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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화가 김홍도 : 붓으로 세상을 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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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수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마침내 우리 앞에 선 인간 김홍도


    가난한 바닷가 마을 소년이 임금을 그리는 어용화사가 되고, 조선의 새로운 경지라는 찬사를 듣는 화원으로 성장하기까지, 그러다 생의 마지막조차 기록되지 않을 만큼 쓸쓸한 말년을 보내기까지, 중인 출신 화가가 겪었을 파란만장한 삶은 대부분 흩어지거나 빛바랜 기억 속에, 혹은 논쟁과 추정이라는 베일 뒤에 가려져 있었다. 그 기억을 그러모으고 베일을 걷어낸 뒤에 우리 앞에 설 인간 김홍도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그가 진정 화폭에 담고자 했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예술가의 삶의 궤적을 치밀하게 뒤쫓은 이 책을 통해 마침내 우리는 그의 예술적 성취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김홍도의 일생을 기록한 첫 전기인 《천년의 화가 김홍도》에는 가장 널리 알려진 풍속화를 비롯해 국보로 지정된 군선도, 섬세한 필치의 절정을 보여주는 황묘농접과 송하맹호도, 이후 금강산 그림의 범본이 된 《금강사군첩》과 평생의 득의작인 《병진년화첩》의 그림들, 원숙미와 쓸쓸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말년의 작품까지 김홍도의 대표작이 빠짐없이 수록되어 시대를 뛰어넘은 천재 화가의 삶과 그림 모두를 온전히 느낄 수 있게 했다.

    출판사 서평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천재 화가의 삶, 그 최초의 이야기

    김홍도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한국인이라면 마음속에 그의 작품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풍속화일 수도 있고, 빨간 호로병이 눈에 띄는 활달한 필치의 신선도일 수도, 금강산 굽이굽이 절경을 곡진하게 담은 산수화일 수도, 말년의 원숙미와 쓸쓸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추성부도 같은 시의도일 수도 있다. 패랭이와 나비를 희롱하는 고양이나 안광의 푸른빛이 형형한 호랑이, 잎이 다 떨어진 나무숲 사이로 비치는 보름달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김홍도의 작품 세계는 궁중기록화에서부터 도석화, 시의도, 풍속화, 실경산수화, 화조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조선의 화폭을 넓혔다”라는 평가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모든 분야에서 빼어난 예술적 성취를 드러냈다. 그러나 김홍도의 삶은 그가 남긴 불멸의 작품 뒤에 오랫동안 숨어 있었다.
    한국 전기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가 이충렬이 수백 년간 김홍도의 생애에 드리워진 베일을 마침내 걷어냈다. 김홍도의 흔적은 조선왕조실록이나 의궤, 승정원일기 같은 국가기록물이나 강세황의 《표암유고》, 김광국의 《석농화원》을 비롯한 동시대인들의 기록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저자는 흩어진 기억을 그러모으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당대 양반 및 중인의 문집, 시대상을 그린 소설, 김홍도와 조선 후기 사회를 설명하는 최신의 연구 자료를 교차 대조하여 그동안 논쟁과 추정에만 기대어온 김홍도의 삶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김홍도의 아호인 ‘단원’, ‘단구’, ‘서호’의 연원을 추적해 그의 출생지를 안산 성포리로 비정하고, 자신의 집을 그린 ‘단원도’의 배경이 이제까지 알려진 바와 달리 인왕산 옆 백운동천 계곡이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그 밖에 울산목장 감목관 시절을 비롯한 김홍도의 생애 몇 가지 중요한 공백을 메움으로써 김홍도 전기의 정본定本을 마련했다. 조선 미술의 나아갈 방향을 정했고, 한국미美의 원류를 형성한 천년의 화가 김홍도, 불멸의 작품을 남긴 천재 화가의 알려지지 않은 삶이 이제 막 펼쳐진다.

    양반 중심 사회에서
    세상이 원하는 나만의 그림을 찾다

    ‘정조의 총애를 받은 도화서 화원’ 정도의 수식어로 김홍도의 삶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결코 예외적인 삶을 살 수 없었던 당대인으로 김홍도를 그려냄으로써 그의 삶과 정신을 더욱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세 차례나 어진을 그리는 어용화사에 선출되고, 그 공으로 사재감 주부, 장원서와 사포서 별제, 역참 찰방 등을 거쳐 중인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벼슬인 현감에 제수되었지만, 평탄해 보이는 삶의 이면에서 김홍도는 중인 출신 ‘환쟁이’라는 굴레와 끝없이 투쟁해야 했다. 시험에 통과하지 못해 첫 벼슬에서 파직당하는 수모를 겪고, 대부분의 품직은 ‘녹봉(월급)’ 없는 무록직이었으며, 지방관 시절에는 마을 양반이나 아전들의 견제와 편견이 그를 괴롭게 했다. 외유사의 보고서 하나로 언제든 내쳐질 수 있는 위치에 있던 김홍도는 벼슬은 가졌으나 끝내 양반 사회에 편입될 수 없었던 경계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감내해야 했다.
    한편으로 이 책은 중인 출신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타고난 재능으로 딛고 일어선 한 예술가의 자각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도화서 화원으로 궁중화나 신선화를 그리던 그가 풍속화를 그리고, 자연을, 마침내 마음을 그리게 되는 과정은 그의 삶을 스쳐지나간 번민이나 사색과 무관하지 않다. 산을 보면 산을 그리고 싶고, 바다를 보면 바다를 그리고 싶어 천장에 그림을 그리던 소년이 중인에게 허락되지 않은 내면에 천착하고, 그리하여 마침내 조선왕조 사백 년의 새로운 경지를 이루었다고 평가받기까지, 그의 삶은 화가로서 자아를 찾아나가는 여정이었다. 양반이 찾는 그림이 아니라 세상이 원하는 그림을 그렸고, 그 세상 안에 소외되고 핍박받는 이들을 끌어안았던 화가, 신분이 아니라 사람을, 풍경이 아니라 마음을 화폭에 담고자 했던 화가 김홍도, 그의 삶을 이끌었던 예술혼이 책 구석구석 살아 숨 쉰다.

    100여 점의 도판 수록!
    불멸의 작품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김홍도가 살던 시대는 상업 활동을 통해 부를 축적한 중인들이 자신들만의 ‘여항 문화’를 일구고, 사대부들 사이에서도 실학의 맹아가 움트는 등 세상의 변화를 실감하던 때였다. 저자는 훗날 ‘조선의 르네상스’로 불리게 된 시대의 숨결을 복원하고, 그 안에 김홍도와 교유했던 사람들, 당대의 문화를 섬세하게 배치함으로써 인간 김홍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길을 터놓는다. 어린 시절 강세황에게 그림을 배우기 위해 오가던 성포리의 십리 길, 심사정을 사사하러 가는 길에 쉬어가던 노들 나루터, 그림을 팔고 종이를 사기 위해 집처럼 드나들던 광통교의 풍경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펼쳐지고, 이인문, 신한평, 김응환 등 당대의 화가들과 강희언의 집 담졸헌에 모여 주문 그림을 그리고 함께 풍류를 즐기던 모습, 백운동천 산세 좋은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해 ‘단원’이라 이름 짓고 뿌듯해하던 장면, 스승인 강세황과 동료, 서민들에게까지 자신이 그린 속화를 인정받았을 때의 환희에 찬 순간 등 김홍도의 가장 찬란했던 시간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이 책은 대표작과 희귀 도판을 포함해 100여점의 그림을 삶의 궤적과 나란히 배치해 독자들로 하여금 대大화가의 시선으로 그가 남긴 불멸의 작품을 바라보게 한다. 도성 최고의 번화가인 광통교와 중인들이 모여 살던 삼청동, 딸깍발이 양반들이 사는 남산 기슭을 누비며 관찰한 생동하는 조선의 풍경이 고스란히 그의 풍속화에 들어가 앉고, 선배 화원인 김응환과 함께 임금의 명을 받아 영동 9군과 금강산의 절경을 화폭에 담으며 화가로서 자의식을 깨닫는 과정이 《금강사화첩》으로 이어지며, 고요하고 쓸쓸한 마음을 회사후소繪事後素의 정신으로 승화시킨 말년의 모습은 평생의 득의작인 《병진년화첩》의 그림으로 완성된다. 독자들은 작품으로 화가의 삶에 다가서고, 그렇게 되살아난 삶을 통해 다시 그 작품을 들여다보는 소중한 경험을 갖게 될 것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
    아들에게 남긴 비운의 편지

    김홍도의 말년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는 많지 않다. 전라도 관찰사 심상규가 한양에 있는 벗 예조판서 서용보에게 보낸 편지와 김홍도가 아들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를 통해 가난과 병고 속에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김홍도가 아들에게 초서로 흘려 쓴 편지는 뒤로 갈수록 힘에 부쳐 쓴 글씨라는 게 역력해 말년의 곤궁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존재는 알려졌으나 공개된 적 없는 그 마지막 편지를 권말에 실었다.
    가난한 바닷가 마을 소년이 임금을 그리는 어용화사가 되고, 조선의 새로운 경지라는 찬사를 듣는 화원으로 성장하기까지, 그러다 생의 마지막조차 제대로 기록되지 않을 만큼 쓸쓸한 말년을 보내기까지, 중인 출신 화가가 겪었을 파란만장한 삶은 대부분 흩어지거나 빛바랜 기억 속에, 혹은 논쟁과 추정이라는 베일 뒤에 가려져 있었다. 그 기억을 그러모으고 베일을 걷어낸 뒤에 우리 앞에 설 인간 김홍도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그가 진정 화폭에 담고자 했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한 예술가의 삶의 궤적을 치밀하게 뒤쫓은 이 책을 통해 마침내 우리는 그의 예술적 성취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그림으로 보는 김홍도 60년의 삶
    서문 시대와 인간의 마음을 그린 화가, 김홍도

    1부 성포리 소년의 꿈
    1장성포리 앞바다에선 풍어가도 구슬프다
    ― 김홍도가 태어난 곳은 어디일까?
    2장 천한 환쟁이가 되려는 것이냐?
    3장 첫 번째 스승 표암 강세황
    4장 그림을 외우는 소년
    5장 반송방 북곡에서 도화서를 바라보다
    6장 네가 그리고 싶은 그림이 무엇이냐?
    ― 열여덟 살 김홍도의 얼굴을 찾아서
    7장 화원의 꿈을 이루다

    2부 궁중화를 그리다
    8장 단 하나의 길
    9장 영조의 수작연을 그리다
    ― 김홍도의 첫 번째 궁중기록화
    10장 가난한 바닷가 마을을 그리며 이름을 짓다
    11장 용안을 마주하다
    12장 첫 번째 벼슬과 치욕의 삼책불통

    3부 삶을 그리다
    13장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
    14장 그림을 찾아 삶으로 들어가다
    15장 중인을 위한 그림을 그리다
    16장 말 한 마리만도 못한 삶
    17장 도화서로 돌아오다
    18장 일생의 제자와 벗을 만나다
    ― 김홍도의 곁을 지킨 제자
    19장 조선왕조 사백 년의 새로운 경지
    20장 그림에는 신분이 없다

    4부 자연을 그리다
    21장 단원에 살어리랏다
    ― 김홍도의 집 ‘단원’은 어디인가?
    22장 임금의 두 번째 부름을 받다
    23장 한강의 칼바람에 마음은 얼고
    24장 단원을 그리워하다
    ― 사라진 그림의 흔적을 찾아서
    25장 스승에게 단원기를 청하다
    ― 김홍도가 단원이 된 이유
    26장 봉명사행, 금강산을 그리다
    ― 서양화 기법으로 그린 김홍도의 책가도는 어디에 있을까?
    27장 벗과 스승을 잃고 시름에 잠기다
    ― 김홍도는 대마도에 다녀왔을까?

    5부 마음을 그리다
    28장 백성들의 궁핍함을 살피다
    29장 연풍현감에서 파직되다
    30장 쓸쓸한 나무숲 사이로 달빛이 비치다
    ― 정조의 역사적 능행에 김홍도는 없었다
    31장 자연을 그리며 마음을 다스리다
    32장 한 시대가 저물다
    ― 김홍도의 매화 사랑
    33장 아들의 월사금을 보낼 수 없어 탄식하다
    ― 아들에게 쓴 마지막 편지
    34장 빈산에 아무도 없구나

    부록 진품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작품
    주석
    참고 문헌
    수록 작품 목록
    김홍도 연보

    본문중에서

    전기는 단순한 연대기가 아니다. 주인공의 삶의 모습과 정신세계를 글 속에 녹여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해야 한다. 이번 작업에서는 김홍도가 구체적으로 어떤 시대 배경 속에서 그림을 그렸는지, 그의 그림이 어떻게 당대부터 현재까지 울림을 주는 예술작품이 되었는지를 설득력 있는 서사 구조와 이야기 구조(스토리텔링) 속에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그를 과거의 인물에서 현재의 인물로 불러내기 위한 작업이었다.
    (/ p.22)

    집으로 온 홍도는 활과 화살을 챙겨 과녁이 있는 산 아래로 갔다. 활시위를 당겼지만 화살은 과녁에 미치지 못했다. 귓가에서는 훈장의 목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그림 그리는 일이 왜 천한 일일까? 홍도는 이해할 수 없었다.
    (/ p.39)

    홍도는 붓을 들고 강세황이 펼친 화보에 있는 나무를 조심스럽게 그렸다. 강세황은 홍도의 그림 그리는 속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물의 형상을 머릿속에 저장하는 능력이 없으면 이렇게 빨리 그릴 수 없다.
    (/ p.46)

    “나리, 저는 붓을 잡을 때가 제일 좋습니다. 산을 보면 산을 그리고 싶고, 바다를 보면 바다를 그리고 싶고, 사람을 보면 사람을 그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밤 천장에다 그림을 그립니다.”
    (/ p.67)

    김홍도는 이인문과 함께 청계천 남쪽 태평방(太平坊, 을지로 입구 부근)에 있는 도화서에 도착했다. 초겨울의 찬바람이 제법 매서웠지만 그는 정문 위에 ‘도화서’라고 걸려 있는 편액을 자기도 모르게 한참 바라보았다.
    (/ p.93)

    김홍도는 눈을 감았다. 겨울인데도 등에서 땀이 흘렀고, 손에서 경련이 일 정도로 긴장이 멈추지 않았다. 김홍도 옆으로 변상벽을 비롯한 화원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고, 하얀 기름종이가 펼쳐진 곳 너머에서는 도제조와 도감 당상이 감시하듯 화원들의 손끝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영조와 왕세손이 건물 가장 깊숙한 곳 중앙에 자리하고 있었다.
    (/ p.121)

    김홍도는 이 시험에서 삼책불통이라는 최악의 성적을 받았다. 어용화사의 영광이 치욕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시험을 주관하던 조정 대신들은 혀를 차며 실소를 터트렸다.
    “환쟁이가 그럼 그렇지.”
    (/ p.133)

    이날도 그는 화구통을 들고 삼청동으로 향했다. 개천 오른편 동네에는 양반뿐 아니라 무반 중인도 많이 살고 있었고, 작년 장원서에서 근무할 때 다니던 길이라 눈에 익은 곳이었다. 정 그릴거리가 없으면 삼청동 언덕에 있는 운룡정 활터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장원서 부근 우물터에 재미있는 광경이 보였다. 부근에 있는 수어청이나 북이영 소속인 듯 체구가 영락없는 무반인 사내가 웃통을 풀어 젖힌 채 물 푸는 동네 아낙들에게 물 한 바가지 달라며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 p.154)

    “이런 편자갈이는 얼마나 자주 하는가?”
    “예, 나리. 입춘이 지나고 나면 거의 매일 합니다요. 그리고 편자는 말의 크기에 따라서 편자의 무게나 두께를 잘 조정해야 말이 튼튼해집니다요. 여기서는 편자 박는 놈을 장제사裝蹄師라고 부르는데, 저렇게 나이가 늙수그레하고 경험이 많을수록 어떤 편자를 박아야 할지 잘 압니다요.”
    목장에서는 말도 ‘놈’이고 목자도 ‘놈’이었다.
    (/ pp.174~175)

    “사능, 이제 이렇게 운치 있는 집을 마련했으니 당호(堂號, 집 이름)를 지어야지.”
    모두들 맞장구를 쳤다. 집에 이름을 붙이는 건 양반의 풍습이었으나 중인 문인이나 화가도 양반을 따라 당호를 짓곤 했다. 김홍도는 처음에는 겸손한 마음으로 사양하다가 이런 집에 이름이 없는 것도 서운하겠다 싶어 곰곰이 생각했다. 그때 고향 마을 노적봉 중턱에 있는 박달나무 숲 ‘단원’이 떠올랐다.
    (/ p.253)

    1781년(정조 5년), 백운동천에 자리를 잡은 그해 9월, 김홍도는 어딘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계곡에서 울려 퍼지던 거문고 소리가 끊긴 지도 오래되었다. 정조의 어진을 그리는 어용화사로 두 번째 부름을 받았으나 영광은 잠시였다. 임금은 하루가 멀다 하고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독촉했다. 이제 막 곤룡포의 모양새를 그렸다고 보고하면 채색은 언제 들어가느냐고 묻고, 오늘 밤부터 채색할 수 있다고 답하면 바로 이튿날 채색이 언제 끝나느냐고 물었다.
    (/ p.262)

    두 사람은 너럭바위에 앉아 종이와 유탄을 꺼냈다. 김홍도는 먼저 눈을 감았다. 가파른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물소리가 거셌고, 나무를 휘감아 도는 바람이 귀를 간지럽혔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는 울창한 나무숲과 절벽에 부딪혀 작은 메아리로 울려 퍼졌다. 몸은 작은 너럭바위에 매여 있으나 거대한 산의 정기가 가슴 안으로 들어오는 듯했다. 김홍도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눈을 떴다. 눈앞에 자신이 상상했던 그대로의 풍경이 펼쳐졌다.
    (/ p.332)

    짐 정리를 끝낸 김홍도는 별채 밖을 바라봤다. 잎이 다 떨어진 쓸쓸한 나무숲 사이로 시냇물이 흐르고 그 위로 둥근 보름달이 은은히 달빛을 비췄다. 잎이 떨어진 나무들을 바라보며 김홍도는 자신의 삶도 저 나무처럼 쓸쓸한 결말을 맞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p.394)

    김홍도는 기다렸다. 처음에는 자신도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모르고 그냥 기다렸다. 새벽 짙은 안개가 걷히기를 바라는 나그네처럼, 남한강가의 풍광을 바라보고 또 바라봤다. 강물이 흐르는 소리, 바람이 부는 소리,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가 하나 둘 사라졌다. 남은 건 고요뿐이었다. 그는 붓을 들었다.
    (/ p.402)

    김홍도는 종이를 길게 펼치고 추성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먼저 화폭 오른쪽에 메마른 가을 산과 낙엽이 떨어진 나무들을 그렸다. 그다음에는 산 아래에 초옥(草屋, 지푸라기로 지붕을 인 집)을 그리고 방 안에서 둥근 창밖을 바라보는 구양수를 그렸다. 구양수의 모습은 곧 김홍도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다.
    (/ p.436)

    김홍도는 노적봉 박달나무 숲에 앉아 성포리 앞바다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을 바라봤다. 내가 떠나도 그림은 남을까? 멀리 성포리 어량에서 풍어가 가락이 들려왔다.
    (/ p.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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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생년월일 1954~
    출생지 서울
    출간도서 10종
    판매수 6,758권

    1994년 《실천문학》 봄 호에 단편 〈가깝고도 먼 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조선의 대수장가 간송 전형필의 전기를 집필한 것을 계기로 한국 근현대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의 삶을 복원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치밀한 자료조사와 탄탄한 스토리텔링,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을 몰입하게 하는 드라마틱한 구성으로 한국 전기 문학의 개척자, 전기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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