치고 미치다 꺼꾸러진 희디흰 뼛가루
그 위에 던져진 한 떨기 백합처럼
결코 나를 놓아주지 않을 시 속으로……
_「시인 앨범 7」 부분

시인이 지나온 어제는 그리 녹록지 않다. 그곳은 아이들이 “굶주려 죽어가”거나 “매맞고 버림받”은 채 “현실에 등돌”(「보이지 않는 아이들」)리고, “싸구려 환상들이 푸른 나무들을 좀먹고 분노한 바다들이 다정한 배들을 삼키고 있”(「거기, 누가 있나요?」)는 곳이다. 고단하고 거친 어제를 겪어낸 시인에게 세상은 “절대 영혼에 기대지 말고 내면의 모든 불협화음을 잠재”운 채 “그저 살아 있는 시체처럼”(「살아 있는 시체들의 나라」) 살 것을 종용한다.
그러나 “온몸과 온 마음에 비통과 회한뿐일 때”(「문학이라는 팔자」) 시인이 택하는 것은 영혼에 기대어 내면의 모든 불협화음을 다시금 일으키는 일, 다시 말해 문학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이다. 점심값을 아끼고 처음 받은 용돈을 털어가며 사 읽었던 책들(「그리운 아버지」)과 지옥에 살고 있는 것만 같은 순간에 마주하게 된 시집들(「동네 서점에서」), “문학이라는 팔자”(「문학이라는 팔자」)를 타고난 이들이 남기고 간 작품들은 시인에게 시인으로서의 운명을 일깨워준다. “문학에 있어서나 삶에 있어서나 더럽게 불운하고, 더럽게 치열하고, 더럽게 품격 있고, 더럽게 자존이 강했던” 어제의 문인들은 하나같이 불우한 삶을 겪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시인에게 “그 지독한 불운과 죽음을 훌쩍 뛰어넘어 지금도 반짝반짝 빛이 나는” 문학을 건네준다. 그 바통을 넘겨받은 시인은 “내 팔자 또한 더럽게 춥고, 어둡고, 외롭고, 고달파도” “계속 문학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에 뜨거운 피가 솟구친다”(「문학이라는 팔자」)고 말한다. 시인에게 “시를 모른다는 건 존재의 가장 큰 비극”(「내일의 시인」)이기 때문이다.

내일로 가는 기차
나도 그 기차에 올라탔다
어제의 모든 나를 버리고
오로지 내일로만 향해 간다는 기차

(……)

이제 내게는 오로지 내일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끊임없이 뒤에 두고 온 집과 사람들
이제 막 꽃피기 시작한 라일락나무 위의 휘파람새
읽다 만 책, 쓰다 만 글들이 가슴속을 아프게 맴돌았다
_「내일로 가는 기차」 부분

끊임없이 내일을 그리는 시인은 그러므로 어제를 등지지 않는다. ‘문학이라는 팔자’를 지닌 한 어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오늘은 여태 도착하지 않았으므로 시인은 그저 “쓰고 또 쓴다”(「시인 앨범 6」). 남루하고 비정한 현실을 외면하고 내일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직시하고 고발하는 시쓰기를 이어나가며 내일로 나아갈 채비를 한다. “무엇이 두려운가/ 장미꽃이 활짝 피려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한다”(「밖에는 비가 내리고」)고 말하며. 그렇게 내일을 기다리는 동안 시인은 저 스스로 자연이 되어가고, 그 땅 위로 꽃은 피어날 것이다.

진정한 시인은 이 세상을 버리기로 한 날 밤에 다시 태어나 버섯 향기 물씬 풍기는 비에 젖은 숲에서 달빛을 만들어내는 사람 내일이면 그 달빛에 새로 태어날 시인들의 고백이 시작될 것이다 그 고백에 안장을 얹고 이 슬픈 시대를 가로질러 달려나가자
_「내일의 시인」 부분

시인은 어떠한 존재이고 어떠한 삶을 사는가? 김상미의 시편에는 유독 이러한 질문이 많다. 그는 시인으로 살아온 자신의 시인됨을 끊임없이 되묻는다. (……)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는 시에 대한 시인의 갈망은 불가능, 한계, 무기력, 허기의 정동에 사로잡히게 한다. 도달할 수 없는 힘으로 인하여 (……) 허무에 이르는 자가당착을 반복한다. 그러나 “머리에서 발끝까지 제대로 입히고 먹여줄 게 시밖에 없”는 존재의 조건이라면 할 수 없음이 오히려 잠재력이 되어 시작을 추동한다. 시에 들리고 시에 몰입한 시인의 삶은 “돈키호테”처럼 비대한 자아의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결코 닿을 수 없는 시의 지평을 염두에 둔다면 시인은 돈키호테가 아니라 끊임없는 과정의 고행자에 가깝다. 식어버리거나 타버릴 열정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남을 열망을 지녔다고 하겠다. 그렇기에 모든 시편은 항상 “허기지고 굶주린 시”에 불과하다. “결코 나를 놓아주지 않을 시 속으로” 간단없이 투신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김상미는 시에 생애를 기투하는 시인의 초상을 그려놓고 있다. 이는 단지 그가 경험하는 시인의 얼굴을 말함이 아니며 오히려 자기의 진실한 표정에 가깝다. 그만큼 의도한 “고백”(「내일의 시인」)의 발화 형태이다.
_구모룡, 해설에서

목차

1부 신(神)이 아픈 날 태어난
다중 자화상/ 미스터리/ 밖에는 비가 내리고/ 단 하나의 방/ 거기, 누가 있나요?/ 포커 치는 개들/ 한겨울, 버섯 요리를 하며/ 보이지 않는 아이들/ 엄마의 통장/ 제발 잡히지만 말고/ 짝짓기의 바벨탑/ 문학이라는 팔자/ 우울증 환자/ 동네 서점에서/ 그리운 아버지

2부 그저 살아 있는 시체처럼 사시오
반성/ 짧고도 긴 이야기/ 바얀 고비에서/ 살아 있는 시체들의 나라/ 어제의 창문/ 녹(綠)의 미학/ 병 속의 편지/ 최승자 시인/ 부상당한 천사/ 별이 빛나는 밤/ 우유부단/ 파리에서/ 자작나무 타는 소년-L 시인에게/ 분노하는 지구

3부 연포탕을 닮은 문어탕을 먹는다
너에게만 말할게-다시, 취한 배 위에서/ 난파선/ 문어탕/ 7월의 심장/ 까치밥/ 시인 앨범 6/ 딱새의 매운 고추/ 앨버트로스/ 내일의 시인/ 페루/ 나무늘보/ 해파리/ FC 바르셀로나

4부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린 그대와
시인 앨범 7/ 내일로 가는 기차/ 또다시 바다, 바닷가에서/ 불타는 도서관/ 작은 배/ 휘파람새/ 가짜 뉴스 아웃!/ 지독한 게임/ 밥값/ 장미의 끝/ 아이스바 사랑/ 당신의 진짜 얼굴/ 꿈같이, 꿈만 같이/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 나비들의 귀환

해설_무위의 기쁨, 시인의 삶
구모룡(문학평론가)

본문중에서

나는 과거의 풀들을 베어내
무덤을 만드는 사람
그 위로 검은 모자를 던지는 사람

역겹다, 역겨워 깨어져 피 흘리는 술잔들로
오만한 미래를 짓이기고
그립다, 그립다 뒤돌아보는 바람으로
소금 기둥 만들어

(……)

모두, 모두에게
설탕에 절인 설탕보다 더 달콤한
소금 기둥 속 설탕 그릇을 내미는 사람
_「다중 자화상」 부분

모든 꽃은
피어날 땐 신을 닮고
지려 할 땐 인간을 닮는다
그 때문에
꽃이 필 땐 황홀하고
꽃이 질 땐 눈물이 난다
_「미스터리」 전문

밖에는 비가 내리고
우리는 아직도 침대에 있다
무엇이 두려운가
장미꽃이 활짝 피려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한다
_「밖에는 비가 내리고」 부분

비바람 밀려올 때마다 땅을 울리고 풀을 울리고 구름을 울리는
광활한 초록 들판을 가진 사람과 사귀고 싶어
우두커니 창가에 서서 바라보는
아직은 너무나 젊고 너무나 적막한 단 하나의 방

숲에서 길을 잃고 대도시의 한가운데서 길을 잃고 무거운 머릿속에서 길을 잃고도 그 깊은 강을 헤엄쳐온 생일 케이크의 반가운 손
그 손을 잡고 아, 한 번은 꼭 살아야 하는, 꼭 살고 싶은 단 하나의 방
_「단 하나의 방」 부분

눈 덮인 한겨울, 깊고 깊은 산 적막 같은 여자들. 그들처럼 나도 독버섯을 먹고 그들 곁에 나란히 누워 꿈꾸듯 밤하늘의 별들을 헤아리다 잠들고 싶다.
남십자성과 기울어진 국자, 전갈과 도마뱀, 거꾸로 선 게와 사냥개, 안드로메다와 카시오페이아, 물고기와 처녀, 페가수스와 작은곰, 오리온과 엎질러진 물병,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 파도 소리.
_「한겨울, 버섯 요리를 하며」 부분

계속되는 사분의삼 박자의 그 리듬 속에서
그 리듬이 열어 보이는 새봄과 푸른 꽃으로 뒤덮인 초원과
목숨이 아홉 개인 길고양이들이 몇백 년 된 탄식의 나무 위에서
어제의, 어제의, 어제의 숙녀들처럼 환히 웃는 걸 바라보는 사람.
한껏 몸을 부풀리며 스텝을 밟으면서.

내일의 피투성이 문명은 죽은 자들의 뼈 위에서 끊임없이 세워질 테고
오늘의 피투성이 사랑은 그것을 토해낸 자들의 입술 위에서 다시 태어날 테니

나는 그저 어제의 그 리듬대로 왈츠나 추며
검은 시간의 유리잔 안으로 하염없이 쏟아지는
모래시계나 바라보는 사람.
_「어제의 창문」 부분

그를 끊고 그녀를 끊고 늘 울리던 전화를 끊고 애매모호한 정체성 신문을 끊고 쓸데없이 히죽히죽 웃던 존재의 헛발질을 끊고 굶주린 늑대처럼 포효하는 욕망을 끊고 즐겨 따라 마시던 칸노 요코의 〈카우보이 비밥〉을 끊고 겨우 내내 허허벌판에서 기다리던 봄 기차를 끊고 한밤중에 일어나 바다를 향해 달음질치던 절박한 발길을 끊고 날마다 세상이 요구하던 절대 교양을 끊고 쓸쓸하고도 쓸쓸한 장난감 네게 쓰던 분홍색 편지를 끊고 눈뜰 때마다 하루하루 증발하는 향긋한 생의 온기를 끊고 갈수록 아득해지고 초라해지는 물거품 같은 나를 끊고 정신의 비수처럼 섬뜩한 부모 형제들을 끊고 심장이 쿵쿵 뛰고 입술이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검은 집착 이 시대의 불타는 사랑을 끊고

나는 까치밥이 된다

마지막 남은 한 개의 감
새여, 어서 날아와 나를 따먹으라
_「까치밥」 전문

저자소개

김상미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1957

저자 김상미는 1957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0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 『검은, 소나기떼』 『잡히지 않는 나비』가 있다. 2003년 박인환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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