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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시 : 함기석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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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함기석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 : 2022년 02월 11일
  • 쪽수 : 212
  • ISBN : 9788954684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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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나는 굴하지 않는다
색채를 지우는 눈보라 악보가 하늘에 펼쳐질지니”

세계를 하얗게 칠해 다시금 언어를 창발하는 시
파괴 뒤의 공허로부터 비로소 펼쳐지는 생의 지평

문학 언어라는 구획을 넘어서서 한국 현대시의 전위를 몸소 실현하는 함기석 시인의 일곱번째 시집 『음시』를 문학동네시인선 168번으로 출간한다. 이상시문학상, 이형기문학상, 애지문학상, 박인환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익히 공인된 그의 실험 정신은 이번 『음시』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함수 그래프와 수학 기호가 무차별적으로 활용되고, 화자가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이 시집은 낯설지만 직설적인 상상력의 총체 그 자체다. 『음시』는 익숙한 사고의 틀을 의문에 붙이고 그로부터 더 나아가 자유롭게 깊어지는 언어로, 즉 언어의 가능성이 곧 삶의 가능성이 되는 무아지경으로 독자를 이끈다.

출판사 서평

“나는 굴하지 않는다
색채를 지우는 눈보라 악보가 하늘에 펼쳐질지니”

세계를 하얗게 칠해 다시금 언어를 창발하는 시
파괴 뒤의 공허로부터 비로소 펼쳐지는 생의 지평

문학 언어라는 구획을 넘어서서 한국 현대시의 전위를 몸소 실현하는 함기석 시인의 일곱번째 시집 『음시』를 문학동네시인선 168번으로 출간한다. 이상시문학상, 이형기문학상, 애지문학상, 박인환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익히 공인된 그의 실험 정신은 이번 『음시』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함수 그래프와 수학 기호가 무차별적으로 활용되고, 화자가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이 시집은 낯설지만 직설적인 상상력의 총체 그 자체다. 『음시』는 익숙한 사고의 틀을 의문에 붙이고 그로부터 더 나아가 자유롭게 깊어지는 언어로, 즉 언어의 가능성이 곧 삶의 가능성이 되는 무아지경으로 독자를 이끈다.

누가 우릴 납치해 이 시의 구와 절, 반복되는 숨
운율과 여백에 가두어놓았을까
세계는 심장 없는 시, 허나 쿵쿵 심장소리 천지 사방 울리니
어떻게 이 시 속에서 탈옥할 것인가
_「전투적 기계식물 무궁화」에서

「흑백 벽돌 수용소-어둠 속 225人의 유대인 포로와 가시철조망」은 혀에 대한 진술들이 모여 ‘말’이라는 글자의 형상을 이룬다. 시를 통해, 의미를 내포한다는 언어의 규약이자 한계를 포괄하여 외연마저도 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함기석은 ‘말’이라는 ‘전체’가 가두고 있는 각각의 포로-혀들을 시각적으로 드러내어 이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고발한다. 그가 보기에 “시에서 유일한 리얼리티는 말 그 자체다. 그러나 말은 안개고양파고 그림자다. 일종의 유령이자 환영이다. 말은 사방으로 분산되면서 동시에 사방에서 실종되고 증발한다. 시에서 유일한 리얼리티는 말 그 자체에 내재된 무(無)와 침묵이다.”(함기석 시론집 『고독한 대화』에서)
함기석의 이미지적인 시들은 의미를 보다 명징하게 돌출시키는 한편으로 의미를 후면 깊숙이 배치하여 독자의 상상력을 건드리기도 한다. 「연인」 연작은 함수 그래프만 홀로 존재하나, 부제와 각주들로 시의 뒷면을 짐작하게 한다. “1차원 여야의 2차원 나체 침실, 한여름 밤의 자장가 또는 체위 연습”이라는 부제하에서 서로 교차하는 그래프들은 정치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함축하고, “분터골 매장지 유골 분석함수, 라인이 된 혼령들의 라임” 속 검은 구역은 그곳에 묻힌 희생자들의 영혼을 암시한다.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단 사람들이 울고 있었다
촛불이 타는 반도였다 반도는
자책한 과부가 부과한 거대한 악의 책자였고
또다른 전쟁으로 4부 5부 6부 이후의
모든 서사는 불타 있었다
_「자책한 과부가 부과한 책자-전대미문의 문미대전」에서

함기석에게 시는 실로 전투다. 시집에서는 내내 처절하고 철저한 전투가 벌어진다. 「자책한 과부가 부과한 책자-전대미문의 문미대전」은 ‘회문’을 이용해 언어유희를 펼쳐나가지만, 유희가 겨냥하는 것은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은 모양으로 영원히 반복되는 현실의 구조다. 그러니 전투의 영토는 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함기석에게 시는 현실과 동떨어진 언어놀이가 아니라 해방적인 실천이기 때문이다. 화자는 “이상한 거리에 촛불들이 행진하자/ 이상한 당국이 이상한 비를 뿌”(「가출 소동」)리는 것을 지켜보며,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변용하여 “개성공단 폐쇄 및 UN 결의 뉴스를 지켜보던 어느 풍산개의 한숨”(「남의 침묵」)을 내뱉는다. “대통령 국회 국정연설문” 속의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을 “졸려 하는 국물 여러분!”(「쌍둥이 유령 로골로지와 야골로지의 대통령 국회 국정연설문 교차 낭독」)으로 바꿔 야유를 가할 때,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이들의 마음에는 해방구가 깃들 것이다.

함기석은 음시를 가리켜 “이 땅의 모든 죽은 말을 눈의 벌판으로 내쫓는/ 천년의 난(亂)”(「밀지」)이자 “삼독(三毒)의 반도가 거꾸로 투영된/ 흑경(黑鏡)”(「해조음」)이며 “우리의 주검에 핀 살의 현상”(「음시」)이라고 썼다. 죽은 말을 내쫓는 살아 있는 말이자, 있는 것을 반사할 따름인 수동적인 기능을 거부하는 거울이며 죽음의 현장에서 피어난 미래의 증거. 음시는 에포케를 외치는 중단된 언어이자 지연된 언어이며 기능하지 않음으로써만 기능하는 역설적 언어이지만, 살아 있는 말이고 죽어 있기를 거부하는 말이며 미래를 가리키는 말이다. 음시의 존재론은 음의 언어를 통해서만 설명할 수 있는 음의 세계가 도래할 것임을 의미한다.
_박혜진 해설, 「음시, 비존재의 집」에서

음시란 무엇인가. 의미를 밝혀줄 어떤 군더더기도 없이 열려 있는 의미들 가운데서 “우리는 우리의 주검에 핀 살의 현상이고 음시다”(「음시」)라는 선언이 두드러질 때, ‘우리’는 어떤 사람들인지 묻는 것으로 가닥을 잡을 수 있다. 다시 함기석에게 우리는, “광음을 간직한 악보고 바람이다”. 즉 우리가 서 있는 “계급적 착취와 억압의 성”이자 “빛들이 참수되고 있”(「낱말 전쟁」)는 세계에서 장렬히 투쟁하는 이들이 우리이고, 음시다. 언어를 무기로 삶의 경계를 적극적으로 넓혀가는 이들의 시(詩)이자 시간이 바로 음시인 것이다.

바닥은 늘 더 낮은 추락을 위한 유혹의 쉼터였으니
더이상 희망에 속고 싶지 않은 것이다

(……)

마지막 한 줌 가슴뼈마저 하늘에 묻는 날
우리 새끼들 사는 이 가난한 골목 가득
싸락눈 대신 훨훨 날갯짓하는 함박눈 새떼나 왔으면
_「싸락눈 오던 날」에서

『음시』에는 생활인으로서의 내밀한 면모도 담겨 있다. 투사와도 같은 겉모습의 안쪽에 자리한 여리고 약한 모습이다. “폭염의 거리”가 내다보이는 “얼음 방”에서 얼어버린 가족들을 간절히 “1mm”(「1mm 꿈」)씩 녹이는 화자는 “밤마다 사라져도 다시 내 살 곁에 돌아와 잠드는 집”이자 “나보다 먼저 잠을 깨어 내 눈꺼풀을 여는 집”을 “비유적 가격 20,000원”(「분양의 계절」)에 분양받는다. 병실에서 “어머니의 삭은 등”을 바라보던 화자가 “유릿조각 깔린 잠 속의 걸음걸음이 밤물결보다 아파서/ 나는 또 내 병조차 미안”(「눈의 병실에서」)해하는 동안, 화자의 내면에서도 함께 벌어지는 치열하고 인간적인 전투를 느낄 수 있다.

하늘에서 어린 돌고래들이 천천히 지붕으로 내려왔다 폭설이 폭설을 폭설로 지워나가는 이생의 기이한 겨울밤, 수억 년 전에 사라진 별빛들이 죽지 않은 당신의 눈처럼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_「수학자 누(Nu) 18」에서

부 대신 공간들-공간 U, 공간 W, 공간 R, 공간 H, 공간 T-이 덧붙여진 『음시』의 마지막 공간엔 「수학자 누(Nu)」 연작이 수놓인다. 고유명사 ‘누’에 조사 ‘가’가 붙는 ‘누가’가 대명사 ‘누구’와 의도적으로 혼동될 때, 함기석은 다중의 임의성과 개인의 고유성간의 관계를 심문한다. ‘누구’든 ‘누’가 될 수 있는 세계에서 자명한 진실들은 그 안의 모순을 폭로하고, 이제 ‘누구’들은 수학자의 눈으로 세계를 새롭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항아리는 엄마의 유골함이다)”가 매 연에서 무한히 반복되며 나아간 결론에서 화자는 “나는 마이너스 우주, 마이너스 눈동자”(「수학자 누(Nu) 0」)라는 깨달음에 이른다. 양의 무한만을 지향해왔던 세계가 아닌, 음의 무한에서 함기석의 세계는 초현실주의 회화풍으로 세계를 낯설게 덧칠하여 유격을 밝혀낸다. 이처럼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서고, 문학 언어와 일상 언어의 가름을 넘어서서 함기석이 도달한 전회의 순간은 낯선 만큼 지극히 지금 여기에 요청되는 가능성의 지평을 독자에게 열어 보인다.

목차

시인의 말

공간 U
오염된 땅/ 포로기/ 붉은 탑/ 검은 꽃 탄자니아/ 광화문/ 국립낱말과학수사원/ 에셔병원/ 당신/ 어휘 공화국/ 어휘 공화국/ 가출 소동/ 남의 침묵-개성공단 폐쇄 및 UN 결의 뉴스를 지켜보던 어느 풍산개의 한숨/ OK 레스토랑의 결투/ 전투적 기계식물 무궁화/ 귀뚜라미 다비식/ 나르코 테스트/ 한국병원/ 음시

공간 W
서해에 와서/ ( )/ 쌍둥이 유령 로골로지와 야골로지의 대통령 국회 국정연설문 교차 낭독/ 자책한 과부가 부과한 책자-전대미문의 문미대전/ 연인-1차원 여야의 2차원 나체 침실, 한여름 밤의 자장가 또는 체위 연습/ 연인-분터골 매장지 유골 분석함수, 라인이 된 혼령들의 라임/ 오공초등학교 조회 시간/ 게으름뱅이 건축가/ 낱말 전쟁/ 명제산/ 밀지/ 기호부대 병사들 야간작전 일지/ 접속家의 네 마녀들/ 작전명, 하늘을 나는 돼지-제2차세계대전 오가사와라(小笠原) 학살사건/ 독일 가곡무대/ 유리창/ 흑백 벽돌 수용소-어둠 속 225人의 유대인 포로와 가시철조망/ R=kr/ 부조화 연인-신인(神人)의 생사, 캉캉을 추는 말 푸코와 빙글빙글 감시탑

공간 R
1mm 꿈/ 어떤 소극장/ 눈의 병실에서/ 이스파한/ 분양의 계절/ 한 지붕 몇 가족/ 싸락눈 오던 날/ 마스크/ 날개 달린 돌/ 심장 잃은 새 이프/ 해조음

공간 H
나나의 인공정원 셀(cell)/ 기이한 끌개 A/ 엠/ 중복/ 정오의 정원-수직 이등분된 나무 눈(noon)의 좌측면/ 정오의 정원-수직 이등분된 나무 눈(noon)의 우측면/ 플랫랜드/ 숫자族의 습격/ 카운트다운 해변에서의 카운트다운/ 열 개의 입이 달린 숫자괴물 크아크아/ 유령 피아노/ 0차원 숲/ 유령 알레프 영이 사는 아홉 집 수리마을/ 조기입학자/ 나는 데카르트 여객기 실종사건을 추적중인 라디안/ 사라지는 벽 뒤로 사라지는 피사체들/ 기이한 끌개 B/ 부조화 연인-유령시인 시시포스(Sisyphos)와 우주소녀 서클(Circles)

공간 T
수학자 누(Nu) 0/ 수학자 누(Nu) 1/ 수학자 누(Nu) 2/ 수학자 누(Nu) 3/ 수학자 누(Nu) 4/ 수학자 누(Nu) 5/ 수학자 누(Nu) 6/ 수학자 누(Nu) 7/ 수학자 누(Nu) 8/ 수학자 누(Nu) 9/ 수학자 누(Nu) 10/ 수학자 누(Nu) 11/ 수학자 누(Nu) 12/ 수학자 누(Nu) 13/ 수학자 누(Nu) 14/ 수학자 누(Nu) 15/ 수학자 누(Nu) 16/ 수학자 누(Nu) 17/ 수학자 누(Nu) 18

해설 | 음시, 비존재의 집
박혜진(문학평론가)

본문중에서

잿빛 시를 낮게 웅얼거리며 빨래를 넌다 남자는 계속 땅속에 둥지 잃은 새처럼 빈 울음으로 서 있고 지옥에서 날아온 부고 엽서 같은 노란 나비 한 마리 아물아물 구덩이 주변을 맴돈다

들판 저편 먼 아시아에도 촛불이 타오르겠지 맨드라미처럼 빨간 여자의 잇몸, 아이가 꾸던 단꿈이 구덩이에 묻히고 남자는 꽃의 지층 어딘가에 있을 천국을 찾아 더 깊은 곳으로 파들어간다
_「검은 꽃 탄자니아」에서


우린 휩쓸려간다
백지는 우리의 목을 조르는 손이고 비명의 육체
가왕은 나를 참수할 검을 뽑는다 나는 굴하지 않는다
색채를 지우는 눈보라 악보가 하늘에 펼쳐질지니
_「낱말 전쟁」에서


이 땅의 모든 죽은 말을 눈의 벌판으로 내쫓는
천년의 난(亂), 음시가 시작되니
간신의 말은 모두 잡아 혀를 잘라라
매음의 말은 모두 잡아들여 사타구니를 인두로 지져라
그러나 새 숨을 불어넣어라

죽은 자의 죽지 않는 말
죽은 자의 뼈에 박힌 아프고 아픈 통곡의 말
그 백색 침묵과 포로기
저 무수한 대기와 허공과 우주의 말
천지와 사람과 만물이 알몸으로 교접하는 숨통의 말
_「밀지」에서


오늘밤 장미는 세계의 반(反)기획이다
죽은 자들의 죽지 않는 발이 해저를 걷고 있다 그것이 내 몸이다
천둥이 천상에서 지상으로 아픈 발을 뿌리내릴 때
소리는 빗물이 꾸는 가시 꿈, 사방에서 악의 술어들이 취하고

우리는 우리의 주검에 핀 살의 현상이고 음시다
수천의 혀를 날름거리며 피 흘리는 사전, 그것이 내 몽이다
에포케(epoche)씨가 살로 세계를 쓸 때, 끝없이 제 살을 찢어 흰 숨결에 섞는 파도
그것 또한 내 몸이니, 연기 내며 비는 귀부터 타오르고
_「음시」에서


동이 틀 무렵 나는 구멍난 심장으로 보았다
잠든 그의 두 귀에서 인간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해조음이 따뜻한 핏물처럼 번져나오는 것을
_「해조음」에서

저자소개

함기석(咸基錫)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1966

1992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 『국어선생은 달팽이』 『착란의 돌』 『뽈랑공원』 『오렌지 기하학』 『힐베르트 고양이 제로』 『디자인하우스 센텐스』, 동시집 『숫자벌레』 『아무래도 수상해』 『수능 예언 문제집』, 시론집 『고독한 대화』, 비평집 『21세기 한국시의 지형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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