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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페터 한트케 대표작 3종 패키지 세트 : 관객모독/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 소망없는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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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망없는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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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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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객모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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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품의 분류

    책소개

    실험적 글쓰기의 대가 페터 한트케의 초기 희곡 「관객모독」은 1966년 초연 때부터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고 오늘날까지도 널리 공연되고 있다. 1960년대 정체된 독일 문단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등장한 한트케는 「관객모독」을 통해 완전히 새롭고 독창적인 문학의 가능성을 보여 줌으로써 명성을 얻었다. 한트케는 「관객모독」에서 시간, 장소, 행위의 통일 그리고 감정 이입과 카타르시스 같은 전통적 연극의 요소들을 뒤엎고, 내용과 형식에서 분리된 언어 자체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특히 관객들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음으로써 현대 사회의 허위와 위선을 조롱하고 풍자한 마지막 부분은 이 작품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이후 한트케 문학의 출발점이 된 「관객모독」은 희곡 역사에서 가장 도발적인 작품 중 하나다.

    현대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페터 한트케의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233)으로 출간되었다. 한트케는 보편적인 문학성에 반하는 실험적인 작품들로 항상 새로운 화두를 만들며 해마다 가장 유력한 노벨상 수상 후보로 지목되고 있다. 그의 소설은 통상적으로 '줄거리 없는 소설'이라 얘기되는데, 이 작품은 한트케가 1970년대 들어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통적인 서사를 회복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한때 유명한 골키퍼였던 요제프 블로흐는 공사장 인부로 일하다 석연찮게 실직하고 방황하던 중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불안과 강박에 시달리며 납득하기 힘든 언행을 일삼는 블로흐의 모습을 통해 소외와 단절의 현대 사회, 그 불안한 단면이 투명하게 드러난다. 한편, 작가의 오랜 친구이자 영화계의 세계적인 거장인 빔 벤더스가 당시 이 작품을 영화화해 호평 속에 감독으로 데뷔하기도 했다.

    출판사 서평

    최근 몇 년간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자로 꾸준히 지목되고 있는 페터 한트케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낯선 이름은 아니다. 그는 [관객모독](1966), [카스파](1968),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공포](1970), [베를린 천사의 시](1987) 등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독일어권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1966년 첫 소설 [말벌들]과 첫 희곡 [관객모독]을 발표한 이래 시, 시나리오, 논문 등 가릴 것 없이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쳐 왔다. 희곡 부문에서는 말을 해체하고 기존의 연극 이론에 반기를 들며 "자명하게 규정된 것,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조작된 것, 지배체제의 드라마투르기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하는 반연극론을, 산문 문학 쪽에서는 언어 실험적 스타일을 시도하면서 전통적인 서술의 큰 흐름을 거스르고자 하는 반서사적 글쓰기를 제1원칙으로 내세운 그의 창작 방식은 작품이 출간될 때마다 거센 찬반양론을 불러일으켰다. 일례를 들자면 귄터 그라스의 독일 통일 문제를 다룬 소설 [아득한 평원]을 찢으며 혹독한 비난을 퍼부은 적 있는 마르셀 라이히 라니츠키는 한트케의 작품에도 철퇴를 휘두른 반면, 비평가의 권위에 주눅 들지 않는 독일 내외 언론은 한트케의 미학적 태도에 찬사를 보냈다.

    이번에 묶은 두 편의 소설 '소망 없는 불행'(1972)과 '아이 이야기'(1981)는 한트케가 언어 실험적 글쓰기를 극복하고 전통적 서술 방식을 차용하여 문학의 서정성을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대략 10년의 시차를 두고 씌어진 작품이지만 이 두 작품은 한트케의 "주제 의식과 관련하여 볼 때 가장 전형적인 작품이며 그의 작가로서의 발전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작품"이라고 평가된다.

    일찍이 많은 작품들과 여러 인터뷰를 통해 적어도 문학 활동과 관련해서는 자신 이외의 여타의 것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강조한 바 있는 한트케는 '소망 없는 불행'에서는 어머니의 자살을, '아이 이야기'에서는 낯선 곳에서 아이 키우기란 자신의 일상적 삶을 비교적 담담한 문체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상적인 것들에 대한 경이를 불러일으킬 만한 섬세한 감성이 글쓰기에 대한 성찰과 맞물려 객관성을 획득하고 있는데 특히 '소망 없는 불행'에서는 결코 눈물을 쏟아 내지 않지만 두 눈에 절망을 꾹꾹 눌러 넣은 듯한 단단한 질감의 슬픔이, '아이 이야기'에서는 여러 인간관계에서 폐쇄적인 성향을 가진 작가가 아이를 키우며 이웃과 크고 작은 관계를 형성하면서 세계와 화해해 가는 과정이 읽는 이에게 직접적으로 체감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밖에도 날카로운 관찰과 눈부시게 반짝이는 시적 묘사 등은 여전히 한트케만의 독보적인 경지를 이루고 있다.

    '소망 없는 불행'은 1971년 수면제를 다량으로 복용하고 자살한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후 씌어진 산문으로, 작가는 어머니의 일생을 회상하면서 전후의 사회적 모순과 정치 상황, 또 생활고를 조명하고 그런 와중에서도 가정에서, 사회에서 억압당하는 여성이 자의식을 획득해 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주변 세계에 무관심하던 작가는 어머니의 삶을 돌이켜보면서 자신의 과거를 긍정하게 되고 기타 사회적 제반 상황들에 대해 성찰하면서 어머니의 불행했던 과거 혹은 현재와 소통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작품에서는 아무것도 소망할 수 없었던 한트케 자신의 유년 시절 및 그의 조국 오스트리아의 역사, 그리고 어느 나라에서나 공통분모를 찾아볼 수 있는, 역경에 처했을 때 그 누구보다 더 먼저 희생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어머니들의 삶을 읽을 수 있다. 또 하나 이 작품에서 눈여겨볼 만한 것은 한트케의 치열한 작가 정신이다. 한트케는 바로 자신의 어머니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객관성을 잃고 감상적으로 몰입하려 하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글쓰기의 반성적 측면을 환기시키면서 어머니의 불행했던 삶과 그것을 언어로 전달하는 작가로서의 사명감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어머니가 죽은 뒤 얼마 동안은 그녀가 죽은 바로 그 요일만 되면 그녀의 죽음이 특히나 생생하고 아프게 느껴졌다. 금요일마다 고통 속에서 동이 트기 시작했고, 또 날이 어두워졌다. 밤안개에 쌓인 시골의 노란 가로등, 더러워

    ▶ 줄거리도 사건도 없는 희곡 아닌 희곡

    무대 위 등장인물은 배우 넷이 전부고 극을 이끄는 줄거리나 사건은 없다. 배우들은 관객을 향해 직접 말하고 배우와 관객, 무대와 객석, 연극과 현실 사이 경계는 사라진다. 급기야 배우들은 관객들을 “여러분” 대신 “너희들”이라 부르며 거친 욕설을 퍼붓는다. 이것을 과연 희곡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관객모독」에서 배우들은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이 아직 들어 본 적 없는 것은 여기서도 듣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직 본 적 없는 것은 여기서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곳 극장에 오면 늘 보았던 것을 여기서는 전혀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곳 극장에 오면 늘 들었던 것을 여기서는 전혀 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17쪽)

    이것은 연극이 아닙니다. 여기서는 이미 일어났던 사건이 반복되지는 않습니다. 여기서는 지금이 있을 뿐입니다. 현재가 있을 뿐입니다. 오직 한 번 있을 뿐입니다.(32쪽)

    연극을 보기 위해 극장에 온 관객들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며 “이것은 연극이 아닙니다.”라는 과격한 말은 계속 관객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보통 연극에서는 무대 위 배우들이 어떤 사건을 재연하거나 배역을 연기하고 관객들은 그것을 조용히 바라본다. 관객은 연극의 시공간을 현실 세계와 분리해서 인식하고, 연극을 관람할 때만큼은 무대 위 세계를 마치 실제 세계처럼 여기며 작품 속 사건과 인물 들에 빠져든다. 고대 그리스 이래로 서양 연극을 규정해 온 감정 이입, 카타르시스 같은 개념들은 바로 이런 상황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관객모독」에서 관객과 배우는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존재하며,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사건 같은 것은 없다. 관객들은 무대 위 연기를 보는 대신 배우들이 끊임없이 쏟아 내는 말을 직접 들으며, 허구가 아닌 현실로서 새로운 연극을 ‘체험’한다.

    ▶ 다양한 언어 실험이 돋보이는 혁신적 작품

    한트케의 희곡들은 ‘언어극’이라 일컬어지며 언어를 중요한 주제로 다룬다. 한트케는 「나는 상아탑에 산다」라는 글에서 연극이 “현실을 그대로 묘사하거나 현실이 아닌 것을 현실로 착각하게끔 하지” 않고, “오직 현실에서 쓰이는 단어와 문장”으로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한트케는 「관객모독」에서 어떤 사건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거나 무대 위에서 보여 주려 하지 않으며, 오직 언어에 집중한다.

    여러분은 생각 없이 앉아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앉아 있습니다. 여러분은 함께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함께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자유롭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하면서 여러분의 생각을 파고듭니다.(19쪽)

    「관객모독」의 대사에서 의미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서로 앞뒤가 맞지 않는 대사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유사한 문장 구조와 단어 들이 반복되면서 묘한 리듬감이 생겨난다. 마치 비슷한 리듬과 박자가 반복되고 변주되는 음악처럼, 대사들은 형식을 바꿔 가며 계속 이어진다. 극 막바지에 이르러서 대사는 욕설로 바뀐다.

    “전쟁광들아, 짐승 같은 인간들아, 공산당 떼거리들아, 인간의 모습을 한 짐승들아, 나치의 돼지들아.”(60~61쪽)

    배우들은 자신들이 누군가를 겨냥해 욕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람들이 일상에서 쓰는 욕설을 말하고 이로써 청각 이미지를 만들어 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욕설 중 상당수는 독일의 나치 과거에 대한 비판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관객들에게는 정신없이 쏟아지는 욕설의 의미를 하나하나 따져 볼 여유가 없다. “내 희곡은 단어와 문장으로만 구성되었고, 중요한 것은 의미가 아니라 그 단어의 다양한 사용”이라는 말처럼, 한트케는 「관객모독」에서 의미와 분리된 언어가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 실험함으로써 독창적인 희곡 작법을 제시한다.

    ▶ 파격과 실험의 미학, 한트케의 문학 세계를 잘 보여 주는 대표 희곡

    「관객모독」은 1977년 국내 초연된 후 삼십여 년 동안 꾸준히 무대에 오르며 한국 연극계를 뒤흔들었다. 과격하고
    ■ 정체성을 상실하고 소외된 현대인, 정상적인 소통이 불가능한 현대 사회

    이전에 유명한 골키퍼였던 요제프 블로흐는 건축 공사장에서 조립공으로 일하던 중 조금 늦게 출근한 자신을 흘끗 쳐다보는 현장감독의 눈빛을 해고 통지로 지레짐작하고 작업장을 떠난다. 그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자신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을 느끼며 극장, 카페, 호텔 등을 무의미하게 전전한다. 그러던 중 얼굴을 익힌 극장의 매표원 아가씨를 쫓아가 함께 하룻밤을 보낸다. 다음 날 아침 블로흐는 여자와의 대화에서 불쾌함을 느끼다가 "오늘 일하러 가지 않으세요?"하고 묻는 그녀를 목 졸라 살해한다. 경찰이 수사망을 좁혀 오자, 국경 마을로 달아난 블로흐는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자기를 향한 어떤 상징이나 신호일 것이라는 강박에 시달린다.
    주인공 블로흐의 모습은 매우 비상식적이다. 지각이라는 정황만 가지고 자신을 향한 눈빛을 덜컥 해고 통지로 받아들이고, 사실 여부도 끝내 확인하지 않는 그의 사고와 대응방식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는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끊임없이 배회하며 아무것도 아닌 일로 소동을 일으키고 쉽게 다툼에 휘말린다. 매표원 아가씨를 살해하는 동기도 불분명해 보인다. 그는 한때 외국으로 원정 경기를 다니며 팬들에게 사인 엽서를 부칠 만큼 유명한 골키퍼였지만, 지금은 공사장에서 이름 없는 인부로 일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경기를 보면서도 관중 속에 휩쓸리지 않으려 하는 모습을 보면, 그가 유명 선수였던 과거의 자신과 무명 노동자인 현재의 자신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이상행동은 자기 정체성의 상실에 기인하는 것이다. 현장감독의 눈빛을 해고 통지로 받아들인 것도 타인의 시선에 예민한 그의 과잉 대응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공사장을 나온 그는 대낮의 화창한 거리에서 불안을 느끼며 어두운 극장, 카페로 숨어든다. 친구들과의 통화도 사람들과의 대화도 실패한다. 누구도 그의 존재를 규명해 주지 못한다. 블로흐가 여자를 살해한 것은 일하러 가지 않느냐는 그녀의 한마디가 제자리를 잃은 그의 불안을 정확히 꿰뚫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타인에 의해 자신이 규정되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정체성을 상실한 인간이 느끼는 불안은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불러올 만큼 파괴적이다.
    블로흐는 누구와도 정상적인 대화를 하지 못한다. 그는 공중전화가 보일 때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지만, 친구들과의 통화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고 전처는 통화 내내 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사람들과 나누는 모든 대화는 농담으로 치부되거나 엉뚱하게 곡해된다. 블로흐가 매표원 아가씨와의 대화에서 불쾌함을 느낀 것도 그녀가 그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짐작으로 넘겨 버리고 그와 무관한 자기 얘기만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말을 하면 상대에게 의미가 전달되고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거울이 빛을 반사하듯 튕겨져 나오거나 맥락 없이 뒤엉켜 다른 곳으로 흘러가 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블로흐는 뮤직 박스의 음악이나 켜 놓고 보지 않는 텔레비전 소리같이 무의미한 기계음에서 안정을 느낀다. 자기 존재와 소통 방식을 잃은 '상실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은 의미 없는 대화를 계속할수록 더 큰 고립감과 불안을 느끼고, 그에 대한 보상을 인간이 아닌 기계나 미디어에서 찾는 것이다.

    "공격수나 공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골키퍼만 바라보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죠." 하고 블로흐는 말했다. "공에서 시선을 돌리는 것은 정말 부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중략) 말하자면, 누군가가 문을 향해 가고 있을 때, 가고 있는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문손잡이를 보는 격이기 때문이다.
    (/ p.119)

    축구 경기 내내 골키퍼를 보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관중은 공을 차는 공격수나 공에 관심을 집중한다. 사실상 득점은 골대에서 이루어지기에 결정적인 순간에는 모두가 골키퍼를 쳐다보게 되지만 관심은 길게 지속되지 않는다.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관중들은 공이 가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고 골키퍼는 다시 긴 시간 동안 사람들로부터 소외된 채 경기를 계속
    해야 한다. 모든 관중이 공을 보고 있는 상황에서 페널티킥을 맞은 골키퍼는 공도 없이 이리저리 몸을 날린다.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처럼 정상적인 소통이 불가능한 사회에서 정체성을 상실하고 소외된 채 문손잡이로 전락한 인간이 내보이는 불안의 단면들은 씁쓸하고 서글픈 웃음을 유발한다. 이는 작가가 문학적 낭만으로 덮지 않은 진실의 어두운 서정이다.

    ■ 범죄소설의 형식을 뒤엎고 인물과 독자의 불안을 일치시키는 역설적 범죄소설

    범죄소설이라고 하면, 으레 사건이 발생하는 경위가 설명되고 범죄자와 추격자 사이에 쫓고 쫓기는 긴박한 상황이 전개되며 결국 사건이 해결되어 어떤 결과가 도출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살인을 저지르고 경찰을 피해 달아나는 주인공을 다룬다는 점에서 범죄소설의 테두리 안에 있으면서도 일반적인 범죄소설과는 다른 양상을 띤다. 이는 한트케가 소설의 전통적 관습을 부정하고 새로운 수법을 시도한 프랑스의 문학 사조인 누보로망의 영향 아래 있음을 보여 준다. 납득할 만한 사건의 인과 관계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으며, 블로흐의 강박적인 이상행동과 인물들의 소통 불가로 인한 불안감은 고조되지만 사건 자체가 야기하는 팽팽한 긴장감 같은 것은 없다. 오히려 소설이 전개될수록 살인 사건 자체는 뒷전으로 물러나고, 이야기는 종결, 미결이 아니라, 사건과 전혀 무관한 곳에서 엉뚱한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작품은 이렇게 범죄소설이면서 범죄소설의 형식에 철저히 반하는 방식으로 역설적인 효과를 끌어낸다.
    주인공 블로흐가 자신에 관한 신문 기사를 읽으며 한 번씩 의식적으로 상기시키지 않으면 잊어버릴 정도로, 소설 속에서 살인 사건이 차지하는 자리는 희미하다. 범죄를 저지른 주인공도 자신이 살해한 여자 옆에서 태연히 잠을 자는가 하면 도주 중임을 거의 망각한 채 주변에서 일어나는 다른 사건에 더 관심을 갖고 몰입한다. 그가 잔악하고 대담한 살인마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블로흐는 분명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불안과 강박에 시달린다. 다만 존재감과 정체성을 상실하여 자신이 느끼는 불안과 자기 행위 사이의 상관관계를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수시로 떠올리는 영화 속 장면이나 신문의 다른 기사들처럼 자신이 저지른 범죄 행위 역시도 타자화하며 행위의 주체인 자신을 스스로 소외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존재와 행위로부터 철저하게 유리된 블로흐는 자기와 무관한 사람이 잃어버린 목걸이를 찾는 데 열을 올리고, 쫓기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피해야 할 경찰이나 세관원에게 벙어리 학생의 실종 사건에 대해 열심히 묻고 다닌다. 엉뚱한 곳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 하는 것이다.
    소설은 살인이라는 굵직한 사건이 아니라, 인물에 내재한 소외와 불안의 심상을 따라 무질서하게 펼쳐진다. 정황에 맞지 않는 언행, 무의미한 단어들의 나열, 맥락 없는 대화 속 극단적인 말놀이와 농담, 급작스럽게 등장하는 뜻 모를 기호들은 블로흐가 느끼는 불안과 강박을 작품 전체와 일치시키며 매순간 이를 받아들이는 독자를 당혹스럽게 하고, 도무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어긋나 흐르는 이야기 전개는 독자를 불안하게 만든다. 예의 범죄소설이 일종의 충격에서 팽팽한 긴장을 지나 안도감으로 마무리된다면, 이 작품은 시종일관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 같은 의심과 불안 가운데 독자를 버려 둔 채 허탈하게 끝나 버린다. 정상적인 소통이 불가능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독자 역시 소설을 통해 작가와 소통하지 못하고 소외와 단절, 불안과 강박을 느끼는 또 한 명의 블로흐임을 서늘하게 비춰 보이는 것이다.
    전위적이며 논쟁적인 이 작품이 한국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기존의 고정 관념을 깨부수는 파격과 신선함 때문이었다. 안정적이고 완결된 형식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실험을 향해 나아가는 작가 한트케의 열정이 관객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던 것이다.
    「관객모독」은 2012년 12월 6일 일흔 번째 생일을 맞이한 대가 한트케의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문학 세계를 대표하는 작품이자 그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전통극의 형식을 뒤엎고 사회와 예술의 통념에 욕설을 퍼부음으로써 현대극에 충격을 안긴 「관객모독」은 도발과 파격 그리고 실험이라는 표현에 가장 잘 어울리는 희곡이다.진 눈[雪]과 운하에서 풍기는 악취, 텔레비전 보는 소파에 놓여 있던 깍지 껴진 팔. 마지막으로 변기에 물 내려가는 소리, 두 번. (85쪽) (……)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고 상상할 수조차 없는 새로운 절망이 있을지도 모르지."

    '아이 이야기'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것으로 한트케가 연극 배우였던 첫째 부인과 결별한 후, 딸 아미나를 맡아 기른 경험을 토대로 하여 씌어졌다. 그는 파리와 독일의 여러 도시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남자로서 아이를 키우며 겪은 이야기들을 매우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담담한 필체와는 달리 이 작품은 한트케가 작가로서 진일보했음을 보여 주고 인간으로서도 한 단계 더 성숙했음을 보여 준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러 의미에서 "폐허"로 가득 찬 자신의 어린 시절로 인해 가정생활이라든가 가족 관계 등에 매우 부정적이었던 자신이 딸을 키우며 그것들의 소중함을 인식해 가고 결국 한 인간 속의 소우주까지도 발견하게 되는 과정이 이 작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아직 잠이 덜 깬 남자는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그 흙탕물을 응시했다. 위층에선 아이가 무언가 성에 차지 않는지 계속해서 소리쳐 불렀고 아이의 목소리는 점점 더 절박해졌다. 마침내 끔찍한 일이 일어난 것 같은 소리가 났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물에 잠겨 서 있던 남자는 분별을 잃었고 누군가를 쳐죽을 것 같은 기세로 뛰어올라가 젖먹던 힘을 다해 아이의 얼굴을 때렸다. 그런 자신의 행동에 깜짝 놀란 것도 거의 같은 순간이었다. (……) 저주받을 자로서 그는 아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지금까지 인류가 표현할 수 없고 또 생각할 수 없는 구식의 어투로 말을 건넨다. 그러나 그런 말을 들은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언젠가 그런 적이 있었단 것처럼 소리 죽여 울면서 맑고 빛나는, 뿌연 물기를 없앤 두 눈을 잠깐이나마 들어 보인다. 비참한 한 인간에게 그보다 그럴 듯한 위안은 드물었다.(122쪽)

    그 풍경에서 밝게 빛나는 것은 발코니의 창문턱과 길바닥에서 반짝거리는 사각의 창문, 그리고 그 길을 걸어가고 있는 아이들이 등에 멘 책가방과 금속 자물쇠와 이름표이다. 그때 금속 자물쇠와 이름표에서 발한 빛이 서로 연결되어 우주의 모서리를 불태우는 유일한, 유일한 글귀, 눈에 꽂혀 해독될 수 있는 글귀 쪽으로 쏟아진다. 그리고 그걸 보고 있는 남자는 여기서, 그리고 나중에라도 한 아이의 모든 이야기에 언제나 부합될 어떤 시인의 문장을 깊이 생각한다. 바로 "칸틸레네--사랑과 모든 열정적인 행복이 충만하길"라는 문장을.(179쪽)

    추천사

    내 방황하는 마음, 사라진다
    - 이희인 / [여행자의 독서] 저자

    지금 그 정도면 괜찮아, 잘하고 있어, 불안해하지 마
    - 성수선

    한트케는 언어의 심장부를 찾아 때로는 고통 속에서, 때로는 행복 속에서 자유를 느끼며 전 유럽을 헤매 다녔다. 끊임없이 우리를 자극하면서도 살아 있게 하는 그의 작품에 빠져 드는 순간, 우리는 자유로워지리라.
    - '르 몽드'

    한트케의 [소망 없는 불행] 이후 어머니에 대한 어떤 평가도, 어떤 문학적 사고도 완결된 이미지를 전달해 주지 못했다. 이 책은 아물지 않은 끔찍한 상처에 대한 이야기이며 우리는 그와 더불어 비로소 자유롭게 숨쉴 수 있다.
    - 헬무트 쉐퍼 / 비평가

    목차

    관객모독

    작품 해설
    작가 연보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작품해설
    작가연보
    소망없는 불행

    아이 이야기

    본문중에서

    그렇지만 그때 느낀 불쾌함, 고통스러운 답답함과 무력감은 나중에는 일부러 원해야지만 생각해 낼 수 있었다. 현재 남아 있는 것 그리고 헤아릴 수 있는 것은 변화시킬 의도 없이 [이것이 나의 인생이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승리감에 싸여 되돌아오는 것처럼 기억 속에 새겨진 그때그때의 모습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회상의 빛들은 날짜들을 무심하게 흘려버린 그 기간에도 영속적이고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생존의 에너지를 의미했다. 아내는 곧 일을 다시 시작했고 남편은 시내 여기저기를 오래 산보하면서 아이를 데리고 다녔다. 늘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번화가와는 반대 방향에 이제는 낡고 어두운 일정한 모습의 지역들이 있었는데 마치 전에는 시내 어느 곳에서도 그러지 않았다는 긋 그곳의 땅은 다양한 색깔로 투명하게 들여다보이고 하늘은 도로와 맞닿아 있었다. 인도와 차도 사이에서 유모차를 들어올리던 이곳이야말로 아이의 출생지이다.
    (/ p.97)

    저자소개

    페터 한트케(Peter Handke)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42
    출생지 오스트리아 그리펜
    출간도서 13종
    판매수 2,396권

    1942년 오스트리아의 남쪽 케른튼 주에 있는 그리펜 구역의 산골마을 알텐마르크트에서 태어났다. 1961년 그라츠대학의 법학과에 입학했으나 1965년 첫 소설 '말벌들'로 문단에 등장했다. 1966년 희곡 '관객모독'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 1972년에는 어머니의 자살을 다룬 '소망 없는 불행'으로 원숙한 작가의 명성을 얻었다. 이후 '아이 이야기' '반복' '베를린의 하늘' '인적 없는 해안에서 보낸 세월' '이른 아침 암벽 창에서' '모라비아강의 밤'

    펼쳐보기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윤용호는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페터 한트케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고려대학교 인문대학 명예교수다.
    저서로 [페터 한트케 연구] 등이 있고, 역서로 한트케의 [소망 없는 불행]과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괴테의 [시와 진실]과 [여우 라이네케] 그리고 독일 최초의 인문주의 작품인 요하네스 폰 탭플의 [악커만, 신의 법정에서 죽음과 논쟁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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