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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 어느 성폭력 생존자의 빛나는 치유 일기[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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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김영서
  • 출판사 : 이매진
  • 발행 : 2020년 03월 08일
  • 쪽수 : 256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5531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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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평범하고, 부드럽고, 그래도 할 수 있는 거구나,
그럼 나도 할 수 있겠구나, 싶더라구요.”


9년의 성폭력, 아빠라는 이름의 가해자, 사회라는 이름의 공모자,
그 지옥에서 탈출해 써내려간 반짝반짝 빛나는 생존과 치유의 기록!
‘은수연’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다시, 출발하는 김영서

출판사 서평

다시, 출발하는 김영서 ― 친족 성폭력 생존자 ‘은수연’에서 상처 입은 치유자 ‘김영서’로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죽여버릴 거야.” 이런 말을 들으면서도 이를 악물고 버텼다.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9년의 성폭력, 아빠라는 이름의 가해자와 사회라는 이름의 공모자가 만든 지옥에서 탈출했고, 그 시간을 한 자 한 자 기록해 쓴 책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건넸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고.
2012년,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가 처음 세상에 나왔다. 가족과 성폭력이라는 지옥에서 벗어나 써 내려간 반짝반짝 빛나는 치유와 생존의 기록은 ‘은수연’이라는 필명을 달아야 했다. ‘은수연’과 ‘김영서’가 함께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성폭력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모자이크를 치워버리고 생존자로 당당히 세상에 나서기에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악이 사라짐.” 2019년, 아빠라는 악이 사라졌다. 그 뒤 1년 정도 지난 지금에서야 김영서는 은수연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진짜 이름 영서로 세상에 나서기로 했다. 아빠라는 악은 사라졌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더 많은 악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은수연이던 김영서는 작고 평범한 사람이다. 은수연이라는 보호막이 걷힌 뒤에는 단골 카페나 슈퍼에 편하게 갈 수 있을까 염려하고, 지하철을 마음놓고 탈 수 있을까 아직도 걱정해야 한다. 사람들을 만나고 말을 건네면서 조금씩 단단해진 김영서는 여전히 두렵지만 이제 은수연하고 작별하고 ‘상처 입은 치유자’이자 ‘보드라운 개척자’로 살아가려 한다. ‘미투조차 어려운 친족 성폭력’이라는 꼬리표를 떼어 버리고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위해 말하는 사람들 모임’(공폐단단)으로 모인 친구들이랑 함께하는 활동에 힘을 보탤 참이다.
2020년, 출간 뒤 많은 독자들의 사랑과 응원을 받은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가 저자 본명을 밝히고, 〈다시 쓰는 프롤로그〉를 더한 개정판으로 돌아왔다. 이제 ‘은수연’은 ‘김영서’라는 이름을 찾아 새롭게 삶을 이야기하려 한다.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아니라 담담하게 살아낸 삶으로. ‘상처 입은 치유자’이자 ‘보드라운 개척자’로 사람들에게 손 내미려 한다. 다시, 출발하는 김영서로 말하려 한다. 견뎌내지 못할 아픔은 없고, 끝이 없는 고통은 없다고.

너의 목소리가 들려 — 침묵을 깬 친족 성폭력 생존자의 생생한 자기 고백
‘친족 성폭력.’ 더는 낯설지 않은 이 단어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먼저 다가온다. 포털 사이트 메인에 걸린 뉴스를 보는 사람들은 분노한다.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그럴 수가 있냐면서 ‘인생 망친’ 피해자를 동정하고, 정상적인 우리 가족의 삶에 안도한다. 정작 피해자의 목소리는 듣지 못한 채 말이다. 신문 지면에서, 인터넷에서,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서, 피해자는 그저 입에 담지 못할 험한 일을 당한 낯설고 무력한 존재일 뿐이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는 이 침묵을 깨고 피해자, 아니 ‘생존자’의 생생한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한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성폭력 전담 상담 기관인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식지 《나눔터》에 4년 넘게 연재된 글을 엮고 다듬은 이 책에서 김영서 저자는 초등학생 때부터 9년 동안 아버지의 성폭력을 견디다가 마침내 탈출할 때까지 자기가 겪은 경험을 가감 없이 증언한다. 그리고 탈출과 가해자 처벌에서 끝나지 않은 ‘생존자’의 이야기, 상처를 치유하고 그 상처하고 함께 살아가는 법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해자와 가해자를 두둔하고 방치한 사회를 향한 분노를 감추지 않으면서도 힘겨운 삶을 살아낸 자기만의 비법을 전수해준다.

생존을 넘어 치유로 ― 9년에 걸친 오지 탐험 다큐멘터리
“아저씨, 저 납치됐어요.” 수화기를 들고 여관 주인에게 구조 요청을 보낸 영서는 문이 열리자마자 정신없이 달려 경찰서로 도망쳤다. 여러 행운과 좋은 사람들이 건넨 도움 덕에 가해자는 중형을 받았다. 끝까지 ‘좋은 아빠’인 척하는 가해자의 마지막 모습을 뒤로하고 영서는 9년 동안 이어진 성폭력의 고리를 끊어냈다. 끝은 아니었다. 9년 동안 이어진 폭력이 남긴 흔적과 상처는 해결되지 않은 채 몸과 마음에 고스란히 남았고, 영서는 긴 세월을 여기에 맞서 싸워야 했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는 성폭력의 흔적과 상처를 글로 풀어내며 다독여온 여정인 동시에, 성폭력에 맞서 싸워온 치열한 분노와 고발의 기록이다. 목사 행세를 하며 먹고사는 친아버지라는 사람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저질러온 성폭력, 가정 폭력, 폭언과 폭행, 초경통하고 함께 겪어낸 원하지 않은 임신과 임신 중단, 탈출하고 다시 잡혀 오기를 거듭하는 동안 피해 사실을 눈감은 채 피해자를 가해자에게 돌려보낸 주변 사람들. 초판 프롤로그에서 일러두듯 이 책에 기록된 시간들을 읽는 경험은 ‘보기만 해도 힘든 오지 탐험 다큐멘터리를 보는 일’ 같을지도 모른다. 가해자들은 결코 입을 열지 않을 테니 힘들어도 자기가 나서서 글로 남기기로 마음먹은 영서는, 다시 떠올리기도 힘들 폭력의 기억들을 용감하게 마주보고, 찬찬히 되새기고, 낱낱이 고발한다.
‘생존자’로서 저자 김영서가 지닌 생명력과 힘은 책을 읽는 사람들이 함께 아픔을 견뎌낼 수 있게 도와준다. 때로는 마음껏 욕하고, 때로는 수치심이나 버거움을 숨기지 않은 채 털어놓으면서, 상처 안에 홀로 선 한 사람으로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대응하며 살아남은 힘겨운 과정을 거침없이 펼쳐 보여준다.
각 장 뒤에 실린 ‘영서의 한마디’는 저자가 들려준 이야기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성폭력 문제 자체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게 이끈다. 성폭력 피해자와 그 주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팁을 제시하기도 하고, 성폭력, 특히 친족 성폭력을 둘러싼 오해와 친족 성폭력 문제가 지니는 특수성을 차근차근 짚어주기도 하며, 성폭력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지켜져야 할 피해자의 권리를 역설하기도 한다. 책 말미에서는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체험에서 우러난 세 가지 ‘처방전’을 건네는 일도 잊지 않는다. 상처를 ‘노출’하고, 분노를 ‘표출’하고, 자기 치유에 ‘투자’하라는 처방을 제시하며 오랜 세월 치유의 길을 걸어온 자기만의 풍부한 경험을 들려준다.
김영서는 ‘여행길에 만난 용서’를 마지막으로 책을 끝맺는다. 모든 것을 훌훌 버리고 남반구로 날아간 여행에서 만난 뜻밖의 계기를 통해 용서하는 길을 찾았고, 그곳에서 가해자인 아버지에게 용서의 편지를 띄운다. 용서의 편지하고 함께 자기 것이 아닌데도 그동안 자기의 몸과 마음을 붙잡아온 수치심까지 한꺼번에 날려 보낸다. 언제나 용서해야만 상처가 치유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말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성폭력 생존자마다 각자 걸어야 할 자기만의 치유의 거리와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논-픽션 ― 빛을 만나 반짝이는 눈물에 담긴 희망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는 친족 성폭력 생존자가 써 내려간 치유의 비망록이다. 예외적인 비극을 극복한 인간 승리의 미담도 아니고, 눈물만 강요하는 자기 위안을 위한 장치도 아니다. 《안네의 일기》나 《죽음의 수용소에서》처럼 죽음의 공포 앞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산 순간의 기록을 남기고 싶어한 친족 성폭력 생존자 김영서가 쓴 글은 그만큼 큰 울림을 전해준다. 이 책은 우리에게 단지 몇 줄에 그치는 건조한 사실 확인으로 끝날 수 없는 친족 성폭력의 이면을 가해자의 말 한마디까지 고스란히 담아 낱낱이 폭로하며, 한편으로는 생존자가 나름대로 피해 상황에 대처하면서 버텨내고 살아남아온 힘과 에너지를 인상 깊게 보여준다.
아픈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일 수 있다. 피해자 보호를 가장 우선하며 사건 처리를 맡아준 형사, 상처를 보여준 때 힘이 돼준 친구들과 동료들, 자기가 흘린 눈물을 반짝이게 해준 그 빛들에 저자 김영서는 고마움을 전한다. 전자 발찌나 화학적 거세 같은 미봉책이 아니라, 피해자가 자기 앞에 놓인 삶이라는 긴 여정을 오롯이 걸어갈 수 있게 도운 주변 사람들이 그런 빛들이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에 담긴 뼈아픈 고백은 ‘예외’이고 ‘비정상’인 한 개인의 문제에 머물지 않는 커다란 과제를 우리 앞에 던진다. 이제 당신 차례다. 남모르는 아픔에 힘겨워하는 많은 생존자들에게 빛이 돼야 할 시간이다.

목차

다시 쓰는 프롤로그 출발하는 김영서
초판 추천 글 수연의 힘과 용기, 세상을 바꾸다
프롤로그 끝이 없는 고통은 없다

1장 문이 닫힙니다
2장 다시 지옥으로
3장 ‘아빠’라는 사람의 끝
4장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렇지만
5장 생일잔치
6장 초경통
7장 그 속에서 살아남기
8장 발광 속에서 발광하다
9장 그때 그 사람들
10장 산 1-1번지
11장 수능 전야 1
12장 수능 전야 2
13장 아빠, 수치심 종합 선물 세트를 돌려드립니다
14장 첫 번째 처방전 — 노출
15장 두 번째 처방전 — 표출
16장 세 번째 처방전 — 투자
17장 힘과 용기의 차이

에필로그 여행길에 만난 용서

아빠에게 보낸 편지

본문중에서

2012년에 이 책을 낸 저는 처음으로 목소리를 낸 친족 성폭력 피해자이자 생존자 ‘은수연’으로 살았습니다. 이제는 그 꼬리표 없이 ‘김영서’로 살겠습니다.
김영서라는 이름으로 개척자의 삶을 살려 합니다. 제가 처음으로 이런 방식의 미투를 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저 저처럼 작고 평범한 사람도 자기만의 색깔을 내면서 ‘상처 입은 치유자’로 담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 p.8)

‘은수연’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낸 뒤 지금까지 ‘은수연’으로 지내면서 저를 보호했습니다. 이번에 ‘김영서’가 된 뒤에도 일상에서 잘 보호받기를 바라면 욕심일까요? …… 동네 단골 카페나 슈퍼마켓에 편하게 갈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버스나 지하철을 마음놓고 탈 수 있을까 싶어 살짝 걱정도 됩니다. 그래도 아주 멀리, 아주 높이 가보고 싶고, 언덕도 넘고, 숲길도 헤치고,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 보고 싶습니다. 그러다 멍도 때리고 싶고, 길을 잃게 되더라도, 이 길의 끝에서 깨닫고 느끼게 될 새로운 삶의 느낌을 기대하며, ‘김영서’로 새롭게 출발하고 싶습니다.
(/ p.9)

“아빠, 제발 이제는 하지 말아줘.”
이런 부탁도 끝이다. 아빠의 그 짓은 부탁해서 멈추게 할 일이 아니라 원래 하면 안 되는 짓이었고, 감옥에 갇혀야 할 정도의 큰 죄였다.
아니, 이 택시가 이상하다. 아까 그 사람이 일보러 간다던 우체국 앞으로 가는 택시. 나도 모르게 뒷좌석에서 몸을 낮게 숨기며 말했다.
“아저씨 빨리 좀 가요.”
(/ p.24)

엄마라는 사람은 워낙 결혼 초부터 계속된 매질에 익숙해지고 무기력해져 있었다. 왜 경찰을 부르지 않나 싶었지만, 그때는 부부싸움으로 경찰에 신고를 하면 ‘집안 문제’로 여기고 경찰이 집에 오지도 않았다. 엄마는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신고는 아예 생각조차 못 하게 되고, 내게 일어나는 일도 어디에 어떻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 전혀 모른 것 같다. 그리고 나중에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엄마도 죽느냐 사느냐 하는 위협을 계속 느끼며 살아서 딸을 돕는 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가족 전체의 목숨을 위협하는 아빠라는 사람하고 살면서 정상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떨어진 것 같고,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잃어버린 듯했다.
(/ p.39)

아침에 눈을 뜨니 이제까지 살던 세상하고는 완전 다른 세상이었다. 아빠는 없어졌다. 내게 아빠라는 존재는 없다. 아빠라는 사람이 내 팬티 속에 손을 넣은 첫날. 나는 이제 그 사람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웃고 떠들며 친할머니의 생일잔치를 준비했다. 평소처럼 대하는 그 사람의 쓰다듬기, 칭찬, 웃음소리가 이제는 모두 달라졌다.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아빠였지만 그나마 아빠라 여기던 마음까지 사라졌다.
(/ p.71)

아침이 됐다. 미역국이 나왔다. 나는 산모인 거다. 누가 뭐래도 내 몸은 산모다.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메뉴는 정확히 생각난다. 의사는 병실에 와서 이제 좀 어떠냐고 묻더니 자기 운전기사에게 말해뒀으니 퇴원해서 집까지 자기 차를 타고 가라고 했다. 의사의 친절함을 확인한 순간 어떤 생각이 스쳤다. ‘도와달라고 얘기할까?’ 집에 가면 그 짓을 또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없던 일로 될까 봐 걱정도 됐고, 도움을 청하면 어떻게든 도와주지 않을까 싶었다. 다른 한편 겁도 났다. 친아빠가 친딸한테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6학년인 지금까지 거의 매일 강제로 그 짓을 한다는 게,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이야기라 나도 어떻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몰랐다.
(/ pp.95~96)

조용히 반항하지 않고 당한다고 해서 그게 꺾인 것도 아니고, 포기한 것도 아니다. 그놈한테 동조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나는 그때 그 상황 속에서도 나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내가 무너지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누구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렇게 살아내는 것이 그 사람과 그 사람이 저지른 더러운 짓을 완전히 무시하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그때도 학교에서 웃을 일이 있을 때는 웃고, 좋은 것이 있을 때는 좋아했고, 공부해야 할 때는 열심히 공부했다.
(/ pp.110~111)

내가 겪은 일은 역사적으로 누구나 기억해줄 수 있는 사건은 아니다. 아빠라는 사람 탓에 겪은 고통은 그 사람과 나 두 사람만 안다. 우리 둘 중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고 살다 죽으면 그 일은 없던 일이 될 수도 있다. 그 사람은 절대로 그 일들을 말하지 않을 테고, 글로 쓰는 일은 더더욱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이 입을 다물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고 있는 모습을 볼 때, 나는 내가 입을 열어야 하는 이유를 더 확실히 알게 됐다. 그 사람이 내게 저지른 더러운 짓거리는 분명히 사실이다. 그 사람은 그때도 그런 것처럼 지금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목사 행세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한 짓들은 내 영혼을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기도하고, 울부짖으며, 숨쉬고, 결국은 탈출하고, 살아남았다.
(/ pp.140~141)

“야, 이년아, 거울에 네 얼굴 봤어, 얼굴을 찡그려? 네가 뭐 성모 마리아라도 되냐?”
머리 가죽이 벗겨진 것처럼 화끈거렸다. 거실까지 머리카락이 당겨지는 힘으로 끌려나왔다. 그 사람은 내 온몸을 발로 차기 시작했다, 아니, 밟았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나는 성모 마리아가 아니라 네놈 딸이거든. 그래서 네가 성모 마리아랑 뭔 짓을 하든 나한테 상관없는데, 나한테는 이러면 안 되거든. 개썅, 미친 새끼야, 차라리 성모 마리아랑 그 짓을 해라.’
(/ p.149)

나는 쉽사리 용서를 말하고 싶지 않다. 욕할 만큼 하고, 미워할 만큼 미워하고, 죽이고 싶으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죽이고 또 죽이면서 속이 풀릴 때까지 원 없이 욕하라고 말하고 싶다. 어설프게 미워하고, 대충 욕하지 말고, 완벽하게, 철저하게 온 마음을 다 실어서 더는 미워할 힘이 남지 않을 때까지 미워하라. 욕하고 욕하다 더는 어떻게 욕해야 할지 모를 때까지, 세상에 있는 나쁜 표현은 다 써버려서 더는 할 말이 없을 때까지 욕하라.
(/ p.205)

아빠가 성폭력 한 것을 용서합니다. 어린 나이에 성폭력으로 임신하게 하고, 낙태까지 경험하게 한 것을 용서합니다. 수능 전날 밤 호텔에서 성폭력 하려다 말을 안 듣는다고 밤새 때린 것을 용서합니다. 강제로 행한 온갖 더러운 짓거리들, 그 짓들로 나를 상처 입힌 것을 용서합니다. 하루는 기절할 때까지 나를 때리고,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고 다니고,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때린 뒤 다음 날 주민등록증 사진을 찍게 한 것을 용서합니다. 밤에 으슥한 산길에 차를 대놓고, 그곳에서 성폭력 한 것을 용서합니다. 내가 기침감기가 심하게 걸려 계속해서 기침이 나오는데 그 짓거리 하겠다며 내 위에 올라타서는 계속 기침한다고 주먹으로 내 얼굴과 가슴을 내리치던 것을 용서합니다.
(/ p.249)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김영서 가족 안에서 ‘지진’을 경험하는 듯한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지났다. 세상에 홀로 나와 성폭력이라는 문제가 ‘개인의 재수 없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10년 동안 혼자 겪은 친족 성폭력을 글로 썼다. 10년 전, ‘은수연’으로 세상에 내 이야기를 꺼낼 준비를 했다. 10년 동안, ‘은수연’과 ‘김영서’가 함께 사람들을 만났다. 10년이 지난 지금, ‘김영서’로 새롭게 삶을 이야기하려 한다.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아니라 담담하게 살아낸 삶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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