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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얼굴을 켜는 음악 : 김향지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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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김향지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 : 2021년 04월 12일
  • 쪽수 : 116
  • ISBN : 9788954678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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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같은 세계를 맛보는 기분
얼굴과 얼굴이 머무르는 기분”

서로를 마주할 때마다 선명해지는 생의 감각

문학동네시인선 154번째 시집으로 김향지 시인의 첫번째 시집 『얼굴이 얼굴을 켜는 음악』을 펴낸다. 2013년 『현대시학』 신인상으로 등단 후 8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모아온 시편들에는 명확히 설명해내기 어려운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서로에게 가닿고자 하는 마음들이 차곡차곡 담겨 있다.

출판사 서평

그러나 나를 살게 한 지표들은
실은 아름다운 느낌들이었습니다.
_‘시인의 말’에서

시인의 말에서 엿볼 수 있듯이 세계를 이해하는 데 김향지가 주목한 단어는 바로 ‘느낌’이다. 1부 ‘느낌은 우주의 언어’, 2부 ‘한쪽 눈은 다른 세계를 봐요’, 3부 ‘밤을 빛내는 꿈’, 4부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마음을 주듯’으로 이어지는 시들에서 시인이 나누고 싶어하는 것은 구체적인 형태를 띤 것이 아닌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다. 김향지는 세심한 시선으로 세계의 미약한 기미들을 발견해내고, 그것에 대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가만히 귀기울이고, 서로의 얼굴을 말없이 들여다봄으로써만 감각할 수 있는 느낌들에 대해. 시인이 “얼굴이 얼굴을 켜는 음악을/ 가만히 귀기울이면/ 들린다”(「살랑」)고 말하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그렇게 발견한 ‘무언가’는 김향지의 시 안에서 때로 기분이 되고, 때로 빛이 되며, 때로는 음악이 된다.

휘청이는 기분
하나의 컵에 두 개의 빨대를 꽂고
같은 세계를 맛보는 기분
얼굴과 얼굴이 머무르는 기분

눈이 눈에서 떨어지며
다시 서로에게 속하지 못한 사이가 되면
빈 공간은 표정으로 채워진다

서투른 것들은 모두 떨어진다
누군가 내리는 소리가
온 마음을 메우고 있다
_「눈사람의 사랑」 부분

살랑을 위하여
서로에게 최대한
가볍게 실패하기 위하여

엉터리 입술로 살랑
발음하는 사이
색색의 손가락들이 바닥에 떨어져
부서진다
_「살랑」 부분

그런가 하면 시인은 지상과 우주,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채로운 감각과 이미지를 펼쳐놓기도 한다. 읽는 이의 감각을 뒤흔드는 이 구현(具現)의 향연은 언뜻 우리를 현실에서 유리시키려는 듯 보이지만 실은 눈앞에 마주한 당신에게 당도하기 위한 길고 긴 유랑의 궤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집이 그녀에게서
한 걸음 떨어져
거리가 생기고 시간이 생겼으므로

쉬지 못한 구두처럼 나란해진 혼잣말들이
우주와 지구에서
서로를 별처럼 보는 밤

그녀가 우주를 연다
별들이 그녀를 안는다
_「우주의 사랑」 부분

초조함이 출렁이던 잔들
바다는 혼자 번식했다
본 적 없는 새로운 바다를 낳으면서

더욱더
낯선 바다가 되었다

비라는 비는 모두 우리 위에 모여 있었다
_「바다는 모든 일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부분

그런데 이렇게 김향지의 시들을 하나하나 읽어나가다보면 어느 순간 묘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시인이 그려내는 세계가 마치 밤과 낮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인 것만 같다는 점이다. 아니, 시인에게 밤의 마음과 낮의 마음이 공존하는 것이라고 봐야 할까? 그가 “눈을 뜨고 하는 말은 자주 틀렸다/ 눈을 감고 하는 말은 자주 잊었다”(「파라다이스」)라고 한탄하거나 “무언가를 평생 읽었어요/ 무언가를 잡고 놓쳤어요”(「무언가」)라며 회한에 잠기거나 “비장미가 부끄럽고/ 가벼움이 부끄럽고”(「살랑」)라고 자조하다가도, 이내 “떠나온 모든 저녁들은 아름다웠으니까. 오늘 저녁은 슬프지만 어쨌든”(「유니버스」)이라며 희망의 기미를 발견하고 “내가 나에게/ 위로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파라다이스」)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하며 “사람들이 실은/ 아름다운 것을 늘 사랑했다는/ 기침 같은 고백일 수 있겠다”(「기침」)고 안도하는 것을 보면 꼭 그렇다. 자조와 회한 속에서도 어쩔 수 없이 기침처럼 튀어나오는 일말의 낙관처럼, 황량한 듯 보이는 세계에서도 타인에게서 희망의 빛을 발견해버리고야 마는.
이런 시인의 태도는 섣부른 비관도, 섣부른 낙관도 유보하는 조심스러움과는 또다른 형태의 신중함일 것이다. 어쩌면 김향지의 시가 우리의 마음을 깊이 건드리는 이유가 아마 여기에 있지 않을까. 가만히 귀기울여 얼굴이 얼굴을 켜는 음악을 들으면서도(「살랑」),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웃는 아이의 얼굴에서 신의 얼굴을 보면서도(「기침」), 여전히 “손은 안녕을 위하여/ 있다”(「안녕을 위하여 두 손」)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는 그의 목소리는 신뢰할 수 있기 때문에. 그의 목소리를 따라가보고 싶은 것은 그가 오직 환한 낮만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온 것이 아니라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시인이 시집의 끝에 이르러 간절히 되뇌는 “적어도 너에게는 잊히지 않기를/ 지금 폭발하는 이 숲이”(「멸」)라는 말은, 세계를 돌아서 여기까지 온 유랑의 시간만큼, 좀처럼 흩어지지 않는 단단한 여운을 남긴다.

목차

시인의 말

1부 느낌은 우주의 언어
파라다이스/ 홑이불/ 무언가/ 옛날식 잡화점이 열린다면/ 홍대 앞에서 안네의 시간을 사세요/ 유니버스/ 눈사람의 사랑/ 우주의 사랑/ 살랑/ 드라이브/ 문손잡이를 돌려

2부 한쪽 눈은 다른 세계를 봐요
기침/ 단지 여름의 끝/ 파트라슈 달리다/ 바다는 모든 일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벙커 주인은 귀를 기울이는 배경같이/ 마테르 돌로로사/ 페르소나들/ 저녁에 꾸는 메타시/ 너를 만날 수 있을까/ 복자는 십이 개월째 태동이 없었습니다/ 캐치볼/ 스무 살의 크리스마스

3부 밤을 빛내는 꿈
고집/ 지구에서 발견된 필름-흑백무성(黑白無聲)/ 지구에서 발견된 필름-하드보일드/ 지구에서 발견된 필름-모험/ 지구에서 발견된 필름-SF/ 지구에서 발견된 필름-호러/ 이상한 집/ 굿 럭, 로봇/ 편집되는 소녀/ 예각(銳角)/ 목덜미에 봄이 가장 늦게 오는 동안/ 유년의 꿈이 오늘밤에도 시간여행을 하고

4부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마음을 주듯
빅 사이즈 방주/ 미로와 함께/ 카르마/ 구애자 프랑켄슈타인/ 바다를 바라보는 공동묘지/ 어디에 있는가/ 호러 나이츠/ 나무가 견디는 법/ 메리 아침/ 안녕을 위하여 두 손/ 토끼의 센스 있는 우정/ 멸

해설| 기록하는 얼굴 | 소유정(문학평론가)

본문중에서

피아노를 치면
마치 아름다움이 있을 것 같았지
풀에 누우면
때로 집이 있을 것 같았지

라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고
쓰면
위로가 될 수 있다
-「파라다이스」에서

갈라지는 땅을 끌어안고
서로를 껴안은 채 꼼짝 않는 빙하처럼
끝없는 잠을 사랑했네

그러니까 문손잡이를 돌려
젊고 어두운 꿈을 나서며

빛이 닿는 곳
그녀의 얼굴이
지도에 옮겨가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문손잡이를 돌려」에서

어느 감정을 저쪽에 던지고
이쪽에 받았는지
아무도 설득할 수 없게 된 표정의 세계에서

고요가 단정하고
침묵은 단순하고
나는 이것말고 다 했어
그것이 나의 아름다운 솜씨
사람들이 즐겁게 사라져갔다
-「캐치볼」에서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두 손은
오래 닮는다

만나지 않을 수 없어서
만나고 손은 안녕을 위하여
있다
-「안녕을 위하여 두 손」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1983

저자 김향지는 1983년 부산에서 태어나 2013년 『현대시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성균관대학교 컴퓨터교육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영상대학원에서 영화시나리오 석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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