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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 스펙트럼 시리즈 2차 세트 : 첫사랑, 모자, 꿈의 노벨레, 모래 사나이, 실비/오렐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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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9일 이후 누적수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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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품의 분류

    출판사 서평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세계는 한번 접하고 나면 도저히 피할 수 없다”

    질병, 혼란, 고독, 파멸, 죽음 등을 테마로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한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대표 단편선!


    현대 독일어권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이자 죽음, 절망, 고통, 파멸의 작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소설집 [모자](김현성 옮김)가 새롭게 리뉴얼된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평범하지 않은 출생과 어머니와의 애증 관계, 고통스러운 가족사로 인해 죄의식과 저주 속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베른하르트는 죽음과 파멸, 고독과 절망, 정신착란 등 암울하고 음습한 어둠의 정서를 문학적 상상력으로 생생하게 구현해내며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모자]는 그의 단편소설 가운데 열 편(「두 명의 교사」 「모자」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 등)을 선별해 묶은 책으로, “한번 접하고 나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베른하르트만의 탁월한 작품 세계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베른하르트는 1957년 첫 시집을 펴낸 이후 꾸준한 작품 활동을 통해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비평가들의 찬사와 더불어 중요한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초기 작품에는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따뜻한 정서가 표현되어 있기도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서정성은 모두 사라지고 불합리한 세계, 자연의 무자비함, 부조리한 인간 조건, 야만스럽고 냉혹한 인간성을 묘사하기 시작한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질병으로 죽어가거나 자살하거나 살인하거나 살해당한다. 그의 작품에는 줄거리나 플롯 없이 다만 누군가의 죽음만 주어져 있고, 그가 죽기까지의 정신적 혼란의 과정이 서술되어 있을 뿐이다. 그의 문장은 이 죽음과 광기에 대한 긴장을 고조시키기 위해 병렬과 대비로 과장하고 반복하고, 빠른 속도로 패러독스를 계속하며, 형용사와 부사는 언제나 최상급으로 사용한다. 그는 독일어 문장의 특징을 십분 발휘해 끝없이 이어지는 종속문의 사슬 속에 수많은 쉼표와 느낌표, 쌍점 등을 흩뿌려놓고, 동의어를 끝없이 반복하고, 때로는 구나 절뿐만 아니라 문장 전체를 반복하기도 한다. 주인공의 정신이 비정상적인 상태임을 나타내는 이러한 광적인 문장은 읽는 사람의 머릿속까지 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한다.
    베른하르트는 삶에 대한 어떤 기대도 환상도 갖고 있지 않다. 삶에 환상이 없기 때문에 그의 문학에도 환상이 없다. 베른하르트는 노발리스와 카프카의 관념적인 아들로 간주되지만, 그들과 달리 어둠과 죽음을 예찬하거나 구원의 빛을 찾아 헤매지 않는다. 베케트와도 자주 비견되지만,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다. ‘삶이란 결국 모두 미치고야 말 절망인데도 미래라는 과대망상 때문에 죽지도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감옥 속에서 더듬대고 있을 뿐, 존재론적인 질문들엔 당연히 답이 없다. 같은 주제, 같은 질문의 부조리한 반복만 불가피하다. 이를 통해 베른하르트는 이 세상이, 인간이 처한 조건이 얼마나 잔인하고, 삶이 얼마나 무가치한 것인가를 집요하게 설파한다. 그의 절망적이고도 부조리한, 암울한 작품 세계는 독자를 괴롭히고 불안하게 하지만, 비평가 페터 함의 말대로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세계는 한번 접하고 나면 도저히 피할 수 없다.”

    이 책에 실린 첫번째 단편 「두 명의 교사」는 두 사람이 산책을 하면서 나누는 대화의 구조를 띠고 있다. 그러나 베른하르트의 작품 대부분이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이 글에서도 한 사람이 자신의 불면증에 대한 보고를 하고 있다(“나는 평생 끔찍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끔찍한 삶을 사는 것은 나의 권리입니다. 그리고 이 끔찍한 삶은 나의 불면증입니다……”). 베른하르트의 작품에서 불면증은 질병, 고통, 광기의 기호로 자주 등장한다. 밤마다 그를 잠 못 들게 했던 창밖에서 울부짖는 짐승이 무엇이었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고, 그곳을 떠나왔어도 여전히 불면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표제작인 「모자」에서도 예외 없이 두통과 정신착란과 어둠과 공포, 그리고 완벽하게 텅 빈 절망의 모티프가 작품 전체를 짓누르고 있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는 어느 날 길에서 모자를 하나 줍는데, 그 모자를 버릴 수

    “내가 그토록 오래전부터 품어왔던
    그 이상한 열정들, 그 꿈들, 그 눈물들, 그 절망들과 다정함들……
    그것이 사랑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젊은 날의 쓸쓸한 사랑 이야기와 광기의 기록이자
    삶의 근원을 찾아가는 영혼의 여정!
    프랑스 국민 작가 제라르 드 네르발의 대표 작품선


    독일의 노발리스, 영국의 블레이크에 비견되는 프랑스 작가 제라르 드 네르발의 「실비」와 [오렐리아]를 묶은 [실비/오렐리아]가 새롭게 리뉴얼된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신비주의와 제교혼효주의로 일컬어지는 그의 작품 세계는 한동안 편견과 망각 속에 놓여 있었으나, 마르셀 프루스트, 기욤 아폴리네르를 위시한 시인과 작가들의 공감을 얻다가 20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인 연구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마흔일곱 해의 짧은 생애에서 젊은 나이에 파산한 이후 20년 가까이 글 쓰는 일을 고단한 생업으로 삼아야 했던 네르발. 그중에서도 「실비」와 [오렐리아]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에 집필한 작품으로, 그의 주요 작품들이 극도의 빈곤과 광기에 시달리던 생의 말년에 씌었다는 점은 그에게 글쓰기가 허물어져가는 삶을 붙들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자전적 색채가 짙은 「실비」와 [오렐리아]는 암운처럼 덮여오는 광기와 죽음에 맞서 작가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그가 끝까지 지켜내려 했던 가장 소중한 진실의 기록이라 할 만하다.
    젊은 시절 네르발은 아버지의 희망대로 의학을 공부했으나, 외조부의 타계로 상당한 유산을 물려받게 되면서 본격적인 보헤미안의 생활로 접어들었다. 당장 그해 가을 유산의 일부를 현금화하여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를 여행하는가 하면, 몇몇 예술가 친구들과 더불어 공동생활을 하며 예술지상주의를 구가하는 분방한 삶에 뛰어들었다. 이 여행을 전후하여 여배우 제니 콜롱을 만나게 되었으니, 그의 평생에 걸쳐 지속될 사랑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녀를 출세시키려는 일념으로 창간한 호화판 연극 잡지가 남의 손으로 넘어가면서 그는 파산하고 만다.
    「실비」는 이 무렵의 그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품 속에는 세 명의 여인이 등장하는데 ‘아드리엔’과 ‘오렐리’ ‘실비’다. 그러나 주인공이 사랑한 것은 어느 한 명의 여인이라기보다는 그의 꿈과 동경, 추억을 통해 이상화된 여인상이다. 여인에 대한 그의 사랑은 “물질적인 인간을 거듭나게 해줄 이시스 여신의 장미 꽃다발” “영원히 젊고 순결한 여신”과 같은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 여신에게 바치는 종교적인 사랑인 것이다. 이처럼 그에게 사랑이란 삶의 근원에 이르는 하나의 길이었다. 「실비」는 붙잡을 수 없는 이상 때문에 번번이 현실을 놓치고 마는 젊은 날의 쓸쓸한 사랑 이야기를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문체, 티 없이 맑은 정취를 담아 짧고 영롱한 작품으로 형상화했으니, 일찍이 ‘프랑스적인 목가’로 평가되며 네르발을 국민 작가로 칭송받게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1836년 파산 이후, 여배우 제니는 다른 사람과 결혼하고 그녀와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1841년 최초의 정신병 발작을 일으킨 네르발은 이듬해에 제니의 부고를 듣게 되며, 계속된 광기와 발작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가 1855년 1월 새벽에 누추한 골목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주머니에는 채 마치지 못한 [오렐리아]의 교정쇄가 들어 있었다. [오렐리아]는 제니에 대한 사랑의 좌절, 피아니스트 마리 플레옐의 중재로 어렵사리 화해하게 되었던 일, 최초의 발작과 일련의 꿈들, 뒤이은 제니의 죽음, 그리고 10년 만에 재발한 광기를 충실하게 기록한 자전적 작품이다. 그것은 꿈에서 깨어나기는커녕, 오히려 꿈을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에 도달하려 했던 그를 보여준다.
    「실비」가 “이상한 시대”를 살며 불가해한 삶의 진의에, 그 항구적 근원에 도달하기 위해 그가 한때 지녔던 덧없는 사랑의 꿈들에 관한 것이라면, [오렐리아]는 겹겹의 너울처럼 떨어져 내리는 꿈들의 저편에 있을 그 어떤 궁극적 비의에 도달하기 위해 한층 더 심화되고 가열해지는, 또 다른 차원의 꿈에 관한 것이다. 이때의 꿈은 단순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이나 동경이
    “모든 것, 삶 전체가 그에게는 꿈과 예감이 되었다”

    현실 속 환상, 환상 속 현실의 세계를 그려낸
    꿈과 환상의 작가 E.T.A. 호프만의 대표 단편선!


    독일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E.T.A. 호프만의 소설집 [모래 사나이]가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로 새롭게 리뉴얼되어 출간되었다. 현실의 시공간을 신비와 몽상으로 가득 채우고, 환상이 현실이 되는 삶을 꿈꾸는 인물들을 그려낸 호프만은 “꿈과 환상의 작가”로 불리며, 도스토옙스키, 고골, 보들레르, 발자크, 포 등의 대문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바그너와 차이콥스키 등의 작곡가들에게도 예술적 영감을 주었다. [모래 사나이]는 그런 그의 작품들 중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세 편(「모래 사나이」 「적막한 집」 「장자 상속」)을 선별해 묶은 책으로, 낙관적이고 진취적인 계몽주의의 밝은 빛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인간의 어두운 내면과 의식적으로 간과되는 심리 현상을 예리하게 포착해내고 있다. 이성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이 시대에 우리가 작가 호프만을 특히 주목하는 이유다.
    호프만은 낮에는 법관으로, 밤에는 화가, 작곡가, 작가로 일하면서 열정적인 예술가의 삶을 살았다. 예술은 범속함을 신성함으로 바꿀 수 있고 황량한 삶을 아름다운 시로 만들 수 있지만, 예술가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허물어진 세계에서 혼란과 분열을 겪게 된다. 따라서 호프만의 작품은 대개 그러한 예술가의 운명을 그린 예술가 소설이며 운명비극이다.

    꿈, 환상, 예감, 비밀, 광기……
    이성의 밝은 빛 저편에 있는 어두운 심연을 살피는 날카로운 시선


    이 책의 표제작인 「모래 사나이」는 호프만의 작품들 중 가장 많이 회자되는 단편으로,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의 원작 소설이자 프로이트의 유명한 분석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소설 제목이기도 한 ‘모래 사나이’는 동화에 자주 등장하는 초자연적인 존재다. 작품 속 주인공 ‘나타나엘’은 어린 시절 유모에게서 모래 사나이에 얽힌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는 아주 나쁜 사람인데 자러 가지 않으려는 아이들에게 와서 눈에 모래를 한 줌 뿌린단다. 눈알이 피투성이가 되어 튀어나오면 모래 사나이는 그 눈알을 자루에 넣어서 자기 아이들에게 먹이려고 달나라로 돌아가지. 그의 아이들은 둥지에 사는데 올빼미처럼 끝이 구부러진 부리로 말 안 듣는 아이들의 눈을 쪼아 먹는단다.” (12~13쪽)

    이후 나타나엘은 아버지의 작업실에 찾아오는 변호사 ‘코펠리우스’를 모래 사나이라 믿으며, 그를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모래 사나이에 대한 공포는 성인이 된 뒤에도 ‘눈’이나 코펠리우스를 연상케 하는 사건을 겪을 때마다 생생히 되살아나며, 종국에는 나타나엘을 광기로 몰고 간다. 광기는 공포와 함께 호프만이 일생에 걸쳐 깊이 천착한 주제다. 평생 미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린 그는 “광기에 대해 광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두번째 수록작 「적막한 집」은 「모래 사나이」와 많은 점에서 유사하다. 유년기 체험에서 유발된 공포가 광적인 상상으로 인해 주인공 ‘테오도어’의 강박관념이 되고, 이탈리아 상인에게서 구입한 시각 기구인 거울이 환상과 마성의 도구가 되며,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여자의 눈에 이끌려 이성을 잃게 되는 등 「모래 사나이」에서처럼 고립되고 확대된 시선이 마성과 결합하여 주인공을 광기로 끌고 가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모래 사나이」와의 주된 차이점은, 나타나엘은 광기에 빠져 비참한 최후를 맞는 반면에 테오도어는 치유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력과 의사의 충고로 강박관념을 몰아내고, 마침내 영혼의 안정을 찾은 그는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려준다.
    세번째 수록작 「장자 상속」은 호프만 자신의 현실이 많이 투영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호프만과 마찬가지로 법관이면서 시인, 음악가인 소설의 주인공은 변호사로 일하는 작은할아버지를 따라 로시텐 성을 방문하고 이곳에서 기이한 사건을 경험한다. 과장된 사랑의 열정, 비밀스러운 살인, 유령의 등장, 우연, 다양한 사건 고리, 가문에 내려진 저
    “감추어진 욕망, 거의 예상치 못했던 욕망,
    가장 명징하고 가장 순수한 영혼의 한가운데에 있어도
    위험천만한 돌개바람에 휘말릴 수 있는 눈먼 욕망”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 원작 소설이자
    아르투어 슈니츨러 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대표작!


    안정되고 단란한 부부의 무의식에 잠재된 에로스적 욕망을 그린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대표작 [꿈의 노벨레](백종유 옮김)가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로 새롭게 리뉴얼되어 출간되었다. 슈니츨러 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걸작으로 손꼽히는 [꿈의 노벨레]에는 세기 전환기 빈에서 이상적인 가치로 여겨졌던 안정된 직장, 행복한 가정, 시민사회의 규범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부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남편은 현실에서, 아내는 꿈속에서 내면적 욕구를 자극하는 에로스의 모험을 겪는다.
    오스트리아 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는 히스테리와 최면 등 인간의 무의식과 심리를 다루는 정신의학 분야에 관심을 가졌는데, 이러한 관심은 그의 문학에서도 잘 드러난다. ‘내적 독백’과 같은 혁신적인 서사 기법을 통해 인간의 은밀한 내면과 무의식을 여과 없이 이끌어내며, 프로이트로부터 ‘심층 심리의 탐구자’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작가로 성공하여 부와 명성을 얻기도 하지만 도박과 낭비로 수차례 어려움을 자초했고, 젊은 시절의 여성 편력은 카사노바의 환락과 모험을 옮겨놓은 듯했다. 슈니츨러는 14세 때부터 죽는 날까지, 처음 3년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쓴 것으로도 유명한데 정신과 의사가 병든 영혼을 대하듯 자신의 내면을 기록했다. 이렇듯 슈니츨러 문학은 자신의 체험과 내면을 생체 해부하듯이 관찰하고 진단해낸 결과이고, 이를 통해 그가 말하는 메시지는 모든 양상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자는 것이었다.

    “우리 사이에 한 자루의 칼”
    에로스적 충동과 결혼 제도 간의 팽팽한 줄다리기


    주인공인 남편 ‘프리돌린’은 “유능하면서도 성실하고 전도양양한 의사”로서 “최고의 남편감”이며, 그의 아내 ‘알베르티네’는 “천사와 같은 눈빛에 가정주부의 자태와 모성”이 흘러넘친다. 남편은 보다 안락한 삶을 위해 온종일 진료에 매달리고, 남편 못지않게 아내도 집안일로 쉴 틈이 없다. 부부의 행복한 결혼 생활은 남편의 안정된 직장과 아내의 헌신이 그 전제다.
    소설은 하루의 일과를 마친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동화책을 읽는 총명한 딸아이, 아이의 이마를 쓰다듬는 부모의 손길, 남편과 아내가 주고받는 부드러운 미소, 붉은 등불은 행복한 가정의 상징이다. 아이가 잠든 후, 부부는 지난밤 가면무도회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잡담을 나누다가 점점 더 진지한 대화로 빠져든다. “감추어진 욕망, 거의 예상치 못했던 욕망, 가장 명징하고 가장 순수한 영혼의 한가운데에 있어도 위험천만한 돌개바람에 휘말릴 수 있는 눈먼 욕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두 사람의 대화는 비밀스러운 영역에까지 이르게 되고 결국 남편은 현실에서, 아내는 꿈속에서 에로스의 모험에 몸을 던진다.
    [꿈의 노벨레]에는 부부가 겪는 에로스의 체험이 대칭적으로 나타난다. 남편의 경우 에로스적 체험이 공공연한 현실 세계의 것인 데 반해, 아내의 경우에는 그것이 내면의 의식 또는 꿈의 세계라는 점이 흥미롭다. 덴마크 해변의 휴양지에서 프리돌린은 우연히 마주친 나체의 소녀를 향해 손을 내밀지만, 알베르티네는 젊은 장교에게 먼저 손을 내밀 수 없고 오로지 상상 속에서만 그에게 접근할 수 있다. 알베르티네의 꿈속에서, 사회적 동반자로서의 남편과 성적인 파트너로서의 남자는 완전히 분리되어 별개의 인물로 나타난다. 그녀의 꿈에 등장하는 프리돌린은 마땅히 성실한 남편의 책무를 다해야 하고 그 결과는 죽음이다. 남편이 온갖 위험을 무릅쓰는 동안 뭇 남성들과의 에로스를 즐기는 알베르티네는, 프리돌린이 사형을 당하는 순간에도 “할 수 있는 한, 날카롭고 큰 소리로” 비웃음을 보낼 뿐이다. 프리돌린도 비밀리에 열린 에로스의 가면무도회에 참석하지만, 그 모험은 성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신분이 발각될 위기에 처한
    “여하튼 사랑, 그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다”

    정형화된 예술에서 탈피하여 진정한 예술을 이루기 위한 새로운 시도로
    당대 문학에 혁명적인 영향을 끼친 사뮈엘 베케트의 대표 단편선!


    우리에게 [고도를 기다리며]로 잘 알려진 사뮈엘 베케트의 소설집 [첫사랑](전승화 옮김)이 새롭게 리뉴얼된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는 전후 부조리극의 고전이라 일컬어지며 베케트를 일약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베케트는 희곡뿐만 아니라 소설, 시, 라디오와 텔레비전 드라마, 시나리오, 평론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 세계를 구축했다. 그중에서도 ‘소설’은 베케트에게 특별하다고 할 수 있는데, 게슈타포에 쫓기면서 정신적 안정을 찾기 위해 쓰기 시작한 것이 소설이었으며 창작의 고통 때문에 한동안 집필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도 소설이었다.
    [첫사랑]은 아일랜드인인 베케트가 모국어인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작품을 쓰기 시작한 1946년의 단편들(「첫사랑」 「추방자」 「진정제」 「끝」)을 묶은 책이다. 베케트가 지향하는 글쓰기는 무지와 무능, 결핍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으로, 그에 적합한 언어가 바로 프랑스어였다. 이후부터 베케트는 영어와 프랑스어로 번갈아 글을 쓰면서 본격적인 이중 언어 작가의 길을 걷게 되고, 영어로 쓴 작품은 프랑스어로, 프랑스어로 쓴 작품은 영어로 직접 번역하여 방대한 서가를 이루기도 했다. 베케트의 초기 단편들을 묶은 이 책은 이후에 쓰인 다른 작품들보다 내용적‧형식적인 난해함이 덜하나, ‘반-주인공’이라고 불리는 방랑하는 주인공, 주인공이자 화자, 문장부호의 활용, 영어식 표현, 낯선 글쓰기, 패러디, 구어체 등 그의 전 작품에서 반복되는 독특한 특성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먼저, 표제작인 단편 「첫사랑」은 이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에서 그 제목을 차용한 것으로 패러디의 암시를 주는 작품이다. 첫사랑, 이 단어가 갖는 울림과 환상의 힘은 얼마나 대단한지! 베케트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클리셰를 패러디하여 익숙한 표현과 의미를 낯설게 만들고 관습화된 가치를 추락시키면서 편견을 깨는 일이었다. 실제로 이 작품에서 ‘첫사랑’이라는 단어가 주는 향수와 이상화된 가치는 가차 없이 파괴되고 있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는 사랑을 추방으로 정의하고(“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고향에서 때때로 보내오는 그림엽서나 받아보는, 그런 추방이다”), 똥 덩어리 위에다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적음으로써 성스럽고 순결한 사랑을 모독하는 행위도 한다. 그런데 과연 그것을 모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것이 가장 현실에 가까운 사랑의 행위가 아닐까? 「첫사랑」은 이렇듯 우리가 사랑에 대해 갖는 편견을 여지없이 깨뜨리며,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왜곡되고 은폐되어 있던 우리의 견고한 위선에 균열을 일으키는 작품이다.
    「추방자」는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가 어느 건물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다가 밖으로 내동댕이쳐지며 추방당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아버지가 사준 모자, 관처럼 생긴 마차, 램프의 불, 말의 시선, 주인공의 머리에 난 종기, 마부가 준 성냥 그리고 마부와 마부의 부인 등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나’가 어떤 식으로 어떤 범주에서 추방당하는지 알려주는 단서들이다. 예컨대 아버지가 사준 모자는 평범한 또래 집단의 범주에 ‘나’가 속할 수 없게 만들고, 착취당하는 말과 그 말의 시선은 ‘나’를 인간의 범주와 가축의 범주에서 방황하게 만든다. 램프의 불과 성냥은 문명의 삶으로부터 추방당하는 ‘나’를 보여준다. 이렇듯 각각의 소재는 다양한 범주에서 추방당하고 추락하는 주인공을 나타내는데, 이러한 추방과 추락은 베케트 작품의 특성 중 하나인 부조리한 삶의 한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진정제」는 “이제는 내가 언제 죽었는지 모르겠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죽음과 삶의 경계가 무너진 지점에서 공포에 사로잡힌 ‘나’는 그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야기를 하는데, 그 이야기 역시 사실과 허구, 과거와 현재의 경계가 무너진 지점에 있다. 중심도 지닐 수도 없어서 주인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나’는 모자의 주인을 찾을 수 없다.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그와 똑같은 모자를 이미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쳐서 집으로 돌아와 모자를 쓰고 그 과정에 대한 글을 쓴다.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에서는 어떤 여자를 살해해서 옥살이를 하고 나온 미치광이가 자신이 죽인 여자의 옷을 기억처럼, 형벌처럼 뒤집어쓰고 겨울 거리를 돌아다닌다. 살인자의 삶이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자신은 극장에서 상연되는 연극이 비극인지 희극인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삶이 곧 연극이라는 오래된 비유대로 극장 안에서나 극장 밖에서나 연극이 상연되고 있다. 그리고 삶은, 세계는, 희극이라고 끝맺는다.
    「야우레크」에 등장하는 채석장과 돌무더기는 시시포스나 강제수용소에서의 중노동을 연상시킨다. 주인공은 채석장으로 올 때 결심한 계획을 실행하지도 못하고 그곳을 떠나지도 못하는데, 그래서 채석장에서의 체류는 종신형이다. 소통 단절과 비인간적인 음울한 관계 속에서 계속 살아가야만 하는 그는 무력감에 빠져 우스갯소리만 만들어낸다. 작품 속 주인공의 불행의 원인, 복수의 대상은 모두 수수께끼로만 존재하며, 그의 삶의 목표였던 복수극은 아무도 웃지 않는 코미디에 자리를 내주었다.
    베른하르트의 작품에는 숲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거나 죽는 사람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러한 숲의 혼란은 곧 내면의 혼란을 상징한다. 「프랑스 대사관 문정관」의 등장인물도 숲에서 죽음을 맞이하는데, 그가 자살했는지 살해당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주인공과 독자 모두 숲의 어둠, 존재의 암흑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따름이다.
    「인스브루크 상인 아들의 범죄」에 등장하는 무자비한 부모, 악의에 찬 가족 등 끔찍한 혈족에 관한 묘사는 베른하르트의 작품의 단골 소재다. 비극적인 유년의 기억을 가진 화자와 게오르크는 빈에서 만나 그들의 잃어버린 유년기를 되새긴다. 그들에게 빈은 유배지이며 거대한 묘지다. 게오르크는 유년의 기억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자살하지만, 가족들은 그의 슬픈 운명을 범죄로 단죄한다.
    「목수」는 감옥에서 석방된 지 얼마 안 된 목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처음에 그는 난폭하고 공격적인 성향의 범죄자로 묘사되지만, 사실은 비정하고 굴욕스러운 상황의 희생자이며 삶의 조건 자체가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밝혀진다. 변호사는 세상 자체가 난폭하고 비열하기 때문에 범죄자는 환경의 산물이라고 생각하지만, 목수는 삶에 대한 어떠한 환상도 착각도 품지 않는다. 독자들은 앞으로도 목수가 사회적 소외 속에서, 절망 속에서, 폭력의 악순환 속에서 계속 살아가리라는 예감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슈틸프스의 미들랜드」에 등장하는 슈틸프스의 상속인들은 이미 복구할 수 없게 되어버린 농장을 복구하지 않은 채로 일상을 살아간다. 고의적으로 예술적 유산인 가구와 그림이 썩어가도록 방치하고, 도서관을 폐쇄한 다음 그 열쇠를 강물에 던져버린다. 갖가지 자살 방법이 나열되고, 절망과 무력감에서, 자신들도 웃기는커녕 지겨워하는 음산한 유머를 되풀이한다. 그들의 삶은 자살이나 죽음으로 끝맺음 되지 않지만, 고통의 끝이 영원히 반복되는 미래로 연기되기에 더욱 절망적이다.
    「비옷」은 아들을 두려워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오스트리아의 전통과 누대의 작업을 해체하고 파괴하는 아들, 해체와 파괴를 두려워하는 부모 세대, 부모와 자식 간의 소통 불가능성이 작품의 주제다. 또한 베른하르트의 작품에는 죽은 자의 유물을 가짐으로써 그 운명을 되풀이하는 인물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글에서도 투신자살한 사람의 유물인, 강에서 주워 올린 비옷이 그 옷을 입은 사람에게 운명이 된다.
    「오르틀러에서」는 예술가와 과학자인 두 형제가 중년이 되어 휴식을 취할 목적으로 부모의 유산인 오르틀러 농장으로 향하는 동안 일어나는 사건과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농장으로 올라갈수록 그들은 점점 더 유년기의 기억에 압도된다. 오르틀러는 부모의 무자비함에 쫓기던 유년기의 기억과 삶에 대한 비탄, 원한을 되짚는 도정이며, 그곳이 치명적인 장소임을 형제는 알고 있
    라는 뜻이 아니라, 말 그대로의 꿈이며 환상이며 착란이 된다. [오렐리아]는 흔히 네르발의 광기의 기록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내용이 그가 이전에 쓴 작품들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은 그의 광기가 갖는 독특한 성격을 시사해준다. 즉, 그에게 광기란 자신의 주관적인 세계를 극단적으로 추구한 결과이며, 말하자면 일종의 각성된 꿈과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실비」가 겉보기만큼 단순하거나 ‘투명’하지 않다는 것, [오렐리아]가 그저 광기의 두서없는 기록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면서 이 두 작품을 이어주는 깊은 일관성을 감지하게 될 것이다.
    주 등은 고딕소설의 전형적인 구조다. 그러나 앞선 두 작품과 달리 이 소설에서는 알 수 없는 어두운 힘이 운명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시기, 교만, 증오, 복수심, 물욕, 권력욕 등 인간의 성격과 행동이 불행을 초래한다. 음울하고 통속적인 공포 소설의 소재에 비밀스러운 암시와 작은 예시 기법으로 긴장을 고조시키며 독자를 끝까지 붙잡아놓는 이 소설은, 정확한 성격 묘사와 정밀한 묘사 기법으로 사실주의 소설의 선구로 꼽힌다.
    다. 이때 정체 모를 여인이 스스로를 희생하여 ‘프리돌린’을 구하는데, 그 여인을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프리돌린은 그녀에게서 알베르티네의 얼굴을 무의식중에 떠올리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에로스의 파티에 참석한 여인과 자신을 위해 희생한 여인은 분리될 수 없는 한 사람임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건강한 남녀 공동체에서 에로스적 충동과 사회적 책임 의식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나 규범적인 결혼 제도가 이를 가르는 “한 자루의 칼”이 되면, 결혼에 의한 부부 관계는 서로 “죽이지는 않고 못 배길 원수” 사이가 되고 만다는 것을 이 작품은 단적으로 보여준다. 작품 말미에서 아침이 밝도록 남편의 모험 이야기를 듣던 아내는 “이제 우리는 정말 깨어났군. 앞으로 한동안은”이라고 말하며 남편을 깊이 끌어안는다. 그러나 뒤이은 그녀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결코 미래를 속단하지 마.” 부부란 에로스적 욕망과 사회적 책임 의식 사이에서 끊임없는 줄다리기를 이어가는 관계인 것이다.
    이 책에서 그려지는 안정된 직장, 행복한 가정, 규범적인 생활 등은 세기 전환기 유럽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 가정’의 단면도였다. 그러나 작품에 반영된 이상적 가치는 많은 부분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우리에게 결혼 생활, 나아가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 전반에 대한 의미심장한 화두를 던진다.
    이 되는 사건 없이 화자이자 주인공인 ‘나’의 여정으로만 이루어진 이 작품은, 부랑자라는 주인공의 처지와 특성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면서 집을 소유하고 있는 인물들과 주인공의 대비를 부각시킨다. 또한 데칼코마니 같은 구조를 통해 상대성 원리를 떠올리게 하는 속도와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며, 베케트 작품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전통적인 소설 작법과의 차이를 드러낸다.
    마지막 작품인 「끝」은 1946년에 집필된 단편들 중 가장 먼저 쓰인 작품으로 원래 제목은 「연속」이었다. 다른 단편들처럼 이 작품도 화자이자 주인공인 ‘나’가 쫓겨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마치 지금까지 읽은 단편들을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듯한 이 작품은 사실 이상의 모든 단편들의 시작이다. 베케트가 「연속」에서 「끝」이라는 상반된 의미로 제목을 수정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문학 세계에서 끝과 시작은 서로 구분되는 개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연대기적 시간에서 벗어나 있는 「진정제」에서 삶과 죽음이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닌 것처럼, 무한 반복을 전제하고 있는 베케트의 문학 세계에서는 어느 시점을 시작으로 하고 어느 시점을 끝으로 정할 수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베케트가 지향하는 글쓰기는 이해를 어렵게 만드는 글쓰기, 즉 무지를 드러낼 수 있는 글쓰기다. 문법에 어긋난 문장들, 뚜렷한 사건이 없는 이야기, 일관성 없는 화자의 서술, 자아의 분열 등 전통적인 소설 작법에서 벗어난 그의 글쓰기는, 우리에게 익숙한 독서라는 행위를 낯설게 만들어버린다. 베케트의 소설을 접하는 순간 독자와 작가, 작중인물은 서로 뒤엉키며, 독자들은 읽히지 않는 텍스트를 읽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함으로써 독서라기보다는 기실 창작에 가까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베케트의 텍스트를 경험하는 것은 예술 작업에 참여하는 것이고, 인생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며, 자기 자신을 관조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다. 형제는 온갖 불행을 상기시키는 곳을 마지막 도피처로 찾았으나, 오두막은 무너져 흩어진 채 돌무더기만 남아 있다.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나 돌아가는 길 모두 봉쇄되어 있다.

    목차

    두 명의 교사
    모자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
    야우레크
    프랑스 대사관 문정관
    인스부르크 상인 아들의 범죄
    목수
    슈틸프스의 미들랜드
    비옷
    오르틀러에서―고마고이에서 온 소식

    옮긴이의 말
    작가 연보

    모래 사나이
    적막한 집
    장자 상속

    옮긴이의 말
    작가 연보
    첫사랑
    추방자
    진정제


    옮긴이의 말
    작가 연보
    꿈의 노벨레

    옮긴이의 말
    작가 연보
    실비
    발루아의 추억

    1. 잃어버린 밤 | 2. 아드리엔느 | 3. 결심 | 4. 키테라 여행 | 5. 마을 | 6. 오티스 | 7. 샬리 | 8. 루아지의 무도회 | 9. 에름농빌 | 10. 키 큰 곱슬머리 | 11. 귀환 | 12. 도뒤 영감 | 13. 오렐리 | 14. 마지막 장

    오렐리아
    혹은 꿈과 삶

    제1부
    제2부

    옮긴이의 말
    작가 연보

    본문중에서

    그녀의 미소는 나를 무한한 행복감으로 가득 채웠으며, 그토록 부드러우면서도 낭랑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의 울림은 나를 기쁨과 사랑으로 전율케 했다. 그녀는 내가 바라는 모든 완벽함을 지니고 있었으며, 내 모든 열정과 내 모든 변덕에 그대로 화답해주었다.
    아래쪽에서 비치는 각광을 받을 때면 햇빛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각광이 내려지고 위쪽에서 비치는 샹들리에 불빛만으로 좀더 자연스럽게 보일 때면 밤처럼 창백하게, 어둠 속에서 자신의 아름다움만으로 빛나곤 했다. 마치 헤르쿨라네움 벽화들의 빛바랜 배경 가운데서 이마에 별을 달고 선연히 나타나는 시간의 여신들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 pp.9~10)

    극장의 여인에게 품었던 저 막연하고 희망 없는 사랑, 매일 저녁 연극이 시작되는 시간부터 잠자리에 드는 시간까지 나를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던 사랑의 근원은 아드리엔의 추억에, 창백한 달빛을 받아 피어난 밤의 꽃, 하얀 안개 서린 푸른 풀밭 위로 미끄러져 가던 장밋빛과 금빛의 환영에 있었던 것이다.
    (/ p.23)

    만일 내가 작가의 임무란 삶의 중대한 상황 가운데서 겪은 바를 성실하게 분석하는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면, 그리고 내가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목표를 스스로에게 부과하지 않는다면, 나는 여기서 쓰기를 멈추고, 그다음에 이어진 아마도 비이성적인, 혹은 속되게 말해 병적인 일련의 환상들을 묘사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 p.105)

    나는 내 마음에 드는 상념들을 좀더 확실히 간직하고 싶어서 주워 모은 숯이며 벽돌 조각을 가지고서 내게 떠오른 영상들을 그렸으며, 그런 프레스코화들로 얼마 안 가 벽을 뒤덮게 되었다. 하나의 얼굴이 항상 다른 것들을 지배했으니, 그것은 내 꿈에 나타났던 것처럼 여신의 모습으로 그려진 오렐리아의 얼굴이었다. 그녀의 발밑에는 바퀴가 돌고 있었고, 신들이 그녀를 수행하고 있었다. 나는 꽃이며 풀에서 즙을 짜내어 이런 그림에 색칠까지 했다. 그 소중한 우상 앞에서 나는 얼마나 무수히 꿈꾸었던가!
    (/ p.131)

    내가 처해 있던 정신 상태가 그저 사랑의 추억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교만이다. 무심결에나마, 나는 어리석게 탕진해버린 삶에 대한 보다 중대한 회한을 사랑의 추억으로 치장하고 있었다는 편이 옳을 터이니, 내 지나간 삶에서는 자주 악이 승리했고, 나는 불행의 타격들을 느끼고서야 비로소 과오들을 인정했던 것이다.
    (/ pp.169~170)

    친애하는 독자여! 다른 모든 것을 몰아내고 그대의 마음, 감각, 생각을 완전히 사로잡는 무언가를 경험해본 적이 있는가? 그럴 때 그대 안에 끓어넘치는 열정은 불이 붙어 피가 솟구치고 그대의 뺨은 붉게 물들어, 그대의 시선은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모습들을 허공에서 붙잡으려는 듯이 기이하며, 그대는 말을 하지 못한 채 슬픈 한숨만 지을 것이다. 그때 친구들은 그대에게 물을 것이다.
    “왜 그래, 이 친구야. 무슨 일이야?”
    그러면 그대는 온갖 불타는 색채와 빛과 그림자로 휩싸인 내면의 형상을 말하려고, 적어도 시작이라도 하려고, 적당한 단어를 찾으려고 애쓸 것이다. 그리고 곧 첫마디로 그 모든 경이롭고 비범하고 놀랍고 재미있고 무서운 일을 단 한 번의 전기 충격처럼 적절하게 표현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어떤 단어도 그대에게는 색깔이 없고 얼어붙고 생명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리라. 그대는 찾고 또 찾지만 아무리 중얼거리고 더듬거려도 냉정한 친구들의 질문만 얼음같이 차가운 바람처럼 그대 안으로 파고들어 그대의 열정을 식히리라. 그러나 그대는 용감한 화가처럼 처음에는 몇 개의 대담한 선으로 그림의 윤곽을 그리고 그다음엔 좀더 쉽게 점점 빛나는 색깔을 칠하다 보면, 살아 있는 다양한 형상들의 혼란이 그대의 친구들을 사로잡게 되고 그들은 그대의 정서에서 나온 그림 한가운데에 그들 자신이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 pp.30~31)

    그때 나타나엘은 바닥에 피투성이가 된 채 뒹굴고 있는 눈알 두 개를 보았다. 그것은 나타나엘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스팔란차니는 다치지 않은 손으로 그것을 움켜잡아 나타나엘을 향해 던졌다. 눈알은 나타나엘의 가슴에 명중했다. 그 순간 불타는 발톱처럼 그를 사로잡은 광기가 내면에 파고들어 그의 이성과 사고력을 갈기갈기 찢었다.
    “휘, 휘, 휘! 불의 동그라미여, 불의 동그라미여! 돌아라. 불의 동그라미여, 신나게, 신나게! 나무 인형이여. 휘, 아름다운 나무 인형이여, 춤추어라!”
    (/ p.61)

    “도대체 일상적인 삶이라는 게 뭐지? 아, 코가 사방에 부딪히는 좁은 원 안에서 돌고 도는 것인데, 그런데도 사람들은 일상적인 일의 규칙적인 걸음에서 도약을 시도하려고 들지.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그 예지능력을 매우 탁월하게 갖고 있는 듯한 어떤 사람을 알고 있어. 그래서 그는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걸음걸이나 옷차림새, 목소리, 시선에서 어딘가 이상한 점을 찾으면 그들을 하루 종일 쫓아다니고, 고려할 가치도 없고 아무도 주의하지 않는 어떤 사건이나 행동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정반대되는 일들을 종합해서 아무도 생각지 않는 연관성을 상상해내곤 하지.”
    (/ pp.72~73)

    어느 날 거울이 흐린 것 같아 닦으려고 거울에 입김을 불었어. 그 순간 갑자기 맥박이 멈추고 황홀한 전율로 온몸이 떨렸지! 그래, 내 입김이 거울에 닿자 푸르스름한 안개 속에서 가슴을 에는 듯한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 아름다운 얼굴이 나타났을 때 엄습한 그 느낌을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어.
    (/ pp.94~95)

    “…… 때로는 사악한 악마까지도 즐거워할 만큼 기쁘고 유쾌한 순간에도 남작은 그의 삶을 파괴하고 내게도 해를 끼칠 어떤 불행이 일어나지 않을까 늘 두려워해요. 사람들은 장자 상속법을 만든 선조에 대해 이상한 이야기를 떠들어대죠. 난 이 성안에 숨겨져 있는 가족의 어두운 비밀이 무서운 유령처럼 소유자를 몰아내려고 하기 때문에, 그들은 짧은 기간 동안 난폭하고 떠들썩한 소란 속에서 지내는 것만이 가능할 뿐임을 잘 알아요. 그러나 난! 이 소란 속에서 얼마나 외로운지! 모든 벽에서 스며 나오는 기이함이 나를 얼마나 불안하게 만드는지!”
    (/ pp.170~171)
    그 당시에, 나는 여자들을 잘 몰랐다. 게다가 지금도 여전히 잘 모른다. 남자들도 그렇고,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안다고 할 수 있는 게, 내 고통들뿐이다. 나는 매일같이, 내 모든 고통을 생각하지만, 그 생각은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순식간에 사라지는데, 그렇다고 그 고통들이 전부 생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어찌 보면 나는 이것들도, 그러니까 내 고통들도 잘 모른다. 그건 필시 내가 고통 그 자체만은 아니라는 데서 기인한 일일 것이다. 야아 이렇게 교활할 수가 있나. 그래서 난 거기에서 떠나, 다른 행성의, 놀라움이 있는 곳까지, 찬미가 있는 곳까지 간다. 드문 일이지만, 그거면 충분하다. 바보가 아냐, 인생은.
    ( '첫사랑' 중에서/ pp.21~22)

    사랑이 당신들을 망친다는 것,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정확하게, 무슨 사랑을 말하는 걸까? 열정적인 사랑?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육감적인 사랑 하면 열정적인 사랑이지. 안 그래? 아니면 내가 다른 종류의 사랑과 혼동하고 있나? 사랑에는 정말 여러 종류가 있잖아, 그치? 상대적으로 아주 아름다운 사랑들도 있고 말이야, 안 그래? 예컨대 플라토닉 러브, 이게 방금 생각난 또 다른 종류의 사랑이다. 이 사랑은 사심 없는 사랑이다. 어쩌면 그녀에 대한 나의 사랑이야말로 플라토닉 러브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보긴 어렵다. 순수하고 사심 없이 그녀를 사랑했다면 암소가 싸지른 오래된 똥 덩어리들에다가 그녀의 이름을 썼겠는가? 더군다나 다 쓴 다음에 입에 넣고 쪽쪽 빨았던, 내 손가락으로?
    ( '첫사랑' 중에서/ p.26)

    새벽이 어슴푸레 밝아왔다.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되도록 빨리 밝은 곳으로 가려고, 어림잡아, 해 뜨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나는 바다의 수평선이나, 사막의 지평선을 원했어야 했다. 내가 밖에 있을 때면, 아침에는, 태양을 맞이하러 가고, 저녁에는, 내가 밖에 있을 때면, 태양을 따라, 망자들의 집에까지 간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다. 얼마든지 다른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는데. 어쩌면 다음번에는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자들이여, 그대들은 그 이야기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걸 보게 될 거다.
    ( '추방자' 중에서/ p.74)

    그러다가 마침내, 황소처럼, 무릎을 먼저 털썩 꿇은 다음, 앞으로 엎어지면서, 쓰러지기 직전에, 나는 군중들 가운데 있었다. 나는 의식을 잃지는 않았는데, 내가, 내가 의식을 잃게 된다면 그건 의식을 도로 되찾기 위해서는 아닐 거다. 사람들의 배려는 분명 감동적이었다, 나를 밟고 지나가는 일은 가능한 한 피하면서도, 나한테 주의를 기울이지는 않았는데, 바로 그 맛에 내가 나왔던 거다. 인간들의 발아래서, 밤과 고요함에 잔뜩 젖어도, 만일 날이 밝는다면 빛의 심연의 밑바닥에서도, 나는 잘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 피곤해서 적절한 말을 찾을 수가 없다, 그래 지체 없이 원래대로 돌아왔고, 군중들이 물러가면서, 빛이 돌아온 덕에, 조금 전에 경탄을 불러일으켰던 바로 그 빈터로 내가 돌아와 있는지 알려고 아스팔트에서 굳이 고개를 들 필요가 없었다. 친근해진 아니면 적어도 아무 감정 없는 그 포석에 누운 채, 여기 그냥 있어, 나는 말했다, 눈을 뜨지 마, 사마리아인이 오기를, 아니면 날이 밝기를 그래서 경찰관들이 아니면 또 알아 어느 구세군이 오기를 기다려. 그런데 참 나는 또다시 일어나더니, 계속해서 오르막길인 대로를 따라, 내 길도 아닌 길을 또 가기 시작했다.
    ( '진정제' 중에서/ p.105)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거기에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단언컨대, 나는 내 상자 안에서 잘 있었다. 이제는 그 누구도 내가 잘 지내는지 필요한 게 없는지 물어보러 오지 않았고, 올 수도 없었다는 사실에, 나는 그렇게 속상하지는 않았다. 나는 잘 지냈다, 그렇고말고, 완전히 잘 지냈지, 그리고 상태가 더 나빠지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도 거의 느끼지 않았다. 필수품에 관해서는, 말하자면 내 수준에 맞게 줄였는데, 당시 관점에서 봤을 때는, 그 어떤 구호품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질적으로 매우 우수했다. 부지불식간에, 아무리 어설프고 허망하게 존재했더라도, 내
    “우린 분명 눈길이 마주쳤었지. 그 남잔 미소를 짓지 않았어. 아니 오히려 표정이 어두워진 것처럼 보였는데, 내 표정도 분명 비슷했을 거야. 내 마음이 그렇게 흔들린 건 생전 처음이었으니까. 난 꿈속을 헤매며 온종일 해변에 누워 있었지. 그 남자가 날 불러준다면 난 뿌리칠 수 없었을 거야. 그 당시 내 생각으론 확실했어. 모든 걸 다 각오하고 있었지. 당신, 아이, 나의 미래, 모두 내던질 생각이었으니까, 마음의 결정을 내린 거나 마찬가지였지. 그런데 동시에 말이야. 당신이 이런 내 마음을 알기나 할까? 당신은 내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소중했어. 바로 그날 오후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당신도 분명 기억할 거야. 우린, 운명을 따라야 한다는 듯이 온갖 잡다한 일들을 정말 두서없이 주절거렸어. 우리가 함께할 미래, 그리고 아이에 대해서도.”
    (/ pp.12~13)

    “우리는 아마 10초 동안 입을 반쯤 벌린 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어. 엉겁결에 난 그녀에게 손을 뻗었지, 그녀의 눈에서 헌신과 환희의 빛을 읽을 수 있었어. 그런데 갑자기 그 여자아이는 머리를 세차게 도리질하더니 팔 하나를 벽에서 떼어내 손짓으로 그곳을 떠나라고 명령했어. 그리고 내가 뜸을 들이며 곧바로 움직일 생각을 않자, 그녀의 어린애 같은 두 눈에 몸을 돌릴 수밖에 없을 만큼 절박한 부탁과 애원의 빛이 어리는 것이었어. 난 가능한 한 재빨리 내 길을 계속 갔어.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어. 그러나 그건 말이야, 그녀를 배려해서도 아니고 그녀의 명령에 순종해서도 아니야. 그렇다고 무슨 기사도 정신에서 그랬던 것도 아니야. 그 이유는 단지, 그 아이의 마지막 눈빛에서 내가 여태껏 체험한 그 모든 걸 뛰어넘는 흔들림을 느꼈기 때문에 난 민절해서 쓰러질 뻔했어.”
    (/ pp.16~17)

    그는 서둘러 계단을 내려섰다. 그리고 특별히 서두르지 않고 종합병원으로 갔다. 우선 집으로 전화를 해서 자신에게 넘겨진 환자가 있는지, 우편물이 왔는지, 그 밖에 무슨 새로운 일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하녀가 채 대답을 마치기도 전에 알베르티네가 직접 전화를 받아 프리돌린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하녀가 이미 말한 것을 모두 반복하더니 천연덕스럽게 자신은 조금 전에 일어났고, 아이와 함께 이제 막 아침 식사를 하려던 참이라고 말했다. “아이에게 아빠가 뽀뽀하더라고 전해줘.” 이어서 프리돌린은 “맛있게 먹어”라고 덧붙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그를 기쁘게 해주었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재빨리 전화를 끊었다. 그는 원래 알베르티네에게 오늘 오전에 무엇을 할 생각인지도 물어볼 작정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지금 자신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외면적인 생활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유지된다 하더라도 그의 영혼 깊은 곳에서 그녀와의 관계는 이미 끝나지 않았던가.
    (/ p.117)

    인적이 끊긴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 그는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스물네 시간 전과 마찬가지로 진찰실에서 옷을 벗고, 몇 분이 지나서 가능한 한 소리를 내지 않고 부부 침실에 발을 들여놓았다.
    알베르티네의 편안하고 고른 숨소리가 들렸고, 포근한 베개 위에는 그녀의 머리 윤곽이 뚜렷이 드러나 있었다. 애정의 감정, 아늑하고 포근한 감정…… 자신이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그런 감정들이 갑자기 그의 가슴속에 치밀어 올랐다.
    (/ p.155)

    그는 그녀 곁에 몸을 길게 뻗고 누워 그녀 얼굴 위로 몸을 숙이고, 미동도 없는 그녀의 얼굴에서 해맑고 커다란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그 눈동자 위로 이제 막 솟구쳐 오르는 아침 햇살이 비치는 것 같았다. 그는 의혹에 빠져 주저했지만, 동시에 희망을 가득 안고 그녀에게 물었다.
    “알베르티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잠깐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우리의 운명에 감사해야겠지, 그 모든 모험으로부터 우린 무사히 빠져나왔잖아. 현실에서의 모험 그리고 꿈속에서의 모험, 이 두 가지에서 모두.”
    (/ pp.157~158)
    “나는 평생 끔찍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끔찍한 삶을 사는 것은 나의 권리입니다. 그리고 이 끔찍한 삶은 나의 불면증입니다…… 하지만 이제 내가 인스브루크 학교를 그만두게 된 이야기를 하지요. 나의 모든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이 이야기도 내가 잠을 자지 못한다는 사실로 시작됩니다. 나는 잠들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방법을 시도해보았지만 어떤 방법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북쪽 강기슭을 따라 여러 시간 동안 달렸습니다. 모두 피곤했죠. 책을 읽음으로써 불면증에 대한 생각을 잊어보려고도 했지만 그러지도 못하고 눈을 뜬 채 평생 불면증에 내던져져 한 가지 생각에만 맹렬하게 사로잡혀 계속 혼잣말을 합니다. 학생들은 잠잔다, 나는 잠자지 못한다, 저들은 잠잔다, 나는 잠들지 못한다, 나는 잠들지 못한다, 저들은 잠잔다, 나는 잠들지 못한다……”
    ( '두 명의 교사' 중에서/ pp.11~12)

    모자를 쓴 나를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그곳을 뒤덮은 어둠, 산골 전체에 깔린, 산골 전체와 호수의 물 위에까지 온통 뒤덮인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모자를 쓴 나를 본다면 내가 푸주한이나, 나무꾼이나, 농부인 줄로 생각할 것이다. 사람들은 옷차림, 모자, 외투, 신발 등을 보고 얼른 판단해버리고, 얼굴이나 걸음걸이, 머리를 움직이는 모양 등은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옷차림에만 주의하고, 입고 있는 저고리나 바지와 신발, 그리고 물론 무엇보다도 그 사람이 쓰고 있는 모자만을 본다. 그러므로 이 모자를 쓰고 있는 나를 보는 사람에게 나는 푸주한이나 나무꾼이나 농부인 것이다. 그러므로 푸주한도 나무꾼도 농부도 아닌 내게는 이 모자를 머리에 쓰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이고 기만행위다! 법률 위반이다!
    ( '모자' 중에서/ p.30)

    그러나 나는 절망적인 삶을 산다는 게 우스꽝스러운 일이라는 것도 안다. 절망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깨닫는 것만도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절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럽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사용하는 모든 단어가 갑자기 우스꽝스러워진다…… 하지만 핵심에서 벗어나지 않겠다. 우스꽝스럽든 아니든 내 삶은 절망적이다. 야우레크 채석장에는 절망한 존재들만 있듯이, 절망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듯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삶과 마찬가지로 나의 삶도 야우레크 채석장의 상황에 맞게 무감각해지고 아무 욕구도 없어졌다…… 나는 절망하지만 절망해서는 안 된다고 자신에게 말한다. 원칙적으로, 근본적으로, 나는 늘 절망하고 있지만 절망해서는 안 된다……
    ( '야우레크' 중에서/ p.60)

    누구나 범죄를 저지른다, 아주 큰 범죄를 저지른다, 하지만 대개의 범죄는 들키지 않고 재판도 받지 않고 처벌도 받지 않는다. 범죄는 병리 현상이다. 자연은 끊임없이 온갖 범죄를 야기한다. 그중에는 인간에 대한 범죄도 있다. 자연은 범죄를 정당한 듯이 저지른다. 모든 게 언제나 자연 속에서, 자연으로부터 나온다. 자연은 본질적으로 범죄적 성향을 갖고 있다.
    ( '목수' 중에서/ p.116)

    우리의 운명은 슈틸프스다, 영원한 고독이다. 사실 가끔 우리를 방문하는 이른바 반가운 사람들의 수는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밖에 안 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 반가운 사람들도 우리를 방문할까 봐 두려워한다. 우리를 방문할지도 모르는 모든 사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우리를 방문해서―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비인간적인 사람일지라도! 하고 얼마나 자주 생각하는지 모른다―우리의 산 위에서의 고문, 평생에 걸친 숙제, 우리의 고독한 지옥을 중단시켜주기를 몹시 간절하게 기대하면서도, 도대체 누군가가 갑자기 우리를 방문할까 봐 무척 두려워하게 됐다.
    ( '슈틸프스의 미들랜드' 중에서/ p.116)

    우리는 사람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었어. 부모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항상 부모님과 함께 있었어. 도시를 증오했기 때문에 도시로 갔지. 오르틀러를 싫어했기 때문에 오르틀러에 올라갔어. 나는 곡예를 싫어하기 때문에 곡예를 했고, 너는 학문을 싫어하기 때문에 학문 연구를 하지. 넌 대기층과 관련된 모든 것,
    그에 관해 쓰인 모든 것을 혐오하기 때문에 대기층에 대한 연구를 하지, 하고 형은 말했습니다. 결국 지쳤어, 피로뿐이야, 그리고 시간표에 따라 정시에 출발하는 기차에 대한 공포. 정신적 공포. 그리고 극도의 무자비함, 극도의 무자비함, 하고 형은 말했습니다.
    ( '오르틀러에서' 중에서/ p.211)
    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느끼는 일은, 옛날 같았으면 나를 감동시키는 선물이었다. 누구나 미개한 존재로 변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자신이 제정신인지 가끔씩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 '끝' 중에서/ pp.142~43)

    저자소개

    사뮈엘 베케트(Samuel Beckett)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06.03.13~1989.12.22
    출생지 아일랜드 더블린
    출간도서 15종
    판매수 11,518권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생애의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냈다. 희곡, 소설, 시, 비평 등 여러 분야에서 영어와 프랑스어로 글을 쓰고 자신의 작품을 직접 번역했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성공시키며 부조리극의 기수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1961년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국제출판인상을 공동수상하고, 1969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희곡뿐 아니라 라디오극과 텔레비전극 등을 집필하고 연출하며 평생 실험적인 작품활동에 전념했다. 20세기 가장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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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마스 베른하르트(Thomas Bernhard)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31.02.09~1989.02.12
    출생지 네덜란드 헤를렌
    출간도서 13종
    판매수 817권

    현대 독일어권 문학을 대표하는 문제 작가이며 세계 무대에서 브레히트와 더불어 가장 많이 공연되는 극작가다.
    1931년에 출생한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모국인 오스트리아와 특수한 관계에 있다. 이 관계는 베른하르트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시작되어 유년기에 형성된 자아와 이후 작가의 작품에서 뿌리 깊은 콤플렉스로 자리 잡는다. 1931년 미혼모였던 헤르타 베른하르트는 사생아 출산으로 부모에게 불명예를 안기지 않기 위해 고향 오스트리아를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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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T.A. 호프만(Ernst Theodor Amadeus Hoffmann)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776.01.24~1822.06.25
    출생지 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
    출간도서 26종
    판매수 8,711권

    독일 낭만주의의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이다. 그가 널리 명성을 얻은 이유는, 아마 환상적인 요소를 좀 더 어두운 리얼리즘과 결합함으로써 규제를 받지 않는 상상력이 병적인 정신에 끼치는 해로운 영향을 탐구한 중단편 소설들 때문일 것이다. 그의 중편소설 「샌드맨」은 들리브의 발레 <코펠리아>에 영향을 주었고,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은 차이코프스키의 두루 사랑받는 크리스마스 발레의 토대가 되었다.

    아르투어 슈니츨러(Arthur Schnitzler)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862~1931
    출생지 오스트리아 빈
    출간도서 22종
    판매수 1,181권

    아르투어 슈니츨러(1862∼1931)는 1885년에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빈 시립병원에서 일한다. 1886년부터 문학 잡지에 꾸준히 글을 발표한다. 1893년 아버지 요한 슈니츨러가 세상을 떠나 슈니츨러는 빈 종합병원을 떠나 개업한다. 아버지의 부재는 문학 창작에 마음 편히 집중할 수 있게 되는 전환점이 된다. 같은 해 단막극 연작 ≪아나톨(Anatol)≫이 출간된다. 1895년 베를린의 피셔 출판사에서 노벨레 ≪죽음(Sterben)≫이 출간된다. 같은 해 희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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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라르 드 네르발(Gerard de Nerval)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808~1855
    출생지 프랑스 파리
    출간도서 9종
    판매수 99권

    제라르 드 네르발은 1808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제라르 라브뤼니다. 1820년 샤를마뉴 고등학교에 입학해 시를 쓰기 시작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국민의 엘레지(Elegie nationale)], 풍자 희극 [아카데미 또는 만날 수 없는 회원(L’Academie ou les membres introuvables)]을 발표한다. 1827년 괴테의 [파우스트]를 번역한다. 작품을 집필하고 유럽 여행을 다니며 지내다 1841년 파리에서 광기 발작을 일으켰다. 1851년 이후 간헐적으로 정신병이 재발했으며, 1855년 파리에서 자살한 채로 발견됐다. 대표작으로 [실비], [산책과 추억], [불의 딸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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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서강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독문학을 전공했고,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대학교에서 독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 [현대 독일 소설의 경향][메이트 독한 사전](공저)이 있고, 논문으로는 [아루투어 슈니츨러와 선불교][슈니츨러 소설과 내적 독백의 기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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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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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강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본 대학에서 수학했다. 옮긴 책으로 카프카의 [심판], 페터 퓌츠의 [페터 한트케론], E.T.A. 호프만의 [모래사나이], 어슐러 구디너프의 [자연의 신성한 깊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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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강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본 대학에서 수학했다. 옮긴 책으로 카프카의 [심판], 페터 퓌츠의 [페터 한트케론], E.T.A. 호프만의 [모래사나이], 어슐러 구디너프의 [자연의 신성한 깊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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