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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공공가치: 의료정책과 교육정책의 현장에서?는 10여 년간 한국과 북유럽을 오가며 ‘북유럽 모형’을 분석한 최희경(경북대학교 교수)의 연구성과를 담았다. 저자는 스칸디나비아삼국, 즉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에서의 현장조사로, 특히 원고를 탈고하는 마지막 1년은 현지에 거주하며 북유럽 사람들의 삶을 생생히 경험했다. 이로써 북유럽 모형을 정책적·법제적 측면에서만 분석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형성된 ‘공공가치’의 차원을 밝혔다. 즉 우리가 피상적으로나마 그리는 ‘공정하다’, ‘합리적이다’, ‘관용적이다’, ‘복지제도가 잘 마련되어 있다’ 등 북유럽의 모습은 단순히 법과 정책을 잘 만들거나 정치인이나 기업인 등 특정 집단의 도덕성이 우월해서가 아니라 그곳 사람들 일반이 역사에서 만들고 생활에서 따르는 공공가치로 지탱된다는 것이다. 최근 신자유주의의 유입과 이민정책을 둘러싼 갈등과 혼란도 전통적 공공가치의 연장이나 전환으로 해석된다. 이는 북유럽의 법과 제도를 상당 부분 수입한 우리나라에도 시사점을 던져준다. 저술에 도움을 준 코펜하겐대학 명예교수이자 전(前) 북유럽사회학회 회장 군데라크(Peter Gundelach)의 평가처럼 스칸디나비아삼국 현지에서도 최근 가치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국내에 최신 동향을 소개한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의미가 있다.
?북유럽의 공공가치?는 저자 스스로 “현장조사 기록”이라 할 만큼 북유럽 모형과 공공가치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로 가득하다. 160여 개의 사례를 소개하며, 아울러 OECD, 세계가치조사(WVS), 세계은행, 갤럽세계조사 등 공신력 있는 국제기구가 조사한 객관적 지표, 서구 학자들이 쓴 문헌 분석 등을 30여 개의 표와 그림으로 정리해 제시한다.

개인가치와 사회가치가 공생하는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많은 사람이 북유럽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다. 북유럽 스타일의 가구나 옷이 없는 집은 찾아보기 힘들고, 북유럽 이민을 꿈꿔보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북유럽을 꿈꾸는가?
?북유럽의 공공가치?는 이를 공공가치의 차원에서 풀어낸다. 정책과 제도도 중요하지만 그런 정책과 제도가 잘 만들어지고 운영되도록 뒷받침하는 공공가치를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일반의 공공가치와 분리되지 않기에 정책과 제도의 효과성이 높고 신뢰도도 높다. 재래시장에서 떡볶이를 먹는 한국 국회의원과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북유럽 국회의원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온도 차가 느껴지는 이유다.
책은 북유럽의 공공가치를 ‘개인가치’와 ‘사회가치’의 틀로 분석한다. 기존 연구들, 특히 한국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가치 연구들은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구분하고 그중 후자를 공공가치로 파악한다. “과도한 시장경쟁주의와 효율만능주의에 대한 반성” 때문인데, 특히 경제적 가치가 “경제적·물리적 안전을 중시”하는 ‘생존가치’로 심화하여 전체 공동체를 과도한 경쟁체제로 몰아넣는 것으로 진단한다.
반면 북유럽은 역사적으로 “시장제도보다 자율적·공동체적 사회제도의 전통”이 강하기에 공공가치가 개인가치와 사회가치를 모두 아우르는 특징을 띤다. 우선 스칸디나비아삼국은 “정치적·역사적으로 종속과 압제의 경험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침략에도 노르웨이를 제외하고는 다른 유럽 국가나 소련과 달리 큰 피해를 보지 않았다.

개인가치와 사회가치는 어떻게 공생하는가│책을 내면서

제1장 북유럽 공공가치의 특성

I. 왜 북유럽 공공가치인가
1. 다른 세계, 다른 가치
2. 무엇을 위한 연구인가: 연구목적과 내용
3. 연구방법과 현장조사

II. 북유럽 공공가치를 논하다
1. 공공가치의 개념과 유형
2. 북유럽 공공가치의 특징: 통계와 이론이 보여주는 것

제2장 노르웨이의 공공가치와 사회정책

I. 노르웨이의 공공가치 일반: 사회가치형
1. 역사적 배경
2. 개인가치
3. 사회가치
4. 사회일반의 공공가치 요약

II. 노르웨이 의료정책과 공공가치: 사회가치형
1. 의료제도 개관
2. 개인가치와 의료정책
3. 사회가치와 의료정책
4. 의료정책과 공공가치 요약

III. 노르웨이 교육정책과 공공가치: 사회가치형
1. 교육제도 개관
2. 개인가치와 교육정책
3. 사회가치와 교육정책
4. 교육정책과 공공가치 요약

제3장 스웨덴의 공공가치와 사회정책

I. 스웨덴의 공공가치 일반: 균형가치형
1. 역사적 배경
2. 개인가치
3. 사회가치
4. 사회일반의 공공가치 요약

II. 스웨덴 의료정책과 공공가치: 균형가치형
1. 의료제도 개관
2. 개인가치와 의료정책
3. 사회가치와 의료정책
4. 의료정책과 공공가치 요약

III. 스웨덴 교육정책과 공공가치: 개인가치형
1. 교육제도 개관
2. 개인가치와 교육정책
3. 사회가치와 교육정책
4. 교육정책과 공공가치 요약

제4장 덴마크의 공공가치와 사회정책

I. 덴마크의 공공가치 일반: 균형가치형
1. 역사적 배경
2. 개인가치
3. 사회가치
4. 사회일반의 공공가치 요약

II. 덴마크 의료정책과 공공가치: 개인가치형
1. 의료제도 개관
2. 개인가치와 의료정책
3. 사회가치와 의료정책
4. 의료정책과 공공가치 요약

III. 덴마크 교육정책과 공공가치: 개인가치형
1. 교육제도 개관
2. 개인가치와 교육정책
3. 사회가치와 교육정책
4. 교육정책과 공공가치 요약

제5장 북유럽 사례의 메시지

I. 북유럽 사례의 주요 논점
1. 공공가치와 사회정책
2. 의료정책과 공공가치
3. 교육정책과 공공가치

II. 북유럽 사례의 정책적 함의
1. 북유럽과 한국의 비교
2. 북유럽 사례의 시사점
3. 마무리: ‘실용적 이중주의’의 길

참고문헌
부록
〈부록 1〉 심층면담 응답자 52명의 인구학적 기본특징
〈부록 2〉 인터뷰 초청장과 조사문항 예시(번역문)
〈부록 3〉 인터뷰 초청장과 조사문항 예시(영문)
〈부록 4〉 영문초록
〈부록 5〉 도표 목차
〈부록 6〉 사례 목차
찾아보기

스칸디나비아삼국 모두 역사적으로 강한 개인가치를 다져왔다. 세 나라 모두 정치적·역사적으로 종속과 압제의 경험이 거의 없었다. ……사회구성원들이 비교적 자신의 의지대로 결정하고 생활하는 방식을 정착시켜온 데는 이런 환경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학자들은 해석한다. _ 679쪽

스칸디나비아삼국의 농민과 노동자는 다른 서구 국가와 비교해도 상당히 부드럽게 정치적 주체가 되었다. 덴마크는 진보적인 귀족들이 앞장서 농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기층민이 무혈혁명을 주도한 역사가 있으며, 노르웨이와 스웨덴 역시 큰 갈등 없이 농민이 의회에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노동자는 산업화 시기에 군대와 충돌하기까지 하는 등 극심한 진통을 겪었지만 비교적 빨리 사태를 수습하고 노사정 간의 협의를 끌어냈다. 멀게 보면 18세기 중반부터 태동한 시민운동과 시민사회의 틀 안에서 온갖 사회적·경제적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에 북유럽에서 사회가치와 개인가치는 자연스럽게 공생해왔다.

한국은…… 서구식 정치체제와 법제가 우선 도입되었고 경제발전으로 중산층이 형성되면서 비로소 시민운동이 자리 잡은 나라다. 따라서 개인의 자유, 독립, 자율에 대한 자각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고…… 인식의 격차가 크다. 그런데 시장제도의 기반이 되는 자유주의적 개인가치가 강하면서도 개인주의를 이기주의와 동일시하며 부정적으로 보는 편견도 강하다. 북유럽 공공가치는…… 개인주의와 사회주의가 결합된 특징을 보여주며, 합리적이고 자율적인 개인가치는 사회가치 못지않게 공공성을 떠받치는 기둥이 되고 있다. _ 41쪽

사회일반, 의료정책, 교육정책에서 빛나는 북유럽 공공가치
?북유럽의 공공가치?는 공공가치가 어떻게 법과 제도와 연관되는지를 사회일반, 의료, 교육부문에서 살핀다. 사회일반에서 개인가치와 사회가치는 균형을 이룬다. 이 두 가치는 선순환하는데, 개인은 근로와 납세의 의무를 당연히 받아들이고 사회와 국가는 이에 합당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북유럽 모형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난민을 둘러싼 문제도 연장선에서 생각할 수 있다. 지난 10여 년간 스칸디나비아삼국에서 난민은 늘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난민이 각종 범죄를 저지른다거나 복지서비스를 무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이 많다. 실제로 극우정당이 크게 성장했다. 이로써 관용적 공공가치의 신화가 깨졌다는 평가도 제시된다. 그러나 다수가 생각하는 이민정책의 쟁점은 이방인들이 개인가치와 사회가치의 선순환을 이해하고, 근로와 납세의 의무를 실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북유럽 사민주의의 원래 복지원리는 공동체의식을 근간으로 개개인이 노동에 참여하고 그로써 납부하는 세금으로 사회구성원 모두 공존하는 것이다. 사민당이 관대한 이민정책을 축소한 것도 이민자가 근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납세의 의무를 기꺼이 져야 한다는 기본적인 노동윤리와 사회규범의 확인일 뿐이다. _ 499쪽

의료정책과 교육정책에서도 개인가치와 사회가치는 대체로 균형을 이룬다. 단 국가별 특성에 따라 노르웨이는 사회가치에, 덴마크는 개인가치에 좀더 무게를 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압도하지는 않는다.
가장 눈에 띄는 것으로 복지서비스와 건강관리의 관계다. 북유럽은 매우 폭넓은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난민에게조차도 일반 시민과 거의 다름없는 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 전 세계 사람들이 이를 부러워하지만 그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높은 수준의 복지서비스를 누리려면 역설적으로 복지서비스에 대한 이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재정을 아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유럽 사람들은 건강관리에 매우 적극적이고 웬만해서는 병원에 가지 않는다. 정책적으로도 이를 유도하는데, 대표적인 정책이 국가가 주류의 판매를 독점하는 것이다.

[노르웨이의 빈모노폴레(Vinmonopolet)처럼] 스웨덴은 국가가 운영하는 시스템볼라게트(Systembolaget)에서만 알코올도수 3.5도 이상의 술을 판다. 스웨덴의 음주량은 19세기까지 심각할 정도로 증가했는데, 1829년 기준 1인당 연간 46리터였다. ……국가는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 진행되던 음주규제를 국가정책으로 확대 시행했는데, ……마침내 국내의 모든 주류소매업체를 국가가 통합,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_ 396~397쪽

공립학교와 사립학교 간에 차이가 없는 것도 특징이다. 우리나라처럼 과고, 외고, 국제고, 자사고 등 각종 사립학교가 즐비하고, 이것들이 모두 입시 위주 경쟁체제 내에서 서열화되는 상황은 북유럽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건 고사하고 아예 이해조차 되지 않는 일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북유럽은 교육의 질에 차이가 없도록 사립학교의 재정도 국가가 거의 책임진다. 당연히 교육내용도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관리한다.
그렇다고 폐쇄적으로 특정 이념을 주입하거나 정해진 커리큘럼만 교육하는 것이 아니다. 공교육 프로그램 내에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한다. 공부를 계속할 수도 있고, 직업훈련을 받을 수도 있고, 음악·영화·사진·체육 등의 예체능을 체험할 수도 있다. 덴마크는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하기 전에 1년간 진로를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도 한다. 개인가치를 따르는 개인의 선호가 사회가치가 두드러지는 교육체계 내에서 완벽히 보장되는 것이다.

20대 여성 의료인: 여섯 살 때부터 체조를 배웠고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선수로 활동했다. 이곳에서는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때까지 스포츠 등 취미활동을 많이 하는 것이 매우 일반적이다. ……덴마크에서도 의과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잘해야 하지만 최고일 필요는 없다. ……청소년 때 운동이나 취미활동을 하고서도 충분히 의과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 고등학교 때까지 축구선수로 활약한 여동생도 의과대학에 다니고 있다. _ 646쪽

한국이 배울 북유럽의 길 ‘실용적 이중주의’
이처럼 스칸디나비아삼국의 공공가치는 개인가치와 사회가치의 균형을 특징으로 한다. 대부분 상반된다고 생각하는 두 가치의 균형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북유럽의 공공가치?는 이를 ‘실용적 이중주의’(pragmatic dualists)로 설명한다. 즉 북유럽에서 개인가치와 사회가치는 실용적이고 다변화된 전략으로서 탄력적으로 결합, 운영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북유럽 모형은 ‘있으면서도 없다.’

‘북유럽 모형’의 정체성이 불명확하다는 일각의 주장은 북유럽을 바라보는 외부인에게 당혹감과 동시에 안도감을 준다. 주장의 핵심은 지금까지 북유럽은 이질적이고 다양한 외국의 제도, 이념, 경험을 계속해서 받아들여 필요한 부분을 끊임없이 보완, 수정해왔다는 것이다. 이것이 북유럽 모형의 실체이고 특징이며 강점이기도 하다. _ 731~732쪽

실제로 스웨덴의 경우 1990년대 초 경제위기를 겪으며 보수연정이 정권을 잡지만, 친시장정책을 도입하는 데 굉장히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이후 2000년대 중반 미국발 경제위기에 다시 정권을 잡은 보수당은 “친복지와 친노동을 강조하는 등 ‘새로운 보수당’을 표방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와중에 사민당 내부에 우파모임이 조직되어 내부적으로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모임은 북유럽 모형에 시장주의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좌우의 이러한 행보는 “급진적 개혁보다는 현실적·집중적 변화”를 택하며 사회적 비용을 낮추었을 뿐 아니라, “사회연대와 통합, 신뢰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했으리라고 판단된다.”
북유럽의 이러한 실용적 이중주의는 그들 역사의 산물이다. 북유럽은 영국에서 명예혁명, 산업혁명, 노동운동을, 미국에서 자유주의를 따오고, 러시아혁명을 반면교사 삼아 노사 간의 타협을 끌어냈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가 등장하자 이를 사민주의 정책에 적절히 반영했다. 이처럼 북유럽은 “사회구성원의 존엄한 삶을 보장한다는 기본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상황마다 분야마다 필요한 변신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한국도 북유럽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은 미국에서 시장제도와 교육제도를, 독일과 영국, 심지어 북유럽에서 복지제도를, 일본에서 법제와 지방자치제도를 따왔다. 이미 제도가 다양하고 복합적으로 도입, 실행되고 있으니 특정 이념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북유럽에서 우선적으로 참고하고 배울 것을 꼽는다면 제도나 정책의 내용보다 실용성을 추구하는 변화의 역량이다. 이러한 전략적 실천으로 이념의 색깔을 덜고 불필요한 진영논쟁과 대립을 완화할 수 있다. _ 7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