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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병대 이야기 : 가장 먼저 도착해 가장 나중에 떠나는 세계 최강의 전투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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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왜 미 해병대가 최강의 전투부대인가?
태평양의 정글에서 한반도의 동토, 이라크 사막에 이르기까지
극한의 환경에서 수많은 전투를 치른 미 해병대의 살아 있는 역사


미국이 세계 최강의 국가로 부상하는 동안 그 선두에는 늘 미 해병대가 있었다. 미국 독립전쟁 시기에 ‘턴태번’이라는 술집에서 창설된 미 해병대는 해상 육박전을 전문으로 하는 소규모 부대로 출발했다. 19세기에는 중남미와 지중해, 아시아 등지에서 미국의 첨병으로 활약했고(조선을 침략하기도 했다: 신미양요), 1차대전에서는 유럽 전장에서 독일군과 싸웠다. 그러나 ‘진정한’ 해병대로 거듭나는 계기는 2차대전, 정확히는 태평양전쟁이었다. 해병대는 일본군을 상대로 과달카날에서 오키나와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태평양을 종횡무진하며 맹활약했는데, 이 과정에서 과감한 적전敵前상륙작전을 감행하는 정예부대로서 성장했다. 곧이어 벌어진 한국전쟁에서 해병대는 인천상륙작전의 주역이 되었으며, 혹한의 장진호에서 처절한 전투를 치르기도 했다. 이후 베트남전쟁과 1, 2차 걸프전쟁에 참전하여 정글과 사막 등의 극한의 환경에서도 수많은 전투를 치르면서 세계 최강의 전투부대로 우뚝 섰으며, 20세기 후반부터는 전 세계 어디에나 빠르게 출동할 수 있는 신속 전개 부대로 변신하여 미국 군사전략의 최전선에 서 있다. 이 책은 미 해병대의 살아 있는 역사를 통해 그들이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끝없이 변신하여 최강의 전투부대가 될 수 있었는지를 살펴본다.

출판사 서평

왜 해병대인가?
지구의 표면은 육지와 바다로 이루어져 있고, 바다는 육지보다 훨씬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비행기가 발명되어 하늘길이 열리기 전까지, 바다는 육지와 육지 사이를 연결하는 인간의 유일한 통로였다. 그리고 전쟁으로 점철된 인류 문명사에서 95퍼센트 이상의 시간 동안 해군은 인류의 거의 유일한 전략 군종이었다. 대부분의 제국들은 바다로 나아가 패권을 잡았고, 해군은 그들의 무기였다. 오늘날 패권 국가인 미국도 마찬가지로 바다로 나아가 패권을 잡았다. 하지만 미국은 다른 제국들과는 달리 해군과 더불어 ‘해병대’라는 특수한 군종을 패권의 투사와 유지의 강력한 수단으로 삼았다.
‘산전수전山戰水戰’이라는 말은 흔히 경험이 많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런데 이 성어를 한자 뜻 그대로 풀면 산과 물에서 싸웠다는 뜻이다. 세계를 주름잡는 강대국들에게는 수많은 정예부대가 있지만 아마 미 해병대만큼 이 성어에 어울리는 부대도 없을 것이다. 제1해병사단을 위시한 미 해병대는 해군 경찰과 해상 육박전을 전문으로 하는 소규모 부대에서 시작하여, 2차대전을 거치면서 과감한 상륙작전을 감행하는 정예부대로 성장했다. 20세기 후반부터는 전 세계 어디에나 빠르게 출동할 수 있는 신속 전개 부대로 변신하여 미국 군사전략의 최전선에 서 있다.
미 해병대는 승리와 패배의 역사 속에서 한편으로는 전통을 지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늘 새롭게 혁신해왔다. 이런 계속적인 변신이 가능한 비결을 찾자면 바다와 육지를 통틀어 모든 지역에서 작전이 가능한 해병대의 양서류적 특성을 가장 먼저 들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물과 육지 모두에서 살 수 있다 해도 자칫 잘못하면 양쪽 어디에서도 발을 붙일 수 없게 된다. 해병대는 바로 이런 양서류적 존재로서 해군도 육군도 아닌 탓에 계속해서 존재를 부정당하는 위기를 맞아왔다. 하지만 특유의 강한 훈련과 독특한 전우애로 이룬 실적으로 해병대는 그 존재 의의를 스스로 지켜왔다. 대검에서 전술핵에 이르기까지 육해공에 걸친 다양한 장비를 보유한 이 정예부대는 ‘미 제국주의의 선봉’이라는 그림자에도 불구하고, 자유의 수호자로서 그리고 세계 최강의 전투부대로서 자신의 자리를 지킬 것이다.

미 해병대의 기원
미국 해병대는 미국 독립전쟁 시기에 창설되었다.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있는 ‘턴태번’이라는 술집에서 창설 모임을 갖고 최초의 대원들을 모집했다. 새뮤얼 니컬러스 대위가 초대 사령관으로 추대되었는데, 그는 정규 군인이 아니라 턴태번의 주인 혹은 한 대장간의 주인이었다고 한다. 독립전쟁 시기 해병대의 주요 임무는 함내 치안과 함상 백병전이었다. 그 때문에 대원들은 적군과 육박전을 벌이다 목을 뜯기는 경우가 많아 목 보호를 위해 높고 두툼한 가죽 띠를 옷깃처럼 목에 둘렀다. 이는 평상시에 머리를 꼿꼿이 세워주는 효과가 있었고, 독특한 느낌을 주었다. 이 ‘레더넥leatherneck’은 자연스레 해병대의 상징이 되었다.
해병대는 독립전쟁이 끝나자 해체되었지만 미국은 주변 국가들과 끊임없이 분쟁을 겪으면서 신속대응군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결국 1798년 다시 부활한 해병대는 당시 지중해 연안에서 활동하던 이슬람 국가의 해적들이 미국 상선을 약탈하자 근거지인 트리폴리 항구를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었다(1801년). 트리폴리 전투는 해병대가 제한된 임무에서 벗어나 국제 분쟁에 대응해 즉각 출격하는 신속대응군의 역할을 맡은 첫 전투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미 해병대는 한국을 ‘침략한’ 역사와 ‘구한’ 역사를 모두 갖고 있다. 먼저 1871년 6월에 군함 5척으로 강화도를 침공한 미군의 선봉에 해병대가 있었다(신미양요). 그들은 후장식 소총과 신형 야포를 활용한 압도적인 화력과 전술로 덕진진을 함락하고 광성보에 육박했다. 조선군은 저항했으나 200명이 넘는 전사자를 내고 패배했다. 미군은 조선 조정의 완강한 대화 거부로 통상조약 체결이라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식수 부족과 기후 악화로 고생하다가 7월에 철수했다. 그리고 정확히 79년 후, 바로 이 바다에서 그들의 후배들은 수백 배 규모의 상륙작전을 펼쳤다. 한때 침략자였던 미 해병대는 훗날 한국전쟁에서는 말 그대로 ‘한국을 구한’ 주역이었으며, 인천상륙작전과 장진호 전투라는 거대한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

태평양전쟁과 상륙작전 부대로의 성장
미 해병대는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주로 허약한 중남미 국가들이나 이미 기운 지 오래된 노老대국 스페인, 그리고 조선과 중국을 상대로 어린아이 팔 비틀기식의 힘자랑을 했다. 하지만 2차대전을 거치면서 해병대는 상륙작전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최강의 전투부대로 성장했다.
사실 20세기 초반까지 상륙작전은 그저 보트를 타고 해안으로 이동하는 것이 거의 전부로, 조직화된 상륙작전은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상륙전은 지상전과 공통점이 있긴 해도, 기본적으로 병력이 모함에 승선하여 상당한 거리를 항해한다는 점, 상륙 직전에 작은 배로 갈아타야 한다는 점, 경장비만으로 적지에 상륙한다는 점에서 지상전과 명백한 차이가 있었다. 이런 인식 아래 해병대는 1922년부터 독자적인 상륙작전 지침을 만들기 시작했고, 해군과의 협동작전이 가능하도록 조직을 개편했으며, 그에 기반해 수륙양용장갑차(LVT)와 각종 상륙함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2차대전, 정확하게는 태평양전쟁에서 진짜 해병대로 거듭나는 계기를 맞는다.
해병대는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과달카날에서 오키나와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태평양을 종횡무진하며 맹활약했다. 특히 치열했던 과달카날 전투는 태평양전쟁의 승패를 가름한 중요한 싸움이었다. 당시 일본은 진정한 위협은 중국과 소련 등 대륙으로부터 올 것이라고 생각했고 미국이 태평양을 가로질러 일본 본토로 상륙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과달카날 전투는 일본의 많은 병력과 자원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고 이때부터 전쟁의 주도권은 미국으로 넘어갔다. 뒤이은 펠렐리우와 오키나와 등에서 벌어진 지옥 같은 격전을 통해 경험을 축적한 미 해병대는 적전상륙작전이라는 특유의 전법을 완성해갔다. 전쟁 중에 일본을 초토화시킨 B29 폭격기들은 미 해병대가 피로 확보한 이 섬들과 그곳의 비행장에서 날아오른 것이었다.

한반도 동토에서 벌어진 장진호 전투
역사상 많은 전쟁이 있었지만 단대호單隊號(단위부대 부호)가 붙은 부대 하나의 전투가 역사를 바꾼 예는 흔하지 않다. 카이사르의 제10군단, 갈리폴리 전투 당시 케말의 제19사단, 4차 중동전쟁 때 골란고원을 사수한 이스라엘군 제7기갑여단 정도가 그 드문 예에 속한다. 그런데 제1해병사단은 두 번이나 이런 위업을 달성했으니, 바로 과달카날 전투와 장진호 전투였다. 더구나 극단적인 기후 아래서의 전투, 즉 열대의 전투와 혹한의 전투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 특별하다.
한국전쟁이 벌어지자 제1해병사단은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탈환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단숨에 역전시킨 더글라스 맥아더는 상륙작전 중독자였다(해병대원들은 맥아더를 ‘대피호 더그’라는 멸칭으로 불렀다. 맥아더가 필리핀 주둔 미군 사령관일 때 참호 깊숙이 숨어 있다가 대통령의 명령이 오자 기다렸다는 듯 부하들을 버리고 호주로 탈출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 면으로 보아도 불필요한 작전명령, 즉 서울 북쪽에 있던 제10군단을 빼내어 바다로 한반도를 한 바퀴 돌아 원산에 상륙시켜 함경도로 진군시키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해병대가 원산에 상륙했을 때는 이미 한국군에 의해 원산이 함락된 상태였다. 제10군단장 아몬드는 맥아더가 낙하산 격으로 꽂은 인물이었는데, 인천상륙작전 당시 수륙양용장갑차(LVT)를 보며 “바다에서도 뜰 수 있는가”라고 물을 정도로 무능한 지휘관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잘못된 명령을 내림으로써 다른 차원에서 해병대의 생존을 위협했다. 미 해병대는 장진호를 거쳐 압록강으로 진출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이미 대규모 중국군이 한반도에 진입해 반격을 준비하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북쪽으로의 진격이 아니라 중국군의 포위를 뚫고 ‘남쪽으로 공격’하여 흥남으로 퇴각해야 했다. 개마고원의 험한 지형과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극한의 추위에서 중국군의 거센 공세로 미군은 궤멸될 위기에 처했으나 올리버 스미스 사단장의 노련한 지휘와 해병대원들의 용전으로 철수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제1해병사단은 이 과정에서 비록 병력의 절반을 잃었지만, 중국 쑹스룬의 제9병단이 남하하는 것을 저지하여 전체 전선이 급속도로 붕괴되는 것을 막았다.

베트남전쟁의 패배와 걸프만에서의 승리
승승장구하던 미국은 베트남전쟁에서 처음 패전의 쓴맛을 보는데, 이때도 해병대는 전쟁의 난맥상을 온전히 감당한 부대로서 베트남 땅에 첫발을 디딘 부대이자 마지막으로 떠난 부대가 되었다. 베트남전쟁은 눈에 띄는 큰 전투가 적었다뿐이지 엄청나게 치열한 전쟁이었다. 해병대는 연인원 80만 명이 참전했는데 사상자 수가 6만 7,000명이 넘었다. 사상률이 8.4퍼센트로 육군의 2.7배나 되었다. 훈련과 장비가 양호한 북베트남 정규군을 주로 상대해 더 큰 피해를 무릅써야 했기 때문이다. 해병대 전사자는 한국전쟁보다 4배나 더 많았다. 정치인들의 오판으로 시작된 베트남전쟁은 해병대 창설 이후 최악의 전쟁이 되었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해병대원들의 희생을 강요하며 막을 내렸다. 베트남전쟁이 끝난 후 미 해병대는 타라와급 강습상륙함과 같은 웬만한 나라의 항공모함보다 큰 상륙함을 보유하게 되었다. 신형 장갑차와 전차, 신형 헬리콥터 등 다양한 장비들을 도입했다.
해병대의 명예회복 기회는 걸프전쟁 때 찾아왔다. 제1해병사단은 1차 걸프전쟁의 대승을 이끌었고, 2차 걸프전쟁(이라크전쟁)에서도 주력부대로 활약했다. 해병대는 러시아군이 체첸 그로즈니에서 큰 피해를 입은 것과는 달리 어렵지 않게 바그다드를 함락하고 이라크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40년 전 베트남에서 그 대가를 치렀던 것처럼 정치인들의 과오로 전후 이라크는 혼란에 빠져들었고, 해병대의 전승도 빛이 바랬다.

오늘날의 미 해병대
오늘날 미 해병대는 사실상 전 세계를 작전 범위로 하고 있다. 현재 미 해병대 전체 병력의 규모는 17만 5,000명으로,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강습상륙함을 중심으로 강력한 전력을 유지하면서 세계 최강 미군의 선봉이자 명령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신속대응군으로서 그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제1해병사단은 제1해병원정군의 핵심으로 펜들턴 기지(캘리포니아)에 사령부를 두고 태평양 동부를 관할하며, 중동에도 상당한 병력을 파견해놓고 있다. 오키나와에 본부를 둔 제3해병원정군은 제3해병사단을 중심으로 서부 태평양과 아시아를 담당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투입될 부대이자 대중국 포위망의 핵심 부대이기도 하다. 캠프 레준(노스캐롤라이나)에 사령부를 둔 제2해병원정군은 ‘대서양 해병대’라고 불리며 지구의 서반구를 담당하고 있다.
걸프전쟁 이후 주로 중동에서 활동해온 미 해병대가 앞으로 그들의 ‘진정한 무대’인 동아시아와 태평양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는 더욱 주목해야만 할 것이다. 최근 미국은 남중국해 도서 영유권을 둘러싼 중국과 주변국의 마찰 확대, 러시아 극동군의 잦은 일본 영공 침범 등 역내 긴장 고조를 고려하여 해병대의 재배치를 결정했다. 그런 가운데 인도, 호주와의 협력 강화도 눈에 띄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미 해병대와 일본 자위대의 협력 강화를 가장 주목할 수밖에 없다. 양국은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상륙 훈련을 해오고 있다. 어찌 됐든 우리는 미 해병대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또 가져야 한다. 싫건 좋건 우리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으니 말이다.

목차

들어가며

1장 2차대전 이전의 미국 해병대
2장 태평양의 낯선 섬으로
3장 일본 본토로 가는 길을 열어라!
4장 한국을 구하라!
5장 남쪽으로 공격하라!
6장 다시 38선을 넘다
7장 고난과 굴욕의 베트남전쟁
8장 걸프전쟁, 명예회복의 전장
9장 다시 돌아온 사막, 이라크전쟁
10장 종막, 마지막 이야기


책을 마치며

연표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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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중에서

미 해병대는 때로는 침략자, 때로는 방어자, 해방자가 되었다. 우리나라와도 그렇게 인연을 맺는데, 첫 만남은 ‘신미양요’를 통해서였다. 즉 미 해병대는 ‘침략자’로서 우리와 처음 조우했다. 하지만 한국전쟁 때 이 ‘침략자’의 후예들은 “한국을 구했다”. 미 제1해병사단은 인천상륙작전과 장진호 전투라는 거대한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 전쟁을 거치면서 이들은 한국 해병대의 모델이 되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같은 우리 해병대 모토의 원조도 바로 미국 해병대이다.
(/ p.8)

미 해병대의 역사는 미국 역사보다도 1년 길다.
(/ p.…) 하지만 그 시작은 형편없었다. 당시에는 정치인들조차 마땅한 청사가 없어 여관이나 술집에서 모임을 가졌는데, 해병대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있는 ‘턴태번’이라는 술집에서 창설 모임을 갖고 최초의 대원들을 모집했다. 새뮤얼 니컬러스(1744~1790년) 대위가 초대 사령관으로 추대되었는데, 그는 정규 군인이 아니라 턴태번의 주인 혹은 한 대장간의 주인이었다고 한다.
(/ pp.13~14)

미군 입장에서 과달카날의 승리는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과달카날 전투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미군이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는 데 있다. 이후 일본군이 태평양에서는 공격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좋은 증거다. 일본군은 방어에 급급한 전략을 세울 수밖에 없었고, 나중에는 ‘절대국방권’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사수를 위해 분투했지만 미 해병대와 해군 기동함대에 의해 하나씩 무너지고 만다.
(/ p.…) 이런 거대한 의미를 가지는 과달카날 전투의 주역이 제1해병사단이었다. 이들은 섬이 부여한 가혹한 환경과 일본군의 끈질긴 공격을 다섯 달 동안이나 견뎌냈으며, 결과적으로 해병대 역사상 첫 번째 도서 탈환 작전을 기념비적인 승리로 장식했다.
(/ pp.96~97)

‘상륙작전’의 문외한인 아몬드는 상륙 당일 맥아더와 함께 마운트 맥킨리호 함상에 있었다. 그때 해병대 선임장교 빅터 크룰락이 지나가는 말로 수륙양용장갑차(LVT)가 우수한 첨단 장비라고 말하자 이렇게 물었다. “그러면 LVT는 바다에서도 뜰 수 있는가?” 크룰락은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즉시 그 말을 1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퍼뜨렸다. 세상에, 인천상륙작전의 총지휘자가 LVT를 보고 저것도 물에 뜰 수 있냐고 묻다니!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 p.201)

영하 25도 안팎의 살인적 추위는 밤이 되자 영하 40도까지 떨어졌다. 대부분의 장비가 견뎌내지 못했다. 야포는 작동에 문제가 생겼고 높아진 공기 밀도 때문에 사정거리가 떨어졌다. 박격포는 얼어붙은 땅이 반동을 흡수하지 못해 포판이 깨지기도 했다. 밤이면 모든 차량의 엔진이 작동을 거부했다.
(/ p.…) 설사라도 하면 그 병사는 순식간에 지옥을 볼 수 있었다. 어떤 병사는 항문에 동상을 입고 하반신 전체가 얼어붙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 pp.250~251)

그는 장관 취임 후에 국방부 직원, 군인들과 면담을 진행했다. 그의 핵심 질문은 “전문가로서 볼 때 전쟁에 이길 수 있는가?”였다. 하지만 누구도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했다. 수위를 조금 낮추어 “미군이 군사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가?”라고 물었지만 돌아온 답은 “장관께서 어떻게 보시는가에 달렸다” 정도의 한심한 대답뿐이었다. 그는 떼뜨 공세를 연구한 보고서를 분석한 뒤 이런 결단을 내렸다. “우리는 이길 수 없는 전쟁을 했으며, 사실상의 패자다. 현실적인 유일한 선택은 철군이다!”
(/ p.371)

부시와 브레머는 팔루자 전투가 적어도 열흘은 더 걸릴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매티스 장군은 대대 하나를 더 투입하여 하루나 이틀 사이에 팔루자를 장악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단 지휘부가 보기에, 적은 정식 위계질서를 갖추지 않았고 그저 모스크나 지역 지도자들로 구성된 패거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가들은 불과 며칠 만에 팔루자를 그보다 인구가 20배나 더 많은 바그다드도 함락한 해병대에게 ‘난공불락’의 도시로 만드는 놀라운 재주를 선보였다.
(/ p.527)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를 졸업했다. 2005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여, 지금은 국방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공저자 한종수와 함께 인천과 서울 등에서 한국전쟁 관련 유적들을 탐사하여 이 책에 역사적 정확성과 생생함을 더했다.

생년월일 1969~
출생지 서울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서울에서 태어나 마포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했다. 롯데관광과 한국토지공사(현 LH) 세종본부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세종시 도시재생지원센터 사업지원팀장으로 근무 중이다. 대중 역사책을 쓰는 작가로서 거창한 역사 담론보다는 일상의 공간과 보통 사람의 소중한 흔적을 찾아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는 작업을 해왔다. 지은 책으로는 화제작 [강남의 탄생](공저)을 비롯해, [2차 대전의 마이너리그] [제갈량과 한니발, 두 남자 이야기] [세상을 만든 여행자들]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영락제: 화이질서의 완성] [환관 이야기] [제국은 어떻게 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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