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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섭동 단편소설집 『이래 끝나는구나』 (〈도서출판 미담길〉, 정가 15,000원)이 출간됐다.
총 5부로 나누어진 글 속에는 삶의 희로애락이 겹겹이 묻어 있다. 과거와 현재를 견주어가면서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소재들을 형상화하여 박진감 넘치는 사건의 전개 현장감을 생생하게 이끌어가는 대화가 독자들의 마음을 이끌어 들인다.

이섭동 소설가는 생활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신변잡담을 문학의 위상까지 끌어올리는 작가들 중의 하나다.
은근하면서도 설득력을 지닌 그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화자들의 삶을 그려내는 노골적이면서도 생생한 묘사는 긴장감을 자아내게 한다.
또한, 엉뚱한 상황 연출을 통하여 활기찬 행동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풍부한 상상력과 폭넓은 이야깃거리를 소재로, 마치 광대가 신명나게 한판 놀음에 취하듯 한다.
혹자의 눈에는 간혹 세련되지 못한 언어가 띌는지 모르지만, 그가 들려주려는 선명한 목소리에는 숨김이 없다. 그의 사물과 인간을 대하는 감정선(感情線) 한 올 한 올이 작품집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이처럼 이섭동의 소설집 ?이래 끝나는구나?의 곳곳에 생의 애환이 진한 체취로 담겨 있고, 인생의 존재 이유가 지문처럼 새겨져 있어, 삶의 의미를 선명히 되새겨 보게 하는 잔잔한 감동을 줌으로써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차례
작가의 말

1부/
망년회

용문사 구경 ................... 12
망년회 ....................... 25
음담패설 ..................... 30

2부/
퇴직금

퇴직금 ...................... 40
자식이 웬수 ................... 60
인생의 말로 ................... 82

3부/
이래 끝나는구나

황혼에 맞선 ................... 90
뚝배기 철학관 ................. 112
산정호수에서 첫날밤 ............ 130
재혼 ....................... 148
재산 싸움.................... 164
이래 끝나는구나 ............... 170

4부/
토끼 서리

형수의 죽음 .................. 196
토끼 서리.................... 206
비싼 추억.................... 217

5부/
책상을 “꽝” 치니 “억”하고 죽었다.

책상을 “꽝” 치니 “억”하고 죽었다..... 23

본처 자식하고는 진작 등진 상태고, 내 배 아파 낳은 자식도 박대를 하고 떠났으니,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만 갔다. 밤새워 뒤척이다 보니 잠을 한숨도 자질 못하고 새벽을 맞이했다. 아침 제사를 지내고 영구차에 실려서 벽제 화장터로 갔다.
죽은 사람이 많기도 한지, 각처에서 온 영구차들이 서로 먼첨 들어가려고 머리싸움을 하고 있다. 순번을 기다려 우리 차례가 왔다.
외손자가 민구의 영정사진을 들고 앞장서고, 관이 따르고 상주들이 뒤따라 화장장으로 들어갔다. 관을 앞에 놓고 마지막 제사를 지내는 것 같다. 상주들이나 친척들은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모니터에서는 화장을 하는 시간과 순서가 계속 나오고 있다.
화장장인데도 무섭거나 징그럽다는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고, 도떼기시장같이 시끄럽다.
지금 민구의 시신은 불타고 있다. 영혼은 연기 따라 화장터 굴뚝 위로 날아갈 것이고, 한두 시간 후면 한 줌 재가 되어 유골 항아리에 담겨 나올 것이다.
대기실 나무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는데 아련히 뚝배기 철학관에서 한 말이 생각이 난다. 머리는 홀딱 벗어지고 배는 툭 튀어나온 거무튀튀한 그 양반이 하던 소리가 귀가 막히게 맞아 들어가고 있다.
지나온 과거를 보지도 듣지도 않고서 귀가 막히게 알아맞히고, 돌아올 미래도 본 것 같이 척척 알아맞히니 귀신이 울고 갈 노릇이다. 이렇게 살다 가라는 것이 내 사주팔자란 말인가?
죽도록 병수발이나 하고 인간적인 대접도 받지 못하고 빈털터리로 본처 자식들한테 쫓겨난다고 하더니, 그 말이 어쩜 딱 들어맞는지?
배 아파서 낳은 자식도 외면하고 다시는 찾지 말라고 하는 판에, 본처 자식들이야 당연한 위치가 아닌가. 같이 살던 아버지가 죽고 없으니 남남이라고 박대를 해도 할 말이 없다.
이제는 의지할 곳도 없다. 동숙은 오히려 잘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냐 만은, 지금까지 병수발하며 살아온 것만 해도 징그럽다. 댕기 풀고 살아온 처지도 아닌데, 남자한테 메여 사는 것보다 남자 없이 살더라도 홀가분할 것 같다. 비록 민구와 정이 들었지만, 죽고 나니 속이 시원하기도 하고 홀가분한 것이 눈물도 나오질 않는다. 결국에는 이래 끝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