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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글쓰기 : 혐오와 소외의 시대에 자신의 언어를 찾는 일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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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이고은
  • 출판사 : 생각의힘
  • 발행 : 2019년 11월 25일
  • 쪽수 : 236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85585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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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나는 글 쓰는 사람입니다”
    더는 누추하지 않은 사뿟한 고백에 관하여


    여기, 입에 머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여섯 글자가 있다. [여성의 글쓰기]는 지난 십여 년간 기자 생활을 하며 꾸준히 글쓰기 훈련을 해온 저자 이고은의 한때는 면구스러웠던, 그러나 더는 누추하지 않은 사뿟한 고백을 담은 책이다. 고립되고 옹졸해진 마음들이 잔뜩 날이 선 채로 자기보다 약한 존재를 겨누는 반지성의 사회에서 이고은은 자신의 뭉근하고 끈질긴 경험을 토대로 존엄함을 지키는 첫걸음으로서의 글쓰기에 관해 말한다.
    책은 “나는 글 쓰는 사람입니다”라는 절절한 크기의 첫 문장으로 독자를 맞는다. 글을 쓴다는 것은 대관절 무엇이며, 우리에게 이 고역의 행위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아가 다른 무엇도 아닌 ‘여성의 글쓰기’는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 스스로 ‘알파걸’이라고 믿었던 이고은은 남성 중심적인 크고 거대한 질서 아래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버텼지만,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경험하며 무너지고 만다. 여성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겪는 소외와 배제, 차별로 인한 고통을 그제야 피부로 느끼게 된 까닭이다. “인간이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완전한 성찰을 얻을 수 없는 한계적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책의 문장들은 태어났다. [여성의 글쓰기]는 혐오와 소외의 시대,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언어를 찾는 여정에 함께하도록 이끈다.

    “제대로 살기 위해, 나는 써야만 했다”
    글쓰기 노동자가 ‘나의 언어’를 찾기까지


    "경향신문" 정치부와 사회부에서 일하며 대한민국의 갖가지 사회 구조적 문제들을 마치 자신의 고민인 양 떠안고 살았던 기자 이고은은 육아를 이유로 사표를 낸 후, 이제껏 알지 못하고 보지 못했던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와 마주한다. 적지 않은 시간 사회적 노동을 이어오며 크고 작은 도전과 성취를 이루었건만,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핍진하게 쪼그라들었다.
    이고은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이전과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것뿐이었다. “왜 세상은 나에게만, 여성에게만 포기를 향한 선택을 강요하는 것일까.” 그런 그에게 글쓰기는 가장 갈급한 일이요, 유일한 해방이었다. 자신 안의 불편한 감정에 귀 기울이고 그 이유를 찾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다단했지만, 간신히 붙잡은 단어들이 휘발되어 사라져버리기 전에 이고은은 쓰고, 쓰고, 또 썼다. 다행히 일간지 기자 생활을 하며 붙은 ‘글쓰기 근육’이 있었기에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인위적인 환경에서 다져진 기술이었지만, 글쓰기 근육은 그를 살게 하는 힘이 되었다. 다만 이고은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자로서의 글과 이후의 글에 결정적 차이가 있음을 깨닫는다. ‘나의 언어’였다. 그는 “자기만의 언어를 갖는 일은 삶을 되짚고 성찰하고 돌파해가는 일이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내기 위해 가장 절실한 과제”(23쪽)라고 말한다. 글을 통해 자신의 삶을 직시하고, 수용하고, 넘어서고자 하는 이고은의 움직임을 읽는 순간, 우리도 덩달아 마음을 들썩이게 된다. 그 간절함과 긴요함을 아는 까닭이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나의 언어로 ‘내 글’을 써보지 못한 회한은 뒤늦게 나를 재촉했다. 펜을 놓고 자아가 사라져버리는 기분이 극에 달할 무렵, 나는 어떻게든 나의 언어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어를 잃어버린 삶은 기록되지도, 기억되지도 않을 것이라는 공포가 엄습했기 때문이다. 삶의 무게가 나를 짓누르고 소리 내어 말할 목소리를 잃어버렸다고 느낄 때, 내 안의 모든 것을 더듬어 나의 언어를 끄집어내고자 애썼다.”(23쪽)

    “글쓰기는 여성에게 최적화된 노동이다”
    자신의 언어를 찾기 위한 전략과 기술 그리고 의미


    이어서 이고은은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매우 희망적인 명제를 전한다. 바로 “글쓰기는 여성에게 최적화된 노동”(18쪽)이라는 것이다. 글쓰기는 억압받는 삶에서 비교적 물리적으로 자유로이 행할 수 있는 노동으로서, 이는 여성의 한계 동시에 가능성에 대한 명제이기도 하다. 남성을 기본값으로 살아온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모든 여성은 언제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 질문하는 숙명에 놓인다. “남성에게 언어는 절실한 문제가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이 사회의 언어는 이미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 논리, 문제의식에 대해 일일이 표현할 필요도 없고, 남성으로서의 삶에 의문을 가질 일도 없다. 그러니 지금보다 더 나은 질서를 모색할 이유도 별반 없다는 것이다.
    반면 여성은 남성의 언어로 가득한 이 사회에서 자신의 언어를 찾아 헤맨다. “그 언어란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지워진 존재로서 경험의 기록이며, 자신을 배제하는 체제에 던지는 질문”(147쪽)이다. 이고은은 냉엄한 현실과 거대한 벽을 인식할 때면 오히려 막막해진 적도 있었지만, 막연하게 살아가는 것보다는 나의 존재가 훨씬 분명해졌다고 힘주어 말한다. 삶의 방황, 생활의 혼란에서 출발한 질문의 해답을, 그는 결국 페미니즘에서 찾았다. 그 도구는 쓰고 읽는 글이었다.
    인생의 항로가 바뀌는 경험에서 그는 분투했고, 이를 벼리고 벼려 자신만의 온전한 언어로 빚어낸 것이 책 [여성의 글쓰기]다. 이고은은 글쓰기에 필요한 일종의 태도와 마음가짐에 관한 생각을 시작으로, 기자 생활을 통해 쌓아둔 사유와 고민을 진솔하게 풀어냈다. 또한 ‘경력단절여성’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글쓰기의 힘에 대해 절감한 바를 적으며 잃고, 무력함에 빠지고, 좌절하면서도 저항하며 일어서고자 했던 크고 작은 경험이 글쓰기에 미친 영향에 관해 썼다. 후반부에서는 개인을 넘어 사회적 존재로서의 우리가 글쓰기를 통해 얻을 수 있고, 또 꿈꿀 수 있는 희망을 강조했다. 더불어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어떻게 쓸 것인가’를 주제로, 글쓰기에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나름의 기술을 정리하며 글쓰기 숙련기술자로서의 내공을 아낌없이 담았다.

    “우리의 언어가 세상 밖으로 꺼내져 나올 때,
    아주 미세한 진동이 일어난다”


    이고은은 충분하게 주어지지 않은 밭은 시간 속에서도 간절한 집중력과 진득한 애정을 쏟아 꾸역꾸역 글을 써 내려갔다. 집안일과 돌봄 노동 등 일상 시간 대부분을 누군가의 보조자로서 역할하는 데 써야 했던 그는 “누구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깊은 밤, 냉랭한 새벽”이 되면 원고 앞에 앉았다. 눈이 가장 피로하고, 온몸 구석구석이 가장 뻐근할 때, 그러나 머릿속은 가장 또렷하고 반짝였다. 나의 언어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그 순간을, 이고은은 “즐거우면서 고통스러웠고, 괴로웠지만 기뻤다”는 말로 갈음한다. ‘들어가는 말’에서도 등장하는 “글쓰기의 고통과 기쁨에 대해 말하고, 나누고 싶었다”는 그의 말은, 독자를 향한 조심스러우면서도 보드라운 손짓과도 같다.
    책은 ‘여성의 글쓰기’로 시작해서, ‘우리의 이야기’로 닫는다. 이고은은 말한다. “여성의 성찰은 실존적이지만 열려 있고, 또 자유롭다. 땅에 발을 디딘 채로 저 너머의 새로운 세계를 꿈꾼다. 이는 생물학적 성별을 떠나, 사실 누구에게나 내재된 ‘소수자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9쪽) 오랜 시간, 우리는 남성이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는 ‘주류의 언어’를 빌려 글을 써왔다. 그러니 주류로부터 비켜서 있는 수많은 타자들의 삶은 자연스레 소외되고 배제되기 마련이었다. 이고은은 엄마가 되기 전에는 몰랐다. 승자와 패자를 명확히 가르는 남성적 질서, 세상을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에 더 익숙했다. 애석하지만 우리 대부분의 인식 또한 그러하다. 남성 중심적인 질서 아래에서 오랫동안 작동해온 이 사회가 마지못해 겨우, 그것도 ‘젊고 새로운 세대의 여성’만을 위해 털끝만큼 내어준 몫을 두고 싸우느라 우리는 허우적댔다. 치열하고 고된 삶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고은은 바로 이 소외와 배제의 경험을 통해 어림짐작조차 쉽지 않은 크고 작게 가난한 무수히 다양한 삶과 마주할 수 있었다.
    목소리 내기는 모든 변화의 출발점이다.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꺼내어 말하는 일에서부터 모든 이야기는 시작된다. 책에는 더 나은 삶을 향한 이야기, 목소리, 글이 촘촘히 담겨 있다. 쓰지 않으면, 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여성의 글쓰기]는 우리가 지금 품은 그 마음을 활자에 고이 담아 내보내는 일을 살며시 부추긴다.

    추천사

    “무엇을 할 때 행복하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오래 묵혔던 속엣말을 글로 풀어냈을 때”라고 답했다. 글쓰기의 시작은 대개 괴로움이다. 삶의 곤란함, 관계의 부침, 도무지 바뀔 것 같지 않은 구조적 문제. 그러나 쓰고 나면 한결 후련했다. “제대로 살기 위해, 나는 써야만 했다”는 저자의 글을 밑줄 치며 읽었다. ‘글쓰기로 인해 나의 존재가 분명해졌다’는 여성이자 작가, 엄마, 아내인 이고은. “글쓰기는 여성에게 최적화된 노동”이라는 그의 말에 응당 고개를 끄덕였다. 읽는 삶도 중하지만 쓰는 삶도 중하다. 나만의 언어를 찾을 때, 우리는 더는 무명無名의 존재가 아니다. 목구멍에서 삼켜버린 말들, 이제는 ‘여성의 글쓰기’로 연대하면 어떨까. 흩어진 아이들의 놀잇감 사이에서 노트북을 열었던 이고은이 당신을 응원한다.
    - 엄지혜 / "채널예스" 기자, [태도의 말들] 저자

    글 쓰는 여성은 곳곳에서 투쟁한다. 남성의 언어가 점령해버린 일상에서 여성의 언어를 찾고자 싸운다. 글쓰기의 동력을 찾아 헤매고, 만들어진 생각에 의심을 이어가면서 좌절도 극복해야 한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과 글쓰기를 막아서는 외부의 허들 역시 넘어서야 한다. 그래서 글을 쓰는 일은 달콤하면서도 고통스럽다.
    ‘마른 수건 짜내듯 만들어낸 시간’ 속에 빚어낸 이고은의 글은 한 문장도 허투루 쓴 구석이 없다. 마디마디에 글을 향한 헌신과 절박함이 묻어난다. 그는 기자, 엄마, 경력단절여성, 시민단체 활동가 등 다양한 정체성과 경험 앞에서 면구함을 아는 이다. 그의 글쓰기 길라잡이도 단단하지만 사려 깊다. 살면서 해명되지 않았던 경험과 이해할 수 없었던 순간이 담담하게 그려질 때면 나의 고통과 무게가 나뉘는 기분을 느꼈다. 그러니 이 책을 통해 그가 만들어가는 글쓰기의 전선이 더욱 확장되리라 기대한다. 그리고 함께 걸어가고 싶다. 당신, 들어오라. 글 쓰는 여자들의 교집합 속으로.
    - 백운희 /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

    목차

    들어가는 말

    1장 자아를 찾아가는 글쓰기
    언어를 갖는다는 것
    자신과 대화하십니까?
    나를 확장하는 글쓰기
    이야기로 구성되는 기억과 삶
    나만의 특별함을 찾아서
    #1. 어떻게 쓸 것인가: 구조와 흐름

    2장 진실을 찾는 글쓰기
    ‘그림 그리듯’ 쓰기 위하여
    ‘기레기’의 시대
    질문하지 않는 사회
    사실은 어디에 있는가?
    뉴스를 읽고 시대를 읽다
    남성사회의 여성기자
    #2. 어떻게 쓸 것인가: 호흡과 리듬

    3장 결핍과 충족의 글쓰기
    태어난 여성, 길러진 여성
    ‘자기만의 방’을 찾아서
    소외된 자의 낮은 눈높이
    간절함에서 꽃피다
    글 쓰는 여성의 힘
    분노하고 울고 일어서다
    세상 밖으로 나온 여성들
    #3. 어떻게 쓸 것인가: 정확성과 표현

    4장 사회, 연대, 글쓰기
    자본주의 사회의 글쓰기 노동
    개인과 사회 그리고 목소리
    정치적 글쓰기가 아름다운 이유
    이타적 글쓰기
    글쓰기로 짓는 연대의 그물망
    남성을 생각하다
    우리 모두의 존엄함을 찾아서
    #4. 어떻게 쓸 것인가: 시작과 끝맺음

    나가는 말
    참고 도서
    이 책을 응원해주신 분들

    본문중에서

    또한 글쓰기의 고통과 기쁨에 대해 말하고, 나누고 싶었다. 누구나 크든 작든 인생의 부침을 겪는다. 나 역시 앞서 살아온 것과는 결이 다르게 삶의 변화를 겪으면서 여러 종류의 혼란이 동시다발적으로 찾아온 시기가 있었다. 답은 머리를 싸맨다고 해서 얻어지지 않았다. 고뇌와 질문이 진화하는 길목에서는 언제, 어디에서든 무언가를 쓰고 고치는 일을 거치곤 했다. 글쓰기의 과정은 고되고 그 결과는 자주 무위로 돌아갔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당장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더라도 글을 쓰며 마주하는 나의 삶에 변화가 찾아왔다. 나는 좀 더 유연하고, 좀 더 명료해졌다. 스스로 더는 누추하지 않았다.
    ('들어가는 말' 중에서/ p.8)

    크고 작은 모험이든 타인과의 상호작용이든,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은 그 결과를 나만의 것으로 소화하는 일이다. 바로 기록이다. 기록은 자신을 더욱 선명하게 규정한다. 인생을 눌러 담아 쓰는 글에는 확장된 나의 세계가 담긴다. 꾸준한 성찰의 결과가 쌓이면서 내 삶의 반경이 넓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넓어진 시야 속에서 사고는 더욱 깊어지고, 글감은 더욱 풍부하게 발견된다. 결국 글은 삶으로, 삶은 글로 선순환된다.
    ('나를 확장하는 글쓰기' 중에서/ p.38)

    수습기자 시절 선배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꾸지람 중 하나는 “넌 그게 안 궁금하니?”였다. 모른다는 사실을 최대한 들키지 않으려던 어쭙잖은 수습기자가 저렇게 많은 것을 궁금해했을 리가. 그러나 이제는 저 짧은 기사 안에 담기지 않은 더 많은 이야기가 있을 듯하다는 생각에, 궁금한 것이 줄을 잇는다. 더 많은 사실을 알게 되면 더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기에, 알고자 하는 욕망과 본능이 꿈틀댄다. 사건이란 그저 한 단면일 뿐, 그 이면에는 더욱 많은 이야기가 담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림 그리듯’ 쓰기 위하여' 중에서/ p.67)

    여기자의 씁쓸한 위상(?)을 설명해주는 농담도 기억난다. 국회 출입기자들은 언론사별로 여러 명의 기자가 팀을 이루는데, 연차가 가장 높은 ‘국회팀장’ 아래에 정당별 ‘반장’, 이하 중간 기수인 ‘잡진’, 막내인 ‘말진’ 순서로 체계가 잡혀 있다. 그런데 이들 사이 실질적 서열은 “국회팀장-정당 반장-여기자-잡진 남기자-말진 남기자” 순이라는 우스갯소리가 공공연하게 있었다. 앞서 말한 ‘국회의원이 여기자를 잘 기억하는 이유’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곱씹어 보자면, ‘잡진’까지는 여기자가 유리하지만 반장 이상인 ‘관리자’로 넘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관리자급 기자 중에 여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팀장과 반장의 성별 기본값은 남성기자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남성사회의 여성기자' 중에서/ p.102)

    계산기를 두드려 스스로 사표를 썼다. 나는 양가 부모님에게 육아를 위탁할 수 없었다. 믿고 의지할 만한 제3의 양육자를 찾지 못했고, 적극적으로 찾을 의지도 없었다. 부모 중 한 사람이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면 당연히 내 몫이어야 했다. 똑같이 공부하고 대학에 가서 취업해 사회생활을 하지만, 직업과 직무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나보다 훨씬 많은 연봉을 받는 남편은 애초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개인과 가정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남성이 100만 원을 벌 때 여성은 평균 약 68만 원을 받는 대한민국의 현실(2018년 OECD ‘성별 임금격차’ 기준) 속에서, 우리 가정과 비슷한 상황이라면 나와 같은 선택을 하게 되는 여성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런 나의 퇴사는 과연 자발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노력과 성취라는 삶의 기본 작동 기제가 무의미해지면서, 나는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했다. 이는 여성이라는 생물학적·사회적 정체성에 대한 재정의로 이어졌다. 내 뜻대로 살아지지 않는 현실을 마주하자, 그제야 나보다 앞서 차별과 억압에 시달려온 다른 여성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세상이 이제껏 내게 비교적 관대한 편이었음을 깨달았다. 그간 결혼, 임신, 출산, 육아를 이유로 일터에서 내몰린 여성이 얼마나 많았던가. 아예 취업 시장에서 배제된 여성이 얼마나 많았던가. 교육의 기회가 제한되거나, 타고난 기질을 억압받거나, 혹은 아예 세상에 태어나지조차 못했던 여성은 얼마나 많았던가. 그저 여성이라는 이유로.
    ('태어난 여성, 길러진 여성' 중에서/ p.117)

    가정이라는 공동체의 기능적 관점에서 볼 때 나의 글쓰기는 주요하지 않은 일이었다. 오히려 내게 주어진 역할을 방해하는 요소였다. 남편은 나의 글쓰기를 응원한다고 말했지만, 내가 글에 몰두할수록 아내와 엄마의 역할에 소홀해지는 데 대한 불편한 마음을 내비쳤다. 누구도 내게 글을 쓰는 대신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데 전념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지만, 글 생각을 하다가 놓쳐버린 가사와 육아의 공백에 스며드는 죄책감은 내 몫이었다. 타인의 시선으로 보자면, 나의 글쓰기는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누리는 고고한 취미생활 정도로 치부되곤 했다. 내 편은 없는 듯했다.
    ('‘자기만의 방’을 찾아서' 중에서/ p.123)

    내게 엄마가 된다는 것은 이전에는 체감하지 못했던 소외와 배제, 차별과 억압의 경험을 쌓는 일과도 같았다. 세상은 미혼의 젊은 여성인 내게는 친절한 편이었지만, 엄마가 된 30대 중반 여성인 내게는 꽤 불친절했다. 아이와 함께 다니지 않는 여성일 때의 나는 이 사회에서 적어도 이류 시민 정도는 되었지만, 아이와 함께 다니는 엄마인 나는 늘 민폐를 끼치는 삼류 시민 취급을 받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기자로서 아이와 함께 세상에 나가면 ‘일도 하고 육아도 하는 워킹맘’으로 칭찬받았지만, 무명의 엄마로서 아이를 동반하면 ‘남편이 벌어준 돈으로 무전취식하는 무능한 아줌마’로 천대받았다. 나의 존재는 그대로인데, 외피가 바뀌자 세상은 나를 다르게 대했다. 차별은 이미 구조적으로 면밀하게 설계된 사회 질서에 따라 작동했다. 내가 어떤 계층, 어떤 층위로 분류되느냐에 따라 세상이 나를 대하는 운영 체제가 자동으로 바뀌었다. 이런 경험은 내가 겪어보지 못한 다른 존재, 다른 계층, 다른 집단의 다른 삶에 대해 상상하게 했다.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존재하는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해보는 일은 나를 돌아보게 했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좁은 시각으로, 얼마나 굳은 자세로, 얼마나 뻣뻣한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보았던가.
    ('소외된 자의 낮은 눈높이' 중에서/ p.132)

    세상을 향한 문을 열어젖히면 문고리를 쥔 채 그 앞을 서성이는 다른 여성들을 찾을 수 있다. 서로 말을 걸고, 화답하던 이들은 차츰 밖으로 걸어 나왔고, 만나기 시작했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이에게도 나와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공명하고, 바로 옆집에 사는 이와도 공감의 전율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각성했다. 우리는 또 다른 나 자신임을, 이 사회 속에서 연결된 존재들임을 깨달았다.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사적인 일들은 결코 사적인 일이 아니며, 사회의 거대한 구조와 질서 속에서 작동하는 공적인 의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인식을 분명히 하게 된 것은 회사를 그만두고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음을 깨달은 무렵부터였다. 나는 애타게 무언가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내가 겪는 혼란과 뿌리 뽑힌 정체성의 실체, 그 근원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야만 했다. 닥치는 대로 읽고, 사고의 줄기를 찾았다 싶으면 그 뿌리를 파내는 심정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자 했다. 그러다 나름대로 생각이 정돈되면 글로 옮기는 일을 반복했다. 삶의 방황, 생활의 혼란에서 출발한 질문의 해답은 결국 페미니즘으로부터 찾았다. 그 도구는 쓰고 읽는 글이었다.
    ('간절함에서 꽃피다' 중에서/ p.137)

    자신의 언어는 사회 속에서 나의 존재를 명확히 인지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나에 대해 쓰다 보면 스스로의 처지가 뚜렷해지고, 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알게 된다. 여성은 삶에서 경험한 차별과 소외, 배제를 통해 사회의 부당한 질서를 인지하고 꿈꾸던 이상과의 격차를 느끼며 인지 부조화를 겪는다. 이를 견딜 수 없어 사회 변화를 추동해야 하는 당위를 얻고, 자신을 설득해서 스스로 움직이게 한다. 여성의 글쓰기란 새로운 자신과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기 위한 주문 의식과도 같다.
    ('글 쓰는 여성의 힘' 중에서/ p.146)

    이루지 못할 것만 같은 머나먼 꿈을 향해 정진하게끔 만드는 싸움의 도구는 변화에 대한 의지다. 나의 현실과 꿈꾸는 이상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는 의지. 현실과 꿈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투쟁의 역사는 지나온 선배들이 남긴 글들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는 그 정치적 글쓰기의 흔적 속에서 세상이 조금씩 변해왔음을 배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왜 글을 써야 할까? 이는 곧 무엇을 위해, 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과도 같다. 나아가는 삶, 싸우는 글. 정치적 글쓰기가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곧 삶을 향한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글쓰기가 아름다운 이유' 중에서/ p.190)

    누구에게나 글쓰기는 고독한 일이다. 그 누구도 나의 글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 그러니까 종착지는 어디이며 어디쯤에서 끝맺어야 할지에 대해 결정하지 못한다. 결론을 향해 나아가는 일은 오롯이 작가의 몫이며, 글에 불어넣는 정신 역시 작가의 고유한 영혼에서 비롯한다. 그런 의미에서 솔닛의 말처럼, 작가로서의 축복이란 ‘끈기’일는지 모른다. 홀로 하는 항해의 끝을 향해 끈질기게 견디고 묵묵히 버티며 작업을 이어가는 힘이 결국 글을 완성하는 법이니까. 얼기설기 씨줄 날줄로 엮어놓은 논리를 계속해서 촘촘히 메우고, 여기저기 구멍 난 감성의 빈 공간을 채워 매끈한 옷을 지어내는 것은 꾸준하게 그 일에 매달리는 의지로부터 시작된다.
    ('글쓰기로 짓는 연대의 그물망' 중에서/ p.201)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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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20대에 경향신문사에 입사했다. 정치부 및 사회부 기자로 종횡무진하며 대한민국의 갖가지 사회구조적 문제들을 마치 자신의 고민인 양 떠안고 살았다. 30대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야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일상 속 정치사회적 이슈들을 무겁게 마주하고 있다.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는 석사 논문 "인터넷 뉴스 플랫폼에 따른 뉴스 공신력 평가에 관한 연구"를, 둘째 아이 임신 중에는 단행본 [잃어버린 저널리즘을 찾습니다]를 집필했다. 주변에선 다들 "공부로 태교하느냐"며 경악했다. 언제까지고 당당한 워킹맘이기를 바랐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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