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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문고에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

서점이 단순히 책을 사는 곳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소통 창구가 된 시대, 작은 서점 삼일문고에서 일 년 동안 글쓰기 모임을 이끌어 온 임수현 시인이 회원들의 글을 모았다. ‘치유를 위한 글쓰기’부터 ‘시 읽는 밤’, ‘청소년 디딤돌 글쓰기’, ‘기억을 기록하는 독서회’ 등 다양한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이 남긴 개인의 기록이 책으로 엮여 독자를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진보할 거니까

삼일문고에서 한 해 동안 있었던 여러 모임의 글이 모여서 책으로 출간되었다. 글을 쓰고 싶다는 공통점으로 함께 보낸 시간은 또 다른 흔적으로 남았다. 서점이 사람과 사람을 잇는 소통 창구 역할을 하길 원했던 김기중 삼일문고 대표는 시간이 지난 후에도 되돌아볼 수 있도록 글을 남길 수 있는 글쓰기 모임을 기획하였다.

삼일문고 상주작가 임수현 시인을 주축으로 시작된 글쓰기 모임은 다양한 사람들의 특성을 고려해 나뉘었다. 치유를 위한 글쓰기를 위해 모여서는 우리를 울게 하는 모든 것에 대해 서로의 글을 듣고 위로를 나누었다. 시 읽는 밤에서는 같은 시를 읽고 다른 생각을 나누며 시를 썼다. 청소년 디딤돌 글쓰기와 기억을 기록하는 독서회에서도 책을 읽고 직접 글을 쓰는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하나둘 쓴 글이 쌓이자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었다. 다양한 삶의 모양만큼이나 다양한 글이었다. 임수현 시인은 모임에 참여한 이들의 이름이나 직업, 가족관계 등을 질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누구인지 글로 보여주고 서로 글로 알아가면 된다고. 실제로 사람들은 글에 무슨 일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솔직히 드러냈다.

자신의 글을 담담하게 읽어 내려가다 어느 순간 목이 멘다. 한 사람이 울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공감으로 서로를 위로한다. 시인은 이런 글쓰기 시간을 좋아한다. 우리 모두 같은 마음이니까, 그 마음 아니까 잠시 같이 울어주는 그 순간을. 슬프고 외롭고 쓸쓸한 삶, 그 슬픔을 글로 써내며 자랑이 되게 한다. 그 순간 우리는 조금 앞으로 나아간다. 작은 용기로 더 괜찮은 사람이 된다.

서로의 안녕을 묻고 서점과 책에 대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던 삼일서점의 소규모 모임은 이미 서점을 단순히 책을 사는 곳이 아니게 만들었다. 서로 마주하기 힘든 시기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사람을 찾는다. 함께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고, 다른 점을 알아 나가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우리의 모든 이야기는 우리가 쓰게 되는 것이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혹은 글쓰기를 시도해 볼 엄두가 안 나는 사람에게 이 책은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생각하지 말고 그냥 손이 가자는 곳으로 따라가 보라고. 사람들은 개인적인 경험을 쓴 글로 소통하고 공감하면서 도리어 타인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진다. 동네 작은 서점의 문을 한번 두드려 보라. 글쓰기가 주는 내면의 단단한 힘을 느낄 기회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를 울게 하는 모든 것 - 치유를 위한 글쓰기
(2021년 4월~2021년 10월 격주 수업)

시가 우리를 찾아 왔을 때 - 시 읽는 밤
(2021년 4월~2021년 10월 격주 화요일)

희망을 보았다면 너희들이겠지 - 청소년 디딤돌 글쓰기
(2021년4월~2021년 10월 매월 셋째 토요일)

기억을 기록하는 책 읽기 - 기억을 기록하는 독서회
(2021년 4월~2021년 10월 매월 넷째 금요일)

[머리말]

첫 시간 왜 글쓰기 강좌에 오시게 되었는지 돌아가며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앞만 보고 살다 보니 자신이 점점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래서 뭔가 기록하고 싶다고. 저는 그 마음이 뭔지 알 것 같아요. 그래서 간혹 이분들께 재미있는 수업이 되지 못할까 걱정하기도 하고 내가 한 말이 맞을까? 의심도 많이 합니다. 재미있는 건 글쓰기를 해 보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일을 하는지가 드러나는데요. 돌아가며 자신이 쓴 글을 읽어야 한다고 하면 모두 처음엔 놀라는 눈치입니다. ‘읽는다고?’ 가운데는 “선생님,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죠. 제가 먼저 읽을게요.” 나서 주는 분이 있으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으면 나와 가까운 곳에 앉은 분부터 돌아가며 읽도록 하죠. 처음 시작은 다들 겸손하셔요. 처음 써 봐서 두서가 없다, 쓰다 보니 무슨 말을 썼는지 잘 모르겠다 등. 나는 그런 말에 “맞아요. 글쓰기는 원래 그런 거예요.”라고, 조금 마음이 풀어지면 한 사람씩 읽습니다. 담담하게 읽다가 어느 순간에 정적, 목소리가 목을 꽉 메우고 있어 어떤 소리도 나올 거 같지 않습니다. 웁니다. 한 사람이 울면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죠. 누군가는 얼른 달려가 티슈를 찾아오거나 누군가는 가방에서 티슈를 꺼내 옆 사람에 건넵니다. 나는 이런 글쓰기 시간이 좋아요.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제가 눈물이 별로 없는 사람인데 말이죠. 웬일이래요.” 눈가에 맺히는 눈물이 결국엔 뺨을 타고 흘러내려요. 우리 모두 같은 마음이니까 그 마음 아니까. 잠시 같이 울어줍니다.
나는 그게 나를 위한 치유적 글쓰기의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삶에서 타인을 완벽한 이해도 위로도 해줄 수 없지요. 다만 공감해줄 수 있지 않을까요? 진짜 위로는 우는 사람 곁에 함께 울어주는 사람이라 하지 않던가요. 나는 이 수업이 그래서 좋습니다. 내가 위로받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불행이 나를 향해 기다렸다는 듯 달려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해 공평하게 온다는 변함없는 사실. 삶이란 원래 슬프고 외롭고 쓸쓸하다는 걸 알려주고 가거든요. 그러나 슬픔도 자랑이 되는 순간, 우리는 모두 괜찮아질 수 있습니다. 조금 용기만 내면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어요. 나는 이것이 이 글쓰기의 목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 그러니 여러분, 지금부터 10분 동안 손을 움직이세요. 생각하지 말고 그냥 손이 가자는 곳으로
따라가 보세요. 오늘도 우리는 조금 앞으로 나아갈 거니까요

임수현
삼일문고 상주작가


[책 속으로]

그 날, 사자가 죽었다. 동물원에서 지내던 사자가 죽었다는 소식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죽은 사자의 이야기가 아무렇지 않게 느껴진다는 뜻은 아니다. 동물원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자에게도 어떤 식으로든 삶의 굴곡이 있었을 것이다. 사람의 손에 이끌려 부모, 형제, 고향을 떠나온 사자일 수도 있고, 한국에서 태어나 아프리카 대륙 따윈 밟아본 적 없는 교포 2세 사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한때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던 자기의 모습을 기억하며 저세상에 갔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뉴스에 나온 OO 동물원 사자의 죽음을 접하면 그냥 끄덕끄덕만 한다. 그 날 사자(死者)가 된 사자를 생각하면 나는 더 이상 깊이 슬퍼할 수가 없다. 나는 그럴 수밖에 없다.

-p. 17, 1부, ‘사자 이야기-서찬양’ 중에서


그렇게 나는 돌고 돌아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내게 특별히 나무라는 말도 위로의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된장찌개에 고등어구이 살을 발라 고봉밥 위에 올려주었다. 그리고 내가 밥을 다 먹는 동안 식탁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가만 바라보기만 했다. “천천히 먹어!” 엄마는 내 앞으로 물컵을 슬몃 밀어주었다. 그때 나는 아주 먼 곳을 돌아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시텔 방 안에서 먹던 컵라면이나 편의점 김밥이 아니라 집밥을, 진짜 밥을 먹었다. 먹고 나면 이유 없이 더부룩하던 그런 음식이 아니고 몸과 마음을 데워주는 밥을 그런 저녁을 먹었다. 뜨거운 것이 목구멍 가득 몰려 왔지만 끝내 눈물을 밀어내지는 않았다. 그러면 나의 실패가 너무도 자명해질 것 같았다. 엄마 앞에서 그 모습까지는 보이고 싶지 않았다.

-p. 76~77, 1부, ‘집으로 가는 먼 길-임혜미’ 중에서


모르는 사실이지만
커피가 입맛에 안 맞아요
삼나무책상과 오동나무책상 사이에서 서성이다가
손가락에 힘을 빼고 주먹을 쥐어보았어요

매번 높낮이가 다른 향기가
검지손가락 흉을 보고 있어요.

손가락으로 글을 써야 한다고 배웠어요.
머리카락에 힘이 들어가면
커피로 씻어 내면 된다고 누가 그랬어요.

분칠되어지면 흩어지나요?
흘러가다가 막히면 다 나 때문인가요?
매번 쓰고 싶어져요
쓰다보면 떠나지 않고 문을 박아요
시멘트 바닥을 행갈이하고
화장실문을 마음으로 닦아내면
고양이에게 밥을 주면 되나요?

내일이에요
속상해요.

-p. 123~124, 2부, ‘열심히 살다가 열심히 만나요-박예희’ 중에서


정희에게 모래알만 한 위로라도 된 건지 모르겠다. 나는 오히려 더 미안해졌다. 하지만 때를 기다렸다고 한들 이것보다 더 안 미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곁의 사람들도 불편한 시간을 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통 속의 옆 사람을 바라보는 내가 불편한 것, 그가 정상이 아닌 모습으로 나를 신경 쓰이게 하는 것, 그 시간을 함께 견뎌주는 것도 옆의 도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엄마는 그 고통에 물을 붓고 흔들어서 빨리 희석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당사자도 지켜보는 사람도, 빨리 벗어나서 평범한 상태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장단점이 50 대 50인 선택지 같다. 그런 문제에 있어선 어떤 선택도 절반의 후회를 남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엄마를 이상하게 보지 않기로 했다. 나와 다른 50의 사람들 역시 그저 조금이라도 덜 미안하려고 연극인 듯, 예의인 듯 살아가는 거니까.

-p. 190, 4부, ‘감정을 담을 그릇-류효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