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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5 - 마그나카르타의 해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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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왕’보다 ‘법’이 앞선다는 인류 최초의 선언!

폭군에의 반란이 서구 최초의 성문법을 탄생시키다


1215년 6월 15일, 잉글랜드의 존 왕은 러니미드 초원에서 자신의 폭정에 맞서 반란을 일으킨 신하들과 마주앉아야 했다. 그들은 왕에게 자신들이 작성한 '자유헌장'을 들이밀며 옥새를 찍으라고 요구했다. 이것이 바로 마그나카르타, 대헌장이었다. 총 63절로 이루어진 대헌장은 전제 왕권에 대한 역사상 최초의 근본적인 도전이었으며, 전 세계 어떤 국가 의회에서도 거론되는 서구 최초의 성문법이다. 마그나카르타는 이전에 발표된 유사한 헌장들과는 전혀 달랐다. 당시는 반란이라는 위기 상황이었으며 존 왕과 귀족들은 대중의 정치적 지지를 위해 경쟁했다. 때문에 귀족들은 자신의 이익만을 쫓을 수 없었고, 일반 백성의 이익까지 아우른 길고 상세한 내용의 헌장을 요구했던 것이다. 마그나카르타는 왕이 귀족을 대했던 방식을 비판하는 식이 아니라 국가 지배 체제전반에 대한 논평 형식으로 방향을 잡았으며, 반란군은 존과 끝까지 치열하게 싸워 가능한 한 많은 양보를 이끌어 내서 자신들의 요구를 수용하게 했다. 왕과 귀족간 정치권력의 투쟁은 중세 영국에서의 삶을 바꾸어 놓았으며, 패션, 음식, 교육, 의료, 종교, 성생활에 이르는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이 책에서는 마그나카르타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그 내용을 통해 이 시기를 살던 영국인의 삶에 대해 상세히 살펴본다. 저자는 궁정, 도시, 시골에서의 생활과 교육, 종교, 문학, 형벌과 법 제도는 물론 마상 시합과 사냥까지 헌장의 관련내용과 엮어 구체적으로 재현해내고 있다.



의식주에서 학문과 재판과 전투까지, 중세유럽 ‘최고의 문명국가’를 탐험하다

13세기 초 영국에서는 약 150개의 도시가 생겨났다. 방적, 베짜기, 염색 등의 기술이 피륙 생산에 박차를 가했고 풍차, 시계, 안경도 이 시기에 나타났다. 안경의 도움으로 나이가 들어서도 꼼꼼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게 되어, 학문의 발전에 큰 계기가 마련되었다. 갑옷과 투구의 등장으로 더욱 다양한 마상 시합이 고안되었다. 운송 수단이었던 짐수레는 더욱 정교해지면서 더욱 빨라졌고, 이로 인해 대규모 시장이 발달했다. 평탄한 도로가 건설되었고, 나무다리가 돌다리로 개축되었다. 방파제와 기중기가 건설되었고, 대형 화물선이 개발되어 더 많은 물품을 교역할 수 있게 되었다. 유럽이 전 세계 다른 나라들과의 교역에 나섬에 따라 이국적인 음식과 옷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1215년의 문인들은 프랑스어와 영어를 모두 능숙하게 구사했다. 중세에는 수도사만 글을 썼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때는 로마 제국 이래 최초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글을 썼던 시기였고, 남아 있는 자료들을 토대로 당시 일상생활 모습과 생각들을 훨씬 자세히 알아낼 수 있게 되었다. 운문이나 산문 소설이 프랑스어와 영어로 저술되었다. 『아서 왕 이야기』 등은 ‘12세기 르네상스’라는 중세 문화 운동에 속한 문학작품으로 기록된다. 옥스퍼드에는 영국 최초의 대학이 설립되었으며, 엄청난 수의 로마네스크나 고딕 양식 건물이 들어섰고 런던탑, 링컨 대성당 등 그 일부가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물리학에 정통해서 공간과 조명을 자유자재로 다루었던 건축가들은 공학 혁명을 일으켜 어둡고 음울했던 실내를 빛으로 채웠고, 스테인드글라스로 건물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인간의 보편적 자유, 마그나카르타의 현대적 의의

마그나카르타는 이제 신화적 존재가 되었지만, 1215년 6월 당시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필요할 경우’ 왕의 모든 재산을 몰수할 수 있는 권한은 왕의 적이 선택한 25인의 귀족위원회에게 있었고, 이에 따르면 왕은 사실상 폐위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에 승복할 왕이 있을 리 없었고, 대헌장의 조인은 그저 시간을 지연하기 위한 전술일 뿐이었다. 귀족들은 오래 지속될 수 없는 이상한 정치적 괴물인 헌법을 만든 셈이었다. 교황에게 비난받고 왕에게 배척되고 반란군이 포기한 마그나카르타는 1년도 안 되어 거의 사장되었다. 하지만 죽은 것은 아니었다. 존 왕이 죽고 난 후 즉위한 새 왕이 내용의 대부분을 받아들여 마그나카르타를 새로이 공포한 것이다. 마그나카르타는 프랑스어와 영어로 번역되었고, 교회 문마다 그 사본을 못으로 박아 걸었다. 이때부터 왕의 통치가 바른 길을 벗어날 때마다 사람들은 대헌장을 근거로 하여 시정을 요구했다. 1770년 윌리엄 피트 수상은 마그나카르타를 '영국 헌법의 성서'라고 칭했다. 이것은 잉글랜드 최초의 법령으로 자리매김 되었고 1863년까지 법령집에 존재했다. 미국 식민지에서도 마그나카르타의 원칙은 변함없었으며, 마그나카르타는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위한 싸움에서 뚜렷한 상징이 되었다. 독립선언문 작성자는 과업에 앞서 마그나카르타를 정독했다. 현재 미국 수정헌법 제 5조 '누구도 법 절차에 의하지 않고 생명, 자유, 재산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는 마그나카르타 39절에서 따온 것이다. 지금도 마그나카르타가 승인된 러니미드 초원에는 미국변호사회가 세운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800년이 지난 오늘날 마그나카르타는 인간의 보편적 자유의 상징으로 사용될 만큼 유명해졌다. 그중에서도 모든 국민의 권리를 강하게 설파하고 있는 다음 두 절은 특히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짐은 누구를 위하여서라도 정의와 재판을 팔지 아니하며, 또 누구에 대하여도 이를 거부 또는 지연시키지 아니한다.'
'자유민은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와 같은 신분의 동료에 의한 합법적 재판 또는 국법에 의하지 않는 한 체포, 감금 또는 그 외의 어떠한 방법에 의하여서라도 자유가 침해되지 아니한다.'

목차

머릿말



1 영국인의 성

2 시골

3 도시

4 학교

5 가문간의 전쟁

6 마상 시합과 전투

7 숲 속의 사냥

8 교회

9 존 왕

10 왕의 신하들

11 신성재판

12 기독국가

13 잉글랜드인과 켈트족

14 넓어지는 세계

15 대헌장

16 사회적 통념



마그나카르타 전문

참고 자료

감사의 말

찾아보기

본문중에서

롱비어드Longbeard라고도 부르던 런던 시민 윌리엄 피즈오스버트가 불공정한 과세에 대한 항의 시위를 이끌었다. 롱비어드는 관리 한 명을 사살하고, 그를 따르는 친구들과 함께 성소인 성 메리르바우로 피신했다. 그러자 휴버트의 군대는 교회에 불을 질러 롱비어드를 끌어냈다. 런던탑에서의 신속한 재판 후, 롱비어드와 동료 9명은 말 꼬리에 묶여 타이번(런던의 사형집행장 - 옮긴이)으로 끌려간 후 교수형에 처해졌다. 롱비어드는 곧 순교자로 존경받았다. 그를 처형했던 교수대는 비밀리에 철거되어 성물로 받들었고 교수대가 있던 땅은 치유력이 있다고 알려져서 성소로 신성시되었다. 휴버트는 군대를 보내 그가 죽음을 맞이했던 장소에 모여든 사람들을 해산시키고 감옥에 가두었으며, 경비를 배치해서 일반인의 접근을 봉쇄했다. 또한 롱비어드가 첩과 광란의 섹스를 벌여 성 메리르바우 교회를 더럽혔다거나 신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게 되자 악마에게 손을 벌렸다는 등 각종 추문을 마구 퍼트렸다. 롱비어드의 추종자들은 이런 소문이 전부 거짓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막 싹트던 순교자 숭배는 점점 시들해졌다. 정부가 주도한 치밀한 여론 조작의 승리였다.

-3장 ‘도시’ 중에서



1190년대에는 옥스퍼드로 유럽 대륙의 학생이 유학 오는 일도 생겨났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대학의 형태를 갖추지는 못한 채 많은 교수와 학생을 한 도시 안에 비공식적으로 모아놓은 것에 불과했다. 연대기 작가인 웬도버의 로저는 대학 창립의 계기가 되었던 1209년의 유혈극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옥스퍼드에서 교양 학과를 공부하던 한 성직자가 실수로 여자를 죽인 후 시체를 버려 둔 채 달아났다. 여자의 시체가 발견되자 옥스퍼드 시장은 임대 주택에서 도망자와 함께 생활하고 있던 다른 3명의 성직자를 체포했다. 세 명 모두 살인극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했는데도 감옥에 갇혔고, 며칠 후 교회법을 모욕한 죄를 물어 왕명으로 도시 밖으로 추방된 다음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러자 교수와 학생을 비롯한 성직자 3000명가량이 한꺼번에 옥스퍼드를 떠났고, 도시는 텅텅 비어버렸다.

1214년에 결국 도시 당국이 당시 사건에 대해 사죄했고, 학생들의 월세와 음식값을 규제하고 대학에 매년 일정 금액을 지불해서 고학생을 지원하도록 했다. 로저가 쓴 3000명의 교수와 학생이라는 표현은 분명 과장된 것이었지만, 당시 도시를 빠져나가 구매력 감소를 야기했던 사람의 수가 옥스퍼드 경제에 심각한 손상을 줄 정도였음은 틀림없다. 하지만 논쟁이 길어지자 교수와 학생 중 일부는 편안한 케임브리지에 정착했다.

-4장 ‘학교’ 중에서



많은 쌍이 결혼하지 않고 오랫동안 함께 살았다. 교회 회의는 결혼한 사람이든 아니든 간음자에게는 벌금이라도 물려야 한다고 소리 높였다. 간통은 훨씬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 간통한 사람에게 권장한 참회는 대로에서 벌거벗고 죽도록 맞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쵸밤의 토머스는 아내의 간통 사실을 알게 된 백 명의 사람에게 여자의 정부를 거세하도록 했다. 심지어 그 정부가 성직자인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교회와 왕실의 의견이 같았다.

하지만 베클스의 다니엘은 남편이 자행하는 이런 폭력적 대응을 승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여자는 잘난 남자에게 거의 저항할 수 없기 때문에 아내란 정숙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애인과 벌인 단 한번의 벌받을 짓으로도 아내는 남편과의 법적인 기간 100년 동안보다 훨씬 즐거울 것이다.' 그도 정부를 처벌할 법적인 남편의 권리는 인정했지만,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척 하라고 권했다. '얼굴을 붉히고 가슴을 슬픔으로 가득 채우는 것보다는 남편으로서의 수치심을 내색하지 않는 편이 낫다.'

-5장 ‘가문 간의 전쟁’ 중에서



마상 시합은 매우 과격한 경기였고 참가하는 기사는 오늘날의 자동차 경주 선수만큼이나 생명의 위험을 감수했다. 격투 중 말에서 떨어지거나 쏟아지는 공격에 못 이겨 쓰러지면 말에 매달려 끌려가거나 말발굽에 밟힐 위험이 있었다. …… 이 시기의 전쟁 기술에 대한 표준 지침서는 로마 후기 저자인 베게티우스의 『군대』다. 전쟁에 대한 그의 충고는 매우 단순하다. '하지 말라'는 것이다. '모든 계획을 고려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모든 방법을 강구한 후에야 최후의 비상수단으로 전쟁을 고려할 수 있다.' 필리프와 같은 유능한 지휘관들은 베게티우스의 충고를 따랐다. 헨리 2세는 단 한 번도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 유럽에서 사자심왕으로 잘 알려져 있는 리처드처럼 유명한 병사도 단 한 번 전쟁을 했을 뿐이다. 평생 오랜 세월을 종군했던 필리프에게조차 격렬한 전투는 부빈 전투 하나 뿐이었다.

-6장 ‘마상 시합과 전투’ 중에서



왕국 내 대부호의 상속과 결혼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후원자로서의 왕의 권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오늘날 서구 정부의 수뇌부도 이와 같은 중세 잉글랜드 왕의 후원력은 따라가지 못한다. …… 당시 표현을 밀자면, 궁정에서의 생활은 한 마디로 지옥이었다. 월터 맵에 따르면 헨리 2세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정치적 후원은 매를 조련하는 것과 같다고 충고했다. 그녀는 왕은 가능한 오랫동안 관직을 비워두어서 조세 수입도 유지하면서 관직에 뜻을 둔 자들에게 희망도 안겨주어야 한다고 충고하며, 사납게 날뛰는 매는 고기를 보여주었다가 숨겨버리면 더욱 예리하게 집중하며 더 순종적이 된다는 비정한 우화를 들려주곤 했다. 하지만 궁정 생활이 아무리 지옥이더라도 그 입구에는 언제나 거기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넘쳐 났다.

왕은 후원 제도를 손쉬운 수입원으로 오랫동안 사용해왔다. 출세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관직, 토지 상속, 토지의 관리, 후견인 또는 유리한 결혼을 약속했고, 이 모든 것은 비교적 비싸게 거래되었다. 가격은 흥정할 수 있었다. 활발한 경매가 벌어지기도 했다. 왕이 최고 입찰가를 승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값을 낮추기 어렵게 만들어 돈을 더 받아낼 수는 있었다. 제프리 맨데빌은 존의 전 부인 글로스터의 이자벨과 결혼하기 위해 2만 마르크를 지불했고, 북부 봉신인 니콜라스 스튜트빌은 형의 토지를 상속받기 위해 1만 마르크를 내놓았다. 제프리와 니콜라스 모두 자신들이 당했다고 생각했고 둘 다 1215년의 반란군에 합류했다.

-10장 ‘왕의 신하들’ 중에서



존의 군대는 신하들의 땅 곳곳을 초토화시켰다. 곡식을 태우고 나무와 과수원을 파괴했으며, 가축을 강탈했다. 또한 도시와 마을들을 전부 불태워버렸다. 불타 죽지 않으려면 왕에게 돈을 바쳐야 했다. 이런 엄청난 군사력 앞에서 일부 반란군은 항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미 붕괴된 상태였고 국고는 바닥나 있었다. 존의 군 지휘관과 사령관들은 성을 닥치는 대로 약탈하여 용병들에게 줄 돈을 긁어모았다.

10월 9~10일 밤, 린에 머물던 존은 설사로 고생했다. 시토 수도사인 코그셸의 랄프에 따르면, '아무리 먹어도 만족할 줄 몰랐던 존의 폭식' 때문이라고 한다. 존은 갑작스러운 설사에 크게 놀랐다. 아침이 되자 걱정이 된 나머지, 윌리엄 드 브리오즈의 딸 마거릿에게 선물을 주어 부모형제의 영혼을 달래도록 했을 정도였다.

이후 며칠 간 존은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었으나 진군을 계속했고, 마침내 뉴어크에 도착했다. 그리고 1216년 10월 18~19일 밤, 거기에서 죽었다. 존의 부하들이 휴대품과 전리품을 가지고 도망간 후에야 존의 시체는 성당에 묻힐 수 있었다. 이후 1232년에 그의 유해를 새 석관에 옮기고서야 무덤의 초상이 새겨졌기 때문에, 오늘날 그의 외모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알 수 없다.

-15장 ‘대헌장’ 중에서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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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경제 대학(LSE)의 역사학 명예 교수이며, 현재 앵글로노르만 연구 토론학회장으로 있다. 『리처드 1세Richard I』로 ≪타임스≫ 문예란에서 '주관이 매우 뚜렷한 위대한 역사학자'라는 평을 받았다. 그밖에 『12세기 영국사The English in the Twelfth Century』, 『장미전쟁The Wars of the Roses』, 『앙주 왕국The Angevin empire』등 중세시대에 대한 수많은 명저를 남겼다.

대니 댄지거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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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타임스≫와 ≪인디펜던트≫ 등 영국 유수의 여러 신문에서 인터뷰어이자 칼럼니스트로 일해 왔다. 『서기 1000년The Year 1000』, 『이튼의 목소리Eton Voices』, 『링컨 대성당The Cathedral』, 『오케스트라: 음악 뒤의 삶The Orchestra: The Lives Behind the Music』, 『고귀한 전통: 중세 전문직업인들과의 심층 인터뷰The Noble Tradition: Intimate Interviews with the Medical Profession』를 포함한 8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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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전산과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나를 미치게 하는 정원이지만 괜찮아] [진단명 사이코패스](공역) [살인자들과의 인터뷰](공역) [인간은 왜 낚시를 하는가?] [메이플라워]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교양 7] [지퍼에서 자동차까지] [개로 길러진 아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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