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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들

원제 : Biegu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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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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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2018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2018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
    2008년 폴란드 최고의 니케 문학상

    “우리가 사는 장소, 우리가 지닌 이름은 잊혀도 무방한,
    아무 의미 없는 귀속의 수단일 뿐이다.”


    ■ 2018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

    2018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대표작 [방랑자들]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스웨덴 한림원은 수상자로 토카르추크를 선정하면서 “삶의 한 형태로서 경계를 넘어서는 과정을 해박한 열정으로 그려낸 서사적 상상력”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일찍이 폴란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타인과 교감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야말로 글쓰기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토로한 바 있는 토카르추크의 작품 세계는 본질적으로 경계와 단절을 허무는 글쓰기를 통한 타자를 향한 공감과 연민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대표작이 바로 [방랑자들]이다. 작가는 소설을 가리켜 “국경과 언어,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는 심오한 소통과 공감의 수단”이라고 말했는데, 작자가 지향하는 이러한 가치가 무엇보다 생생하게 빛나는 대표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2008년 폴란드 최고의 문학상인 니케 문학상을, 2018년도에는 맨부커 상 인터내셔널 부분을 수상한 [방랑자들]은 단선적 혹은 연대기적인 흐름을 따르지 않고, 단문이나 짤막한 에피소드를 촘촘히 엮어서 중심 서사를 완성하는 패치워크와도 같은 이야기 방식이 가장 절묘하고 효과적으로 활용된 사례로 평가받는다. “물리적인 이주(移住)와 문화의 이행에 초점을 맞춘, 위트와 기지로 가득한 작품”이라는 한림원의 평가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작품이다.

    ■ 경계를 허무는 방랑자들에게 바치는 찬가

    휴가를 떠났다가 느닷없이 부인과 아이를 잃어버린 남자, 죽어 가는 첫사랑으로부터 은밀한 부탁을 받고 수십 년 만에 모국을 방문하는 연구원, 장애인 아들을 보살피며 고단한 삶을 살다가 일상에서 탈출하여 지하철역 노숙자로 살아가는 여인, 프랑스에서 사망한 쇼팽의 심장을 몰래 숨긴 채 모국인 폴란드로 돌아온 쇼팽의 누이, 다리를 절단한 뒤 섬망증(譫妄症)에 시달리는 해부학자, 지중해 유람선으로 생의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그리스 문명의 권위자…….
    [방랑자들]은 여행, 그리고 떠남과 관련된 100여 편이 넘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기록한 짧은 글들의 모음집이다. 어딘가로부터, 무엇인가로부터, 누군가로부터, 혹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사람들, 아니면 어딘가를, 무엇을, 누군가를, 혹은 자기 자신을 향해 다다르려 애쓰는 사람들, 이렇듯 끊임없이 움직이고, 이동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각양각색의 이야기가 시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진다.
    소설의 제목은 고대 러시아 정교의 한 교파인 ‘달리는 신도들’에서 착안한 것이다. 그들은 온갖 악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정체되거나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이동하고 장소를 바꾸는 것만이 악을 쫓아낼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다. 소설의 첫머리에서 토카르추크는 다음과 같은 모토를 선언한다.

    “내 모든 에너지는 움직임에서 비롯되었다. 버스의 진동, 자동차의 엔진 소리, 기차와 유람선의 흔들림.”
    (/ p.19)

    모스크바의 지하철역 주변에서 노숙하는 정체 모를 노파의 에피소드를 통해 토카르추크는 인간이 한곳에 너무 오래 머물러 어떤 장소나 사물에 얽매이게 되면, 근본적으로 나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역설한다. 관습과 타성에 젖어 익숙한 것만을 찾는 인간은 현재에 안주하기 위해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기계적으로 순응하게 되고, 더 이상 모험이나 행복을 갈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멈추는 자는 화석이 될 거야, 정지하는 자는 곤충처럼 박제될 거야, 심장은 나무 바늘에 찔리고, 손과 발은 핀으로 뚫려서 문지방과 천장에 고정될 거야. (…) 움직여, 계속 가, 떠나는 자에게 축복이 있으리니.”
    (/ pp.391~392)

    토카르추크는 우리를 쉼 없이 움직이게 만드는 여행이야말로 인간을 근본적으로 자유롭게 해 줄 수 있음을 역설한다. 그리고 우리가 머무는 공간, 우리가 움켜쥐고 있는 소유물,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삶의 본질적인 요소는 아님을 일깨운다.

    ■ 형식의 경계를 넘어서

    [방랑자들]은 여러 이야기를 직조한 다성적 구성을 취하고 있다. 불과 10여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텍스트도 있고, 중편소설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긴 분량의 이야기도 있다. 여행기의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실은 독자로 하여금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듯이 읽으며 사색을 하도록 유도하는 철학적인 이야기들이다. 또한 읽을 때마다 매번 다른 느낌과 해석이 가능한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텍스트이기도 하다.

    한 귀퉁이에 서서 바라보는 것. 그건 세상을 그저 파편으로 본다는 뜻이다. 거기에 다른 세상은 없다. 순간들, 부스러기들, 존재를 드러내자마자 바로 조각나 버리는 일시적인 배열들뿐. 인생? 그런 건 없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선, 면, 구체들, 그리고 시간 속에서 그것들이 변화하는 모습뿐이다.
    (/ p.280)

    장르 또한 다양해서 여행일지나 르포르타주는 물론, 서간문이나 강연록 형식의 글들도 공존하는데, 그중에서 인체나 내장 기관을 전시한 박물관에 대한 관람 기록은 추리물처럼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오랜 시간 비행기를 기다리며 공항에서 쓴 에세이도 있고, 바쁜 여정을 쪼개어 기차역에서 무릎 위에 책을 받쳐놓고 쪽지에 휘갈겨 쓴 단상도 있다. 트렁크에 담긴 구겨진 짐처럼 두서없고, 혼란스러운 형태로 다채로운 에피소드가 쉼 없이 나열된다.

    나는 기차와 호텔, 대기실에서, 그리고 비행기의 접이식 테이블에서 글 쓰는 법을 익혔다. 밥을 먹다 식탁 밑에서, 혹은 화장실에서 뭔가를 끄적이기도 한다. 박물관의 계단에서, 카페에서, 길가에 잠시 정차해놓은 자동차 안에서 글을 쓴다. 종이쪽지에, 수첩에, 엽서에, 손바닥에, 냅킨에, 책의 한 귀퉁이에 쓴다.
    (/ p.35)

    각각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또한 시간적·공간적으로 서로 단절된 것처럼 느껴지만 작품 전체를 놓고 보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지점이 발견된다. 공항에서 여행객들이 끊임없이 서로 마주치고 스쳐 지나가는 풍경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앞에서 언급된 에피소드의 후속 스토리가 뒷부분에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아버지의 시체를 박제하여 ‘호기심의 방’에 전시한 프란츠 1세에게 항의 편지를 보내는 딸의 사연, 크로아티아로 여름휴가를 떠났다가 아들과 아내를 잃어버린 사내의 이야기, 공항에서 시리즈로 전개되는 여행 심리학에 대한 강연이 그 대표적인 예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날 때 즈음, 다음 에피소드의 공간적 배경에 대한 단서가 은밀하게 등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뉴질랜드를 발견한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의 에피소드에 이어 호주의 한 해변에서 길을 잃고 죽음을 맞은 고래의 사건이 언급되고, 그 뒤로 호주로 짐작되는 나라로 이주한 폴란드 연구원의 사연이 이어지는 식이다. 이러한 단서를 찾아보고, 서로 연결되는 요소들을 찾아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 21세기의 오디세이

    [방랑자들]에서 토카르추크는 여행길에서 마주친 다양한 인물들의 삶과 죽음, 그들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언어’의 힘을 빌려 작품 속에 꼼꼼히 기록함으로써 그들에게 불멸의 가치를 부여한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기록할 것이다. 그것이 가장 안전한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이기에. 우리는 문자와 이니셜을 서로 교환하고, 종이 위에 서로를 불멸로 남기고, 서로를 플라스티네이션 처리하고, 문장의 포름알데히드 속에 서로를 담글 것이다.
    (/ p.601)

    이 책에서 끊임없이 회자되는 여행이란 단순히 바다를 건너고, 대륙을 횡단하는 물리적인 이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내면을 향한 여행, 묻어 두었던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려는 시도, 시련과 고통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또한 이 방대한 여정에 포함된다. 독자의 입장에서 이 책을 통해 직접 가 보지 못한, 머나먼 타국의 이국적인 장소들을 간접적으로 방문해 보고, 다양한 정보를 접하게 되는 것, 지구촌 곳곳에서 여러 흥미로운 인물들과 그들의 생의 단면을 만날 수 있다는 것 또한 일종의 여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간은 생이 시작된 순간부터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의 한계에 쫓기며, 소멸을 향해 하루하루 달려가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표제인 ‘방랑자들’이란 궁극적으로 21세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추천사

    삶의 한 형태로서 경계를 넘어서는 과정을 해박한 열정으로 그려 낸 서사적 상상력. 물리적인 이주와 문화의 이행에 초점을 맞춘 『방랑자들』은 위트와 기지로 가득하다.
    - 스웨덴 한림원,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

    조각보처럼 아름답게 만들어 낸 영원에 대한 갈망. 야심 차고 복잡한 작품!
    - 워싱턴 포스트

    웅대한 스케일의 작가.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W. G. 제발트와 비견되는 작가!
    - 애니 프루 / 작가

    본문중에서

    내 모든 에너지는 움직임에서 비롯되었다. 버스의 진동, 자동차의 엔진 소리, 기차와 유람선의 흔들림.
    (/ p.19)

    서쪽 어딘가에 이상적이고 정의로운 나라가 있다고 믿으며 이상향을 찾아 헤매는 이민자들, 그들은 인간이 서로에게 형제자매가 되고, 강력한 국가는 자국민을 부모처럼 돌봐 줄 거라고 믿었다. 자신의 가족, 부인이나 남편, 부모로부터 도망쳐 온 탈주자들, 불행한 연인들, 혼돈에 빠진 사람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 항상 춥고 배고픈 사람들. 빚을 갚지 못해 법망을 피해 온 사람들도 있었다.
    (/ p.21)

    망가지고 손상되고 상처 나고 부서진 모든 것에 자꾸만 끌리는것, 이것이 나의 증상이다.
    (/ p.32)

    나는 기차와 호텔, 대기실에서, 그리고 비행기의 접이식 테이블에서 글 쓰는 법을 익혔다. 밥을 먹다 식탁 밑에서, 혹은 화장실에서 뭔가를 끄적이기도 한다. 박물관의 계단에서, 카페에서, 길가에 잠시 정차해놓은 자동차 안에서 글을 쓴다. 종이쪽지에, 수첩에, 엽서에, 손바닥에, 냅킨에, 책의 한 귀퉁이에 쓴다.
    (/ p.35)

    그가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중요하다. 그것들이 보인다는 것, 그 자체가 신비로운 일이다. 아니, 그가 지금 바라보고 있다는 것, 나아가 그가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가 바로 놀라운 신비다.
    (/ p.80)

    유동성과 기동성, 환상성은 문명화된 사람들의 특성이다. 야만인들은 여행을 하지 않는다. 그저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거나 침략할 뿐이다.
    (/ p.82)

    그녀가 시간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내게 설파했다. 그녀에 따르면 농업에 종사하는 정착민들은 순환적 시간이 주는 기쁨을 만끽하길 원하는데, 그러한 시간 속에서는 모든 사건이 항상 처음으로 되돌아가게 마련이며, 배아 상태로 쪼그라들어서 성장과 노화와 죽음의 과정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 p.82)

    나는 이런 기차가 비행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고안된 게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고백하는 건 어쩐지 부끄러운 일이기에, 승객들은 자신들이 이런 기차로 여행을 다닌다는 말은 될 수 있으면 하지 않는다. 굳이 떠벌리고 다닐 필요는 없으니까. 이러한 기차는 오래된 단골들, 비행기의 이착륙 때마다 무서워서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는 불운한 극소수를 위한 것이다.매번 손에 땀이 나서 끊임없이 화장지를 뽑아 쓰기에 바쁜 사람들, 스튜어디스의 소매를 계속해서 잡아당기는 사람들.
    (/ p.96)

    여행 심리학의 핵심적인 개념은 바로 욕망입니다. 바로 이 욕망이 인간에게 이동성과 방향성을 부여하고 어딘가로 향하려는 성향을 일깨웁니다. 욕망 그 자체는 무의미합니다. 그저 방향만을 가리킬 뿐, 목적지를 드러내진 않으니까요. 목적지는 신기루 같은것이고 불확실한 것입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욱 애매해지고 수수께끼 같아집니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목적지에 다다르거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 pp.118~120)

    무(無)에서 온 사람에게는 모든 이동이 다 귀환인 법이었다. 공허만큼 자신을 끌어당기는 것은 없기에.
    (/ p.136)

    인간의 몸은 과연 누가 고안해 낸 것이며, 이에 대한 영원한 저작권은 누가 갖고 있는 것일까?
    (/ p.195)

    신체의 모든 부위는 기억할 가치가 있다. 모든 인간의 몸은 보존해야 마땅하다. 이토록 여리고 연약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 p.200)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지인이 내게 말하길 그는 혼자 여행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뭔가 새롭고 신기하고 아름다운것을 봤을 때 다른 누군가와 감상을 나누고 싶은데 그럴 사람이 곁에 없으면 불행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나는 그가 과연 진정한 순례자가 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 p.251)

    고대의 순례자들이 여행을 하는 목적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거룩한 장소를 목적지로 정하고 거기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신성함을 체험하고 정죄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거룩한 성지가 아니라 죄 많은 장소를 여행할 때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까요? 사막이나 황무지를 여행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니면 활기 넘치고 생산적인 장소를 여행한다면요?
    (/ p.264)

    한 귀퉁이에 서서 바라보는 것. 그건 세상을 그저 파편으로 본다는 뜻이다. 거기에 다른 세상은 없다. 순간들, 부스러기들, 존재를 드러내자마자 바로 조각나 버리는 일시적인 배열들뿐. 인생? 그런 건 없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선, 면, 구체, 그리고 시간 속에서 그것들이 변화하는 모습뿐이다.
    (/ p.280)

    필립은 자연에 대한 우리의 모든 지식은 사실상 신에 관한 지식이라고 믿었다. 우리 안의 지옥인 슬픔과 절망, 질투와 근심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는 것이 바로 자연이기 때문이다.
    (/ p.319)

    이야기에는 완벽한 통제가 도저히 불가능한, 고유의 타성이 내재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는 나 같은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자신감이 없고 우유부단하며 쉽게 현혹당하는 사람들. 단순하고 무지한 사람들.
    (/ p.323)

    지옥은 당신을 잠에서 끄집어낸다. 때로는 불쾌한 이미지, 무섭거나 조롱하는 듯한 장면을 당신의 꿈에 출몰시킨다. 예를 들어 목을 자른다든지, 사랑하는 이의 몸을 핏물에 담근다든지, 인간의 뼈를 재 속에 파묻는 광경 따위를 꿈속에서 보여 주는 것이다. 그렇다. 지옥은 충격을 가하는 것을 좋아한다.
    (/ p.347)

    우리의 몸뚱이는 가엾고 추하다. 예외 없이 전부 가루로 으깨어질 운명을 타고났다.
    (/ p.359)

    몸을 흔들어, 움직여, 움직이라고. 그래야만 그에게서 도망칠 수 있어. 이 세상을 다스리는 존재에겐 움직임을 지배할 능력이 없어. 우리의 몸은 움직일 때 비로소 신성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어. 움직여야만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거야. 그는 정지 상태에 놓여 있는 것, 꼼짝도 하지 않는 것,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모든 것을 지배해. 그러니까 움직여, 몸을 흔들어, 걸어, 뛰어, 도망쳐! 네가 그 사실을 잊고 멈춰 서는 순간, 그의 거대한 손이 너를 낚아채서 꼭두각시로 만들어 버릴 테니까 인간의 진정한 권력은 인간의 육신에만 작용하고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입니다. 국가가 만들어지고 국가 간에 국경선이 수립되었다는 것은 결국 명확히 규정된 공간에만 인간의 육체를 머물게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자와 여권이 만들어졌다는 건, 이동과 움직임의 자유로운 필요성을 제한하고 조정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세금을 부과하는 통치자는 자신의 국민에게 어떤 것을 먹이고 어디서 잠을 재울지, 비단옷을 입힐지 마직 옷을 입힐지를 결정하게 됩니다.
    (/ p.389)

    멈추는 자는 화석이 될 거야, 정지하는 자는 곤충처럼 박제될 거야, 심장은 나무 바늘에 찔리고, 손과 발은 핀으로 뚫려서 문지방과 천장에 고정될 거야. (...) 움직여, 계속 가, 떠나는 자에게 축복이 있으리니.
    (/ pp.391~392)

    너무 많은 세계가 존재할 때는 전체보다 세부적인 항목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
    (/ p.404)

    그녀의 가족들은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항상 일 분 정도 자리에 앉아 있었다. 폴란드 시골 마을의 오랜 관습이었다.
    (/ p.416)

    비행기를 탈 때면 늘 그랬다. 그녀는 자기 생의 조감도를 보면서, 지상에서는 까맣게 잊고 지내던 생의 특별한 순간들을 떠올리곤 했다. 플래시백의 진부한 메커니즘, 기계적인 회상.
    (/ p.421)

    살아 있다(이것 말고 대체 어떤 어휘를 사용할 수 있겠는가.)는 것은 100만 가지의 특성과 자질을 아우르고 있다는 뜻이며, 삶을 벗어나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모든 죽음은 삶의 일부이며, 어떤 의미에서 보면 죽음이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오류나 잘못 또한 없다. 죄를 저지른 자도, 무고한 자도 없고, 공이나 과도 없으며, 선과 악도 없다. 이러한 개념을 만든 당사자는 인류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 것이다.
    (/ p.433)

    최근 몇 년 동안 그녀는 아무런 특징도 없는 중년 여인이 되면 타인의 눈에 절대 띄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비단 남자들뿐 아니라, 직장에서 그녀를 더는 경쟁 상대로 여기지 않는 다른 여자들의 눈에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과 뺨, 코를 훑어보지도 않고 무심하게 미끄러져 지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상당히 새롭고도 놀라운 발견이었다.
    (/ p.450)

    언젠가 아주 먼 곳까지 여행을 갔다가 네트워크가 없는 지역에서 고생했던 일을 복잡한 감정으로 회상해 본다. 처음에 내 전화기는 절박하게 연결 고리를 찾아 헤맸지만, 결국 아무런 해결책도 발견하지 못했다. 전화기의 메시지는 내 눈에는 점점 더 신경질적으로 변해 가는 듯했다. ‘네트워크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라는 메시지가 계속 반복되었다. 그러다 결국 자포자기한 전화기는 사각형의 동공으로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그저 쓸모없는 기기, 플라스틱 덩어리에 불과했다.
    (/ p.484)

    우리는 서로에 대해 기록할 것이다. 그것이 가장 안전한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이기에. 우리는 문자와 이니셜을 서로 교환하고, 종이 위에 서로를 불멸로 남기고, 서로를 플라스티네이션 처리하고, 문장의 포름알데히드 속에 서로를 담글 것이다.
    (/ p. 601)

    저자소개

    올가 토카르추크(Olga Tokarczuk)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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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간도서 5종
    판매수 780권

    현재 폴란드에서 가장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작가.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문화인류학과 철학에 조예가 깊으며, 특히 칼 융의 사상과 불교 철학에 지대한 관심이 있다. 신화와 전설, 외전(外典), 비망록 등 다양한 장르를 차용해, 인간의 실존적 고독, 소통의 부재, 이율배반적인 욕망 등을 특유의 예리하면서도 섬세한 시각으로 포착한다.
    등단 초부터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고른 관심과 호응을 받았다. 등단작 《책의 인물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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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은은 한국외국어대학교 폴란드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 동유럽어문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폴란드 바르샤바대학교 폴란드어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바르샤바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를 지냈으며(1997∼2001),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폴란드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평전-안녕하세요 교황님≫(바다출판사, 2004), ≪세계의 소설가 II-유럽·북미편≫(공저-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2003) 등이 있고, 역서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명상시집-내 안에 그대 안식처 있으니≫(따뜻한 손, 2003), ≪고슴도치 아이≫(보림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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