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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없는 소리 : 김지연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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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김지연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 : 2022년 03월 10일
  • 쪽수 : 320
  • ISBN : 9788954685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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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소설가 윤성희, 최진영 추천!
문학동네신인상 만장일치의 주인공, 올해의 신인 김지연 첫 소설집

수백 편의 응모작 가운데 단 하나의 작품을 가려 뽑는 문학동네신인상은 다양한 안목을 지닌 심사위원들이 신중하면서도 과감하게 각자의 선택을 밀어붙이는 열기의 현장이다. 매년 치열하게 의견들이 경합하며 좀처럼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 종종 있어온 가운데 2018년에 당선작으로 결정된 작품은, “문학적 기준과 취향이 다른 일곱 명의 심사위원(소설가 김금희, 윤이형, 정용준, 조해진, 문학평론가 백지은, 신형철, 황종연) 모두에게서 잘 쓴 소설”이라는 평을 이끌어내며 “근래 문학동네신인상 소설 부문 심사에서도 특별한 경우”(‘심사 경위’에서)라고 할 만한 이례적인 풍경을 만들어냈다.

“소설의 구조가 응모자에 대한 큰 기대를 갖게 했다”(김금희) “어떤 실험적 작위 없이도 새로움을 성취했다”(백지은) “필요한 문장을 정확히 제자리에 놓을 줄 알고 그 문장들로 상황을 내면화하는 데 어김없이 성공한다”(신형철)라는 평을 받으며 기대 속에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신예 작가의 이름은 김지연, 등단작은 「작정기」이다. 이후 작가가 사 년 동안 여러 매체에 발표한 작품들 가운데 아홉 편을 선별해 내놓는 첫 소설집 『마음에 없는 소리』는 겹이 많은 페이스트리처럼 자신 안에 아주 많은 마음을 간직한 사람들을 그리며 누군가를 되새기거나 지난날을 곱씹는 동안 일어나는 변화를 세심하게 포착한다. 서정적이며 터프하고, 유머러스하면서 여운이 짙은, 모순적인 수식어의 조합을 가능케 하는 이번 소설집은 사 년 전 신인 작가를 향해 쏟아졌던 기대를 확실한 믿음으로 바꾸어낼 것이다.

출판사 서평

아주 많은 마음을 간직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작은 정원
사랑과 두려움 사이에서, 애착과 나약함 사이에서 흔들리며
새롭게 열리는 아름답고 터프한 세계

김지연 소설세계의 출발점인 「작정기」에는 그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이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상대방을 향해 어떤 강렬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결정적인 마음을 드러내기 어려워하는 인물의 모습과, 뒤늦게 한 시기를 반복해 떠올리며 그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공간을 열어내는 장면은 애틋하면서 뜨거운 에너지로 소설을 가득 채워놓는다. 「작정기」는 친구 ‘원진’이 이혼 소식을 알려온 날, 원진과 ‘나’가 충동적으로 일본행 비행기표를 끊으며 시작된다. 하지만 원진의 할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시면서 ‘나’는 혼자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일본에 도착한 첫날 ‘나’는 우연히 만난 일본인 여자 ‘유코’와 대화를 나누다가 통역상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인지 유코가 자신의 여행을 죽은 친구를 대신해 떠나온 것으로 이해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러나 ‘나’는 오해를 바로잡지 않는다. 언젠가 원진이 죽었으면 하고 바랐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진이 갑작스레 죽으면서 ‘나’는 그때 자신이 오해를 바로잡지 않은 것이 원진의 죽음을 재촉한 이유가 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에 빠진다. 하지만 ‘나’의 이 감정은 몇 달 뒤 업무차 한국에 방문한 유코와 재회하면서 다른 파동을 그려낸다. ‘정원을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는 유코가 친구가 죽었다고 한 ‘나’의 말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해 ‘나’에게 자신이 만든 정원 모형을 건넨 것이다. 그제야 ‘나’는 오래도록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이후 다시 일본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여행에서 “원진이 나의 행복을, 그러니까 내 미래를 축원하고 있다고 믿”(124쪽)는 데에 이른다.
소중히 여겨온 인물과 헤어진 뒤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그와 함께하는 미래를 열어내는 장면은 「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오래전 여름, ‘나’는 당시 사귀고 있던 여자친구 ‘진영’과 함께 남해의 작은 마을로 여행을 떠난다. 나체로 수영을 하고 싶다는 ‘나’의 한가로운 소망 때문이다. ‘나’와 진영은 남해에 도착한 날 밤 어두운 길을 조심조심 걸어 해변으로 향하고, 멀리 떠 있는 작은 배 말고는 온 사방이 숲과 하늘뿐인 그곳에서 자유로움을 느낀다. 그곳에는 그들을 지켜보는 시선 같은 건 없다. 그들이 키스를 했다는 이유로 때리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무척 추운 탓에 수영은커녕 겉옷 하나도 벗지 못하고 두 사람은 작은 해변의 양끝을 천천히 걸으며 그곳에 버려진 것들을 줍는다. 그리고 그 짧은 여행의 시간 동안 두 사람 사이의 좁혀지지 않던 마음의 거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소설은 두 사람의 격차를 확인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헤어진 연인과 함께했던 어느 날에 대한 회상으로 시작해 마치 그 연인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인물과 새로운 시공간에서 재회하는 장면으로 끝나는 마지막 장면은 묘한 방식으로 시간을 구부러뜨림으로써 현재와 과거, 미래를 한자리에 모여들게 한다. 문학평론가 강지희는 이 장면과 「작정기」의 마지막 대목을 아우르며 이 장면들이 품고 있는 각별한 의미에 대해 “소설은 그렇게 과거의 사랑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미지의 시간과 사랑에 대한 믿음으로 미래를 열어낸다”(해설, 305쪽)라고 짚으며 김지연의 소설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열리는 잠재적 시공간에 대한 아름다운 분석을 도출해냈다.
「작정기」와 「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이 ‘지도에 나타나지 않는 테두리’를 짚어내듯이 여백을 따라가며 읽을 때 그 여운을 크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면, 「굴 드라이브」와 「마음에 없는 소리」는 지방에 내려가거나 그곳에서 살고 있는 여성 인물이 주변 사람들과 얽히며 일어나는 사건과 그로 인한 변화를 그려내며 관계를 바라보는 김지연의 시각을 담백한 톤으로 보여준다.
「굴 드라이브」의 ‘나’는 지금 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중이다. 삼촌이 월 삼백짜리 일자리가 있다며 한번 내려오라고 연락을 줬기 때문이다. 고향에 그런 일자리가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지난달 계약이 종료된 ‘나’는 혹시나 하는 기대로 고향으로 향한다. 하지만 삼촌이 말한 일자리란 바로 선 자리였다. 선볼 생각이 없다는 ‘나’에게 삼촌은 그럼 자기네 공장에서 하루만 굴 박스를 배달해달라고 제안한다. 별달리 할일이 없던 ‘나’는 용돈이나 벌자는 생각으로 공장에 갔다가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과 마주친다. 반갑게 인사하며 손을 내미는 동창의 손을 마주잡기는 했지만 ‘나’는 동창과 친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싫어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애가 ‘나’를 싫어했으니까. 그애는 “쟤 좀 이상하지 않나?”(63쪽) 수군거리며 낄낄댄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애가 ‘나’에게 뜻밖의 말을 건넨다. 일 끝나고 술 한잔하지 않겠냐고. ‘나’는 그애에게 미움을 받았던 기억이 사라지지 않았기에 그애를 만나는 게 꺼려지지만 어쩐지 제안을 물리치지 못한다. 한 번도 ‘나’를 환영한 적이 없었던 고향인데, 이번에는 다른 기억을 가져다줄까?
「마음에 없는 소리」속 ‘나’의 사정 역시 이와 비슷하다. 만 삼십오 세가 넘도록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 게 없는 ‘나’는 고민 끝에 할머니의 식당을 이어받아 김밥 가게를 연다. 요리도 못하고 돈도 없지만, 요리는 유튜브를 보며 따라 하면 되고 재료는 할머니의 밭에서 구해오면 된다는 생각으로 재래시장에 가게를 연 것이다. 친구인 ‘민구’는 ‘나’의 가게가 다른 식당과 차별화되는 점이 없어서 손님을 끌기엔 역부족이라고 말하면서도 종종 찾아와 김밥을 포장해가고, ‘화영’은 손님이 많지 않은 게 안쓰러운지 여기저기 전화해 손님을 모은다. 그리고 ‘승호’가 있다. 승호는 ‘나’가 한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시기에 좋아하던 친구였지만 당시 승호는 공부에 집중하고 싶다며 거절했고 ‘나’도 마음을 접었다. 그리고 공무원이 된 승호는 ‘나’에게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채로 무수한 뉘앙스와 분위기만 풍기며 ‘나’의 곁을 맴돈다. 식당을 꾸려가느라 매일매일 녹초가 되고 좋은 미래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와중에도 ‘나’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온 세 친구와 가끔 만나 시간을 보내며, 원하던 모습은 아니지만 예상치 않았던 어떤 미래가 다가오리라는 예감을 한다.


“나는 여전히 삶에 대해 기대하는 것이 있었다”

모욕을 견디지 않으면서 삶을 향해 나아가는 법

그래서일까. 김지연의 소설을 읽어나가는 일은 “살아가는 일이 충분히 고됐기 때문이었다”(17쪽)라는 문장에서 시작해 “나는 여전히 삶에 대해 기대하는 것이 있었다”(221쪽)라는 문장에 다다르는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꽤 오랜 시간 방밖으로 나오지 않는 동생에게 선물할 물건을 사기 위해 낯선 동네에 갔다가 우연히 세 명의 할머니와 대화를 나눈 끝에, 앞으로의 시간을 단순히 견디고 버텨야 할 시간이 아니라 무언가를 새롭게 해볼 수 있는 가능성의 시간으로 전환해내는 「결로」, 소중한 사람이 죽은 뒤 그가 자신에게 보여줬던 다정함과 다른 친구를 통해 듣게 된, 그가 자신을 한심하게 여겼다는 말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사람의 몸을 머리, 가슴, 배로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듯’ 그를 향한 그 모든 감정을 선명하게 나누지 않은 채 그에 대한 생각을 그만두지 않기로 마음먹는 「그런 나약한 말들」은 김지연의 소설 속 인물들이 자신을 둘러싼 난처하고 때로는 무자비한 상황 속에서도 끝내는 삶을 향해 각도를 트는 모습을 막연한 환상이나 비약 없이 그려낸다.
소설집의 끝에 놓인 「사랑하는 일」과「공원에서」가 이뤄낸 성취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사랑하는 일」의 ‘은호’가 여자친구가 있다며 커밍아웃을 했을 때 엄마는 그 얘기를 듣지 못했다는 듯이 무시해버리고, 아빠는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소문낼 필요는 없지 않으냐고 은근히 말하며, 어릴 때 자신을 아껴주었던 할머니는 욕과 저주를 퍼붓는다. 하지만 은호는 생기롭고 유연하게 이 상황을 통과해나가며 “나에게는 나 중심의 서사”(249쪽)가 있다고, 자신의 사랑을 가꾸어나가겠다고 선언하듯 다짐한다.
「공원에서」는 좀더 복잡한 상황 속으로 인물을 데려다놓는다. ‘나’는 키가 크고 머리가 짧은데다 화장도 하지 않는 탓에 종종 남자로 오해받는다. 그럴 때 ‘나’가 느끼는 감정은 불쾌함보다는 안전함이다. 여자로 살아가는 일의 만만찮음은 ‘나’가 겪은 몇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강렬하게 드러나는데, 어린 시절에는 버스에서 추행을 당하지만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파악하지 못한 채 혼란스러워하다가 뒤늦게 비명을 지른 적이 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공원에 갔다가 모르는 남자로부터 무차별적인 폭행을 당했다. 보호받아야 마땅한 ‘나’의 상황은 그러나 ‘나’가 유부남과 불륜 관계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독자를 어떤 난처함 속으로 밀어넣는다. ‘나’는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가 맞는가? ‘나’가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닌가? 이런 질문들을 뚫고 터져나오는 것은 ‘나’의 비명 그 자체이다. 완전무결한 피해자가 맞느냐는 일련의 점검들 속에서 ‘나’가 내뱉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비명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명은 그런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듯 보이는 말들을 흩뜨려놓으며 ‘나’에게서 쏟아져나오는 언어화되지 못한 말을 직시하게 한다. 그리고 ‘나’는 한때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였지만 폭행을 당한 트라우마를 상기시키는 ‘공원’을 새롭게 의미화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사람들이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뜻대로 된 적은 별로 없지만 나는 사는 게 좋았다. 내가 겪은 모든 모욕들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극복해내고 싶을 만큼 좋아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사는 건 좋다”(281쪽)라고 깨닫는 것이다. 공원에는 불쑥 나타나 ‘나’를 위협하는 사람도 있지만, 마찬가지로 아무렇지 않게 다가와 ‘개가 지닌 활력과 온기’를 느끼게 해주는 어린아이도 있다. 때문에 “나는 내가 사는 걸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같은 쪽)는 ‘나’의 담담한 고백은 ‘나’가 내지르는 비명만큼이나 우리를 어떤 감정 속에 오래 머무르게 하는 것 같다. “한바탕 울고 난 다음에도 완전히 용해되지 못한 어떤 것들이 천천히 가라앉아 앙금이 된다”(「내가 울기 시작할 때」, 215~216쪽)는 소설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욕과 추행과 폭력이 지나간 자리에도 여전히 삶을 향한 애정이 빛을 발하며 남아 있는 것이다. 김지연의 인물들에게라면 ‘남아 있다’는 표현보다는 ‘지켜냈다’는 표현이 어울릴 법한 이 애정은 우리로 하여금 휘청이게도 하고 덜컹하게도 하면서 놀라운 방식으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듯하다. “매일 다른 사람이 되고 매일 사랑하는 일”(「사랑하는 일, 253쪽)을 해나가는 일상의 반복을 통해.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새롭게 펼쳐지는 내일을 통해.

추천사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2015년부터 쓰기 시작해 2022년까지 고치고 다듬은 것들이다. 지면에 발표한 순서와는 다르지만 가장 먼저 쓴 소설은 「내가 울기 시작할 때」다. 이 소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인물들이 우는 장면이다. 그들은 어떤 말을 하는 것보다 우는 일을 더 공들여 했고, 누군가 그 울음을 가만히 들었다. 요즘 나에게 있어 글쓰기란 엉엉 우는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왕이면 온 힘을 다해 남김없이 잘 울고 싶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남은 일을 해낼 수 있도록. 그리고 어디선가 혼자 우는 사람이 없는지도 돌아보고 싶다. 누구도 혼자 울지 않았으면 한다.”

윤성희(소설가)
「내가 울기 시작할 때」를 읽다 나는 잔잔한 호수에 작은 돌을 던지고 그 파문을 오래 들여다보는 게 소설이라는 생각을 오랜만에 다시 하게 되었다. 데뷔작인 「작정기」를 읽을 때도 들었던 생각이지만, 이 작가가 만들어내는 ‘겹’은 아름답다. 문장의 겹. 시간의 겹. 인물의 겹. 이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올까? 이 글을 쓰기 위해 김지연의 소설들을 다시 읽다보니, 과거와 미래가 현재에 합쳐지는 순간을 몇 번이나 만났다. 그곳, 그 시간의 틈에서 감정이 나오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이상한 슬픔이어서 정작 소설을 읽을 때는 슬픈 줄 모르고 있다가 한참 뒤에야 슬픔이 밀려온다.

최진영(소설가)
김지연의 소설은 세상과 사람에 대한 못마땅한 점을 짐작과는 다르게, 넘치지 않게, 그러므로 충분하게 채워준다. 혐오와 모욕, 폭력 속에서도 ‘인간으로서 인간적이고 싶은’ 다양한 인물들은 ‘지도의 바깥’에서 그 안으로 들어가려고 애쓰는 대신 지금 자기가 서 있는 곳의 지도를 새로 그려나간다. 작가의 섬세하고 정확한 시선을 따라가며 그윽한 위로를 받다가 ‘사는 건 좋다’라는 문장을 만났을 때는 고마운 마음이 우주의 시작처럼 폭발해버렸다. 삶에 대한 뭉근한 사랑을 포기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강지희(문학평론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었지만 일어나지 않은 순간들에 깊이 몰입함으로써 잠재적인 시간을 끌어올 때, 소설은 붙잡을 수 없는 과거의 순간을 붙들어 영원으로 만들고 존재들을 망각으로부터 지켜낸다. 기적은 그런 시간 자체가 아니라, 표면에 맺힌 물기가 증발하듯 그런 시간을 발생시키는 아주 사소한 물질의 이동인 것 같다. 그리고 이 끝에서 우리는 김지연에게 소설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것은 충격적인 물리적 세계의 사건들 앞에서 약간의 거리를 유지하는 일, 각도를 살짝 기울여 환상에 침투해 들어가는 일이다. 현실과 어딘가 조금 어긋나 있는 엉뚱한 농담이 만들어내는 시간의 운동성 속에서 우리의 삶은 조금은 부드럽고 유연하게 풀리며 넓어지는 듯하다.

목차

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 007
굴 드라이브 039
결로 071
작정기 097
그런 나약한 말들 125
마음에 없는 소리 159
내가 울기 시작할 때 195
사랑하는 일 223
공원에서 255

해설│강지희(문학평론가)
두 번의 농담과 경이로운 미래 285

작가의 말 313

본문중에서

나는 지나가지 않은 것에 대해 말하는 게 늘 두려웠다. 말하는 순간 다른 것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고 나로서는 변화를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고 그 변화에 대해 누군가에게 다시 설명해야 하는 것도 자신이 없었다. 나는 내가 다 겪은 것, 감당한 것, 견뎌낸 것에 대해서만 다른 사람과 공유할 용기가 났다.(「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 25쪽)

네 시간 정도면 국내 어디든 닿을 수 있다는 점이 안심되기도 했다. 아무리 멀어도 한나절이면 못 갈 곳이 없는 것이다. 아침에 마음을 먹고 정오에 출발하면 저녁에 다른 도시에 도착해서 아침에 있었던 곳을 깡그리 잊을 수 있다. 하지만 돌아가는 길 역시 그만큼 가깝다. 멀리 가도 아주 멀리 가지는 못한다.(「굴 드라이브」, 41~42쪽)

힘들고 지칠 때 고향을 찾아가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는 식의 말을 나는 한 번도 믿은 적이 없었다.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할 수가 있을까. 하지만 이번의 드라이브는 내게 평안 비슷한 것을 주었다. 내게도 고향의 어떤 점들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는 걸 일깨워주었던 것이다.(「굴 드라이브」, 52쪽)

“아가씨는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안 어린데요.”
“그래? 몇 살인데요?”
“스물아홉이에요.”
“아이고, 스물아홉이면 핏덩이지, 핏덩이.”
경남씨는 웃었다. 내가 정말 핏덩이라는 듯, 귀엽다는 듯이.(「결로」, 87쪽)

상대에게 무언가 숨기고 싶은 게 있을 때면 나는 그 얼굴을 똑바로 본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다는 것이 오랜 정설이니까 그 행위를 해냄으로써 나를 변호하는 것이다. 나는 내 좌표가 어디인지 정확하게 찍으려는 사람들 앞에서 늘 애매모호한 사람이 되어 얼버무렸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분명히 말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큰 것을 무화시키는 작은 이름들.(「작정기」, 114쪽)

나는 더이상 내 곁에 없는 원진이 나를 보호하고 있다고 느꼈다. 물론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이 세상에 관해 내가 가장 못마땅하게 여기는 점이기도 하지만 나는 견딜 것이 필요하니까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원진의 행복을 빌고 싶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므로 원진이 나의 행복을, 그러니까 내 미래를 축원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그 속에서 나는 안전한 것이다. 비합리적인 믿음 속에서.(「작정기」, 123~124쪽)

정은은 선생님의 그런 나약한 말들이 좋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추잡한 감정까지도 모두 교환했다. 어린 학생들을 욕하고, 직장 상사를 욕했다. 누구를 얼마나 미워하는지, 그들이 어떤 식으로 망해버렸으면 좋겠는지 마구 떠들어댔다. 어쩌면 둘 사이에 교집합의 세계가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는지도 몰랐다. 두 사람은 멀기 때문에 가까웠다.(「그런 나약한 말들」, 142쪽)

죽는다는 건 어쩌면 그냥 마음이 산산이 흩어지는 건지도 모르지. (…) 처음에 기능을 다하는 건 몸뿐이지만 그렇게 되면 마음이 머물 곳이 없어지니까 마음은 산산이 흩어질 수밖에 없지. 그러면 너라고 할 만한 것은 완전히 사라지고 마는 거야. 너는 여러 마음들의 집합체 같은 거라서.(「내가 울기 시작할 때」, 198쪽)

다 울고 나니 번다한 생각들이 모두 다 용해된 느낌이었다. 그렇게까지 울기 위해서는 엄청난 열의와 압력이 필요했다.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악감정들을 온몸으로 울면서 모두 죽여버린 기분이었다. 때로 울음이 정화인 것은 어떤 살해에 성공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내가 울기 시작할 때」, 213쪽)

“고마워.”
하지만 정말 고맙기도 했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나니 더욱 그랬다. 곱씹을수록 단맛이 배어나는 쌀알처럼 그 마음은 점점 진해졌다. 진심이라는 건 형식에 뒤따르기도 하는 법이니까. 고마운 마음이 뒤늦게 다시 밀려왔다.(「사랑하는 일」, 235쪽)

문득 나는 내가 사는 걸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처음에는 너무 뜬금없고 이상한 감정처럼 느껴졌는데 점점 선명해졌다. 뜻대로 된 적은 별로 없지만 나는 사는 게 좋았다. 내가 겪은 모든 모욕들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극복해내고 싶을 만큼 좋아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사는 건 좋다. 살아서 개 같은 것들을 쓰다듬는 것은 특히나 더 좋다.(「공원에서」, 281쪽)

저자소개

김지연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

2018년 단편소설 「작정기」로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마음에 없는 소리』가 있다. 제12회, 제13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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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지 확인을 위한 포장 훼손은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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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악세서리 포함) 등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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