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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지순한 부부의 사랑과 주위의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엮었다. 한편으론 생활의 즐거운 이야기와 한쪽 편엔 사람의 마을을 편안하게 해주는 내용의 시를 같이 수록하였다.

문광영(문학평론가)
이지향의 시는 토속적 입담과 역동적 상상력이 빚어내는 존재의 생명력이 빛나고, 시의 에피소드를 통하여 인간에 대한 성찰과 삶의 부조리를 부각시키면서도, 해학과 웃음으로 우리들을 위무해 준다.

01. 2021년 1월 11일
02. 물망초
03. 1월 12일
04. 와병
05. 1월 14일
06. 앗! 유성이다
07. 1월 17일
08. 아름다운 사람
09. 1월 19일
10. 갈맷빛 하늘 아래에는
11. 1월 21일
12. 이상한 호칭
13. 1월 28일
14. 뷰티플 아이스
15. 2월 7일
16. 시인이라고?
17. 3월 25일
18. 짝퉁 인생
19. 4월 25일
20. 압존법
21. 5월 17일
22. 노익장
23. 5월 22일
24. 꿍따리 샤바라
25. 5월 24일
26. 사랑, 그리고 8이라는 숫자
27. 6월 4일
28. 똘똘이 엄마
29. 6월 14일
30. 무릉도원
31. 7월 2일
32. 공산성 근처에 부는 바람
33. 공주 성
34. 8월 4일
35. 트레킹
36. 9월 9일
37. 겸허해 진다는 것
38. 10월 11일
39. 은은하게
40. 11월 10일
41. 감사
42. 11월 20일
43. 말똥구리와 늙은 창녀
44. 12월 8일
45. 애기똥풀
46. 12월 17일
47. 세재라는 것
48. 2022년 1월 2일
49. 헐렁하게
50. 일몰 . 〈후기〉

까치네 둥지 이야기
-부부일기와 시

1. 〈2021년 1월11일 월요일 날씨: 추 위 풀림〉

직장에 근무 중인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나 빙신 짓 했 다 아 ~.”
“뭔데? 왜 그래?”
“오늘 다래마트에서 장을 봤거든, 배달을 시켜도 되는데, 바리바리 싸들고 오느라 안 그래도 오른 쪽 어깨 침 맞으려 다니는데, 왼쪽 어깨까지 아프네.”
“삼 만원 넘으면 배달 해 주는데 얼마 너치 샀길 레?”
“육만 오천 원어치 샀으니까 당연히 배달해 달라면 제시 깍 해주지요. 그런데 그 말이 생각 안 나서, 그냥 낑낑거리며 들고 왔지요. 어깨 결리고 무릎이 쑤셔서 저만치 가서 쉬다, 또 들고 가서 쉬다가 겨드랑이 땀 흠뻑 흘리고 돌아왔네.”
“여보! 나 아무래도 바보 아니야?”
“아~니 배달해 달라는 말은 까먹고 생
각이 안 나는데 글은 어떻게 써?”
“글 쓰는 머리하고 또 그 머리는 다른 가 보지요 뭐.”
“여보! 아무래도 나 지 털 뽑아야 될까봐. 이런 바보짓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어. 그냥 지 털에 불을 확 싸질러야 할까봐.”
“그럼 안 되지 안 되고말고. 그걸 뽑고 나면 내가 따끔거려서 안 될 껄!”
“낄 낄 낄 낄 낄 낄......”
이상은 모년 모월 모일에 우리 부부가 나눈 가장 진한 대화 내용임.

2. 물망초

나를 위한 도피나
그 어떤
회유는 필요 없어
온전히 그대
내 목숨이길
바라던 시절이 있었다

피막처럼
아린 그리움으로
울다 웃다
토막이 나버린
추억의 이름으로
맹세 하나니
내 안에서
숨바꼭질하는
너 에게
다시 한 번 강력한
투항을 권고 한다
그대여
부디 나를 기억하고
잊지 마시라

3. 〈2021년 1월12일 화요일 날씨: 풀
린 날씨에 오후에 눈〉

황혼에 들어선 노인이 근무를 마친 저녁에 007 가방을 발 디딤 패드 위에 올려놓고 급히 화장실로 달려간다. 초등학교 때 학교 갔다 와서 란도셀을 벗어 마룻바닥에 팽개치듯 내려놓으며 ‘어머니, 학교 다녀왔습니다.’ 하듯 한 행동이지만 볼일을 마치고 나온 그에게 내가 한 술 더 떠서
“잘 다녀오셨어요? 주인님!”하고 약간의 과장된 몸짓으로 그를 맞았더니, 예의 그 명랑 보이가 되어 이를 드러내며 웃어 준다.
팔십 고령의 몸으로, 밖에서 추위와 한 판 승부를 하고 돌아온 가장에 대한 고마움을, 아내로서 그렇게 기분 좋게 표현을 한 것이리라.
그이가 샤워하러 욕실에 들어간 사이 습관처럼 그의 내복을 들고 큼 큼 큼 냄새를 맡아 본다. 약간의 땀 냄새라도 나게 되면 즉시 빨래 통 감이다. 요즈음은 옷에 때가 타서 빠는 게 아니고 냄새가 나면 세탁을 하는 것이다.
날씨가 너무 추워 한 사 나흘 빨래를 못했더니 말린 속옷이 모자라고, 생활에 질서가 잡히지 않아 제법 불편을 느낄 지경이다.
하수 배관의 결빙으로 문제가 있으니, 세탁을 자제하라는 방송을 무시하고 세탁기를 돌려 보았다. 끝난 신호음이 들려야 할 시점에서, 5C라는 글자가 뜨면서, 세탁기 문도 열리지 않고, 듣기 싫은 경보음만 들린다. 역시 이기적인 마음으로 행동을 하니까 결과가 좋지 않구나 일순 자책하는 마음이 들었다.
해당 가전업체 민원실에 문의를 하니 역시 배수관이 얼어서 세탁기 작동이 중지 되었으니까, 날이 풀릴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였다. 이왕지사 이렇게 된 일, 손빨래나 즐겨야지 싶었다.
그이 아침 식사로 우유를 데우고 설탕 재워 논 딸기를 준비해 두었다. 요즘 딸기가 귤을 이겼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딸기 맛이 훌륭하다. 식사량이 공기 밥 반 정도의 양인 그이에게 좀 과하다 싶은 양이었는데, 딸기 접시는 깨끗이 밑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몇 점 남길 줄 알고 입맛을 다시고 있었는데 어쩔까나. 안 남겨 주어도 잘 드셔 주어서 고마워요. 나의 낭군님!

4. 와병

어느 날
거짓말처럼
중병이 찾아 왔다

낮밤으로 잠이 오지 않았다
배가 아파 먹을 수가 없었다
거구이던 몸이 40kg 대로 줄었다
먹는 게 부실하니 볼 일을 보지 못하였다
신경정신과에선 정확한 병명을 진단하지 못하고 심인성 신경병이라 하였다

느지막한 나이에 결혼을 하고
이게 웬 홍복이냐 싶어
자다가도 낄낄거렸다는 남편이
핵폭탄을 맞게 되었다
축척해둔 재산 없이
직장생활을 하던 그이는
어떡하던 마누라 살려 보겠다고
병에 좋다는 무슨 무슨 약재
무슨 무슨 처방에 귀 기울이면서
병원에 입 퇴원을 반복시키면서
반찬가게를 순례하면서
나를 먹이고 씻기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병은 4~5년 계속 되었는데
내가 남편에게 큰 채무를 느끼는
압권의 기억으로는 물김치
오랜 기간
국 찌개 반찬을 사들이는 것이
마뜩치 않은지 그는 손수 야채란 야채는 다 사와서 잘디잘게 썬 다음
물김치를 만들었다
삼시 세끼 밥을
물김치에 말아 먹였다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大자로 들어 누워 밥을 얻어먹었는데
야윈 어깨에 가느다란 두 다리를 하고
식탁위에
도마를 올려놓고 야채를 썰고 있는
그의 애련한 뒷모습이
참 불쌍해 보였다

그때 결심하였지
내가 다시 건강해져 일어난다면
이젠 내 차례니
죽을 때까지 그를 귀히 여기고
잘 해주어야지 하고
이제와 뭇노니 그 약속을 잘 지키고 있나 요?...... 네.

5. 〈1월14일 목요일 날씨: 좋음〉

그동안 밀린 빨래를, 결빙된 배수관에서 온전해 진 세탁기가 말끔히 해 주니 집안에 질서가 잡히고, 랄랄라 콧노래가 새어나오는데 양기가 부족한 지 얼굴이 푸석푸석 하다.
“오빠! 괴기 좀 사 주실래요?”
“오늘, 점심 어때?”
“콜~~!” 한다.
우리들이 유일하게 정해 논 외식업체인 “대박골” 음식점에서 돼지갈비 2인분을 시켰다. 사이다 한 잔은 소화제용으로.
나이가 드니 그동안 쌓인 내장 비만이 불편한 고로, 밥 들어가는 양이 현저히 줄었다. 고봉밥 한 그릇이면 한 사람이 세 끼는 먹을 거다.
향이 고급스럽고 맛도 좋은 믹스커피로 후식을 치르고, 모처럼 따뜻하고 쌈박한 겨울 햇살을 앞장세우고 포천에 있는 봉선사 절 나들이 행이다.
템플스테이란 굵은 글씨로 장식된 대형 버스가 주차된 곳엔, 밝은 색깔의 건물이 요즈음 단장을 끝낸 새로운 요사체인가 보다. 사람의 발소리 말소리가 들리지 않아, 정적과 친구 삼아 서로의 장갑을 깔고 벤치에 앉아, 귀와 눈과 코의 구멍을 열고, 그들의 촉수를 발판 삼아 좋은 시간을 갖는다.
그이 어깨에 살포시 머리를 기대고 손을 잡아 본다. 깡마른 손이지만 결이 부드럽고 온기가 퍼져 있어 따뜻하고 정답다. 아~ 이 찰나의 시간. 이 순간, 행복하여라.
미끄러질 듯한 눈길도 재미있고, 언뜻 스친 절 입구의 단층도 곱고, 300년 이상 우람하게 버티고 서서 모두를 지켜주는 보디가드 나무의 허벅지도 튼실하다.
마음이 꽉 차고 만족해서, 이 순간이 바로 부처님이 말씀하신 득도(?)의 경지가 아닐까 하는 넉넉하고 충만한 마음이었다.

6. 앗! 유성이다

처서 지나 한참 되니
떨어졌던 입맛
다시 돌아오고
모기에게 살점 뜯기고
땀띠에 시달리던 피부가
아리수 차가운 물에 잦은 샤워로 위로를 받는다
“길을 가다가 불현 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라는
명시 구절을 외우며
무심코 올려다 본 하늘은
아청빛 볼우물을 지으며
저만치 달아나고 있다

달, 별들을 임신 중인 그녀도 입맛이
돌아왔는지
게걸스럽게 많이 먹고
게털 같은 구름떼를 게워낼 때도 있다
어린 별님 달님의 씨 톨을 자궁 속에
가득 품고서

밤이 되자
파수꾼처럼 처처히 박혀 있던
별무리들이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데
순간
섬광처럼 찰나로 흐르고 있는
앗! 유성이다.

7. 〈1월17일 일요일 날씨 맑음, 추워
요〉

책 두어 권 엮느라 바쁜 척 하다 보니 두 서 너 달 운동을 하지 못하였다. 운동 이래야 집 주위들 20~30분 느릿느릿 걷는 산책이 전부다.
오늘은 기필코 운동을 하리라 아침부터 벼르고 있었길 레, 저녁 먹기 전 3시 30분경에 부용 천 산책로에서 단거리 여행을 시작 한다.
하늘은 쾌청하니 맑고, 구름도 우윳빛 물보라를 피워 올리는 창공으로, 새 떼 들이 반상회를 마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잘도 날아간다.
늘 보던 청색의 청둥오리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대가리가 검고 목덜미는 흰빛이 나고 몸 전체가 회색인 오리 서너 마리와, 대가리는 갈색이고 목은 흰색이고 몸은 그레이로 채색된 오리 두 어 마리가 짝을 지어 먹이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한 어미에게서 태어났는지. 어미가 각각인지는 알 수 없으나, 조용히 물장구를 치다가 엉덩이를 발라당 들어 올려 거꾸로 자맥질하는, 오리들의 수영 실력은 늘 봐도 부러워진다.
그렇게 수영을 배우고 싶었건만 일주일 만에 포기한 나인지라, 유유자적 자태를 뽐내며 일상에 충실한 그네들이, 너도 좀 잘 살아봐 하며 나를 나무라는 것 같다.
내 나이 올해 73세.
누가 위로를 해도 소용없는 일몰의 시각에 와 있다. 주변 언저리를 황홀한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장엄하게 이별을 고하는 석양의 찬란한 낙조가 되고 싶다.
한 생(生) 잘 살다 간다
고마운 이들이여 안녕 하고.

8. 아름다운 사람
어릴 적 내 어머니는 닭 모가지를 비틀어 닭을 잡았다 그녀가 눈을 희번덕이며 닭장에 들어서서 닭 몰이를 할 때에는 왜간장에 당면이 들어가 자르르 기름기 도는 남도 식 찜닭을 얻어먹을 생각을 하며 우물가로 달려가곤 하였다 펄펄 끓는 물에 닭의 털을 뽑고 목, 날개, 다리, 가슴살 등 부분부분 닭살의 해체과정 구경하는 것을
야릇한 스릴과 서스펜스를 느끼며 지켜보 았다 구불 텅 구불 텅 가늘은 창자에
날카로운 작은 칼로 칼집을 내고
굵은 소금으로,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