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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은밀한 취향 : 왕과 왕비의 사적인 취미와 오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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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고양이 집사, 그림 컬렉터, 소설 탐독가, 판소리 후원자,
화초 수집가, 도자기 애호가, 사냥 덕후, 메모광, 당구왕!

출판사 서평

우리가 몰랐던 조선의 왕과 왕비,
왕실 가족들의 취미와 오락
“사냥 덕후 태종, 그림 컬렉터 숙종, 당구를 즐겼던 고종과 순종, 고양이 집사 숙명공주……”

우리는 조선의 왕실이라고 하면 치열한 궁중 암투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조선의 왕이나 왕비 등도 각자의 취향이 있었고 거기에 마음을 쏟았다. 그들은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서 사랑스럽고 어여쁜 것에 마음을 기울였고, 좋아하는 것을 즐기고 누렸다. 또 자신의 취향을 마음껏 드러내거나 가끔은 그 정도가 지나쳐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조선은 성리학적 유교 이념을 바탕으로 세워진 국가였다. 임금은 모름지기 학문을 숭상하고 성왕(聖王)과 맹자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하늘을 공경하고 덕을 닦아 백성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즉, 왕도정치를 수행해 백성들의 안위에 몰두해야 하는 왕이 어떤 특정한 대상에 깊이 빠져 국정에 소홀해지는 것을 매우 경계했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취미 생활도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일거수일투족을 신하들의 간섭을 받아야 했다. 혹여라도 정사를 그르칠까 왕과 신하들은 늘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도 사람인지라 고양이 집사, 그림 컬렉터, 소설 탐독가, 판소리 후원자, 화초 수집가, 도자기 애호가, 사냥 덕후, 메모광, 당구왕 등 자신만의 취미와 오락을 통해 즐거움을 찾았다.
원숭이가 얼어 죽을까 걱정해 가죽옷을 지어 주게 한 성종, 진귀한 화초 수집과 화원 조성에 집착했던 연산군, 남성 주인공들의 갈등과 대결을 그린 소설을 탐독한 영빈 이씨, 답답한 속을 순무로 달랬던 정현왕후, 신하들의 시험지를 직접 채점해서 상을 주었던 순조, 분판을 곁에 두고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기록했던 세조 등 이들은 소소한 감정과 욕구에 연연했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취향을 타인과 구분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라고 정의한다. 다시 말해 어떤 행동을 하거나 어떤 물건을 소비함으로써 다른 사람들과 구분 짓고 싶은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의 은밀한 취향』은 우리가 잘 모르고 있던 조선 왕과 왕비 등 왕실 가족의 다양한 면모를 취향이라는 측면에서 새롭게 조명한다. 이 책을 통해 조선 왕과 왕비, 그 왕실 가족들의 취미와 오락 등을 엿볼 수 있다. 숙명공주는 대표적인 애묘가(愛猫家)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숙명공주는 시집간 후에 지나친 고양이 사랑에 대해 시댁 안에서 불만의 소리가 나오자, 효종은 한글 편지를 보내 ‘어찌하여 고양이를 품고 있느냐’며 딸의 철없는 행동에 짧지만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 사소하다고도 할 수 있는 공주의 취미 생활을 두고 친정아버지까지 걱정했던 것이다. 고종과 순종은 창덕궁과 덕수궁에 당구장을 설치해 즐겼을 정도로 당구에 심취해 있었다. 흥선대원군은 19세기 최대의 판소리 후원자였고, 고종은 판소리 명창에게 의관이나 감찰 같은 직계를 주기도 했다.

왕과 왕비가 탐닉한 취미와 오락

태종은 사냥 덕후였다. 말을 달리며 활을 쏘아 동물을 잡는 사냥뿐만 아니라, 훈련된 매를 이용해 꿩이나 토끼 등을 잡는 매사냥도 매우 좋아했다. 한번은 종묘에 제사를 지내러 가는 길에 신하들 몰래 매사냥을 즐기기도 했다. 그리고 수시로 사냥을 나가 노루와 사슴 등을 잡아왔고, 사냥을 하느라 며칠씩 궁궐을 비울 때도 있었다. 태종이 종기 치료를 위해 온천에 다녀오고자 했는데, 온천 치료를 핑계 삼아 사냥을 즐기려 했던 것으로 생각해 신하들이 반대했던 적도 있었다. 사간원과 사헌부의 대간들도 자유분방하게 사냥을 즐기는 태종을 자제시키기 위해 진땀을 흘렸다. 대간들은 사냥하다 부상을 입을까 염려된다는 이유를 대기도 했지만, 사냥터로 정해진 고을에서 임금을 위해 지방관들이 올리는 선물을 백성들이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그 폐해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대간들은 지치지 않고 끈질기게 사냥 중지를 청했지만, 태종은 이에 굴하지 않고 사냥을 계속했다.
숙종은 그림 컬렉터이고, 헌종은 인장 수집가였다. 숙종이 그림을 보고 그에 대한 감상을 글로 남기는 것은 100수 이상이 된다. 그는 은연중에 뛰어난 그림을 알아보는 자신의 식견을 자랑하기도 했다. 숙종은 다양한 주제의 그림들을 섭렵했는데, 산수ㆍ동물ㆍ인물ㆍ풍속ㆍ역사 고사 등 전통 그림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모든 주제를 망라했다. 당시 조선에서 이름난 화가의 작품은 물론이고 중국의 명작까지 그의 감상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헌종이 수집한 인장은 700방이 넘었다. 헌종은 직접 인장을 만들기도 했다. 자신이 수집한 인장의 카탈로그를 편찬하면서 그 제목도 『보소당인존』이라고 붙일 정도였으며, 인장을 보관했던 서랍장인 ‘보소당인존장’을 만들기도 했다. 이 보소당인존장은 헌종의 기쁨이 담긴 보물 상자였을 것이다. 조선의 왕 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인 8세에 왕위에 올랐던 헌종은 고독한 왕실의 삶을 인장에 새기며 달랬던 것이다.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는 소설 탐독가였다. 현재 남아 있는 『고문진보언해』, 『무목왕정충록』, 『손방연의』에는 영빈 이씨의 ‘영빈방’ 인장이 찍혀 있다. 『무목왕정충록』은 남송의 역사를 배경으로 무장 악비의 활약상을 그린 소설이고, 『손방연의』는 진·초·연·한·조·위·제 일곱 나라가 세력 다툼을 벌이는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제나라 손빈과 위나라 방연의 전략 대결을 그린 소설이다. 여기에서 영빈 이씨가 여성 취향의 말랑말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남성 주인공들의 갈등과 대결을 그린 소설에 관심을 보였다는 점이 상당히 흥미롭다. 반면 정조는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거니와 숙직 중에 소설을 읽었다는 이유로 관리들을 파직하기까지 했다.
고종과 순종은 당구 애호가였다.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과 순종은 당구를 즐겼을 뿐만 아니라 창덕궁과 덕수궁에 당구장을 마련할 정도로 당구에 심취해 있었다. 고종은 아침에는 11시까지 함녕전 침실에서 취침하고 새벽 2~3시까지 침실에 들지 않은 채 덕수궁 덕홍전에 설비해놓은 당구장에 가서 공을 치는 데 재미를 붙였다. 또 순종은 월요일과 목요일을 당구 치는 날로 정했는데, 정해진 날짜 이외에도 당구장에 빈번하게 가서 당구를 즐겼다. 또한 순종은 외국인 당구 선수가 경성(京城)에 오면 반드시 한 번씩은 만나보았을 정도로 당구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순종 계비 순정효황후도 나인들을 대동해 당구로 시간을 보냈을 정도로 황실에서 당구는 남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취향의 천국, 조선의 왕실

세종의 누이동생인 정선공주의 남편 남휘는 쌍륙에 빠졌다. 쌍륙은 도박인데, 상대 말을 잡아가면서 내가 가진 모든 말을 상대편보다 빨리 판에서 빼면 이기는 게임이다. 남휘는 부인이 병이 들자 보살피기는커녕 도박 삼매경에 빠졌다. 거기에 공주가 세상을 떠난 지 몇 달 지나지 않았는데도 다른 사람의 첩과 바람을 피웠다. 쌍륙이 얼마나 재미있고 중독성이 있는 놀이였기에 한 나라의 공주를 뒷전으로 미루고 몰두했던 것일까? 송시열은 효종이 자주 희빈(姬嬪)과 여러 공주들로 하여금 쌍륙과 바둑을 즐기게 하고서 놀이 값을 징수해 술과 음식을 푸짐하게 차린다고 지적했고, 정약용은 쌍륙과 장기 놀이는 “돼지를 기르는 종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비판했다.
문종은 앵두나무를 심고 세종은 앵두를 즐겨 먹었는데, 이는 세종의 질병과 관련이 있다. 세종은 춥고 더운 날이라도 밤을 새워 글을 읽을 정도로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나랏일도 열심이어서 굵직굵직한 주요 업적을 이루어냈다. 한마디로 공부벌레이자 일중독자였던 세종은 과중한 업무와 운동 부족, 만성피로와 스트레스로 몸에 병을 줄줄이 달고 살았다. 세종은 오늘날의 당뇨병인 소갈증을 앓았는데, 하루에 마시는 물이 한 동이가 넘었다. 이러한 세종의 증상에 제격인 과일이 바로 앵두다. 갈증은 화와 열을 다스려야 해소가 되는데 앵두가 적격이다. 게다가 피로 해소에도 효과가 있으니, 소갈증 환자였던 세종에게 앵두는 안성맞춤인 과일이었다.
성종 비 정현왕후은 순무를 탕으로 즐겼다. 이 순무는 제갈량이 병사들에게 심게 하여 양식으로 보급했다고 해서 ‘제갈채’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정현왕후는 ‘사화와 반정’의 혼란스러운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를 관통하며 조용하면서도 강단 있게 살아간 왕비다. 정현왕후는 두 번의 사화가 일어났던 연산군대를 무사히 버텨냈다. 또한 중종반정과 작서의 변이 일어나자 범인을 죄주는 정치적 행동을 취하기도 했다. 이 어려운 세월을 버텨내면서 아마도 정현왕후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이고, 이러한 정현왕후에게 제격인 식재료가 바로 순무였다. 순무는 속을 통하게 해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며 기침을 다스리는데도 도움이 된다.
성종의 원숭이 사랑은 아주 각별했다. 한겨울에 원숭이가 추위에 고생하다가 얼어 죽지 않을지 마음이 쓰여 “흙집을 지어주고, 옷을 입히자”고 했다. 그러자 신하들이 “원숭이는 상서롭지 못한 짐승이니, 사람의 옷을 가지고 상서롭지 못한 짐승에게 입힐 수는 없다”고 반대했다. 또 세종은 제주 목사(牧使)가 잡아 길들인 원숭이 여섯 마리를 잘 길러 번식에 힘쓰라고 명했고, 문종도 일본에서 원숭이를 지속적으로 선물하기를 바랐다. 그것은 쥐가 원숭이를 두려워해서 말과 원숭이를 같이 두면 말은 쥐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말의 털 속에 기생하는 해충을 원숭이가 잡아주므로 말은 병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선의 왕 중에서 태조와 세조와 연산군은 유달리 꽃을 아끼고 사랑했다. 이들은 조선의 역사에서 잔혹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왕이다. 세조는 조카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피의 군주 ‘수양대군’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연산군은 꽃 가꾸는 취미와 관련해 가장 많은 기록을 남겼다. 그는 연꽃, 작약, 들국화, 모란, 영산홍, 해바라기 등의 생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을 정도로 꽃 가꾸기에 조예가 깊었다. 신하들에게 모란꽃을 내려주고 시를 짓도록 했고, 격무에 지친 신하들에게 꽃과 술을 선물해 그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취미는 취미의 수준을 넘어 각종 신기하고 품질 좋은 꽃을 수집하거나 “영산홍 1만 그루를 후원에 심으라”고 할 정도로 병적인 집착으로 변질되었다. 이들이 꽃을 사랑했던 이유는 식물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마찬가지로 21세에 요절한 예술 애호가 효명세자는 학과 돌을 사랑했다. 그는 왕세자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서화를 감상하고 시를 창작하는 등 고아한 삶을 영위했다.
성종의 불꽃놀이에 대한 사랑은 남달랐다. 신하들은 화약장(火藥匠)이 죽고 다치는 사고가 벌어지고 화약 소모에 따른 비용 부담과 함께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불꽃놀이를 중지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성종은 불꽃놀이가 군무에 관계되는 중요한 일이라며 신하들의 건의를 수용하지 않았다. 또 정희왕후(세조의 비)와 소혜왕후(인수대비)를 위해 사귀(邪鬼)를 쫓기 위한 것이라는 핑계를 댔다. 그래서 성종 연간에는 연말인 12월 30일에 불꽃놀이가 행해졌다.
영조와 영빈 이씨의 딸이자 사도세자의 친누나인 화협옹주는 화장을 했다. 왕의 딸로서 사대부가에 시집갔던 화협옹주는 조용하고 단정한 성격으로 화려하기보다는 수수한 화장을 즐겼다. 파운데이션, 립스틱, 볼터치, 크림 등으로 인위적인 화장보다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위해 깨끗하고 매끄러운 피부를 만드는 데 중점을 두었다. 특히 화협옹주 묘에서 출토된 ‘청화백자 모란 넝쿨무늬 호’에는 미안수로 추정되는 지하수가 담겨 있었다. 지금의 로션과 같은 기능인 미안수는 피부를 곱고 촉촉하게 정리하는 역할을 한다.
고종은 프랑스의 마리 프랑수아 사디 카르노 대통령이 선물한 도자기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조선의 공업을 발전시키고자 프랑스에 사기 제작 기술을 가진 공장 초빙을 요청하기도 했고,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 초대 공사에게 프랑스 건축가의 고용과 삽화가 들어 있는 프랑스 건축 서적을 요청하기도 했다. 고종은 답례로 프랑스 대통령에게 ‘청자 앵무새 무늬 대접’과 ‘청자 모란 넝쿨무늬 꽃 모양 대접, 왕실 공예품 ‘반화’ 한 쌍을 보냈다. ‘청자 앵무새 무늬 대접’에 새겨진 앵무새 두 마리는 화목을 상징한다. 반화는 금으로 된 가지와 옥으로 된 잎이라는 뜻으로, 임금의 가족을 높여 부르고 귀한 자손을 이르는 뜻이다.

취향에도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

영조는 공신의 초상화를 감상하기 위해 초상화의 존재 여부를 수소문하거나 때로는 독촉해 궁궐 안으로 가져오게 했다. 영조는 옛 공신의 초상화를 보며 그들의 공적(功績)을 치하했다. 특히 영조는 익안대군 영정을 보며, “보고 싶은 마음이 깊어져 날을 꼽으며 기다렸는데 오늘 드디어 보게 되니 그 기쁨이 배가 된다”라고 하며 꽤 잘 그린 솜씨라고 평했다. 초상화에 대한 영조의 관심은 단순히 인물에 대한 개인적인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영조는 공신 초상화를 통해 공신이 지닌 의미를 되새기고 초상화라는 시각적 이미지를 활용해 신하들의 충성심을 이끌어내고자 했던 정치적 의도가 다분히 내포되어 있었다. 즉, 단순한 그림 감상이 아닌 치세(治世)를 위해 신하들에게 충성을 부추긴 정치적 행위였다.
또 영조는 신하들의 활쏘기 실력에 따라 벌주를 내리기도 했다. 활쏘기가 모두 끝난 후 잘 쏜 사람에게는 상으로 활과 화살을 주었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벌주를 주었다. 왕이 참석하는 국가적인 의례인 대사례(大射禮)에서 벌주를 마시게 했다는 것이 다소 이채롭게 보인다. 하지만 대사례가 활쏘기를 통해 신분 질서를 확립하는 한편 왕과 신하의 화합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의식이었던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순조는 현직 관리의 시험인 응제에서 시험지를 채점해 상을 주기도 했다. 순조는 신하들의 시험지 위에 빨간색 점을 찍어 친히 시험 점수를 매겼고, 『맹자』나 『논어』를 부상으로 하사했다.
숙종이 감상한 그림에는 교훈적인 내용의 고사와 역사적으로 추앙받는 충신 등을 주제로 한 그림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그림들은 숙종 자신의 성찰을 위한 거울이 되기도 했으며, 이러한 주제의 그림을 가까이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뚜렷한 정치적 의미를 전달할 수 있었다. 특히 숙종은 역대 국왕의 어진을 그려서 봉안하는 일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이것은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아니라 성리학적 명분론 위에서 조선 창업의 의의를 긍정적으로 재평가하고 창업주인 이성계에 대한 역사적 환기를 통해 태조부터 이어져온 왕권의 정통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고도의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용비어천가』는 태조 이성계가 여덟 마리의 준마가 있었기 때문에 창업의 위업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를 시작으로 태조가 탔던 말을 조선 왕조 건국의 상징으로 이해하는 문법이 만들어졌다. 세종은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안견에게 태조의 여덟 마리 말을 그리게 해서 건국의 자취를 남길 수 있도록 했다. 숙종도 태조의 여덟 마리 말의 모습을 그려 『팔준도첩』을 만들게 했다. 난세를 평정한 국왕의 업적을 강조하기 위해 국왕이 탔던 말을 그리는 일은 이후 세조와 연산군에게 이어졌다. 조선 국왕으로서 정통성이 취약했던 세조와 연산군이 태조의 행적과 권위를 빌려 왕업의 명분을 세우려 했던 것이다. 창업주 태조의 업적을 재평가하고 그의 자취를 기념하는 일은 왕조의 정통성을 세우는 데 중요한 부분이었으며, 창업의 역사를 지키고 계승해나갈 자기 자신의 권위를 강조하는 일이기도 했다.
성종은 좌우명을 중요시했다. 신하들도 성종에게 좋은 말을 자리 곁에 써 붙여두고 보시라고 권하고, 자리 주위에 두어 방에 들고 날 때마다 보시라며 병풍과 걸개를 선물했다. 성종은 옛 사람의 경계하는 말을 병풍에 써서 보았다. 특히 옛 성군의 마음가짐을 담은 유교 경전인 『시경』 빈풍편의 「칠월시」나 『서경』 무일편의 구절이 주 레퍼토리였다. 이들 경전은 통치자가 백성이 생업에 얼마나 고생하는지를 깨달아 나태해지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세조는 “아비와 아들이 그릇을 같이하고 임금과 신하가 그릇을 같이하며 주인과 종이 그릇을 같이하는 것이니, 명분이 어디에 있으며 야인(野人)들과 무엇이 다르겠느냐”며 꾸짖었다. 다시 말해 세조는 그릇을 통해 위계를 세웠던 것이다.
사도세자는 생모인 영빈 이씨와 마찬가지로 소설 탐독가였다. 그런데 사도세자에게 소설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사도세자가 편찬한 소설 삽화집 『중국소설회모본』에는 책의 맨 앞에 그가 직접 쓴 서문 두 편이 있다. 여기에서 사도세자가 나열한 93종의 책 중 소설은 74종에 이른다. 특히 그는 『서유기』의 신비롭고 환상적인 모험 이야기에 깊이 매료되었다. 그에게 소설은 병을 치료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아버지 영조와의 갈등이 나날이 심화되고 있던 상황에서, 그가 탐독했던 수많은 소설은 불안하고 불편한 현실을 잊게 해주는 도피처가 아니었을까 싶다. 더구나 사도세자는 『중국소설회모본』의 서문을 쓴 지 나흘 후에 뒤주에 갇혔다.

목차

책머리에 | 정조와 송충이 ㆍ 5

제1장 동물 애호가들
조선의 고양이 집사 ㆍ 13
원숭이를 선물로 받다 ㆍ 22
이성계에게는 준마가 있었다 ㆍ 32
학을 꿈꾸는 집에 살다 ㆍ 41

제2장 왕과 꽃과 나무
모란이 피기까지 ㆍ 51
꽃에서 마음의 위안을 찾다 ㆍ 60
달콤한 홍시의 맛 ㆍ 70
왜 문종은 앵두나무를 심고, 세종은 앵두를 즐겨 먹었을까? ㆍ 79
순무로 답답한 속을 달래다 ㆍ 87

제3장 취미와 오락 사이에서
당구장에서 나라 잃은 슬픔을 잊다 ㆍ 99
쌍륙에 빠지다 ㆍ 107
불꽃, 밤하늘을 밝히다 ㆍ 116
사냥을 즐기다 ㆍ 125
활쏘기 실력에 따라 벌주를 내리다 ㆍ 134
병을 치료하기 위해 온천을 찾다 ㆍ 143
판소리에 취하다 ㆍ 152
피부 미용을 위해 화장을 하다 ㆍ 161

제4장 소설과 그림을 탐하다
소설을 탐독하다 ㆍ 173
그림에 정치를 쓰다 ㆍ 182
충신의 초상화를 보다 ㆍ 191
시험을 채점해 상을 주다 ㆍ 200
불서를 간행해 망자를 기억하다 ㆍ 208
교묘한 기억보다 서투른 필기가 낫다 ㆍ 216
인장에 즐거움을 새기다 ㆍ 225
청나라를 동경하다 ㆍ 233

제5장 도자기에 담긴 마음
어찌 왕과 세자가 같은 그릇을 쓰느냐 ㆍ 245
도자기, 고종의 마음을 훔치다 ㆍ 256
화장품을 도자기에 담다 ㆍ 266
술잔에 용을 장식해 술을 경계하다 ㆍ 274
옥잔에 꽃을 수놓다 ㆍ 285
화려한 법랑이 궁궐에 있는 이유 ㆍ 295

참고문헌 ㆍ 305
저자 소개 ㆍ 312

본문중에서

어느 날 숙종이 후원을 거닐다 굶어 죽기 직전의 어미 고양이를 발견했다. 숙종은 궁인들을 시켜 그 어미 고양이를 궁궐에서 기르게 하고 ‘금덕(金德)’이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는데, 금덕이 낳은 새끼가 다름 아닌 금손이었다. 이후 어미 고양이 금덕이 세상을 떠나자 숙종은 장례를 지내주도록 명하고 금덕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까지 지었다. 이하곤이 생각하기에 금손이 숙종의 죽음을 슬퍼해 목숨까지 버린 것은 자신의 어머니를 살리고 거두어준 은혜에 보답한 것이었다. 「조선의 고양이 집사」(본문 20쪽)

태조는 왕위에 오르고 난 뒤 여덟 마리 중 노령의 말 두 마리는 놓아 보내주었다고 한다. 이는 주나라 무왕이 천하를 평정한 뒤 해산하면서, 무공을 세울 때 동원했던 말은 화산 남쪽 기슭으로 돌려보내고 소는 도림(桃林)의 들에 풀어놓아 다시 쓰지 않을 것을 온 천하에 보였다는 고사를 따른 것이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함경도 단천에 있는 목장에서 이때 풀어준 말들의 새끼를 받아 대대로 길러왔으며, 이로 인해 나라 안에서 가장 유명한 말들이 이 목장에서 생산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성계에게는 준마가 있었다」(본문 39쪽)

추운 지방에서 태어나 자란 태종 이방원은 감나무를 신기해하고 좋아했던 것 같다. 태종은 1367년 북쪽의 함흥부 귀주에 있는 이성계의 사저에서 태어났다. 조선 초기 학자 성현(成俔)이 지은 『용재총화(?齋叢話)』에 태종이 얼마나 감나무를 좋아했는지 알 수 있는 내용이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태종이 궁중에 감나무를 심고 그 열매를 감상했는데, 새가 항상 쪼아 먹는 게 못마땅했다. 그래서 활을 잘 쏘는 사람을 구해 새를 쏘도록 했다. 이때 좌우에서 말하기를 “조정에 있는 무사(武士)로 합당한 자가 없는데, 오직 세자라면 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태종이 세자에게 명해 쏘도록 하니 계속 잘 맞혀, 좌우에서 모두 경하하고 태종도 세자의 행실을 늘 미워해 오래 보지 않다가 이날 비로소 흐뭇해하며 웃었다고 한다. 「달콤한 홍시의 맛」(본문 72쪽)

정약용(丁若鏞)의 『목민심서』에는 바둑은 그래도 아취(雅趣)가 있는 것이지만, 쌍륙과 장기 놀이는 “돼지를 기르는 종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진(晉)나라 무관 도간(陶侃)이 광주(廣州) 자사(刺史)로 있을 때의 일을 예로 들며 한 말이다. 도간은 종일 군부(軍府)의 일을 바쁘게 처리하느라 한가할 틈이 없었는데, 참모와 보좌들 중에 혹여 장난을 치면서 일을 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술그릇과 쌍륙, 장기 기구 등을 갖다가 모조리 강물에 던져버리라 명하고 그런 일을 일삼는 이들을 매로 때렸다고 한다. 「쌍륙에 빠지다」(본문 112쪽)

사도세자의 온양 온천 방문으로 인해 현재까지도 그 기억을 이어주는 기념물이 남게 되었다. 그는 온양에서 온천욕과 함께 활쏘기 등으로 시간을 보냈는데, 활터에 그늘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회화나무 세 그루를 심게 했다. 세월이 흘러 나무는 무성하게 자랐고 1795년에는 그 주위에 축대를 쌓아 올리며 정비했다.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는 이 일을 보고받은 후 이러한 내력과 함께 영괴대(靈槐臺)라는 이름을 적은 비를 나무 옆에 세웠다. 영괴대는 ‘신령스러운 회화나무가 심어진 사대(射臺)’라는 뜻으로 사도세자의 덕을 기리는 동시에 아버지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담은 것이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온천을 찾다」(본문 148~149쪽)

영조는 신하들이 읽어주는 것을 듣는 방식으로 소설을 감상했다는 점이 독특한데, 이 사실은 『승정원일기』 1758년 12월 19일 기사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건강에 문제가 생긴 영조에게 탕약을 올리러 왔던 약방(藥房) 도제조(都提調) 김상로(金尙魯)가 영조의 취침을 돕기 위해 언문(한글) 소설책을 읽어드리겠노라 청했다. 어린아이처럼 다른 이가 읽어주는 한글 소설에 귀를 기울이다 스르르 잠드는 영조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뒤에 이어지는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은 더욱 흥미롭다. 언문 소설을 진언(陳言)하겠다는 김상로의 말에 영조는 잠드는 방법으로는 언문책보다 진서(眞書), 즉 한문책이 낫다고 하며 짧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설을 탐독하다」(본문 175쪽)

아무리 절박한 일이라도 하루도 해이해지지 않고 마음에 새기기는 쉽지 않다. 하물며 목전의 안락함을 외면하고 부지런히 일하라는,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훈계를 알아서 실천할 리가 있으랴. 그러니 시선이 닿는 가까운 곳에 써 붙여두고, 눈에 띌 때마다 보고 반성하는 계기로 삼게 하려는 것이었다. 경전에 나오는 글귀를 종이에 써서 벽에 붙이고, 병풍에 써서 거처에 세워두고, 또 그림으로도 그렸는데, 이런 〈빈풍칠월도(?風七月圖)〉나 〈무일도(無逸圖)〉 등의 그림은 조선 왕조 궁중 감계화(鑑戒?, 감계와 교화를 목적으로 제작되어 널리 활용된 그림)의 전통을 이루었다. 「교묘한 기억보다 서투른 필기가 낫다」(본문 218~220쪽)

숭정전은 청나라 황제가 집무를 보거나 사신을 접견하는 등 황실의 공식적인 업무가 이루어졌던 정전으로, 1644년 청나라가 북경으로 수도를 옮긴 뒤에는 후대의 황제들이 제례를 올렸던 공간이기도 하다. 숭정전 내부 전당(殿堂)의 계단 양옆에 진열된 법랑 향로는 창덕궁 농수정 앞에 놓인 향로와 다소 차이는 있지만, 향로를 올려두는 향궤까지 모두 동일하게 한 쌍으로 구성된 예기로 궁궐 전각을 장식하는 중요한 기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화려한 법랑이 궁궐에 있는 이유」(본문 296~298쪽)

저자소개

곽희원 [저] 신작알림 SMS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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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 홍익대학교에서 도예유리를 전공하고 동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한국 도자사를 공부했다. 조선 후기 왕실 도자기에 나타난 명문(銘文), 화협옹주 묘 도자 출토품, 개항기 수교 도자기 등 조선 왕실 도자기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

김재은 [저] 신작알림 SMS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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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 연세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한국사를 공부했다. 문화재청 덕수궁관리소에서 학예연구사로 일했다.

김효윤 [저] 신작알림 SMS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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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 영국 웨스트딘대학교에서 도자기 보존을 전공했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 학예연구사로 일했다. 논문으로 「Analysis of the Royal Seals of the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 「화협옹주 묘 출토 화장품 보존 연구」 등이 있다.

박경지 [저] 신작알림 SMS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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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 학예연구사.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조선시대사를 전공하고, 「조선 초기 국가례 정비와 『국조오례의』 편찬」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학예연구사로 일했다.

백은경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한국 미술사를 공부했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와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전주박물관에서 학예연구사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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