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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어딘가 블랙홀 : 감춰져 있던 존재의 ‘빛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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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이지유
  • 출판사 : 한겨레출판
  • 발행 : 2020년 05월 28일
  • 쪽수 : 256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60403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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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이 우주에 숨어 혼자이고 싶은 존재는 없다.
빛을 삼키는 블랙홀이라 할지라도.”

사바나의 풀과 코나의 고래
하와이의 화산과 볼리비아의 사막...
라세레나의 태양과 블랙홀을 지나
‘별똥별’ 작가 이지유가 과학 너머에서 발견한 것들


전 지구인을 과학 독자로 삼고 싶은 이지유 작가의 논픽션 과학 에세이. [저기 어딘가 블랙홀]은 20년 넘게 어린이와 청소년 책을 써온 작가의 내공이 담긴 과학 에세이다. 글은 발로 써야 한다는 작가의 평소 생각대로 전 세계를 여행하며 경험한 내용을 소재 삼았다. 아메리카를 비롯해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 세계 구석구석을 돌아다닌 작가는 ‘그곳’에서 과학의 신비를 발견하고, ‘그 너머’에서 엉뚱하지만 유쾌한 삶의 통찰을 얻어 돌아온다. 궁극적으로 이는 그동안 몰라봤던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도록 이끈다.
땅속 깊은 곳에 있는 탄소에도, 아프리카 사바나의 풀 냄새에도 존재의 이유는 있다. 단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찮고 흔하게 여겨졌지만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있는 것이다. 하와이에서 바라본 무지갯빛에서, 아프리카의 누떼가 평화롭게 풀을 뜯는 모습에서, 그리고 볼리비아 우유니의 사막과 포스토이나 동굴의 종유석에서, 마침내 감춰져 있던 존재의 고유성과 개성이 그 빛을 드러낸다.
칠레의 라세레나 해변, 하와이의 킬라우에아산 등 낯선 장소에서 마주한 과학적 상식은 짧은 찰나,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마중물과 같은 상상력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뜻밖의 지긋한 깨달음을 주는 게 바로 이 책의 묘미. 오랫동안 글을 써온 만큼 어떤 소재든 쉽고 명징하게 풀어나간다. 더불어 작가의 담백한 성찰에서는 삶의 지혜를, 어렵고 무거울 법한 과학적 상식을 쉽고 정확한 언어로 쓰며 책의 문턱을 낮춘 모습에선 모든 존재를 향한 존중을 엿볼 수 있다.
20년 넘게 과학을 소재 삼아 글을 써온 작가는 지구를 여행하며 과학의 이면을 마주했고, 그곳에서 지긋한 삶의 철학과 존재의 의미를 사유했다. 그러니 이 책은 ‘여행의 과학’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감춰져 있던 존재의 ‘빛남’을 찾기 위한 여정이기도 하다. 저기 어딘가에 있을 블랙홀은, 이 여정에서 가장 먼저 발견한 빛나는 존재다.

“생명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으려는 강한 의지가 있고,
이와 같은 의지는 자원이 부족하든 넘치든 상관없이 모든 생명이 지니는 속성이다.
지금 이 순간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살아 있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를 지니고 있다. 단지 숨만 쉰다 할지라도.”


책은 총 6부로 짜여 있으며 천문학, 식물학, 동물학, 지구과학, 지질학, 염료학 등 작가가 여행 중 발견한 과학 소재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1부 <우주에서 기록된 것들>은 삼라만상의 근원, 우주에 관한 이야기다. 모든 것을 삼킬 것 같은 블랙홀이 누구보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을 아시는지? 사실 블랙홀은 나름 관대해서 몇 가닥의 빛만큼은 삼키지 않는다. 2019년, 이 빛들이 내지르는 비명을 하나하나 모으고 찍어 붉은 고리를 만들자 드디어 블랙홀이 모습을 드러냈다. 의외로 별 볼일 없는 동그란 도넛 모양이라며 사람들은 실망했지만, 블랙홀 입장에선 그게 뭐 대수일까. 자신의 존재를 선명하게 보였으니, 그걸로 성공이다. 작가의 말처럼 이 우주에 숨어 홀로이고 싶은 존재는 없다. 빛을 삼키는 블랙홀이라 할지라도.”(23쪽)
이 블랙홀을 찍은 망원경이 위치한 곳이 바로 마우나케아산이다. 마우나케아산을 비롯해 칠레의 라스 캄파나스는 지대가 튼튼해 전 세계의 천문대가 모여 있는데, 이곳에 인간의 의식을 넓혀줄 거대한 망원경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들 망원경은 자신을 세심하게 살펴줄 인간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다. 관심이야말로 “우주를 밝히는 또 다른 빛이다.”(23쪽)

2부 <초록빛이 주는 위로>에는 작가가 각 나라를 방문할 때마다 식물원을 찾는 이유가 나온다. 태어날 때부터 아름다웠을 것 같은 식물도 저마다의 슬픈 사연으로 지금의 모습을 꽃피웠다. 수분(가루받이)을 위해 결핍을 극복하면서까지 화려하게 진화한 난초, 잎과 열매를 지키기 위해 알싸한 풀 냄새를 풍긴 목화 등 지구상의 수많은 식물은 자신을 방어하고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들의 애씀이 없었다면 인간은 ‘초록빛의 위로’가 뭔지도 몰랐을 거다.

3부 <내가 사랑하는 동물들>에는 작가가 여행지에서 마주친 동물이 등장한다. 태평양 연안에 거주하는 혹등고래는 알고 보면 의협심 강하고 배려심 넘치는 동물이다. 배 위에 바다표범을 태워 안전하게 유빙으로 모셔다 주기도 하니 “괴롭히는 걸 즐기는 범고래보다 더 정이 가는 게 인지상정!”(83쪽) 코쿠이 개구리 역시 고향인 푸에르토리코에서는 벌레 수를 조절해 열대우림의 생태계를 균형 있게 잡아주는 의로운 개구리다. 그러나 어쩌다 정착한 하와이에서는 늘 살해 위협에 시달리고 있으니, 우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집값을 떨어트린다는 이유다. 운이 좋게도 코쿠이 개구리는 잘 살아 있지만 이런 식으로 죽임을 당해 멸종 위기를 맞은 동물도 있다. Big 5라 불리던 코끼리, 사자, 코뿔소, 표범, 버팔로는 원래 덩치가 큰 동물을 일컫지만 인간들이 재미로 사냥한 탓에 지금은 지구상 몇 남지 않은 멸종 위기 동물이 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인간은 누구보다 동물의 비위를 잘 맞춰줘야 한다. 그래야 라마나 과나코 같은 동물이 무거운 짐도 실어 날라주고, 가끔은 귀한 털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작가는 세렝게티 초원에서 누 떼가 풀 뜯는 모습만 봐도 그저 눈물이 난다고 했다. 살아 숨 쉬는 존재가 일상을 누리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로를 얻는다. 그 진리를 우리는 언제쯤 눈치 챌까.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아시아와 유럽을 넘나들며 작가가 들려주는 동물과 식물, 우주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우리가 사는 행성, 지구 이야기와 마주하게 된다. 4부 <가장 빛나는 행성에서의 시간>은 말 그대로 지구에서의 시간을 말한다. 이 장에서는 환경오염을 비롯한 각종 지구적 위기를 이야기한다. 우수수 떨어지는 나이아가라 폭포수를 보며 되레 물 부족 현상에 대해 생각하고 호모 하빌리스가 발견된 올두바이 협곡을 여행하며 되레 외계인들이 미래의 지구에서 무엇을 발견할지 상상해본다. 먼 훗날 지구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게 돼지와 소, 닭의 뼈라면? 그것도 수백 마리가 이상한 곳에 묻혀 있는 걸 외계인이 본다면? 아마도 ‘자연과 함께 어울릴 줄 몰랐던 지구인’이라는 오명을 쓸 각오를 해야 한다. 4부는 지구적 위기를 논하며 가장 빛나는 행성인 지구를 아껴주어야 함을 역설한다. 우주에서 가장 빛나는 행성, 바로 지구인데 우리는 늘 까먹는다.

5부 <흔들림과 떨림, 기다림 사이에서>는 땅의 이야기다. 땅이 흔들리고 떨리면서 진동을 일으키는 것은 실은 지구가 대화하는 방식이란다. P파와 S파라 불리는 서로 다른 성질의 지진파를 열심히 기록하는 이유가 바로 지구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 위해서다. 지구의 속사정은 바로 이 흔들림과 떨림 사이에서 기록된다. 천혜의 환경을 자랑하는 하와이는 이 지각의 변동에 의해 빚어진 섬이다. 100여 개의 화산섬으로 이루어진 하와이는 알고 보면 제각각 나이가 다른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까 땅이 흔들리고 떨리면서 서서히 움직였는데, 그 결과 가장 북쪽에 있는 화산이 최고령이며 열점에서 가장 가까운 화산이 이제 막 싹을 피우는 어린 화산이다. 최고령인 화산은 이제 불을 뿜지 않는 화산이 됐지만 “화산의 삶은 그때부터다. 화산은 그제야 다른 생명을 품을 수 있게 된다. 새가 날아오고, 새가 눈 똥에 들어 있던 씨앗이 싹을 틔우고, 그 식물을 만나러 곤충이 날아들고, 인간의 손에 이끌려 동물이 몰려온다. 한때 화산은 불을 뿜는 열정적인 삶을 사느라 다른 생명체에 아무런 자리도 내주지 못했지만, 이제 조용히 다른 생물의 터전이 되어간다.”(167쪽) 흔들리고 떨리면서 인내의 시간을 기다리는 건 인간도 마찬가지다. 그 지난한 시간은 땅과 광물, 사막과 화산, 그리고 인간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다.

6부 <과학, 그 너머의 것들>에서는 1-5부에서 미처 못 다한 이야기를 다룬다. 모스부호의 탄생비화부터 프리다 칼로가 코발트블루를 현관문에 칠한 이유, 그리고 추운 겨울이면 침엽수가 거대한 얼음 괴물로 변신하는 이유까지 알고 보면 이들 모두 과학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런가 하면 작가는 터키 카파도키아의 화산탄을 보곤 문득 하와이에서 만난 화산학자의 말을 떠올린다. “저 분화구에서 화산탄이 날아오면 뒤돌아서 도망가지 말고 화산탄을 똑바로 보세요. (...) 만약 화산탄이 곧장 내 쪽으로 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248쪽) 그럴 땐 폴짝 뛰어서 바로 옆으로 가면 된다.
화산학자의 말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거기엔 인생의 큰 깨달음이 있다. “나를 죽일 수 있는 무언가가 날아와도 절대 시선을 피하지 말고 똑바로 맞서자. 그리고 그것이 내 눈앞에 왔을 때 폴짝 뛰어서 바로 옆으로 가라!”(248쪽) 인생의 ‘깨알 팁’이 터키와 하와이를 지나 어느 돌덩이에서 발견된 것이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뜻밖의 지긋한 깨달음, 바로 이 책이 주는 묘미다.

이 책을 읽고 과학 너머에서 발견한 것이 가장 나답게 사는 방식일 수도, 또는 상대를 향한 배려와 존경심일 수도 있다. 지구를 구하고 싶은 작은 의지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그게 무엇이든, 이 여정의 끝에선 저마다의 방식으로 존재의 이유를 발견할 것이다.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지금 이 순간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살아 있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를 지니고 있다. 단지 숨만 쉰다 할지라도.”(63쪽)

목차

책을 시작하며

1부 우주에서 기록된 것들/ UNIVERSE
- 라세레나의 개기일식
- 저기 어딘가 블랙홀
- 어디에나 무지개
- 마우나케아의 석양
- 라스 캄파나스의 GMT
- 치첸이트사의 그림자

2부 초록빛이 주는 위로/ PLANT
- 내가 식물원에 가는 이유
- 싱가포르의 난초
- 사바나의 풀 냄새
- ‘카페 데 오야’

3부 내가 사랑한 동물들/ ANIMAL
- 코나의 고래
- 세렝게티의 왕은 사자가 아니더라
- 힐로의 개구리
- Big 5
- 비쿠냐, 라마, 알파카, 과나코
- 누가 설치류를 얕보나
- 헨티의 말
- 거대한 여인, 마망

4부 가장 빛나는 행성에서의 시간/ EARTH
- 호모 하빌리스와 그의 후예들
- 애리조나의 식물원
- 나이아가라 폭포와 가뭄
- 페루의 구아노
- 홍콩의 아파트

5부 흔들림과 떨림, 기다림 사이에서/ GEOLOGY
- 킬라우에아와 열점
- 캘리포니아의 지진
- 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
- 포스토이나 동굴의 종유석
- 스코틀랜드의 돌
- 시간이 멈춘 곳, 마추픽추
- SF 도시, 라파스
- 우유니의 고요

6부 과학, 그 너머의 것들/ SCIENCE
- 따따따 따아따아따아 따따따
- 피렌체의 갈릴레오
- 일본 자오의 침엽수
- 프리다 칼로가 고른 코발트블루
- 발리의 발 마사지
- 카파도키아와 화산탄

본문중에서

오후 3시가 지나자 해가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검은 망사가 내려앉은 듯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더니 1초가 다르게 색이 사라졌다. 3시 20분 무렵 초승달 같은 태양이 마지막 빛을 비명처럼 번쩍 내지르고 사라지자 사방이 완전히 깜깜해지고, 검은 해 주변에 파랗게 빛나는 코로나(태양 대기의 가장 바깥층에 있는 엷은 가스층. 개기일식 때만 볼 수 있다)가 보였다. (......) 가리거나 멀어져야 볼 수 있는 관계는 우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어떤 일이 몹시 버거우면 잠시 멀리 밀어 둘 때가 있지 않은가. 비겁하게 피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어 버거움의 정도를 줄이는 것이다. 모두 감당하려고 애쓸 필요 없다. 가끔은 멀리 밀어두는 편이 이롭다.
시간이 흐르면 멀리 밀어두었던 일을 다른 각도로 바라볼 여유가 생긴다. 그러면 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면이 보이기도 한다. 멀리 두기와 가리기, 개기일식은 우리의 삶 속에도 있는 셈이다.
(/ pp.15~17)

블랙홀은 무척 매력적인 존재다. 무엇이든 삼켜버린다니 정말 인상적이지 않은가! 밀도와 질량이 어마어마하게 커서 빛조차 삼켜버리는 이 신비로운 천체는 근처에 있는 물질을 무조건 끌어들여 삼켜버린다. 삼킨다, 흡수한다는 표현이 좋은 느낌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 게다가 빛도 삼키는 블랙홀의 속성 때문에 공포스러운 존재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블랙홀을 무섭거나 두렵거나 탐욕스러운 존재로 생각하기보다 신비롭게 여긴다. 우리는 이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블랙홀을 이렇게 표현해보는 것은 어떨까?
‘무엇이든 수용할 수 있는 넓은 포용력을 지녔지만 빛마저 삼켜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도 드러낼 수가 없다.’
(/ p.20)

난초는 한 곤충만 공략하기 위해 몸의 구조까지 바꾸며 결핍을 극복했다. 수많은 시도 끝에 난초는 기이한 아름다움을 완성했고 곤충의 이목을 끄는 일에 성공했음은 물론, 인간의 시선도 사로잡았다. 이제 싱가포르에선 곤충 대신 인간이 면봉을 들고 꽃가루를 날라준다. 난초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그들의 아름다움이 빚어낸 결과다. 생명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으려는 강한 의지가 있고, 이와 같은 의지는 자원이 부족하든 넘치든 상관없이 모든 생명이 지니는 속성이다.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지금 이 순간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살아 있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를 지니고 있다. 단지 숨만 쉬고 있다 할지라도.
(/ p.63)

검은꼬리누가 물과 풀을 찾아 북쪽으로 떠나도 세렝게티 남부에 사는 사자들은 가지 못한다. 사자에게는 새끼들이 있고 사자 새끼들은 검은꼬리누처럼 먼 길을 여행할 수없기 때문이다. 케냐에 있는 또 다른 사자 무리가 검은꼬리 누를 잡아먹을 테지만 상관없다. 검은꼬리누는 풀만 많으면 저절로 번성이 가능하다. 반면 사자는? 검은꼬리누가 없으면 굶어죽는다. 자, 이쯤 되면 세렝게티의 진정한 왕이 누군지 다시 생각 해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 역시 세렝게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디에 가든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유심히 살펴야 한다. 권력자나 부자는 사람이 많은 곳을 기웃거린다. 그들의 운명이 묵묵히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사자의 수가 검은꼬리누의 수에 따라 좌우되듯 말이다.
(/ p.88)

사람들은 그제야 깨닫기 시작했다. 그 어떤 것도 새들이 수천 년에 걸쳐 산호섬에 싼 똥을 대신할 수 없다는 지극히 간단한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오늘날 친차 섬에는 국가가 공인한 관리인만 발을 디딜 수 있고, 어느 누구도 들어갈 수 없다. 그 덕분에 지금은 새의 개체 수가 늘고 새들은 예전처럼 평화롭게 똥을 쌀 수 있게 되었다. 구아노 표면에는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홀씨들이 자리를 잡았다. 바다로 흘러든 구아노는 물고기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자연이 살아났다. 자연은 내버려두면 자신의 길을 찾아가게 마련이다. 인간도 그렇지 않은가.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이므로.
(/ p.153)

화산을 떠나보낸 열점은 다시 어린 화산을 만든다. 이 화산 역시 다 자라면 북쪽으로 가겠지만 열점은 묵묵히 새 화산을 만든다. 하와이를 이루는 100개의 섬은 모두 이런 방식으로 생겨났다.
화산의 삶은 인간에게도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누군가를 보살피던 사람은 그들이 독립해 제 갈 길을 갈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보살핌을 받던 사람은 때가 되면 독립해 제 갈 길을 가야 한다. 화산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 p.167)

탄소는 고독하고 깊은 땅속에서 무섭게 죄어 오는 압력을 견디며 아주 단단한 광물이 되어 간다. (...) 이와 같은 일은 아주 느리게 이루어지지만 다행히 시간은 충분하다. (...) 느린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아무리 느려도 끝을 볼 수 있으니까.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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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생년월일 1965~
출생지 강원도
출간도서 38종
판매수 54,113권

과학논픽션 작가, 과학전문책방 갈다 이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지구과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천문학과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50세 즈음 공주대학교 과학영재교육학과에서도 석사를 받았다. 과학 교육의 목적은 ‘발견의 기쁨’을 느끼는 것이라 여겨, 재미나면서도 철학이 깃든 과학책을 만들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이지유의 이지 사이언스』 시리즈, 『별똥별 아줌마가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시리즈, 『나의 과학자들』, 『저기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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