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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경 시가집 [서툰 위로]. 나만의 공간에서 풀어낸 나만의 이야기. 열여덟 소녀가 혼자만의 공간에서 상상하며 적은 발칙하고 범상치 않은 이야기를 옮겼다.

기쁨은 순간을 누리면 되는 단순한 감정이지만 슬픔은 또 다른 경로를 통해 달래고 해소해야만 되는 감정이었다. 그러지 않고선 마음속에서 곪다가 더 부정적인 감정으로 옮겨 가 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이었다. 그 수많은 다른 경로 중에 내가 선택한 방법은 글쓰기였다. 오롯이 나만 존재하는 공간이 필요했다. 내 감정을 가감 없이 외칠 수 있는 공간, 부정적인 인물을 마음껏 비판할 수 있는 공간, 그것이 나에게는 글 쓰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일종의 나만 아는, 비밀 아지트 같은 곳.
가사를 쓰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였다. 그때는 단순한 모방이었다. 대중가요에 처음 눈떴고 얇은 공책에 당시 유행하던 말들로 가사를 적었었다. 가사는 단순했고 처음 접한 단어들을 마구잡이로 활용한 것에 불과했다. 그게 멋있어 보였다. 가끔 아이들에게 내가 쓴 가사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아이들은 거기에 음을 붙여서 내 앞에서 음이 붙여진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였다. 소소한 행복이었다. 그때의 나에게 작사란 나만의 공간이 아닌 모두의 공간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가고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갈등은 훨씬 더 다양한 모습과 깊이로 나에게 닥쳐왔다. 기쁨으로 슬픔을 숨길 수 있었던 어린아이가 기쁨은 언제까지나 찰나일 뿐이고 슬픔은 슬픔 그대로 묵직한 감정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억울하고 답답하고 속상한데 그걸 들어주는 사람들은 항상 나의 잘잘못을 운운했고 나에게서 문제를 찾으려 했다. ‘그게 아니라니까요. 전 그저 위로받고 싶었을 뿐이라니까요.’ 이 말을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그때 유독 죽음과 관련된 가사를 많이 적은 것 같다. 타인을 죽이거나 내가 죽는 표현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책에 많은 작품을 실어 내지 못했다. 순간순간의 격앙된 감정들이 빚어낸 표현이 많았기 때문이다. 내면의 분노와 슬픔이 고스란히 드러난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감정이 많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내가 슬픔과 분노를 적절한 말을 사용하여 수식하는 것에 서툴러서이기도 했지만 그런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해야 내가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시는 극단적으로 남을 해치고 극단적으로 나를 깎아 내야 나 자신의 가치가 높아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글을 쓰는 데 가장 큰 원동력이 된 감정이 외로움이었다. 그건 초등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유독 가사에 외로움이나 사랑을 갈구하는 표현이 많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언젠가 한 번 ‘글쓰기가 너의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시적인 수단에 불과하지 않냐?’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더 이상 외롭지 않게 되면 글을 쓸 수 없을 것이고 단지 순간의 감정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도피처일 뿐이지 진정한 너의 취미나 특기가 아니라고. 하지만 내가 글을 쓰다 보니 외로움은 계속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감정이 될 것 같다. 떨쳐낼 수 없는 감정이다. 그건 내 주변에 사람이 무수히 많아져도 같을 것이다. 항상 그랬다. 곁에 사람이 많으면 그게 더 초조했고 외로웠다. 그러니까 글은 순간의 도피처의 역할 이상으로 나를 가장 솔직하게 표현하고 나를 가장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인 셈이다.

또 한 가지 내가 글을 쓰는 데 원동력이 된 감정은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에 대한 애정이었다. 글은 그에 관한 감정을 표현하는 오작교 역할도 한 것 같다. 〈사랑은 가슴이 시킨다 part 4〉 같은 경우는 ‘버즈’의 ‘사랑은 가슴이 시킨다’ 시리즈가 계속 이어간다면 다음 노래는 이런 내용으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추측으로 적었고, 〈코미디로 부탁해〉 같은 경우는 버즈나 민경훈의 솔로곡 제목을 깨알같이 넣어 두었다. 〈Blossom tears〉 같은 경우는 당시 정말로 좋아했던 드라마 ‘킬미 힐미’에서 ‘요나’라는 인격이 사라질 때 느꼈던 감정을 바탕으로 작사를 한 것이었다.
모든 가사에 공을 들였겠지만 그중에 가장 공을 들인 건 단연 〈흘러가다〉였다. 예스러운 우리 문학의 느낌을 내고 싶어서 2절 뒤 브리지 부분에 평시조와 사설시조가 이어지게 했고 마지막 후렴 부분은 현대시처럼 보이는 구조로 적어 문학 세계 속에서 시간이 흘러가는 것처럼 표현했다. 가사 내용 역시 희망에 대한 포부(1절) - 절망(2절, 평시조) - 극복 의지(사설시조) - 극복(마지막 후렴)으로 흘러가는 삶을 표현하려 노력했다.
나는 계속 글을 쓸 것이고 그때마다 조금씩 발전할 것이다. 설사, 발전하지 못하더라도 계속 솔직할 자신은 있다. 나에게 글이란 또 다른 나이고 외로움을 달래 주는 유일한 내 편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울한 분위기의 글을 조금씩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목표라면 목표라고 말할 수 있겠다.

유나경

1부 긍정적 감정

사랑

처음 016 Utopia
020 W (Double ‘U’)
끝 024 코미디로 부탁해
028 사랑은 가슴이 시킨다 part 4
032 구간반복
036 Blossom tears
042 Buzz off!
046 일방통행

순수

050 Never land
054 몽환
058 서툰 위로
062 흘러가다

2부 부정적 감정

개인적

열등감 070 Junk kid
074 열등반 우등생
외로움 078 Echo
082 Hero-in
방황 088 迷我(미아)
092 어제에 대한 오늘의 변명
096 이방인


누군가에게

반항 100 My way
106 Mayday!
110 Notice that ‘Justice’
114 아, 그래요?
비판 118 Hunger Game
122Jekyll & Hyde
126 신세기
132 ;-) (Smile)
집착 136 월광, 열광하라
140 Zealot


죄악

탐욕 146 이상한 나라의 맬리스(Malice in Greed World)
오만 150 ★신
154 Atari shock
질투 158 Elysium
분노 162 Created Devil
168 Red Silhouette
172 Dystopia
176 나의 아침


180 작가의 말

이것은 나경이 스스로
‘창작’을 통해 얻은 소중한 결실

나경이(유나경)는 내 아끼는 친구의 딸내미다. 늦둥이로 태어난 까닭에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다. ‘나경(柰俓)’이라는 이름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던 때가 엊그제인데 벌써 고등학생이라니! 아이들 성장 속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나경이의 문학적 재능이 이처럼 뛰어나다는 점이고, 더더욱 놀라운 것은 그것을 ‘아빠의 친구’인 나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등잔 밑이 어두워도 한참 어두웠다.
우리가 나경이 나이였을 때, 뭔가를 끄적거리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던 시절이 문득 떠오른다. 시 나부랭이였고 잡문투성이였지만, 공책 여백이 채워져 나갈 때마다 행복해했었던 기억.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그 ‘기록’들을 찢어 버리고, 그것도 부족해 태워 버렸던! 그러나 나경이는 그 기록들을 컴퓨터 속에다 고이고이 갈무리해 두었단다. 그것도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인 5년 동안의 작품을 말이다. 우연한 기회에 나경이 아빠로부터 그 소식을 들었다. 어떤 글인지가 궁금했다. 그 나이 내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나경이의 글을 본 나는 무릎을 쳤다. 우리 세대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표현이 많은 글이긴 했다. 그러나 나경이 또래에서는 쓰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운 글이 하나하나 내 눈앞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청소년기에 누구나 느끼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 내지 그리움,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한 좌절감과 절망감, 부조리·불합리한 것들은 바꿔야 한다는 소신, 그러면서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신념과 의지. 이런 것들이 이 시대 젊은 사람들의 장르를 통해 가감 없이 표출되어 있었던 것이다.
문장이 톡톡 튀고, 외재율(外在律)과 내재율(內在律)이 절묘하게 짝을 이루고 있었다. 문학적 재능이 특출하다 싶어서, 친구인 목진숙 시인과 내가 나경이 아빠한테 함께 권했다. ‘글깨’나 끄적거렸던 우리들이었지만, 젊은 시절 기록들을 흔적 없이 태워 버렸던 아픈 추억 때문에, 나경이 글만큼은 기록으로 남겨 두는 것이 부모가 할 일임을 강조하면서.
글을 쓰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의 차이는 생각보다 현격하다. 글 쓰는 아이들은 세상의 일을 예사로 보지 않고 자신의 눈으로 재해석한다. 그 과정에서 세상사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함께 보면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비판적 사고가 길러지고 창의성이 배가됨은 물론이다.
나는 이 책자가 나경이의 앞날을 비추는 소중한 등불의 역할을 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것은 나경이 스스로 ‘창작’을 통해 얻은 소중한 결실이기 때문이다. 나경이가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길을 찾아 스스로의 인생 항로를 잘 개척해 나가길 빈다. 아울러 아직은 고등학교 시절인 만큼, 기본적인 학습 활동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도 덧붙여 둔다.
나경이의 『서툰 위로』 출판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2019년 1월 30일
김정대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노래와 시,
풍자로 엮은 상큼한 아름다움

노래에서 가사는 필요불가결한 요소이다. 노래는 사람들에게 불리기 위한 것으로, 멜로디와 리듬으로 완성된 곡은 음악이라고 하지 굳이 노래라고 칭하지 않는다. 노래란 멜로디와 리듬, 혹은 둘 중 하나에 글이 실린 음악이다. 노래를 부를 때 그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멜로디와 리듬에 붙은 가사, 즉 문학이다.

음악적 요소를 띤 문학은 고대에서부터 존재했다. 시는 운율적 요소가 노래와 닮아 있고, 중국 송대의 대표적 문학 형식인 사(詞) 역시 제목이 정해진 멜로디에 노랫말을 붙이는 것이었다. 현대에서 이 음악성을 이어받은 문학은 노랫말, 즉 가사이다. 멜로디를 타고 흐르는 가사는 시어처럼 정제된 것부터 의식의 흐름으로 기술하듯 산문적이기도 하다. 리듬과 비트를 타는 장르는 시를 짓듯 정교한 계산으로 음운을 맞추고, 때로는 박자를 무시한 채 언어를 쏟아낸다. 산문과 운문이 형식을 넘나들며 자유로이 전개되어 예쁘게 발효된 반죽 덩어리처럼 합쳐져 아름다운 빛깔의 마블링을 이룬다.
교과서에 시와 소설, 고전문학과 수필만이 실리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유행가의 가사가 문학작품과 함께 실리는 시대가 되었다. 여자친구의 〈시간을 달려서〉, 장범준의 〈벚꽃 엔딩〉,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 등의 가사가 그 예이다. 이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는 대중가요의 목적을 뛰어넘어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은 증거이다. 시대가 변하면 문학이 변하듯 수많은 가수와 노래가 범람하는 현재, 가사는 사람들이 가장 쉽고 친밀하게 접하는 문학이라 할 수 있다. 정제하고 숙고한 시어처럼 아름다운 언어로 자아낸 〈시간을 달려서〉, 누구든 아는 아름다운 풍경 속 사랑을 노래하는 〈벚꽃 엔딩〉, 일상에 지친 스스로를 응원하는 〈수고했어, 오늘도〉는 노래로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는 많은 이들이 그 가사에 공감했다는 반증이다.

유나경 양의 가사도 그러하다. 운문과 산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 형식의 장점을 모두 취한다. 소절의 끝에 오는 단어의 운을 맞추고 때로는 운을 고려하지 않고 산문처럼 생각을 쏟아낸다. 〈Echo〉의 가사가 그 특징이 특히 두드러진다. 산문에 서정을 싣고 목소리·말소리·빗소리·메아리, 사람들·사랑들·홀린들, hear·heal 같은 단어로 음률을 맞추어 두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열등반 우등생〉 〈Notice that ‘Justice’〉 〈Created Devil〉 같은 가사들은 현재 대한민국의 학생들이 받는 압박감을 표현해 공감을 얻기 충분한 문장이다. 특히, 〈열등반 우등생〉의 경우에는 열등반과 우등생이라는 역설적인 단어 둘로 이루어진 제목만으로도 그가 느끼는 불만이 또렷하게 그려진다.
〈Malice in greed world〉 〈Hunger Game〉 〈Jekyll & Hyde〉 같은 가사 역시 기존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 글이다. 〈Malice in greed world〉는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제목을 비튼 제목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등장인물과 소재를 이용해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제목을 따온 〈Jekyll & Hyde〉는 지킬과 하이드가 동일 인물이었다는 원작에 착안해 사람들의 이중성을 직설적인 말로 비판한다. 어느 것이 진짜 당신의 모습인지 알 수 없으니 이 끝없는 고리를 잘라 내라며 외친다. 뭐가 진짜 너야? 진짜 너는 뭐야? 어순을 달리해 반복된 말은 같은 것을 묻는 것 같지만 같은 것을 묻는 말이 아니다. 읽는 이가 두 번, 그 이상 생각할 수 있는 물음을 그는 던지고 있다. 공감과 비판을 넘어서서 듣는 이가 스스로를 돌아보게끔 만드는 것이다.

문학의 정서와 감각의 표현적 측면에서 운문과 산문의 적절한 혼용이 능숙하고 보편적 정서, 감정의 이입이라는 가사 본연의 취지에 훌륭하게 부합하는 유나경 양의 글을 보며 그가 앞으로 써 내려갈 글 역시 많은 기대를 갖게 한다.
2019년 1월 25일
목은봉
부산대 중어중문학과 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