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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나갈 수 없다 : 손홍규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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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손홍규
  • 출판사 : 창비
  • 발행 : 2020년 10월 26일
  • 쪽수 : 324
  • ISBN : 9788936438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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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한국문학의 든든한 한 축을 지켜온 손홍규 신작 소설집
사람과 사회, 그 모순과 균열에 대한 탄탄한 서사들

이상문학상, 백신애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거머쥐고, 한국문단에서 독보적인 색채와 위상을 지키며 듬직한 작품세계를 보여온 소설가 손홍규가 신작 소설집 ?당신은 지나갈 수 없다?로 돌아왔다. 문단의 유망주로 주목받던 시절 작가를 수식했던 풍자와 위트, 혹은 해학의 서사가 이제 한층 성숙하고 농익은 삶의 비애를 담아내면서 한국문학의 한 축을 단단하게 지탱하는 중견작가의 반열에 손색없는 경지를 보여준다.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20년 가까이 작품활동을 해온 작가의 눈에 비친 우리네 일상과 주변은 여전히 균열과 모순투성이이며, 은근한 차별과 폭력이 일상화된 도가니 같은 곳이다.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 서사의 재료가 되었던 초기의 작품들과 달리 이제 일상에 교묘하게 파고든 차별과 폭력의 세계를 들춰내고 비트는, 날카롭고 섬세한, 그러나 인간적인 온기를 잃지 않은 작가의 시선은 소설이라는 장르의 역할과 미학에 대한 고민을 한층 성숙시킨 결과로 읽힌다.

출판사 서평

은근한 폭력과 차별의 세계

「환멸」의 주인공인 사촌형은 건설노동자로 중국인 아내와 갈등 끝에 접근금지 처분까지 받았고 결국 아내는 아들과 함께 중국으로 돌아간 뒤에 가족을 그리워한다. 술 때문에 숱한 사건 사고를 일으킨 형은 큰마음 먹고 아들의 생일 선물을 사들고 중국으로 향했지만 고질적인 술병으로 기내난동범으로 몰려 결국 공항에서 바로 입국 거부당하는 신세가 되어 돌아온다. 그뒤로 형은 베트남인이든 몽골인이든 이주 노동자들을 경멸하게 되지만 건설현장에 일하러 온 중국인 유학생을 곤경에서 구하기도 한다.
「노 파사란」에서는 엄마의 죽음이 할머니 때문이라고 오해하는 아내 대신 할머니를 살피는 주인공이 할머니의 재봉틀에 새겨진 ‘노 파사란’이라는 단어를 통해 할머니의 굴곡진 지난 삶을 이해하게 된다. ‘누구도 지나갈 수 없다’는 뜻의 ‘노 파사란’은 혁명의 구호였으나 허락 없이 그녀의 삶을 밟고 지나간 역사는 가족들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는 현재를 낳았다. 「눈동자 노동자」에서는 건설노동자로 함께 일하던 윤호의 사고사를 목격하고 윤호가 남긴 사진에 담긴 자신의 모습을 보며 윤호의 죽음 앞에 무기력한 스스로를 자책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윤호의 남겨진 동생 윤혜를 변변히 위로하지도 못하고 딸의 상견례에도 나서지 못한 채 윤호의 죽음에 괴로워한다. 「옛사랑」에서는 아버지의 죽음 후에 어머니의 과거를 따라가는 주인공이 어머니와 아버지의 ‘쓸쓸한 삶’을 맞닥뜨리고 자신에게도 이미 옛사랑이 되어버린 헤어진 아내를 보며 회한에 젖는다. 「저녁의 선동가」에서는 필리핀인 엄마를 둔 다문화가정의 딸을 여자친구로 둔 아들이 자신이 일하던 물류 창고의 화재로 세상을 떠난 후, 그 부모가 만나는 세상을 다룬다.
2018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는 손홍규 소설 중에서 비교적 결이 다른 소설로 시간을 역순으로 거슬러 주인공 부부인 남녀가 사랑을 시작하는 과거로 돌아가는 구조이다. 수상 당시에 “손홍규 작가가 즐겨 다뤘던 리얼리티의 문제에 접근하는 섬세한 방법이 이 작품에서는 새롭게 시도됐다”며 “현재에서 과거로 이어지는 서사적 진행 과정에서 과거는 기억 속의 회상이 되지만 일종의 환상처럼 처리되고 있는데 이는 작가 자신의 새로운 실험이다”라는 평을 받았던바, 손홍규 특유의 리얼리즘이 깊어진 작가적 시선과 만나 새로운 세계를 건설해낸 작품이다. 사업에 실패하고 건설노동자로 일하는 남편과 병원 식당의 조리실에서 일하는 아내가 처음 만났던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 두 사람의 인간성과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파괴되어가고 아들을 향한 폭력과 딸의 가출 등으로 가족마저 붕괴되어가는 과정을 그려 보여준다. 삶이란 비애롭고도 쓸쓸하다는 주장을 증명하듯이 말이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극명하게 갈릴 것 같으나 현실세계에서는 그렇지만도 않다. 손홍규 소설의 인물들은 일방적인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도를 넘어서 모순덩어리 세상에서 인간적인 가치를 조금이라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군상들일 뿐이다.

묵묵한 글쓰기과 치열한 작가의식의 힘

지난 20세기의 20년 한국소설은 다양한 장르적 미학의 실험과 지난 세대의 역사적 현실감에서 벗어나 세대적인 특성을 서사화하면서 더러는 추동하기도 하고 더러는 추적해왔다. 그 흐름 안에서 작가 손홍규는 도도하리만치 본인의 소설작법을 고집하며 묵묵하고도 꾸준하게 비정규직이나 이주노동자, 건설노동자 등 사회의 구석지고 어두운 이웃에 시선을 고정하고 천착하며 작품을 통해 인간성 회복을 꿈꿔온 듯하다. 더 깊어지고 넓어진 소설에 대한 고민을 담은 「작가의 말」에서는 그의 치열한 작가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짐작건대 고단할지언정 부단히 도전을 해온 작가 손홍규의 다음 행보는 역시 참다운 사람 냄새 나는 ‘소설’일 것이다.

문학은 인간의 마지막 희망이다. 문학이 부서지면 세계도 무너진다. 그러므로 잊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비슷해 보이는 것은 문학이 아니다. 문학만이 문학이다. 소설과 비슷해 보이는 것은 소설이 아니다. 소설만이 소설이다. 소설이 무어냐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이유는 소설을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고 소설을 규정할 수 없는데 소설이 무언지 어찌 아느냐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아무도 소설을 규정할 수는 없지만 소설을 보기만 하면 그게 소설임을 누구나 알아본다. 아, 이게 바로 소설이구나, 하며 나지막이 감탄하게 된다.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내가 쓰고 싶은 건 소설과 비슷해 보이는 소설이 아니라 소설과 똑같은 소설임을 말해주고 싶었다. -「작가의 말」에서

목차

예언자
옛사랑
노 파사란
눈동자 노동자
무너지다 만 사람
기찻길 아이들
저녁의 선동가
환멸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작가의 말
수록작품 발표지면

본문중에서

앞을 볼 줄 아는 노인의 기이한 능력은 자식들을 비롯해 노부인까지 혼란스럽게 했지만 누구보다 노인 자신이 혼란스러웠다. 노인은 잠을 자다가 보았고 눈을 뜬 채로도 보았다. 옛사람들이 눈앞에 생생하게 살아나 말을 건넸고 전혀 알지 못하는 낯선 풍경이 떠올랐다.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와 고함 혹은 비명이 들리기도 했다. 눈이 부실 만큼 환한 빛이 노인 앞으로 왈칵 다가오다가 깜깜하게 물러나기도 했다. 그 많은 장면 중에 정작 노인이 간절히 알고 싶던 것들은 별로 없었다. 알고 싶지 않은 것들, 몰라도 괜찮은 것들이 더 많았다. (25면 「예언자」)

출상을 앞둔 새벽이었다. 아내는 유족대기실에서 잠을 청했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 잠든 아내와 조금 떨어져 누웠다. 익숙한 아내의 숨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옛사랑이 되어버린 아내 옆에서 이룬 마지막 단잠이었다. (74면 「옛사랑」)

그는 눈을 맞으며 휴대폰으로 노 파사란을 검색했다. ……너희는 여기를 지나가지 못한다. 그는 노인의 알려진 이력과 알려지지 않은 이력 사이의 심연을 느꼈다. 여기까지 힘들여 책상을 끌고 나오게 할 만큼 그를 사로잡았던 기이한 분노가 그의 머리, 어깨, 팔뚝에 잠깐 머물렀다가 녹아버리는 눈송이처럼 스르르 사라졌다. (93면 「노 파사란」)

아내는 이제 물류창고의 화재 사고만이 아니라 건설현장의 매몰 사고, 추락 사고와 같은 산업재해부터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처우, 알바생의 부당해고에 이르기까지 아들을 연상시키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자신의 수중에 넣으려는 사람처럼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주의를 기울였다. 그와 아내는 이런 방식으로 멀어지는 중이었고 그에게는 이 모든 일이 터무니없게 여겨졌다. (206면 「저녁의 선동가」)

음식 재료를 만졌을 뿐인데 구역질이 난다는 건 내 배 속에 아이가 들어설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다른 무언가가 생겨났다는 뜻이겠지. 나는 무얼 잉태해버린 걸까. 내가 이 나이에 잉태할 수 있는 건 분노 말고 뭐가 더 있을까. 옛사람들이 흔히 한이라고 불렀던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한이라는 말은 왠지 체념이라는 말과 비슷하게 여겨져. 나는 오래도록 체념해왔으니 체념이 다져지고 굳어져 생긴 한이라 하기에는 억울해. 그렇게 굳어지고 굳어진 체념이 더는 체념이 아니게 되는 순간이 왔을 뿐이야. 그러니 분노 말고 뭐가 더 있겠어. 그런데 대체 무얼 향한 누굴 향한 분노지. 내가 나 아닌 다른 누구에게 분노를 품을 수 있겠어. 결국 그건 나일 수밖에. 어쩌면 그가 느낀 것이 진실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296면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저자소개

생년월일 1975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저자 손홍규는 1975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동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소설집 '사람의 신화', '봉섭이 가라사대', 장편소설 '귀신의 시대', '청년의사 장기려' 등이 있다. 2004년 대산창작기금을 받았으며 2008년 제5회 제비꽃 서민소설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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