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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끝이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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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나와 당신이 품은 말이 곧 세계다

“당신에겐 어떤 문장이 있는가?
당신을 설레게 하고 오래도록 저리게 남아있는 말이 당신을 만들었다.”

20년 넘게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쳐온 김진해 교수(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가 말과 글에 관한 에세이 《말끝이 당신이다》를 출간했다. 대중서로는 처음이다. 《말끝이 당신이다》는 말에 담긴 의미와 어조를 해체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언어와 인간, 언어와 사회를 돌아본다. 저자는 말에 쌓인 케케묵은 사회적 통념을 걷어내고, 말이 발화되는 순간 나는 누가 되는지, 그 말을 하는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핀다. 언어학자로서, 한 사회의 시민으로서, 그리고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세상을 고르게 보려는 저자의 시선이 눈에 띄는 책이다.

출판사 서평

“말, 나와 당신의 심장과 가슴”
깊은 우물 속에서 건져 올린,
마중물과도 같은 말과 글에 대한 성찰

책은 원고지 4매 분량의 짧은 글 120여 개를 모았다. 문장마다 저자의 성찰이 웅숭깊어 부러 더 늘리지 않았다. 단문 속 강렬한 문장에 독자가 잠시 풍-덩 하고 빠졌다가 그 진한 여운이 마음 어딘가에 작은 포말로나마 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총 4부로 구성된 책은 말의 기능과 가치를 그 기준으로 삼는다. 1부 말의 심장에선 우리의 내면의 정서와 감각을 풍부하게 만드는 말과 글의 소담스러운 부분을, 2부 말의 품격에선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을 향한 언어의 이중성을 담았다. 3부 말의 경계에서는 언어의 진보성과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선을 넘은 자만이 변화를 꿈꿀 수 있듯, 선을 넘는 말이 언어의 가능성을 넓힌다. 4부 기억과 연대, 그리고 말하기에선 마땅히 기억해야 할 한국의 역사와 시대적 현상을 우리말과 글을 통해 이야기한다.

“말은 지켜야 할 성곽이 아니라 흐르는 물.
그러니 가둬둘 수 없다”

이런 분들께는 굳이 이 책을 권하고 싶지 않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분, (그래서) ‘말 같지 않은 소리’는 절대 하지 않는 분, 사투리는 없애고 표준어를 써야 한다고 외치는 분, 사전은 국가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 언어를 순화 대상이라고 여기는 분, 청년들이 주고받는 신조어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 이런 분들은 이 책에다 ‘불온서적’이란 딱지를 붙일지도 모른다.
이런 분들께는 적극 권한다. 말실수 때문에 잠 못 이룬 적이 있는 분, (그래서) 말끝이 자주 흐려지는 분, 말과 말 사이에 민감한 분, ‘없음’과 ‘모름’이 삶과 사회를 풍성하게 한다고 여기는 분, 자기표현이 민주주의의 첫걸음이라고 믿는 분. 지도자보다 ‘촉진자’가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하는 분, 국민이 아니라 (세계)시민이 미래를 열어나가야 한다고 말하는 분... 이런 분들께 이 책은 인문학의 최전위일 것이다. ‘나’와 우리를 돌아보고 더 나은 내일을 꿈꿀 때 이만한 자극을 줄 수 있는 글이 또 어디 있으랴 싶다. 그렇다. 미래는 ‘불온한 말’에서 시작된다.
_이문재(시인,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말끝이 당신이다》는 말 자체를 의심하고 말의 가능성과 상상력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다. 국어를 전공하고 오랫동안 글쓰기 선생으로 지낸 저자는 말에 필요한 건 규칙과 규범이 아닌, 사유라고 말한다. 그러나 국가의 언어정책과 표준어가 갖는 언어적 한계는 이를 어렵게 한다. 예를 들면 짜장면은 되는데, 쭈꾸미는 왜 안 될까? 쭈꾸미 입장에선 억울한 노릇. 안 되는 이유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예컨대’가 맞나 ‘예컨데’가 맞나? ‘예컨대’가 맞다. 이유는? 옛날부터 그렇게 썼으니까. 겨땀은 비표준어고 곁땀은 표준어다. 이유는? 표준어니까!(p.131) 말에는 저절로 질서가 생기고 관습이 만들어지고 하나로 정착하는 기질이 있다.(p.132)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되는데, 표준 국어라는 이름으로 시행되는 일들은 이를 어렵게 만든다.

저자는 우리가 썼던 언어를 다시 들여다보자는 의미에서 언어학자치곤(?) 뜻밖의 다양한 사례를 든다. “1도 없다” “뉴노멀” “오빠는 사슴이에요. 내 마음을 녹용”. 맥락을 탈피하고 선을 넘는 ‘언어맛집’들로 언어는 진보하고 확장 중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언어의 상상력은 언어에 담긴 정취와 향기에서도 드러난다. 우리는 말과 글에서 뺨에 닿던 반려묘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털의 감촉을, 한여름 뽀송하게 말린 여름 이불의 햇빛 냄새를 느낀다. 강원도 태백에서 자라 그곳의 정취를 언어에 남긴 저자처럼 모두의 언어에는 자신만의 추억과 사유가 담겨있다. 사투리가 갖는 지역적 특색과 향취 역시 표준어만으로는 가질 수 없다. 저자가 제주어를 꼭 살리자고 주장하는 이유다.

국가가 정한 언어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말에 박혀있다. 2부 말의 품격 ‘언어학자는 빠져!’에서 저자는 말한다. “나를 포함한 언어학자들은 지나치게 완고하고 말 자체에 매몰되어 있다. 한 5년 정도 언어학자는 뒤로 빠져있으면 어떨까?”(p.158)

가장 흔한 흉기는 말…
차별과 혐오가 그랬듯이 ‘모두를 위한 평등’도 말에서 출발한다

혹시 “죄송하지만”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지는 않는지? 타인이 우선 신경 써야 할 일에도 우리는 에둘러 부탁하기 위해 ‘죄송하지만’을 먼저 뱉는다. 저자는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할 상황에서 돌려 말한다는 건 우리 사회가 불안정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국이 처한 상황과 언어적 보수성이 ‘죄송하지만’이라는 말로 드러나는 것이다. “나의 말이 ‘정상적인’ 기존 질서를 방해하는 게 아닐까 걱정할 때마다, 한국어라는 언어생태의 보수성을 거듭 확인하고 우리 사회의 불안정성을 절감하게 된다. 사회적 안전함이 단도직입적 말하기를 가능하게 한다"(p.86)

말의 위계적 질서 끝에서 우리는 평등한 말하기의 어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연애와 애정이 남녀, 이성으로만 제한되고 남자의 애인은 곧바로 여친으로 치환된다. 여기엔 소수자의 삶과 사랑은 없다. 《표준국어대사전》 속 불평등한 말 ‘계집’은 어떤가. 사전 뜻풀이 파일을 열고 ‘계집’을 ‘여자’로 모두 바꾸면 되는데 이 쉬운 걸 안 한다.(p.100)

가장 흔한 흉기가 될 수 있는 말이 변하지 않으니, 사회가 변할 리 없다. 언어는 약자와 소수자 그리고 생명에 대한 존중을 담을 수 있는 가장 작지만 큰 그릇이다. ‘모두를 위한 평등’은 말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감각과 인식이 옅어진 시대
약한 사람들이 할 일은 기억과 연대, 그리고 말하기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르다”라는 속담이 있다. 김진해의 《말끝이 당신이다》는 아 해와 어 해 사이에 있는 오해를 풀고 이해에 가닿으려는 말문이다. 그는 ‘1도 없다’에서 “새로운 말맛”을, ‘밥맛’이나 ‘바가지’에서 “선을 넘는” 말의 양상을 발견한다. 말끝이 당신이다. 말씨도, 말귀도, 말밑천도, 말주변도 당신이다. ‘말끝’이 말의 맨 끝과 첫머리를 둘 다 가리키는 것처럼, 일상 속 이상한 말들이 말벗처럼 시종 함께하는 책이다. 참말이다.
_오은(시인)

《말끝이 당신이다》는 언어에 대한 앎에서 시작해 주변을 이해하고 품기 위한 하나의 시도다. 저자는 이 글을 쓰며 오로지 언어만을 바라보다가 혹여 배제되고 소외당한 것은 없는지 끊임없이 손을 뻗어 그 가장자리를 더듬거린다. 더러는 시적인 문장으로 독자의 머리와 가슴을 한 번에 젖어들게 만들고, 위트와 재치 넘치는 문장으로 권위는 덜어내고 웃음을 더했다. 그렇게 주변을 품고 ‘(제대로 된) 말하기로 연대’하였으면 하는 마음을 이 책에 담았다.

감각과 인식이 옅어진 시대, 저자는 언어의 가능성이 삶의 가능성을 넓힌다고 말한다. 지금, 당신 심장과 가슴에 박힌 말은 무엇인가? “우리 각자가 말의 주인이 되어 삶의 철학을 늘 탐구할 때라야 막말, 선동, 혐오발언이 난무하는 정치 언어에 놀아나지 않게 된다.”(p.28)

책의 내용에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을수록 이 책은 성공이다. 책을 집어 던질 정도가 된다면 대성공이다. 말에 대한 당신의 고루한 생각에 균열이 갔을 테니까. 우리 사회는 말에 대한 사유가 매우 협소하다. 문법과 맞춤법을 벗어나지 않는다. 어떤 것이 맞는지를 따지는 정도. ‘맞냐, 틀리냐’
는 사유가 아니다. 이견과 논쟁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타인이 정해놓은 법일 뿐이다. 사유하기는 질문하기다. 말이 세계와 깊이 연루되어 있고 우리의 생각을 암암리에 조종한다면, 한 번 정도 시간을 내어 말을 들여다보는 것도 영 쓸모없는 일은 아닐 것이다.
나는 하나의 관점을 갖고 있지 않다. 하나의 관점을 갖고 있지 않아서 매주 글을 쓸 수 있었다. 하나의 관점만 갖고 있다면 한 편의 글만 쓰면 된다. 혹여 이 책을 읽고 글쓴이가 어떤 사람일 것이라고 예측되는 바가 있다면 오산이다. 그 사람은 이미 사라졌고, 생각은 진작에 바뀌었다. 그러니 글쓴이를 찾지 말고, 여러분 스스로 말과 글을 둘러싼 이 세계를 독창적으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언어를 탄생시키시길 빈다.
_작가의 말: 물수제비 중에서

목차

작가의 말: 물수제비

1부 말의 심장
말끄티 당신이다/ '짝퉁 시인' 되기/ 타인을 중심에/ 질문 안 할 책임/ '짝퉁 철학자' 되기
애정하다/ 뒷담화/ 인기척/ 말하기의 순서/ 인쇄된 기억/ 현타/ 3인칭은 없다/ 생각보다
하나 마나 한 말/ 날아다니는 돼지/ 말의 이중성/ 언어의 퇴보/ 저지르다/ 이단/ 하루아침에
동서남북/ 사과의 법칙/ 끝/ 잃어버린 말 찾기/ 고유한 일반명사/ 그림과 말/ 아이들의 말
괄호, 소리 없는/ 주접댓글/ 허하다/ 1일1농 합니다

2부 말의 품격
고백하는 국가/ 죄송하지만/ 얼음사전/ 999대 1/ 의미의 반사/ 차별금지법과 말/ 그래서 어쩌라고
예쁜 말은 없다/ 계집과 여자/ 효녀 노릇/ 허버허버/ 역겨움에 대하여/ 고양이 살해/ 불교, 경계를 넘다
고쳐지지 않는다/ 말을 고치려면/ 말의 바깥/ 거짓말/ 어이, 택배!

3부 말의 경계
1도 없다/ 말 같지 않은 소리/ 적과의 동침/ 짧아져도 완벽해/ 노랗다와 달다/ 뒤죽박죽/ 말썽꾼, 턱스크
자서전을 쓰십시다/ 그림책 읽어주자/ 국어와 국립국어원/ 한글날의 몽상/ 국가 사전 폐기론
맞춤법을 없애자(1)/ 맞춤법을 없애자(2)/ 맞춤법을 없애자(3)/ '맞다'와 '맞는다'/ 질문들/ 언어학자는 빠져!
공공언어의 주인/ 어미 천구/ 한글의 역설/ 불꽃의 비유/ 진격의 꿔바로우/ 없다/ 비는 오는게 맞나
직거래하는 냄새/ 뉴노멀/ '사흘' 사태/ 왜/ 말, 아닌 글자/ 외로운 사자성어/ '일'의 의미/ 고급 말싸움법
나만 빼고/ 말의 아나키즘/ 큰일

4부 기억과 연대, 그리고 말하기
돼지의 울음소리/ 공교롭다/ 막말을 위한 변명/ '영끌'과 '갈아 넣다'/ 국물도 없다/ 이름 바꾸기/ 형용모순
'5.18'이라는 말/ 4.3과 제주어/ 문자와 일본정신/ 일본이 한글 통일?/ '공정'의 언어학/ 은유 가라앉히기
온실과 야생, 학교/ 말과 유학생/ 일타 강사/ 시간에 쫓기다/ 다만, 다만, 다만/ 백신과 책 읽기/ 비계획적 방출
기억과 말

본문중에서

말의 성패는 말끝에 달려있다. (...) 특히 어미를 어떻게 쓰는지 보면 그 사람의 마음 상태, 성격, 타인과의 관계, 지위가 드러난다. 친할수록 어미를 일그러뜨려 쓰거나 콧소리를 집어넣고 사투리를 얹어놓는다. ‘아웅, 졸령’ ‘언제가남!’ 친하지 않으면 ‘-습니다’를 붙인다. 학생들과 친구처럼 지내봤자, 결석을 통보할 때는 ‘이러이러한 사유로 결석하게 되었다’ 하는 식으로 메일을 보낸다. (...) ‘패랭이꽃도 예쁘게 피고 하늘도 맑아 오늘 결석하려구요!’라는 메일을 받는 게 평생소원이다. 세월이 지나면 말끝이 닳아 없어지기도 한다. ‘어디?’ ‘회사’ ‘언제 귀가?’ ‘두 시간 뒤’. 말끝이 당신이다.
--- pp.19-20

문법과 비문법, 질서와 무질서, 체계와 비체계 사이에 서는 일은 언어의 가능성을 넓힐뿐더러 세계의 변화 가능성을 도모하는 수련법이다. 이렇게 자신을 말랑말랑하게 만들고 유연한 자세로 세상을 다르게 보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세상은 새롭고 싱싱한 언어들로 채워질 것이다. 얕은 수법이지만, 반복할 수만 있다면, 누가 알겠는가. 당신 안에서 시인이 걸어 나올지.
--- pp. 21-22

말하기는 권력이다. 말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권력자다. (...) 권력자의 말하기는 겉으론 아닌 척해도 결국 명령이다. 출근할 때 신고 온 운동화를 본 상사가 “운동화가 편한가요”라고 물으면, 직원은 다음날 구두로 갈아 신을 것이다. (...) 그래서 어른은 질문을 자제할 책임이 있다. 질문하지 말고 감탄하라. “하늘이 높구나.” “그새 풀이 많이 자랐네.” “이렇게 하면 밤이 모양 나게 잘 깎여.” “전을 망가뜨리지 않고 뒤집는 방법을 알려주마.” 질문은 젊은이들의 몫이다.
--- pp.25-26

'인기척‘. 사람이 있음을 알게 하는 소리나 기색. (...) 모든 것과 단절되고 고립된 사람에게 인기척은 숙인 고개를 들게 하고 처진 다리에 힘을 넣어준다. 그럴 때 인기척은 신호의 차원을 넘어, 진정한 인간성을 추구하는 일이자 새로운 관계 맺음을 향한 은유다. 80년 5월 새벽의 광주, 서슬 퍼런 어둠 속에서 인기척을 그리워하던 사람들을 거듭 기억한다. 나는 누구에게 인기척인가.
--- pp.33-34

비난과 낙인의 위험을 감내하고 최대의 용기를 내어 국가에 말을 거는 개인이 늘고 있다. 변희수 하사의 고백을 대하는 국가의 태도는 역시나 비루했다. ‘불허, 나가!’라고 매몰차게 쏘아붙였지만, ‘전례’를 찾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국가는 이번 ‘첫’ 사례 앞에서 군인(사람)의 의미를 확장할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결국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백하는 국가는 고백하는 개인들의 눈물 없이는 불가능한 꿈인가 보다.
--- pp.83-84

차별금지법은 성별, 연령, 장애, 성적 지향, 인종, 종교 등을 이유로 한 모든 차별과 혐오를 금지하는 평등법이다. 법 제정을 주장하는 이들이 ‘말’의 문제를 함께 다루는 것 자체가 의미심장하다. 차별은 법 이전에 말과 닿아있는 낱낱의 삶과 경험의 영역에서 일어난다. 차별은 날마다 무의식적이고 비의도적으로 관철된다. 가장 흔한 흉기가 말이다. (...) 차별과 혐오가 그랬듯이 ‘모두를 위한 평등’도 말에서 출발한다.
--- pp.93-94

민주사회에서 언어순화는 불가능하다. 말은 스스로 굴러가게 놔두는 게 상책이다. 말은 퇴행하지 않는다. 그저 달라질 뿐. 지금도 잘 굴러가고 있다. 공공언어를 인권과 평등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걸 반대할 이유는 없다. (...) 언어는 순화의 대상이 아니다. 자제의 대상일 뿐.
--- pp.111-112

1일 3교대 노동자는 ‘갑반, 을반, 병반’ 중 하나에 속해 일한다. 갑을은 일하는 순서다. (...) 예전에 아파트 주민들과 경비원들이 자신들은 대등한 관계라면서 근로계약서를 ‘동행 계약서’로 바꿨다.(...) ‘정규직 안 돼도 좋으니 더 죽지만 않게 해달라’는 노동자들 앞에서 ‘갑을’을 ‘동행’으로 바꾸자는 ‘말’은 얼마나 한가한가. 말에 민감할수록 말의 바깥을 봐야 한다. 굳이 고른다면, ‘굴종적인 동행 관계’보다 ‘대등한 갑을 관계’가 낫다.
--- pp.116-117

얼마 전 택배노동자들이 택배 차량의 아파트 지상도로 출입금지를 풀어달라며 기자회견을 했다. 아파트 주민이 이들을 향해 시끄럽다며 “어이, 택배”라고 불렀다. (...) 호명은 누군가를 불러 세운다는 점에서 소통의 출발점이자 상대에 대한 규정이다. 그 짧은 호명 안에 당신의 품격이 담긴다.
--- pp.119-120

모든 것을 다 쏟아붓는다는 뜻으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이나 ‘갈아 넣다’라는 말을 곧잘 듣는다. 장롱 밑에 굴러 들어간 동전까지 탈탈 털어 집을 사거나 투자를 할 수는 있지만, 영혼까지 끌어모으고 갈아 넣어서 뭘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혼을 담는 시공’이라는 건설 광고판을 보며 들었던 죽음과 두려움의 정서와 겹친다. (...) 영혼마저 일에 갈아 넣어야 하는 사람들. 매 순간 모든 걸 걸어야 하는 사회. (...) 뼈도 힘도 영혼도 어디다 빼앗기거나 갈아 넣지 말고 고이 모시고 집에 들어가자. 세상이 허풍 떠는 말을 닮아간다. 허풍이 현실에서 벌어지면 십중팔구 비극이다.
--- pp.20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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