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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 : 천수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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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천수호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 : 2020년 11월 16일
  • 쪽수 : 136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54675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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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당신이 다시 온다면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해도 이제 지겹다고 안 할게”
삶과 연결되어 생동하는 죽음과 이별의 심상(心象)


문학동네시인선 149번째 시집으로 천수호 시인의 세번째 시집 『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를 펴낸다. 사물을 보는 낯선 시선과 언어에 대한 독특한 감각을 가졌다는 평을 듣는 그는 ‘인간-언어-사물’의 상상적 관계를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순간을 서정적 언어로 기록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첫번째 시집 『아주 붉은 현기증』에서는 시적 언어를 통해 세계의 모습을 시각화하고, 두번째 시집 『우울은 허밍』에서는 ‘귀-청각’을 통해 사물과의 소통을 시화(詩化)했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가까운 이가 앓는 병과 죽음을 통해 관계와 가치를 무화시키는 어떤 낯선 것들 안에서 슬픔이나 두려움 이상의 의미를 발견해낸다.

당신은 그렇게 왔고 또 그렇게 떠났다

오고 또 갔다고 했지만 그곳이란 원래 없는 것
파도가 풀어내는 바다

당신이 다시 온다면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해도 이제 지겹다고 안 할게

(……)

떠난 지 오 개월이 지난 지금도
누군가는 당신 조의금을 보내온다
당신이 저 바닷물에 녹아드는 데 오 개월이 걸린다고 했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어떻게 그렇게 천천히 걸어들어갈 수 있는 건지

바닷물이 소금이 되는 데 한나절이면 된다는 내 말에
당신은 또 저 건너편 기슭으로 달아난다
―「이제 지겹다고 안 할게」에서

67편의 시가 수록된 『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는 그 자체로 한 편의 애도시처럼 보일 정도로 편편에 죽음과 이별의 이미지가 깃들어 있다. 그중 애도의 과정을 가장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는 시 「이제 지겹다고 안 할게」를 먼저 살펴보자. “당신이 다시 온다면”이라는 가정법에서 드러나듯 애도에 실패한 채로 살고 있는 ‘나’는 ‘당신’의 죽음을 자신과의 물리적인 거리와 시차로 환산함으로써 상실감을 실체화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당신’과 ‘나’ 사이에 물리적 거리와 시차는 존재하지 않음을 분명하게 인지함으로써 슬픔을 내면화하는 자신에게서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오고 또 갔다고 했지만 그곳이란 원래 없는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뒤이어 “당신이 다시 온다면”이라고 가정할 수밖에 없는 것, 거기에서 우리는 ‘나’의 상실감을 더욱 절실이 감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애도의 방식이 단지 절망으로 그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당신이 저 바닷물에 녹아드는 데 오 개월이 걸린다고 했던 말”에 “바닷물이 소금이 되는 데 한나절이면 된다”고 받을 수 있는 ‘나’의 태도 때문일 것이다.

죽음에서 의미를 발견해낸 것처럼, 시인은 ‘생명’과 ‘병’의 관계에서도 부정성 이상의 의미를 이끌어낸다. 실존의 비애라고 말할 수 있는 ‘죽음’이 인간의 존재 조건이듯 ‘병’ 역시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인 동시에 ‘생명’의 근거라는 것, 그러니까 병들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생명의 고유한 특징이라는 시인의 사유를 통해서야 비로소 우리는 “유리 위를 흘러내리는 어룽무늬처럼/ 링거 수액이 천상 이야기를 타고 내려오고/ (……) 창과 창 사이 이쪽과 저쪽은 서로 힐끗/ 한 장의 햇살만 이쪽저쪽 구분도 없이 푸욱 찔려 있다”(「창과 창 사이의 힐끗」)와 같은 놀랍도록 깊고 아름다운 문장들을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삶과 죽음은 단절이 아닌 관계 속에 있다는 깨달음을 창으로 분할된 두 세계를 관통하는 눈부신 햇살의 형상으로 표현해내는 데 필요한 게 단지 시인의 빛나는 언어적 감각뿐일까?

회화에 비유하자면, 천수호의 시편들은 원근법에 충실한 묘사보다는 사물의 질감이나 느낌, 그것들의 우연적인 조합이 만들어내는 낯섦의 미학에 가까울 것이다. 자연물을 시적 소재로 삼으면서도 상투적인 서정을 답습하지 않고, 언어(글자)의 모양, 의미 등 언어에 대한 자의식을 중시하면서도 형식 실험으로 흐르지 않는 시인의 시적 면모는 시집의 말미에서 만날 「거울아 거울아」에서 더욱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수건이 닦고 지나간 눈이며 입이며 귀가 침묵을 학습한 것처럼 저 수건이 품고 간 알몸과 맨발이 비밀을 훈련한 것처럼 젖는 것을 전수받는 오랜 습관처럼 숭고한 침묵을 주무르며 손을 닦는다 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
―「거울아 거울아」에서

시집의 제목이 된 문장, ‘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라는 중의적 문장에서 수건은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땀에 젖은 댄서를 말려주는 수건 본연의 역할, 그리고 생명의 근원인 수분의 이동을 통해 죽음의 이미지를 구체화하는 일. 수건은 그리하여 이 시에서 죽음의 화신과 같은 존재로 변모한다. 어딘가에 닿고자 하는 댄서의 열망이 담긴 격렬한 몸짓과 침묵(죽음) 사이의 낙차를 우리에게 친숙한 수건이라는 일상적 사물을 통해 형상화한 데서 우리는 삶과 연결되어 생동하는 죽음을 인지하는 시인의 섬세한 감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그뒤로 “의자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져서 수건은 칙칙하고 은밀하게 말라간다 침묵이나 비밀과도 무관한 의자 위에 수건은 단지 정물화처럼 거기 걸쳐진다”라는 내용이 이어져도, 우리는 도리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이다.
뜻하지 않았고, 예상치 못했던 죽음들이 이어지는 현재의 세계에서 어쩌면 시인의 이와 같은 인식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시구보다 먼저 도착했어야 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일상을 이어가기 위해 삶과 가로놓인 죽음들을 너무 멀리 떠나보내거나, 현실을 직시하고 나아가기 위해 그것들을 너무 가까이 품어안아야 했던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은 두 세계 사이에 놓을 맑고 투명한 창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 너무 늦지 않게 천수호가 빚어낸 빛나는 창으로서의 이 한 권의 시집을 당신에게 보낸다.

■ 시인의 말

한동안 서울과 양평을 오갔다.
아픈 사람들이 서울에서 양평으로 건너가는 것은
칠흑의 한밤중이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한 몸을 건너가는 병이 구름 사이로 떠다니지 않게
병명이라는 검은 돌들을 별자리처럼 놓아본다.
이 시집이 별들을 가리키는 헛된 손가락이라 할지라도
언니를 아프지 않게 할 수는 없을까.

2020년 11월
천수호

목차

시인의 말

1부 언니는 혼자만 몰랐다
검은 철사 너머/ 차창의 유리가 내 얼굴에/ 송도/ 대화의 조건/ 권태/ 그 자리/ 두 겹이란 것/ 그 방의 유령/ 외포리 갈매기/ 회귀선/ 개꿈/ 묵/ 사구(砂丘)에서 시작된 이야기/ 석조원에서 돌사자가 웃고 있다/ 4월의 부사(副詞)/ 백우(白雨)/ 얼룩말

2부 아프지 않아서 자국은 깊었는데
눕듯이 서듯이 자작자작/ 새우의 방/ 겨우라는 여우/ 두 글자의 이름은 잠망경처럼/ 해빙—에스키모인의 화법으로/ 담석증이라는 투석형(投石刑)/ 이불 무덤/ 다시 칼을 찾아서/ 설상가상/ 양이 된 케이크/ 중독자(中毒者)/ 이제 지겹다고 안 할게/ 선화여인숙/ 증세와 진단 사이의 참새방앗간/ 비문증(飛蚊症)/ 불면증(不眠症)

3부 강은 짐이 없고
창밖의 일들/ 형용사를 쓰는 여자/ 대한(大寒)/ 설탕이 녹는 외식/ 창과 창 사이의 힐끗/ 입양 기억/ 병뚜껑/ 아침이라는 영정사진/ 둑/ 관계에 관한 짧은 검색/ 오륙도/ 흑심/ 수생 고구마/ 역광
물고 혹은 물려서/ 휴일의 대화/ 도깨비바늘꽃/ 돌의 혀

4부 무덤덤함이 무덤같이
벨트 우체통/ 시한부/ 숨은 운명/ 세이렌 노래방/ 와서 가져가라/ 두 뼘/ 묵독(默讀)/ 반구대/ 물집/ 극야(極夜)/ 열대야/ 거울아 거울아/ 깁스라는 키스/ 병을 나눠먹는 순두부/ 연분홍 유언이 있었다/ 여주

해설| 창(窓)을 관통하여 도래하는 것들| 고봉준(문학평론가)

본문중에서

가짜 나무 한 그루가 카페 한가운데 서 있다
가짜 사과를 달고 있다
사과나무 잎은 이렇게 생겼구나,
가짜를 만지작거리며 진짜를 생각한다
이 사과는 왠지 가짜 같애
진짜 같은 나무에서 가짜를 기억한다
가짜를 보면 진짜는 더욱 모호하다

가짜는 진짜를 닮으려 얼마나 애절했을까
진짜는 가짜를 놓으려 얼마나 무심했을까
( '검은 철사 너머' 중에서)

한 페이지 넘기고 듣고
한 페이지 넘기며 따라 부르고
그런 사랑이 있었는지도 모르게 납작해진
꽃잎을 간혹 건드려 깨워야지

딱풀처럼 잘 붙은 사랑 얘기는 다시 열지 말까?

오래 덮어둔 책이 있는지도 모르는 날이 올 테니까
꽃잎만 남기고 노래를 가져간 사람이 있다고
가물거리며 말할지도 몰라

그런데 참 이상하지?
노래와 꽃잎 이야기가 서로 나뉠 수 있다는 것
개미처럼 꼬물거리는 글자들을 암호 삼아
남이 읽지도 듣지도 못하게 밀봉해둔 유언이 있다는 것
( '연분홍 유언이 있었다' 중에서)

당신이 사랑이라는 말을 처음 시작할 때
발에 걸리는 줄넘기 같은 저 산은
파도를 밑변으로 받치고 있었다

당신이 손을 뻗어 저 산의 뒤쪽을 얘기할 때 나는
몸속 파도가 퍼붓던 애초의 격정과
나지막한 봉분의 속삭임을 뒤섞고 있었다

당신은 그렇게 왔고 또 그렇게 떠났다

오고 또 갔다고 했지만 그곳이란 원래 없는 것
파도가 풀어내는 바다

당신이 다시 온다면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해도 이제 지겹다고 안 할게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다 다르다고 생각할게
( '이제 지겹다고 안 할게' 중에서)

친구는 그의 무덤덤함이 무덤같이 끔찍하다고
그리움도 외로움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푸념처럼 넋두리하곤 했었는데
그 친구, 어느덧 2주기라
모처럼 그 소나무 찾아갔더니
아름드리 그 나무 아랫도리에
친구 남편의 벨트가 단단히 묶여 있다
이 세상일을
다 모르고 떠나는 일이 얼마나 다행인가
혼자 중얼거렸는데
소나무는 제 허리춤의 벨트가
이미 오래 묵은 제 몸의 것이라는 듯
딱 맞는 품으로 편안히도 당겨 끼고 있었다
( '벨트 우체통'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1964~
출생지 경북 경산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1964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났다. 명지대학교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아주 붉은 현기증』 『우울은 허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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