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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시간에 온다 : 신용목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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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신용목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 : 2021년 08월 28일
  • 쪽수 : 152
  • ISBN : 978895468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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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순간이 있지/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일들이 있어서”

존재하던 것이 사라져버리는 필연적 운명을 지연시키고자 하는 시인의 특별한 시간운용법
백석문학상, 현대시작품상, 노작문학상 수상 시인 신용목 신작 시집

2000년 『작가세계』로 등단한 이후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쳐온 신용목 시인의 여섯번째 시집이 문학동네시인선 158번째 시집으로 출간되었다. 소시집으로 묶은 다섯번째 시집 『나의 끝 거창』(현대문학, 2019)에 나고 자란 곳이자 떠나온 곳, 지키고 싶은 시절이자 지우고 싶은 시절을 품은 곳 ‘거창’을 전면에 드러낸 자전적 이야기가 담겼다면, 그 전후에 쓰인 시 53편이 일곱 개의 부로 나뉘어 이번 시집 『비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시간에 온다』에 묶였다.
시인은 시간을 새로이 운용하는 자다. 지나버린 시간과 돌이킬 수 없는 관계에 대한 천착이 빚는 슬픈 아름다움이 시인을 그리 만들었다. 존재하던 것이 사라져버리는 필연적 운명을 지연시키고자 하는 시인 특유의 시간운용법이 이 시집 전반에 드리워 있다. 있었던/있는 것을 끝까지 포착하기, 그것에 대해 말하기, 지켜내기. 시간을 멈추어서라도. 덕분에 우리는 이 간절한 지연의 세계 속에서 “하나의 빗방울과 다른 빗방울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어서” “영혼의 핀셋을 나무의 긴 손가락에 쥐여주고, 계절의 톱니바퀴에 감긴 울음과 울음의 결들을 다 뽑아 한낮의 푸른 잎으로 달아놓을”(「시간은 취한 듯 느리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 여기서 사라지는 것이 있다 물 끓는 소리에서 피어나는 물방울처럼

창문 너머 공터에는 단독주택이 들어서고 있다

책장으로 가 시집을 펼치고 ‘라일락’이라는 글자 속에서 라일락 향기를 찾는다
지금 사라지는 것이 있다
텔레비전을 켜면
사랑해요, 고백은 영원히 죽지 않아서 사람이라는 숙주를 갈아타고 갈아타고

사랑해요, 지금쯤 저 배우는 퇴근했겠지
고백으로부터

여기서 사라지는 것이 있다 수없이 지나간 일요일이 덩그렇게 남겨놓은 오후
아파트에 살면서 갖다놓은 화분
17층 공중의 작은 땅
_「생활사」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일들이 있어서”(「예술영화」) 시인은 말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어느 비 오는 날, “가로등은 그대로 멈춰버린 거대한 빗방울 바닥에 부딪쳐 흩어지기 직전의 시간을 매달고 있는 단 하나의 순간”,이라고 씀으로써 그 순간을 봉인하고자 한다. “그러면 보인다”. “내가 늘 끌고 다녔던 마음 아니/ 묶어놓았던” “개라는 빗방울”이(「유령 비」).
있었던/있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시집 곳곳에 무언가 ‘끓고’ 있다. 가령 주전자 속에서 물이 끓고 있다. 물이 졸아들고 주전자는 텅 비겠으나 그 수증기는 조용히 구름이 되고, “구름의 발”로써 지상에 닿는 비. 그렇게 “주전자를 새까맣게 태우며 오는/ 비”를 떠올려보자. 주전자 속 물은 사라져버린 것인가. 하늘과 땅을 잇고 스미는 비와 무관한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는 없고 “어떤 이별도 남아 있지 않은 인연에게/ 남은 것”(「구름 제조법」)이 더는 없다 단정할 수 없다. “‘형태 없는’ 가능성에 형식을 입히는 작업에 복무하는 사람, 그가 곧 시인인 셈이다. 이 시인 파수꾼은 단지 과거의 어느 영광된 시간을 지켜내는 데 관심을 두고 가만히 있는 사람이 아니라, 많은 존재가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가능성을 지켜내고자 성실하게 움직인다. (…) 신용목의 시는 몇몇 글자에 욱여넣을 수 없는 삶, 그것을 짊어지고 있는 세상의 숱한 존재에 대해 ‘영영 모른다’고 고개 돌리지 않고 그 존재 자체가 여러 시간성을 복합적으로 품으면서 ‘있는’ 순간을 드러내고자 한다. 시는 그런 것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린다. ”(양경언, 해설에서)
1부 ‘비’를 시작으로 ‘배’ ‘밤’ ‘새’ ‘끝’ ‘꿈’ 그리고 다시 7부의 ‘비’로 이어지는 일곱 개의 부 나눔. 신중히 나뉜 각 부의 열쇳말인 듯, 진실이 응축된 결정적인 한 음절인 듯, 그것을 가만히 입안에 머금고 신용목 시인이 파수꾼처럼 지켜낸 세계를 가만히 거닐어보기를. 그러다 만난 이가 건넨 우산을 펼쳐 가만히 머리 위로 써보았을 때, 비로소 쏟아지는 비를, 그 비가 적시는 것을 새로이 마주하게 될 것이다.

출판사 서평

※신용목 시인과의 5문 5답 미니 인터뷰

Q. 어느덧 여섯번째 시집입니다. 출간 소회부터 여쭙고 싶어요.
어느 날엔 거짓말처럼 바위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허사였어요. 늘 첫 시집처럼 서툰 것 같아요. 바뀐 게 있다면, 언제부턴가 마지막 시집을 준비하는 듯한 절박함이 종종 찾아왔다는 건데요. 서투름도 절박함도 모두 매 순간의 상실감 때문이겠지요.
상실이라는 게 이상해서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으면 손실이 되고 말잖아요. 스스로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사라지는 순간들 앞에 오래 머물렀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이 시집에는 첫 시집을 엮는 듯한 서투름과 마지막 시집을 내는 듯한 절박함이 이상하게 뒤섞여 있는 느낌이 들어요. 만남과 이별을 동시에 겪는 자의 마음 같은 것.

Q. 시집 제목이 독특한데요, 어떤 연유로 붙이신 제목인지 궁금합니다. 실제로 시집에 '비'의 이미지가 제법 등장하기도 하여, 이 이미지에 특별히 집중한 이유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일상의 무심함을 지나가다가 문득 비를 만났을 때, 그 무심함은 깨지고 말죠. 비는 ‘온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우리를 깨우니까요.
또 비는 적시잖아요. 지붕과 담을, 마음과 몸을, 밤과 어떤 시간을…… 깁잖아요. 구름이라는 헝겊을 덧대 비의 긴 실로 하늘과 땅을 깁는 것처럼, 빗소리를 덧대서는 지나간 것과 지나가지 않은 것들을, 기워내잖아요.
운명이 뛰어드는 적합한 순간이 따로 있지는 않을 거예요. “비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시간에 온다”고 말할 때, 비 맞는 ‘나’는 최소한 이전의 ‘나’가 아니거나 비로소 진짜 ‘나’겠지요. 그 순간의 절대성이 ‘나’를 어떤 운명 속으로 이끄는 게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이 시집을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각자의 비를 맞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Q. 7부로 나뉘어 시가 엮여 있습니다. 다른 시집에 비해 부 나눔이 많은 편인데요, 이번 시집을 엮으며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신 게 있을까요?
그저 낙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비 또한 한 방울 한 방울 필사적인 이유를 거느리고 떨어질 거예요. 그래서 내게 찾아온 순간들에 한 칸씩 자리를 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시집의 방이 많아졌고요. 방마다 특별히 대단한 무언가가 들어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도리어 빗소리처럼 지붕 위를 잔걸음으로 지나가거나 비냄새처럼 눅눅하게 머물다 사라지고 말 것들이 대부분이겠지요. 아주 평범한 생활의 단면들로 이루어진 것들 말입니다.
다만, 내가 그 순간 속에 놓여 있었다는 것을 잊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운명이라면 비록 거부할 수는 없더라도, 그 운명을 대하는 태도를 결정할 수는 있으니까요. 시는 어떤 진리나 혁명은 아니지만, 삶과 사랑에 관한 태도일 수는 있으니까요.

Q. 이번 시집 수록작 중 마음에 특히 오래 남은 시 한 편을 골라 소개해주신다면?
마지막 시, 「모든 우산은 비의 것」입니다. 가을비에 관한 이야기이고, 그 가을비 속에 숨어 있는 어떤 눈망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모두 비 맞을 운명이잖아요. 그 비가 무엇이든 간에…… 사랑과 이별과 죽음과 운명을 빌려 쓰는 모든 것들이 비처럼 내릴 테고, 우리는 젖겠지요. 슬픔과 쓸쓸함과 고통 같은 것에……
그때, 비 너머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투명한 눈망울 하나를 만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Q. 시집을 읽을 독자분들께 한말씀 부탁드려요.
아주 먼 훗날 새로운 지적 생명체가 나타나 인류를 기념하는 박물관을 지었을 때, 거기 전시되는 것은 핵폭탄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일 것입니다. 과학의 이기가 아무리 발달한다 해도, 어느 한순간 삶의 복판에 천국과 지옥을 건설하는 그 마음의 크기에 비할 바는 못 될 테니까요.
어느 외로운 과학자가 기계 더미에 파묻힌 인간의 육체에서 기어이 마음을 발굴해내서는 환한 조명 아래 빗소리처럼 세워놓을 겁니다. 무수히 두드리던 인간의 창문과 그 인생을 채웠던 습도를 그래프로 그려놓겠지요.
네, 하루하루의 날씨 속에서 자주 비에 젖는 바로 그 마음을 말입니다.
이 시집이 그 옆에 우산처럼 접혀 있으면 좋겠습니다.

목차

시인의 말

1부 비
오르골/ 구름 제조법/ 책

2부 배
생활사/ 모든 시에는 산문적인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나/ 슈게이징/ 그림자역/ 삼색볼펜/ 밤/ 예술영화/ 독서의 아름다움/ 다인실 다인꿈/ 시간은 취한 듯 느리고/ 나는 알아차리게 될까/ 나를 깨우고 갔다/ 밤과 단 하나의 그림자

3부 밤
유령 비/ 도하

4부 새
외계의 기후/ 눈사람/ 취중 농담 / 유령 상자/ 겨울의 미래/ 우리가/ 가양대교/ 아무도 없을 때/ 수중 도시/ 활주로/ 비의 숲/ 타버린 숲/ 블랙아웃

5부 끝
액체 인간/ 국자/ 모르는 겨울/ 슬픔의 거인이 왔다/ 이 세계 / 종례/ 유기/ 속초/ 미래 / 중고가전 수거 차량처럼/ 누구여도 좋은/ 헤링본

6부 꿈
나뭇잎은 칸칸이 떨어집니다/ 꼭짓점/ 해변/ 대성당/ 눈사람의 시체를 찾아 바다를 헤매는 자의 / 지느러미가/ 무턱대고 걸어나온/ 유령들의 물놀이처럼/ 좋았을

7부 비
모든 우산은 비의 것

해설_ 파수꾼, 시
양경언(문학평론가)

본문중에서

누구나 자신의 그림자를 깔고 누운 자는 자신이다

누구나 자신의 발자국을 밟고 서는 자는 자신이다,
그렇지만

너무 늦게까지 자지는 마
어둠은
꿈이 현실 속으로 잠입하지 못하게 막고 있는 국경수비대 같은 것인데,
잠든 채 아침이 오면
위험해

그렇지만, 내 꿈속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
_「오르골」에서

우리는 철없이 죽음을 당겨쓰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제에 남아 있는 내가 느껴집니다

아직 사랑이 끝나지 않은 날들의 사랑이

사랑이 끝난 오늘도 만져집니다
_「겨울의 미래」에서

생각나지 않는 곳은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생각나지 않는 말들이 저 혼자 달려가 고백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나지 않는 사람들의
생각나지 않는 일들 속에서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골목과 창문이 끝없이 밤을 선물로 보내는 곳에서
나는 우연한 행인으로 지나가다

안쪽을 바라본다
_「블랙아웃」에서

그날,
물이 하늘을 날아보려고 구름이라는 이름을 얻는다는 것을 알아버려서

차갑고 어두운 바다에 잠기고픈 구름이 비라는 이름을 가진다는 걸 알아버려서
나는 이름을 바꾸었다,

다른 곳으로 가보려고.

이곳의 비가 저곳의 눈인 것처럼, 구름이라고 하면 물은 하늘에서 사라진다.
비라고 하면 물은 빗소리 속으로 사라지고 눈이라고 하면 비는 겨울 속으로

사라지고,
다른 곳으로 가면 다른 곳은 사라지겠지. 이름을 부르면 나는 이름 속으로 사라지고
사라지고 나면 어떤 이름으로 잊혀져도 좋은데,
_「슈게이징」에서

처음 말을 배울 때가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 말을 배우는 사람처럼 쓰고 싶은데 처음 눈을 봤을 때가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 눈을 본 사람처럼 놀라고 싶은데 처음 배운 말과 처음 본 눈 그때 나는 아 하고 말했을 것이다 아직 살아보지 못한 자의 기억은 무엇일까 태아의 꿈처럼 나에게 일어난 알 수 없는 일들을 알 수 없는 채로 말하기 위해 아이는 우는지도 모른다 모국어로 우는지도 모른다 모국어가 없었다면 아무도 울 수 없었을 것이다
_「그림자역」에서

흐른다,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순간이 있지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일들이 있어서

나는 나지, 말하지 않으면 나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내가 가지 않은 곳을 갔다 오고
우산을 들고 있다고 중얼거리지 않으면 감쪽같이 우산은 사라져
_「예술영화」에서

침대의 잘못은 자신이 입구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 데 있다.
잠이 오지 않으면,

걱정을 만든다. 죄를 빼고 나면,

사랑은 남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착한 사람이다.
_「다인실 다인꿈」에서

어쩌면 우리가 본 것은 빗소리이거나
비라는 말,

아아 오오 입을 벌리고
더 깊은 몸속으로 사라지는 어둠을 끄집어내려고 말을 하고 말을 하고……

갑자기 침묵이 흐를 것이다

어쩌면 내가 들은 것은…… 내가 밟고 선 내 그림자의 비명이거나
비명의 파란 눈,
우리의 이야기처럼 길게 쏟아지는 수돗물을 멍하니 쳐다
보는 밤과 초인종 소리를 얇게 펴낸 것처럼 아침이 지나간다
_「유령 상자」에서

둥글게 몸을 말고 자신에게로 향하다보면, 점점 뾰족해지다가 뾰족한 끝에서 어느 순간 사라질 것이다. 선풍기 뭉게구름 선풍기 뭉게구름, 아무 뜻 없이 선풍기 앞에서 뭉게구름을 떠올리다가 선풍기뭉게구름선풍기뭉게구름, 중얼거린 일조차 잊은 채 밥때를 맞는 것처럼,

구름은 제가 구름으로 불리는 걸 몰라서 비를 내린다.
_「꼭짓점」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1974

저자 신용목은 1974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다. 2000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성내동 옷수선 집 유리문 안쪽' 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가 있다. 시작문학상, 육사시문학상, 젊은시인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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