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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 최윤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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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2020년 이효석문학상 대상 수상작 수록
서로가 서로를 끌어안는 동행의 힘!

5월 광주의 비극을 다룬 작품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1988)를 발표하며 “가장 뛰어난 증언의 문학”(김병익 문학평론가)이라는 수사와 함께 등장한 최윤의 신작 소설집 『동행』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됐다. 작가는 「회색 눈사람」으로 동인문학상을, 「하나코는 없다」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이 책에 수록된 소설 「소유의 문법」으로 2020년 이효석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소유의 문법」은 ‘나’가 은사 P의 배려로 딸아이 ‘동아’와 함께 은사의 전원주택에 들어가 살며 목격한 시골 마을 주민들의 탐욕을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소유와 탐욕의 시스템에 길들어 ‘이 세상에 올바른 모습으로 거하는 법’을 잊어가는 현대인에게 ‘소유의 문법’을 뛰어넘는 뜨거운 생의 진실을 깨우치는 수작”이라는 평을 받으며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에 선정되었다.
전작들에서 역사와 시대의 갈등을 온몸으로 겪었던 작중인물들이 중심이었다면, 작가의 근작은 좀더 일상에서 발생하는 각기 다른 모습의 아픔에 주목한다. 소설 속 인물들이 겪은 삶의 고통은 그들의 신체에 증거물처럼 남아 과거의 상처를 현재로 불러들인다. 최윤은 아픔 가운데 ‘겨우’ 유지되고 있는 인물들의 삶을 파헤치기를 거부하고 되려 지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맞아들임으로써 어떻게 우리가 서로의 상처를 끌어안을 수 있는지에 관한 답을 보여준다. 재난이 일상이 되어버린 2020년 현재에 우리는 줄곧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에 대해 수도 없이 묻곤 하지만, 돌파구를 찾기 위한 결론이 언제나 서로가 서로를 돕는 연대의 방식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모두를 위한 작가의 응답과도 같다.

출판사 서평

어느 반항의 사춘기, 가출을 할 생각으로 기차를 타고 이 부근을 지나쳐, 당시의 세상 끝인 동해안까지 갔습니다. 그 해안 도시의 한 책방에서 시집을 몇 권 사들고 여관방에서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 이것이 저의 처음이자 마지막 가출이지만, 맘속으로 저는 늘 가출 중입니다. 제게 제공된 경계를 떠나고 있습니다. 제가 넘어온 곳의 풍경을 바라봅니다. 그때서야 왜 그랬는지가 보입니다. 더 잘 보기 위해서 그랬습니다. 감히 문학을 위해서 그랬습니다.
-최윤, ‘2020 이효석문학상 수상 소감’ 중


말로 설명해낼 수 없는 상처와 고통,
그 아픔을 육체에 새긴 채 ‘겨우’ 살아가는 자들

어차피 빈 아파트일 바에야 아주 황량하게 비어 있는 것이 좋다. 이것이 그와 나의 공동의 취향이 되었다. 실내는 작은 부엌 쪽을 빼고는 완전히 비어 있다. 이 안에서는 모든 것이 ‘겨우’다. 부엌도 겨우 부엌의 면모를 갖추었고 침실도 겨우 침실을 닮았을 뿐. 응접실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작은 그 공간에 소형 텔레비전 한 대가 ‘겨우’ 놓여 있다. 이것이 그와 나의 평화의 방식이다.
-「동행」

표제작 「동행」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열두 살 남자아이의 부모인 나와 남편을 중심인물로 한 소설이다. 자식을 잃고 하루아침에 하얗게 세어버린 남편의 머리칼처럼 나의 일상 역시 송두리째 뒤바뀌어버린다. 소설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 이유를 찾아 나서는 듯하다 이내 부부가 놓인 답답한 상황 자체에 주목한다. 최윤이 ‘왜’라는 질문에 명료한 답을 내놓지 않는 것은 부부가 아무리 매달려도 설득력 있는 답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반백이 되어버린 머리칼처럼 육체에 남은 상흔과 함께 삶이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라는 현실이 좀더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가슴에 사무치는 아픔을 간직한 채로도 일상은 계속 굴러간다. 대신 최윤의 인물들은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최대한 단순하고 평평하게 만들어간다. 모든 것을 비워버린 뒤 겨우 삶이 유지되는 정도로만, 딱 그 정도로 삶을 가볍게 정리하는 것이다. 「서울 퍼즐」에서는 동생을 잃은 형이 등장한다. 그의 아픔은 한순간에 머리칼이 세는 것과 같은 극적인 변화를 동반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치통과 같은 좀더 직접적인 고통으로 드러나면서 간헐적으로 그러나 점진적으로 그를 조여온다. 생생한 치통의 아픔을 새기면서 「서울 퍼즐」 속 형 역시 마치 자전거를 타기 위해 사는 것처럼 자전거 이외의 것들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상실을 견디길 선택한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아픔을 짊어진 채
우리를 ‘다시’ 살게 하는 연대의 가치

K가 돌아왔다. 하강과 실추의 드라마를 온몸에 싣고.

궁금해하지 말자, 절대 내 입으로 질문을 던지지 말자!라고 나는 거의 입 밖으로 중얼거리다시피 다짐했다. 내 속에서 강렬하고도 끈질기게 일어나는 궁금증을 억누르고 나는 그녀를 보살피게 되었다.
-「분홍색 상의를 입은 여자」

극도로 쪼그라든 삶을 유지하는 작중인물들을 ‘다시’ 살게끔 하는 일상의 작은 반전은 갑작스럽게, 그리고 아름답지만은 않은 방식으로 들이닥친다. 「분홍색 상의를 입은 여자」 속의 ‘나’는 “거리에서 죽을 일은 없”다고 할 만큼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인물이고, ‘K’는 매우 유명한 사진작가로 과거에 나와 잠시 인연이 있었던 지인이다. 어느 날 나로부터는 물론 세상에서도 모습을 감추었던 K가 우연히 내 앞에 등장한다. “하강과 실추의 드라마를 온몸에 싣고.”
잘나가던 과거를 모두 지운 초라한 모습으로 등장한 K를 두고 나는 그의 지난 삶이 궁금하지만 묻지 않기로 결심한다. ‘왜’라는 질문 앞에서 답을 찾지 않고 오로지 현재의 K 옆에 함께 있어주기를 택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선택에 대해 이 책의 해설을 쓴 박혜경은 “침묵의 환대”라 일컫는다. 침묵의 환대는 책에서 다양하게 변주하여 등장하는데, 학교 폭력으로 고통받는 친구가 우는 소리를 묵묵히 들어주거나(「울음소리」), 처음 보는 사람이 눈앞에서 오열하는데도 당황하기는커녕 그저 지켜보는 한 남자의 모습(「손수건」) 등에서 그러하다. 언어로 명확히 정리될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인물들에게 “‘왜’라고 묻는 대신 조용히 옆에 앉아 있거나 그저 침묵하며 같이 울 수밖에 없는 환대의 방식”을 최윤은 보여주는 것이다. 최윤식 환대는 ‘겨우’ 살아가는 이들의 내면에 자그마한 파동을 불러일으키면서 동시에 함께 걷기, 즉 동행의 가치를 일깨운다. 육체와 삶에 새겨진 상처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같이 걸어가는 동행의 삶이야말로 최윤 소설 속 인물들이 “타자의 고통에 응답하는 방식”(박혜경)이자 다시 서로를 일으켜 세우는 동력이다.

목차

동행
서울 퍼즐-잠수교의 포효하는 남자
분홍색 상의를 입은 여자
숨바꼭질
손수건
울음소리
소유의 문법
옐로
애도

해설/ 타자와의 동행-어떤 환대의 세계 박혜경
작가의 말

본문중에서

그즈음에서야 우리는 왜?의 부재, 그것이 바로 왜?의 답이라는 것을 감지했던 것 같다. 우리의 수사의 정열은 싸늘해졌다. 1년 넘게 지속된 불행의 강렬한 연대는 끝났다. 둘이 할 일이 없어 우리는 그와 나로 분리되었다. 서로 바라다보는 것은 물론, 상대편이 살아서 숨 쉬고 있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지훈이 대신 그가 살아남아 있는 것이 나는 부당했고 그것은 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동행」

J,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J, 네 덕분에 내 인생에 불필요한 것들이 다 쓸려가버렸으니 오히려 너한테 고맙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뭐가 고마운데요? 당돌하게 묻는 어린 소녀의 목소리 앞에 나는 자주 멈추어 선다. 물론 나와 그의 삶은 매일 오후에 거를 수 없는 산책처럼, 산책 후에 마주 앉는 차 마시는 시간처럼 달콤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황량하고 견고한 시멘트 바닥에 육체가 부딪치며 내는 둔중한 소리와 동행하는 사람에게 웬만한 쓴맛은 차 한잔에 넘겨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것이 된다.
-「동행」

연락 두절이 두려워 그 자리에 멈추어버렸던 시간과 공간…… 크고 작은 사건은 치통과 관계가 있다. 진통제의 용량을 가감해 통증을 잡는 곡예라면 달인이 되어 있다.
치통은 사랑과 관계가 있다. 고통은 치통과 관계가 있다. 사라진 식구의 실종을 신고하던 오래전 어느 날, 그때부터 치통이 시작되었다. 수년 후 먼 대륙에서 도착한 첫 편지로 치통은 악화되었다. 새로운 모든 사건 앞에서 치통은 재발한다.
-「서울 퍼즐」

정지! 나는 자신에게 경고했다. 과장하지 말 것. 감각을 절제할 것. 나는 벌써 이성적으로 추론을 하기도 전에 K의 삶에 대한 가장 비극적인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쓰고 있었던 것이다. 멀리 가지 말 것. 모르는 것에 대해 상상하지 말 것. 건물 옆을 지나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앉을 수 있는 그 의자에 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 해서 K일 리는 없지 않을까. K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을 알 리가 없다!
-「분홍색 상의를 입은 여자」


가늘고 긴 남자의 두 눈이 앞에 앉은 나를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시선을 받은 그 순간 나는 고개를 떨구고 울먹이기 시작했다. 이어 내 가슴 한구석에 억류되어 있던 흐느낌의 봇물이 터져 나왔다. 그건 갑작스럽게 일어난 사고 같은 거였다. 오열의 파도가 격정적으로 내 몸을 훑고 지나갔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소리를 죽이며 난생처음 마주 본 남자 앞에서 나의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솟구쳐 나오는 괴성과 함께 몸을 흔들며 흐느꼈다. 5분, 10분…… 시간이 흘러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나의 흐느낌은 정점을 향해 가듯 더욱 강렬해졌다.
-「손수건」


정자에서 본 여인의 얼굴 중 무엇이 J를 생각나게 했을까. 그녀는 여인을 바라보며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에 놀랐다. 그리고 여인이 두 손가락으로 집어 목덜미에서 떼어낸 거미 한 마리. 벽돌과 같이 단단한 시간의 틈새를 비집고 잡초의 끈질긴 싹처럼 J에 대한 생각이 돋아나 있었다. 그래 저렇게 어딘가에서 미쳐 있을지도 몰라. 그래야 마땅하지 그 애는.
오랫동안 J를 떠올릴 때마다 던지던 질문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왜 그랬을까. J는 왜 그런 식으로 그 시간을 견뎠을까.
-「울음소리」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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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1953

저자 최윤은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88년 중편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를 《문학과 사회》에 발표하며 소설가로 등단했다. 소설집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회색눈사람》, 《속삭임, 속삭임》 《열세 가지 이름의 꽃향기》 《첫만남》 《숲속의 빈터》를 출간했다. 장편 《너는 더 이상 너가 아니다》 《겨울 아틀란티스》 《마네킹》 《오릭맨스티》, 중편 《파랑대문》, 수필집 《수줍은 아웃사이더의 고백》을 출간했다.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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