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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 리더십의 유형과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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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국왕의 리더십이 성공적인 결실을 맺었을 경우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 새로운 개혁안을 마련할 때 관리와 백성들의 여론을 두루 청취하고 이들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둘째, 개혁안을 마련해도 새 제도를 시행하면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셋째, 기왕에 있었던 제도의 문제점과 새 제도의 부작용을 파악하려면 선왕 대의 경험을 꼼꼼히 검토할 필요가 있었다. 넷째, 재정 제도의 개혁에는 이해관계의 조정과 타협이 필요했다. 성공적인 국왕의 리더십이란 이상의 몇 가지 특징을 고루 갖추었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출판사 서평

    국왕 리더십의 이상과 실제

    본서는 ‘조선 국왕의 리더십과 소통’이라는 연구 시리즈의 마지막 책에 해당한다. 본 연구는 조선 왕조가 500년 이상 장구한 시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원인으로 국왕의 리더십이 어떻게 작용하였고, 국왕이 사회 각 계층과 맺었던 소통 방식은 어떠하였는지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본 연구 시리즈는 4부작으로 구성되었다. 먼저 『조선시대 국왕 리더십 관觀』에서는 국왕의 리더십에 대한 인식을 중국이나 일본의 리더십과 비교하여 정리하였고, 『국왕과 양반의 소통 구조』와 『국왕과 민의 소통 방식』에서는 국왕이 핵심 지배층인 양반과 주요 피지배층인 민과 맺었던 소통방식을 정리하였다. 마지막으로 본서인 『국왕 리더십의 유형과 실제』에서는 국왕의 리더십을 다섯 가지로 유형화하고, 국왕의 리더십이 국정운영의 현장에서 실제로 나타나는 모습을 정리하였다.
    조선 왕조는 그 시기를 개창기, 안정기, 혼돈기, 중흥기, 쇠퇴기로 구분할 수 있으며, 각 시기별 상황에 따라 국왕의 리더십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본서는 국정운영에 나타나는 국왕의 리더십을 국운 융성, 민생 안정, 인재 양성, 군사 운용, 문화 창출 등 다섯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각 유형별로 뚜렷한 공적을 남긴 국왕의 리더십을 정리하였다. 본서에서는 조선시대 27명의 국왕 가운데 15명의 국정운영에 나타나는 리더십을 다루었다. 본서에서 다룬 국왕은 태조, 태종, 세종, 문종, 성종, 중종, 명종, 선조, 광해군, 인조, 효종, 숙종, 영조, 정조, 고종이다.
    첫 번째 유형인 ‘국운 융성의 리더십’에서는 세 시기에 나타나는 국운 융성의 양상을 정리하였다. Ⅰ장은 개창기의 리더십으로, 태조는 혁명군과 건국 세력을 구성하여 조선을 개창하였고, 즉위 교서를 통해 고려 왕족을 대우하고 고려의 제도를 계승하며 조세와 형법을 공정하게 시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태종은 태조 대에 형성된 건국 세력을 재편하면서 군 통수권을 확보하였고, 육조의 업무를 국왕에게 직접 보고하는 육조직계제六曹直啓制를 시행하여 왕권과 중앙집권을 강화하였으며, 모든 지방에 수령을 파견함으로써 국가의 창업을 완성시켰다. Ⅱ장은 안정기와 중흥기의 리더십으로, 성종은 건국 초부터 선대 국왕들이 정비해 왔던 예악형정禮樂刑政을 정형화하고 국가의 통치 구도를 정리한 『경국대전』과 『국조오례의』를 편찬하였고, 경연을 활성화하여 국정 운영 능력을 함양하였으며, 강무講武에도 힘을 써서 문무를 겸비한 국왕이 되었다. 또한 영조는 즉위 초에 발생한 무신란을 극복한 이후 탕평 군주로서의 권위를 강화하고, 왕정王政이 주도하는 예치사회를 이루기 위해 『속대전』과 『속오례의』를 편찬하였다. 이는 숙종 대에 편찬된 『수교집록』과 『전록통고』를 계승하는 사업인 동시에 성종 대의 편찬 사업을 보완하는 업적이었다. Ⅲ장은 쇠퇴기의 리더십으로, 고종이 대한제국을 건설하면서 서세동점西勢東漸으로 나타난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다루었다. 고종은 세계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자주독립의 길을 모색하고자 대한제국을 건설하였다. 고종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의 황실문화를 창조하면서,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고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는 것은 전통적 방식을 따랐고, 세계 각국과 외교관계를 맺을 때에는 만국 공통의 국가적 상징물 체계를 갖추었다. 고종이 창조한 새로운 황실문화는 환구단의 건설, 훈장 제도의 정비, 태극기의 제정 등으로 나타났다.
    두 번째 유형인 ‘민생 안정의 리더십’에서는 국왕이 백성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민을 대상으로 민생을 안정시켰던 네 국왕의 리더십을 다루었다. Ⅰ장에서는 농업 경영을 합리화하려고 농서農書를 편찬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세종은 태조와 태종의 농정農政을 계승하면서 신중하게 선발한 지방관들이 현지에 가서 농사를 권장하도록 당부하였고, 하삼도下三道지역에서 효과가 입증된 농법을 집성한 『농사직설』을 편찬하여 농민들이 쉽게 이해하고 농업 생산성을 높일 수 있게 하였다. 정조는 세종을 뒤이어 국가 차원에서 새로운 농서를 편찬하는 사업을 추진하였고, 국왕의 명령에 따라 전국의 응지인應旨人들이 올린 농서를 규장각에서 수합하여 농서대전農書大全을 편찬하게 하였다. 세종 대의 『농사직설』이 각지의 관찰사가 현지 농민들의 경험을 수합한 것이라면, 정조 대의 농서대전은 각지의 응지인들이 직접 올린 농서가 바탕이 되어 조선후기에 발달한 농업 기술을 집대성한 것이었다. Ⅱ장에서는 수취 제도를 혁신하기 위한 국왕의 노력을 정리하였다. 세종은 즉위 초부터 답험손실법의 폐단을 알고 새로운 조세제도인 공법貢法을 구상하였으며, 중앙과 지방의 관리는 물론이고 소민들의 의견까지 광범위하게 청취하여 수정한 끝에 새로운 공법제를 마련하였다. 숙종은 각 지방의 공물을 어떻게 부과할 것인지에 대한 규정이 불확실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물의 부과 기준을 토지에 두고 현지 사정에 따라 쌀, 목면, 동전을 거두는 대동법을 확정하여 전국적으로 시행하였다. Ⅲ장에서는 군역 제도를 혁신하는 제도적 방안을 정리하였다. 영조는 양인이 부담하는 양역良役을 현물로 거두면 경제력이 기초가 되어야 하고, 인정人丁을 단위로 하면 양반이 제외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대동법처럼 토지를 기초로 하여 쌀, 목면, 동전을 거두는 균역법을 확정하여 전국적으로 실시하였다. 또한 정조는 노비의 신공身貢을 감축시킨 영조의 조치를 계승하였고, 공노비인 내시노비內寺奴婢를 혁파하고 그들의 신공을 양역의 하나로 간주하는 논의를 활성화시켰다. 1801년에 순조가 내시노비를 혁파한 것은 정조가 오랫동안 계획해 온 일을 실현한 것이었다.
    세 번째 유형인 ‘인재 양성의 리더십’에서는 국왕이 유생과 문반 관리를 대상으로 인재를 양성하는 리더십을 발휘한 경우를 세 시기로 구분하여 정리하였다. Ⅰ장은 개창기의 리더십으로, 태종이 과거제를 정비하여 3년마다 치르는 식년시 외에도 왕실의 경사가 있을 때 증광시를 시행하여 인재선발권을 주도하였고, 현직 관료들을 대상으로 하는 중시重試를 시행하여 관료 사회의 분위기를 쇄신하였다. 태종이 시행한 시험은 이후 조선 과거제의 근간이 되었다. 세종은 태종이 마치지 못한 사학四學의 건립을 마무리하고, 성균관과 사학, 향교의 교육 환경과 교과 과정을 정비하며, 유학 교재를 편찬하여 각 학교에 배포함으로써 인재 양성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Ⅱ장은 안정기의 리더십을 검토하였다. 성종은 관학을 육성하고 유학적 소양을 갖춘 관리를 양성하기 위해, 성균관 유생과 문신을 대상으로 하는 전강殿講과 과시課試를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나이가 어리고 총명한 관원에게 사가독서를 시행하여 학문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하 생략)

    목차

    서언 국왕 리더십의 이상과 실제 ·7

    1부 국운 융성의 리더십 ·17
    Ⅰ. 왕업 개창 19
    1. 태조와 조선 건국 19
    2. 태종과 육조체제 31
    Ⅱ. 국운 융성과 문화 창달 44
    1. 성종과 『경국대전』·『국조오례의』 44
    2. 영조와 『속대전』·『속오례의』 58
    Ⅲ. 제국의 탄생 71
    1. 고종과 대한제국 72
    2. 황제와 환구단 84


    2부 민생 안정의 리더십 ·97
    Ⅰ. 농업 경영의 합리화 99
    1. 세종과 『농사직설』 99
    2. 정조의 농서대전(農書大全) 기획 107
    Ⅱ. 수취 제도의 혁신 116
    1. 세종의 공납제 116
    2. 숙종의 대동법 124
    Ⅲ. 군역 제도의 혁신 132
    1. 영조의 균역법 132
    2. 정조의 노비제 혁파 논의 141

    3부 인재 양성의 리더십 ·149
    Ⅰ. 인재 양성의 기반 마련 153
    1. 태종과 과거 153
    2. 세종과 관학 162
    Ⅱ. 인재 양성의 중흥 174
    1. 성종과 문신 정시 174
    2. 중종과 사가독서 181
    Ⅲ. 새로운 인재 양성의 길 192
    1. 영조와 유생 과시 192
    2. 정조와 초계문신 201

    4부 군사 운용의 리더십 ·211
    Ⅰ. 부국강병을 향한 새 군제 도입 213
    1. 문종과 오위제 213
    2. 선조와 훈련도감 223
    Ⅱ. 국력의 발휘 235
    1. 광해군과 심하 전투 235
    2. 효종과 나선정벌 248
    Ⅲ. 국정의 안정 260
    1. 명종과 도적 260
    2. 인조와 이괄의 난 271
    3. 영조와 이인좌의 난 280

    5부 복식으로 본 문화 창출의 리더십 ·289
    Ⅰ. 새 시대를 여는 관복 294
    1. 태종과 면복 294
    2. 세종과 의례복 300
    3. 성종과 관복 313
    Ⅱ. 풍속을 바꾼 복식 324
    1. 중종과 비단 324
    2. 인조와 체발 333
    3. 영조와 족두리 339
    Ⅲ. 백성의 풍요와 나라의 안위를 생각하다 351
    1. 성종과 양잠 351
    2. 정조와 군복 361
    3. 고종과 두루마기 370

    참고문헌 ·380
    색인 ·389

    본문중에서

    태조 이성계는 동북지방 출신으로 선대부터 그곳에서 세거世居하였다. 이성계의 선계先系인 목조穆祖 이안사李安社는 1255년 다루가치[達魯花赤]로 경흥부 인근 알동[斡東]에 거주하였다. 목조의 아들인 익조는 함주咸州를 본거지로 하면서 귀화하는 여진인을 귀주歸州, 초고대草古臺, 왕거산王巨山, 운천雲天, 송두松豆, 도련포都連浦, 아치랑이阿赤郞耳 등에 이주하여 살게 하였다. 도조도 안변安邊 인근에 주재하면서 여진인을 관리하며 목축에 종사하였다고 실록에는 밝히고 있다. 조선 왕조의 공식 기록인 실록을 보면, 이성계의 선계는 여진족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졌고 혈연적으로 통혼通婚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성계의 가족이 무예에 출중한 것도 유목민족과의 교류에 따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배경에서 이성계가 공민왕 때 출사한 이후 동북면에서 변경을 개척하는 것이 용이하였다. 예컨대 1370년(공민왕 19) 정월 이성계는 기병 5,000명과 보병 10,000명을 거느리고 동북면으로부터 황초령黃草嶺을 넘어 압록강을 건넜다. 이때 이성계의 무공에 의해 지역민들이 진압된 면도 있었지만 귀순한 사람도 상당수였다. 이성계는 선대부터 한반도 북방 지역을 주도하는 지도력을 갖추고 있었고, 이성계가 고려 조정에 출사하면서 변경에 대한 공식적인 본격적 활약이 가능했다.
    이성계 일족이 여진 사회와 관계를 맺었던 것도 고려 조정에 이성계가 진출할 때 큰 역할을 한다. 여진족이 한반도의 왕조와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고려 공민왕이 원나라가 고려의 동북면에 설치하였던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무력으로 회복한 이후이다. 고려의 동북면은 쌍성총관부가 설치된 이후 고려의 유민과 여진족이 혼재하던 지역이었다. 그러므로 공민왕이 쌍성총관부를 공격할 때 원으로부터 이 지역의 세습 작위를 지니고 있던 이성계와 이자춘李子春 부자는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이들은 동북의 여진 중에서 경쟁 상대였던 삼선三善과 삼개三介를 물리치고 승리하였고, 1383년(우왕 9)에 고려를 침략한 호융도胡拔都를 제거하여 이 지역의 맹주로 자리 잡았다. 고려의 변경을 안정시키고 외적의 침략을 예측할 수 있는 정보망을 갖춘 것이다.
    이후 이성계는 여진족의 귀순을 적극적으로 종용하여 고려말 동북 변경의 안정을 가져왔고 보위에 오른 이후 비교적 안정적으로 동북의 여진족을 관리할 수 있었다. 특히 이성계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개국공신 이두란李豆蘭이 원래 여진의 추장 고론두란古論豆蘭 티무르[帖木兒]였다가 이성계에게 감화되어 귀순한 인물이라는 것이 대표적인 일화일 것이다. 그러므로 여진과 이성계 일족의 관계는 조선 왕조의 건국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 셈이며, 그 배경이 동북면이었다.
    동북면의 변경 지역인 함경도는 조선 왕조 개창자인 이성계의 선조가 활동을 하며 기틀을 잡은 곳으로 ‘조기지지肇基之地’, ‘풍패지향豊沛之鄕’이라고 불리던 곳이다. 이곳은 개국 초부터 늘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대한제국기에 이르기까지 왕실의 상징으로 회자되던 곳이다. 따라서 이성계 가문과 함경도의 지역민, 특히 여진족과의 관계는 긴장보다는 우호적인 경우가 많았다. 이성계 가문의 누대에 걸친 노력과 이성계의 개인적인 위용으로 회유 내지는 포섭된 여진족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이성계의 즉위 이후 여진족의 대소 추장들은 관직을 수여받았고, 두만강 이남에 거주하던 자들은 모두 편호編戶로 편입되었다.
    태조는 개국 초기인 1393년(태조 2) 여진 출신인 이지란李之蘭을 동북면도안무사東北面都按撫使로 임명하여 지역 여진의 초무招撫와 변경 개척을 맡겼다. 이지란은 훗날 갑산과 경흥인 갑주甲州와 공주孔州에 축성築城을 하여 두만강 유역의 국경 방어거점을 정한뒤 지역 여진족을 귀순시키고 조선인과의 결혼 및 풍속을 습득하게 해서 군역과 조세 부담을 지니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태조는 이지란의 활동이 성공적이었다고 보고, 1397년(태조 6)에는 정도전을 동북면도선무순찰리사東北面都宣撫巡察理使로 삼아 지역의 행정기구를 설치하였다. 정도전은 안변 이북과 북청北靑 이남을 영흥도永興道로 하고 단천端川 이북과 경흥 이남을 길주도吉州道로 하였으며 주부군현을 설치하여 지역 행정체계를 재편하였다.
    이상의 실록 내용은 이성계를 추앙하기 위해 영웅적으로 미화한 부분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여진족이 조선에 복속한 것은 이성계 개인의 지도력과 선대 집안이 대대로 여진과 관계를 맺어왔던 결과일 것이다. 이는 태종이 선대처럼 지역 여진에 대해 회유와 포용 정책을 쓰기보다는 군사적 활동을 위주로 하는 강압적인 정책을 써서 여진족의 반란과 공격으로 조선의 관군과 백성들이 피해를 입었던 것과 비교가 된다.
    원래 북방의 유목민족인 여진족은 정주定住해서 농경을 하던 조선 왕조 사회보다 호전적이었다. 여진족은 조선이 건국한 이후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발생하기 이전까지 모두 130회 이상에 걸쳐 조선의 북방 국경을 침략하였다. 그에 반해 조선은 여진에 대해 15회에 걸쳐 정벌전을 전개하였다. 세조 대에 이르러서도 여진은 연중 시기를 가리지 않고 조선을 침략하였다. 실제로 조선의 북방은 압록강과 두만강이라는 천혜의 요새가 있다고는 하지만 겨울과 봄철의 갈수기에는 쉽게 넘어 올 수 있는 지류들이 많았다.
    더욱이 여진족은 부족 단위로 움직이는 우수한 기동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농경보다는 유목과 수렵에 종사하였으므로 평소에도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전술 체제를 몸에 익힌 준 군사집단이었다. 이런 무장 능력을 갖춘 여진족에 대해 조선 정부도 군사력을 동원하는 강경책 이외에 회유와 동화의 유화책을 시행할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인
    유화책이 1405년(태종 5)부터 파견하였던 경차관敬差官이다. 경차관은 국왕의 명령을 받고 파견된 외교관으로 여진족의 대표에게 선물을 보내거나 효유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경차관은 여진족과 대마도에 파견되었으며 조선 초기 대외 갈등을 유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이들은 분쟁이 발생한 지역의 조사에서 해당 부족을 찾아가 질책하는 일까지 하였다. 경차관은 ‘경봉왕지敬奉王旨’가 주요 임무였으므로 국왕을 대신하여 명령을 전달하는 메신저였다. 그에 따라 경차관을 영접하는 여진 측의 의례도 조선 측에서 종용한 의례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경차관의 파견이 곧 그 지역 여론을 환기시키고 양측의 긴장관계를 해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이하 생략)
    ('1. 태조와 조선 건국 1) 변방 무장에서 개국 시조' 중에서)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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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사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학예연구사를 거쳐 현재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국립고궁박물관, 외교부의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는 「조선후기 경학사상 연구」(일조각, 1996), 「정조의 제왕학」(태학사, 2007), 「조선후기 지식인의 대외인식」(새문사, 2009), 「왕세자의 입학식」(문학동네, 2010), 「왕실의 천지제사」(돌베개, 2011), 「조선왕실의 외교의례」(세창출판사, 201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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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사 전공.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숙명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1997년 [조선시대 문과급제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진주 경상대학교, 진주교육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하다가 2002년부터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을 거쳐서 2007년부터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현재 필자는 과거제, 문과합격자의 관직 진출 양상 등을 연구하고 있다. 그의 큰 사례 연구로 왕실과 그 구성원 등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으며, 다양한 가문의 관직 진출 분석을 통해 조선 사회의 특성을 심층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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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간도서 16종
    판매수 873권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의상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고,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왕실문헌연구실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한국학중앙연구원, 2013), 「치마저고리의 욕망」(문학동네, 2013), 「조선 사대부가의 살림살이」(한국학중앙연구원, 2016)가 있으며, 논문은 「충청도 지역 17세기 사대부의 의례별 복식연구-조극선의 『인재일록』을 중심으로」(서강인문논총, 2018), 「장서각소장 왕실발기로 보는 순종 가례복식연구」(고문서연구, 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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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경기대학교 교양학부 조교수, 조선후기사 전공
    경기대학교 사학과,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전임연구원으로 근무하다 지금은 일본 동경대학교 객원연구원으로 있다. 논저로 [조선사회 이렇게 본다](공저, 지식산업사, 2010), [역주 감계사등록 1,2](공저, 동북아역사재단, 2008, 2009), [조선후기 국왕의 능행 연구](2008), [대한제국기 순종의 서순행 연구](2011) 등이 있다.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10종
    판매수 658권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조선 후기 무과 급제자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쳤다. 무관과 여성 등 비주류의 삶에도 반드시 전해져야 할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다는 생각으로 조선 사회를 탐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신사임당전 - 역사 속 신사임당 그녀는 누구인가》, 《조선의 여성 역사가 다시 말하다》, 《고려, 북진을 꿈꾸다》, 《한국 전통 병서의 이해》(1, 2)가 있다. 공저로는 《실학, 조선의 르네상스를 열다》, 《글로벌 시대에 읽는 한국 여성사》,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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