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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부학 책 《그레이 아나토미》의 비밀

원제 : The Anat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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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빌 헤이스
  • 역 : 양병찬
  • 출판사 : 알마
  • 발행 : 2020년 03월 13일
  • 쪽수 : 384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59922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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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19세기 해부학자이자 화가인 한 남자의 일기장을 단서로,
    극단적 세 공간을 넘나들며 입체적으로 전개되는 경이로운 전기문학

    해부학 책 [그레이 아나토미]를 둘러싼 불가사의한 인물들의 삶과 행적,
    그리고 그 시대 의학 이야기를 담은 아름다운 과학 에세이이자
    해부학 실습과정에서 경험한 인체의 해부학적 지식과 인간에 관한 통찰을 담은 철학 에세이

    “[해부학자]는 모든 책꽂이에 비치될 만큼 값진 책이다.”
    - 올리버 색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부학 책 [그레이 아나토미Gray's Anatomy]를 둘러싼 미스터리


    〈그레이 아나토미〉는 시즌 16까지 이어지며 초유의 인기를 구가하는 드라마다. 이 ‘엄청난’ 의학 드라마의 제목은 그야말로 ‘엄청난’ 책 이름에서 유래한다. [그레이 아나토미]는 ‘제대로 공부한’ 의사라면 한 권쯤 서가 중심에 꽂혀 있는 의학교재의 고전이다. 1858년에 나와 한 번도 절판된 적 없는 전무후무한 스테디셀러 [그레이 아나토미]는 지금껏 발간된 영어로 된 책 중 가장 유명한 책이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부학 책으로 정평이 나있다.
    [해부학자]는 [그레이 아나토미]를 둘러싼 불가사의한 두 명의 헨리를 중심으로 미스터리를 풀어간다. 이 책을 집필한 헨리 그레이와 책에 해부학 삽화를 그린 헨리 반다이크 카터가 그들이다. 이 과정에서 저자 빌 헤이스는 ‘해부학’이라는 산을 만나고 그것을 넘기 위해 캘리포니아 대학 샌프란시스코 캠퍼스에서 해부학 실습 강좌를 네 학기나 청강하며 두 해부학자의 미스터리에 다가간다. 빌 헤이스가 프롤로그에서 밝히듯, 이 책의 키워드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해부학 책’이고 다른 하나는 (비록 아마추어일망정) ‘한 해부학도의 수련 과정’이다.
    책은 세 가지 주제로 전개된다. [그레이 아나토미]에 삽화를 그린 헨리 카터의 삶이 전면에 드러나며 전체를 끌고 간다. 독자는 마치 추리소설을 읽듯이 호기심과 긴장을 늦출 수 없을 것이다. 그 안에 해부학자이며 저자인 헨리 그레이의 삶이 홀로그램처럼 투영되면서 흥미는 배가된다.
    빌 헤이스는 160여 년 전에 살았던 [그레이 아나토미]의 저자와 삽화가인 두 헨리의 비범한 삶과 천재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인체를 바라보는 경이로운 관점을 제공하면서, 창의적인 전기의 새로운 장르를 연다.

    ‘해부학은 운명이다’란 말이 운명이 되다

    두 번째 주제는 인체해부학으로 약학과, 물리치료학과, 의학과 학생들과 함께 해부학 실습 강좌에 참여하면서 빌 헤이스 특유의 맛깔난 글쓰기가 생생하게 흐른다. 인간의 실존적 문제와 결부된 통찰로 해부학의 엄밀한 과학 지식을 서술하는 저자의 글솜씨는 그야말로 메스처럼 날카롭다.
    가령 그는 심장 해부 실습 경험을 이렇게 서술한다. “인간의 심장을 실제로 들여다보니, 그게 ‘감정의 중심’으로 알려진 과정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16세기 프랑스의 위대한 외과의사 앙브루아즈 파레는 심장을 일컬어 ‘영혼의 대저택,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기관, 생동감 넘치는 정신의 분수’라고 했다. 내가 보기에, 심장은 뭘 보거나 느끼거나 하지 않으며 그저 ‘터프한 근육질 펌프’일 뿐인 것 같다. (…) 그녀가 동방결절의 작동 메커니즘(동방결절 세포에서 전기신호가 발생하여, 심장 전체의 다른 세포들로 확산됨으로써 수축과 박동을 일으킨다)을 설명하는 동안, 나는 해부학과 메타포의 완벽한 만남에 감탄하여 황홀경에 빠진다. 인체에서 동방결절은 복장뼈 바로 아래, 즉 가슴의 사점dead center(정확한 기하학적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그곳은 우리가 공포감, 사랑, 고양감elation 등의 감정을 처음 실감하는 곳이다. 우리의 심장은 그곳에서부터 작동하고 쿵쾅거리고 요동치기 시작하니 말이다.”
    TMJ(측두하악관절temporalmandibular joint) 해부 실험에서는 자신이 앓고 있는 TMJ장애를 음파탐지기 삼아 멋지게 과제를 해결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모든 기관들이 제각기 작고 단정한 방을 하나씩 갖고 있다 보니, ‘저런 곳에서 어떻게 두통이 발생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품게 된다”, 또한 반쪽머리hemihead 해부 장면에서는 진지한 위트가 넘친다. “‘해부학은 운명이다’라고 한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말은 옳았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그렇게 이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해부학은 빌 헤이스 자신의 운명이 되어간다.

    아름다운 비가, 올리버 색스와의 인연

    [해부학자]의 세 번째 주제는 빌 헤이스 자신의 삶과 인연이다. 이것은 오롯이 이 책의 아름다운 문장과 행간에 실려 변주되어 흐른다. 책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세 공간을 넘나들며 인생의 핵심인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과 이별의 중심부를 향한다. 마치 심장을 들어내 모든 감정의 페이스메이커인 ‘동방결절’을 보여주듯. 눅눅하고 부산스런 해부학 실습실, 밝고 차분한 국립도서관 자료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인 19세기 두 헨리의 시대, 세 공간의 시간적 물리적 엇갈림은 동시에 현존하며 변주되다가 빌 헤이스 자신의 슬픈 경험을 통과해 인간의 삶과 죽음 너머로 반향되며 결말부를 맞는다.
    빌 헤이스는 해부학 실습과정에서 인체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질서와 조화를 보면서 삶이라는 기적을 목격한다. 모든 것이 바로 그 자신의 자리에 있음에 감동한다. 그러면서 막상 시신을 다루는 해부학이 죽음보다는 삶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란 사실을 발견한다. 반면 죽음을 가르쳐주는 것은 삶의 순간이며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책의 집필과정을 함께했던 삶의 파트너 스티브가 한 침대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봐야 했다. 그러면서 그는 삶이라고 하는 운동은 막상 맨 끝인 죽음을 향해 질주할 뿐이라고 고백한다.
    “‘끝’이라고? 그래, 맞다. 한 권의 책이 끝나고, 하나의 스토리가 끝나고, 하나의 인생도 끝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해부학에 대한 불타는 학구열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빌 헤이스의 이 문장은 두 헨리의 운명뿐 아니라, 빌 헤이스 자신에 대한 예언이기도 했다. [해부학자]는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과학자이자 저술가인 올리버 색스를 만나게 해준 책이기 때문이다.
    이번 출간을 기념해서 빌 헤이스는 한국 독자들을 위해 특별한 서문을 보내왔는데, 마지막에 그의 연인이자 신경학자인 올리버 색스와의 인연에 대해 밝히고 있어 그를 그리워하는 독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파트너 스티브의 죽음과 올리버 색스와의 인연은 2017년 발표한 그의 아름다운 에세이 [인섬니악 시티-뉴욕, 올리버 색스, 그리고 나]에서 자세하게 다뤄진다.

    추천사

    경이로운 작가 빌 헤이스는 두 명의 비범한 청년들—헨리 그레이와 헨리 반다이크 카터—에 대한 다층적 스토리를 완성했다. 그들은 1858년 사상 최고의 의학 교재 [그레이 아나토미]를 저술하여 의학사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16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 책은 의사, 해부학자, 미술가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며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부분적으로 비망록, 부분적으로 생물학 책, 부분적으로 ‘경이로운 인체여행’의 안내서인 [해부학자]는 모든 책꽂이에 비치될 만큼 값진 책이다. 첨언하건대, 만약 당신이 [그레이 아나토미]를 소장하고 있지 않다면, 빌 헤이스의 주목할 만한 설명은 당신으로 하여금 그 책을 사지 않고서 못 배기도록 만들 것이다.
    - 올리버 색스 / 신경학자, 작가

    빌 헤이스는 자서전인 동시에, 헨리 그레이의 전기인 동시에, 인체 해부 구조에 관한 과학 에세이인 동시에, 가슴이 무너지는 비가이기도 한 놀라운 책을 써냈다.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책이다.
    - 리처드 로드리게스 / [기억의 허기] 저자

    헤이스는 위대한 의학 교과서의 배후에 버티고 있는 불가사의한 인물들의 삶을 탐구함과 동시에, 메스처럼 예리한 ‘인체여행 안내서’를 선사한다.
    - "뉴욕타임스" 북 리뷰 편집자의 선택

    헤이스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음침한 거리’와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교정의 ‘햇살 쏟아지는 강의실’ 사이를 수시로 넘나든다.
    - "뉴요커"

    헤이스는 커다란 찬사와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 그는 인체를 이루는 650개의 근육과 206개의 뼈를 추적하며, “우리가 끔찍이 경이롭게 만들어졌으며, 해부 자체가 나름의 미학美學을 갖고 있음”을 증명했다.
    - "워싱턴 포스트"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모든 주제를 다룰 수 있는 희귀한 저자 중 한 명으로, 헤이스는 독자들로 하여금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투명함과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겸비한 산문散文을 이용하여, 헤이스는 진화가 빚어낸 두 가지 걸작(인체, 인체를 자세히 기술한 책)에 웅변적인 헌사獻辭를 바친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목차

    한국 독자들에게
    프롤로그

    1부..학생
    2부..화가
    3부..해부학자

    에필로그
    주요인물
    감사의 글
    참고 문헌
    찾아보기

    본문중에서

    [해부학자]를 집필한 경험은, 인체는 물론 미래의 파트너인 신경학자이자 작가인 올리버 색스를 알게 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2008년 [해부학자]가 발간되고 몇 달이 지났을 때, 나는 ‘닥터 색스’로부터 친필 편지를 받았다. 그는 편지에서 “당신의 책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출간을 축하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양친과 형 둘이 모두 의사이기 때문에, 너덜너덜한 [그레이 아나토미] 책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가정에서 성장했습니다”라고 부연했다.
    (/ p.10)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오로지 이 책을 쓰는 데 몰두했다. 이 책의 키워드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해부학 책’이고 다른 하나는 (비록 아마추어일망정) ‘한 해부학도의 수련 과정’이다. “해부학은 운명이다”라고 한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말은 옳았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 p.13)

    내가 그 책을 산 것은 순전히 도판 때문이었다. 군더더기 없는 근육, 뼈, 장기들이 마치 희귀한 곤충 표본처럼 세밀히 묘사된 수백 장의 그림에는 각 부위에 일일이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맨 처음 내 시선을 끈 것은 서점의 진열대 위에 놓여 있는 두꺼운 책의 표지 그림이었다. 그것은 한 남자의 옆얼굴이었는데, 완곡하게 말해서 안면은 온전하지만 목은 그렇지 않았다. 턱에서부터 빗장뼈collar bone(쇄골)에 이르는 피부가 없어서 몇 가닥의 근육들과 한 덩어리의 혈관이 그대로 드러났다.
    비록 섬뜩했지만, 나는 그 그림이 ‘어울리지 않게 아름답다’고 느꼈다. 남자는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 자세에는 매우 친근한 구석이 있었다. 머리의 디테일이 모두 드러나도록 목을 살짝 비틀며, 마치 “이리로 더욱 가까이 다가와 들여다보세요”라고 눈짓하는 것 같았다.
    (/ p.18)

    책 앞표지에 헨리 그레이Henry Gray라는 이름만 적혀 있을 뿐 뒤표지에 ‘저자 소개’가 없었다. 이상하게 여긴 나는 집에 있는 백과사전과 다른 참고 문헌들을 찾아봤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나는 필시 그 사람에 관한 전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공공도서관의 온라인 카탈로그를 검색했다. 아뿔싸. “검색어와 일치하는 항목이 존재하지 않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나오는 게 아닌가! 아마존은 물론, 희귀본을 곧잘 구해주는 것으로 유명한 국제고서적상연맹International league of antiquarian booksellers 웹사이트도 마찬가지였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레이 아나토미]는 가장 유명한 영어 책 중 하나로 널리 간주되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름을 아는 유일한 의학 서적이다.
    (/ p.19)

    “일반적으로, 우리는 시신의 손이나 얼굴을 바라볼 때 강렬한 인상을 받아요.” 그는 이렇게 말하며 신중하게 말을 잇는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정체성을 진정으로 드러내는 부분이 손이나 얼굴이기 때문이에요.” 다른 부위를 절개할 때는 금세 냉담하게 되지만, 시신의 눈이나 입을 볼 때는 그러기가 훨씬 더 어렵다. 예기치 않게 감정이 솟구칠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여러분은 간혹 특정 부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떼어낸 후, 어쩌면 반쯤 절개했을 때, 거즈 한 조각을 제거하자마자 문신이나 매니큐어 칠한 손톱을 보고 갑자기 얼어붙게 될 거예요.”
    (/ pp.32~33)

    몬디노 해부의 마지막 날, 시신 썩는 냄새가 해부극장에 진동하여 후각을 고문하는 수준에 이르렀을 것이다. 이 점을 배려한 볼로냐 대학교에서는 해부학과에 특별한 예산을 배정하여, 학생과 구경꾼에게 제공할 와인을 구입해 비치했다. (우리는 와인이 사람의 감각을 둔화시켰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시신 역시 알코올의 혜택을 볼 수 있었다. 해부학자들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알코올은 매우 훌륭한 방부제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만한 역사상 가장 섬뜩한 특권 한 가지가 있다. 볼로냐 대학교 학생들은 해부극장에 입장할 때 시신을 지참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설사 그런 경우일지라도, 학생들에게는 해부가 일절 허용되지 않았다.
    (/ pp.39~40)

    일기의 2페이지로 넘어갔을 때, 나는 카터가 방금 언급했던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그의 모습을 발견했다. 1848년 12월, 열일곱 살의 그는 의학교 1학년생이었다. 그때부터는 하루하루 적은 일기가 쌓여 몇 주, 몇 월, 몇 년치 일기장을 형성했다. 마이크로필름이 빙그르르 돌아가는 동안, 나는─마치 까마귀가 반짝이는 물체에 이끌리듯─간간이 멈춰 토막 이야기를 주워 모았다. (…) 가장 흥미로운 점은 1850년부터 그레이라는 이름이 ‘흰 종이에 까만 글씨’ 중 태반을 차지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것도 늘 아름다운 필기체로! 나는 내가 원해왔던 것─헨리 그레이가 카터의 일기 안에 살고 있음─을 발견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그 이상의 것이 있었다. H.V.가 제멋대로 뻗어나가며 페이지에 남긴 오솔길은 나를 성 조지 병원의 구불구불한 복도와 인근에 있는 키너턴 스트리트의 해부학 실습실로 인도할 뿐만 아니라, 한 재능 있는 과학자의 떨리는 심장 깊숙한 곳으로 가장 친밀하고 강력하게 이끌었다.
    (/ pp.54~55)

    인간의 심장을 실제로 들여다보니, 그게 ‘감정의 중심’으로 알려진 과정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16세기 프랑스의 위대한 외과의사 앙브루아즈 파레Ambroise Pare는 심장을 일컬어 “영혼의 대저택,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기관, 생동감 넘치는 정신의 분수”라고 했다. 내가 보기에, 심장은 뭘 보거나 느끼거나 하지 않으며 그저 ‘터프한 근육질 펌프’일 뿐인 것 같다. 그러나 속단하지 말고 잠깐만 기다리라. (…) 그녀가 동방결절의 작동 메커니즘(동방결절 세포에서 전기신호가 발생하여, 심장 전체의 다른 세포들로 확산됨으로써 수축과 박동을 일으킨다)을 설명하는 동안, 나는 해부학과 메타포의 완벽한 만남에 감탄하여 황홀경에 빠진다. 인체에서 동방결절은 복장뼈 바로 아래, 즉 가슴의 사점dead center(정확한 기하학적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그곳은 우리가 공포감, 사랑, 고양감elation 등의 감정을 처음 실감하는 곳이다. 우리의 심장은 그곳에서부터 작동하고 쿵쾅거리고 요동치기 시작하니 말이다. 고개를 드니, 에이미도 나와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 그녀와 나는 가슴에 손을 얹고 서서, 그 순간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 “모든 경이로움이 시작되는 곳이 바로 여기로구나!”
    (/ pp.61~62)

    겨울철이 되자 카터의 일기는 하룻밤 사이에 해부학 연대기로 탈바꿈했다. 그는 일주일의 대부분을 해부학 강의실에서 보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부검할 때 입수한 ‘기념품’─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이렇게 쓴다─을 집으로 가져와 해부하기도 했다. “두 개의 눈알을 얻었다.” 그는 어느 날 밤 이렇게 썼는데, 매우 흡족해하는 눈치였다. 마치 눈알을 하나밖에 얻지 못했다면 크게 실망했을 것처럼. “콩팥과 심장을 얻었다.” 다른 날에는 이렇게 썼다. 그리고 언젠가는 “뇌를 가져가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정중히 사양했다”라고 썼는데, 그가 기념품 증정을 마다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병원의 데드하우스Dead House, 즉 영안실에서도 각종 신체 부위를 얻었다. 그렇다고 해서 해부학에 대한 그의 열정이 병적이었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카터의 일기장을 읽는 것은 전력을 다해 지식을 추구하는 한 젊은이를 지켜보는 것과 같다. 실습실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수업을 빼먹는가 하면, 점심시간이 되어도 멈추지 않고 해부를 하다가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다
    (/ p.79)

    해부학 용어가 자체적으로 내장한 연상기호와 만날 때, 나는 그것을 좋아한다. 예컨대 ‘막창자꼬리’는 문자 그대로, 큰창자의 한 구석에 ‘꼬리’처럼 매달려 있다. 그러나 연상기호의 끝판왕은 다른 곳에 있으니, 막창자에서 한 뼘 떨어진 곳에는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기관─간liver─이 복강의 오른쪽 위를 메우고 있다. 시신 속에서 보든, 표본 받침대 위에 놓인 것을 보든 간은 감동적일 만큼 크고 부드러운 장면을 연출한다. (…) 플라톤은 4세기에 행한 자연과학과 우주론에 대한 대화에서, “간은 복부 내 기관들의 질서를 유지함으로써 영혼을 관리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고 주장했다. (…) 그로부터 6세기 후 갈레노스는 간을 ‘생명이 앉아 있는 자리’라고 불러, ‘간 =생명’이라는 개념의 원조가 되었다. 어원상으로 볼 때 간이라는 이름은 생명 또는 삶을 뜻하는 어근인 ‘라이프leip’에서 출발하여, 나중에 ‘리퍼lifer’로 되었다가 결국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리버liver’가 되었다.
    (/ p.90)

    나는 표본을 두 손으로 가만히 들어올리려다 생각보다 무거워 깜짝 놀란다. 전형적인 사람의 머리 무게는 대략 5.5킬로그램인데, 이건 9킬로그램짜리 덤벨에 가까운 느낌이 든다. 반쪽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거즈로 감싸야 하지만, 그에 앞서서 얼굴을 마주보기 위해 방향을 바꾼다. 꼭 감긴 눈 위에는 하얀색 눈썹이 무성하다. 만약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면, 인상적인 코의 소유자였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내 생각에, 이 사람은 경외감이 충만했던 사람(예를 들면 사상가이자 몽상가)이었을 것 같다. 주름 잡힌 피부로 보건대, 사망 당시 여든 살쯤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멋진 삶을 살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범죄자였을 수도 있고 의사였을 수도 있고, 어쩌면 범죄를 저지른 의사였을 수도 있다. 사실, 그건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을 것이다. 중요한 건 단 하나, 그가 자신의 몸을 기증함으로써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해부학을 배울 수 있게 해줬다는 사실이다. 나는 서둘러 거즈로 덮은 다음, 머리를 방부액 속에 조심스레 담근다. 그리고 뚜껑을 눌러 닫으려니 중저음 소리가 난다.
    (/ pp.104~105)

    “당신은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다.” 보조 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당신은 그걸 근거로 자신이 일반인보다 우월하다고 자부하는 모양인데, 거기까지는 인정한다. 그런데 그 능력을 지금껏 어떻게 사용했지?” 다음으로, 거울 속 그는 비도덕적 행동─거친 언사, 습관적 거짓말, 자제심 상실─과 1850년 1월 1일 빛을 발했던 불굴의 의지가 용두사미가 되었던 점을 맹비난한다. 카터의 자기비판은 평상시보다 가혹할 뿐만 아니라 훨씬 더 솔직하다. “당신의 마음은,” 그는 이렇게 썼다. “관능적인 환상에 늘 오염되어 있다, 특히 밤중에. 그리고 존 소여의 딸 메리와 주고받는 수작질은 학생으로서 부적절하다. 당신은 자신은 물론 그녀와 그녀의 부모를 기만하고 있다. 무엇보다 나쁜 것은 ‘적절한 결말’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뭐, 메리 소여라고? 정말?” 나는 위의 구절을 처음 읽었을 때 이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두 청춘 남녀가 종종 체스를 두는 관계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가 내적 갈등을 겪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희열감euphoria을 느꼈다. 다른 세기에 살았던 사람과의 라포르rapport가 갑자기 급변하며 한층 더 심오해짐을 느꼈다. 나를 신임한 그가 경계를 완전히 푸는 것 같았다.
    (/ pp.131~132)

    관절에 동력을 공급하는 것은 통상적으로 근육과 신경이다. 근육과 신경은 켈리의 몫인데, 그녀가 시신의 팔을 내전pronation시키자 우리 모두 어안이 벙벙해진다. 내전이란 아래팔을 회전시켜, 위를 바라보던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게 하는 운동을 말한다. 우리는 하루 종일 단 한 번도 의식하지 않고 내전 운동을 수도 없이 한다.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려고 손을 뒤집을 때를 생각해보라. 그러나 그런 단순한 운동의 내적 메커니즘을 살펴본다는 것은 매우 심오한 일이다. 켈리가 시신의 팔을 다시 내전시킨다. 한 번의 완벽한 운동에서 노뼈의 머리가 위팔뼈 위에서 회전하는 반면, 노뼈의 몸통은 자뼈 위에서 회전한다. 한편 켈리가 시신의 팔을 외전supination(내전의 정반대 운동)시키자, 노뼈와 자뼈의 상대적 위치가 우아하게 원상을 회복하며 손바닥이 다시 위를 향한다. 그런 ‘삶의 모습’이 시신에 잠시 머무는 장면을 보는 동안, ‘이 시신은 전혀 시체 같지 않다’는 경이로움이 나를 사로잡는다.
    (/ p.146)

    그레이는 ‘폭풍우 속의 피난항’과 같은 존재로, 늘 거기에 존재하며 폭풍우가 있든 없든 카터의 힘을 북돋았다. 그는 모든 것들을 (결코 쉽지않음에도 불구하고) 해결 가능한 것처럼 보이게 만듦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열심히 노력하도록 자극했다. 그러나 카터처럼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에게, 일상적인 롤모델과 귀감 paragon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리고 1853년 7월 25일, 헨리 그레이는 그 선을 넘은 것 같다. 그날 저녁, 카터는 친구에 대해 이렇게 쓴다. “그레이가 애슐리 쿠퍼 상을 탔다. 그것도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그는 약간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마치 ‘그레이가 어떻게 그 상을 탔을까’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러나 이내 경탄해 마지않는다. “총명한 친구 같으니라고.”
    300파운드의 상금과 함께, 그레이는 그보다 훨씬 더 엄청난 보상을 받게 된다. 그가 제출한 지라에 관한 논문이 런던에 있는 한 출판사의 관심을 끌어, 이듬해 단행본으로 출간될 계획이기 때문이다. 물론, 카터는 그레이의 승리를 약소하나마 공유한다. 왜냐하면 그 프로젝트를 위해 삽화를 그린 사람이 바로 카터이기 때문이다.
    (/ pp.175~176)

    만약 뼈가 바위처럼 딱딱하고, 불활성이고, 원시인들이 사용하던 석기처럼 생겼다고 생각한다면, 단단히 실수한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의 몸속에 존재하는 ‘진짜 뼈’는 신경섬유와 혈관이 가득 찬 역동적 조직이다. 그러므로 손상되면 아프고, 부러지면 피를 흘리며, 지속적으로 파괴 되고 구축된다. 그리고 벽화의 색조로 인기를 끄는 본 화이트bone white라는 색깔이 있지만, 그건 살아 있는 뼈의 색깔이 아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창백한 장미pale rose를 연상하라.
    (/ p.184)

    “이번 주는 성공적인 진료로 마감되었다.” 카터는 행복해 보였다. 부러진 다리를 고쳐주고 1파운드의 진료비를 받았으니 말이다. 그 환자는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다 카터에게까지 차례가 왔는데, 사람이 아니라 새─M.이라는 귀족 부인이 총애하는 멋쟁이새bullfinch─였다. 동물을 해부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것은 논외로 하고, 카터는 분해된 동물을 조립하는 데도 재능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이건 최소한 그의 일기장에서 받은 인상이지만, 그의 일기를 읽다 보면 때로는 그가 (의사가 아니라) 수의사로 훈련받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대학에서 바다코끼리에서부터 개, 말, 갑오징어에 이르기까지 그의 능숙한 메스질을 거치지 않은 동물이 없기 때문이다.
    (/ pp.200~201)

    그러다 보니 나는 턱을 지나치게 의식해왔는데, 난생처음으로 그 이점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마치 내 뺨에서 반사되는 음파처럼 덜거덕 소리가 (시신의 TMJ를 해부할 때 참고하기 위해 내 얼굴을 더듬는) 내 손을 안내하기 때문이다. 나는 귀밑샘parotid gland(이하선)과 귀밑샘관parotid duct을 잘라낸 다음, 강력한 씹기근육masticatory muscle(저작근)을 살며시 절개한다. 다음으로, 손가락으로 더듬고 메스의 날과 손잡이를 적절히 사용해가며 관절을 덮고 있는 근막층을 벗겨낸다. 그건 마치 마늘의 질긴 껍질을 여러 겹 벗기는 것처럼 지루하지만, 나는 ‘딱’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내는 데 완전히 몰입해 있다. 마치 해저를 샅샅이 뒤지는 수중 음파 탐지기처럼.
    두 시간쯤 지난 후, 나는 거의 완벽한 TMJ 표본을 노출시킨다. 거기에는 가장 섬세한 부속품 중 하나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은 옆머리뼈temporal bone(관자뼈)와 아래턱뼈 사이에서 일종의 완충장치 역할을 하는 미세한 연골원판cartilaginous disk이다. 이 판이 손상되거나 (나의 경우처럼) 마모되면 TMJ 장애가 일어난다. 해부대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 내 솜씨를 평가해보니, 크게 칭찬받아도 전혀 손색이 없어 보인다. “아름다워요.” 내 동료들이 진심으로 동의한다.
    (/ pp.211~212)

    그는 놀랍게도 이 마지막 시련을 헤쳐나가지만, 그러는 데 꼬박 4주가 걸린다. 마침내 그는 이렇게 쓴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몇 장의 그림을 처음으로 그렸다.”
    앞으로 360장을 더 그려야 한다. 카터에게 요구되는 작업량은 벅차기 이를 데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백과사전이나 다름없는 해부학 교재를 1년 반 이내에 완성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두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다툼과 의견 대립이 더 많이 부각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저자와 화가는 처음부터 ‘우리가 원하는 책’에 대한 강력한 비전을 공유한다. 역사가 루스 리처드슨Ruth Richardson이 [그레이 아나토미] 39판 서문에서 논평한 바와 같이, “두 사람 모두 ‘멋들어진 책’이나 ‘값비싼 책’을 만드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목적은 ‘우리의 제자들과 똑같은 처지에 놓인 학생들에게 가격이 적당하고 내용이 정확한 강의 교재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 그레이와 카터가 선호하는 판형은 15×24센티미터였는데, 그 정도면 가볍고 휴대하기 쉬워 학생들이 사용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출판사 측도 판형에 이의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판형이 클 경우 가성비가 높다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 책은 기획에서부터 판매에 이르기까지 용의주도하게 설계되었다.
    (/ pp.218~219)

    나는 3권에서 해답을 찾아낸다. 크기가 약 50퍼센트로 줄어들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퀘인의 그림은 첫눈에 카터의 것과 거의 같아 보인다. 그러나 뭔가 다른 점이 있는데, 그 점을 평가하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간단히 말해서, 카터의 그림은 (퀘인의 그림에 비해) 종이 위로 불룩 튀어나온 것처럼 보인다. 카터는 (‘선폭線幅 변화의 극대화’에서부터 ‘비스듬한 광원’에 이르기까지) 사용 가능한 기법을 총동원하여 3D 영상을 창조한 것이다. 퀘인은 해부된 각 층을 균일하게 보여준 데 반해, 카터는 피사체에 빛을 비춤으로써 등을 가로지르는 그림자의 미묘한 율동을 창조했다. 또한 카터는 땅딸막한 원본 그림을 상하로 잡아당겨 상반신을 크고 날씬하게 만듦으로써 볼륨을 강조했다. 이러한 조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그림을 “퀘인의 책에서 직접 복제했음”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복제 과정에서, 스물다섯 살짜리 청년은 자신만의 독특한 미학을 가미했다.
    (/ p.225)

    나를 곤한 잠에서 깨우는 요의尿意는 이제 일련의 해부학적 영상을 동반한다. 나는 ‘마음의 눈’으로 내 방광을 투시할 수 있다. 그것은 작고 미묘한 기관으로, 숨을 한 모금만 더 불어넣으며 빵 터질 풍선처럼 잔뜩 부풀어 있다. 밤톨만 한 전립샘 위에 자리 잡고 있으며, 하복부의 얇은 근육을 압박함으로써 복부의 표면을 작은북처럼 팽팽하게 만든다. 한 줄기의 소변이 발사되기 직전, 방광에 있는 내장들신경visceral afferent nerve이 발화firing하면 조난신호distress signal가 척수를 경유하여 뇌에 도착한다.─“제발 나를 비워줘!”
    일단 수도꼭지(요도의 괄약근)가 열려 방광의 압력이 다소 감소하면, 더 큰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내 시선은 방광을 벗어나 (골반가장자리pelvic brim를 가로질러 나란히 사이좋게 콩팥으로 올라가는) 쌍둥이 요관ureter을 추적한다. 그런 다음 각각의 콩팥에서 복잡한 여과 시스템을 들여다본다. 나의 혈액에서 가느다란 연노란색 물줄기를 걸러낸 주인공이 바로 그 시스템이라니! 마지막으로 소변기의 물을 내릴 때쯤, 나는 심장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더욱 커다란 혈관 복합체(콩팥정맥과 콩팥동맥)를 일별한다.
    (/ pp.261~262)

    그가 [그레이 아나토미]를 탓한 것은 이해할 만하다. 왜냐하면 당시 그와 헨리 그레이는 16개월 동안, ‘때때로 밑 빠진 독처럼 보이는 일’에 전력투구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단히 계산해보면, 카터는 무려 18개월 동안 3일에 두 점씩 그림을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그의 재능 덕분임이 분명하다. 완성된 책을 들여다보면 서두른 듯한 그림은 단 한 점도 없다. 사실 카터는 같은 기간 동안 해부학 시범자로, 1856년 6월부터는 (매일 몇 시간 동안의 개인 지도는 논외로 하더라도) 조직학 조교로 활동하는 등 1인 3역을 소화했다. 그의 일기를 읽다 보면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오로지 그림밖에 없었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나 그가 그림을 고독한 작업이라고 부른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 더하지는 않을망정, 공동 작업자인 그레이도 카터만큼 바빴다. 병리학회 평의회, 왕립의학・외과학회, 왕립학회의 회원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한 것은 논외로 하고, 세 가지 정규 업무─해부학 강사, 해부학 박물관 큐레이터, 성 조지 병원과 성제임스 진료소의 외과의사─에 종사하면서도 일주일에 평균 10페이지씩의 텍스트를 써내려갔다.
    (/ pp.276~277)

    우리는 그레이와 카터 시대의 학생들이 ‘외이도’나 ‘머리에서 고막까지 가는 길’에 비유했던 좁은 통로─즉, 현관─를 지나간다. 나는 순간적으로, 내가 학생보다는 향토사 해설가에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 여기 사는 사람들은 한때 누가 이 마룻바닥 위를 걸어갔었는지 알까?’ 나는 10여 개의 초인종 중 하나를 눌러, 자초지종을 이야기해줄 테니 날 좀 들여보내달라고 조르고 싶은 충동을 살짝 느낀다. 나는 헨리 그레이와 H. V. 카터뿐만이 아니라, (카리스마 넘치는 성 조지 병원의 인물로, 두 사람의 스토리에 살며시 끼어든) 티모시 홈즈Timothy Holmes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고 싶다. 홈즈는 실습실에서 카터와 나란히 시범자 역할을 수행했던 인물이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전설적인 인물 ─해부극장을 끔찍이 사랑한 외눈박이 외과의사로, 해부학도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인─이었다. 홈즈는 친구인 헨리 그레이를 위해,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그레이 아나토미] 초판의 교정쇄를 읽고 편집하는 일을 도와주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레이 사후에 나온 일곱 개 판의 편집자로 활동했다는 것이다. 향후 20년 동안 그레이와 카터의 전설이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홈즈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pp.294~295)

    장담하건대, 그건 ‘[그레이 아나토미]에 대한 카터의 진심은 무엇일까?’라는 나의 의문에 대한 정답이다. 그는 그 책을 선반 위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치지 않았다. 그는 그 책을 교재로 사용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책이 학생들 사이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것을 보고 흐뭇해했을 것이다. 게다가 그랜트 의대 학장이 자신의 보고서에 다음과 같은 각주를 단 것을 보고 뿌듯해했을 것이다.─“카터 박사는 [그레이 아나토미]에 수록된 아름다운 삽화를 그린 미술가이기도 합니다.”
    뜻밖의 발견과 함께 가시를 품은 내러티브의 딜레마가 찾아온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부분에서 스토리텔링을 멈추고 싶다. 해피엔딩을 선포하며 H. V. 카터를 떠나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스물아홉 살의 나이에 임무를 완수하고, “내 주변의 아름다운 세상에 신은 늘 존재한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달은 남자! 스티브와 내가 아름다운 도서관을 나설 때, 그랜트 의대의 해부실에서 총명한 인도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페이드아웃되는 카터 교수!
    (/ p.306)

    나는 헨리 그레이 자신에 대한 부검보고서를 보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샘솟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런 충동을 자제해야 한다고 느낀다. 정확한 이유는 댈 수 없지만, 그건 왠지 엽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와 친밀한 사람의 부검보고서를 본다는 것은 생판 모르는 사람의 경우와는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됐든, 도덕적 양가감정 때문에 더 이상 괴로워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스티브가 이미 계단식 걸상을 딛고 올라가, 1861년 보고서 묶음을 꺼내고 있기 때문이다.
    (/ p.320)

    나의 의문은 카터가 릴리에게 보낸 편지가 들어 있는 상자의 거의 맨 밑에서 풀렸다. 그 편지는 116통의 편지 중 88번째 것으로, 정확히 1861년 10월 10일에 보낸 것이었다. “그레이 씨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 알고 있지?” 그는 이렇게 말하며, “이제 막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려던 참이었는데…”라고 덧붙인다. 이 구절에서 알 수 있듯, 릴리는 그레이의 부음을 카터를 통해 전해 듣지 않았다. 그 소식이 뭄바이에 닿기 오래전, 누군가에게 듣거나 어딘가에서 읽어서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V.는 자신의 슬픔을 무언으로 공유하고 있는데, 그 점이 내 마음을 더욱 뭉클하게 한다. 릴리는 런던에 있는 오빠를 두 번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그레이 씨”를 봤을 것이다. 그러니 오빠가 그 ‘비범한 남자’의 죽음을 얼마나 가슴 아파했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 pp.326~327)

    그즈음, 카터는 인도 의료 서비스에 종사하기 위해 강단을 완전히 떠나 사십 대의 나이에 평생의 천직을 발견했으니, 독립적인 의학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그 일은 카터의 적성에 딱 맞는 것 같았지만, 사실 뒤늦은 깨달음일 뿐이었다. [그레이 아나토미]를 맨 처음 받았을 때, 그는 일기장에 이렇게 고백했었다. “헨리 그레이와 같은 대가 밑에서 일하지 않는 한, 그렇게 거대한 프로젝트를 두 번 다시 수행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는 천부적인 리더로, 큰 그림을 볼 줄 알고 현대적인 문장을 구사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생명을 바라보는 스케일이 너무 작다”라고 적었다. 그러나 그것은 터무니없는 자기비하이며, 나는 그의 위대한 재능을 높이 평가한다. 카터는 작은 것에 집중하고, 사물을 분석하고, 정신적으로 해부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능력은 자아 성찰 과정에서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었지만, 다른 한편 그를 ‘정밀한 해부학 화가’와 ‘천부적인 연구자’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스스로 “난 할 수 없다”고 굳게 믿었던 바로 그 사람이, 오늘날 많은 의학사가들에 의해 선구자─현대적 과학 연구 방법을 열대병 연구에 응용한 최초의 과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 p.335)

    나는 스티브와 일기장을 맞바꿔 마지막 날 일기를 펼친다. 그날은 1862년 1월 9일로, 매우 암울하고 불행한 때였다. “펼쳐질 미래─임박한 미래─가 남아있고, 현재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날 일기는 한 페이지 분량인데, 어조가 종잡을 수 없다. 누가 보더라도 진심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손을 멈추지 말라.─그게 유일한 위안이다.” 그는 이런 말로 끝을 맺는다.
    카터의 일기가 지금까지 남아있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일기장이 파괴되거나 (의도적이든 부주의 때문이든) 망실되지 않은 건 작은 기적, 어쩌면 신의 섭리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든다. 내 손에 들어오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하려는….
    (/ pp.343~344)

    사실 문자적 의미에서, 나는 지금껏 해부학 수업에서만큼 사망에 가까이 다가갔던 적은 없었다. 나는 헨리 그레이와 H. V. 카터, 그들의 책과 함께한 지난 1년간의 여정에서 내 손으로 직접 시신을 만지고 느끼고 해부한 덕을 톡톡히 봤다. 수십 구의 시신에 늘 둘러싸여 있다 보니, 웬만한 시신을 봐도 무덤덤할 정도였다. 나는 인체의 구조─가공되지 않은 살과 뼈와 피의 유기적 성질─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얻었다.
    그러나 그 많은 시신들 사이에서, 정작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인체와 죽음은 각기 배우는 곳이 다르다. 인체는 해부학 시간에 시신을 해부하며 배우는 거지만, 죽음이란 사망─사랑하는 누군가와의 이별─을 경험하면서 배우는 것이다.
    새삼 말하지만, 시신을 이용한 맨눈해부학에서 배우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삶과 인생이다.
    (/ p.359)

    저자소개

    빌 헤이스(Bill Hayes)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
    출생지 미국 미니애폴리스
    출간도서 2종
    판매수 469권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태어났고 스포켄에서 자랐다. 산타 클래라 대학교에서 글쓰기를 배웠고, 현재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주로 에이즈 정책, 불면증 그리고 다이앤 아버스 등에 대한 기사와 칼럼을 썼다. 저술로는 불면증에 고통받아온 개인적인 기억과 잠과 불면증에 대한 과학적, 의학적 연구를 한데 엮은 [불면증과의 동침: 어느 불면증 환자의 기억], 피를 주제로 한 [5리터: 피의 역사 혹은 피의 개인사], 그레이 해부학의 역사와 진실을 추적하는 [해부학자: 그레이 해부학의 숨겨진 미스터리] 등이 있다. 그의 책과 글은 여러 언론과 평론가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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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대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진로를 바꿔 중앙대학교에서 약학을 공부했다. 약사로 활동하며 틈틈이 의약학과 생명과학 분야의 글을 번역했고 지금은 생명과학 분야 전문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또한 포항공과대학교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바이오통신원으로, 〈네이처〉와 〈사이언스〉 등 해외 과학 저널에 실린 의학 및 생명과학 관련 글을 번역하여 최신 동향을 소개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의식의 강》 《센스 앤 넌센스》 《자연의 발명》 《물고기는 알고 있다》 《핀치의 부리》 《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 《경이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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