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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기부터 네오 국제화기까지
전후 일본대중문화의 흐름을 한 권에 담다

전후 일본이 추진한 문화 정책은 주로 전통문화나 계승되어 온 예술문화에 집중적으로 추진되었기 때문에 대중문화 정책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려웠다. 그 결과 문화 정책은 기존의 일본적인 사상이나 가치를 가진 문화 중심으로 추진되었고, 그것을 일반화하거나 접근하도록 시설 정비, 법적 제도 정비, 프로그램 개발 등과 같은 측면에서 추진되었다. 따라서 새롭게 발생하거나, 유입하여 전파되거나, 창조되어 대중이 향유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이른바 대중문화 정책은 등한시되는 경향이 있었다. 대중문화 정책이 잘 추진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대중문화를 부흥 정책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규제나 제한의 관점에서 인식하고 대응하는 한계를 보였다. 일본이 추진한 문화 정책을 통해 대중문화가 발생하기보다는 정책과는 무관하게 자본 논리, 문화 생산자의 목적, 문화 소비자의 취향 등에 의해 발생하고 성장한 측면이 있다.

이 책은 학문적이며 현실적인 접근을 통해 전후 일본 대중문화의 정체를 밝히고 역사를 구축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일본 대중문화의 전체상과 특징을 쉽게 이해하고, 대중문화를 통해 일본의 시대성을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일본대중문화를 다각적으로 조명한 개설서

대중문화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지칭한다. 한정된 소수 또는 소중(小衆)보다는 다수 또는 대중이 넓게 애호하고 향유하는 문화가 대중문화(popular culture)에 내재된 본래의 의미일 것이다. 고도의 지식이나 기술로 접하고 독점하는 전문적이며 특수한 문화가 아니라 다수가 통상적인 지식이나 상식으로 향유하는 아마추어적이며 보편적인 문화이다. 많은 사람이 수용할 수 있고 넘볼 수 있기 때문에 대중문화는 대중이 주인이 되어 향유하며 교류하는 문화이다.
생활인이나 사회인이 향유하는 대중문화는 문화 영역과 문화 내용에서 본 것처럼 방대하고 다양해서 일정하게 한정하거나 경계를 정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이 책에서는 범주를 한정하거나 정의를 내리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일본인이 일상과 사회 속에서 향유하는 대중문화의 특성과 내용에 대해 고찰했다. 전후 일본 사회에서 엄연하게 존재해 온 대중문화는 각 사회 영역과 접합하고 충돌하는 과정에서 대중문화 정의, 대중문화론, 대중문화 내용 등이 변용되어 왔고 또한 특징을 살려 내실 있는 성장을 거듭하기도 했다. 시대를 아름답게 표현하고 삶을 의미 있게 하는 절대적 존재로 자리매김되어 일본과 일본인, 그리고 시대를 살리면서 존재해 왔다. 이 책은 대중문화에 대한 일반적 정의를 내려 정체를 밝히고, 동시에 전후 일본 사회에서 어떻게 생존하고 기능했으며, 어떤 특징을 갖고 변용되어 왔는가를 고찰하고 구체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일본에서 대중문화는 경제성장과 문화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고 변용되어 왔다. 이 책에서는 전후 일본 국가의 성격을 시기별로 구분하여 일본 대중문화를 고찰하고자 한다. 즉, 일본의 최고 가치인 경제지상주의에 기초하여 달성한 경제성장, 다양한 사상과 제도에 의해 구축된 사회 변화, 전통성과 현대성에 의해 영향을 받은 문화 흐름, 국내외적 정치 관계에 의해 형성된 정치 환경 등으로 자리매김된 일본의 국가 위상을 점령기, 자립기, 성장기, 도약기, 대국화기, 국제화기, 네오 국제화기 등으로 구분하여 일본 대중문화의 변용과 특징을 고찰한다.

머리글

제1장 일본 대중문화의 변용
1. 머리글?2. 대중문화의 정의와 대중문화론?3. 일본 대중문화의 변용?4. 맺는 글

제2장 점령기의 대중문화
1. 머리글?2. 점령기의 시대상?3. 점령기의 문화 정책?4. 점령기의 대중문화?5. 맺는 글

제3장 자립기의 대중문화
1. 머리글?2. 자립기의 시대상?3. 자립기의 문화 정책?4. 자립기의 대중문화?5. 맺는 글

제4장 성장기의 대중문화
1. 머리글?2. 성장기의 시대상?3. 성장기의 문화 정책?4. 성장기의 대중문화?5. 맺는 글

제5장 도약기의 대중문화
1. 머리글?2. 도약기의 시대상?3. 도약기의 문화 정책?4. 도약기의 대중문화?5. 맺는 글

제6장 대국화기의 대중문화
1. 머리글?2. 대국화기의 시대상?3. 대국화기의 문화 정책?4. 대국화기의 대중문화?5. 맺는 글

제7장 국제화기의 대중문화
1. 머리글?2. 국제화기의 시대상?3. 국제화기의 문화 정책?4. 국제화기의 대중문화?5. 맺는 글

제8장 네오 국제화기의 대중문화
1. 머리글?2. 네오 국제화기의 시대상?3. 네오 국제화기의 문화 정책?4. 네오 국제화기의 대중문화?5. 맺는 글

참고문헌

다섯째는 대국화기(1980~1990)이다. 일본 경제만이 홀로 성장하는 가운데 버블 경기(bubble boom)를 통해 일본 경제가 세계경제의 중핵으로 자리 잡았고, 경제대국 일본이 탄생하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경제질서 대신에 일본이 주도하는 세계경제질서가 생겨나 국제사회에서 힘을 발휘했다. 경제대국화로 인해 자부심을 갖게 된 일본 기업문화가 해외로 수출되는 기현상이 벌어졌고, 일본 문화의 활성화와 국제화를 추진하는 문화 정책을 추진했다. _ 40쪽

GHQ는 일본을 점령하면서 대중문화 정책으로 이른바 3S 정책을 적극적으로 실시했다. 3S 정책은 스크린(screen) 정책, 섹스(sex) 정책, 스포츠(sport) 정책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에서 추진된 3S 정책이라는 용어는 양명학자이며 사상가로 활동한 야스오카 마사히로(安岡正篤, 1898~1983)가 미군이 일본을 점령한 시기에 존재했다고 주장한 데서 유래한다. 일본의 전통문화를 대체하고 서구 문화의 이식을 통해 대중의 관심을 비정치적 부문으로 전환하려는 의도적인 대중문화 정책이었다. _ 78~79쪽

당시 시대상을 전적으로 반영한 음악과 쉼 장소로 이용된 재즈다방(ジャズ喫茶)이나 가성다방(歌?喫茶)이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어 유행했다. …… 가성다방은 가라오케 박스(カラオケボックス)와는 다르게 모두가 합창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젊은이들이나 사회운동 성향을 지닌 이들이 모여 노래하고 토론하는 사회운동의 거점 역할을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음식 주문이 적고 단가도 낮아 운영난에 처하게 되면서 퇴조의 길로 들어섰다. 1965년을 피크로 가성다방 붐은 점차 시들어 1970년대에 거의 사라졌다. 1970년대 후반에는 가라오케 스낵바(カラオケスナック), 1980년대 가라오케 박스 등이 생겨나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고 싶은 수요자를 흡수해 일본제 명품문화로서 가라오케문화가 정착했고 이후 세계화가 진행되었다. _ 154~155쪽

1963년 미국에서 세계 최초의 팬티스타킹이 개발되어 발매되었다. 발매 시기부터 미국 여성 사이에서 붐을 일으켜 팬티스타킹의 세계화가 시작되었다. …… 일본에서는 수입품이었기 때문에 희소성이 있었고 고가이기도 해서 서민들에게는 확산되지 않았고 잘 팔리지 않았다. 그 후 섬유 제품을 제조·판매하던 아쓰기나일론공업(厚木ナイロン工業, 現アツギ)의 창업자 호리 로쿠스케(堀?助)는 미국에서 배운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팬티스타킹을 개발하여 1968년 처음으로 일본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팬티스타킹의 발매가 시작되면서 일본 여성 사이에 붐이 일어 한 시대를 풍미했다. 당시 팬티스타킹은 투명성과 착용감을 강조했고, 올이 풀리는 것을 수리하는 업자도 있을 만큼 고가의 상품이었다. _ 238~240쪽

일본 젊은 여성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갸루문화(gal or gyaru culture)를 형성하여 성장기 문화 장르의 다양화에 영향을 주었다. 갸루는 젊은 여성을 지칭하는 ‘girl’를 의미하고, 영어 속어 ‘gal(ギャル)’의 발음을 그대로 사용한 용어이다. 일본어 갸루는 영어와 동의이며 일본어의 로마자 표기는 ‘gyaru’이다. …… 갸루문화는 여성이나 남성이 만들어낸 독특한 패션, 라이프스타일, 사고와 행동 양식 등으로 구축된 젊은이문화이며, 동 세대가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는 일본적인 청년문화이다. 문화적으로 독창적이며 신선함이 있어 해외에서는 최첨단 젊은이문화로 인식하여 일본어 로마자 표기 ‘gyaru culture’로 사용한다. 최근 갸루문화는 새로운 문화 장르를 형성하고 국내외로 전파되면서 문화 가치를 창출하고 있어 수출산업의 일환으로 활성화시키고 있다. 일본 외무성은 갸루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리얼 갸루 패션쇼(real gal fashion show)를 후원했다. _ 326쪽

여행을 촉진시키는 국철 캠페인과 동시에 등장한 안논족 현상은 종래의 여행과 전혀 다른 여행 스타일이었다. 국철은 여성 여행객을 의식해 여행 스타일을 중시하고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당시 인기 있던 가수 야마구치 모모에(山口百?)의 「좋은 날 여행(いい日旅立ち)」(1978)을 홍보 송으로 사용했다. 여성들은 각지 이른바 소교토(小京都)로 대표되는 조용한 역사유적지와 같은 관광지가 아니라 흥이 있는 장소를 방문했다. 그리고 지역의 맛있는 향토 음식, 유명 과자 등을 먹고, 관광지에서 휴식을 취하는 힐링 관광이 중요한 여행 테마가 되었다. _ 369쪽

다이에 기업은 ‘소비자를 위해 좀 더 좋은 상품을 점점 싸게 제공한다(For the Customers よい品をどんどん安く消費者に提供する)’는 슬로건을 내세웠고, 이를 위해 기존 가격을 파괴하는 것이 다이에의 존재 가치라고 했다. 예를 들면, 쇠고기의 경우, 보통 상점에서는 100그램당 100엔에 판매하면, 그것을 좀 더 싸게 하여 70엔으로 인하하고, 다시 39엔으로 가격을 내려 판매하는 방식이다. 가격 파괴로 인해 주부들이 쇄도하여 품절 현상이 속출했다. 다이에는 품절 상태를 보충하기 위해 살아 있는 소를 매입하여 쇠고기로 가공하기도 했으며, 더욱이 오키나와에 수입관세가 없는 것을 이용하여 호주의 소를 오키나와로 수입해서 사육한 후 국내로 들이는 새로운 유통 방법을 고안하여 가격 파괴를 이어갔다. _ 494쪽

유토리 세대는 냉정한 인간관계, 무욕에 가까운 니힐리즘(nihilism), 자기중심주의 등으로 대표되는 철학을 몸에 지녔다. 그들은 정보화 사회가 급속하게 발전하는 가운데 유년기를 보내고 포켓 벨과 소형의 전화기를 휴대하고 장거리 전화가 가능한 시스템 PHS(Personal Handyphone System)가 등장하는 가운데 성장했다. 학령기에는 휴대전화 보급률이 높아지고 인터넷이 폭발적으로 확산되어 메일을 시작으로 믹시(mixi), 트위터(twitter), 페이스북(Facebook), 라인(line) 등으로 대표되는 SNS나 소셜네트워크가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정착했다. 통신 단말기 소지가 필수불가결한 세대이고, 대중문화로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취미로 하면서 인터넷 발달로 다운로드 받은 음악에 심취했다. 그들은 인터넷이나 컴퓨터가 있는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digital native generation)라고도 한다. _ 534~5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