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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 2년 전쟁 12년 논쟁[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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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국제정치적 차원에서 바라본
한ㆍ중ㆍ일 삼국의 유일한 전면전
‘임진왜란’에 대한 새로운 통사通史

전쟁의 징후부터 주둔군의 완전 철수까지
군사 대결 막전막후에서 펼쳐진
외교 접촉과 정책 대결의 리얼 역사 드라마

임진왜란은 한ㆍ중ㆍ일 삼국이 전면전을 벌인 유일한 사례다. 그간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국제질서의 메커니즘을 연구해온 정치학자 김영진 교수는 전쟁과 같은 중대 상황에서 삼국의 관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 살펴보고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연구에 착수했다고 말한다. 이 책은 국제정치 차원에서 4백여 년 전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간 ‘동아시아 대전(大戰)’에 대한 그의 새로운 통사적 시도다.
저자는 ‘7년 전쟁’으로 기억되는 왜란에 대한 일반적 통념에서 벗어난다. 전시 상황은 1589년 6월 대마도주의 조선 방문과 통신사 파견 요구로부터 1600년 9월말 명군 지휘부의 철수까지 햇수로 12년. 이 기간 군사적 측면은 물론, 국내 정책 논의와 외교 및 국가간 협상 등 왜란의 비군사적 측면에 저자는 각별한 주의를 기울인다. 전쟁의 징후로부터 주둔군의 완전 철수까지 군사 접전의 막전막후에서 펼쳐지는 외교전과 정책 대결의 양상들은 입체적으로 재구축되고, 군사 대결 너머에서 전쟁의 향배와 국제관계의 변화를 결정지어온 것들의 의미는 재확인된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임진왜란 연구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못했던 다양한 정책ㆍ외교관계 문서들에 대한 치밀한 접근과 분석이 압권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의 변화가 심상찮은 이때, 이 책이 던지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성균관대학교출판부 학술기획총서 ‘知의회랑’의 열여덟 번째 책.

출판사 서평

국제정치학자가 전란 통사를 쓴 까닭

임진왜란을 다룬 책은 적지 않다. 그럼에도 여기 또 한 권의 책을 더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더구나 저자는 역사학자도 아닌 국제정치학자다.
저자는 지금까지 임진왜란 연구가 주로 개별 국가의 입장에서 진행되었다고 지적한다. 우리 경우에는 주로 국난 극복을 위한 투쟁 위주로 기술되었고, 그 결과 의병이나 이순신과 같은 영웅들의 활약에 초점이 맞춰졌다. 일본의 경우에도 전쟁 수행 자체에 초점이 두어졌다. 그 결과 명나라의 역할에는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더구나 명나라 자료들은 물론 조ㆍ명관계 관련 자료들도 거의 활용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는 명나라의 군사적 개입은 강조되었지만, 조선이나 일본 내부의 사정에 대해서는 그만큼 관심이 적었다. 이렇게 전란 당사자의 입장에 따라 주안점이 어긋나버린 연구의 편중성에 대해, 저자는 진실 왜곡의 여부를 떠나 임진왜란에 대한 균형 잡힌 통사적 기술 자체가 지연되어왔다고 평가한다. 그러하여 근대 이전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를 고찰하는 데 자국중심주의와 패권주의적 입장을 지적ㆍ경계하면서, 동시에 민족주의도 국수주의도 아닌 냉정한 태도를 견지한 채, 임진왜란 12년사를 재구축해나가기 시작한다.


2년 전쟁 12년 논쟁
임진왜란은 왜 7년 전쟁이 아닌가

임진ㆍ정유왜란은 종종 7년 전쟁으로 간주되지만, 실제 군사 대결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임진왜란 시기 그것은 대략 왜군이 부산을 공격한 1592년 4월 중순부터 이듬해 6월 하순 진주성 학살까지 1년 수개월이다. 이후 명군과 왜군 대다수가 철수하고 일부 왜군이 남해안에 주둔했다. 정유재란 시기 군사 대결 기간은 대규모 왜군이 들어온 1597년 5월부터 이듬해 1월 초 울산전투 종료까지와 조ㆍ명연합군이 전면 공격에 나선 8월부터 왜군이 철수한 11월 말까지 약 10개월이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해당 기간은 약 2년 정도다.
그렇지만 저자가 주목하는 상호 비군사적 접촉 기간은 그보다 훨씬 길다. 그 시작은 대략 1589년 6월 대마도주의 조선 방문과 통신사 파견 요구 시점이고, 전시 상황의 종료는 1600년 9월 말 명군 지휘부의 철수다. 무엇보다 군사 대결 중에도 각종 정책 논의와 외교 접촉은 끊이지 않았다. 이렇게 본다면, 그 기간은 햇수로 12년에 이른다. 이 글의 부제가 ‘2년 전쟁, 12년 논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임진왜란을 프로파일링하다
군사 대결과 그 너머에서 작동했던 모든 것
그리고 미해결의 문제를 푸는 단서들

이 책은 임진ㆍ정유왜란 당시 주요 사건ㆍ전투들의 편년사와 전란의 시공에서 활약한 역사적 인물들의 정치외교 열전을 함께 직조해나간 역사 드라마인 동시에, 무엇보다 전면과 이면에서 이 전쟁을 작동시킨 모든 힘과 관계의 실체를 프로파일링한 수사 기록이기도 하다.
무릇 전쟁은 단지 군사 대결에만 그치지 않고, 여러 정책 논의와 협상에 의해 그 방향과 결과가 정해지는 중대 사태다. 전쟁을 연구 대상으로 삼을 때, 단순히 그 결과만이 아니라 관철되지 않는 주장이나 정책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아가 전쟁 연구는 시기적으로 군사 대결 기간에 국한하지 않고, 개별 사안과 연동되는 각국의 입장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만 전쟁의 전개 과정에 대한 입체적인 이해가 가능해진다. 이 책의 기본 입장은 그렇게 세워졌으며, 삼국의 원자료들에 대한 정밀한 분석과 정리가 뒤따랐다.
이를테면, 명의 군사적 지원 또는 개입이 왜군 퇴치에 크게 기여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사건을 재구축하기 위해 저자는 군사 개입의 목적, 시점, 규모, 방법, 종전에 따른 철수 그리고 그에 대한 조선의 입장과 대응 등 여러 이슈들을 세부적으로 검토했다. 또한 이와 관련되는 사건으로서 명과 일본 사이에서 진행된 강화(講和) 역시 그 배경과 과정에 면밀한 주의를 기울였다. 저자는 이렇게 분석적인 전 과정을 통해서야 비로소 조ㆍ명관계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마찬가지로 전쟁 과정에서 일본의 위상 문제도 치밀하게 분석되었다. 통상 일본은 조공ㆍ책봉질서에서 벗어나 있었다고 간주되는 경향에 대한 문제의식의 발동이었다. 실제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침략은 중국 중심의 질서에 대한 도전을 의미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최초 계획에서 그가 명ㆍ일간 교역이 이뤄지던 중국 영파(寧波)에 중심을 둔 국제질서를 상상한 까닭은 무엇인가, 또 일찌감치 조선조차 정복이 불가능해졌을 때 그가 명 황제의 책봉에 만족한 것은 무슨 의미인가, 과연 그는 해당 질서 관념에서 벗어난 것인가 등등. 이에 저자는 전쟁의 각 단계와 상황에서 노정된 일본의 정책들을 면밀하게 분석함으로써 조ㆍ일관계를 포함한 당시 동아시아 국제질서에 대한 어렴풋한 관념들을 실제화해나간다.


전근대 전쟁사를 들여다보는 국제정치학자의 입체경(鏡)
-“오직 사료(1차 자료)로부터”

통사적 접근 그 자체의 난관을 저자는 이 책에서 오늘날 용이해진 자료접근 방식으로 돌파했다. 이제 언제든 원하는 자료원에 접근할 수 있고, 더욱이 키워드 검색까지도 가능해진 연구 환경을 적극 활용한 것이다. 임진왜란 연구의 기초 자료인 『선조실록』이나 『신종실록』뿐 아니라 당대 여러 인물들의 문집 등 수많은 자료들이 책장에서 뽑아 쓰듯 소환되었고, 장기간에 걸친 사건들의 입체적 구성은 끊임없이 점검되었다.
사실 통사적 기술에서 새로운 자료의 발굴이나 활용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존 자료들을 다각도로 검토하는 일이다. 그래야만 사건에 대한 정확하고 연속적인 기술이 가능하다. 특히 소통이 많았던 조선과 명의 자료들에 대한 상호 점검은 매우 중요했다. 『선조실록』, 『신종실록』 등의 정사 기록은 관련 인물들의 주장이나 경험에 대한 진술 등으로 보완했으며, 이를 위해 당대 정책 담당자였던 조선의 관료들이 남긴 수많은 문집들이 소환되었다. 정책의 결정자나 수행자로서 유성룡의 『징비록』이나 이순신의 『난중일기』 등은 물론이거니와, 이호민(李好閔), 신흠(申欽), 최립(崔?) 등과 같은 공문서 작성 전담자들의 문집들, 그리고 명과 일본을 다녀온 사신들의 보고서도 적재적소에 활용되었다. 이러한 개별 자료들의 집합적 검토는 그 자체로 성과가 적지 않았다.

-“타국의 새로운 발굴 사료들까지”

여기에 더해, 그간 적극적으로 도입되지 못한 자료들에 대한 접근ㆍ분석ㆍ활용이야말로 이 책의 미덕이다.
먼저 임진왜란 이듬해부터 정유재란 직전까지 3년 반 동안 명군의 조선원정 총책임자였던 손광(孫鑛) 총독의 문집 『요강손월봉선생전집(姚江孫月峯先生全集)』(1814)이다. 이 문헌에는 당시 그가 명 조정의 주요 대신이나 황제에게 썼던 편지와 보고서들이 들어 있다. 그는 그간 중국에서 문장가로 연구된 바 있으나, 조선원정과 관련하여 국내에서 활용된 적은 없었다. 한 국내 대학의 고문헌자료실에서 이 자료를 발견해낸 저자는, 이것이 손광 재직 시기 전쟁의 전개와 조ㆍ명관계를 이해하는 데 없어선 안 될 귀중한 자료임을 강조한다.
두 번째는 정유재란 시기 약 1년 반 동안 손광에 이어 조선 문제를 총괄했던 형개(邢?)의 문집 『경략어왜주의(經略禦倭奏議)』다. 중국에서 후대에 발굴되어 2004년에 처음 공개된 것이다. 이 자료는 국내에 소개되었으나 연구에 제대로 활용되지는 못했다. 돌이켜보면 명의 자료로 이제까지 일부라도 활용되는 것은 『신종실록』과 맨 처음 명의 조선원정을 책임졌던 송응창(宋應昌)의 『경략복구요편(經略復國要編)』 정도다. 또한 조선과 명 사이에 오갔던 외교문서들의 모음집으로 『사대문궤(事大文軌)』(1619)도 있지만, 마찬가지로 거의 활용되지 않았다. 1925년 조선총독부의 조선사편수회에서 재간행하기도 했으나 일부 기간의 자료들이 망실되어 있다. 그럼에도 주요 사안들을 둘러싼 조ㆍ명의 협력과 갈등을 드러내주는 자료임이 분명하다.
한편 일본의 1차 자료는 조선원정에 직접 참여했던 다이묘 가문에서 출간된 문서모음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서 등 공식적인 문건들에 집중되어 있다. 사실 그간 일본의 임진왜란 연구는 활발했으며, 위 자료들은 국내 연구에도 인용되어 왔다. 다만 저자는 전쟁의 전체적인 과정에서 관련 자료들이 충분히 이용되었는가에 대해 의문을 표한다. 다행히 얼마 전 일본의 임진왜란 연구 권위자인 기타지마 만지(北島万次)가 『풍신수길조선침략관계사료(?臣秀吉朝鮮侵略關係史料)』(2017)를 편집하면서 관련 문서들을 상당 부분 수록했다. 중세 일본어로 되어 있어 번역하는 데 어려움이 없지 않았지만, 저자는 관련 연구들을 원용하여 이 책에서 최대한 활용했다.


16세기 동아시아 대전 이후를 관통하는
21세기 패권전쟁에 대한 서늘한 인사이트

이렇게 지난한 경로를 거쳐 재구축된 전란 통사를 앞에 두고 저자는 다시 현재적 출발점에 선다.
한반도는 지정학적 위상으로 인해 주변 강대국의 영향력 확대 시도나 침략 가능성이 상존해왔다. 특정 동맹국에 의존한 안보는 순간 효과적일 수 있었으나 동시에 구조적인 불안정성도 엄존했다. 강대국간 세력 변화나 세력 전이는 필연적으로 곤혹스런 선택을 강제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선택을 둘러싸고 늘 국론은 분열되고, 그로 인해 기본 역량조차 발휘하지 못했다. 대개 보수적인 선택으로 인해 한반도는 신흥강대국의 일차적 침략 대상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패턴은-아직 일본이 동아시아 질서를 바꿀 정도에 이르지 못했던-임진왜란 시기보다 극단적인 형태로 병자호란에서 한국전쟁까지 유사하게 반복되었다.
그러하여 저자는 대외적으로 공유될 수 있는 역량을 확장하자고 말한다. 이는 하나의 주어진 동맹이 아니라 자신의 역량과 공유된 가치를 바탕으로 다수의 지원세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최근 확대되고 있는 미중간의 패권경쟁 상황에서 양자택일은 역사의 악순환을 반복하는 것일 뿐, 궁극적 대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차

프롤로그

〈제1부 임진왜란〉

|제1장| 침략의 전야
1. 중세 동아시아 질서
2. 일본의 외교적 도전
대마도의 중재|통신사 파견에 대한 반대여론|대마도의 2차 시도|통신사 파견의 결정|통신사 파견|통신사의 귀국보고|히데요시에 대한 답변
3. 명에 대한 보고 여부
조헌의 주장|조정의 논의|유구(琉球)의 보고|명의 반응과 추가적 보고|일본 현지 본국인의 보고

|제2장| 왜군의 침략과 초기대응
1. 왜군의 화전양면 작전
침략의 개시|서울 점령과 전국 분할|임진강에서|대동강에서|여타 지역에서
2. 국왕의 피난 그리고 내부(內附)
국왕의 피난|평양 이후|분조(分朝)와 내부요청|명 조정, 내부의 거절
3. 조선과 명의 접촉
최초의 통보|두 번째 통보|명의 반응|요동의 정탐군대 파견|명의 자체 조사|요동에 대한 군사 요청
4. 조선의 반격과 전세의 균형
조선 수군의 승리|의병의 조직|경상우도|전라도 진출의 좌절|경상좌도|경기도와 황해도|함경도|진주성전투|요동군의 평양공격

|제3장| 명의 참전
1. 명ㆍ일 교섭과 조선의 대응
심유경의 조선 방문|심유경-유키나가 1차 교섭|조선의 대응|기요마사의 강화조건? 병부의 계첩|조선의 독자적 공격 방안|제2차 강화협상|송응창의 입장|강화와 평양공격
2. 명의 파병 결정
찬반논쟁|북경에 진주사 파견|북경의 섬라 사신|황제의 파병 칙서|조선의 대응|건주여진의 파병 제안
3. 명의 출병과 평양수복
송응창의 원정 준비|조선의 협력|명군의 진입|전투의 전개|조선인 참획|명군 내부 갈등|파병의 이유 쟁론

〈제2부 강화협상〉

|제4장| 벽제관전투와 명의 전략 수정
1. 벽제관전투
명군의 남하|벽제관전투와 조선군|명군의 후퇴|산동순무 손광의 진격 반대|식량과 날씨|행주대첩|함경도 왜군
2. 명군의 남하 중단과 강화
조선의 남진 요청|송응창의 입장|송응창의 조선 진입|강화의 가시화|국왕의 남하|조선 내 찬반논의|왜군의 전략변화

|제5장| 명ㆍ일 강화교섭
1. 용산회담과 왜군의 서울 철수
유성룡의 보고|강화 결과의 통보|조선의 대응|후속회담|왜군의 서울 철수|남하 왜군의 추격|수군에 내려진 지시|명 조정의 입장
2. 진주성 학살
배경|조선의 대비|진주성 학살 이후|이융 형제 사건
3. 나고야 회담과 히데요시의 강화조건
명 사절의 도일|히데요시의 지침|「대명과 일본의 화평조건」 7개조|사절의 귀국|심유경과 소서비의 요동행
4. 명군 잔류 협상
조선의 입장|송응창의 지정학론|조명간 논의|병부의 결정

|제6장| 강화와 조선의 대응
1. 강화반대 외교
서울수복 사은|주청사 황진|사은사 정철|송응창의 세자 남하 요구|사헌의 조선 방문|사은사 김수
2. 강화협상의 중단
히데요시 항복표문|계요총독 고양겸의 강화론|강화논의의 중단
3. 강요된 책봉 요청
호택의 파견|조선 내 찬반논의|타협안|책봉 요청 진주문|주청사 윤근수|광해군 책봉 문제
4. 조ㆍ일 교섭
배경|유정과 기요마사의 접촉|사명당과 기요마사의 4월 교섭|7월 담판|김응서와 유키나가|사명당의 세 번째 교섭|담판 이후

|제7장| 히데요시의 책봉
1. 책봉의 결정
청봉 진주문에 대한 황제의 지시|강화론의 대두|손광의 조선경리론|소서비의 북경 진입|왜군 철수의 종용|책봉사절 파견 통보|진운홍의 귀국 보고|조선의 대응|손광과 기요마사의 접촉
2. 책봉사절의 파행
책봉사절의 서울 도착|유키나가의 일본행|책봉사절의 남하|책봉사절의 지체|책봉에 대한 비판|책봉 정사의 탈주|명의 대응|조선의 대응
3. 조선통신사(근수사)
최초의 조짐|공식화|조선의 초기 대응|명의 입장|계속되는 압력|최종 결정

〈제3부 정유재란〉

|제8장| 책봉 의식과 강화의 파탄
1. 책봉 의식
책봉 의식의 거행|황신의 체험
2. 책봉사절의 보고
통신사의 귀국|통신사의 보고|요동의 손광|진주사 정기원|황신의 대면보고|명 사절의 귀국 보고
3. 조ㆍ명의 대응
황제의 강화 지시|명의 재파병 결정|고급사 권협

|제9장| 왜적의 재침과 대응
1. 강화의 재시도와 대응책
유키나가의 제안|이순신의 파직|심유경의 재활약|사명당과 기요마사의 담판|조선경리 방안
2. 왜군의 공세와 연합군의 반격
명군의 준비|왜군의 진출|조선 수군의 궤멸|왜군의 북상|파병에 대한 찬반|조ㆍ명의 반격|조ㆍ명의 갈등|울산전투|명ㆍ일간 접촉
3. 정응태의 무고
요약|양호에 대한 참소|축성에 대한 변무|조선에 대한 무고|진주사의 파견|관왕묘의 방(榜)

|제10장| 종전과 전후처리
1. 전쟁의 종결
히데요시의 사망|조명연합군의 진격|강화와 왜군의 철수|조선의 대응|대마도 정벌론|사은사의 파견
2. 명군 철수 협상
조ㆍ명의 입장|최초의 방안, 1만 5천 명|축소된 방안, 8천 명|마지막 제안, 3천 명
3. 명군의 철수
형개의 상소|명 조정의 결정|협상의 결렬|철군 결정|최후의 방안|최종 철수

에필로그
주요 사건 일지
주요 인물 소개
참고문헌ㆍ주ㆍ찾아보기
총서 ‘知의회랑’을 기획하며

본문중에서

ㆍ물론 당대에도 오래된, 하나의 통합된 국제질서는 존재했다. 중국, 보다 정확하게는 중원 지역을 차지한 정치세력이 그 질서의 중심에 있었다. 중국과 주변국들은 조공과 책봉을 통해 주종관계를 이룸으로써 안정을 유지했다. 그러나 국제질서의 제도나 규범은 평상시에는 어느 정도 원칙대로 관철되는 듯하지만, 전시과 같이 엄중한 시기에는 적나라한 힘의 관계가 그를 대신하기 마련이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근대 이전 동아시아 질서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 너머, 한 전쟁의 통사에 집중한 이유다. -‘뒤 표지글’ 중에서

ㆍ16세기 말 임진왜란은 근대 이전 한ㆍ중ㆍ일 삼국이 벌인 유일한 전면전이다. 그리고 그 전장은 다름 아닌 한반도였다. 그렇다면 왜 해당 시점에서 그러한 전쟁이 발발했을까? 사실 전쟁의 비이성적 성격에 주목한다면, 그 원인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부질없는 일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국내의 혼란을 극복하고 정치권력을 장악할 경우, 권력자들은 그 야욕을 대외로 확장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臣秀吉) 또한 후대에는 새로운 시대를 연 것으로 미화되지만, 사실 그는 조선에 보낸 국서에서 솔직하게 자신의 이름을 3국에 떨치고자 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기원전 3세기 전국시기 중국의 사상가 순자(荀子)도 인간의 본성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천하를 합해 그곳의 임금노릇 하고…… 제후들을 신하로 부리면서 천하를 하나로 만드는 것은 역시 사람의 감정이 다 같이 바라는 일이다.” -본문 15쪽, ‘제1장 침략의 전야’ 중에서

ㆍ왜군이 북상하자 명 조정은 연해 지방에 대한 방비를 강화시키는 데 집중했다. 왜군이 평양을 점령했을 때에도 조선 출정은 고려되지 않았다. 요동의 군사 2, 3천 명이 압록강을 왕래했을 뿐이었다. 당시 명은 지난 2월 영하(寧夏)에서 발생한 발배(?拜)의 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었고, 그것은 가을까지도 계속되었다. 그때까지도 명 조정에서는 조선원정 여부를 둘러싸고 논쟁했고, 부정적인 의견이 지배했다. 그럼에도 7월 중순 조승훈의 평양공격이 실패하자 좀 더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되었다. 명 조정은 많은 인적ㆍ물적 희생과 비용이 드는 파병을 피하고 일단 외교적 해법에 착수했다. 전통적으로 중국에서 외교적 교섭은 전쟁의 중요한 일부로 간주되어 왔다.
-본문 157쪽, ‘제3장 명의 참전’ 중에서

ㆍ조선은 그간의 침략과 얼마 전 진주성 학살에 대한 응징은커녕 언제 북상할지 모를 왜군을 막는 일조차 명군에 의존해야 했다. 명군을 위한 식량의 제공 등 접대의 과중한 부담은 기약이 없었고, 그와 함께 전쟁으로 파괴된 나라의 회복은 요원했다. 송응창과 이여송에게 수개월 동안 왜군의 소탕을 요청했으나, 이들은 오히려 강화에 무게를 두었다. 더욱이 강화는 조선이 배제된 채 명군과 일본 사이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그 내용을 알 수 없었다. 단지 간헐적으로 조선의 분할 등 불길한 소문만 들려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에게 남은 선택은 명 조정을 상대로 강화 중지를 직접 요청하는 것이었다. -본문 397~398쪽, ‘제6장 강화와 조선의 대응’ 중에서

ㆍ명군의 철수로 보호막이 사라지자 조선도 대안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행히 일부의 우려와는 달리 일본의 재침은 없었다. 히데요시 사후 일본에서는 여러 세력들 사이에 권력을 위한 투쟁이 재개되었다. 결국 1600년 10월 하순 세키가하라 전투(?ヶ原の?い)에서 히데요시의 잔여 세력에게 승리한 이에야스는 조선과 강화에 적극 나섰다. 그는 이듬해 6월 강화 문건 두 개와 포로 2백50명을 부산에 보내왔다. 이에 조선은 과거처럼 배척하기보다는 “사정을 직접 물어본 뒤에 향후 대책을 세울 것”을 결정했다. 그간 강화에 부정적인 입장을 탈피했던 것이다. 다만 국서의 교환과 회답겸쇄환사의 파견을 통한 공식적인 관계의 재개는 그로부터 5년이 지나서였다.
-본문 739쪽, ‘제10장 종전과 전후처리’ 중에서

ㆍ그렇다면 특정 강대국과의 동맹에 기초한 안보에 대한 대안이 있는 것인가? 물론 있다고 생각된다. 과거나 지금이나 홀로 자신의 안보를 확고히 지킬 수 있는 나라는 몇 개 되지 않는다. 대부분 각종 수단을 동원하여 방비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앞서 조선이 멸망하지 않았던 것은 기본적인 자기방어의 역량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갑작스런 침략에 대비하지 못함으로써 그 피해가 컸고, 전쟁은 장기화되었다. 그리고 조선이 대외 방비에 소홀했던 것도 대체로 종주국 명에 대한 의존에 그 원인이 있었다. -본문 746~747쪽,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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