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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실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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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밀리언셀러 소설가, 델핀 드 비강의 3년 만의 신작.
    인간관계에 대한 짧은 소설 시리즈 그 첫 번째.


    문학성과 대중성을 갖춘 동시대 최고의 프랑스 소설가 델핀 드 비강이 『충실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델핀 드 비강은 2001년 『배고픔 없는 날들』로 데뷔한 이후, 두 권의 밀리언셀러 『길 위의 소녀』와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을 비롯해서 총 8권의 소설로 프랑스 내에서만 3백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전 세계 40여 개국에 번역 출간되었다. 더불어 르노도상, 고등학생이 뽑은 공쿠르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작가로서의 빼어난 이력을 갖춘 델핀 드 비강이 3년 만에 인간관계에 대한 짧은 소설 시리즈를 발표하며 전 세계 독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첫 번째 소설이 바로 2018년 1월 출간 두 달 만에 16만 부가 팔린 『충실한 마음』이다.

    『충실한 마음』은 델핀 드 비강이 오랫동안 품어온 충실함에 대한 질문에서 탄생했다.

    언제부터인지 저는 절박하면서도 결정적인 상황에서 충실함을 고민해야 하는 여러 인물이 서로 얽혀 있는 아주 짧지만,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소설을 생각해왔습니다.
    “나는 충실한 사람일까?” “내가 이렇게, 혹은 저렇게 한 말이 충실하다 할 수 있을까?” “내가 이렇게, 혹은 저렇게 한 행동이 충실하다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저 자신에게 묻곤 했던 질문들에 답을 하며 소설을 구상했습니다. 제게는 아주 중요한 문제들이었습니다.
    저는 개인과 또 가족과 혹은 사회와 연결된 다양한 형태의 충실함을 다뤄보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우리가 사는 오늘날의 모습을 그리며 이 책을 썼습니다. 각각의 인물은 의식적으로든, 그렇지 않든, 스스로에게 충실함을 묻습니다. 가족, 집단, 자신이 속한 사회계층, 배우자, 어린 시절, 혹은 조금 더 젊었던 때 했던 다짐 같은 것에 대해 충실함을 묻는 거지요. 충실함은 우리를 만들고, 우리를 구성하며, 우리가 지키려 노력하는 가치가 됩니다. 그러나 때로는 충실함은 우리를 가두고, 우리를 가로막기도 합니다. - 델핀 드 비강 - (한국의 독자들에게)

    출판사 서평

    『충실한 마음』, 어린 시절 상처 입은 네 명의 주인공들을 엮어 주는 보이지 않는 끈

    열두 살 테오와 마티스에게는 비밀이 있다.
    아이들의 선생인 엘렌은 테오에게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혹시 집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마티스의 엄마 세실은 남편의 컴퓨터에서 끔찍한 것을 발견한다. 그후 그녀는 자신이 정말로 남편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묻게 된다.

    엘렌
    파리 중학교 선생인 엘렌은 새 학년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학생에게서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정확하게 말할 수 없지만, 테오에게 무슨 문제가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어린 시절 당했던 학대를 떠올리며, 테오에게서 그런 흔적을 찾아보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 엘렌은 동료 선생들에게도 도움을 청해보지만, 뚜렷한 증거 없이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오로지 본능에 이끌려 테오에게 온 신경을 써보지만 그럴수록 일은 엉망이 되 버린다.

    테오
    테오의 부모는 아이가 어렸을 때 이혼했고, 테오는 일주일씩 돌아가며 전혀 소통하지 않는 두 부모의 집을 오가며 살아간다. 전남편에 대한 증오로 가득한 엄마와 실직 이후 점점 더 무기력해져만 가는 아빠 사이에서 테오는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몰래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그의 유일한 친구 마티스와 함께.

    마티스
    마티스는 말을 하지 않고도 어울려 놀 수 있는 테오를 좋아한다. 처음에는 재미 삼아 테오와 술을 마셔봤지만, 이젠 그만 마시고 싶다. 그러나 온통 술 마시는 일에 정신이 팔려있는 테오를 모른 체할 수 없다. 그는 테오를 위해서라면 거짓말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다.

    세실
    마티스의 엄마 세실은 특별한 이유 없이, 테오가 못마땅하다. 테오가 마티스를 안 좋은 길로 이끌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터인가 세실은 혼잣말을 한다. 두 개의 자아로 나뉜 사람처럼, 자신의 일부가 또 다른 일부에게 말을 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상담을 받던 도중 세실은 자신이 남편의 비밀을 발견한 무렵임을 알게 된다.

    충실한 마음은 “대부분 자기 자신과 맺은 과거의 다짐”, “몸속 어딘가 잠들어 있는 어린 시절의 법칙.
    “제게 『충실한 마음』은 어둠 속에 내미는 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오해하고, 길을 잘못 들고, 실수를 저질러 꼼짝달싹도 못 하게 되었지만, 마침내 진실을 맞이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충실함으로, 자신에게 했던 다짐을 배반하지 않음으로, 엘렌은 직감을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마침내 구원의 약속이 됩니다.
    『충실한 마음』은 또한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에게 하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의 나를 보호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어린 시절 상처들을 치료할 수 있을까요? 어린 시절의 나에게 정의를 되돌려 줄 수 있을까요? 혹시 우리가 어린 시절 꿈들을 짓밟지는 않았을까요? 우리도 어쩌지 못하는 사라지지 않는 흔적은 무엇일까요? 그 흔적을 길들일 수 있을까요?” 델핀 드 비강 (한국의 독자들에게)

    ‘소설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
    자신이 사는 현대사회를 끊임없이 관찰하며 사회 제반 현상을 보여주려 노력하는 델핀 드 비강의 작품들은 ‘소설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오래전 스탕달의 정의가 여전히 유효함을 증명해 보인다. 더불어 작가는 소설의 존재 이유가 독자를 위로하는 수단이라기보다는, 사회현상을 보다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장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통스러울지라도, 상처 난 곳이 더 잘 보이게끔 펼쳐 보여주는 것이 델핀 드 비강의 글쓰기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작가는 현상을 정확하게 그려내려 할 뿐, 판단을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의 심리에 치중하기보다, 그들의 약점이나 문제들을 보여주는데 주의를 기울인다. 해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함께 그 사건에 대해 고민하며 각자의 삶과 주변을 되돌아볼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다. 어쩌면 이러한 점에서, 익숙한 결말을 드러내지 않는 델핀 드 비강의 소설이 독자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 옮긴이의 말 -

    추천사

    진정성을 이야기하는 델핀 드 비강이라는 하나의 장르
    - Le Monde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향한 충실한 마음
    - Le Monde

    델핀 드 비강은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는다. 연민을 드러내지도, 도덕을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보여주기만 할 뿐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 BibliObs

    사랑하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멀리까지 가야 하나?
    - The Guardian

    날카롭고 세심하다
    - Telerama

    폐부를 꿰뚫는 소설
    - Elle

    오랫동안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소설
    - Le Figaro

    프랑스 문단에 없어서는 안 될 소설가
    - Le Parisien

    목차

    한국의 독자들에게 5
    충실한 마음 11
    옮긴이의 말 217

    본문중에서

    그 아이가 학대받는다고 생각했다.
    (/ 첫 문장)

    다른 이들 – 살아 있든 죽었든 – 에게 우리를 묶어두는 보이지 않는 끈. 속삭였으나 그 반응은 알 수 없는 약속, 무언의 충성 대부분 자기 자신과 맺은 과거의 다짐, 들은 적 없지만 따라야 하는 명령, 기억의 주름 속에 숨겨둔 빚.
    몸속 어딘가 잠들어 있는 어린 시절의 법칙, 우리를 바로 서게 하는 가치, 저항하게 하는 근거, 우리를 갉아먹고 가두는, 해독할 수 없는 원칙. 우리의 날개이자 굴레.
    우리의 힘이 펼쳐지는 발판, 그리고 꿈을 묻어둔 참호.
    (/ p.11)

    그 아이가 학대받는다고 생각했다. 아주 금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새 학년이 시작되자마자는 아니었겟지만, 그렇다고 한참 지난 시점도 아니었다. 시선을 피하며 행동하는 아이만의 방식에 무언가가 깃들어 있었다. 내가 아는, 속속들이 아는 방식이었다. 배경에 녹아들고, 빛이 그대로 통과할 정도로 없는 듯 있는 그만의 방식. 그러나 나한테만은 통하지 않는 방식. 어린 시절 두들겨 맞았을 때, 나는 끝까지 그 흔적을 감추었다. 그러니 나를 속일 수는 없다.
    (/ p.13)

    그는 밀려드는 열기를 표현할 수 없다. 고통을 불태우는 동시에 위안이 되어줄 불을 지피는 열기가 손가락 다섯 개를 헤아릴 정도의 시간 동안 이어진다. 아마 그가 모르는 명칭이 있을 터이다. 그 힘과 강도를 표현해줄 만한, 연소나 파열 혹은 폭발과 어울릴 화학적이며 심리적인 명칭이. 그는 열두 살 반이다.
    (/ p.17)

    언제든 그는 완벽하게 의식을 잃어버리길 원한다.
    몇 시간 동안, 혹은 영원히, 취기의 두터운 막에 처박혀 뒤덮이고 파묻히길 바란다. 그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안다.
    (/ p.21)

    어느 저녁엔가는 며칠째 무슨 일이 곧 터질 것처럼 나를 압박하는 감정을 설명하고자 애써보았다. 그 충격을 상상할 수도 없는 기괴한 것을 향해 조용히 이끌려가는데 타어머는 멋대로 움직이고, 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귀중한 시간만 흘러가는 듯한 느낌.
    (/ p.23)

    우리가 있는 곳이 막다른 길임이 명백하다는 시선, 한 발 더 나아가는 것이, 무엇을 시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 p.25)

    매주 금요일 거의 비슷한 시간에 그는 이런 일을 해야만 한다. 가교도 안내자도 없이 이쪽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이동한다. 서로 교차하는 지대 하나 없는 완전한 두 세계 사이를 오간다.
    지하철 여덟 정거장이면 된다. 그러면 다른 문화, 다른 관습, 다른 언어가 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시간은 고작 몇 분밖에 없다.
    (/ p.28)

    그의 엄마가 던진 말들이 있다. 곧바로 그에게 와 부딪친 말들, 그의 숨을 멎게 한, 그의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말들, 그 의미를 알지 못하나 그 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어른의 말들. 엄마는 바닥을 내려다보지만, 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아빠에게 하는 말이다.
    (/ pp.32~33)

    나는 혼자서 말한다. 아무도 없을 때 집에서, 아니면 거리에서, 누구도 나를 보지 않는다고 확신할 때. 나는 나 자신에 말한다. 정말이다. 아니, 내 일부가 나의 다른 일부에게 말한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나는 내게 말한다. ‘넌 할 수 있어.’ ‘잘 헤쳐나갈 거야.’ ‘계속 이러면 안 돼.’ 이런 식이다.
    (/ p.42)

    그들은 말을 하지 않고도 서로 어울릴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서로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회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말이 필요 없는 무언의 공동체. 추상적이고 일시적인, 하지만 서로가 알아볼 수 있는 신호들. 이런 걸 무엇이라 명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이 이제 떨어지지 않는다.
    (/ pp.51~52)

    부모는 서로 만나지 않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유리로 된 경계선의 다른 편에 각각 머물러 있었다. 알 수 없는 물건과 교환한 포로처럼 테오는 건물 로비를 걸어갔다. 가까스로, 전등 스위치를 누르며, 그렇게 중립지대를 건넜다.
    (/ p.56)

    초반에 그가 아빠 집에서 돌아오면 엄마는 이것저것 묻곤 했다. 아이가 계략을 알아채지 못하리라 생각한 듯, 직접적인 언급 없이 말을 뱅뱅 돌려 우회하는 질문으로 정보를 얻어내려 애썼지만 테오는 그 의도를 완벽하게 간파할 수 있었다.
    되도록 적게 말을 하기 위해 그는 질문을 못 알아듣는 척하거나 얼버무렸다.
    (/ p.59)

    아주 빠르게, 테오는 자신에게 기대되는 역할을 해낼 수 있게 되었다. 표정 없이, 시선은 내리깔고, 최대한 아껴서 말을 내뱉었다. 자신을 드러내지 말 것. 경계선으로 나뉜 두 진영에서 침묵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최고의 방책이다.
    (/ pp.60~61)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다. 내 눈에만 저 상처가 보이는 거야. 내 눈에만 그 피 흘리는 모습이 보이는 거야. 나는 눈을 감았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려, 호흡을 가다듬어보려, 테오를 상담한 보건교사의 단호하고 확신에 찬 억양이 새겨진 말들을 다시 떠올려보려 애를 썼다. “아무것도 없었어요. 표시도, 흔적도, 상처도.”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구타당했다는 사실만 빼면. 그러니 나에게만은 그런 말이 통하지 않는다.
    (/ p.65)

    어느 저녁, 텔레비전 뉴스에서 유조선 사고로 검은 기름띠가 생긴 바다를 탐방한 취재 보도가 나왔다. 우리는 식타에 있었다. 끈적끈적한 기름에 덮인 새들을 바라보던 나는 이내 우리 가족을 생각했다. 어떤 가족사진보다 우리를 더 잘 재현해낸 모습이었다. 그게 우리였다. 검은 기름에 뒤덮여 움직이지도 못한 채 어리둥절해하는, 중독된 육체.
    (/ p.71)

    증오와 적의로 점철된 문장들, 믿기지 않는 신랄한 단어들을 읽고 또 읽으며, 당혹감에 사로잡혀 몇 분을 서 있었다. 빌리암이 이런 종류의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불가능한,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왜 이렇게 혐오감을 주는 글을 옮겨 적은 걸까?
    (/ p.109)

    빌리암이 이런 공포를 만들어 인터넷에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내가 그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느낌도 들었다.
    보지 않겠다고 거부했지만 알고 있던 것, 그러니까 아주 멀지 않은 곳에 묻혀 있던 것이 마침내 튀어나올 때의 평온함과 최악임이 분명히 드러날 때 느껴지는 안도감. 낯설다.
    (/ pp.111~112)

    커플로 살고 있든, 혹은 한때 커플로 살았든, 누구나 상대가 수수께끼라는 걸 안다.
    (/ p.124)

    남편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남편은 이런 유의 어휘를 사용하지 않는다. 남편은 이런 글에서 스며 나오는 악취 가득한 오물을 자기 안에 두지 못한다. 그는 지극히 훌륭하게 성장한 사람이다. 유복하고 교육을 잘 받은 집안 출신이다. 아니야, 내 남편은 엄청난 쓰레기를 방출하고 그 안에서 뒹구느라 저녁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아니야. 비꼬고, 망신을 주고, 모든 것을 혐오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야. 남편은 더 잘할 수 있는 게 있어. 매일 저녁 홀로 떨어져 상처에서 악취 나는 고통을 빼내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 pp.126~127)

    “사실 커플은 악인들의 조합이에요.”
    (/ p.130)

    사람들은 그렇게 많이 변하는 걸까? 언젠가 스스로 드러낼지 모를, 이름 붙이기 힘든 무언가를 다들 숨기고 있는 걸까? 열을 가하면 스스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은현잉크로 쓴 불결하고 추잡한 글처럼, 다들 자신 안에 몇 년 동안이나 거짓된 삶을 이끌어갈 수 있는 조용한 악마를 감추고 있는 걸까?
    (/ p.131)

    저녁 식탁에서 남편을 관찰한다. 그러면서 나 자신에게 묻는다. 저 안에 있는 괴물이 그의 냄새를, 그의 방식을, 내가 알아볼 수 없었던 그 분노의 메아리를 받아들이게 만든 걸까?
    아니면 내가 변한 걸까? 그를 쓴맛 나는 존재로, 독을 잔뜩 품은 존재로 만든 게 혹시 내가 아닐까?
    (/ pp.131~132)

    걸어가면서 그는 소니와와 함께 뱅센 숲에서 돌멩이를 줍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돌멩이들을 다친 참새라고 얘기하곤 했다. 조심스럽게 그것들을 잡아 손가락 끝으로 쓰다듬었고, 때로는 기운을 북돋워주기 위해 대화를 건네기도 했다. 고쳐주겠다고, 키워주겠다고 약속했고, 곧 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이윽고 돌멩이가 손바닥의 열기를 빨아들이면, 그래서 기력을 차린 듯싶으면, 그는 막 구해준 다른 돌멩이들로 채운 주머니 속에 그것을 넣었다.
    (/ p.141)

    그는 엄마의 품으로 숨어들고 싶다. 생생한 엄마의 향기를 맡으며 진정하고 싶다. 그러나 매번 그는 엄마의 뻣뻣한 등에, 가지런히 내려온 두 팔에, 긴장한 목에, 날카롭고 재빠른 몸짓에 부딪친다. 엄마는 그를 안아줄 수 없다. 엄마는 오로지 한 가지 사실, 치욕의 나라에서 온 아들을 자신의 영역에 받아들이는 일에 사로잡혀 그를 거북하게 바라볼 뿐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만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리라.
    별일 아니야. 잘될 거야. 아빠는 좋아질 거야. 내가 아빠를 도울 거야.
    다음 주에는 겁을 먹지 않을 거야. 구겨진 종이들과 쌓아둔 그릇들을 방치하지 않을 거야. 수세미로 식탁을 닦고, 빈 요거트 병을 버려야지.
    (/ pp.143~144)

    때로 그는 생각하낟. 어른이 되는 수고가 정말 그만큼 가치가 있을까? 할머니 말마따나, 손톱만큼의 가치라도 있을까?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할머니는 자를 대로 긴 선을 그어 ‘장점’과 ‘단점’이라는 칸을 만들어 양쪽을 채워보았다. 어른이 되는 문제는 어떨까? 두 개의 칸은 똑같은 길이로 채워질까?
    (/ p.144)

    시나리오는 항상 똑같다. 대개 사람들은 내게 두세 번의 질문을 던진다. 내가 일을 하지 않는다고 대답하면 대화는 다른 이에게로 슬그머니 넘어가고, 결코 내게는 돌아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가정주부에게 삶이 있다는 사실을, 관심사가 있다는 사실을, 적어도 할 말이 있다는 사실을 상상하지도 못한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대해 가정주부도 감각적인 문장으로 말 할 수 있고, 의견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마치 가정주부는 그 단어의 정의에 따라 집에만 있어야 하고, 오랫동안 산소도 없이 고통 받으며 살기 때문에 그들의 뇌는 느리게 작동한다고 생각하는 듯, 그렇게 모든 일이 굴러간다.
    (/ pp.153~154)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를 보호한다. 그 무언의 약속은 때때로 아이들을 죽음으로 이끈다.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무언가를 이제 나는 안다. 그래서 모르는 체할 수가 없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어른이 된다는 게 고작 이런 거구나. 잃어버린 것들과 잘못 끼운 첫 단추를 손보는 것. 그리고 우리가 어렸을 때 했던 약속들을 지키는 것.
    (/ p.168)

    누가 진짜 빌리암일까? 익명으로 악의에 찬 말들을 내뱉는 자일까? 아니면 허리께가 살짝 들어간 진회색 정장 차림에 말쑥한 얼굴을 드러내고 돌아다니는 자일까? 진창 속을 뒹구는 자일까? 아니면 아내가 정성스레 다림질한, 얼룩 하나 없는 하얀 셔츠를 입는 자일까?
    내가 아는 것을 남편에게 얘기해야 한다.
    그의 두 분이 하나로 합쳐질 수도 있을까? 혹시 내가 그 두 실체 사이에 일종의 연결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놓쳐버린 무언가를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 p.180)

    실미가 떠난 거 엄마한테 말하지 마, 아빠가 실직한 거 엄마한테 말하지 마, 프랑수아즈 할머니가 화난 거 엄마한테 말하지 마, 개수대 물이 새는 거 엄마한테 말하지 마, 차 판 거 엄마한테 말하지 마, 맨투맨 티 잃어버린 거 엄마에게 말하지 마, 이제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고 해, 환불금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그러니까 급식비는 곧 낼 거라고 해, 우리가 밖에 나가지 않는 거 엄마한테 말하지 마, 약속을 잡을 수 없다고 해, 엄마한테 말하지 마.......
    (/ p.182)

    마티스는 이 일에서 거리를 유지하고 싶다. 집에 있고 싶다. 아무 얘기도 더 알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테오 혼자 그들과 있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
    (/ pp.186~187)

    문득 그의 몸속에서 무엇인가가 – 물결 혹은 액체가 – 빠져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두렵지 않다. 근육이 하나씩 늘어진다. 다리, 팔, 발, 손가락이 늘어진다. 심지어 심장도 느리게, 점점 더 느리게 뛰는 것 같다. 모든 것이 들썩인다. 느슨해진다.
    (/ pp.208~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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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델핀 드 비강(Delphine de Vigan)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66
    출생지 프랑스
    출간도서 6종
    판매수 1,494권

    1966년 파리 근교의 불로뉴비양쿠르에서 태어났고 그랑제콜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직장인으로 살면서 퇴근 후 늦은 밤부터 글을 써나간 끝에 2001년, 자전적 소설 [배고픔 없는 나날]을 발표하며 문단에 들어섰다. 데뷔 후 단편집 [귀여운 남자들]과 장편소설 [12월 어느 저녁] 등 다양한 색깔의 작품을 연이어 선보였으며, 늦은 데뷔를 보상하듯 그의 문학성은 작품을 거듭할수록 더 빛을 발했다. 2007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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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불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파리 8대학에서 조르주 페렉 연구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옮긴 책으로는 호르헤 셈프룬의 [잘 가거라, 찬란한 빛이여...], 조르주 페렉의 [용병대장](근간), 앙드레 지드의 [팔뤼드](근간), 아니 에르노의 [사건](근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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