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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자연적 3D 프린팅 : 황유원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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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황유원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 : 2022년 08월 05일
  • 쪽수 : 204
  • ISBN : 9788954687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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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바야흐로 머릿속에 무한이 해방되었는데
깨고 나니 꿈이었고
어느새 다시 꿈속이었다”

나선으로 중첩되는 꿈과 현실의 프린트
시가 인간을 끝내 해방하는 경지

문학동네시인선 177번으로 황유원 시인의 두번째 시집 『초자연적 3D 프린팅』을 펴낸다. 2013년 『문학동네』를 통해 등단한 시인은 첫 시집 『세상의 모든 최대화』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고, 앤 카슨, 압둘라자크 구르나, 허먼 멜빌 등의 작품을 왕성히 번역하며 이름을 널리 알린 바 있다. 이번 시집에서 황유원은 한없이 반복되며 인간을 억누르는 현실로부터 솟아오를 수 있는 무한대의 밤을 펼친다. 쉬운 감상과 환상이 아닌 정직하고 곧은 심성으로써, 내면에 고인 슬픔과 공허를 끌어안고 인간 존재의 자율을 실현시키는 길을 내보인다.

그 밤을 묻힌 붓은 이미 붓을 초과하는 무엇이고
그 붓 지나간 자린 모조리 한밤중 텅 빈 골목이 되어
누군가 밤새 그곳을 서성이며 불어오는 바람 속에 서 있게 된다는 사실만큼은

거기 놓인 문진의 무게만큼이나
확고
부동한 밤
_「검고 맑은 잠」 부분

출판사 서평

황유원의 화자들은 자주 꿈에 드는데, 꿈은 현실을 초월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한다. 그들은 낮의 세계이자, 발을 구속하는 땅으로부터 떠올라 “끝없이 펼쳐지는 밤의 언덕”(「밤의 행글라이더」)을 비행한다. 꿈의 세계는 빈틈이 없어 도리어 인간을 옥죄고 마는 정합의 논리로부터 자유로운 곳으로 “내가 저기도/ 여기도/ 있게”(「표절」) 하는 세계이기에, 시인은 우리에게 “겨우 휴대폰 알람 소리에 벌떡 깨어날 잠”(「밤다운 밤이 아닌 밤」)이 아니라 결코 되돌아오지 않는 깊은 잠에 빠지기를 권한다.
이들이 현실에서 부유하는 이유는 현실이 슬픔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유원의 슬픔은 그것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슬픔의 움직임을 발견하고 있기에 주목을 요한다. 격정적이며 타오르는 슬픔이 아니라 “꽉 찬 슬픔 사라진 자리”에 남아 있는 “텅 빈 슬픔”(「가슴에 한 병 두 병」)이 있다. “그냥 그대로/ 고여 있”어 “끝내 고요한 울음”은 그저 조용히 “내 안에서 네 안으로” “옮겨”(「짧은 술자리」)간다. 슬픔을 품은 황유원의 화자들은 때로 자신들이 “그저 양말이나 벗고/ 시린 맨발이나 보여줄 수 있을 뿐”이라고, “밤새 미친놈처럼 맨발로 혼자/ 겨울 산에나 오를 수 있을 뿐”(「한산(寒山)에서」)이라며 시집 내내 현실에서 기우뚱거리는 불협화음으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다만 그들의 자조는 “속에 꺼지지 않는 웃음”(「무덤덤한 무덤」)으로, “자신이 누운 곳을 온몸으로 덮어주는” 포대화상의 푸근한 웃음처럼 “얌전한 한 장의 이불”(「포대화상의 잠버릇」)이 되어 현실의 속박을 무화한다.

세상이라는 공장에서 찍어낸 천편일률
세상의 입장에서 보자면 무엇 하나 새로울 것 없는
모든 것이 극히 자신의 일부인 세상에서
모두가 모든 걸 한다
_「모두가 모든 걸 한다」 부분

현실로부터 자유로워진 화자들은 본격적인 여정을 떠난다. 황유원의 시를 읽는 것은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는 경험이기도 하다. 시를 통해 텅 비워낸 내면의 공간에 점차 들어오는 것들이 있다. 새 호루라기와 모조 새, 당나귀 영혼과 고구마를 바라보고 그들의 말을 듣는 동안 “한참을 들어주고도/ 아무 들은 말이 없”(「고구마의 말」)지만, 괜찮다. 시끄러운 속내에서 시선을 돌려 대상을 향하면서 “하강하는 내 안의/ 존재감을 느”(「존재감」)끼는 이들은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일들이/ 강력해지”(「백안작」)는 것을 깨닫는다. 비록 ‘나’와 현실을 덜어내고 남은 것이 조그마한 “기둥 위”의 공간일지언정 그때에야 “하늘만큼 숨통이 트여 하늘의 말을 마구마구/ 지껄여댈”(「지껄이고 있다」) 수 있을 것이므로.

초자연적인 밤-
나는 늘 뭘 잘 모르고
뭘 잘 모르는 내가 그것에 대해 품는 생각은 늘
실제의 그것을 초과한다
_「초자연적 3D 프린팅」 부분

4부 ‘무한대의 밤’은 황유원의 도약이 실로 한없이 중첩되며 나아가는 공간이다. 화자들은 다시 꿈에 들어 “건초 속에서 바늘을 찾을 수 있어 좋았다”(「needle in the hay」)라는 기쁨에 도달한다. 그러나 황유원의 귀결은 달콤하게 무책임한 감언이설이 아니다. 아무래도 시인은 “무한성을 믿을 만큼 순진하지도, 그것을 아예 거부할 만큼 냉담하지도 못하”(발문 부분)기 때문이다. 그는 “그래봤자 우리가 어제의 인간에서 한 치라도 벗어날 가능성 따윈, 아무래도 없다고 봐야겠지만”이라고 정직하게 단서를 달면서도 “어쨌거나 오늘”에 집중하며 “내 위에서 쓰러지는” “너의 엄청난 힘”(「초자연적 3D 프린팅」)을 있는 그대로 기꺼이 받아 안는다.
마지막 시 「무한대의 밤」는 “깨고 나니 꿈이었다”는 구절을 중심으로 꿈과 깨어남이 반복되는 구조를 가진다. 꿈에서 깨지 않고 그대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과 현실을 잘 살아가고 싶은 마음은 서로 구분되지 않을 터이다. 장시의 보폭을 따라 걷던 독자는 웃음과 슬픔과 공(空)과 꿈과 ‘너’가 되는 과정이 어느새 현실을 살아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을 마침내 긍정하는 경지로 이끌었음을 깨달을 것이다. 황유원이 아리아드네의 실처럼 굽이굽이 풀어놓는 길을 한없이 따라가던 독자는 이해에 이른다. 이 실타래는 빛이 드는 출구가 아닌 더 깊은 곳으로 안내하고 있음을, 자신에게 필요했던 것이 낮의 현실이 아니었음을. 세상을 훑어내리는 그 여정은 슬픔과 공허를 비로소 품게 했고, ‘나’를 탐사하는 무한한 비행이 되어주었음을.

저 본래 내용-형식이 주장하는바 시는 필요도 아니며 없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마음이 없으면 시도 없어진다’는 맥락은 여전하나 그건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될 듯하다. 실제로 시는 감각적·윤리적 필요와 무관해서 우리는 시 없이도 잘 살아간다. 하지만 마음이 있는 한 시는 없어지지 않고 거기에 그대로 있다. 그렇게 시인이 조금은 낭만적으로 말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좋다.
_김상혁 발문, 「선언된 낭만성 혹은 현재적인 것에 대한 반동」에서

목차

시인의 말

1부 밤의 행글라이더는 밤의 행글라이더
검고 맑은 잠/ 한산(寒山)에서/ 짧은 술자리/ 무덤덤한 무덤/ 밤의 행글라이더/ 밤의 벌레들/ 표절/ 밤의 병실/ 다리와 물/ 이중주/ 가슴에 한 병 두 병/ 문어 대가리의 악몽/ 우리 반 애들/ 대륙적 기상/ 밤다운 밤이 아닌 밤/ 자유로운 뇌 활동

2부 여몽환포영
학림(鶴林)/ 흙부처가 강을 건너다/ 절 전화/ 만져본 빛/ 땡중처럼/ MUSIC FOR AIRPORTS-위험물 운송 제한/ 안내/ 공/ 송림(松林)/ 포대화상의 잠버릇/ 사이키델릭/ 총림(叢林)/ 음소거된 사진/ 비에 젖은 개/ 흑백/ 사자 두개골-HIC SVNT LEONES/ 대가리가 없는 작은 못/ turn this off please/ 여몽환포영/ 너의 베개

3부 모두가 모든 걸 한다
새 호루라기/ 윙컷/ 존재감/ 백안작/ 학익동/ 초록 거미가 말한다/ 괴수 영화/ 모조 새/ 당나귀와 나/ 빗소리 재방송/ 모두가 모든 걸 한다/ 새들의 아침 운동 연구/ 상승 기운/ 잠언집/ 가을 모기/ 고구마의 말/ 그게 블루스지-블루스맨 최상우에게/ 침대벌레/ 최대치의 기쁨/ 지껄이고 있다/ 마흔

4부 무한대의 밤
needle in the hay/ 초자연적 3D 프린팅/ 소나무야 소나무야/ 밤섬의 저음-성기완 형께/ 무한대의 밤

발문 | 선언된 낭만성 혹은 현재적인 것에 대한 반동
김상혁(시인)

본문중에서

오르면 잠시 용감해지다
이윽고 슬퍼지는
무한한 나의
밤의 행글라이더는 밤의 행글라이더
양날개의 균형을 닮은 이 문장을 주문처럼 반복시키며
나는 그만 이 시를 끝내지만
이 시는 끝나고도 계속 날아가고 있다
밤의 행글라이더는 밤의 행글라이더
밤의 행글라이더는 밤의 행글라이더
_「밤의 행글라이더」 부분

애별리고(愛別離苦)가 있다고 했다
구부득고(求不得苦)가 있다고 했다
굳이 남아 있는 저 학들마저
쫓아낼 필요는 없겠지

모두 말라 흰빛으로 변한 숲은
가까이서 바라보기보다는
그냥 멀리서 바라봐주는 게 좋았다

흰 학들이 모여 있는 듯한 숲이었다
_「학림(鶴林)」 부분

그런 밤이면 몰래 자리에서 일어나
어둔 밤의 해변을 홀로 거닐기도 했다
젖은 모래 위에 如, 夢, 幻, 泡, 影

손끝으로 한 자 한 자 써보며
꿈 같고, 허깨비 같고, 물거품 같다는 말
또 그림자 같다는 말을 문신처럼 새겨넣었다

우리 조금만 더 죽자
진짜 죽음이 있기 전에
하고 기도하던 밤이 있었다

파도의 포말처럼
기도가 새하얘져
해풍에 흔들리다 꺼져버리던 밤이 있었다
_「여몽환포영」 부분


집에 있는 책을 굳이 밖에서
빌려 읽었다

이편이 좀더 바깥에 가까웠다
_「윙컷」 부분


아무리 층수가 높은 영혼이라도
일층에서 시작한다
언제나 지하로 깊은 영혼이라도
일층에서 시작한다

그러니 학의 울음은 됐고
학의 웃음이 있다
희고 목이 긴 병 속에 잠시
고여 있다가
내쉬면 다시 무한대의 공기와 하나되는 길고 연한 웃음
_「학익동」 부분

무한대의 밤이 우리를 낳았고
우리 또한 무한대의 밤을 낳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각자 밤 위에 뜬 섬 한 채로
그 섬의 그 어둡고 거대한 녹색 저음들로
밤새
웅웅거릴 것입니다
_「밤섬의 저음」 부분

저자소개

황유원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1982

1982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서강대학교 종교학과와 철학과를 졸업했고 동국대학교 대학원 인도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13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해 시인이자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 『세상의 모든 최대화』『이 왕관이 나는 마음에 드네』, 옮긴 책으로 『모비 딕』『시인 X』『올 댓 맨 이즈』『슬픔은 날개 달린 것』『래니』『밥 딜런: 시가 된 노래들 1961-2012』(공역) 『밤의 해변에서 혼자』『예언자』『소설의 기술』 등이 있다.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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