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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개손자를 만나다 : 박상률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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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박상률 시인의 시집 『길에서 개손자를 만나다』가 시작시인선 0345번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1990년 『한길문학』에 시를, 『동양문학』에 희곡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시집 『진도아리랑』 『하늘산 땅골 이야기』 『배고픈 웃음』 『꽃동냥치』 『국가 공인 미남』, 소설 『봄바람』 등을 출간하였다.
시집 『길에서 개손자를 만나다』에서 시인은 진중한 고백과 증언 안에서 근원적 상태를 회복하려는 지향을 보여 주며, 다양하게 펼쳐지는 삶의 양상을 통해 존재의 근원을 탐색해 나간다. 시인이 탐색하는 근원적 지점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유토피아에 가깝지만, 우리 시대의 불모성을 견디게끔 해주는 상상적 에너지로서 기능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해설을 쓴 유성호 문학평론가는 이번 시집에 대하여 “가장 깊은 실존의 영역에서 생성되는 자기 표현의 한 정점”이자 “현실에 대한 증언”이며, “해학을 통한 인간 본질의 사유를 극점에서 들려주는 빛나는 예술품”이라 평했다.
이처럼 박상률의 시는 삶의 깊은 저류底流에 흐르는 근원 지향성을 우리 시대의 정서적, 실천적 대안으로 꿈꾸고 있다. 가령 이번 시집은 고향에서 발원한 경험과 언어로 구성된 미학적 실체로서의 시 쓰기를 잘 보여 준다. 원형적 가치에 대한 추구와 열망은 모든 현상들이 호혜적으로 의존하고 있음을 역설하며, 개인과 공동체의 긴밀한 연관성을 통해 근원에 다다르는 시적 사유의 한 형태를 보여 주기도 한다. 한편 시인은 추상어보다는 구체어, 문어보다는 구어, 표준어보다는 지역어를 지향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대립과 균열보다는 따뜻한 화해의 언어를 경험하게끔 해준다. 시인은 자신을 구성하는 시공간에 동일성을 부여하고 심미적 언어의 조탁보다는 자연스러운 말 자체의 미감을 중시함으로써 미학적 가치를 만들어낸다. 또한 서정의 원형을 통해 자신의 기억과 공동체의 내력, 그것들을 향한 성찰 과정을 아름답게 형상화한다. 요컨대 서정시의 원리를 충실하게 구현하고 있는 그의 시를 통해 우리는 궁극적으로 기억의 뿌리와 기억의 확장 과정에 참여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추천사


시인의 말

글둠벙이 있는 이야기밭 언저리에 살면서
하루를 한평생(一日一期)으로 알고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것(一空)을 느끼며
마냥 아득하고 먼 하늘(九空)을 가끔 쳐다보면서
글농사를 짓는데,
이번엔 시詩를 모아 집集을 하나 지었다

오늘도 평생의 삶을 살았다

무산서재無山書齋에서 2020년 여름
박상률

―해설 중에서
고향의 ‘산’과 ‘말’을 통한 시인의 따뜻한 기억은 깊고 둥그런 성정性情에서 발원하여 우리로 하여금 날카로운 균열보다는 따뜻한 화해의 언어를 경험하게끔 해준다. 물론 이러한 통합의 사유는 서정시 일반의 속성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박상률이 이루어가는 이러한 성격의 지속성은 더없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만큼 그는 자신을 구성해 왔던 시공간에 동일성을 부여하면서 심미적 언어의 조탁보다는 자연스러운 말 자체의 미감을 중시해 간다. 미추美醜와 청탁淸濁을 가리지 않고 뭇 사물과 시간이 기억 안에서 동등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는 생각을 펼쳐간다. 그리고 추상어보다는 구체어, 문어文語보다는 구어, 표준어보다는 지역어를 지향하면서, 몸에 새겨진 기억을 하나하나 표현해 간다. 세계와 건실하게 밀착되어 있는, 고아古雅한 언어와는 확연한 대극을 이루는 날것 그대로의 말을 재현해 가는 것이다. 이는 꽤 자각적인 것으로서 이번 시집에서 고향의 경험을 말의 사원에 채워가는 원리를 이루고 있다 할 것이다.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엎어말아국수 13
똥간과 천당 14
선인장 15
소각 16
심우도 17
저승에서 받은 전화 18
신동 19
지하철에서 생긴 일 20
천국과 지옥 22
학번 23
몌별 24
호수 풍경 25
무등의 말 26
무산無山 27
망월동에서 28
월출산 29

제2부

길에서 개손자를 만나다 33
지랄 총량의 법칙 34
거리의 낱말 읽기 35
나는 밥이 맛없던 적이 없다 36
제주 하늘에서 37
재능 기부 38
흰 달이 되어버린 사내 소월素月과, 그의 소녀 40
김준태 시인 약전略傳 42
막걸리 보안법 44
1월이 되면 국사책을 생각한다 45
사랑공화국 46
하나짜리 말 47
진언眞言 48
허언虛言 49
막말질 50

제3부

회갑 53
고告 54
노모와 고양이의 생존법 56
새로 온 면직원? 새로운 도둑놈! 58
좋은 모습 59
채석강에서 60
효자 아들 62
우아래 집 삼시롱 한 번도 어먼 일 없었은께 64
어머니가 걸으셨다 66
입 하자는 대로 67
남남 68
오월이면 춘향이는 그네를 타고 70
자화상, 겨울의 71
돌아가는 길 72
바다로 간 사내 74

제4부

백년의 약속 77
혁명의 이름 78
지랄이 풍년 80
축사 전기 요금으로 81
민중이 되고 싶었던 그 82
신문 읽는 것을 독서로 여긴 사람의 죽음 83
승냥이가 다시 나타났다 84
밥상머리 가훈 86
먹어야 살겄다 87
태풍 부는 날 88
희망 고문 90
방정환 91
할 만큼 했다고? 92
웃겨 증말! 94
절망적인 희망 95
봉평 메밀꽃 축제 96

해설
유성호 구체성의 언어로 가닿는 삶의 가장 깊은 저류底流 97

본문중에서

길에서 개손자를 만나다

경기도 어디를 가는데 교통수단이 마땅치 않아 하는 수 없이 차를 몰고 나갔다. 서울을 벗어나 안양 인덕원쯤 지날 때 차에 기름을 넣기 위해 좌회전 신호를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중앙선 넘어 옆으로 승용차 한 대가 오더니 창문을 내린 뒤 운전자가 나를 보고 소리쳤다.
“야, 이 개새끼야!”
나는 영문을 몰라 창을 내리고 물었다.
“개손자님, 왜 그러십니까?”
그랬더니 내가 자기 차 앞에 있어서 U턴을 못 한단다. 그 차로는 U턴하는 차로가 아니고 좌회전만 하게 되어있다 했더니 내가 비켜주었으면 앞 신호를 보고 차 없을 때 얼른 차를 돌릴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나……

나는 젊을 때 대학의 문예창작과 희곡 시간에도 학생들에게 어떤 작품 읽어주면서 대사에 ‘개새끼’가 있으면 글자를 풀어서 ‘가이사이끼’라고 할 정도로 ‘개새끼’라는 말을 싫어한다. 60대인 내가 개의 ‘새끼’이면 40대로 보이는 그는 개의 ‘손자’가 마땅해서 그렇게 물었을 뿐.

저자소개

박상률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1958

1958년 전남 진도에서 태어나 전남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했다. 1990년 《한길문학》에 시 〈진도아리랑〉과 《동양문학》에 희곡 〈문〉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96년에는 ‘문학의 해 기념 불교문학상’ 희곡 부문을 수상했다. 숭의여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를 지내며 계간 ≪문학과경계≫ 편집위원, 월간 ≪학교도서관저널≫ 기획위원, 계간 ≪청소년문학≫ 편집 주간을 역임했다. 2018년에 ‘아름다운 작가상’을 받았다.
그동안 발표한 작품으로 시집 『진도아리랑』『꽃동냥치』『국가 공인 미남』『길에서 개손자를 만나다』 등을 비롯, 소설 『봄바람』『나는 아름답다』『밥이 끓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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