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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거리, 1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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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홍종우
  • 출판사 : 메이트북스
  • 발행 : 2020년 07월 01일
  • 쪽수 : 236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60022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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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코로나 이후 비대면 사회,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나?

코로나 이후 비대면 사회가 열렸다고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린 이미 비대면 시대로 가고 있었다. 오프라인에서 친구와 대화하는 시간보다 온라인에서 친구와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 또한 상담실에서 ‘관계’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와 한참을 이야기하다 뭔가 이상해서 물으면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 온라인 친구와의 문제로 오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경험했다. 적어도 관계라는 측면에 있어서 우린 이미 비대면 시대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코로나 이전에도 비대면은 진행되고 있었지만 코로나 이후 더욱더 일상화된 비대면 사회가 되었다. 이제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나? 이 책은 저자의 진료실에서 오간 내용 중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이 이야기들로 조금이나마 당신이 가지고 있는 관계의 어려움이 가벼워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이 한 권의 책에 담백하고 진솔하게 담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엔 수많은 행복을 주는 사람이 있다. 그들이 내게 행복을 주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지 말자. 그들이 나에게 행복을 줄 만큼 충분한 여유가 있는 사람인지 여부도 생각하지 말자. 그냥 감사하게 받고, 나도 가끔은 그런 사람이 되면 된다. 그뿐이다.
그런데 왜 저자는 관계의 거리를 1미터라고 할까? 1미터라는 거리는 진료실에서 저자와 환자 사이의 거리이며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이다. 관계로 힘들어하는 환자들도 보고, 관계로 인해 힘을 얻는 환자들의 이야기도 들으며, 저자가 관계에 대해 내린 결론은 이렇다. 때에 따라 상대와 나만의 각자 상황이 있다. 그래서 서로가 원하는 거리에 대한 조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나는 거리를 좁히고 싶은데 친구가 한발 물러서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땐 지켜봐야 할 때다. ‘지켜보다’란 말은 그냥 흘러가게 둔다는 의미가 아니다. 관심을 가지고 주의를 기울여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다. 상대가 내 상태를 모르고 내게 다가오려고 할 때 한발 물러서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런데도 다가오려고 하면 그때는 달아나고 싶다. 그런 때가 내게도 있음을 기억하고 상대를 지켜봐주자. 서로가 원하는 거리에 있어주는 관계. 그것이 바로 좋은 관계다. 그렇다. 우리는 1미터 안으로 다가왔으면 하는 사람이 있고, 1미터 정도에 있었으면 하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1미터 밖에서 지켜보고 싶은 사람도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건강한 거리가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1미터인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정한 거리는 1미터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여러 가지 형태로 관계를 맺고 있다. 인생의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단둘만 얽혀 있는 관계에는 문제가 없는데, 회사만 들어가면 외톨이가 되는 사람이 있다. 연애시절엔 전혀 문제가 없지만 결혼만 하면 갈등이 깊어져 두 번이나 이혼한 여자가 있다. 인간관계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가족과는 연락을 끊고 산 지 여러 해 되는 남자도 있다. 몇 권의 책을 읽는다고 해서, 누군가의 강연을 듣는다고 해서 관계의 어려움이 해결되진 않는다. 내 인생 전체를 통해서 서서히 나라는 존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관계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는 비법이나 즉효약이 없다. 그러하기에 당신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기꺼이 한 번 더 웃어주고, 그들과 관계에 대해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들과 적당한 거리에 있으며, 이 관계를 이어가려고 노력할 것을 저자는 당부한다. 그렇게 당신은 관계로 인한 어려움에서 조금씩 벗어날 것이며, 누군가의 옆에 있었으면 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이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이 관계 어떻게 시작할까요?’는 관계 맺기의 시작이 어려운 이들을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관계 맺기의 어려움을 풀어내고 싶다면 남이 아닌 나를 봐야 한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떤 곳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아는 것, 그것이 관계 맺기의 시작이다. 혹시 당신이 다가서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바라보기 위해 얼마나 큰 창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당신과 그 사람의 거리는 어느 정도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2부 ‘이 관계 어떻게 유지할까요?’에서는 관계 유지가 어려운 이들을 위한 이야기들을 건넨다. 관계 유지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다. 이 관계를 유지할 힘이 그 누구도 아닌 당신에게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있다는 것, 이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것, 바로 이것이 관계 유지를 위한 비결이다. 마지막으로 3부 ‘이 관계 이제 그만하고 싶습니다’에서는 관계 정리가 어려운 이들에게 따듯한 조언을 건넨다. 관계를 정리한다는 것, 주변에서 너무 흔하게 일어나기에 사실 대수롭지 않게 생각된다. 그런데 나에게 닥치면 가장 참기 힘든 고통 중 하나다. 관계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흔히들 관계의 시작과 유지에서 어려움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마음이 심하게 아프기까지 하는 경우는 관계 정리에 대한 부담과 결과로 인한 것이다. 이것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도 없지만, 저자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숨기지 말고 많은 이들과 생각과 감정을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목차

지은이의 말 — 관계의 어려움이 가벼워졌으면 좋겠습니다
프롤로그 — 우린 이미 비대면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1장 이 관계 어떻게 시작할까요? : 관계 맺음이 어려운 나

나를 바라보기 — 당신의 인간관계는요?

어떻게 오셨어요? / 누구에게 말하든 틀리기 어려운 말 / 당신의 인간관계는 어떤가요?

나를 보이기 — 커튼을 걷는다. 창문을 연다. 울타리를 치운다.
내가 그린 집 / 내가 만든 타인의 시선 / 내 아버지의 약점 / 완벽해 보이는 친구 / 나를 보이는 것

상대방을 바라보기 — 내 창문
다른 사람을 보는 것 / 창의 크기 그리고 거리

내가 다가가기 — 문을 열고 나가자
21세기, 혼술남녀 / 바람둥이 친구 / “안녕하세요.”

2장 이 관계 어떻게 유지할까요? : 관계 유지가 어려운 나

어쩔 수 없이 맺어야 하는 관계— 가족 관계

이혼을 권하는 정신과 의사 / 산책의 의미 / 종이컵 전화기 / 태풍 속의 아버지 / 가족을 유지하는 힘

친구와 나 사이의 거리— 친구 관계
친구로부터 온 청첩장 / ‘좋은 친구’란 어떤 건가요? / 나보다 앞서가는 친구 / 소꿉친구 / ‘좋은 친구’의 정의 / ‘서로가 원하는 거리에 있어주는 관계’

관계 유지를 위한 특급 기술— 따뜻한 마음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 / 연민과 공감의 차이 /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것 / 망상장애 환자 / 공감 능력이 높은 정신과 의사

매력적인 사람 되기 — 당신의 매력은요?
착한 사람 /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 / 매력적인 사람

나를 위한 B집단 — 직장 내 관계로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해
직장 내 따돌림 / 소통의 기술 / 사회적 의사소통 장애 / 사회적 불안장애 / A집단, B집단 / 연락처를 정리하는 나

3장 이 관계 이제 그만하고 싶습니다 : 관계 정리가 어려운 나

대화하려 하지 않는 관계— 가깝고도 먼 가족

힘든 짐 /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삶 / 무관심한 관계

혼자가 되는 것이 무서운 나— 홀로서기
의존성 인격장애 / 데이트 폭력 / 정말 혼자인 사람과 시간이 많은 사람 / 사랑을 받아본 경험 / 표현하기 연습

이제 그만하고 싶습니다 — 이혼 그리고 동거
이혼을 말하기에 앞서 결혼 / 또 하나의 문화 현상, 동거 / 동거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 / 그리고 이혼

행복을 주는 삶 —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
이민을 선택한 아들을 둔 부모 / 누구의 행복이 더 소중한가요? / 나는 행복을 주는 사람

에필로그 — 관계라는 것은 항상 어렵습니다

본문중에서

“어쩌면 우리는 정신과에 특화된 카카오톡 서버가 아닐까?” 이 말이 어떤 정신과 선생님에겐 거슬리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선배와 같은 생각이다. 난 매일 환자에게서 많이 배운다. 정신과 의사로서 논문을 보고, 나보다 앞선 선배 선생님들의 강좌를 듣는다. 다양한 분야 사람들의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드라마도 본다. 그리고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정신과 의사란 직업 덕에 나와 긴 시간 동안 관계를 맺지 않은 사람에게도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난 이 모든 내용을 차곡차곡 정리해 둔다. 그리고 환자에게 이 내용을 전한다.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말이다. ‘관계의 거리, 1미터’도 이렇게 나온 책이다. 내 좁은 진료실에서 오고가는 대화와 감정을 묶어낸 책이다. ‘1미터’라는 거리. 진료실에서 나와 환자 사이의 거리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나만의 진료실이 생기고 나와 환자 사이의 거리를 얼마나 둘까 많이 고민했다. 될 수 있으면 환자의 전체 모습을 보고 싶어 ‘1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1인용 소파를 두었다.
(/ pp.9~10)

좁고 깊은 인간관계. 많은 어른이 주장하는 자신의 인간관계다. 이런 인간관계를 가진 사람이 진정으로 ‘관계’로 인해 힘들어하거나 힘들어질 수 있는 사람이다. 왜 좁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이것이 그들 인간관계의 한계다. 그럼 이들이 정말 깊은 인간관계를 맺고 있을까? 인간이 가지고 있는 관계를 맺고 싶은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선 깊을 수밖에 없다. 적어도 한쪽에선 깊어지려고 노력한단 사실이다. 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놀이라고 이야기한다. 재밌게 놀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우리가 관계에 목매는 이유다. 좁고 깊은 인간관계에는 심각한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한 사람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상대방도 나와 깊은 인간관계를 맺어줄 여유가 있어야 한다. 운 좋게 평생 깊은 관계를 함께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깊은 관계의 끝판왕 격인 부부 사이도 대한민국에서만 한 해 10만 건이 넘게 이혼하고 있다.
(/ pp.38~39)

자신을 보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주변과 더욱 울타리를 치게 된다. 그런데 재밌는 역사적 사실은 항상 벽을 세우는 쪽이 허물어진다는 사실이다. 진의 시황제는 중국을 통일하고 만리장성을 쌓았지만 20년도 유지되지 못하고 망했다. 과거 우리나라도 침략에 맞서기 위해 쇄국정책을 펼쳤지만 돌아온 것은 일제에 의한 식민지 생활이었다. 통일 전 동독은 베를린 장벽을 세워 주민들의 이탈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결국 전 세계 TV 앞에서 자국의 국민들에 의해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결국 막는 쪽만 힘들어진다. 털어놓고 나면 별것도 아닌데 감추고 있으면 사람을 참 힘들게 한다. 중고등학교, 대학교 시절까지 약점들을 감추느라 많은 고생을 했다. 요즘 난 가까운 사람들, 심지어 강좌를 시작하기 전 청중에게도 내 약점을 몇 가지 털어놓는다. 그리고 난 그들에게 한걸음 더 다가갔음을 느낀다. 내 아버지와 친구들이 어린 시절부터 가르쳐줬던 이 간단한 진리를 왜 난 정신과 의사가 되고 나서야 깨달았는지 의문이다.
(/ pp.56~57)

자존감이란 단어 그대로 자신 내부의 가치다. 타인의 인정이나 칭찬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래야 한다. 타인의 시선과 상관없이 스스로 느껴지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주로 이렇게 답한다. “다른 사람이 알아봐주지 않을까요?”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에게 느껴지는 기운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결국 결론은 타인의 시선이란 사실에 씁쓸한 느낌이 든다. 기억해야 할 것은 당신도 누군가에게는 타인의 시선이란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당신은 당신 주변의 사람들을 유심히 지켜보며 헐뜯지 않는다. 거기에 에너지를 쏟을 시간이 아마 없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를 헐뜯는 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면 오히려 당신의 마음이 고장났을지도 모르겠다. 혹시 누군가를 지켜보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그 사람과 더욱더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한 바람을 가득 담은 눈길일 것이다.
(/ p.61)

10년 전만 하더라도 혼자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 것도 어려웠다. 더군다나 고깃집에 혼자 간다는 것은 자신이 왕따임을 알리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혼술은 실연당한 직후에만 할 수 있는 사회적 용인이었다. 그래서 드라마에서도 으레 혼자서 술을 마시면 주인이 묻는다. “힘든 일 있어?” 세상이 바뀌었다. 혼밥, 혼술, 이성 친구 없는 20대. 이것이 부끄럽지 않은 세대다. 그런데 다양한 분야에서 내가 만난 20대들에겐 묘한 공통점이 있었다. 하나같이 위험을 회피하려는 성향이 높은 것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다. 하지만 지나치리만큼 ‘손해를 본다는 것’, ‘상처를 입는다는 것’에 몸서리친다. 인영 씨에게 물었다. “여자친구를 사귀어보는 것은 어때요?” “여자친구를 사귀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지 아세요. 에너지 낭비예요. 선생님이 좋은 점 열 가지를 대면, 제가 안 좋은 점 20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어요.” 그가 이야기한 안 좋은 점 스무 가지를 요약하면 대략 세 가지다. 돈 낭비, 시간 낭비, 감정 낭비란 것이다.
(/ pp.67~68)

일요일. 예배를 마치고 유아부에 있는 아들을 데리러 갔다. 아들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종이컵 전화기였다. 어렸을 때 기억이 나서 너무 반가웠다. 한쪽 컵을 귀에 가져가니 아들이 그새를 참지 못하고 장난을 쳤다. 다른 쪽 컵을 입에 대고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전혀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들이 아직 어리고 다른 아이보다 성장도 느린 터라 어설프게 만들었구나 싶었다. 몇 번 놀라는 척하다가 아들에게 말했다. “사실 잘 안 들려.” 이 모습을 지켜본 아내가 한심한 얼굴로 날 쳐다보며 말했다. “좀 뒤로 가봐. 끈이 팽팽해야지.” 난 몇 발짝 뒤로 물러서다 귀청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긴장. 더 많은 환자를 치료할수록 가족에게 정말 필요한 것 중 하나는 긴장이란 생각이 든다. 가족 간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은 이런 이야기다. 부모면… 남편이면… 아내면… 자식이면… 형제면…. 이들의 주장은 하나로 모인다. 바로 ‘나’를 위해 긴장해달라는 것이다. 때론 그들의 말이 투정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를 위해 긴장해준단 사실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 pp. 90~91)

서로를 인정하는 것. 누군가는 긴장하는 것.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것. 그냥 내 환자들에게 이런 것들도 가족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하나 더 말하는 것이 있다. 아무리 준비를 잘해도, 한 번의 실패 뒤에 다시 가족을 만들어도, 처음부터 제대로 된 가족은 없으며 오랜 기간에 걸쳐 서로 참으며 만들어 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가족은 사랑으로 유지되는 거야.” ‘사랑’이란 단어는 워낙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 분들을 비판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런데 성경에 ‘사랑’에 대한 흥미로운 정의가 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기독교인들 사이에 꽤 유명한 사랑에 대한 정의가 적힌 서신서다. 흥미로운 것은 사랑에 대한 정의 중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오래 참음’이란 사실이다. 지금 내 나이에 사고뭉치 중학생 아들을 두고서 매 한 번 들지 않았던 내 아버지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 p. 96)

“선생님, 제가 언제 페이스북을 살펴보는지 아세요. 제가 너무 한심해서 바닥으로 떨어져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싶을 때 친구들 페이스북을 보면 돼요. 그러면 제가 얼마나 형편없는 놈인지 알 수 있어요. 정말 저만 빼고 다 행복해 보이거든요” . 한 환자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친구들의 페이스북을 쭉 훑어본 적이 있었다. 다들 자신의 직장에서 한자리는 차지하고 있었다. 해외는 어찌나 많이 가던지. 열 명이 넘어가니 세계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었다. 남미를 다녀온 친구,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 오지 해외 선교. 이렇게 페이스북을 돌아다니다 보니 친구에게 메시지가 왔다. “오! 라디오에 나왔어~” 한동안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서 한 코너를 맡아 매주 진행한 적이 있었다.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자랑하고 싶었다. 방송할 때마다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러고 보니 내 페이스북도 친구들과 다르지 않았다. 온통 해외여행 사진이다. 그리고 내가 행복한 모습만 한가득이다. 그날 난 페이스북을 탈퇴했다.
(/ pp.104~105)

자신에게 너무 깊숙이 다가오는 사람을 경계한다. 자신만의 영역을 가지고 싶어 하고, 그것은 누구도 방해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면서도 그 친구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자칫하다간 자신의 고요한 삶을 방해하는 조짐이 보이면 연락하지 않는다. 인생의 아픔을 경험하면 자신보다 앞서가는 친구들이 유난히 두드러져 보인다. 그들은 아픈 나를 더욱더 힘들게 하는 사람이다. 그들에게 어떤 잘못도 없음을 알지만 괜히 밉다. 그리고 그들을 좋지 않은 친구로 분류하고 미워한다. 친구 관계로 힘들어하는 환자들도 보고, 친구로 인해 힘을 얻는 환자들의 이야기도 들으며, 지금 내가 친구라는 관계에 대해 내린 결론은 이렇다. 때에 따라 친구와 나만의 각자 상황이 있다. 그래서 서로가 원하는 거리에 대한 조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p.113)

“제 아들 아니에요. 속에 다른 사람이 있어요. 제 아들 흉내를 내고 있는 거예요!” 그녀가 가지고 있는 증상을 정신과 용어로 까그라스 망상(Capgras delusion)이라 한다. 겉으론 동일해 보이는 사람이지만 속은 다른 사람이라 강하게 믿는 것이다. 그녀의 망상을 이해해보자면 이렇다. 그녀는 가족에게 거의 버려지다시피 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가족을 너무 사랑한다. 쥐약이 스며든 물을 먹으면 건강을 해치게 될까 봐 몇 킬로나 떨어져 있는 물을 길어왔던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의 가족이 자신을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가족이 너무 원망스럽고 밉다. 그런데 한 편으로 생각해보니 그녀가 너무나 사랑하는 아들과 딸이다. 생각보다 해결법은 간단했다. ‘저 사람은 내 아들의 탈을 쓰고 있구나. 내 아들이 나를 여기에 가둬둘 순 없지.’ 그녀의 마음이 편해졌다. 더는 사랑하는 자녀를 미워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난 이렇게 그녀를 이해하면서 스스로 감동했다. 내가 공감 능력이 높아졌단 사실에 말이다. ‘이래서 정신과 전문의는 다르다고 하나.’ 이런 생각에 우쭐해졌다. 그리고 이 우쭐함은 몇 년 동안 지속되었다.
(/ pp. 127~128)

레지던트 1년 차 시절, 선배 중에 내가 유난히 따르는 사람이 있었다. 아니 몇몇을 제외하곤 모두 그 선배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 이유는 선배의 설득력에 있었다. 선배와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내 손은 마우스를 클릭하기 바빴다. 오디오, 프로젝터 모두 선배의 설득에 넘어가 샀다. 당시 술도 먹지 않는 내가 선배의 와인 사랑에 넘어가 <신의 물방울>이란 만화책을 전부 읽었으며, 틈틈이 선배가 구독하는 와인 잡지를 손에 쥐고 있었다. 나중에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이리도 이 선배의 설득에 잘 넘어간 데는 선배가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설득의 3요소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요소는 ‘로고스’다. 인간의 이성을 건드리는 것이다. 선배는 오디오를 취미로 가지는 것이 얼마나 삶에 유익한지 여러 가지 논리적인 근거를 들어줬다. 나름 좋은 이어폰을 사용하고 있는 나에게 이어폰과 헤드폰의 차이를 설명했다. 그리고 큰 스피커가 저렴한 비용에 얼마나 더 뛰어난 성능을 보일 수 있는지를 과학적으로 풀어나갔다. 마지막으로 입문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기기와 저렴하게 구입하는 방법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난 월급의 세 배나 되는 돈을 들여 오디오 한 세트를 구비했고, 이후 조금 더 나은 소리를 듣기 위해 두 개의 새로운 스피커를 구입했다.
(/ pp.140~141)

관계 유지로 힘들어하는 환자들에게 항상 하는 작업이 있다. 당신에게 어떤 점이 매력적인지를 짚어준다. 매력이 넘치지만 자기 스스로 움츠러든 사람이 있다. 이것이 내 매력이라고 내세우기엔 다소 부족한 매력을 가진 사람도 있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좀 더 매력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조금씩 노력해보자고 한다. 영자 씨에게도 말했다. 67세. 늦었다 생각하지 말고 매력적인 여자가 되어 보자고 말이다. 그동안 가정을 돌보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했던 그녀에게 당신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지를 매번 말했다. 그래도 남편이 당신의 가치를 계속 몰라주면 그냥 당신과 맞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하라고 말했다. 영자 씨가 어떤 결정을 하든 나도 그녀의 자녀들도 영자 씨를 응원할 것이다.
(/ p.147)

결론적으로 직장 내 관계를 단박에 원활하게 하는 방법은 없다. 관계가 좋다 싶다가도 갈등이 생긴다. 겉으론 조용한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손이 베일 정도로 날카로움이 서 있는 관계도 있다. 어찌 보면 이런 곳이 직장이다. 직장 내 관계의 어려움으로 유난히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다른 직장에서 또 다른 관계의 어려움에 맞닥뜨린다. 여기엔 다양한 요소가 존재한다. 사회적 의사소통이 어렵거나, 사회적 긴장감이 높아 관계 형성이 어려운 자신의 탓일 수 있다. 모든 일에 의심을 하는 사람, 배려가 없는 사람 등을 만나면 원만한 관계 형성은 물 건너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곧잘 이들에게 연락처를 한번 정리해보라고 주문한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숙제지만 이런 사람들에게 자주 나오는 반응을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이렇다. 하나. “연락처에 저장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둘. “정말 친했던 친구인데 연락 한 번 안 했더라고요”. 셋. “분명히 친분이 있어서 연락처를 저장해놓았을 텐데 누군지 모르겠어요.”
(/ p.166)

의존성 인격장애. 이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의지할 대상에게 적극적으로 복종하면서 의존 관계를 유지한다. 당연히 자신이 의지하는 사람과 분리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하다. 교과서에서 배운 의존성 인격장애 내용의 일부분이다. 실제 치료 현장에서 만난 이 장애가 있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렇다. 보통 직장도 없었고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모든 것을 누군가에게 맡기고 있었다. 자신이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며,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다. 혼자 있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자신이 의존하는 사람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참았다. 하나같이 무능력하고 여린 여성. 내가 교과서에서 배운 그대로였다. 그런데 다소 의외의 사람도 있었다. 바로 이나 씨 같은 사람이었다. 이나 씨의 이야기를 듣고 대뜸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이랬다. “대체 이런 남자를 왜 지금까지 만나는 거예요.”
(/ p.183)

내게 일만 강요하는 여성, 데이트 폭력을 가하는 남성. 이런 사람을 연인으로 둔 이들에게 힘들더라도 단호하게 한번에 차단하라고 요구한다. 내 앞에선 알겠다고 말하며 돌아가지만 차단되는 것은 번번이 나였다. 어쩌면 이 병원이 마지막 끈이라 생각하고 찾아왔을 텐데 나마저 그들을 내치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한동안 그들에게 헤어지라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위험한 남성을 만나고 있는 의존성 인격장애 환자가 찾아왔다. 정말 막장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일들을 당하고 있는 그녀에게 매번 헤어지라고 당부했다.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의 안전망이 되어 줄 부모가 있었다면 전화라도 해주고 싶었다. 한 해가 끝나갈 무렵, 드디어 그녀는 한번 용기를 내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게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번에도 차단되는 것은 나였다. 생각해보면 의존성 인격장애를 가진 이들은 헤어져도 곧 이런 사람들을 어딘가에서 구한다. 그들은 혼자 있는 것을 참지 못하기에 헤어지면 마음이 급하다. 그들이 다시 찾은 사람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은 이유다. 아주 운이 좋았다면 모를까, 그들은 또다시 눈물을 흘리게 된다.
(/ pp.192~193)

헤어지자고 했음에도 짐을 빼지 않아서 몰래 이사를 하려 한다는 사람, 채무관계로 해결 전까지 헤어지기 어렵다는 이야기는 이미 끝난 동거의 고통 중 괜찮은 편에 속한다. 헤어지자고 했다가 보복의 두려움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여성, 이별을 통보하면 손목을 그어버려 죄책감에 그냥 같이 살고 있다는 남성 등 소름 끼치는 삶을 사는 사람도 있었다. 듣다 보면 이게 동거의 문제인지 아니면 그냥 일반적인 연인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다 보니 제도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탓에 더 곤란해진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듯하다. 하지만 요즘 청년들에게 동거는 나쁜 것이니 앞으로는 절대 하지 말란 이야기는 너무 꼰대 같은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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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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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행복 주는 의원’ 대표원장. 오산시 정신건강복지센터 센터장. 브레인맵 대표이사.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상상조차 어려운 직함들이다. 난 뭔가 간절히 이루고 싶은 꿈도 없었고,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능력도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항상 나를 지켜봐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자친구의 권유로 의대에 들어갔고, 친구의 권유로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 여러 선생님의 도움으로 개원할 수 있었고, 브레인맵이라는 의료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었다. 많이 부족하지만 나를 찾아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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