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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군, 오군, 사아이거호 : 강화도에서 보는 정묘호란ㆍ병자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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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이경수
  • 출판사 : 일조각
  • 발행 : 2022년 01월 30일
  • 쪽수 : 272
  • ISBN : 9788933707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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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강화도 토박이가 보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고려시대에는 몽골과 치열한 항쟁을 벌였던 격전지로, 조선시대에는 왕과 왕족의 유배지로 역할을 톡톡히 했던 강화도는 오늘날 외부인들이 즐겨 찾는 인기 관광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드넓은 갯벌과 푸르른 바닷물이 어우러지며 독특한 풍경을 자아내는 이곳에 치열한 싸움의 흔적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특히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아픈 기억이 어떻게 담겨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오군, 오군, 사아이거호-강화도에서 보는 정묘호란 병자호란》은 조선 인조 때 일어났던 두 번의 호란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강화도에서 나고 자란 필자가 보는 강화는 조금 특별하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혹은 명확한 목적을 갖고 안팎으로 드나들었던 사람들을 전부 품었던 이 섬에는 오래된 기억과 더불어 분노, 서러움, 그리움 등 많은 감정이 녹아 있다. 설령 자랑스럽기보다는 치욕스러운 과거가 차지하는 부분이 크다 하더라도,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것 역시 역사의 일부분으로서 받아들이고 계속 살아온 것이다. 가슴 아픈 역사를 알기 쉽게, 아름다운 사진과 해설을 곁들어 찬찬히 풀어나가는 본서를 읽다 보면 독자들 역시 지난한 설욕의 역사를 겪고 버텨낸 강화도를 마음으로나마 살뜰히 보듬을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서평

잊을 수 없는 혹독한 두 번의 겨울

17세기 조선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이 두 번의 호란을 겪었다. 호인(胡人), 즉 만주 사람이 일으킨 난리라고 해서 호란(胡亂)이라고 한다. 이 전쟁에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두 번 다 조선 제16대 왕인 인조가 재위하던 때 일어났다. 두 번째, 이름만 달라졌을 뿐 같은 나라에서 쳐들어왔다. 세 번째, 눈이 펑펑 쏟아지는 추운 겨울에 일어났다.

제1대조인 누르하치의 뒤를 이어 후금의 두 번째 왕으로 즉위한 홍타이지는 조선을 자신의 아래로 들이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인조가 즉위하기 전인 광해군 때도 후금은 시시때때로 조선을 공격했으나 홍타이지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장자가 아닌 그가 모두를 제압할 황제가 되기 위해선 더 많은 업적과 큰 힘이 필요했다. 주변 국가들의 인정을 받아 자신의 입지를 탄탄하게 다지고, 가뭄 등으로 불안했던 경제와 민심을 다스리고자 했던 그에게 해결책은 전쟁이었다. 그러니 명 정벌에 앞서 명과 사대 관계에 있는 조선을 공격하는 건 당연했다.

1627년 1월, 후금이 쳐들어오자 인조는 그들을 피해 강화행궁으로 피신했다. 수도를 엉망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택했던 도피 생활은 약 3개월 만에 끝나는데, 워낙 후금이 화친을 재촉하기도 했거니와 인조가 더 큰 피해를 원하지 않아서였다. 명을 받들었던 기존의 관계를 배신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은 것에 자괴감을 느꼈지만, 그래도 인조는 고민 끝에 후금과 ‘형제’ 관계를 맺었다. 이대로 끝나겠거니 하고 안심한 것도 잠시, 9년 뒤 전쟁이 다시 일어났다.

후금은 국호를 청(淸)으로 바꾸었고 1636년 12월, 조선시대 강화 제일의 관문이었던 갑곶나루를 기어이 뚫고 짓쳐들어왔다. 앞으로 자신을 형이 아닌, 상전으로 받들어 모시라며 관계를 공고히 하고자 함이었다. 예상보다 더 빠르고 깊게 들어온 청군의 기습에 조선은 당황했고, 인조는 허둥지둥 남한산성으로 피했지만 길게 버틸 수 없었다. 그리고 47일 만에 청에 항복했다. 1637년, 칼바람이 볼을 에는 날씨에 청과의 두 번째 전쟁은 그렇게 끝났다.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를 버리고 가십니까

“오군, 오군, 사아이거호.(吾君, 吾君, 捨我而去乎)” 마치 라틴어 “쿠오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 즉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처럼 들리기도 하는 이 말의 뜻은 “우리 임금님, 우리 임금님, 우리를 버리고 가십니까?”로, 인조실록 34권에 적혀 있다. 바람 잘 날 없는 때, 기댈 곳 하나 없는 백성들의 간절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제발 우리를 살려 달라고, 굽어살펴봐 달라는 애타는 마음. 그러나 인조는 그러지 못했다.

1637년 1월 30일, 청에게 항복문서를 미리 보낸 인조는 황제한테 인사를 올리라는 명을 받았다. 조선 왕은 죄인이니 성의 정문인 남문이 아니라 서문으로 나오라는 말에 인조는 자신을 기다리던 청 황제, 홍타이지한테 삼배구고두례를 올렸다. 몇몇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과장되게 이마에서 피가 나오도록 머리를 찧진 않고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나 필경 마음으로는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백성들은 오랑캐한테 항복하고 성을 떠나는 임금을 향해 언 발을 구르며 울부짖었다. 인조는 끝내 그들을 마주하지 못하고 창경궁으로 돌아갔다.

호란으로 말미암은 수많은 사람의 각기 다른 선택

강화도에서 나고 자란 역사 교사 출신의 저자 이경수는 《오군, 오군, 사아이거호-강화도에서 보는 정묘호란 병자호란》에서 호란이라는 다소 묵직한 주제를 옛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듯이 술술 풀어냈다. 저자는 승패나 시시비비를 일일이 가리지 않는다. 다만 왜 조선이 불가피하게 호란을 겪어야 했는지, 그리고 호란을 겪으면서 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이 사태에 대처했고, 또 전쟁이 다 끝난 후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동안 많은 사람이 각기 다른 행동과 태도를 취했다. 체찰사 김류와 그 아들인 검찰사 김경징처럼 사리분별을 못하거나 제 욕심을 차리기에 급급한 관료도 있었고 예조판서 김상헌처럼 청에게 항복하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비분강개하는, 그야말로 대쪽 같은 성정을 지닌 충신도 있었다. 그런 가운데 청과의 화친을 도모하자는 이조판서 최명길 같은 신하도 있었다. 백성이 덜 고통받게 하려면 윗사람이 먼저 고통을 감내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했던 그는 청에 끌려간 조선 사람들의 몸값인 속(贖)을 치르고 구해오는 데도 열심이었고, 억지로 잡혀갔던 부녀자들을 내쫓지 말고 다시 가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앞장서서 화친을 주장했다는 명목으로 평생을 비난당했다. 오히려 상대가 명이든 청이든 제 나라와 백성을 팔아버리는 진짜 변절자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숨겨버렸다.

순수한 충심으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이들 또한 많았다. 그러나 부질없이, 혹은 ‘명예’라는 이유로 자살을 강요받은 자들도 많았다. 특히 조선 사회는 여인들에게 정절이라는 큰 짐을 지웠고 이 멍에는 대책 없이 늘어나는 열녀문과 목숨 걸고 돌아온 고향에서조차 환영받지 못하는 환향녀로까지 이어졌다. 호란이 끝나고 청군에게 끌려간 사람 중에서 운이 좋으면 속을 치르고 돌아오거나 도망에 성공했지만, 죽을 때까지 그리운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다.

이런 난리통에 겨우 목숨을 부지한 사람들도 있었다. 자살이든 타살이든 가족과 동료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보고 겁이 나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했을 수도 있고, 얼마 안 남은 가족을 악착같이 지키기 위해 살아남겠다고 결심했을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저승에서라도 볼 낯이 없는 일은 만들지 않기 위해 그들은 열심히 살았다. 병조판서와 대제학을 역임한 김만기와 《사씨남정기》와 《구운몽》을 쓴 김만중 형제를 길러낸 어머니 해평 윤씨도 그런 사람이다. 만약 그녀가 나라를 향한 충정으로 성균관 동학들과 함께 목숨을 끊은 남편을 따라갔다면, 오늘날 그녀의 자식들이 일궈낸 유산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살다 보면 살아진다

전쟁은 지긋지긋하다. 특히 나라끼리 치르는 전쟁에서는 누구 하나가 먼저 멈추자고 하지 않는 한 승부가 날 때까지 자웅을 겨룬다. 그리고 마침내 한쪽이 지면 승자는 패자한테 여러 가지를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패자는 말 못 할 수치심과 비애감을 느끼고 제각각의 선택을 한다. 끝까지 싸우는 자, 나라를 지키지 못했다며 탄식하고 목숨을 버리는 자, 조국을 팔아먹고 호가호위하는 자. 이 다양한 모습 가운데 이 치욕을 견디고 살아남은 이들은 후세에 선대의 이야기를 전하고 어떻게든 버텨나간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도 그렇다. 처절한 역사와 치열하게 산 사람들의 명맥과 유지를 이어받아 현재의 우리가 있고, 슬픈 역사가 잠든 섬을 기억할 수 있다. 본서를 읽으며 느끼는 감상은 제각각이겠으나 그래도 중요한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살다 보면 삶은 계속된다. 단순하되 가치 있는 깨달음이다.

목차

들어가는 글

빛나는 물길이 다다르는 곳
왜 강화도인가 / 여진에서 만주로 / 광해군 가고 인조 오고 / 갑곶나루

정묘호란
후금은 왜 조선을 침략했을까 / 고려에서 했던 것처럼 / 궁궐, 궁궐, 또 궁궐 / 형 죽이고 아우도 죽이니 / 광해군이 폐위되지 않았더라면 / 아이고, 모문룡 / 오자마자 화친 카드 / 화친은 항복인가 / 정권 안보, 국가 안보 / 용골산성이 있었다 / 백성의 사늘한 눈빛 / 그래, 죄는 내게만 물어라 / 조약 맺은 장소는 연미정이 아니다 / 위로가 필요해 / 과거를 시행하다 / 유수부가 되다 / 강화·강도·심도 / 교동도를 주목하다 / 짚어 보아야 할 호패법 / 백성은 사족의 그림자라

병자호란
오군, 오군, 사아이거호 / 삼배구고두례 / 그동안 조선은 무얼 했나 / 무엇이 문제였을까 /
왜, 또? / 어찌 강화도가 떨어졌단 말인가 / 공유덕이? / 광성진이 아니었다 / ‘아빠 찬스’ / 검찰사, 그 모호한 직책 / 구원일·황선신·강흥업 / 삼충사적비 / 위대한 항명이 필요했다 / 불 속에 몸을 던져 / 송해수·정명수·김자점 / 청군의 만행 / 여자이기 때문에 / 충렬사 / 충렬사 사람들 / 나는 여기서 죽는다 / 죽지 못한 남자, 죽지 않은 여자 / 1636년, 남한산성 일기 / 1637년, 남한산성 일기

떠나간 이들과 이 땅에 남은 것
사대·명분·의리 / 성리학이 보는 세상 / 척화를 생각함 / 인조의 소원 / 그리워라, 내 고향 / 또 다른 맹약 / 황손무의 편지 / 실록과 역사


정묘호란·병자호란 전후 연표
도움받은 자료

본문중에서

고려 말 조선 초를 살았던 통진 사람 박신(1362~1444)은 대사헌, 호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지냈다. 통진에서 강화를 오가며 보니 사람들이 배 탈 때마다 물에 텀벙텀벙, 귀찮고 불편하고, 특히 겨울에는 고통이다. 높은 사람들이야 가마 같은 거 타고 배에 오르고 내리니 버선 한 짝 젖을 일이 없다.
마음이 있어야 보이는 법, 박신은 백성에게 참마음이 있었다. 배 타고 내릴 때마다 고통 겪는 이들을 애처롭게 여겼다. 선착장 만드는 비용만 대도 칭송받을 일인데 손수 사람들과 함께 일했다.
그렇게 김포 쪽 해안과 강화 쪽 해안에 돌을 쌓아 선착장을 완성했다. 인조는 박신이 쌓은 선착장에 내렸을 것이다. 박신은 몰랐겠지. 이 나루로 나라님이 피란 올 줄은.

-25쪽, 빛나는 물길이 다다르는 곳 〈갑곶나루〉


1627년(인조 5) 3월 3일, 드디어 조선과 후금은 맹세 의식을 통해 화친조약을 맺었다. ① 조선은 명과의 관계를 그대로 유지한다. ② 후금과 조선은 형제관계를 맺는다. 이게 주요 내용이다.
후금이 명목상 형의 나라가 되었고 조선은 동생의 나라가 되었다. 조선은 세폐(歲幣)라는 이름의 전쟁 배상금도 물게 됐다. 그래도 인조는 이 정도에서 호란이 수습된 것을 다행스럽게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잃은 것이 많았다. 반정의 정당성을 상실했다. 정권의 자체 명분도 잃었다.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그렇게도 비판했는데, 오로지 명나라만을 섬겨야 한다고 외쳤는데, 그래서 광해군을 폐위시키기까지 했는데 정작 자신들은 명나라를 배신한 꼴이 되었다. 후금과 형제관계를 맺으면서 어쨌든 친금(親金)을 공식화한 셈이 되었다. 자괴감, 무력감. 인조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61쪽, 정묘호란 〈화친은 항복인가〉

인조가 즉위하자 백성들은 기대의 눈빛으로 조정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광해군 사람들보다 인조 사람들이 더 나을 거라고 여겼을 것이다. 또 그래야 했다. 그러나 이내 기대는 실망으로 바뀐 것 같다. ‘그놈이 그놈’이었나보다. ‘그놈이 그놈’이 아닌 세상을 살고 싶었는데 말이다.
인조 즉위 3년째인 1625년, 여염에 상시가(傷時歌)가 떠돌았다. 상시가란, ‘그릇된 시대상을 마음 아파하는 노래’이다.

아, 너희 훈신들아, 스스로 뽐내지 마라.
그들의 집에 살면서, 그들의 땅을 차지하고
그들의 말을 타며, 또 그들의 일을 행하니
너희와 그들이 다를 게 뭐 있나?

상시가를 통해 백성들이 인조 정권에 물었다. 뭔가 대단한 걸 할 것처럼 반정 일으켜 들어선 정권아, 너희와 광해군 때 그들과 뭐가 다른 거냐?

-68쪽, 정묘호란 〈백성의 사늘한 눈빛〉


김자점은 반정 참여를 계기로 인조 조정에서 권력을 휘두르며 호사를 누렸다. 인조의 총애를 받고 영의정까지 올랐다. 그러다 인조가 죽고 효종이 즉위하면서 날개가 꺾이고 귀양 갔다. 유배지에서 김자점은 어떤 짓을 했을까.
청나라에 몰래 연락했다. “저기요, 새 임금이 청나라를 치려고 해요. 청나라 연호도 안 쓰고 있어요.” 일러바쳤다. 그래서 나라에 큰 소동을 일으켰다. 다시 말하는데, 그는 몇 년 전 병자호란 때 청군과 싸우는 조선군 총사령관이었다.
노비 송해수, 이국화 등은 자결로써 청에 저항했다. 평생 따듯한 손길 한번 주지 않던 나라 조선. 그래도 조선은 내 나라였다. 정명수의 나라는 청나라였다. 그러면 김자점의 나라는 어디일까?

-177~178쪽, 병자호란 〈송해수·정명수·김자점〉


강화성을 장악한 노왕(도르곤)은 “군병을 단속하여 살육을 못 하게 하였으며, 제진(諸陣)으로 하여금 사로잡힌 사녀(士女)를 되돌려 보내도록” 했다. 그런데 그가 강화를 떠나자마자 몽골병이 난을 일으켰다.
난을 일으켰다는 것은, 무슨 반란의 개념이라기보다는 소란이나 항의 시위 정도의 의미에 가깝다. 약탈하지 말라는 청군 지휘부의 명을 거부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가정해 보자면, 전투 참여에 대한 대가로 강화에서의 약탈권을 요구했을 수 있다.
몽골병들은 강화도 전역을 누볐다. 저 멀리 마니산까지 가서 약탈, 납치, 방화, 살인, 겁탈을 마구 해댔다. 당시에는 마니산이 강화 본섬과 떨어진 별도의 섬, 고가도였다. 물이 빠진 뒤에는 걸어서 들어갈 수 있었을지 모르나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그곳까지 기어이 간 몽골병, 참으로 지독했다.
끌려가는 사람들과 말, 소가 길을 가득 메웠다. 끌려감을 면한 노인들은 알몸이 되었다. 그 추위에 옷을 빼앗긴 것이다. “다니는 길마다 눈 속에 버려진 어린아이들이 가득했으며, 죽은 아이는 서로 베고 누워 있고, 산 아이는 기어 다니며 혹은 죽은 어미의 젖을 빨기도 하고, 혹은 어미를 부르고 할아버지를 부르며 구르다 다시 쓰러지니,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강화도는 생지옥이었다.
-181~182쪽, 병자호란 〈청군의 만행〉

힘겹게 쓴 항복문서를 김상헌이 북북 찢어 버렸다. 얼마나 화가 날 일인가. 문서가 찢어지듯 자신의 가슴도 찢어졌을 것이다. 최명길은 찢긴 문서 조각을 주섬주섬 주웠다. 호란이 끝난 어느 날 최명길이 인조에게 말했다.

“그 글 속에 실정에서 벗어난 말이 없지 않아서 김상헌이 보고서 통곡하고 찢어 버리면서, ‘나를 죽여라.’ 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신은 웃으면서 답하기를, ‘말뜻인즉 옳다. 그렇지만 이 글을 버릴 수는 없으니 응당 고쳐 써서 보내겠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상황에서 어찌 웃으며 말할 수 있었을까. 최명길 신도비명에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나온다. 최명길이 김상헌에게 말했다. “문서를 찢는 사람이 없어선 안 됩니다. 그리고 찢긴 문서 조각을 주워 맞추는 사람도 마땅히 있어야 합니다.”
조정에 자신처럼 항복문서를 쓰는 사람이 있으면, 그걸 찢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최명길의 말속에 묵직한 가르침이 있다. 항복을 말한 최명길도, 끝까지 싸우자는 김상헌도 목적은 같았다. 나라를 위한 마음이었다. 자신의 부귀영화를 따진 선택이 아니었다.

-216쪽, 병자호란 〈1637년, 남한산성 일기〉

광해군을 폐하고 왕이 된 인조는 즉위 초에 “금수(禽獸, 짐승)의 땅이 다시 사람의 세상이 되었으니, 뭐라 형언할 수 없다.”라며 감격했었다. 그 ‘사람의 세상’이 인조에게 참으로 고단하였다.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신하의 반란으로, 외적의 침략으로 세 번이나 피란 짐을 싸야 했다. 어디 임금만 고단했으랴. 백성들의 피눈물이 넘쳐나는 세상이었다. 호란의 시대, 실로 아팠다.

-257쪽, 떠나간 이들과 이 땅에 남은 것 〈실록과 역사〉

저자소개

이경수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

대표작으로 『오군, 오군, 사아이거호』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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