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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깊이 : 강요배 예술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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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강요배
  • 출판사 : 돌베개
  • 발행 : 2020년 09월 11일
  • 쪽수 : 380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71995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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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 나의 자아는 두 가닥의 회로를 따라 교차하면서 자라난 듯하다.
자연과 우주, 사회와 역사로 향하는 두 가닥의 회로. 그 둘이 바람 속에
얽혀 있듯이, 그것들을 그림 속에 녹이고 싶다. 그것들은 자아와 사물의
끊임없는 대화요, 세계 속에서 중심을 찾아보려 안간힘을 쓰는
한 존재의 마음 궤적일 뿐이었다. ”
⸻ 「그림의 길」 중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강요배
그의 삶과 예술을 응축한 첫 산문집

강요배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에 들어서면, 우선 압도적인 작품 스케일에 놀라 숨을 멈추게 된다. 그런데 작품에 몰입하기 전부터 관객의 발걸음을 멈춰 세우는 것이 있다. 강요배의 글이다. 작가의 심상을 표현한, 생생하고 강렬한 뜻과 따뜻하고 풍요로운 마음이 담긴 글은 관객이 그 앞에서 오랫동안 서성일 수밖에 없도록 한다. 관람을 마친 관객에게 강요배의 글은 그림만큼 깊은 인상을 남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강요배의 글은 한두 편에 불과하다. 이 책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강요배의 글을 지속적으로 음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나아가, 글과 그림을 한데 모아서 오랜 시간 감상할 수 있는 길이 없을까.
[풍경의 깊이]는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강요배의 삶과 예술을 응축한 산문집이다. 강요배가 평생 그려 온 2,000여 점의 그림과, 그림에 담긴 뜻을 표현해 온 수많은 글과 말 가운데 독자에게 그 요체를 전할 수 있는 부분을 골라내어 실었다. 강요배는 그림 작업이 “평평한 곳에 몸을 써서 마음을 나타내려는 의지”라고 말했다. 책 역시 납작하고 압축된 공간이지만, [풍경의 깊이]에는 화가 강요배가 사람·역사·자연을 직면하는 뜨거운 마음, 그가 지닌 오랜 연륜의 흔적, 예술을 향한 깊은 사유의 향이 짙게 배어 있다. 강요배의 정수를 담은 이 책이 품은 그윽한 향기가 독자에게도 전해지길 바란다.

“어떻든 여기 한 권의 글 모음이 있다.
내 인생 45년간의 생각들이다. 결코 짧지 않은 기간에 쓰인, 많지 않은 글들이다.
한데 모인 글을 보니 살아온 시간에 따라, 내가 여러 사람의 나로 나뉘는 이상한 기분이 든다.
나이 든 내가 청장년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젊은 나는 미숙했으나 지금의 나보다 먼저 살았다.
젊은 나들이 있었기에 뒤따르는 지금의 내가 있다. 또 달리 보면,
마치 러시아 인형처럼, 어린 나를 속에 안고 삶의 우여곡절 속에서
이를 겹겹으로 둘러싸 온 인격체가 지금의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기에 지금의 나는 젊은 나들을 긍정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든 나쁘든, 한 화가의 인생에서 펼쳐진,
생각의 여로가 투명 구슬 속처럼 환히 들여다보이는 결과물이 나왔다. 감사하다.”
⸻ 「서쪽 언덕에서」 중에서

생각의 여로를 담은 글과
울림이 있는 그림을 함께 만나는 책

화가 강요배는 1988년 <한겨레> 신문 창간을 기념해 소설가 현기영이 연재한 「바람 타는 섬」에 함께할 그림을 그리면서 주목받는다. <제주 민중 항쟁사> 연작은 <동백꽃 지다>(1991)라는 한국 미술사의 중요한 작품으로 이어지며, 강요배는 4·3 항쟁의 화가로 불리게 된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고향의 역사를 탐구하는 일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고, 생존의 지평과 그 복판을 흐르는 인간 뜻을 읽어 내는 문제였다. 초기에 강요배는 역사가 민중에 새긴 고통과 항쟁의 뜨거운 기억을 그림으로 남기는 것을 작품의 주요한 흐름이자 목표로 삼았다. 따라서 ‘내용’에 초점을 두었다. 그림을 통해 아픈 역사가 계속 기억되고 이야기되길 바랐다. 강요배를 필두로 의식 있는 작가와 시민, 유가족이 함께 노력하여 그 결실로 2000년 1월 ‘제주 4·3 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 공포되었고, 이에 따라 <제주 4·3 사건 진상 조사 보고서>가 채택되었고 대량 학살에 대해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동백꽃 지다> 이후 1992년 제주로 귀향하여 섬의 바람과 나무를 벗하며 그 땅에 새겨진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강요배 작품은 점차 깊어진다. 그는 작품의 방법론을 치열하게 고민했고, 기억과 시간을 응축한 ‘상’象으로 그림을 그리기에 이른다. 그는 ‘추상’이 “애매모호하게 흐리거나 기하 도형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 흘러가는 ‘사건’을, 어떤 기氣의 흐름을 추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핵심, 골격을 중시하며 명료화하는 것이 ‘추상’의 진정한 의미라고 주장한다. 동일한 작품 경향을 지속하거나 반복하는 작가도 많지만, 강요배는 끊임없이 연구하고 탐구하며 작품 세계를 변화시키고 발전해 가는 작가다. 삶의 본질을 파고드는 그의 작품은 이제 아픔을 기억하는 데서 나아가 자연을 통한 치유를 고민하고 우리가 지켜야 할 평화를 모색한다.
강요배가 말하듯, 이 책은 “한 화가의 인생에서 펼쳐진, 생각의 여로가 투명 구슬 속처럼 환히 들여다보이는 결과물”이다. 이는 [풍경의 깊이]에 그림뿐 아니라 글로도 오롯이 담겨 있다. 작품을 그리는 시간보다 사유하는 시간이 더 길 때도 많다는 화가 강요배는 1년 또는 다년간의 생각을 글로 정리하며, 그림만으로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자신을 더 확실히 하고자 글을 써 왔다고 한다. 이 책은 강요배를 알아 온 독자에게는 그가 단지 4·3의 화가만은 아니었음을 깨닫게 하고, 그를 잘 모르는 독자에게는 역사와 인간 존재에 관한 강요배의 통찰에 공감하도록 하며 깊은 울림을 줄 것이다.
[풍경의 깊이]는 화가 강요배가 지닌 마음의 풍경, 즉 “세계 속에서 중심을 찾아보려 안간힘을 쓰는 한 존재의 마음 궤적”을 따라가면서 이 땅에 새겨진 시간과 우리가 머무르는 자연을 음미하도록 한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우주의 단독자로서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마음의 무늬”를 그릴 수 있도록 이끈다. [풍경의 깊이]는 자연과 역사, 민중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오랫동안 삶과 세계를 응시하며 강렬한 필치로 미적 영감을 표현해 온 화가 강요배의 예술 세계를 보여 주는 글 모음이자 그림 모음이며, 사유의 모음이다.

사진가 노순택과 화가 강요배,
살아남은 두 예술가가 마주 앉은 풍경

또한 [풍경의 깊이]에는 사진가 노순택의 강요배 인터뷰가 실려 있다. 노순택은 <비상국가>·<망각기계>·<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등의 개인전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가 보여주는 작동과 오작동의 풍경을 담아낸 한국 대표 사진가다. 비슷한 지점을 응시하고 집중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세대를 살아온 두 예술가의 만남과 대화는 한국 예술사의 이정표가 될 만한 사건이다.
노순택은 30여 년 전 학교 앞 작은 책방에서 강요배를 흑백의 작은 엽서로 만났고, 오래지 않아 원작을 인사동의 화랑에서도 만났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의 작업을 여러 번 다시 만났다. 어떤 경우에는 강요배의 작업과 노순택의 작업이 같은 벽에 걸렸다. 때로는 두 사람 모두 4·3을 말하고 있었다. ‘회화’와 ‘사진’이라는 다른 방법으로 세계를 표현하는 두 작가에게는 차이점만큼이나 공통점이 많았다. 유신 독재 시대의 현실 인식과 실존 문제에 관해 대화를 나눌 때는 두 사람 모두 눈에 힘을 주었고, “세계와 역사를 묻는 작업은 곧 스스로를 묻는 작업”이라는 이야기를 나눌 때는 공명하며 눈빛을 주고받았다. 또한 강요배가 예술이고 나발이고 결국은 ‘살아남아야 한다’라고 거듭 말할 때, 둘은 함께 웃었다.
30여 년 만에 중견 사진가가 되어 강요배를 만난 노순택은 “4·3 연작을 그리던 마흔 즈음의 강요배와 상처 난 풍경을 탐색하던 쉰 즈음의 강요배, 그려 온 것과 그려야 할 것 사이에서 고민했을 예순 즈음의 강요배, 지금 내 앞에 붉은 얼굴로 앉아 있는 칠순 즈음의 강요배”를 두루 만난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인터뷰를 끝낸 뒤 귀덕화사歸德畵舍(강요배의 작업실)에서 만난, 마지막 붓질을 기다리며 출렁대고 있는 그의 작품이 “바람에 부서지는 뼈들의 파도”처럼 보인다고 했다.

강요배는 나이가 들면서 좀 어눌해지고 어설퍼지고 잘 잊어버리고 실수도 많이 하면서 생각이 좀 단순해진다고 했다. 젊은 시절에는 온갖 화려한 기법을 동원하는 게 좋았지만, 점점 어수룩하고 소박한 것이 좋아지고 세밀한 것에 대한 집착을 많이 놓게 된다고, 그래서 추사 김정희도 일흔 살이 넘어서야 어린아이처럼 서툰 듯한 글씨체가 나온 거라고 말이다. 그는 자신 역시 아직도 미완인,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 있다고 믿는다.

강요배는 말한다.

“아직 더 해야 한다. 좀 더 비어 있는 상태로, 좀 더 자유분방하게, 좀 더 부드럽게.”

이미 일흔을 바라보는 화가의 첫 예술 산문집이, 화가 강요배의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 돌베개 유튜브 채널에서 ‘강요배의 예술 한잔합시다’ 시리즈를 업로드하고 있다.
화백 강요배의 깊고 다채로운 예술관과 인간 강요배의 매력적인 면모를 직접 만나 볼 수 있다.
강요배와 노순택의 인터뷰 영상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으며, 일곱 개의 에피소드가 연재될 예정이다.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h2DXSv4K0oJGEbKMssGjfVPGwGzUbjmW
단축 URL: http://asq.kr/H8gxC7wXbSry

목차

1 나무가 되는 바람
마음의 풍경 20 ⸻ 제주, 유채꽃 향기 날리는 산자락 28 ⸻ 바람 부는 대지에서 32 ⸻ ‘서흘개’와 ‘드른돌’ 38 ⸻ 가슴속에 부는 바람 44 ⸻ 폭락 54 ⸻ 산꽃 자태 56 ⸻ 그림의 길 74 ⸻ 그림의 방식 90

2 동백꽃 지다
시간 속에서 128 ⸻ 4·3을 그리며 136 ⸻ 4·3 순례기 142 ⸻ 현장 연구원들의 겸허한 마음 150 ⸻ 탐라 177 ⸻ 한라산은 보고 있다 184 ⸻ 금강산을 그리며 192 ⸻ 봉래와 금강 197 ⸻ 휴전선 답사기 207 ⸻ 풀과 흙모래의 길 214 ⸻ 몽골의 푸른 초원 219

3 흘러가네
죽음에의 향수 228 ⸻ 각角 234 ⸻ 용태 형 238 ⸻ 마부 240 ⸻ 돈, 정신, 미술품 244 ⸻ 미술의 성공과 실패 253 ⸻ 창작과 검증 272 ⸻ 어려운 날의 미술 283 ⸻ 공재 윤두서 선생 측면 상 292 ⸻ 예술이란 무엇인가 294 ⸻ 무엇을 할 것인가 296 ⸻ 제주 굿의 시각 이미지 300 ⸻ ‘그림’이란 무엇인가 310 ⸻ 사물을 보는 법 316

강요배와의 대화 바람에 부서지는 뼈들의 파도 노순택 326
[풍경의 깊이]에 부쳐 시간 속을 부는 바람 정지창 364
후기 서쪽 언덕에서 372

도판 목록 375
출처 378

본문중에서

영혼이 맑고 예민한 친구들은 순수한 영감을 받아 그 무엇을 그리거나 썼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내게 그림은 이 세계와의 싸움인 동시에 나와의 싸움, 즉 내 속의 무수한 인격들, 내 속의 이질적인 체험들, 내 속의 모순적인 가치 체계들의 싸움일 뿐이다. 그 팽팽한 긴장과 격렬한 싸움을 통해 내가 미처 모르는 ‘나’를 찾는 것, 내가 형성해야 할 ‘나’를 찾는 과정일 뿐이다.
(/ p.14)

소가 되새김질하듯, 재료들이 내 안에 들어와서 5년도 되고 10년도 되고 그렇게 한참 지나서 적당할 때 그려 보는 거다. 그런데 그것들에는 격한 것, 잔잔한 것, 은은한 것, 대비가 강렬한 것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내 상태가 다소 격하다 하면 반대로 약간 조용한 것을 찾게 된다. 내가 너무 밍밍하고 그러면 좀 더 격렬한 것을 끄집어내게 된다. 그러다 보니 현장의 생생하고 구체적인 디테일보다도 대상의 핵심적인 측면이 강하게 다가온다.
(/ p.72)

바람 속에는 수백 년 묵은 고목이 버티고 있다. 남쪽으로 쏠린 뼈가지를 하고, 마치 바람을 닮은 거대한 새처럼 바람을 타고 있다. 강한 바람은 인고의 생명을 안아 키운다. 바람과 나무는 서로를 멸하지 않고 서로를 만든다. 어쩌면 그것들은 하나다. 그 매운바람이 아니라면 저다운 나무로 살 수 없고, 또한 바람은 나무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 바람은 영겁의 시간 속을 불어온다. 바람을 맞는 물과 돌과 땅거죽엔 시간이 각인된다. 장구한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은 하나가 된다. 물이 뒤집히고 눈발이 솟구치고 구름장이 찢긴다. 달과 별이 떨린다. 이 맵찬 바람 속의 풍경들 그리고 한차례 바람이 다 지나간 후 섬의 중심에 의연히 앉아 있는 새하얀 산, 한라산. 이것이 나에겐 참다운 풍경으로 비친다.
( '마음의 풍경' 중에서)

‘추상’에서 ‘상’ 자는 이미지 ‘상’像 자가 아니고 코끼리 ‘상’象 자를 쓴다. 이미지나 형태에 국한된 개념이 아닌 것이다. 주역에 ‘괘상’卦象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어떤 요약된 본질, 압본壓本 같은 것을 의미한다. 즉 어떤 사건의 핵심이랄까. 그리고 ‘사상’이라는 단어도 이와 관련된다. 그런데 갈수록 추상이라는 언어가 혼란스럽게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명료화가 아닌 ‘애매화’하는 것을 추상이라고 생각한다. 또 한편으로는 단순히 기하학적인 것을 추상이라고 이해하곤 한다. 물론 수학 자체도 추상적인 것이니까 맞는 말이지만, 동양 철학에서 볼 때 추상은 시간 속에 흘러가는 ‘사건’을, 어떤 기의 흐름을 추출하는 것을 말한다. 결국 본질, 골격을 중시한다는 의미다.
(/ p.88)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방식들의 최종 효과, 감동의 문제다. 성공적인 그림은 방식의 적절한 사용에 의해 참신해야 하고, 풍부해야 하고, 간결하며, 생동해야 한다. 그것은 먼저 창작자 자신을 놀라게 해야 하고, 다시 감상자의 마음을 반드시 움직여야 한다. 그가 그림 앞에 섰을 때, ‘어!…아하…야~’ 하는 마음이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그림을 통해 우리가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되어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다.
( '그림의 방식' 중에서)

진정한 분노 뒤에는 따뜻한 마음이 있다. 뜨거운 사랑이 있기에 분노가 가능하다고 본다. 복수초가 스스로 에너지를 내서 눈을 녹이듯이, 그런 에너지가 분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p.122)

저항은 삶을, 생존을 위한 것 아닌가. 어떠한 이념, 낙관, 슬픔, 비극, 이런 것들을 넘어서서 ‘생존 그 자체’에 가치를 둬야 하지 않겠느냐. 즉 우리는 ‘삶을 부정하거나 치장해서는 안 된다’라는 시각으로 먼 고려 시대부터 현대사까지 바라보자는 것이 착수하면서의 마음이자 끝나서의 마음이었다.
(/ p.160)

정치적 폭력은 민중의 몸에 죽음과 상처를, 마음에는 치유하기 어려운, 대를 잇는 오랜 후유증을 남겨 놓는다. 정치적 폭력은 보이지 않는 더 큰 구조나 기획이 은폐된 공간에서 광란하며 터져 나오는 현상이다. 심도 있고 광범위한 커뮤니케이션에 의한 감시, 또는 포위만이 이러한 폭력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 p.169)

<시원>의 할머니에서부터 <기아>의 소녀 등 내 그림에는 여성이 많이 등장한다. (…) <식량을 나르다>의 여인들은 남편이나 오라버니가 있는 산으로 간장과 소금을 지어 나르는 모습이다. 싸움에 일조한다는 생각도 있지만, 우선 생존, 먹고사는 것, 가족의 목숨을 지키려는 어머니이자 아내로서의 본능 같은 것을 담보하는 존재로서 여성의 모습을 그리려 했다. 금세기는 흙이 수난을 받고 약한 자들이 무수히 죽어 가고 짓밟히는 20세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근대사부터 현대의 광주까지. 몇 작품은 이런 역사를 여성성의 수난으로 상징해 본 것이다.
(/ p.174)

금강산의 인상은 그 안에 피운 금강초롱꽃의 얼굴처럼 풋풋하고 순수했다. 신선과 선녀가 노닐고, 1만 2천의 나한과 보살이 금강계를 펼친다는 그곳은 어쩌면 마음의 경지인 듯도 하다. 먼 옛날 동방으로 흘러온 사람들은 마음의 거울과 같은 이 산을 그리워했다. 고대의 고분 벽화 속에 산악을 넘어 운무와 더불어 비천飛天하는 신선의 모습에서 오랜 염원을 본다. 또한 불심이 펼친 금강의 세계를 찾아 수많은 구도자가 이 산자락에 귀의했다. 풋풋하고 순수한 마음의 경지. 그것은 오랜 시간을 거쳐, 울울하고 첩첩한 공간을 돌아 강고한 인간의 제도를 뚫고 뚫어서 구하지 않으면 안 될 우리 겨레의 이상향이 아닐까? 그 맑고 고운 기운은 이제 현실의 안개와 홍진에 휩싸여 꿈속에 두고 온 듯 아득하기만 하다.
( '금강산을 그리며' 중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은 한 탁월한 비평가의 비유대로 아직은 모호한 어떤 마음을 낚는 일인지 모른다. 이 낚음질에는 먼저 평정한 상태와 미끼가 필수적이다. 미끼란 외부 사물, 생각거리 등 이른바 소재다. 미끼는 목표물이 아니다. 그것을 다루는 방식, 낚아 올리는 방식, 요리해 내는 방식을 통하여 마음은 드러날 것이다.
이 방식들이야말로 ‘추상화’ 과정이 아닐까? 어떤 것들은 사상하고 가장 강력한 것. ‘바로 그것’을 뽑아 올린다. 그러므로 ‘추상화’는 명료화 과정이다(애매모호하게 흐리거나, 기하 도형을 반복하거나 하는 것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마침내 ‘그림’은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그림’은 미술로부터 뛰어오른다.
( '그림 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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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생년월일 1952.04.18~
출생지 제주
출간도서 2종
판매수 4,940권

화가. 제주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서 미술 대학을 졸업했다.
미술 동인 ‘현실과 발언’(1981)에 참여했고,
〈제주 민중 항쟁사〉 연작으로 개인전(1992)을 열었다.
이후 제주로 귀향하여, 제주의 자연과 이를 빌려 내면을 표현하는 방식을 탐구하고 있다.
〈제주의 자연〉(1994), 〈상象을 찾아서〉(2018) 등
23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150여 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화집 『동백꽃 지다』(1992, 1998, 2008)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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