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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 : 동네 주치의의 명랑 뭉클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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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추혜인
  • 출판사 : 심플라이프
  • 발행 : 2020년 09월 25일
  • 쪽수 : 336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86757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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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자전거 타고 왕진 가는 별난 의사,
페미니스트 동네 의사가 전하는 세상에서 가장 솔직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
- 코로나 시대를 건너는 우리 모두를 위한 치유와 희망의 메시지


★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영웅 중 내 가장 가까이에 산다. -요조( [아무튼 떡볶이] 저자, 음악인)

★ 이 책을 읽으면서 모두를 위한 의료, 모두를 위한 돌봄을 키워나가려는 사람들의 노력에 가슴이 뭉클해지면서도 용기가 났다. - 최은영([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작가, 소설가)

★ 책을 읽고 나니 오래 살고 싶어진다. 할머니가 된 추혜인은 얼마나 더 멋질까. -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우리 몸이 세계라면] 저자)

★ 극소수의 ‘명의’를 극소수의 특권층만 만날 수 있는 사회보다, ‘보통의 의사들’을 보통의 시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사회가 더 안전하다. 이런 믿음을 공유하는 의료인이 있다는 사실이 소중하고 든든하다. - 전희경(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공저자,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출판사 서평

여성주의 의료 실천가, 동네 주치의의 명랑 뭉클 에세이
여자, 페미니스트, 동네 의사로 일궈온 20년의 아름다운 여정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국내 최초 여성주의 병원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살림의원)의 의사 추혜인 원장의 에세이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이 출간됐다. 건축학도를 꿈꾸다 “성폭력 피해자를 위해 증언해줄 의사가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에 진로를 바꿔 의대에 재입학한 이십대부터 자전거 타고 왕진 가는 동네 주치의가 된 지금까지 여자로, 의사로, 페미니스트로 살아온 20여 년의 경험과 철학, 함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름답고 감동적인 글 60여 편에 담았다.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안전한 의료 시스템을 향한 열망이 만들어낸 한 지역 의사의 따듯하고 다정한 치료기이자 압축된 생의 기록이다.
책에는 저자가 의사가 된 사연부터 살림의원을 만들게 된 과정, 페미니스트로 살아오며 맞닥뜨린 의료 현장의 문제점, 이웃과 환자들의 왁자지껄한 사람 이야기, 우리가 몰랐던 의료계의 이모저모 등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기존에 가졌던 의사에 대한 편견을 깨주고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소수자도 존중받으며 일상을 영위하고 평등하게 진료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뭉클하고 재미있게 그려낸다.
전례 없는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며 힘들어하는 독자에게 돌봄, 존엄한 삶과 죽음, 이웃, 인간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따뜻하고 재미있고 울컥하게 만드는 건강하고 맛있는 글의 성찬, 책에는 내공 있는 저자의 삶이 고스란히 배어 있어 한번 펼치면 도무지 손에서 놓을 수 없는 묵직한 감동이 있다.
1장 <따릉이 타는 동네 주치의>에서는 살림의원에서 벌어지는 왁자지껄하면서도 은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트렌스젠더의 눈물 쏙 빼는 사연부터 발톱을 깎고 귀지를 파는 왕진 이야기. 동네 목욕탕, 거리에서 만난 이웃 이야기. 병의 근원을 몰라 이 병원 저 병원을 돌다온 환자들의 사연. 죽음을 맞은 환자와의 마지막 인사 등 동네 의사로 살아가는 의사 추혜인의 인간적 면모를 만날 수 있다.
2장 <페미니스트 의사 되기, 쉽지 않아>에서는 ‘병원’ 하면 ‘대형병원, 3분 진료, 남자 의사’를 먼저 떠올리는 세상에서 ‘페미니스트 동네 의사’로 살아가는 여정을 담았다. 대학 1학년 때부터 페미니스트로 활동해온 이야기, 의료현장의 편견과 성추행에 맞서 싸운 일, 현장에서 벌어지는 보이지 않는 부조리를 의사의 눈, 여자의 눈 그리고 시민의 눈으로 살핀다. 성폭력 피해자를 위해 경찰서에 가고 법원에 출두하는 일화, 심지어 아파도 남성 중심으로 진단받는 구조에 문제의식을 던진다.
3장 <그녀들이 나에게>에서는 재개발로 인해 기억을 잃어버린 할머니, 모든 책임을 떠안게 된 이 땅의 산모들을 위한 조언, 암 진단을 받은 독거노인의 숙연해지는 사연, 엄마와의 배꼽 빼는 에피소드 등 오늘의 의사 추혜인을 만들고 깨우치게 만든 여자들의 이야기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4장 <약이 아닌 관계로 치료하다>에서는 약과 기계가 아니라 관계와 사람의 힘으로 건강을 되찾는 사람들의 이야기, 증상으로 드러난 병의 치료뿐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의 맥락 안에서 질병을 통합적으로 살펴보려는 노력에 대해 들려준다.
5장 <우리에겐 주치의가 필요하다>에서는 의료협동조합을 만들고 운영하며 겪은 희로애락, 의사로서의 소명과 애로, 일반인들이 잘 몰랐거나 오해하기 쉬운 의료 현장의 이야기들, 지역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의료 공동체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

★ 이 사람 : 따릉이 타고 왕진 가는 별난 의사, 추혜인
어서 오세요, 왕진 다니는 의사는 처음이시죠?

잘나가던 서울대 의대생이 대학병원을 거부하고 동네 의사가 되어 오르막길을 오르고, 후미진 골목을 자전거를 타고 누빈다. 기저귀를 갈고 귀지를 파고 발톱을 깎는다.
그녀에겐 남다른 꿈이 있었다. 꾸준히 여성주의를 공부하며 언젠가 여성주의를 실현할 병원, 의료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2012년 지인과 지역 주민이 힘을 합쳐 의료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바로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다. 그렇게 살림의원은 지금 조합원 3,200세대가 넘는 어엿한 지역 거점 병원으로 우뚝 섰다.
‘왕진’이란 단어가 낯설고 아직도 왕진이 있냐고 반문하는 시대, 그녀는 일주일에 한번 거동이 불편하거나 병원을 찾지 못하는 환자를 찾아 왕진 가방을 챙겨 나선다.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데 그치지 않고 환자가 일상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환경과 가족 상황, 가구 배치, 햇볕이 들어오는지도 살핀다. 아프거나 나이 들어서도 인간적 품위와 자아를 잃지 않고 치료받을 수 있도록 살핀다. 성폭력 피해자를 위해 기꺼이 달려가 증언해주고, 환자가 원하는 곳으로 왕진을 가는 사람, 은평구 주민들의 사랑방이자 건강지킴 고리 살림의원의 추혜인 원장이다.
이 책은 그런 그녀가 가슴으로 환자를 만나고, 신념과 의지로 환자와 의사가 서로를 신뢰하는 의료 시스템을 일궈낸 공동체의 기록이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잔소리하는 엄마처럼 환자와 마주하는 이 별난 의사의 책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이런 혼잣말을 하게 될 것이다.
“이래야 진짜 의사지!” 정말이지 우린 이런 의사를 기다려왔다.

★ 병원 이야기 :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의료, 지역 주민과 함께 일구다
지역민 건강 책임지는 친근하고 색다른 병원 이야기

헬스도 하고, 중고 물품도 나누고, 수다도 떨고, 오다가다 들르는 병원이 있다고?
의사가 환자를 돈벌이 수단으로 보지 않을 거라는 믿음, 의사가 내 병을 고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라는 믿음, 남녀노소 차별 받지 않고 누구나 평등하게 치료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의료기관이 있다. 여성주의 의료라고 해서 여성만 치료받는 곳이 아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평등하게 진료받을 수 있는 개념의 여성주의 의료를 꾸준히 해온 결과 트랜스젠더나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다문화 가정 여성 등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가 안심하고 치료받는 병원이 되었다.
장애인도 휠체어도 쉽게 드나드는 문턱 없는 병원,
병의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의사와 환자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대화하는 병원,
지역 주민들이 “이 병원 때문에 이사가기 싫어요”라고 말하는 병원
돌봄과 돌봐주기가 연결된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병원,
환자의 질병 이력과 스토리를 줄줄 꿰는 주치의가 있는 병원,
바로 ‘살림의원’이다. 덕분에 이 지역 주민들의 삶은 한결 안전하고 건강해졌다.
이 책을 다 읽을 때쯤 독자는 이렇게 혼잣말을 하게 될 것이다.
“이 동네 사람들 부럽다.”
책은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낯선 병원 풍경 속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 시스템을 만들다 : 3분 진료가 없는 병원, 마을 주치의 시스템
의사와 환자가 서로를 신뢰하고 만족하는 지속가능한 의료 시스템을 만들다

의사들의 밥그릇 싸움에서 벗어나 의사란 무엇인가, 인술이란 무엇인가 물음을 던지는 의료원이 있다. 스스로 물음을 던지고 행동을 통해 답을 찾아나가는 의료원. 이 병원의 조합원들은 더이상 “과잉 진료 없는 병원 좀 추천해주세요” “늙어서 아프면 누가 챙겨주나?”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혼자 고독사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이웃과 의사가 돌봐줄 거라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살림의원 공동체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없는지, 홀로 떨어져 아픈 사람은 없는지 끊임없이 찾아낸다. 혼자 외롭게 늙어갈 걱정을 내려놓게 만들고, 이웃과 의사, 공동체가 서로를 돌보는 문화, 살고 싶은 동네를 만드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 서울시 사회적경제우수기업으로 선정되었고, 2019년 우수사회적협동조합에 선정된 데 이어 추혜인 원장이 ‘사회기업가’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살림의원은 ‘모두가 평등하고 건강한 마을’을 목표로 진료보다는 예방을 지향하고, 과잉진료 없는 적정진료를 통해 환자와 의사가 신뢰하는 병원을 구축해 왔다. 요즘은 나이 드신 어른신들이 마지막을 잘 준비하고 함께 할 수 있도록 통합돌봄센터를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 의료인의 존재가 어느 때보다 소중하지만 그만큼 의사에 대한 불신도 높다. 추혜인 원장은 “의사도 환자만큼이나 신뢰에 목말라 있다”고 말한다. 책은 이런 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고 지속가능한 대안을 제시한다.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는 이런 혼잣말을 하게 될 것이다.
“나도 이런 주치의가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집 근처에 이런 병원이 있다면 좋겠다.”

건강한 열정으로 인간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으며, 지역에 단단히 뿌리 내리고 살아가는 용감하고 멋진 언니들의 행보에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추천사

이 책을 펼쳐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왕진을 다니는 동네 주치의’가 주는 소박한 느낌의 입구를 지나면 여러분은 예상하지 못했던 스펙터클과 액션, 유머와 감동을 만날 것이다. 동네. 결코 크지 않으면서도 결국 우리 삶의 전부인 세계. 그곳에서 의사이자 여성으로서 추혜인 선생님은 완벽한 페미니즘의 운용을 보여준다.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영웅 중 내 가장 가까이에 산다.
- 요조 / [아무튼 떡볶이] 저자, 음악인

때로는 고립감이 그 자체로 사람을 아프게도 한다. 왕진 가방을 들고 따릉이를 타고서 아픈 사람들의 집을 방문하는 이 동네 의사의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내게 위안이 되었다. 누구도 아픈 채로 고립되어선 안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모두를 위한 의료, 모두를 위한 돌봄을 키워나가려는 사람들의 노력에 가슴이 뭉클해지면서도 용기가 났다.
- 최은영 /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작가, 소설가

이 책에는 20년 전 의대생이던 친구가 마을 의사가 되어 삶의 구석구석마다 쌓아온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의사로서 자신이 가진 권력에 계속해서 질문하고 환자마다 다른 삶의 고유한 이야기에 공명하며,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사람들의 손을 놓지 않고 만들어낸 시간이 문장 곳곳에 배어 있다. 책을 읽고 나니 오래 살고 싶어진다. 할머니가 된 추혜인은 얼마나 더 멋질까.
- 김승섭 / [아픔이 길이 되려면] [우리 몸이 세계라면] 저자

푹 빠져들어 한달음에 읽어 내려가면서도, 중간중간 왠지 마음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날 것 같아 고개를 들곤 했다. 나를 열 받게 했던 의사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가, 병원에서 애증의 드라마를 써본 환자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가, 아니, 이건 병원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이 읽어야 되겠구나 싶다. 분노와 선언과 투쟁 ‘이후’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도, 그리고 커뮤니티 케어 정책을 추진하는 정치인과 공무원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 전희경 /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공저자,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목차

프롤로그

1장 따릉이 타는 동네 주치의
- 그가 그녀가 되는 곳
- 스트레스 탓이라는 뻔한 말
- 따릉이 타는 우리 동네 히어로
- 발톱을 깎고 귀지를 파고
- 그러는 나이가 있어요
- 정말 페미니즘 운동을 위한다면
- 새로워지는 데 걸리는 시간
- 언젠가는 찾아오는 빚쟁이
- 팔짱을 끼지 않는 의사들
- 벌거벗은 주치의
- 밤 11시 45분에 걸려오는 전화
- 할머니의 반지

2장 페미니스트 의사 되기, 쉽지 않아
- 나는 남자라서 의사 못 되잖아!
- 우리가 만든 분란
- 공대생이 의대생이 된 사연
- 관계를 여는 버튼
- 보호자인가 가해자인가
- 경찰서에 가다
- 법원에 출두하다
- 자기는 왜 결혼 안 해?
- 밤길이 두렵지 않을 때
- 싸움의 기술
- 통증 차별 대우
- 나도 딸이 있었으면 좋겠다?

3장 그녀들이 나에게
- 과호흡증후군과 첫 숨의 기억
- 독거노인 할머니와 보살님
- 기저귀를 갈다
- 엄마의 암 진단 대소동
- 약이 싸구려라 그래
- 화장실 이용 순서
- 잘 키워오셨습니다
- 너나 많이 느끼세요
- 만성 소화불량, ‘안심’을 처방하다
- 이유만 알아도 견딜 수 있다
- 엄마가 되는 그녀들에게
- 재개발, 기억을 허물다

4장 약이 아닌 관계로 치료하다
- 담배 연기의 무게
-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의원
- 목구멍이 닮았다
- 진짜 동네
- 혈관을 잃고 생명을 얻다
- 사망진단서를 쓰며
- 아이 키워본 적 없죠?
- 갑상선암과 방사선
- 의대에서 배우지 못한 치료법
- 지역으로 열린 시설
- 무엇을 배우든 써먹는다
- 주민들과 함께하는 왕진

5장 우리에겐 주치의가 필요하다
- 제가 꿈꾸는 병원은요
- 통역자로 일하는 중
- 건강검진은 마음 편하게
- 코딱지와 면역 똘레랑스
- 불편한 이야기를 하고 듣기
- 팀 주치의가 필요해
- VIP 신드롬
- 불만이 많은 환자들
- 비염이 요실금을 부르기까지
- 자격증과 면허증의 차이
- 감기밖에 모르는 의사

- 에필로그
- 부록 주치의를 갖고 싶다면

본문중에서

가끔 의사들이 여성들의, 특히 젊은 여성들의 통증 호소에 너무 둔감하다는 생각을 한다. CT, 초음파, 내시경에서도 아무 이상이 없는 젊고 건강한 여성이 ‘아프다’고 말했을 때, 그 이유를 설명해보려는 노력보다는 정신과적인 ‘설명 모델’을 너무 손쉽게 가져오려고 한다.
(/ p.22)

나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왕진을 간다. 의원에서 출발해서 마을 가게를 들러, 아는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오르막을 올라 땀을 훔치며 집에 들어간다. 이렇게 가면 동네가 더 잘 보인다. 얼마나 가파른 오르막을 걸어야 집에 도착할 수 있는지도 보고, 집까지 가는 길에 싱싱한 식재료와 생필품을 구할 곳이 마땅히 있는지도 본다. 집에 도착해서는 고혈압·당뇨 교육도 하고, 무좀 상태도 본다. 소리를 잘 못 들으시는 것 같아 귀안을 들여다보면 귀지가 가득 찬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땐 기구를 넣어 살살 빼내기도 한다. 근육위축이나 관절구축이 더 진행되지 않았는지도 살피고, 방 안의 가구 배치도 본다. 방에 볕과 바람이 잘 들어오는지 확인한다.
(/ p.28)

몸과의 그 많은 시간들을 거치고서야 내가 생각하는 몸과 내 실제 몸 사이에서 합일점이 찾아지기 시작했다. 몸으로 해볼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해본 후에야, 30대 후반 이후에야, 서서히 내 안에서 화해가 일어나고 있다.
(/ p.43)

대학에 입학한 후 페미니즘 모임에 나가, 나와 친구들은 가슴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가슴을 숨기고 싶어 했던 시기를 너나없이 보냈다는 사실에 우리는 놀랐다. 가슴을 숨기고 싶었던 시간과 가슴이 크면 멍청해 보일 것 같았던 사춘기의 걱정이, 내 안에 자리 잡은 ‘여성혐오’라는 걸 깨달았다. 여성혐오는 남성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 p.46)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거부할 수 있는 작은 제스처는 많고도 많다. 팔짱을 끼거나, 등받이에 몸을 기대면서 환자에게서 살짝 멀어지거나, 혹은 작고 미묘한 한숨이나 지친 듯한 표정. 정말로 작은 제스처로도 환자들은 ‘아 더 이상은 얘기하면 안되겠다’, ‘이 의사와는 말이 통하지 않겠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그저 효율적인 CPR을 위해서 끼고 있었던 팔짱도, 긴 근무 시간에 지쳐 잠시 내뿜은 한숨도, 어떤 이들에게는 거부당한 느낌을 주고 상처를 남긴다. 그리고 진료실은 그 어느 때보다 상처받기 쉬운 상태의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 p.59)

살림의원의 어느 단골 꼬맹이가 집에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나는 남자라서 의사가 못 되잖아. 나는 의사 선생님 되고 싶은데, 엉엉엉….” 태어나서 본 의사라고는 살림의원 의사들밖에 없어서, 자기는 남자라 의사가 될 수 없을까 봐 너무 걱정되어 집에서 울었다는 얘기를 듣고 귀여워서 한참 웃었다. 이 사건을 귀여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실제로 의사가 되는 데 남자라서 불리한 점은 전혀 없다는 사실을 나도, 그 아이의 부모도, 우리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 p.89)

우리 비혼 페미니스트들은 지금까지 살았던 그 어떤 지역에서도 단 한 번도 ‘죽을 때까지 여기서 살 거야’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집 살 돈이 없어 월세와 전세로 전전하던 대학로나 신촌, 홍대 근처에서 우리는 부평초였다.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성들은 ‘미혼 여성’으로 불렸고, 독립생활을 하는데도 ‘자취’하는 것으로 보였다. 결혼하여 온전한 거주를 결정하기 전까지 일시적으로 사는 사람들로 여겨졌다. 동네 사람들에게도 우리는 뜨내기, 친해질 필요가 별로 없는 존재들이었다.
(/ p.91)

내가 답하는 동안 변호사와 가해자는 계속 소곤거리며 대화하고 있었다. 신경에 거슬렸다. 증인은 이제 나가도 좋다고 판사가 얘기했을 때, 나는 몸을 오른쪽으로 천천히 돌리며 가해자의 얼굴을 똑똑히 마주보았다. 그가 나의 얼굴을 기억할지, 나의 이름을 기억할지, 이제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너를 무서워하지 않아.’ 이것이 내가 그에게 남기고 싶은 메시지였다.
(/ p.119)

의대생이나 젊은 여자 의사들이 성폭력과 차별이 만연한 병원 조직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잘 싸울 수 있느냐고. 나는 이렇게 답했다. 이 싸움으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지 계산하면서 싸우는 것, 누구와는 싸우고 누구와는 동지가 될 것인지 고려하는 것, 어떤 방법으로 싸울지 신중하게 전략을 세우는 것, 무엇보다 싸울지 말지부터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꼭 싸워야만 하는 건 아니다. 어떤 때는 스스로를 잘 지키고 숨죽여 지내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나의 생존을 도모해야 할 때가 있다. 병원 안에서 싸우는 데는 정말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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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2종
판매수 453권

서울시 은평구에 위치한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의 가정의학과 의사.
1996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입학했으나, 1학년 겨울 성폭력상담소에서 자원활동을 하다 “성폭력 피해자의 입장에서 진료해줄 의사가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진로를 변경해 이듬해 같은 대학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꾸준히 여성 단체에서 활동하며 여성주의와 의료인의 삶에 대해 고민하다, 건강한 삶의 토대가 되는 의료협동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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