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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 도시소설가, 농부과학자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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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다르게 아름답고 다르게 진실할 때 다른 삶이 펼쳐진다”
이야기에 매혹된 소설가 김탁환이 땅에 매혹된 농부 이동현을 만나
서로를 흔들어 깨운 시간들!

도시소설가 김탁환은 농부과학자 이동현이 만나 발견한 두 번째 인생 발화의 시간『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이 책은 김탁환 작가가 마을을 샅샅이 어루만진 끝에 쓴 르포형 에세이로서, 도시소설가가 마을소설가로서 내딛는 시작점이자 새로운 시도이다. 전국의 마을들을 종횡으로 누비며 그가 맞닥뜨린 주제는 ‘소멸’이었다. 지방, 농촌, 농업, 공동체의 소멸을 체감하지만, 결국 인구 1천만의 서울에서 살아가는 그 누구도 세월의 위력 앞에, 자본주의 시스템의 잣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순간 소멸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과연 우리에게 희망은 없는 것일까?

농부과학자 이동현은 작가의 이러한 질문에 하나의 답이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준 사람이다. 그는 곡성에서 발아현미를 연구하고 가공하는 농업회사법인 미실란을 15년째 이끌고 있는 기업가이자 미생물학 박사이며, 2019년 유엔식량기구 모범농민상을 받은 농부이다. 그는 동생물과 공존하는 생태계의 법칙과 인간다운 삶의 철학, 공동체에 흐르는 연대의 힘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교집합이 전혀 없는 두 사람이지만 서로의 거울이 되어 삶을 오롯이 비추며 이야기의 세계와 땅의 세계로 안내한다. 이를 통해 비록 자본주의 시대에 그 가치가 퇴색되기도 하지만, ‘농(農)’과 ‘소설’처럼 각자 삶에서 결국 지키고 싶은 것들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되새기게 한다. 이러한 만남의 과정에서 김탁환 작가는 소멸의 위기와 만물의 고통에 반응하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일하는 이동현 대표의 모습을 통해 ‘아름다움은 화려한 겉모습이 아니라 지키는 태도’임을 깨닫는다.

출판사 서평

큰바람에 흔들려도 다시 싹을 틔운다
김탁환이 발견한 두 번째 인생 발아의 시간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아름다움이 거기 있었던 것 같다.
읽는 내내 그 질문 겸 감탄사를 들었고 또 따라했다. 아름답지요?”
- 정혜신ㆍ이명수|『당신이 옳다』저자

25년간 역사소설과 사회파소설을 써오며 사회에 반향을 일으켜온 작가 김탁환.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거친 세상 속에 놓인 다양한 인간 군상과 사회와 인간이 만들어온 문제에 천착하며 쉼 없이 소설을 써왔다. 그러던 중, 끊임없이 더 빨리 더 많은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그 또한 글 쓰는 기계가 되어 있음을 자각한다.
특히 세월호 참사 이후 기존의 작법과 시선, 가치관으로는 소설가로서 더 이상 사회 문제를 이야기하고 써내려 갈 수 없음을 거리 위에서 통감했다. 그리고 어느덧 소설가로서의 후반생을 준비해야 할 시기, 결국 작업실을 벗어나 길 위를 걸었고, 자신과 세상에 대한 질문을 품은 채 지방 곳곳의 ‘마을’로 향했다.
그의 발길이 가장 많이 닿은 마을은 전라남도 곡성이다. 그곳에서 도시소설가 김탁환은 농부과학자 이동현을 만나 두 번째 인생 발화의 시간을 함께했다. 이를 통해 발견한 삶의 지혜와 회생의 길을 신간『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에 담아냈다. 이 책은 김탁환 작가가 마을을 샅샅이 어루만진 끝에 쓴 르포형 에세이로서, 도시소설가가 마을소설가로서 내딛는 시작점이자 새로운 시도이기도 하다.

소멸에 맞서는 벗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삶을 되돌아보다
전국의 마을들을 종횡으로 누비며 그가 맞닥뜨린 주제는 ‘소멸’이었다. 지방, 농촌, 농업, 공동체의 소멸을 체감하지만, 결국 인구 1천만의 서울에서 살아가는 그 누구도 세월의 위력 앞에, 자본주의 시스템의 잣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순간 소멸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과연 우리에게 희망은 없는 것일까?
농부과학자 이동현은 작가의 이러한 질문에 하나의 답이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준 사람이다. 그는 곡성에서 발아현미를 연구하고 가공하는 농업회사법인 미실란을 15년째 이끌고 있는 기업가이자 미생물학 박사이며, 2019년 유엔식량기구 모범농민상을 받은 농부이다. 그는 동생물과 공존하는 생태계의 법칙과 인간다운 삶의 철학, 공동체에 흐르는 연대의 힘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교집합이 전혀 없는 두 사람이지만 서로의 거울이 되어 삶을 오롯이 비추며 이야기의 세계와 땅의 세계로 안내한다. 이를 통해 비록 자본주의 시대에 그 가치가 퇴색되기도 하지만, ‘농(農)’과 ‘소설’처럼 각자 삶에서 결국 지키고 싶은 것들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되새기게 한다. 이러한 만남의 과정에서 김탁환 작가는 소멸의 위기와 만물의 고통에 반응하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일하는 이동현 대표의 모습을 통해 ‘아름다움은 화려한 겉모습이 아니라 지키는 태도’임을 깨닫는다.
이 책은 씨앗이 열매를 맺고 다시 씨앗으로 돌아오는 과정에 빗대어 두 사람이 지나온 삶의 궤적을 교차하며 담아낸다. 1장 ‘발아’에서는 각자 마음속 깊이 간직한 한 글자를 떠올리며

삶에서 지키고 싶은 것을 되새긴다. 2장 ‘모내기’에서는 미실란의 창업과 소설가로서 입지를 다지는 과정을 가감없이 들려준다. 3장 ‘김매기’에서는 각자 맞이한 위기 앞에 포기하지 않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4장 ‘추수’에서는 사람을 존중하고 건강한 문화가 있는 기업과 행복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실천해온 노력의 결실을 보여준다. 5장 ‘파종’에서는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마을에 필요한 적정한 기술을 도입할 때 사람과 사회에 미래가 있음을 강조한다.

바이러스, 기후 변화… 우리 삶은 이대로 괜찮은 걸까?
흙에서 배운 지혜로 우리 안에 꺼져가던 빛을 다시 밝히다
이동현 대표가 땅과 흙, 동식물로부터 체득한 지혜는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일깨운다. 일례로 모 사이의 거리를 보통 논보다 세 배 이상 띄고, 화학비료 대신 왕우렁이로 피를 제거하는 방식은 언뜻 비효율적인 듯 보이지만, 오히려 벼가 더 깊이 뿌리를 내려 재해에도 강하게 살아남는다고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습격으로 ‘더 많이, 더 빨리’를 외쳐온 대도시의 생활 방식과 삶과 사람 간의 거리에 대해 근본적으로 돌아보는 지금 더욱 귀기울이게 되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기후 변화, 식량 위기 등 삶의 지축을 뒤흔드는 거대한 변화에 좌초되지 않기 위해 붙들어야 할 가치와 방향이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이 책은 저자 특유의 리듬감 있는 문체, 솔직한 자기고백, 삶에 대한 통찰력으로 순간순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또한 답사를 다니며 발견한 곡성의 마을 이야기들을 각 장 끝에 담아 읽는 재미를 더한다. 특히 ‘치유 사진 작가’ 임종진 작가가 곡성과 미실란에서 찍은 생명력 가득한 사진은 이 책을 든든하게 뒷받침한다.
작가 김탁환과 농부 이동현은 결과에 만족하기보다 새로운 길을 내어 인생 후반부를 살아가기로 다짐한다. 그 길의 모습은 다르되 결국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곳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건강한 공존을 고민하는 사회에, 삶의 방향을 되묻는 개인에게 질문을 던진다. 지금 당신이,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이냐고.

추천사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아름다움이 거기 있었다”

김탁환을 좋아한다. 작가 김탁환은 물론이고 인간 김탁환도 좋아한다. 무엇보다 밥맛이 기막힌 밥상 같은 사람이고 반할 만한 데가 천지삐까리인 작가라서다. 이 책은 곡성에 있는 밥카페 ‘飯하다’에 우연히 들른 김탁환이 거기 밥맛에 깜짝 놀라서 싹튼 얘기다. 농부 이동현에게 반한 작가 김탁환과 그 김탁환에게 함께 반한 이동현의 특별한 교감기(交感記)다. 그 둘의 생각과 삶의 태도가 씨줄과 날줄로 적정하게 엮여 있다(그래서 추천사도 둘이 힘을 합쳐 썼다).
곡성에 대한 김탁환의 찰진 설렘을 엿보는 재미는 보너스다. 읽으면 일단 미실란표 유기농 발아현미를 사지 않고는 못 배긴다. 먹어보면 그 밥맛에 반하지 않을 도리가 없고. 농부 이동현이 논 사람(벼), 우렁이, 물뱀, 참새와 대화하는 장면은(실제상황이란다) 작가 김탁환 특유의 품격이 더해져 절창이다. 죽비와 무릎 담요가 함께 있는 느낌이랄까. 농부 이동현은 작가 김탁환에게 곡성 들판 곳곳에서 ‘아름답지요?’라는 질문을 자주 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아름다움, 압도적이어서 말을 잃게 만드는 아름다움이 거기 있었던 것 같다. 읽는 내내 그 질문 겸 감탄사를 들었고 또 따라했다. 아름답지요?

목차

들어가는 말 : 소멸에 맞서는 사람

1장 발아
“한껏 솟아오르고 또 한껏 뻗어내려”

두 번째로 내 삶을 깨우는 시간
당신의 깊은 곳을 건드리는 이름은 무엇인가요?
아름답지요?
‘농’과 함께 평생을 살겠습니다
물에 잠긴 들녘, 땅에 묻힌 마을
차별은 차별을 낳는다
ㆍ 첫 번째 마을 이야기_ 원홍장과 심청, 곡성에서 만나다

2장 모내기
“세상의 모든 마음을 주고받다”

이야기꾼은 매혹된 영혼
나도 그랬습니다, 당신처럼!
땅을 사랑한 농부과학자
하찮고 더러운 것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다
벽 그리고 벽에 막힐 때
실패했지만 패배는 아니다
배수진을 치다
ㆍ 두 번째 마을 이야기_ 씨나락을 오가리에 모신 뜻을 새기다

3장 김매기
“지키고 싶다면, 반복해야 한다”

큰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벼
우직한 사람이 산을 옮기는 법
작은 배려가 만드는 큰 차이
밥과 약은 한 뿌리
서로가 서로에게 반하다
기오리를 아십니까?
ㆍ 세 번째 마을 이야기_ 도깨비와 함께 물고기를!

4장 추수
“여기까지 왔고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추수할 때는 파종을 걱정하다
한 톨의 흙에서 한 세상을 맛보다
온 마을이 아이들을 키우다
아이들이 땅과 흙을 밟으며 행복하기를
평가가 없고 술이 없고 경계가 없다
사람의 얼굴을 한 회사가 되겠습니다
쌀 한 톨의 무게를 재본 적이 있나요?
ㆍ 네 번째 마을 이야기_ 십자가 꼭대기에 닭을 세우다

5장 파종
“사람이 씨앗이다”

겨울을 견디는 사람만이 다시 씨를 뿌린다
적당한 거리를 생각하세요
돌다리를 두드리고 땅을 다지다
적정하게 다시 시작하다
ㆍ 다섯 번째 마을 이야기_ 살아서도 함께 죽어서도 함께

나오는 말 : 도깨비 씨나락 까먹는 소리일지라도!
김탁환이 만난 이동현

본문중에서

[들어가는 말]
도시소설가에서 마을소설가로, 소설가 김탁환이 발견한 회생의 길

이 책엔 도시소설가가 농부과학자를 만나는 과정이 담겼다. 미실란이 지방, 농촌, 벼농사, 공동체 등 네 가지 소멸과 맞서 싸우는 과정, 이 대표가 과학적인 방법론과 전통적인 이야기를 한 그릇에 담는 과정, 곡성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뒤엉키고 다투고 화해하는 과정, 이동현과 김탁환이 우정을 나누는 과정 등이 볏단처럼 쌓였다.
새롭고 낯선 만남 속에서 이 대표는 나를 흔들어 깨웠고 나 역시 그에게 영향을 줬다. 거창하게 운명이란 단어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서로의 곁에 머물며 달라졌다. 나는 이 대표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싶었고 그 역시 오랫동안 읽지 않았던 장편소설에 흥미를 느꼈다. 서른 살 무렵부터 질주한 20년을 돌아보고 정돈한 후 또다른 20년을 시작할 나이이기도 했다.
가족에게조차 드러내지 못한 고민과 감정을 서로에게 보여줬다. 명쾌한 답을 얻지 못하더라도, 삶이 때론 대황강 새벽안개처럼 모호한 구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껄껄 웃었다.
이 만남이 나를, 이동현 대표를, 미실란을, 곡성을, 또 이 책을 읽는 당신을 어디로 데려갈까. 논 사람인 벼가 그 답을 내놓을지 모르니 서둘러 들녘으로 나가봐야겠다.

[본문 중에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보다 더 깊이 내려가기 위하여

2018년 3월부터 지금까지 이동현 대표와 틈만 나면 만났다. 왜 나는 그를 자꾸 찾아갔고, 그는 왜 계속 나와 어울렸을까.
우연히 인사를 나누고 뜻이 통하더라도, 바쁜 시절을 탓하며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적지 않다. 그와 나는 그렇게 엇갈리지 않고, 사는 곳이 멀다고 핑계 대지 않고, 만나서 함께 걷고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마시고 함께 먹고 함께 잤다.
우리 대화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가 ‘발아(發芽)’이다. 발아는 씨앗에서 싹이 트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인공 발아를, 신을 대신하여 잠든 씨앗을 깨워, 씨앗이 스스로 일을 하도록 만드는 여정이라고 설명했다. 잠든 씨앗은 미래를 대비하여 움츠린 채 영양소를 아끼고 지키지만, 깨어나 싹을 틔울 때는 영양소를 활발하게 생동시킨다. 아직 흙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오로지 씨앗이 지닌 영양소들로 싹이 자라는 것이다.
우리는 소설가가 되고 과학자가 되기 위한 도약의 순간을 일찍이 겪었다. 문학과 농업의 전문가로 이십 년 넘게 한 길을 걸어온 것이다. 이미 해결한 문제도 있지만 적지 않은 인생의 난관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새로운 모험을 시작해야 할까. 이 정도에서 평온한 길로 방향을 틀까.
- 〈1-1 두 번째로 내 삶을 깨우는 시간〉 중에서

6월 초 모내기를 끝낸 논에도 아름다움이 숨어 있었다. 내가 무릎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느라 논두렁에서 낑낑댈 때, 이 대표는 맨발인 채 논으로 들어갔다. 평지를 걷듯 척척 걸음을 뗀 후 허리를 숙이곤 엄지와 검지로 무엇인가를 집어 들며 물었다.
“아름답지요?”
새끼손톱만 한 왕우렁이였다. 우렁이농법으로 친환경 잡초방제를 하는 것이다. 나도 어릴 때 마을 앞 개천에서 우렁이를 보긴 했다. 하지만 동물계 연체동물문 복족류강 고설목 사과우렁이과에 속하는 왕우렁이를 아름답다고 여긴 적은 없었다. 장화를 신고 서너 걸음 들어간 뒤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아름다운가요, 정말?”
왕우렁이가 잡초를 먹어치우지 않는다면, 제초제 없이 친환경 농사를 짓는 농부는 새벽별을 보며 논으로 나와 일일이 잡초를 뽑아야 한다. 그 수고를 왕우렁이가 대신하니 어찌 아름답지 않느냐고 이 대표가 되물었다. 농사를 방해하는 생물은 겉모양이 아무리 멋져도 아름답지 않다는 것이 그의 한결같은 입장이었다.
- 〈1-3 아름답지요?〉 중에서

근대 이후 상생의 꿈을 추구한 사람들이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한 채 좌절한 예는 많다. 예술가로 사는 것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가로 사는 것은 다른 문제이고, 연구자로 사는 것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연구자로 사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나는 평생 집필실에서 소설을 쓸 자신이 있고 그는 평생 실험실에서 미생물을 연구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예술 작품이나 친환경 미생물 농약을 자본주의 사회에 어울리는 상품으로 성공시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픽슨바이오에서 저지른 실책들을 하나하나 들으며, 내가 25년 가까이 저지른 실수들을 떠올렸다.
그와 나는 실패했지만 패배하진 않았다. 시장에서의 승부를 포기한 채 꿈을 접진 않았다는 뜻이다. 이 대표는 자본주의 시스템과 농업회사법인 경영을 처음부터 다시 공부했다. 연구자로서의 원칙과 품격을 지키면서, 회사를 회사답게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고립되어 홀로 상처를 입는다면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무한경쟁과 약육강식의 벽이 어디 한두 개에 그치겠는가. 역설적이게도, 나만 벽에 부딪히진 않았다는 확인과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함께 덤벼들 수 있다는 깨달음이 묘한 위안과 힘을 주기도 한다.
- 〈2-5 벽 그리고 벽에 막힐 때〉 중에서

인생에서 큰바람 한두 번 맞지 않는 이가 있을까. 큰바람에 낭떠러지까지 몰렸다가 겨우 살아나기도 했으리라. 절체절명의 순간, 어떤 이는 회생하고 어떤 이는 사라진다. 행운과 불운으로 치부하기엔 그 차이가 너무 크다.
한 사람이 평생 지켜온 원칙에 주목해야 한다.
태풍이 몰아치기 시작한 후엔 농부가 할 일이 많지 않다. 벼 스스로 큰바람을 이겨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미실란의 벼가 쓰러지지 않은 것은 그가 세운 원칙, 친환경 농법의 힘이었다. 벼는 6월 초 모내기부터 8월까지 하루하루 싸우며 단단해졌다. 잡초와도 싸우고 흙과도 싸웠다. 싸우면서 벼는 땅으로 더 깊이 내려가는 법을 익혔고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법을 배웠다. 그와 같은 일상이 쌓인 탓에 무사할 수 있었다.
- 〈3-1 큰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벼〉 중에서

논의 흙은 사계절 내내 변하지만, 그 흙에 대한 이 대표의 태도는 한결같다. 흙이 흙끼리 사귀고, 흙이 또 벼와 사귀고, 흙이 미생물과 곤충과 작은 동물과 사귈 때까지 시간을 주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충분히 사귀기도 전에 농부가 끼어들면 벼가 제대로 자라질 못한다. 흙이 논의 친구들과 우정을 쌓을 때까지 기다린 후, 사람은 제일 나중에 손을 내밀면 된다.
모내기를 마치고 나면 작고 여린 뿌리를 붙잡아주는 것은 오로지 흙이다. 뿌리가 쓰러질까 염려하여 너무 깊이 심으면 모의 대부분이 물에 잠기고, 너무 얕게 심으면 모가 실바람에도 쓰러진다. 적당히 심되 흙을 믿어야 한다
뿌리와 흙의 사귐은 추수를 마칠 때까지 멈추지 않고 이어지면서, 깊고 넓어진다. 뿌리는 자랄수록 더 멀리 뻗고 더 많은 흙을 움켜쥔다. 그렇게 흙과 치열하게 사귀는 뿌리는 옆 벼의

뿌리와도 만난다. 지상에서만 보면 농작물이 각자의 자리에서 따로따로 꼼짝도 하지 않는 듯하지만, 지하에선 긴밀하게 뿌리로 만나 사귀며 시시콜콜한 소식부터 중요한 정보까지 주고받는다. 흙이 없다면 불가능한 만남이다.
- 〈4-2 한 톨의 흙에서 한 세상을 맛보다〉 중에서

서울에는 970만 명이 산다. 그러나 마음을 터놓고 서로의 고민을 나눌 친구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 친구들과도 바쁜 일상에 쫓겨 자주 만나기 힘들다. 계절에 한 번씩만 만나도 매우 친한 사이라는 농담까지 있다.
곡성에는 2만 8천 명이 산다. 읍은 하나고, 면은 열 개고, 리는 125개다. 리에서 마을이 또 나뉘기도 한다. 마을에 터를 잡으면 그 마을 사람들과 자주 만날 수밖에 없다.
곡성을 비롯한 우리네 마을들을 들여다보라.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약하고 병든 생명을 돈이 되지 않는다고 내치진 않았다. 어떻게든 마을에서 어울려 살 방법을 찾았다. 조금씩 짐을 나눠 지면서, 함께 웃고 울며 살아온 세월이 수백 년인 것이다.
이렇게 쌓인 마을의 역사와 공동체의 전통이 존중받지 않으면, 제대로 된 미래를 만들 수 없다. 마을의 역사와 전통을 빛바랜 낡은 유산으로 취급하지 않고, 오히려 이것들을 아끼고 지키면서 행복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새로운 이웃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어느 마을로 가서 누구와 이웃하며 살 것인가. 거기 당신의 미래가 있다. 어떤 사람들을 마을로 받아들여 함께 살 것인가. - 〈5-1 겨울을 견디는 사람이 다시 씨를 뿌린다〉

돌오름길에서 만난 노루들은 행인이 누구냐에 따라, 또 자신의 컨디션에 따라, 그때그때 인간과의 거리를 넓히거나 좁혔다. 너무 가까이 붙으면 위험하지만 지레 겁을 먹고 떨어져 고립될 필요도 없다.
접속이냐 접촉이냐, 컨택이냐 언컨택이냐. 메르스와 코로나19 이후 인류의 미래를 양자택일로 파악하려는 시도가 부쩍 늘었다. 나는 적당히 접속하고 적당히 접촉해야 하며, 적당히 컨택하고 적당히 언컨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물론 이것은 지나치게 접촉하고 무분별하게 컨택해 온 근대 이후 인류의 행태에 대한 반성을 전제로 한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나 이익의 수단으로 삼아선 안 되는 것이다.
대도시가 바이러스를 비롯한 전염병에 취약하다는 사실은 소멸이나 붕괴란 단어로만 연결되던 지방 중소도시와 농촌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고 있다. 지방 농촌이 안전한 과소 지역이 된 것이다. 지구인 전체가 사람답게 사는 ‘적당한’ 거리를 고민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 〈5-2 적당한 거리를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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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김탁환(金琸桓)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68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저자 김탁환은 1968년 진해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대하소설 『불멸의 이순신』, 『압록강』을 비롯해 장편소설 『혜초』, 『리심, 파리의 조선 궁녀』, 『방각본 살인 사건』, 『열녀문의 비밀』, 『열하광인』, 『허균, 최후의 19일』, 『나, 황진이』,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 『목격자들』, 『조선 마술사』 , 『거짓말이다』 , 『대장 김창수』, 『이토록 고고한 연예』 등을 발표했다. 소설집 『진해 벚꽃』과 『아름다운 그 이는 사람이어라』, 산문집 『엄마의 골목』, 『그래서 그는 바다로 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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