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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 : 어향숙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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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어향숙
  • 출판사 : 지혜
  • 발행 : 2020년 08월 15일
  • 쪽수 : 128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57284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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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약사님, 감기약 맛있게 지어 주세요// 처방전 내려놓으며/ 여학생이 건넨 맑은 소리/ 데굴데굴 굴러들어옵니다// 귀를 활짝 열더니/ 눈앞을 환하게 합니다/ 기계처럼 움직이던 손 움켜쥐고/ 조제실로 들어가 약을 짓습니다// 아침에 쟁여둔 햇살 한 줌/ 당의정에 코팅하고/숲에서 담아온 공기 한 줌/ 캡슐에 슬쩍 밀어 넣습니다// 포장기 나와 포지에 담긴/ 약 걸음이 알록달록 경쾌합니다// 맛있는 약 나왔어요// 여학생이 약봉지 들고/ 약국을 나간 뒤에도/ 제 손을 꽉 잡고 놓지 않습니다
-<약손> 전문

약사가 좋은 약사라면 좋은 시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약사가 약을 조제하는 행위는 시인이 언어를 조탁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약이 아픈 몸을 치료하듯이 시는 아픈 마음을 치유한다. 그런데 몸과 마음은 둘이 아니다. 지난 세기 후반, 서양에서도 몸과 마음이 긴밀하게 연결돼 서로 영향을 끼친다는 정신신체학이 출현했거니와 좋은 시와 좋은 약은 둘이 아니다. 시의 사회적 기능 중 하나가 치유라는 데 동의한다면 좋은 시인은 약사 시인일 것이다(농부 시인, 교사 시인도 있다).
우리의 약사 시인은 몸이 아픈 사람만 보살피는 것이 아니다. 이 약사 시인은 “봄도 아프다”는 사실까지 발견한다. 봄날 약국 유리문 밖에서 서성이는 “봄 햇살”과 눈이 마주치자 봄에게도 마음을 건넨다. “오들오들 떨고 있”는 “미처 신발도 신지 못”한 봄을 약국 안으로 들어오게 한 다음, “이내 드러눕는” 봄의 “미열이 난 이마에 가만히 손을 얹”는 것이다. 인간을 넘어 자연과 공감하는, 아니 공감을 넘어 환대하는 이런 약사를 시인이라고 하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시인일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입추>에서 만났던 “최초의 바람”에 이어 ‘두 번째 바람’이 분다. 이 바람은 달콤한 바람이 아니다. 가혹한 바람이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나’가 암에 걸려 병상에 눕게 된 것이다. ‘나’의 암 투병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다른 사람의 병을 고쳐온 약사가 암에 걸리다니.

한때 내 몸의 궁이었던/ 태아가 자라던 집/ 그 집이 몸을 빠져나갔네/ 무성한 숲이었던 자리가 텅 비었네/ 나는 적막한 숲이 되었네/ 내가 키우던 기쁨들이/ 그곳에서 자랐음을 뒤늦게 알았네
-<궁(宮)이 몸을 빠져 나갔네> 부분

위 시 후반부에서 “이제 기쁨을 어디에 담아 키우나”라는 탄식이 나오기까지 시적 자아가 감당했을 고통과 고뇌는 상상하기조차 버겁다. 생명이 깃들고 생명이 자라나는 궁(子宮)이 갖는 의미는 여성과 남성을 불문하고 상징과 메타포의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그 무엇이다. 생물학과 인류학을 넘어, 우리 모두가 태어난 저 우주적이면서도 원초적인 ‘집’의 상실은 존재의 근원, 삶의 연원이 뿌리 뽑히는 아픔일 것이다. 위 시는 독자로 하여금 상상력의 한계를 절감하게 만든다. 타인의 아픔을 내 것으로 아파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항암 치료 전날 찾아온 고향 친구와 함께 “구수한 들깨가루와 맵싸한 산초”가 들어간 추어탕을 몇 술 뜨고(<항암 전날>) 항암 치료에 들어간 날에는 “나 대신 안에서 암세포와 싸울” 약물을 고마워하며 “사람의 향기에 취해 편안한 잠 속으로 빠져 든다”(<항암 첫날>) 결국 ‘나’를 병상에서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일차적으로 항암치료였겠지만 ‘나’를 찾아와 위로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치료는 더뎠을지 모른다. 그 중에는 “사회에서 건너건너 만난” 지인도 있었다. “늙어가는 우리/이제 서로 비비며 살자/필요하면 언제든지 이용하셔/자유이용권이야”(<위로가 필요해>)라는 ‘민찬 엄마’의 말을 들으며 ‘나’는 “환자복 한기를 밀어내”고 “발이 뜨끈해”지는 것이다.

받자마자 날래 쪄야 한디/ 그래야 차지고 맛나야~/ 따자마자 농구어 쪼금 부쳐야~/ 택배비가 더 든다야~/ 냉중에 한 번 더 보낼란다// 강릉에서 텃밭농사 한 포대가/ 옥시기 이름을 달고 도착했다// (…) // 친구처럼 잘 여문 알갱이가/ 입안에서 툭툭 터진다/ 차지게 들러붙어 오래도록 두런거린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또 듣는다/
-<뉴슈가> 부분

그렇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나’ 혼자서는 단 한 순간도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앤디 워홀이 말했듯이 우리가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나는 순간은 “마치 유괴당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해서 이 지구에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구에 도착한 그 순간부터 우리는 타인과 연결된다. 다른 사람뿐 아니라 천지자연과 직결된다. 프로이트의 감옥에서 자라나면서 아들러가 말하는 ‘목적’을 설정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우리의 실존적 삶의 경로다. 이 경로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관계’다. 일찍이 붓다가 일깨웠듯이 ‘나’는 없다. ‘나의 관계’가 있을 뿐이다. ‘나’는 관계다. 그것도 고정되지 않은, 활동하는 관계다.
어향숙 시의 ‘나’를 다시 일어서게 한 가장 큰 힘 중 하나가 병실을 찾아준 친구와 지인, 그리고 고향에서 옥수수를 부쳐주는 벗들이다. 이에 앞서 가족이 있었고, 병실 밖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있었다. 방사선 치료를 받을 때는 ‘나’의 기억(“함흥냉면” “속초 해안선”)까지 곁에 머물러 주었다. 우리는 <뉴슈가>의 마지막 문장 “나는 그 말을 듣고 또 듣는다”를 오래 기억해야 한다. “그 말”은 친구(관계)의 우정 어린 말일뿐만 아니라 천지자연이 함께 빚어낸 생명(옥수수)의 말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친구의 사투리 섞인 목소리에서 멈추지 않고, “땡볕과 장대비” “골바람”이 “키운 말”을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말을 듣고 또 듣는” ‘나’의 모습은 기도를 올리는 수행자처럼 보인다. 아니,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그 목소리에 깃드는 인간과 세계, 천지자연과 우주의 소리에 집중하는 시인으로 보인다.

목차

시인의 말 5

1부 어둠의 눈이 환하다

뭐니, 머니 12
명의名醫 14
입추 15
약손 16
잠만 자는 방 18
고물상의 봄 20
아기씨 22
스무 살의 다락방 24
청파싸롱 26
궁宮이 몸을 빠져 나갔네 28
지화자여사 30
오복사우나 32
호박나이트 34
시엄마 증후군 35

2부 갇힌 풍경, 창 열고 들어오다

화이트 노이즈 38
화이트 노이즈·2 40
뉴스가 뉴스를 잠재운다 41
그 약국에 물고기가 산다 42
윤아 43
마지막 질문 44
위로가 필요해 46
독주獨奏 48
긴 팔 50
매핵기 51
대학병원 약국에는 귀신이 산다네 52
동지冬至 54
말 56
긴 가방끈을 좋아하지 않는다 57

3부 죽음이 하루를 길게 늘여 놓았다

가족사진 60
층간소음 62
소리의 외출 64
삼각관계 66
봄도 아프다 68
항암 전날 69
항암 첫날 70
겨울방학 71
스무 살 72
고개 숙인 선풍기 73
각성바지 74
여흔 76
반창회 가는 길 78
일요일 오후는 이불 속에 누워 생각을 부린다 80

4부 빈 곳을 메우지 않고 지루함을 기다린다

뉴슈가 82
봄날 84
오래된 담장 85
토모테라피 86
능소화 88
흔들의자 90
팥빙수 92
와이파이 도시락 94
길상사에 가면 96
13월의 나무 98
보살팬 99
인화되지 않는 봄 100
국도 102

해설‘또 다른 나’의 자서전이문재 104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났다. 약국 모서리에서 약을 짓다가 시도 짓게 되었다. 2016년 ‘김유정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어향숙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인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는 이문재 시인의 말대로, ‘시의 마음을 가진 약사’, ‘아픈 몸이 아니라 아픈 마음까지 치유하는 약사 시인’으로서의 ‘또다른 나의 자서전’이라고 할 수가 있다. “아침에 쟁여둔 햇살 한 줌/ 당의정에 코팅하고/ 숲에서 담아온 공기 한 줌/ 캡슐에 슬쩍 밀어 넣습니다(「약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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