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적립 안내

문학의전당 시인선 323권. 2008년 《시평》으로 등단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성렬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나의 꽃이 너의 꽃이 되었다』가 출간되었다.

생활이라는 단단한 토양에 뿌리내린 김성렬 시인의 시가 전작 『본전 생각』에서 삶의 고단함과 비루함을 위무했다면, 이번 신작에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내딛는다. 일상의 부조리에 직면할 때마다 예기치 않은 우연성에 기대 들꽃처럼 피어나는 삶의 순간들. 꽉 막힌 듯한 삶 속에서 길어낸 시어들이 삶에 소담한 오솔길을 내주는 방식으로 시인은 고통과 해학이 단단하게 응집된 생활시를 탄생시킨다. 탐욕도, 속임수도, 조롱도 없는 이 진실하고도 소박한 시어들이 곧장 독자들의 삶 속으로 흘러들어와 맑은 생기를 부여할 것이다.

김성렬 시인을 ‘생활시의 달인’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생활이 시가 되고 시가 생활이 되는 작법을 이토록 능수능란하게 구사하기까지 그는 얼마나 오랫동안 세상의 고통들을 다독여왔던 것일까. “골목에 고성과 삿대질이 사라지자 나의 꽃이 너의 꽃이 되었다 모두의 꽃이 되었다 마음의 문에도 꽃이 피기 시작”(「이웃사촌이 되다」)하듯이 생활 전반의 문제들도 그의 시선이 닿으면 해학과 익살로 환원되어 꿈과 희망이 된다. “시간, 이라는 병(病)을 이기지 못해 시간에 갇힌 꽃들......”(「꽃은 시들어도 꽃이다」)을 보며 우리 시대의 노인 문제까지도 짚어내는 김성렬 시집 『나의 꽃이 너의 꽃이 되었다』는, 생활을 언어로 빚어낸 한 연금술사의 에필로그라 읽어도 좋을 것이다.
-고영(시인), 추천사 중에서

시인의 말

제1부
유산 13
어마어마한 사람 14
맞선 15
관심 16
외출 17
이사 18
불황의 그늘 20
옥탑방 21
입주 22
골절 23
기적 24
귀농 25
상속 26
전단지 내력 27
보수공사 28

제2부
눈꺼풀이 무겁다 31
쓰나미 32
별리 33
불 꺼진 서재 34
새벽시장 36
소원 37
서울이라는 그 머나먼 나라 38
보수와 진보의 충돌 40
이명 41
이웃사촌이 되다 42
쓰디쓴 경험 43
눈칫밥 44
웃음을 선물로 받았다 46
만월이 떴다 47
계획 48
갯벌 49
헐렁한 자루 50

제3부
꽃은 시들어도 꽃이다 53
문장 54
악마의 속삭임 55
속보 56
견적서 58
습관 59
봄꽃의 명상 60
저물녘 61
복어 62
실업급여 63
연어가 돌아왔다 64
바람도 가끔, 소용돌이친다 66
소쩍새 67
간이역 68
봄단장 69
흙 70
로드킬 72

제4부
순례길 75
건물주 76
아내의 시간 77
그런 시절이 있었다 78
한둘이 아니다 79
시험지 80
즐거운 출근길 81
날벼락 82
단잠 84
여름 85
자연 독서실 86
더부살이 87
사랑방 이발관 88
눈썰미 90
소박한 밥상 91
아름다운 다툼 92

해설 | 다양한 생의 문양(文樣)들 93
백인덕(시인)

내가 빡빡머리 소년일 때
안방에서 툭,?태양이 졌다

그 뒤로 우리 집안은
오래오래 캄캄했다
-「유산」 전문

골목마다 며칠 동안 중장비 소리 요란하더니 각박했던 동네가 환해졌다 인물이 훤-해졌다 담장이 사라졌다 담장 밖의 풍경과 담장 안의 풍경이 하나가 되었다 담장 밖의 사람과 담장 안의 사람이 서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골목에 넘쳐났던 자동차들이 마당으로 전입을 했다 주차 문제로 떠들썩하던 골목에 고성과 삿대질이 사라지자 나의 꽃이 너의 꽃이 되었다 모두의 꽃이 되었다 마음의 문에도 꽃이 피기 시작했다

이웃사촌 소리 듣는 데
몇 년이 걸렸다
-「이웃사촌이 되다」 전문

시내버스 정류장 근처?
구둣방 힐긋 곁눈질했더니
벙어리 부부가 마주앉아
가슴을 탁탁 치며 수화를 한다
그냥 두면 정나미 떨어질까 봐
미닫이문 밀고 들어간다
움찔 놀랄 줄 알았는데
평상시처럼 하얀 미소로 맞아준다
수화로 다투던 벙어리 부부
아무리 크게 싸워도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을 다툼
세상 가장 아름다운,
다툼을 보았다
-「아름다운 다툼」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