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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수필집 《스며들다》에는 임덕기 작가의 인생사와 경험 그리고 그녀만의 날카로운 시선이 곳곳에 촘촘하게 스며들어 있다.
작가는 두 해 전 느닷없이 들이닥친 불청객 ‘코로나’로 무수한 날을 유폐된 공간에서 머무르며 소통 부재의 답답함을 느꼈지만 베란다에서 자라는 반려식물을 보며 힘을 얻었다고 한다. 소소한 일상을 따스한 문장으로 꽃 피워낸 작가의 이번 책을 통해 독자들 또한 지친 마음을 쉬게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작가의말｜… 4

1부 조약돌
쑥 내음 퍼지는 강변 … 12
조약돌 … 17
인생지도 … 22
꽃이 피는 조건 … 26
조리풀에 대한 기억 … 31
날개 … 36
몽당숟가락 … 41
멘토, 그 위대한 힘 … 46
길이 사라지다 … 51

2부 스며들다
봉숭아 … 58
스며들다 … 63
조감도(鳥瞰圖)를 그리다 … 68
큰물이 지나간 뒤에 … 73
대나무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 … 78
유유자적 살아가기 … 83
도자기 … 88
굽은 자작나무 … 93
미륵사지 석탑과 시멘트 … 97

3부 소중한 가족
소울푸드 … 104
소중한 가족 … 109
왕십리 … 114
시골집 … 119
공생(共生) … 124
초록별 … 129
떨켜 … 133
안성댁 … 138
떠나간 자개농 … 142
흔적 … 147

4부 골목길 풍경
자우룩하다 … 154
뒷배 … 156
골목길 풍경 … 161
주문진 축강에서 … 166
허들링(Huddling) … 171
기억을 더듬다 … 177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 182
뿌리를 찾아서 … 187
시간을 초기화하다 … 192
태풍이 지나간 자리 … 197

5부 유폐된 시간
유폐된 시간 … 204
감성의 텃밭 … 207
배냇저고리 … 214
아버지의 눈물 … 218
해당화가 핀 인구바닷가 … 225
낡은 훈장 … 229
수빙(樹氷) … 234
유튜브 바다 … 238
알을 깨고 나오는 일 … 243
회귀본능 … 247

인간이 아무리 고상하게 외피를 입어도 그 근본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생존과 종족 번식이 근간을 이루는 동물과 같다고 생각한다. 철학과 예술은 인간정신을 고양시키는 것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인간의 상처를 치유하거나 조력자가 되어줄 뿐이다. 근간이 되지는 못한다. 야성과 거친 인간의 본성을 잘 다독이며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속전속결로 이루어지는 젊은 남녀의 사랑도 위태로워 보인다. 천천히 마음이 번지고 스며드는 아날로그적인 생각이 가끔 그립다.
-〈스며들다〉 중에서

예전에 시골 동네에는 늙은 느티나무가 한 그루씩 있었다.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같은 나무다. 당산나무로 오랫동안 마을 주민들과 함께 산다. 늘 변함없이 같은 자리에 서 있어 무심해 보이지만 주민들은 도타운 정을 느낀다. 자주 이사를 다니면 인생지도에 복잡한 선이 남는다. 다양한 사건과 잊지 못할 일들이 인생의 훈장처럼 쌓여간다. 하지만 당산나무처럼 묵은 정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인연을 만날 기회는 적으리라.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약간의 언덕이 있길래 ‘저 동네 사는 사람들은 힘들겠다.’ 싶었는데, 어느 날 보니 내가 그 동네에서 살고 있는 게 아닌가. 무의식 속에 그 동네가 각인되어서일까.
어쩜 인생지도는 누군가의 큰 그림 속에 이미 그려져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운명도 그렇지 않을까.
-〈인생지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