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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의 노래 : 이설빈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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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어렵고
    가렵다
    두렵고
    마렵다”

    세상의 모든 경계에서 자아낸 시
    불가능한 균형으로 가득 찬 불안의 서


    2014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이설빈의 첫 시집 [울타리의 노래]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등단 당시 심사위원들은 그의 시가 말의 반복과 변주를 통해 리듬감을 형성하면서 시적 긴장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고 평하며, 구조적인 배치가 안정적으로 구현되었을 때의 매력에 주목했다. 5년 넘게 쓰고 다듬은 시 50편이 담긴 [울타리의 노래]에는 이러한 이설빈 시의 장점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이설빈은 “매일 태어나는 불능과 더불어 일상을 살아가는 이의 외침과 속삭임”(문학평론가 조강석)을 담아낸다. 있는 힘을 다한 하루의 끝, “피로가 너무 선명해서 잠들지 못”(「레킹 볼」)하는 새벽과 눈을 떠 다시 몸을 일으키려는 세계의 아침. 이 시집은 그 모든 시간에 밀려드는 정서를 포괄해 이야기-우화로 풀어놓는 것이다.

    시를 쓸 때는, 불가능한 게 불가능을 앞서서, 결국엔 쓰면서 보여요. 그럴 때 뭔가를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그 뭔가와 함께 새로 재편되는 느낌._2018년 <데일리포엠> 인터뷰에서

    [울타리의 노래]는 수평의 균형 감각과 평정 상태가 무너지는 계기와 양상을 우화로서 펼쳐놓은, 즉 불안의 정동이 중심에 놓여 있는 시집이다. 시인은 기울어짐에 대한 예민한 감각, 불안을 직정적으로 토로하는 대신 정동적 정황을 통해 독자의 편에 인계함으로써, 공감에 호소하기보다는 독자로 하여금 각자 자신의 불안을 계량해보게 한다.
    - 조강석 / 문학평론가

    “혼자서도 참 잘 다치시네요”
    상처투성이 피로의 양식

    나는 얼마나 더 헐떡여야 할까
    유실된 종착지에 다다르기 위하여
    나는 내 확신의 뒷굽을 몇 번이나 갈아야 하는 걸까
    ('나무의 베개' 중에서)

    이설빈의 시는 쉼 없이 달려가고 있다. 어딘가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듯도,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는 듯도 하지만 어찌 됐든 멈추지 않는다. 출발지에서 멀어졌으나 달리다 보니 종착지는 사라져버린 상태, 그러니 멈출 수 없다는 표현이 좀더 적확하다. 무턱대고 달리면 종착지인 줄 알았던 것이 사실 장애물이나 통과 지점인 경우가 많은데, 마치 막다른 길처럼 보이지만 비껴갈 수 없어 여전히 달려서 지나쳐야만 한다. 죽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는 달리기처럼. 이설빈의 시를 삶에 대한 비유로만 읽는다면 분명 너무 좁고 투박한 독해겠지만, 이 고됨과 허덕임은 반복되는 일상을 문득 낯설게 의식하는 순간 몰려드는 무게감과 닮았다.

    이 시집의 해설을 맡은 조강석은 이설빈의 시가 우화parable적이라고 보았다. 우화는 구체적인 장면들을 통해 환영적인 깊이를 만들어낸다. 등단작이자 표제 시인 「울타리의 노래」에는 이러한 우화적인 면모가 특히 잘 드러나 있다. ‘나’는 “건초지”를 달려 울타리를 넘어가는 아이와 어른 들을 지켜보면서 경계에 걸터앉아 있다. “나를 가리키던 시간들/내가 될 수 없던 몸짓들/그것들 모두가/내 생의 단위로 자라날 때까지” “여기, 나는 완강히 버티고 서서” “그 모든 걸 굽어”본다. 그 사이사이 종착지인 “목초지”에 도착하기에는 ‘아직 멀었다’는 말이 표현을 달리하면서 여러 차례 반복된다. 들이닥치는 울타리들을 넘고 넘어도 “아직 목초지는 멀다”. “모든 걸 넘겨 보”내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유령 같은 “그림자”만이 울타리를 넘는다. 왜 넘는지도 모르는 채 뛰어 넘어가버린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뛰어넘지 않으면 누군가 나를 뛰어넘고야 말 것 같은 불안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끝내 가닿지 못하고 눈이 멀어버리는 지독한 피로가 여기에 있다.

    이리저리 끌려다녔지 결국
    내 덜떨어진 생의 균형추는 이렇게
    나를 까부수고 있지 안쪽부터 느리게 느리게
    망각보다도 느리게
    생이 우리로부터 설득력을 잃어가는 속도로
    ('레킹 볼' 중에서)

    “나는 앉거나 서지도 자거나 깨지도 않고 기울어져”
    필연적 불안의 탄생
    “내 덜떨어진 생의 균형추”는 “안쪽부터 느리게 느리게” 늦된 ‘나’를 부순다. [울타리의 노래]에는 균형 감각과 평정 상태, 기울어짐에 대한 이미지가 수록 시들의 일화anecdote적 면모와 함께 또렷하게 드러나 있다. 마찬가지로 외적 형태도 동일하거나 유사한 문장이 병치/반복되며 시의 축을 이루고 그 사이는 아주 내밀한 이야기로 채워진다. 이설빈의 시는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은폐하거나 누설하려는 ‘나’의 욕망을 “세상과의 멱살잡이” 혹은 “세상과의 악수”(「베개는 불능의 거푸집」, p. 65) 같은 상반된 이미지로 “내내 쌓아두고 저울질”한다(「구멍 난 궤짝 속에서」). 이 균형은 어떠한 균형추로도 영원히 유지될 수 없는 팽팽한 긴장 상태에 있으며, 따라서 균형을 지속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불안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이설빈의 시집은 말할 수 없는 정서를 “버티고 서서”(「울타리의 노래」) 오래도록 바라보고자 하는, 그리고 그것을 ‘쓰는 몸’이 되어 기록하려는 불안의 서다. “기울어진다/수평이 무너진다 내가 딛고 있던/매듭이 끊어진다” 할지라도 “언제나 처음인 것처럼” 다시 시도한다(「불안의 탄생석」). 그의 시는 “엄연히 존재하는 불안을 부정하거나 낙관으로 쉽게 대체하는 정신 승리 대신 불안을 기억하라는 것에 가깝다”(조강석). 희미한 존재인 “기다란 그림자”(「울타리의 노래」)는 시집 마지막 시에서 “자신이 헤쳐 지나온 건초지”를 돌아보고, 마침내 그토록 오래 바라보던 “울타리”가 “불길에 사로잡히는” 모습을 발견한다(「전조」). 불안을 기억하고 불가능함을 새긴 채로 이설빈의 시는 그렇게 이 시집 안에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울타리의 노래]를 넘어 그 발걸음을 이어갈 것이다. 언제나 “쓰는 몸”으로서 “자신을 딛고 서 있기 위하여”(「레킹 볼 레킹」).

    그저 자신을 딛고 서 있기 위하여―끝까지 물고 늘어지기 불안과 피로가 만든 소실점으로 두 눈이 빨려들 때까지 매달리기 사슬처럼 새어 나가려는 한기를 끌어당기며 여러 겹으로 웅크리기 번데기처럼 등이 쪼개져 세상의 끝으로 굳어버린 발자국처럼
    ('레킹 볼 레킹' 중에서)

    목차

    1부
    기린의 문
    폭넓은 지붕
    레킹 볼
    태양 없이
    쏟아지는 샹들리에
    레킹 볼 레킹
    99.9
    나무의 베개
    몰락의 맛
    만종
    끌어안는 손
    울타리의 노래
    검은 의자
    의자 넘겨주는 사람

    2부
    빨간 호두
    수프 숲 숨
    숨 숲 수프
    베개는 불능의 거푸집
    베개는 불능의 거푸집
    리만의 악어구두
    햄스터 철창 갉는 소리
    두번째 기도의 환승역
    범퍼카는 황야로 간다
    그의 피 한 방울을 나는 약속받았다
    불안의 탄생석
    너무 낮은 언덕
    죽은 자의 사랑스러운 쪽
    베개는 불능의 거푸집
    구멍 난 궤짝 속에서
    가을을 닫기 전에

    3부
    어두워지는 촛대
    세번째 화분의 햇빛도둑
    1830
    두 겹의 창
    겨울의 맹세
    의자 밀어주던 사람
    빌헬름의 침묵
    커다란 물탱크가 있던 집
    howling
    협상
    오늘은 혼자 놀이터 갑니다
    그럼 내가 웃어야 하나요?

    4부
    터널 끝의 소리굽쇠 1
    베개는 불능의 거푸집
    NO PARKING NO HORN
    쓸데없이 해맑은 추
    13월의 입
    일 방 통 행
    13월의 귀
    전조

    본문중에서

    2
    내가 이룰 것들이란 다 무엇일까
    한 획의 비행운?
    점진적인 책갈피의 이동?
    열두 개의 그림자 태엽?
    노예선의 새로운 깃발?
    주머니가 덜 마른 코트?
    커다란 굴뚝을 입에 물고
    여기, 나는 완강히 버티고 서서
    모든 걸 넘겨 보낼 거야
    아직도 목초지는 멀고, 맞아
    내 검은 장화는 진창에서 얻었지
    무릎까지 푸욱 잠겨서
    비석에 새겨진 이름에는 이끼가 자라지
    입술을 뒤덮는 콧수염처럼

    3
    아직도 목초지는 멀고
    건초지는 발밑에 영원처럼 머물고
    노래도 새들도 떠난 둥지에는
    느긋한 노을 한 줌
    내가 이루지 못한 모든 걸
    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어
    알아, 아직도 목초지는 멀고
    나를 가리키던 시간들
    내가 될 수 없던 몸짓들
    그것들 모두가
    내 생의 단위로 자라날 때까지
    여기, 나는 펜스에 기대서서
    그 모든 걸 굽어봐
    ('울타리의 노래' 중에서)

    한 겹의 눈부심을 겨누며 우리는 나아간다 내가 드리워진 이곳이 어느 자오선에 걸쳐 있는지 어느 예리한 시간이 첨탑 끝에 째깍대며 우리 배다른 절망들을 손에 쥔 사과처럼 끊이지 않게 돌려 깎는지, 알 수 없으나 나는 비춰볼 수 있다
    [……]
    다시 한 겹의 어두움을 당기며 우리는 나아간다 커다란 그림자 아래로 위문 온 작은 그늘처럼,
    ('두 겹의 창' 중에서)

    비참은 어디서 오는 걸까―봄이 다 가도록
    혼자 알을 품던 황제펭귄은 여름이 되자 알을 쪼고
    가랑이에 얼음덩이를 품는다는데, 접힌 우산에서
    발등으로 흘러내린 차가운 물줄기가 바닥을
    바닥을 신은 발바닥들을 축축하게 적시는 사이
    냉담은 어디로 가는 걸까―내릴 곳을 지나
    버스는 이미 반환점을 돌고 있는데, 나는
    앉거나 서지도 자거나 깨지도 않고 기울어져

    (어렵고 가렵고
    두렵고 마렵고?)
    ('햄스터 철창 갉는 소리' 중에서)

    눈송이 하나, 가까스로 내려앉는 게 보인다. 누군가의 입김이 피워 올린.

    지금 고개를 들어 눈을 헤아리는 자들은 모두 타인의 눈 속에서 자신을 허옇게 지새워보았던 자들이다. [……] 가자, 이름 없이. 가야 한다. 저 구겨진 백지처럼 눈먼, 시간들이 빨려드는 터널 쪽으로.
    ('터널 끝의 소리굽쇠 1' 중에서)

    고개를 들면 밤의 해바라기밭, 검은 씨앗들의 방언이 빼곡하다 머리카락처럼 살아 있는 뿌리는 그보다 월등한 시체를 향하지 밤이 오면, 우리는 더욱 현명해지리라 밤 아닌 것들과 함께

    번뜩이던 창문에는 얼마간 다른 빛이 깃들어 자신이 헤쳐 지나온 건초지, 불길에 사로잡히는 울타리를 바라본다 하나, 둘……

    메시지가 닿을 즈음이면 그곳에도 사막의 사인이 젖어들겠지요 이곳에는 별들이 많아요 그리고 암흑보다도 짙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씨앗보다는 흙을 기르는 존재에 가깝습니다
    ('전조'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1종
    판매수 8권

    198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4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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