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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토크 VOSTOK 매거진 22호 : 타인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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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보스토크 매거진 이번호에는 타인의 고통을 구경하지 않고, 대면하는 사진가들의 작업들을 모았다. 누군가의 고통을 사진으로 찍는 일은 구경의 혐의를 뒤집어쓰기 쉽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타인의 상처를 카메라에 담는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구경이 아닌, 대면하는 일의 과정과 의미에 대해 물었다. 지면 곳곳에 물음에 답하려는 각자의 흔적이 담겼다.

출판사 서평

서문보다 먼저 톰 칼멩의 작업이 보인다. 보이지 않는 것과 사진 매체의 관계를 탐색하는 그는 타인을 카메라에 담는다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이를 지도 삼아 이후의 작업을 만나러 가면 좋겠다.

의심하고 또 의심할 것
하지만 계속 나아갈 것


서문 뒤로 표면에 드러난 상처들을 담은 작업들이 소개된다. 라우라 호스퍼스는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자신을 묘사했다. 그는 여전히 엄습하는 삶의 곤란함과 외로움을 나누고 싶다. 소피 해리스-테일러는 흔하지만 가볍지 않은 피부 문제를 지닌 여성들을 찍었다. 그들은 ‘비정상적인’ 피부를 숨겨야 한다는 압박감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피부를 새롭게 바라보고 당당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매슈 L. 카스틸은 모겔론스병이라는 희귀한 피부병을 앓는 어머니와 가족들을 사진으로 담았다. 그의 목적은 모겔론스병의 특성과 특이성을 전달하는 것도 있지만, 자신과 가족들이 이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어지는 세 편의 글은 타인의 고통에 가까이 있는 직업인들의 이야기다. 방송기자 김인정은 누군가의 고통을 기사화하는 일의 어려움과 두려움을 말한다. 자칫하면 남의 고통을 무례하고 폭력적으로 소비하는 유해한 저널리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는 매번 고민한다. 어떤 고통을 보여줄지, 이 보여주기가 윤리적인지, 혹은 어떤 고통을 가릴지, 이 가림이 윤리적인지. 응급의학과 전문의 남궁인은 사고로 신체의 일부를 잃는 사람을 매일 같이 보는 자신이 ‘고통의 전문가’ 같지만, 어쩌면 ‘고통의 방관자’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한다. 진짜 팔을 잃어버린 고통은 도저히 알 수 없기에. 하지만 그럼에도 어떤 고통은 자신을 직접적으로 찌른다고 그는 말한다. 사진비평가 김현호는 타인의 고통을 전시하고 그것을 놀이 삼는 사진들을 말하며, 윤리적으로 예민한 이들은 어떤 상처도 만들어내지 않기 위해 멈추어 버린다고 쓴다. 하지만 김사과의 서평을 인용하며 이런 멈춤이 얼마나 무기력한지 살피고, 우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항해하자고 제안한다.
다시, 사진 작업이 이어진다. 앞의 작업들이 상처를 둘러싼 당사자들의 감정이 짙게 묻어난다면, 는 감정을 배제한 채 고통의 원인이나 계기를 냉정하게 바라본다. 마이야 탐미는 뇌종양, 유방암 종양, 절제된 손과 발 등 수술로 제거된 신체의 일부를 찍는다. 언뜻 잔인해 보이지만 보는 이들에게 부러 혐오감이나 충격을 주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변화에 중심을 두고 생각하는 죽음과 질병의 관념에서 벗어나는 이미지를 구상하고 싶은 것이다. 니콜라이 호발트의 사진도 비슷하다. 실제 교통사고 현장인지 연출된 세트장인지 확실히 알 수 없게 작가는 적은 정보만을 제공한다. 그래서 관람자는 계속 생각해야만 한다. 이 사진을 그저 하나의 추상적인 이미지로 보아도 좋을지, 누군가의 고통이 담긴 무엇으로 대해야 할지. 두 작가의 사진 앞에서 우리는 판단을 머뭇거리고, 확신은 자꾸 미끄러진다.

‘타인의 고통’을 마무리하는 뒷부분에는 사회∙정치적인 것들과 강하게 얽힌 고통을 담은 작업들이 소개된다. 박지수는 글에서 두 권의 책을 언급하는데, 하나는 일본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들의 유품들을 모아 찍은 이시우치 미야코의 사진집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이 남긴 흔적과 자국을 조망하는 소피 리스텔휴버의 사진집이다. 두 책 다 전쟁의 상흔이 담겨 있지만 그것을 대하는 방식은 다르다. 이시우치 미야코는 모두가 꺼리는 히로시마에 관해 개인적인 반응을 담았고, 소피 리스텔휴버는 ‘인간은 어떻게 파괴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표본을 수집한다.
윤성희는 물류창고 화재사고 희생자 영결식, 구의역 하청노동자 사망 현장,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오체투지 행진의 면면을 찍었다. 사진마다 달린 작가의 글은 담담하지만 아리다. 윤성희는 말한다. 자신이 이해하든 아니든, 이야기할 수 있든 없든, 이런 일은 어디에나 있다고. 자신에게는 다시 볼 것인지, 그만 볼 것인지에 대한 선택지뿐이라고. 그리고, 어쩌면 그래서, 그는 다시 보기 시작한다.
장진영의 작업은 원래 슬라이드쇼 형식의 영상물이다. 반복되는 노동자의 죽음과 그것을 둘러싼 사람들의 반응을 기사 댓글에서 가져왔다. 고인을 애도는 하나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자는 태도의 댓글들은 일면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사진에 덧붙은 작은 크기의 글들을 함께 보고 있으면, 드러나는 악보다 감추어진 악이 더 무서운 것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김효연은 현재 한국 또는 일본에 살고 있는 여러 세대의 원폭 피해자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합천과 후쿠시마초에 주로 거주하는 그들을 만나 1세대 피해자뿐 아니라 그 이후 세대들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물론 처음부터 가능했던 것은 아니고, 1년 정도 그곳에서 살다시피 한 후에야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카메라 앞에 선다는 건 원폭 피해자라고 커밍하웃하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쉬운 건 없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사연을 접할 때마다 고통스러워 그만두고 싶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김효연은 그만두지 않았다. 그 이유가 작가의 글과 덧붙은 인터뷰에 잘 담겨 있다.
이외에도 잡지와 엽서, 영화와 사진 등의 매체가 지닌 시차와 ‘장소’의 의미를 사유하는 유운성의 글과 신정식 작가의 [함께한 계절]을 ‘자기 이미지’라는 용어로 리뷰한 김신식의 글이 실렸다.

여기까지 읽으면 아마 탈진해 있을 것이다. 무거운 주제라 무거운 작업이 많은 탓도 있겠지만, 가볍게 소비되지 않게 하기 위한 작가들의 노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덕에 우리는 적어도 ‘구경’하지는 않을 수 있다. 어쩌면 ‘대면’은 탈진과 함께 온다.

목차

2020년 7-8월호 / VOL. 22
특집 | 타인의 고통

006 Uneasy Realizaton _ Tom Callemin
022 Care | Cure _ Laura Hospes
036 Epidermis / In Recovery _ Sophie Harris-Taylor
052 Zero Days _ Mathew L. Casteel
065 고통을 보여주는 일 _ 김인정
074 고통, 나는 그것에 대해서 잘 안다 _ 남궁인
081 고통의 바다를 함께 항해하는 일 _ 김현호
097 Removals _ Maija Tammi
113 Car Crash Studies _ Nicolai Howalt
129 겪은 시간의 이미지와 두꺼운 고통의 윤리 _ 이나라
139 벼리지 않아도 괜찮아, 가끔은 _ 김신식
149 옆집에 타인이 산다 _ 최원호
161 고통이 지나간 자리 _ 박지수
176 흰 것 _ 윤성희
198 이전과 이후는 다르다 _ 장진영
211 감각이상 _ 김효연
235 [스톱-모션] 이름 없는 곳 _ 유운성
245 [리뷰] 자기 이미지 _ 김신식
256 [에디터스 레터] 좋아하고 존경하는 잡지 _ 박지수

본문중에서

사진에서 카메라와 피사체는 어떻게 대립하는가? 카메라는 어떻게 상황을 통제하고, 피사체를 자극하는가? 카메라는 무엇을 볼 수 있고, 또 무엇을 숨길 수 있는가?
( '톰 칼멩 _ 작가 노트' 중에서/ p.7)

거울 대신 칼을, 칼 대신 카메라를 손에 드는 순간,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녀의 우울과 자기구원의 스토리가 아니다. 이 모든 과정이 ‘나’를 견디고, 또 견디지 못하는 예민한 감각에서 비롯됐다면, 자신의 고통과 대면하려는 시도라면, 이를 보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동참이다.
( '박지수 _ 나밖에 없다고' 중에서/ p.29)

이 작업의 목적은 모겔론스병의 특성과 특이성을 전달하는 동시에, 나와 가족들이 이 질병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 '매슈 L. 카스틸 _ 작가 노트' 중에서/ p.53)

순간 나는, 진짜 팔을 잃어버린 고통은 도저히 알 수 없었지만, 어떠한 고통은 나를 직접적으로 찌르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나는 내 팔을 보았다. 그것은 몸통에 잘 붙어 있었다. 하지만 저리고, 아리고,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고, 상실하고 사랑하는 감정이, 그 팔 하나에 들어 있었다.
( '남궁인 _ 고통, 나는 그것에 대해서 잘 안다' 중에서/ p.80)

나이를 먹으면서 나는 노골적인 고통만큼이나 무력한 슬픔을 경계하려 노력하게 되었다. 어떤 사진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하는 것보다는, 과연 사진이 얼마만큼의 윤리를 감당할 수 있는가를 묻게 된다. 소금 기둥처럼 굳어버린 채, 결국 자신의 슬픔을 곱씹는 일밖에 하지 못하게 되는 사진은 결국 자신의 윤리적 감식안을 과시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 '김현호 _ 고통의 바다를 함께 항해하는 일' 중에서/ p.96)

“전화기를 그리라고 하면, 아직도 핸드폰보다 다이얼 전화기를 그리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죽음이나 질병에 관한 시선과 관점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그래서 탐미는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변화에 중심을 두고 생각하는 죽음과 질병의 관념에서 벗어나는 이미지를 구상한다.
( '박지수 _ 수술이 끝난 뒤에' 중에서/ p.112)

관람자는 스스로 자신이 보고 있는 것에 근거해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처럼 타인의 고통과 연결된 사진을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해 관람자 스스로 계속 생각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Car Crash Studies〉시리즈를 구성하는 이미지들이 무책임해 보일지언정 이를 결코 ‘비겁한 작품’이라 단정할 수 없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 '이기원 _ 판단보류 요청' 중에서/ p.128)

이미지는 진실을 획득하는 방편이 아니라 진실로‘ 다가가는’ 방편이다. 그렇다면 윤리적 이미지의 자리 역시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 윤리적인 이미지란 타인의 자리를 차지하지 않기 위해 겪은 고통과 사건으로부터 물러서는 이미지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과 사건에 다가서는 것에 있다.
( '이나라 _ 겪은 시간의 이미지와 두꺼운 고통의 윤리' 중에서/ p.137)

자신의 우월함을 우생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세계는 노골적으로 ‘타인’의 영역, 즉 ‘격리 구역’을 확장한다. 타인의 영역은 도태되어 마땅하다고 판정된 자들이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때 그 영역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였고, 한때는 제3세계라고 불리는 영토와 일치했지만, 이제는 경쟁력 있는 자원을 가지지 못한 못난이들이 살아가는 장소 전체로 확장되었다. 즉, 도태는 ‘세계화’되었다.
( '최원호 _ 옆집에 타인이 산다' 중에서/ p.159)

“일본에서는 히로시마에 관해 사적인 견해를 피력하는 것 자체를 꺼려해요. 그만큼 비극이었기 때문에 히로시마는 역사의 무게에 억눌려 있죠. 하지만, 저는 개인적인 반응을 담고 싶었어요. 원피스나 스커트를 보면서 이렇게 생각해보죠. ‘내가 그곳에 살았더라면 저런 옷을 입었을까, 그날 저 스커트를 입었을지도 모르겠네.’ 이것이 그 유품들을 대하는 저의 방식이에요. 그 이미지들을 바라보는 저의 관점이고요.”
( '박지수 _ 고통이 지나간 자리' 중에서/ p.167)

‘그만두고 싶어’와 ‘그만두면 안 돼’. 사명감이나 책임감도 느껴졌지만, 무엇보다 내가 이 문제에 있어 관찰자로만 머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의 사연을 접할 때마다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우리 가족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복지회관에서 한국말이 어눌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 외할머니의 모습이 겹쳐졌다. 또 엄마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 '김효연 _ 작가와의 인터뷰' 중에서/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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