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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토크 VOSTOK 매거진 17호 : 다크 투어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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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사진가들의 검고 어두운 여행,
그리고 다큐멘터리 사진의 의미를 다시 묻는 일

이번호 보스토크 매거진은 사진가들이 떠나는 어둠의 여행을 따라간다. 독재 정권의 고문실로 사용된 남영동에서 출발해 제주 4.3과 광주 5.18 항쟁, 오키나와와 같은 학살의 지역들, 지금 국가가 시민을 버리고 있는 후쿠시마와 미야기의 땅, 방사능으로 폐허가 된 체르노빌, 세계 대전의 지뢰가 남은 벨기에의 전선과 홀로코스트의 유적지에 도착한다. 이 겹겹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독자들은 자신의 사진이 지닌 의미를 거듭 묻는 사진가들의 고민을 만나게 될 것이다.

출판사 서평

인간이 만들어낸 파괴와 슬픔의 흔적들을 찾아가는,
사진가들의 검고 어두운 여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다크 투어리즘’은 전쟁이나 학살 등 비극적 역사의 현장이나, 엄청난 재난과 재해가 일어났던 곳을 돌아보는 여행을 의미한다. 외국에서는 ‘죽음의 여행’, ‘슬픔의 여행’ 등으로 불리우기도 하는 이 낯선 외래어를 국립국어원은 ‘역사교훈여행’으로 다듬어 쓰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사진의 전통적인 기능 중 하나는 이런 ‘다크 투어’를 관람객들 대신 떠나 주는 일이다. 즉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이들이 직접 가볼 수 없는 전쟁과 학살, 정치적 부조리의 공간을 사진가들은 대신 방문해서, 그것을 사진의 형태로 우리에게 쏘아보내 준다. 그들로 인해 우리는 세계의 구석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고, 함께 분노하거나 개선을 요구할 수도 있다.

이번호 보스토크 매거진은 사진가들이 떠나는 어둠의 여행을 따라간다. 그 여정은 대략적으로 이렇다. 우리는 독재 정권의 고문실로 사용된 남영동에서 출발해 제주 4.3과 광주 5.18 항쟁, 오키나와와 같은 학살의 지역들, 지금 국가가 시민을 버리고 있는 후쿠시마와 미야기의 땅, 방사능으로 폐허가 된 체르노빌, 세계 대전의 지뢰가 남은 벨기에의 전선과 홀로코스트의 유적지에 도착한다. 국내외에서 일어난 역사적 비극과 참사를 다룬 사진과 글로 엮인 이번호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 우리는 충분한 지식과 분노를 지닌 채로 일상에 돌아갈 수 있게 될까.

이것은 사진의 모호한 괴로움에 대한 이야기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대답은 한없이 망설여진다. ‘다크 투어’의 이면에는 분명히 어떤 뒤틀린 즐거움이 숨겨져 있다. 그 즐거움은 폐허를 애호하고, ‘교훈’을 수집하며, 부조리를 고발하는 자신을 사랑하는 데서 나온다. 물론 그 즐거움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모두 다르다. 어떤 사진가들은 세상을 낫게 만들고 있다는 강철 같은 확신으로 중무장하고, 어떤 사진가들은 카메라를 들고 달리면서도 자신에 대한 의심을 지우지 못한다.

보스토크 매거진이 사랑하는 작가들은 명백히 후자의 부류다. 우리는 도대체 명쾌한 결론이라는 것을 낼 수도, 믿을 수도 없다. 사진을 찍는 이들처럼 사진 잡지를 만드는 이들에게도 ‘다크 투어’가 주는 분노와 공포와 함께 어떤 기묘한 즐거움이 있다. 보스토크 매거진 역시 그 감각을 의심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따라서 이번호에 수록된 작가들은 대개 자신들의 작업과 마음을 조각조각 저며내면서 그 안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들여다보려는 이들이다. 세상은 결코 명쾌하게 이해되지 않고, 현실 또한 제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이번호에 수록된 대분의 사진 작업들이 명쾌한 교훈이나 선명한 메시지 대신 모호한 의심과 물음을 거듭 던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요즈음의 디지털 환경은 ‘다크 투어리즘’이라는 단어에 담긴 슬픔을 효과적으로 제거하고, 그 쾌감만을 겹겹이 증폭하는 것처럼 보인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검색해 보면, 분명 이 단어에 관련된 무언가가 어그러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체르노빌의 폐허를 찾아가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 후쿠시마의 텅 빈 편의점을 뒤져 일정한 물건들을 수집하는 이들, 앙코르와트와 아우슈비츠를 돌아다니며 활짝 웃는 이들의 위악적인 모습은 기이하고, 낯설고, 두렵기까지 하다. 그들의 모습에서 ‘교훈’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찍고 보여주는 사진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이들은 과연 무슨 의미를 지닐까? 온라인 네트워크로 모두 연결된 세상 속에서 현실은 액정에서 펼쳐지며 증강된다. 이런 상황에서 직접 가서 사진을 생산하는 것은 어떤 선명한 교훈을 얻기보다 혼란을 감당하는 일에 가깝다. 그동안 내가 알았던 것은 무엇이었나, 지금 바라보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인가. 이 멈출 수 없는 물음과 의심은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의 오래된 화두다. 그리고 그 질문의 무게는, 이 기이한 디지털의 시대에도 전혀 덜해지지 않고 있다.

목차

2019년 9-10월호 / VOL. 17

특집 | 다크 투어리즘

마르타 블루(Marta Blue) | What happened to the deer on the road?
서영걸 x 주용성 | 지도에는 없던 곳, 남영동 대공분실
권하형 x 허란 | 사건이 발생했다
이재욱 x 김흥구 | 오늘에 숨겨진 어제, 제주 4.3
이상일 x 노순택 | 그곳의 얼굴들, 망월동에서
김호정 | 기억과 기념을 넘어서
김인정 | 살아남은 자들의 도시
윤여일 | 쓰나미 이후의 삶, 미야기
임태훈 | ‘다크 투어리즘’이라는 무례한 질문
노순택 x 홍진훤 x 장혜령 |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요이 카와쿠보(Yoi Kawakubo) | If the radiance of a thousand suns were to burst in the skies at once
카즈마 오바라(Kazuma Obara) | Exposure
페터 데켄스(Peter Dekens) | Shaky Ground
이샤이 가르바즈(Yishay Garbasz) | In My Mother's Footsteps
유운성 | 기억과 기념: 한국영화 탄생 100주년에 부쳐
윤원화 | [사진 같은 것의 기술] 기계를 보는 기계, 박경근의 <1.6초>
이기원 | [전시 셔틀] <잠금해제>

본문중에서

“우리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도착했을 때, 여기저기에서 고함이 들렸다. ‘빨리, 빨리, 나가, 나가!’ 남자와 여자는 나눠져 격리되었다. 둘러보니 유대인 거주지역인 테레지엥슈타트에서 나이든 자녀를 둔 가족들만 이송된 것이 분명해 보였다. 15살이었던 내가 가장 어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줄무늬 옷을 입은 몇몇 수용자들이 말을 걸었다. 가지고 있는 보석은 독일군에게 순순히 주라고, 어차피 모두 빼앗길 테니까. 어머니는 구두 뒤꿈치로 땅을 파기 시작했고, 결혼 반지를 빼서 구멍에 떨어뜨렸다.”
(이샤이 가르바즈 'In My Mother’s Footsteps' 중에서/ p.217)

현실감을 문제 삼아야 한다. 이 현실감은 사진을 보는 즉시 즉물적으로 느껴지는 감각이 아니다. 느껴지지 않는 것을 충분한 시간을 들여 복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눈에 보이는 이미지의 윤곽을 훑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그 안에 담을 수 없었던 맥락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사진은 가장 진실한 순간을 담을 때조차 거짓말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진에서 들리지 않는 소리를 상상해야 하며, 흐릿한 초점 뒤로 밀려나 있는 것들의 이야기를 알아내려는 추가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이것은 차라리 사진과 무관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선 안 될 이유가 있나?
(임태훈 '‘다크 투어리즘’이라는 무례한 질문' 중에서/ p.136)

“전쟁의 비극을 들려주세요. 자식 손자 세대까지 계속 이야기해 주세요. 나미히라의 치비치리동굴은 우리 오키나와에 사는 자들 깊은 마음속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오키나와는 울고 있습니다. 울지 마라 치비치리여—평화를 세상에 바라고 전쟁의 비극을 세상에 알리는 곳이 되어라 치비치리여.”
('치비치리 ‘집단 자결’ 동굴 앞 팻말에 쓰여진 글(권하형)' 중에서/ p.41)

나는 이편의 우리와 운명을 공유하는 저 편의 도플갱어-이미지를 떠올렸다. 살아가는 동안 결코 알지 못하겠지만 내 삶과 연루되어 있을 한 존재를 떠올렸다. 우리가 거울을 볼 때, 이런 이미지가 비치는 거울이 있다면 그 거울은 우물처럼 깊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진가의 거울이 우물 같은 것이라면 그는 언제고 어둠의 저 편에서 상(像)이 떠오르도록 표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오래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나타나지 않을 그 이미지. 잠시 떠올랐다 사라지고 말 그 이미지를.
(노순택 x 홍진훤 x 장혜령 대담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글: 장혜령) 중에서/ p.169)

건물의 파사드는 ‘좁고 넓음’을 입에 달고 살던 한국 최고의 건축가가 디자인한 만큼 조형적으로 아름답다.(중략) 이름이 바뀌는 동안 이 공간에 쌓인 기억들은 지속적으로 삭제되었다. 보안이라는 명분하에 권력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불법과 고문의 증거를, 오고 간 대화를 지워낸 것이다. 역설적으로 희미하게 또는 부분적으로 남아있는 맥락 없는 흔적들은 삭제의 증거이기도 했다. 어쩌면 이 공간은 삭제를 통해 자신을 지키려는 자들과 흔적이라도 남겨 모두를 지키려 했던 이들의 끝없는 투쟁의 기억일지도 모른다.
(서영걸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작가 노트 중에서/ p.21)

제주 4·3사건 당시 군은 신문을 통해 포고령을 내린다. 해안에서 5킬로미터 이상의 중산간 지방을 통행하는 자는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폭도로 간주하여 발포, 사살하겠다는 내용이다. (중략) 지금은 평화롭기만 한 이 중산간의 길목들은 70년 전 주민들이 목숨을 걸고 넘어 다녔을 그 지점들이며 죽음을 각오한 한계선이다. 이 선은 현재까지 끊어지지 않은 채 보이지 않는 검열의 선이 되었고, 억압과 통제의 수단으로 여전히 존재한다. 언젠가 나의 두려움이 저 붉은 지점을 넘어설 수 있을 때 그들의 공포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고 스스로의 검열로부터 자유로운 용기를 갖게 될까.
(이재욱 '레드 라인 Red line' 작가 노트 중에서/ p.65)

내년에는 도쿄올림픽이 있다. 동일본 재해로 민주당이 몰락해 집권할 수 있었던 아베 정부는 이제 ‘부흥 올림픽’을 표방하며 후쿠시마 주민을 이용하고 있다. 방사능 오염이 심각한데도 피난 지시를 해제하고 지원금을 끊고 거주 가능 피폭량 기준을 대폭 상향조정해 이재민들이 재해지로 돌아가도록 압박하고 있다. 정상 회복의 연출을 위해 이들의 삶은 버려지고 있다. 후쿠시마보다 방사능 오염은 덜하지만 쓰나미로 삶터가 무참히 파괴된 미야기 주민들도 그러하다. (중략) 후쿠시마에서는 살 수 없는 땅으로 국가에게 내몰린 자들이 있다. 미야기에서는 살 수 없는 땅으로 국가가 내버린 자들이 있다.
(윤여일 '쓰나미 이후의 삶, 미야기' 중에서/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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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토크 프레스 편집부 [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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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곽재식, 배명훈, 정세랑, 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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