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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강 선생의 『봄의 벽에 서다』는 천태만상의 소재를 저자의 인품이 감싸 안으면서 고차원의 품위를 지니고 있다. 러 콕 스테판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그의 날카로운 인식은 인생에 돋아나 있는 부조리를 웃음으로 바라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쓴 글들이 단순한 생활의 반성이나 느낌의 표현이 아니라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인생의 본질, 시대정신 등을 관통하고 있기에 유익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세상의 모순을 깊은 통찰을 통해 바로 보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쉽게 말해 인생의 모습과 우리 사회의 다양한 풍경을 지성인의 눈으로 보고 적은 글이라서 독자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정서적 감화까지 맛보게 한다는 것이 큰 강점이다. 그가 낸 이번 수필집 『봄의 벽에 서다』는 오늘날 코비드19로 엄중한 우리 사회의 진로를 명쾌하게 이해하도록 하는 데 획기적으로 기여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책머리에
추천사｜수필집 ?봄의 벽에 서다?를 읽다/ 김병권(수필가, 한국문인협회 고문)
서평｜현실의 힘있는 통찰, 사회의식에 빛나는 눈맛/ 권대근(문학평론가)

1부
봄의 벽에 서다 · 지게와 작대기 · 전성기 · 오늘 하루 · 먼저 다가가기 · 지구의(地球儀) · 무리수 · 비울 수만 있다면 · 소음

2부
역사의 거울 · 워라벨 유감 · 과욕은 금물 · 둘레길 · 엄지 척 · 부끄러운 자랑 · 한 독자를 위해 · 발 운동 · 시간이 보석이라면 · 호연지기

3부
남 탓 · 63빌딩을 걸어서 오르다 · 때로는 쉼표가 필요하다 · 성경 통독 · 거리두기 유감 · 외눈박이 · 글쓰기 고백 · 지하철의 모나리자 · 내려놓는 삶 · 오백 번

4부
끓는 울림 · 갑질 · 고독한 담금질 · 건널목 · 끈 · 외딴 섬 · 거꾸로 · 악필 · 임계점 · 선택

5부
아날로그적 독서 · 방촌 황희 정승 · 사량도 지리산 · 트레이드마크 · 생의 끝자락 · 생각근육 · 회장님을 잊지 못합니다 · 살얼음판 · 프로처럼

봄의 벽에 서다

봄소식이 손짓하는 어느 날, 둘레길을 걸었다. 코로나19로 외출이 자유롭지 않은 답답함에서 벗어나 도봉산 줄기 사패산(賜牌山) 길을 걸는다. 바이러스가 수그러지지 않아 불안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던 차에 오랜만에 따스한 봄날을 맞아 아늑한 산길이 기대된다. 살가운 바람으로 훈훈한 기운이 감도는 날도 가끔 찾아와주니 일기의 너그러움에 오히려 사는 맛이 난다고 할까.
삼월이 중순으로 치닫는다. 동면을 즐기던 개구리가 뛰쳐나와 몸을 푸는 경칩이다. 젊은 시절 어르신들로부터 경칩에 대해 들어도 무심히 그냥 지나쳤다. 출근하는 일상에 밀려 계절을 외면하고 지나온 세월에 후회가 찾아온다. 움츠렸던 생명이 약동하고 봄의 기운을 마음껏 발휘하는데도 바쁘다는 핑계로 계절의 미각은 물론 마디까지도 깨닫지 못한다. 뒤늦게 아쉬움을 느낀다. 경칩은 24절기 중 세 번째 날로 우수(雨水)와 춘분(春分) 사이에 있는 절기이다. 정확히 우수로부터 15일 후가 되는 날로, 이 무렵 기온이 비교적 빠르게 오르고 가끔 봄 천둥도 친다.
그 천둥소리에 얼음이 녹는다고 한다. 땅 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와 벌레들이 깨어나 활동을 시작하는 시기다. 본격적인 봄의 시작이다. 산속의 나무들은 아직 나목 그대로다. 큰 나무 작은 나무 빽빽이 들어서 있는 풍경이 어딘가 쓸쓸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촘촘하게 서있는 나무들이 대견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나무껍질을 만져본다. 겨우내 찬바람과 눈비를 맞으며 한 겨울을 버텨온 그들이다. 껍질마다 오랜 풍진세월을 지켜왔노라고 거북이 등같이 투박하고 울퉁불퉁하다. 큰 것은 더 굵게, 작은 것은 실개천의 껍질로 보여준다.
푸른 갑옷으로 곧 갈아입을 모양새다. 가까이에 있는 아기나무 가지에 꽃망울이 두 서너 개가 달려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직은 거무죽죽한데 알에서 나온 듯 조그마한 푸른 눈망울을 보여준다. 눈에 띌 정도로 파랗지는 않다. 살랑살랑한 봄바람이 자기 몸을 스치니 망울이 미동하는 것 같다. 가냘픈 어린 가지가 아기 숨으로 봄바람을 받아들이는 것 같이 보였다. 신기하다. 어떻게 실바람이 부는데 온몸으로 느껴 요동을 치려고 준비하는지. 역시 봄기운은 그 어떤 것도 막을 수가 없는 것 같다. 그래, 며칠 있으면 몰라보게 파랗게 될 것 같다.
부지런히 눈을 떠 찬란한 햇빛을 듬뿍 받아 더 활짝 피어라. 그리고 완연한 봄을 알려라. 러시아의 문호이며 시인이었던 표도르 튜체프(1803-1873)의 감격스런 노래의 시가 갑자기 생각난다. 〈들판은 아직 흰 눈으로 덮여 있네 / 하지만 개울은 이미 봄의 분위기로 밀려들어 오네 / 달리고, 빛내고, 외치고 있어 / 그들은 굽이굽이 크게 외치고 있어 / 봄이 오고 있어, 봄이 오고 있어 〉 라고 읊었다. 봄을 맞이하고 싶은 애틋한 마음으로 우렁차게 기다리고 있음이다. 계절은 결코 서둘지 않으면서도 그 섭리를 반드시 지키는 경이로움을 안겨주는 것 같다.
지난 12, 1, 2월의 추위는 그다지 제 모습을 펼치지 못하고 지나갔다. 지구온난화의 달갑지 않은 선물이었다. 겨울은 겨울다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겨울 관련 업종들이 위기에 처했다고 아우성이다. 계절의 반란은 사람들에게 절망감을 안겨 주기도 한다. 봄의 전령도 기쁨과 희망의 골목에서 호응해주는 환호가 있을 때 만개의 꽃이 피는 것이리라. 풍족한 봄을 기다리는 마음에서 훈훈한 찬미가 나오지 않는가. 이제 황사와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릴 것을 생각하면 지레 겁부터 난다. 지금은 온 세계가 코로나19로 비상사태다.
다행히 우리는 일찌감치 확산을 막아 모범사례로 각국이 부러워할 정도가 되었다고 하니 천만 다행이다. 하지만 안심할 단계가 아니다. 어딘가에 구멍이 뚫려 밀집한 공간에서 감염자가 계속 나오고 있지 않은가. 아직도 병상부족으로 입원을 못하고 있는 수백 명의 환자가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루속히 그들이 입원하고 치료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바이러스 감염 예방수칙을 잘 지켜 더 이상의 감염자가 나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리라. 자기를 위해 타인을 위해 수칙을 지키는 것이 이 사태를 진정시키는 수단이 될 것이다. 봄을 맞이하는 골목에서 예상치 못한 이 상황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간난을 무릅쓰고 환자를 돌보는 의료인들의 봉사정신은 우리의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그들이 당한 어려움은 국민들의 신뢰와 응원이 있을 때 극복이 가능하다고 믿어진다. 일부 위정자의 낙관적인 기대는 이해가 가나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고 미리 자화자찬 하는 것은 지나친 것 같다. 하루빨리 안정이 되어 국민들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는 시기가 머지않아 도래하기를 고대해본다. 코로나19로 피폐해진 경제도 빨리 원위치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나. ‘팬데믹’이라는 대유행으로 번진 전염병이 왕래와 물류의 이동마저 막고 있는 처절한 상황이 언제쯤 끝날 것인가.
봄의 벽 앞에 서있는 상냥함이다. 경제 한파가 어떠한 형태로 내습할지 두렵기 짝이 없다. 절절하면 전봇대에도 꽃이 핀다고 하지 않던가. 봄꽃은 마음의 눈으로 보고, 어떻게든 지혜를 모아 이 난국을 헤쳐 나가야 하리라.

현실의 힘있는 통찰, 사회의식에 빛나는 눈맛

황인강 선생의 글은 위에서 말한 대로 지성 수필의 장점을 두루 갖추고 있어 우리의 가슴과 머리를 뜨겁게 하는 진지한 성찰의 시간을 준다. 그의 책에 나타나 있는 메시지는 현실에 대한 강한 직시와 적발의 모습을 띠고 있다. 특히 다양한 일화는 시사하는 바가 너무 많아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받아 내리라 본다. 이 책의 출간 효과는 설득이나 감동을 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이 책을 읽은 수필가나 고급독자들에게 충격을 주는 것도 포함된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자신의 짧은 지식에 자괴감을 가질지도 모른다. 황인강 선생은 글을 통해서 부조리한 시정을 파헤치되 자신의 철학을 독자들에게 주입시키려 하지 않는다. 이처럼 글에 문학적 향기를 불어넣고 있는 것은 역시 수필을 꾸준하게 배워온 학구열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황인강 선생의 『봄의 벽에 서다』는 천태만상의 소재를 저자의 인품이 감싸 안으면서 고차원의 품위를 지니고 있다. 러 콕 스테판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그의 날카로운 인식은 인생에 돋아나 있는 부조리를 웃음으로 바라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쓴 글들이 단순한 생활의 반성이나 느낌의 표현이 아니라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인생의 본질, 시대정신 등을 관통하고 있기에 유익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세상의 모순을 깊은 통찰을 통해 바로 보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쉽게 말해 인생의 모습과 우리 사회의 다양한 풍경을 지성인의 눈으로 보고 적은 글이라서 독자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정서적 감화까지 맛보게 한다는 것이 큰 강점이다. 그가 낸 이번 수필집 『봄의 벽에 서다』는 오늘날 코비드19로 엄중한 우리 사회의 진로를 명쾌하게 이해하도록 하는 데 획기적으로 기여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권대근(문학평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서평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