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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여성적 주체의 표현으로서 오랫동안 효과적으로 쓰여왔다. 하카족客家族의 음악은 특히 하카 여성들의 목소리를 잘 드러내어 주목받았으나, 가부장제와 여성 노동 아래 고통받는 여성들을 재현하는 데 그친다는 한계가 있다. 현대 대만의 싱어송라이터 뤄쓰룽羅思容은 하카 음악을 현대적으로 갱신하여 하카 음악의 다양한 여성성을 모색하고, 비판적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여성 예술가의 ‘사유하는 목소리’를 드러낸다. 이 책은 소수민족/여성이라는 소수집단의 전형성과 고정된 젠더 정체성을 전복하고 여성성을 재구성하는 현대 하카 음악을 대만의 근대화와 대중문화의 맥락 속에서 살펴본다.

노래, 하카 여성의 목소리
하카는 중국 중부에서 모여 살던 민족 가운데 하나로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로 그 분포가 확장되었다가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살고 있다. 저자는 하카족의 소수민족성이나 민족적, 지리적 특성을 크게 부각하지 않고 하카의 ‘비소속성’을 연구의 전제로 분명히 하지만, 그럼에도 하카 여성이 지닌 일반적 특징은 비교적 명확하다. 이들은 유교적 가부장제 이념의 지배를 받는 사회에서 하층 농업 노동계급이었으며 순종적이고 희생을 감내하는 이미지로 표상된다. 대체로 문맹인 이들의 노래는 역사적, 실존적 질곡을 잘 보여주어 주목을 받아왔다.
현대 대만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 하카 정체성은 주로 토속성, 전통 등으로 소환되었고 하카 여성성 역시 과거의 틀 안에서 재현되는 데 그쳤다. 대만의 인류학자ㆍ음악학자인 저자 뤄아이메이羅愛湄는 하카 여성 예술가이자 싱어송라이터인 뤄쓰룽의 예술 세계와 음악 분석을 통해 하카 여성성을 전복적으로 재구성해낸다.

현대 대만 대중문화와 뤄쓰룽의 새로운 하카 음악
뤄쓰룽은 2000년대 대만 음악계 데뷔 당시부터 그 모호함과 정형화되지 않은 음악적 특징으로 평론가들과 감상자들을 혼란에 빠트렸다. 하카 언어(뤄쓰룽의 모어)와 자유로운 리듬, 반음계 멜로디, 흥얼거리는 목소리가 특징이며, 기타와 하모니카처럼 블루스와 재즈에서 흔히 쓰이는 악기와 하카 코코넛 피들 같은 민속 악기도 반주에 사용된다. 이러한 특징은 ‘세계음악world music’ 혹은 ‘월드 비트world beat’에서 흔히 나타나는,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뒤섞는 통합적 스타일을 보여주어 점차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뤄쓰룽의 음악적 전략은 하카 음악의 요소를 차용하되(하카어와 민요의 일종인 하카 산거山歌의 사용 등), 그 전형성을 비틀고 다른 요소들을 가져와 섞음으로써(블루스와 재즈, 그 외 3세계 음악) 하카 음악의 여성성에 내재한 가부장 이데올로기를 전복한다. 또한 현대 대만을 살아가는 여성이 처한 삶의 조건을 노래의 소재로 삼아 그들의 자유로운 선택과 의지를 노래에 구현하는 등 (하카) 여성의 ‘낯설게 하기,’ 민족적 본질에서 벗어나 정체성을 새롭게 재현하려는 ‘전략적 반본질주의,’ 여성의 비판적인 ‘사유하는 목소리’ 등의 예술적 전략을 사용한다.

뤄쓰룽, 하카/여성성을 전복하다
저자는 뤄쓰룽의 음악은 물론이고 시, 회화와 일기, 인터뷰 등을 통해 이러한 여성주의적 전략의 심층을 분석하면서, 여성적 주체에 관한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한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초상화 전략portraiture strategy’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초상화 전략이란 이미지, 언어, 소리를 매개로 여성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뤄쓰룽의 모든 예술을 관통하는 주요 주제이며 새로운 하카 여성성을 확립하는 방식을 들여다보는 돋보기 역할을 한다.
뤄쓰룽은 현대 대만의 하카 여성을 여성의 보편적 삶의 조건으로 확장하거나 여전히 전통에 갇혀 있는 하카 여성성을 현대적 맥락에 맞닿도록 끌어낸다. 이로써 집단적이고 초超민족적인 관점에서 대만 하카 여성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한편으로, 여성의 공통적 경험을 부각해 민족적 상징으로 억압된 하카 여성성이 보편적 여성성과 만나도록 새롭게 재구성된다. 이 책은 소수민족/여성이라는 소수집단의 전형성과 고정된 젠더 정체성을 전복하고 보편적인 여성주의 관점에서 문화적 산물을 새롭게 살펴본다.

감사의 말
들어가며
모호하고 흥미로운 목소리
하카 여성성의 재현과 전복

1장 하카에게 젠더는 왜 중요한가
하카는 누구인가
하카 여성은 중국 여성과 어떻게 다른가
대만 대중문화의 하카 여성 재현
노래, 하카 여성의 목소리

2장 뤄쓰룽, 하카 여성성을 다시 생각하다
변화하는 맥락에서 하카 여성 되기
하카 여성성의 미학화, 초상화 전략

3장 뤄쓰룽의 음악적 초상화 전략
산거, 전략적 반본질주의의 표현
노래 가사로 여성 주체를 묘사하다

마치며
주
참고자료
부록 | 뤄쓰룽 음반의 가사/시 해설

그녀의 노래가 음악적 통합과 일명 “초상화 전략”을 통해 하카 여성의 정형화된 이미지를 벗어나 그들을 위한 “새로운 얼굴들”을 만들어냈으며 다양하고 섬세한 여성적 주체들을 창조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이를 통해 그녀의 노래는 가부장 사회의 시선으로부터 하카 여성의 이미지를 해방시키려 한다. (중략) 뤄쓰룽의 음악은 민족문화에 의해 정형화되고 강요된 하카 여성의 자기 인식에 반론을 제기하고, 하카 여성성을 가변적이고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과정으로 전환시킨다. _「들어가며」 21쪽

하카는 전통적으로 여성 다수가 문맹인 민족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여성의 직접적 시각이 반영된 문자 기록이 매우 적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하카 여성 음악은 그들의 표현 수단이자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원천으로서 매우 특별하고 주목받아 마땅하다. (중략) 하카 여성들은 감정을 분출하는 노래를 부르고 또 부름으로써 자신들에게 가해진 통제와 제약에 순응했다. (중략) 하카 여성의 음악적 표현의 자유는 제한적이었으며, 의식적인 젠더 비평의 조짐이 없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20세기
의 사회ㆍ문화적 변화와 더불어 하카 여성은 음악과 자기 인식에서 역량을 키울 수 있었을까?
_「1장 하카에게 젠더는 왜 중요한가」 36ㆍ38~39쪽

뤄쓰룽에게 회화, 시, 음악 형태의 예술적 창조 행위는 하카 여성성에 대한 정의를 탐색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이들은 이미지, 언어, 음향이라는 각기 다른 표현 매체에 의존해 제시되지만, 하카 여성성의 미학화에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상호 관련성이 매우 높으며 서로 참조할 만하다. 이 수단들이 만나는 지점은 여성의 주체성을 추구하거나 탐색하는 접근 방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시각을 구현하는 이 접근 방식을 초상화 전략이라 부를 수 있다. _「2장 뤄쓰룽, 하카 여성성을 다시 생각하다」 58쪽

3집 앨범 《모어 댄 원》에서 뤄쓰룽은 다양한 민족적 배경을 지닌 현대 대만 여성 시인들의 시를 수집해서 엮었다. 여기에는 희생, 갈망, 평온, 호기심을 비롯해 여성의 자아와 관련된 다양한 측면이 담겨 있다. 이러한 내러티브는 여성의 경험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는 면에서 여성적 글쓰기의 요구를 닮아 있으며, 광범위하고 집단적이고 초超민족적인 관점에서 대만 하카 여성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이 비전은 한편으로는 하카 여성을 정의함에 있어 자기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의 경험에 담긴 문화적 공통성을 통해 하카 여성을 정의하고 절대적인 민족적 구분에서 멀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하카 여성들에 관한 이해가 다른 대만 여성들에 관한 이해와 맞닿도록 한다.
_「3장 뤄쓰룽의 음악적 초상화 전략」 87쪽

주체를 강조하는 관점은 뤄쓰룽이 두 가지 항목, 즉 하카 여성에 관한 이미지와 음악 활동에 반기를 들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은 하카 사회의 가부장적 견해와 대만의 주류 관점에 의해 이전까지 거의 고정된 이미지로 굳어 있었다. 뤄쓰룽의 음악적 표현은 조지 립시츠의 “전략적 반본질주의” 개념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뤄쓰룽이 하카 민요와 서양 블루스를 창의적으로 “오용misuse”해 자신만의 통합적인 스타일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이 독특한 사운드는 하카 음악을 현대적이고 다민족적인 방식으로 포장함으로써 그녀의 하카 여성성을 위장한다. 더욱이 이 새로운 스타일은 기존의 사회적 이념이나 문화적 패턴보다는 주체의 감정과 경험을 강조한다. 이것은 하카 여성들이 일상으로 돌아가 자신들, 혹은 자신들과 관련된 것들의 다양한 의미를 재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다. _「마치며」 9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