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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라는 거대한 놀이터를 속에서 호모 루덴스의 하루가 시작된다!
자주 혼자서, 때론 둘이서, 종종 여럿이서 여행 다닌 경험을 엮은 놀이기록
《돌았냐? 태양을 굴리며 지리산 둘레길을》에 이은 구연미의 두 번째 에세이

《호모 루덴스의 하루》는 걷기 좋아하고 해찰하기 좋아하며 글로 기록 남기기를 꾸준히 하는 구연미의 놀이기록집이다. 밖으로 나가 두발로 걸으며 온몸으로 느끼는 모든 경험이 저자에겐 놀이와 다름없다. 여기에 글쓰기로 놀이를 확장한다. “기록하지 않는 날들은 내 생에 없다.”고 말하며 꾸준히 기록해준 저자 덕분에 우리도 그가 그린 풍경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바깥으로의 외출이, 먼 곳으로의 떠남과 머무름이 유독 쉽지 않은 지금, 그래서 더욱 애틋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떠나야만 알아채는 일상의 소중함, 조건 없이 맞닥뜨리는 따뜻한 환대, 때로는 자연에 압도되는 선한 두려움까지……. ‘호모 루덴스’가 그려낸 다각적인 풍경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면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는 묘한 설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글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드는 독립출판사. ‘글 쓰는 이’라는 사람을 지칭하는 명사이자, ‘글이 좋아서, 글이 예뻐서, 글이 고파서’처럼 글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다. 책이라는 물성의 아름다움, 창작물의 가치 존중, 인간적인 배려를 잊지 않으려 한다.

프롤로그

Chapter 1. 혼자 떠나며

01 물과 함께 춤을 Kyushu, Japan
봄비와 함께 춤을
노천 물과 함께 춤을
사케와 함께 춤을

02 별유천지 태항산 Taihangshan, China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라면
신의 주제를 누가
별유천지 태항산에서

03 나 그리고 그대 Hue, Hoi An, Da nang, Vietnam
다낭에서 무소의 뿔처럼
호이안에서 신나게
후에로 가는 길 위에서
매 순간 기쁨과 즐거움을

04 골든 선샤인 불국토 Yangon, Mandalay, Bagan, Myanmar
미얀마 양곤행 비행기에서
부처님의 성지, 바간
파고다, 파고다, 파고다
만달레이에서 나는 지금 살아있다
인레호수의 인따족
인데인 유적지
양곤 황금대탑, 쉐다곤 파고다

05 맨 처음 나 홀로 Jiuzhaigou, China
비록 힘들고 지치더라도
로비의 커다란 마니차 앞에서
표현할 수 있는 물 색깔이란
파스텔톤의 영롱한 물빛

Chapter 2. 둘이 손잡고 걸으며

06 포상휴가 까오, 슈웅! Kaohsiung, Taiwan
포상휴가 여행, 까오슝
타이난에서
아리산 편백숲길
불광사와 연지담과 치진섬과 보얼 특구
더할 나위 없었다

07 고맙다, 함께여서 Cha ma gudao, Hotiaoxia, Yulong Xueshan, China
차마 그리던 차마고도를
진정한 실존이란
고맙다, 함께여서
비안개 속 옥룡설산 트레킹
나시족의 여강고성

08 신들의 나라, 인디아 North India
델리공항에서 느림의 미학을
내 삶이 내 메시지다
인도의 길 위에서 인내를
바라나시여! 에라, 모르겠다
상상 초월의 카주라호 사원
타지마할, 그 지독한 사랑
핑크빛 자이푸르의 추억들
오늘은 델리에서
바닥에 드러누워 거지처럼
Chapter 3. 여럿이 함께 노닐며

09 지극한 순간들 Chiang Rai, Chiang Mai, Thailand
에피타이저
코스요리 1
코스요리 2
코스요리 3
디저트

10 I ♥ ML Malaysia
열심히 일한 자여, 떠나라!
굿모닝, 말라카!
탈속적이거나 세속적이거나
열대 정글로 고, 고, 고!
쿠알라룸프르와 푸트라자야

11 펀펀한 쿤밍 Kunming, China
펀펀한 팀 결성
펀한 첫째 날
펀펀한 둘째 날
펀펀펀한 셋째 날
펀펀펀펀한 마지막 날

에필로그

내 재킷 등판에는 ‘I am free’라 적힌, 귀여운 사람 형상이 디자인되어 있다. 딱 내 모습이다. 주야는 내가 짐을 부치고 출국할 때까지 곁에 있어 준다. 가벼운 뽀뽀를 하고 헤어진다. 내 가슴 속엔 늘 그가 있어 외롭지 않다. 이번이 다섯 번째 혼행이라 두려움은 별로 없고 그저 자유롭기만 하다. - 41쪽

내 건강은 내가 지킬 수밖에 없다. 내가 팀원이자 곧 팀장이니까. - 61쪽

계단이 미끄럽다. 조심해야지. ‘조심(操心)’은 ‘마음’을 ‘잡다’라는 뜻이니, 난 바로 그 조각이 주는 메시지를 명심하고 있는 거다, 허허. 어, 또 ‘명심(銘心)’은 ‘마음’에 ‘새기다’는 뜻인, 난 또 그 메시지를 바로 실행한 거네. 난 아무래도 실행력이 너무 뛰어난 것 같아. 자화자찬, 혼자 웅얼거리며 간신히 어둡고 힘든 동굴 길을 빠져나왔다. 동굴 밖이 천국이다. 내 맘속에서 밝고 시원한 바람이 분다. - 77쪽

오래된 것은 그만큼 오래 살아남았다는 거다. 강한 것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 강한 것임을 내원교 앞에서 확인한다. - 79-80쪽

어김없이 새벽 일찍 일어나 한 시간가량 기행일기를 쓴다. 영어로 서툰 일기를 쓰는 것은 재미있고 흥분되는 놀이다. 기록한 날들만이 내가 살아낸 날이라 여긴다. 그래서 아마 살아있는 동안은 어떤 형태로든 내 삶을 기록할 것이다. 일기든 시든 낙서든 뭐든 간에. - 140쪽

휴식, 휴지, 쉼, 멈춤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치밀하게 계획하고 열정적으로 실행하여 소기의 성과물을 냈을 때, 우리는 보통 저 사람 참 일 잘한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잘 쉬기’가 있음을 종종 간과한다. 적기(適期)의 휴식은 제대로 수행한 일의 필요조건이다. 제때 쉴 줄 몰라 낭패를 당했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이겠나! 몸이 좀 쉬라고 경고를 수차례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앞만 보고 달리다 큰 병을 얻은 경험이 있지 않나! 멈추는 힘은 어쩌면 나아가는 힘보다 더 커야 하지 않을까! 잘 멈추고 쉴 줄 알아야 잘 나아갈 수 있다. 셈은 참으로 여축이 없다. 쉬면서 에너지를 충전해야 생존도 창의적인 생산도 가능하다. - 153-154쪽

고정불변의 인간은 없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존재하므로, 서로는 서로에게 필연적인 생의 에너지가 될 수밖에 없다. 우울하거나 외로운 이들이여! 활발발(活潑潑)한 시장 골목으로 들어가라. 어깨를 부딪쳐 가며 걸어 보라. 구경하면서 걷는 발걸음은 들뜨고 절로 호주머니 속 잔돈들은 짤랑이기 시작한다. 시장통을 누비는 동안, 나이 든 나는 사라지고 호기심 가득 한 어린 소녀만 있다. 음식 만드는 소리와 다양한 향채와 기름 냄새와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행복은 현재 진행형이고 우리는 늘 찰나에 존재할 뿐이다. - 157-158쪽

1대 나무는 속이 텅 빈 채 삭은 고목이 되어 붉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그 텅 빈 속을 통로로 기꺼이 내놓는다. 아낌없이 준다, 조부모 나무는. 2대 나무는 그 등걸 위에서 다시 뿌리와 줄기를 뻗어 내리며 자라고 있다. 2대 부모 나무의 등에 목마를 타고 어린 3대 손자 나무가 풋풋하게 하늘로 뻗어 있다. 3대 신목에 기생하는 잡목과 이끼들은 3대를 엮어주는 단단한 강삭이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산다. 아리산 나무들의 자생력에 기가 막힐 뿐이다. - 166쪽

최고 장수 동물, 바다거북은 이백 년 정도 산다 한다. 그런데 나무는 스케일부터 비교 불가다. 세계 최장수 나무는 오천 년 이상을 산, 미국 캘리포니아 화이트산 브리슬콘 소나무라 한다. 놀랍게도 학자들은 이 나무의 장수비결이 스트레스라 한다. 3,000미터 이상의 산꼭대기, 혹한의 기온과 매서운 바람, 부족한 공기와 적은 강우량 등 극한의 생존 조건이 다 스트레스다. 이걸 견뎌냈기 때문에 장수한 거란다. 나무에게서 또 일침을 맞는다. 스트레스도 생의 원동력이 된다는 걸, 그리고 그걸 견디어낼 때 더 단단해진다는 걸. - 167-168쪽

녹슨 다양한 컬러의 쇳조각을 퀼트처럼 이어 붙여서 만든 거대한 캐리어 조형물도 꽤나 매혹적이다. 캐리어 바퀴는 녹슨 기차 휠을 붙인 거고 캐리어 손잡이에는 녹슨 너트와 볼트로 만든 새들 형상이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앉아 있다. 한 컷 찍는다. 이 조형물은 내가 지향하는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예사롭지가 않다. 노마드로 늘 새로운 곳을 동경하면서 새처럼 창공을 훨훨 날고 싶어 하는 나를 그대로 드러내 주는 작품이다. 이번 여행에서 건진, 또 하나의 손꼽히는 인생 픽이 될 것 같다. - 191쪽

바다가 서서히 석양으로 물들어간다. 해변 카페 통유리창에 멋진 풍경화 한 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해 질 녘 붉은 하늘을 바탕으로 바다 저편 치진섬과 빌딩들이 무채색 스카이라인을 드리우고 있다. 금빛으로 일렁이는 바다와 해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검은 실루엣들로 이루어진 풍경화는 지금 이 순간 자연이 만들어낸 하나뿐인 명작이다. 넉 놓고 바라본다. 어느 화가가 이다지도 멋진 그림을 그려낼 수 있겠나! 신의 주제로 만든, 노을 지는 까오슝 바다 풍경화를 완성한다. 알 수 없는 느꺼움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 192쪽

산길은 인생과 같다. 죽어라 오르막길만 있는 게 아니다.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우리를 조금씩 단단하면서도 여유롭게 만들어준다. 더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포기하는 것이 잘한 선택이기도 하지만. 몸 상태가 나아지니 주변의 풍경이 더 잘 보인다. 사계절이 공존하는 듯한, 차마고도 좁은 길 위에서 설산을, 대숲을, 다양한 들꽃들을, 통나무 다리를, 청청한 말방울 소리를 내며 걷는 말과 마부를, 길 위로 쏟아져 내리는 계곡물을 만난다. 차마고도는 무대고 모든 자연물과 우리는 각자 주연 배우가 된다. 조물주가 감독한 한 편의 영화가 길 위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 206쪽

소나기가 뜨거운 대기를 식혀 준다. 인디아 게이트 맞은편에 있는 대통령궁을 빗발치는 차장을 손바닥으로 닦아내며 바라본다. 대통령궁을 지키는 젊은 병사들이 비를 피해 막사 안에 있다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젊은 웃음을 빗방울처럼 날리며 손을 마구 흔들어준다. 우리도 손을 흔든다. 그저 한 번 스쳐 지나가는 인연인데 그들의 웃음 가득한 환대가 고마울 따름이다. - 239-240쪽

동서양 어디에서나 물은 생명과 순수와 정화를 상징하나 보다. 우리는 그저 맨발만 살짝 담가 본다. 만족(滿足)이라는 말이 글자 그대로 발을 채우는 것이라면, 발이라도 담갔으니 조금이라도 정화되었을 거라는 자족지심을 가져본다. - 241쪽

작열하는 태양, 찻길 따라 끊임없이 널려있는 쓰레기들,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 도로 가운데 서 있는 퀭한 눈의 소들, 앙상한 몸의 떠돌이 개들……. 신호등 없는 도로 위에서 자동차, 릭샤, 오토릭샤, 자전거, 오토바이 들이 서로 뒤엉켜 내지르는 클랙슨 소리가 고막을 뚫고 머리통을 흔들어댄다. 여기가 바로 인도구나! 이런 최악의 무질서 속에서도 그들은 그냥 각자의 길을 간다. 사람은 사람대로, 차는 차대로, 소는 소대로, 개는 개대로. 가다가 막히면 그 자리에 그냥 서 있을 뿐. 그게 다다. 그런대도 이 거리는 죽어 있지 않고 생생히 살아있다. 아니, 각자 자기 생의 무게를 지고 걸어가고 있다. 먼지와 소음과 공해 속에서도 신들의 나라에 사는 인도인들의 눈매와 미소는 생뚱맞게도 아름답기만 하다. - 243-244쪽

인도의 길 위에서 인내를 배운다. 기다림도 사랑임을 깨닫는다.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차 안에서 차가 빨리 가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는 건 의미 없다. 기다리면서도 인도를 느끼면 된다. 때가 되면 차는 가고, 때가 되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가, 내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감사하는 마음이 자꾸 든다. 바라나시 길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나를 조금씩 철들게 한다. - 245쪽

단언컨대 여행은 가장 높은 가성비에다 가심비까지 더한 멋진 놀이라 생각한다. 행복한 시간을 세 배로 늘려준다. 여행은 떠나기 전 계획하고 준비하는 단계에서는 설렘이 가득 고인 시간으로 시작된다. 내겐 거의 의식(儀式)에 가까운 시간이다. 그리고 집 떠나 낯선 곳에서 처음 보는 날것을 접하며 호기심 가득 발라서 맛보는 지극한 순간들로 이어진다. 이후 일상으로 돌아와 추억을 되새김질하고 곱씹으며 그 맛을 기억하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시간을 갖게 된다. 여행은 지구별 나그네들 짧은 생의 시간을 확장하는 놀라운 힘을 지니고 있다. - 295쪽

두려움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일 뿐이다. 난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뭐, 죽기밖에 더 하겠나! 죽음 뒤의 일은 잘 모르니, 지금 하고 싶은 것은 바로 하자는 주의다. - 311쪽

방랑자이면서 유목민들의 후예인 우리는 모두 돌아가기 위해서 길을 떠난다. 아쉬움과 즐거움과 자족감을 가득 안고 각자의 삶터로 선선히 돌아간다, 다시 만나서 떠날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 3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