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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길의 소리들』 은 진주에서 활발한 평론 활동을 하고 있는 강외석 박사의 문학평론집이다.

머리글ㆍ5

제1부
현대시의 난해성이라는 소통 코드 ㆍ13

고향이라는 즉자(卽自) ㆍ28
천상병의 시

고향 혹은 안의 공간현상학 ㆍ63
청마 유치환의 고향 의식

반가사유상의 사유 ㆍ88
오하룡 시의 근황

숨은 독자-되기 ㆍ96
노향림 시의 근황

말의 빛-저음의 독백으로 버끔대는 ㆍ107
천융희의 시

이명의 변주곡 ㆍ120
최희강의 시

인식의 시적 알레고리 外 ㆍ132
이수진의 시

중얼거림의 계보 ㆍ147
박지영의 시

침묵의 현장성 ㆍ160
주강홍의 시

제2부

먹을 치는 풍경 ㆍ185
강희근의 『소문리를 지나며』

쉬운 시의 무거움 ㆍ204
김광규의 『오른팔이 아픈 날』

문신(文身)의 기록 ㆍ221
김남호의 『두근거리는 북쪽』의 세계

‘인간 시인’의 토포스 ㆍ250
김수부의 『전자계산기의 봄날』論

공감, 어떤 귀향 ㆍ266
도리천의 고향-시

물빛 풍경의 세계 ㆍ282
오하룡의 『몽상과 현실 사이』

반가사유의 시 ㆍ295
이산의 『물방울관음(觀音)』論

늘보 시인의 화두 ㆍ311
이종만의 『찰나의 꽃』論

오륙도에서 캐낸 이야기들 ㆍ327
이종호의 『오륙도에 시 캐러 가다』論

길트기의 시학 ㆍ350
차영한論

시원을 향한 원초적 지느러미들의 유영 ㆍ369
차영한의 『바람과 빛이 만나는 해변』論

제3부
한국현대문학과 수필의 역할 ㆍ393
부정(否定)의 시학을 위하여

난초의 침묵 ㆍ400
법정의 「무소유」에 대한 短想

시원의 풍경 ㆍ425
김경분의 수필 세계

오래된 미래의 세계 ㆍ435
허표영의 『고결한 동행』과 존재의 여행

광장과 밀실에서 ㆍ461
김연동의 『휘어지는 연습』論

유목의 길 ㆍ475
시인 박우담과의 대담

대체로 다른 장르의 글보다는 시를 많이 읽고 이차 글쓰기를 해온 셈이다. 천부의 업(業)이라기보다는 일신상의 목적을 위한 수단 방법의 일환으로 후천의 업에 가까운 글쓰기이기에 서당개 풍월 읊듯이 읽고 썼다고 해야 정확하지만 읽다 보니 시의 본질이 곧 자연의 본질에 닿아 있다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다. 자연은 산이나 바다, 강, 하늘, 구름, 새나 나무, 꽃 등의 자연물이기도 하지만 자연의 본질인, 인위나 인공 혹은 문명의 침투가 없는, 들길이거나 개울물처럼 자연 그대로의 순수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인간세계의 진리와 진실은 순수 자연의 존재가 들려주는 소리에 담겨 있을 것이다. 그 소리를 가장 절절하게 담아내는 장르가 시가 아닐까, 생각한 것이다.

하이데거가 쓴 철학에세이 「들길」을 읽고 더욱 그렇게 생각했다. 그 들길이 내는 소리는 시인이 대하는 자연의 소리가 아닌가 싶다. 그 자연의 소리는 이기적인 문명의 소리와는 상거한 위치에 있다. 그의 말대로 그 소리는 단순 소박한 존재의 소리이다. 인간과 자연의 진실 그 자체이다. 진실은 단순하고 소박하다. 하이데거는 우리가 현대기술문명의 근저에서 이렇게 경악과 불안이라는 근본 기분을 통해서 고지해 오는 존재 자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모든 존재자들의 고유하면서도 소박한 존재에 대해서 경이와 기쁨에 사로잡히기를 촉구한다. 들길은 늘 사유하는 자의 곁에 있다. 아무래도 사유하는 자는 글을 읽고 쓰는 이들이다. 사유에는 지성과 오성과 감성의 심오한 깊이가 있다.

그런데 들길이 내는 소리를 아무나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말대로 “들길이 이렇게 외치는 소리는 들길에 이는 바람 속에 태어나서 들길에서 나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만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자기네 내력이란 것을 듣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하이데거에게는 횔덜린 같은 시인이다. 시인은 자연과 인간의 단순 소박한 진리의 소리를 진지하게 듣는 섬세한 귀를 가졌다. 섬세한 귀를 통해 들은 소박한 진리의 소리를 담은 그들의 시를 나는 귀담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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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일종의 독백이다. 막스 피카르트의 말을 빌리면, 독백은 실은 침묵과의 대화인 것, 시의 독백을 읽는 것은 시의 침묵에 참여한다는 뜻이다. 그런 뜻에서, 나는, 인간세계를 구원할 진실을 계시하는 들길의 소리를 섬세히 듣고 독백의 침묵 혹은 침묵의 독백으로 먹을 치는 풍경의 시 세계를 읽는다. 아니다. 시인의 시만이 아니라 사유의 글쓰기는 모두 진하게 먹을 치는 풍경의 세계이다. 그 읽음의 사유 공간은, 내게는 골방이 안성맞춤이다.
함석헌은 “이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 세상의 냄새가/ 들어 오지 않는/ 은밀한 골방/ 그대는 가졌는가?”(「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라고 묻고 있지만 내 골방은 밖에서 세상의 소리를 듣고 세상의 냄새를 맡고 들어와 그 세상의 소리와 냄새에 대해 혼자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공간으로서의 골방이다. 흔히 골방은 나이가 들면 갇히는 방, 나아가 골로 가는 방이라는 어감으로 인해 죽음의 분위기도 있지만, 나에게 있어서의 그 방은 아무도 침범하지 않아 인간과 세상에 대해 사색하고 그 사색을 통해 조금이나마 부조리와 모순을 제거한 이상적인 세계를 꿈꿀 수 있는 방이다.

그 골방에서 나름대로 사유한다고는 했지만 아무래도 미진한 사유의 끝물에 불과한 졸고를 한데 모아 또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늘 그렇듯 남 앞에 내놓기는 부끄럽기만 하다. 이 길은 어쨌거나 사유의 길인데, 내 사유가 많이 달리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사유가 달리고 처지는 만큼 앞으로도 이런 이차 글쓰기를 계속해야 할지 골방에 박혀 깊이 사유해 보아야겠다. 남는 것은 골방에 앉아 짧은 머리로 사유한다고 방황하고 고뇌하며 곤혹스러웠지만 정겨운 추억들이다. 책과 사유가 사라지고, 스마트폰이 그것을 대신하는 디지털 문명의 이 시대를 돌아보면서 그 낡은 추억들을 혼자 반추하며 오래 기억하고 싶다.

-책머리에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