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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 박승열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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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박승열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 : 2022년 07월 14일
  • 쪽수 : 160
  • ISBN : 9788954699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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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두나는 두나를 벗어나 또다른 에고로-
그런 방향의 결말은 아닐 것이다.”

정향과 우회를 거듭하는 ‘나’라는 아이러니를
동력으로 상연되는 시의 극장

문학동네시인선 175번으로 박승열 시인의 첫 시집을 펴낸다. “운율이 살아 있”는 “패기만만한” 시를 통해 “생성과 탈주의 놀이”(『현대시』 2018년 하반기 신인추천 심사평)를 보여주었다는 평을 받으며 데뷔한 시인은 이 시집에서 자기 자신이라는 “한 인간이 되는”(「파도」) 존재 증명의 과정을 때로는 날카로운 직설화법으로, 때로는 매력적인 알레고리로 선보인다. 어떠한 “오류도/기원”(「직물들」)에도 구애받지 않고 내면의 “날아오르려 하는 파도”(「파도」)의 흐름을 따라 무한히 피어나고 부서지는 에너지를 시라는 무대 위에서 펼쳐내는 이번 시집은 ‘첫’ 시집다운 치열한 활기가 넘실거려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 시집은 시의 성격에 따라 부를 나누는 통상적인 구성과 달리 총 세 개의 막(幕)으로 이루어져 있다. 편편의 시들이 이야기성을 띤 상황극이라는 점, 독특한 운율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형식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1막과 2막, 2막과 3막에는 ‘사이’라는 휴지부를 두어 시를 읽어나가는 이의 호흡까지 고려한바, 시집 전체가 한 편의 완결성을 지닌 ‘3막극’이라 할 수 있다.

출판사 서평

내가 시선을 돌리고 있을 때
감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뼈처럼. 감자. 빛처럼. 감자.
한 무더기 감자가 일제히 나를 보고 있었다.

아버지 김이 와서 감자 한 알을 가져갔다.
아버지 이, 박, 최가
내 뒤에서 자꾸만 감자를 가져가고 있었다.
아버지 김, 이, 박, 최의 품속을
감자는 자꾸만 파고들고 있었다.
품속의 옅은 빛에 의존해
감자는 자꾸만 내 뒤통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_「감자 독백」 부분

첫 시 「감자 독백」은 “아버지 김, 이, 박, 최”가 화자 ‘나’의 뒤에서 자꾸만 감자를 가져가더니 종래에는 아버지도 감자도 사라지고 “나 혼자” 남게 되는 상황을 보여준다. 시가 자아내는 모종의 존재론적 불안은 어쩐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일면 슬프고도 섬뜩한 정조를 형성하는데, 이것은 ‘무엇이든 피어나는 내부’라는 제목을 단 1막을 관통하는 분위기이다. 동네를 거니는 개 ‘릴리’가 죽고 나서 그 “개의 이름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현실을 마주하는 「술래잡기」, “풀밭 위에서” 혼자 “탈탈탈탈” 돌아가는 미싱의 소리에 귀기울이다가 미싱의 꿈속으로 들어가는 「미싱」, “유령을 볼 수 있다는 아이들에게조차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 만큼 키가 작은 “난쟁이 유령”의 속삭임을 들려주는 「물장구」 등은 이 정조를 여실히 드러내는 작품들이다. 누구나 성장 과정에서 한 번쯤 느낄 법한, 자신과 타자, 그리고 세상 사이의 간극과 그로 인한 ‘낯설어짐’이 박승열 특유의 스타일로 표현된다.

한편, 2막(‘두 날의 꿈은 완전히 달랐다’)과 3막(‘오류도 기원도 모르고’)은 다양한 시적 주인공들의 사연을 본격적으로 펼치는 박승열만의 활달한 무대이자 시의 놀이마당이다. “충격적이지 않으면 그건 영화가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배우이자 화가”이면서 여러 ‘에고(ego)’로 분열하는 가상인물 배두나를 그린 「배두나」, “세상에 살아남은 마지막 마법사 중 한 사람인 조셉”(「변신하지 못하는 변신 마법사」), “자신이 레몽 끄노임을 모두가 알고 있어서 너무 불안”한 레몽 끄노(「레몽 끄노의 것」),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모른 채 “고쳐야겠어”라고 중얼거리는 필립 모리스 유통회사의 회장 필립 모리스(「필립 모리스 유통회사」) 등이 이 무대의 주인공이다. 저마다 처한 문제나 내면의 분열에서 벗어나려는 이들의 모습은 흔히 ‘카프카적’이라고 일컬어지는 미로 같은 상황 속에서 때로는 농담처럼, 때로는 악몽처럼 이어진다.

두나는 자신이 원래 두나에고 중 하나였다고 했다. 그것도 가장 최신형의. 16종의 두나에고를 만든 송강호씨는, 뱅글뱅글 돌아가는 여러 개의 두나에고를 가진, 에고 상품계의 혁명이라 불릴 만한, 열일곱번째 두나에고를 만들어냈다고.
성공한 두나가 아니라 혁명적 두나에고였군요.
아니요.
_「배두나」 부분

이 시집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저자인 ‘박승열’과 동명의 화자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시인이자 대학강사였던 박승열씨”(「내 나이가 어때서」)는 삼십대에 꿈의 한 장면을 옮겨 적은 시가 수록된 시집을 펴냈지만 곧 절판되었고, 칠십대가 된 지금 또 한번 꿈을 옮겨 적은 새로운 시를 완성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과거의 꿈과 현재의 꿈은 “완전히” 다르다는 걸 그는 “분명하게” 구분한다. 마찬가지로 시인과 동명의 화자가 등장하는 3막의 「정월 대보름」 「실제 모델」까지 살펴보았을 때 시인의 의도는 한층 선명해진다.

정월 대보름에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태 쓴 시를 다 합쳐도 오늘 꿈에서 쓴 시 한 줄만 못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 한 줄은 도저히 기억나지 않고

(……)

‘싶다’는 말은 이제 그만, 시에 대한 시도 이제 그만, 박승열씨가 등장하는 시도 이제 도저히, 아 또 3이다 관습적 언어를 폐기하려고 써왔는데 습관성 리듬에 갇혀버리다니 박승열씨도 이제 늙어버린 건가 싶고

아마 꿈에서 쓴 시는 영영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정월 대보름 날에는
환하게 뜬 보름달이나
보면 그만이지
싶다,
_「정월 대보름」 부분

누군가를 실제 모델로 한 내 인생이 또다른 누군가의 실제 모델이라면
또다른 누군가의 실제 모델은 나인가, 아니면 내 실제 모델인 누군가인가
_「실제 모델」 부분

이러한 시들에는 시인 자신을 모델로 삼는 예술적 자의식과 메타시적 의도가 담겨 있다고도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 일종의 자기예언이 담겨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시를 쓰는 내부의 자아와 그러한 자신을 관찰하는 바깥의 또다른 자아를 오가며 오직 시를 쓰는 ‘현재’만을 살아가고 싶은 욕망, 그것이 박승열 시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름을 넣을 새” 없이 “시를 쓰고 나면 곧장 창을 닫아”(「활자기피증」)버리는 시인이자, 어떤 상황에서도 “웃는 얼굴”(「마작 치는 사내」)을 고수하고자 하는 시인이다. 앞으로 이 시인이 시라는 장르의 외연을 넓혀가며 어떠한 도발적인 모험을 펼칠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정향과 우회를 거듭하는 것이야말로 아이러니의 핵심이다.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손에 잡힐 듯 가까운데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거리의 역설이 아이러니의 정수이다. 아하, 이 3막극은 낭만적 아이러니 극장에서 상연되는 것이겠다. (……) 한계 속의 되풀이와 우회하면서 다가가기, 그리고 다가가면서 우회하기가 아이러니의 운동 궤적이다. 박승열은 바로 이 운동 속에서 시를 감행하고 있던 것이다. 다음 상연에서도 우회와 정향의 되풀이가 지속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극장이 열릴 것인가……”
_조강석, 해설에서

목차

1막 무엇이든 피어나는 내부
감자 독백/ 오렌지의 꿈/ 코끼리의 생각/ 푸른 돌멩이/ 셔츠/ 술래잡기/ 활자기피증/ 오이와 나/ 아파트/ 미싱/ 물고기 풍경/ 꿈속의 돌/ 프레스/ 물장구/ 파도

[사이] 김구용과의 대화록

2막 두 날의 꿈은 완전히 달랐다
배두나/ 천재는 죽지 않는다/ 나의 공산당 친구들/ 변신하지 못하는 변신 마법사/ 레몽 끄노의 것/ 마작 치는 사내/ 필립 모리스 유통회사/ 전집들/ 강남 한 카페에서/ 레몬과 소금/ 궁전/ 하얀 쥐들내 나이가 어때서/ 7월 일기장

[사이] 우주적 사고

3막 오류도 기원도 모르고
빛나지도, 빛을 반사하지도 않는 것/ 직물들/ 생각하는 계란/ 당신의 언어는 안전합니까/ 장난감 쥐와 내 친구들/ 경제학/ 서점에서 훔치지 말아야 할 것/ 꽃 한 송이/ 중력/ 돌/ 똥이 자란다/ 탁자에 대한 사랑/ 모든 요일이 지나기 전에/ 스타벅스 모카커피/ 말복 더위/ 정월 대보름/ 실제 모델

해설_낭만적 아이러니 3막극
조강석(문학평론가)

본문중에서

파도가 자꾸 새가 되려 한다지만 새가 된다는 게 대체 어떻게 된다는 것인지 새가 됐다가 곰이 됐다가 그러나 새도 아니고 곰도 아닌 그런 파도의 움직임 속에서, 하루종일 내가 일렁였다가 내가 아닌 것이 일렁였다가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르고
내가 아닌 것은 무엇인지 더더욱 알지 못하는
이 빌어먹을 파도 소리와도 같은
무지 속에서
어떻게 숨쉬는 선인장이 더 많이 숨쉬도록 할 것인가
선인장의 더 많은 숨과
더 적은 숨을
나는 또 어떻게 느낄 수 있을 것인가
_「파도」 부분

사진과 친구 B는 해파리냉채를 즐겨 먹었다 그는 자신이 공산당 출신이라고 했다 어떤 때는 아직도 공산당원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국에는 공산당이 없었다 나는 그가 언제쯤이면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될지 궁금했다 그는 해파리냉채를 즐겨 먹는다고 했다 그래 그건 내가 봤다 그가 해파리냉채를 젓가락으로 한 움큼 집어 입안에 넣고 우둑우둑 씹어 먹는 모습을 며칠간 지켜봤다 그러나 그가 자꾸 자신이 공산당원이라고 했고 어떤 때는 공산당 출신이라고 했고 나는 그가 먹는 것이 정말 해파리냉채가 맞는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_「나의 공산당 친구들」 부분

네 불꽃은 어떻게 생겼냐는
친구의 물음에
나는 내 불꽃 같은 건 없고
그저 눈앞에서 나무가 불타고 있을 뿐이라고 답한다

친구는 자신의 불꽃을 보여준다 그것은 노란색이다 빛나는 노란색도, 빛을 반사하는 노란색도 아닌 그저 불타는 노란색이다 나는 친구에게 어째서 네 불꽃은 노란색이냐고 묻는다 그러면 친구는 답한다
이건 노란색이고 세상에 노란색 불꽃은 하나뿐이고, 이건 내 불꽃이야

나는 고민이 된다 내 불꽃은 왜 없는지 왜 그저 눈앞에서 들판이, 들소가, 양들과 양떼구름이, 파랗던 하늘이 불타고 있을 뿐인지
옆집 꼬마에게도 자신만의 불꽃이 있는데
_「빛나지도, 빛을 반사하지도 않는 것」 부분


저 옷들을 치워버려라
어떤 감각들이 나를 조이는 기분이 싫어
완전무결한 나로 살 거야
그러나 태어남의 순간에
나보다 먼저 내 몸에
간호사들, 의사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거기서 숨, 아
그 숨은 또 누구의 숨
지리멸렬하게
악취를 풍기는
기원

그러나 자세를 낮추고 앉으면
오류도
기원도 모르고
땅을 구르는 모래 알갱이들 위를 구르는
어린아이
_「직물들」 부분

전국의 동물어 번역기가 압수된 지 일 년이 지난 날, 나는 멀리서 까마귀 우는 소리를 들었다 번역 체계에 대해서는 이미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십대 때 어학원에서 그것을 배우긴 했지만 지식은 통 써먹을 일이 없었다 나는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까마귀 우는 소리가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나와는 다른 종의 생물이 가지는 생경함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된 것이다
_「당신의 언어는 안전합니까」 부분

저자소개

박승열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

2018년 『현대시』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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