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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민 작가의 자전소설 『도깨비와 횃불』이 출간되었다. 저자의 어린 시절인 일제강점기부터 더듬어간 기억은 한국전쟁까지 이어져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사용할 수 없었던 일제강점기, 억울하고 힘든 기억, 가족 간의 일상에서 행복하고 즐거웠던 기억, 해방의 기쁨, 철마다 했던 자연 속에서의 친구들과의 놀이, 토끼와 닭을 기르면서 했던 한문 공부와 초등학교 공부, 산 너머 다니던 중학교...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생생한 그때의 기억들을 이춘민 작가는 한 장, 한 장 저자의 자전 소설인 『도깨비와 횃불』에 곱게 새겨 놓았다.

유관순 누나가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던 시절은 사실 그리 먼 옛날이 아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그 시대를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아직 있는 한은 말이다.

우리네 어르신들의 삶은 너나없이 한 편의 소설이다. 누구나 살아오면서 한 번쯤은 유년기의 기억을 더듬어 책으로 남겨보고 싶은 마음을 가져봄 직하다. 하지만 막상 이를 행하기는 꽤나 힘든 일이다. 엄두가 나지 않기도 하고 깊숙이 들어있는 기억을 꺼내기가 어렵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춘민 작가는 아내의 격려로 깊숙이 들어있는 그 기억을 꺼내는 힘든 작업을 감행했다.

이춘민 작가는 이번 자전소설을 집필하면서 울기도 많이 했다고 밝혔다. 그 눈물은 지난 세월에 대한 서러움의 차가운 눈물이라기보다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는 유년기의 따뜻하고 행복한 기억에 대한 따뜻한 눈물이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해방, 한국전쟁... 힘들기만 했을 거라고 생각되는 격동의 현대사 한가운데에서도 행복한 유년기를 보낸 저자의 글을 읽노라면 후편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의 후편을 기대한다.

제1부 일제강점기 시대 편
제2부 1945년 8월 15일 해방 후 편
제3부 6.25 전쟁 편

전 가족들은 잠자리에 들었는데 디딜방아 찧는 소리가 쿵닥쿵닥 하며 요란스럽게 소리가 나고 마루에 놓아 둔 다듬잇돌 두드리는 소리가 무서워서 나가 보지도 못하는데 아버지는 도깨비들이 장난친다며 다듬이질 소리가 너무 요란해서 잠을 잘 수 없다 하시면서 밖에 나가 몽둥이로 때리고 그것을 나무 기둥에 꽁꽁 묶어놓았는데 아침에 나가 보니 빗자루를 꽁꽁 묶어놓은 것이다. 이런 도깨비가 사람을 놀리기도 하고 짓궂은 장난을 치는데 아기가 울 때 ‘도깨비 온다’ 하면 울음을 딱 그치기도 했다고 한다.
나는 아침에 동네 친구들을 만나 보니 저녁에 도깨비에 홀려 따라가다 돌아오기도 했고 어느 집은 꽹과리 치며 노는 소리가 났다고 한다. 이렇게 도깨비들의 장난에 놀아난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도깨비와 도깨비불’ 중에서-

나는 오늘도 평시와 같이 아침 식사 후 닭장 문을 열고 닭 모이를 주고, 토끼도 먹이를 주고, 꼴망태 둘러메고 소 풀 베러 갔다. 소 풀을 베어가지고 집에 돌아왔는데 아버지께서 “8월 15일날 해방되었다”고 말씀하신다. (중략)
우리 동네는 산골짜기라 해방 후 하루 이틀 지나서 알게 되어 동네 사람들이 늦게나마 태극기를 꺼내서 대문 옆에 높이 달아 올리고 느티나무 아래 모여서 “독립 만세”를 외치며 남녀노소 없이 얼굴에 웃음꽃이 피고 기뻐하는 모습을 매일 볼 수 있었다.
아버지는 해방되어 딴 세상이 되었으니 앞으로 조선 시대에서 실시하던 과거 제도가 재개될 것으로 생각하고 한문 공부를 하라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옛날 시절만 생각하시고 한문 공부를 고집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찌 됐든 안터 아저씨를 모시고 『명심보감』을 배우기로 했다. 큰형님이 배우던 『명심보감』 책을 꺼내 놓고 내일부터 배우기로 하였다.
오늘은 무더위라 동네 친구들과 시냇물에 가서 물장구치고 수영 연습도 하고 신나게 놀다가 시냇가 버드나무 꺾어서 버들피리 만들어 불며 이 논둑 저 논둑에서 메뚜기 잡는 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해방은 기쁨의 삶이다’ 중에서-

우리 집 매형도 군에 입대했다. 동네 청년들도 군에 가고 인민군은 계속 내려오고 있고 너무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느 날은 우리 동네 우리 집 앞 밭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우리 집 가족은 무서워서 뒤에 파놓은 방공호에 들어가 숨고 있는데 총소리가 딱콩딱콩 하고, 따발총 소리는 요란하다. 이렇게 싸우는 소리만 들린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정보가 늦어서 피난도 못 가고 그대로 집에 있었다.
그런데 동네 청소년들은 북한 의용군으로 많이 끌려갔다. 우리 집 작은형도 의용군으로 가서 어머니는 통곡하고 집안의 분위기는 싸늘하고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니었다.
어머니는 날마다 청수를 부뚜막에 떠놓고 빌고 있었다. 하루는 부뚜막에 떠 놓은 청수 그릇이 빌고 있는 중에 깨져서 무슨 변고가 있나 싶어 정성 들이는 것을 포기했다고 한다.
-‘북한 인민군 남침’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